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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데는 음악과 그림이 아주 많이 도움이 된다...
2017년 09월 16일 23시 32분  조회:1900  추천:0  작성자: 죽림

 

시(詩),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 김참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해야만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주위에서 듣는 여러 가지 소리들도 음악이 된다. 시도 마찬가지리라. 글로 써야만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이 시가 아니겠는가? 흔들리는 나무도, 그 나무 아래를 걸어가는 사람도, 그의 구둣발 소리도 시가 아니겠는가? 그렇다! 글로 표현되지 않아도 시는 다양한 형태로 우리가 사는 세계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나는 시가 세계를 그려내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혼란스런 모습을 띄고 있어서 그 실체를 쉽게 그려내기 어렵다. 지구 위에는 인간 외에도 다양한 동식물이 존재하고, 그것들이 살아가는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새들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물고기는 강과 바다를 헤엄치며 산다. 사람이 느끼는 세계는 물고기나 새들이 느끼는 세계와는 다르며, 나무와 풀, 돼지나 고양이들이 느끼는 세계와 다르다.


우리는 같은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박쥐들에게는 박쥐들의 세계가 있고, 풍뎅이에게는 풍뎅이들의 세계가 있다. 우리가 새와 물고기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듯, 새나 물고기도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알지 못하고, 무당벌레와 심해어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를 수도 있다. 나의 시가 세계를 그려내는 작업이라면 이 작업은 끝이 없는 여행이며 모험이다. 때로는 길을 잃고 미로 속을 헤매지만 나는 나의 여행을 사랑한다.

음악과 그림이 시 쓰기에 도움을 줄 때가 많다. 특히 음악을 들으면 시상이 잘 떠오르는 편이다. 그래서 시를 쓸 때는 음악을 틀어 놓는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시를 쓸 때는, 음악을 틀어 놓지 않았을 때보다 시가 잘 써진다. 시 쓰기에 몰입하다 보면 음반 몇 장 듣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다. 그림을 보면 느닷없이 시상이 떠오를 때도 있다. 첫 시집에 수록된 「시간이 멈추자 나는 날았다」는 고대인들의 그림을, 두 번째 시집에 수록된 「너의 눈」은 샤갈의 그림을 보고 쓴 시다. 뿐만 아니라 두 번째 시집에는 그림이나 그림 속 인물, 그림 그리는 사람을 소재로 하고 있는 것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 그림도 시가 되고 음악도 시가 된다. 모든 것이 시다.


나는 가끔 꿈속에서 고향 마을을 보곤 한다. 내가 살던 마을의 산 아래에는 저수지가 두 개 있었다. 나는 가끔 꿈에서 그 저수지들을 본다. 내가 꿈에서 보는 고향도 그렇지만, 내 꿈에 나타난 저수지 역시 고향에 있는 저수지와는 다르다. 나는 저수지 주위에서 내가 모르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데 꿈속에서 나는 그들과 잘 안다. 꿈에서 깨어나 생각해 보면 그들은 내가 모르는 사람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예전에 내가 알았던 사람인지도 모른다. 저수지에는 아주 거대한 물고기들이 산다. 그놈들이 수면을 박차고 오르면 나는 개미만큼 작아진다. 나는 언젠가 저수지와 저수지에 사는 거대한 물고기에 대한 시를 써보리라 생각했다. 거대한 물고기가 나오는 시를 쓴 적은 있지만 시를 고치는 과정에서 거대한 물고기는 사라져 버렸다. 그 대신에 나는 저수지를 찾아가는 시 한 편을 썼다.

비가 그치면 새들이 날아 나오는 숲을 알고 있다. 그 숲은 이 세계에도 있지만, 꿈의 세계에도 있다. 숲 뒤에는 산이 있고 비가 그치면 구름이 산 너머로 천천히 움직인다. 가끔 비에 젖은 날개를 끌고 가던 거무튀튀한 나방이 양철 지붕 아래로 힘없이 떨어진다. 그 양철 지붕 아래 네모난 창문이 있고, 창문 안에 한 사람이 서 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바다 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도라지밭을 흔들며 지나가는 것을 본다. 바람이 불 때 뒷산 삼나무가 몸 흔드는 것을 보기도 한다. 덜컹거리는 완행열차가 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는 잠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때때로 그는 내가 되기도 한다.

잠에서 깨어나니 돌아가신 할머니가 무를 다듬고 있다. 나는 작은 아이가 되어 할머니 드엥 업혀 있다. 할머니는 다듬은 무를 한쪽으로 치워 놓고 집 밖으로 걸어 나간다. 나는 할머니 등에 업혀 풀밭 위를 팔딱팔딱 뛰어다니는 개구리를 바라보거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새들이 바람에 휘청거리는 것을 보기도 한다. 비가 온 뒤라 풀들은 젖어 있었고 도랑엔 흙탕물이 흐르고 있다. 할머니는 말없이 도랑을 바라보았고, 말 못하는 나도 할머니 등에 업혀 흙탕물 흐르는 도랑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니 할머니와 내가 서 있는 땅이 쏜살같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어지러워 고개를 들었다. 산자락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구름과, 구름을 밀어 올리는 바람이 산자락의 나무들을 마구 흔들고 있다.

나물을 뜯으러 산으로 갔던 동네 처녀들이 바구니를 들고 돌담 옆을 지나간다. 돌담 앞에 늘어선 오리나무 뒤에서 푸른 눈의 고양이가 슬그머니 걸어 나온다. 소나기가 지나간 마을은 너무 조용하다. 아무 소리도 없다. 마을 굴뚝에서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올 때 나는 할머니 등에 업혀 날아다니는 나비를 본다. 흰 날개 펄럭이며 훨훨 날아가는 나비를 본다. 도라지 하얀 꽃 파도 위를 날아가는 나비를 바라본다. 도라지밭 지나 해바라기 노란 꽃 위에 내려앉는 나비, 내 눈 가득 들어오는 나비를 오랫동안 바라본다.

비가 그치자 굴뚝과 이어진 벽을 타고 개미들이 열을 지어 기어 다닌다. 개미를 보며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본다. 개미 눈에는 내가 보이는 걸까? 개미들은 왜 걸어다니지 않고 기어 다니는 걸까? 개미는 왜 끝도 없이 먹이를 나르는 걸까? 나는 왜 종일 방에 처박혀 잠을 잤을까? 잠자지 않을 때는 왜 깨어 있는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잠을 자거나 깨어 있어야 하는 걸까? 잠을 자지도 깨어 있지도 않는 것은 죽은 것들밖에 없는가? 잠을 자거나 깨어 있기 위해 나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나는 날마다 이런 생각이나 하며 시간을 보낸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린다. 새들은 어스름을 타고 숲으로 돌아간다. 회색 구름도 점점 검은색으로 변한다. 개미들은 양철 지붕 아래 떨어진 나방을 끌고 그루터기 뒤로 기어갈 것이다. 짙은 치자 향기를 싣고 온 바람이 뜰에 서 있는 삼나무를 타고 방으로 들어온다. 나는 책상 위에 펜을 내려놓고 마지막 완행열차가 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본다.

그는 그 무렵 완행열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물론 완행열차가 검은 연기를 뿜으며 멀어지는 것도 자주 보았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다. 그가 태어나기 몇 해 전에 철로는 폐쇄되었고 완행열차는 물론 특급열차도 그 마을을 지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완행열차의 기적 소리를 들은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언덕 위로 검은 연기를 뿜으며 천천히 지나가는 완행열차를 본 사람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는 생각을 멈추고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가 쓰는 시에는 사람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둘러싼 공간이 제시된다. 그러니까 그의 시에서는 대부분 시에 등장하는 사람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는 때때로 그의 시에 등장하는 인물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사라진다. 그는 그가 쓴 시 속으로 들어가 여행을 시작한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집을 나와 바깥 세계로 여행을 한다. 가끔, 그도 그가 쓰는 시 속의 인물이 되어 여행을 떠난다.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은 모험이다. 그는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자주 길을 잃는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집을 찾으려고 미로 속을 헤매기도 한다. 때로는 길을 잃고 그는 이상한 사람들이 사는 이상한 세계로 들어간다. 언젠가 그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겠지만, 그는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고 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그는 이 세상에 갑자기 태어나 영문도 모르고 한세상 살아가는 나를 닮았고, 자신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우리들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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