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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녀류시인 50세부터 한글 배워 시를 번역하다...
2017년 03월 12일 01시 01분  조회:3025  추천:0  작성자: 죽림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子さ

전후를 대표하는 여류 시인의 이바라키 노리코<茨木のり子>

(본명·미우라 노리코=미우라·노리코)

1926년에 태어난 일본의 시인으로, 일본이 패전했을 때 열아홉 살이었다. 그녀는 전후 일본 시단에서 여성시인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국정교과서에도 실렸다.

오사카부 태생.
제국여자약전졸(帝国女子薬専卒).

20대에 시를 시작해 시지 「시학」의 투고 동료였던 고 카와사키 히로시씨와 동인지 「노-櫂(かい)」」를 창간.

시원시원한 표현으로, 자립한 전후 여성을 실감나게 노래한 작풍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다.

쇼와 30년에 제1시집 「대화」를 간행.

헤세이 11년의 시집 「倚(よ)りかからず-의지하지 않고」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다른 시집에는 「보이지 않는 배달부」 「진혼가」 「자신의 감수성 정도」 등이 있다.

50 세에 한글을 배우기 시작해 한국의12인의 시인의 작품을 번역한 1990년에는 「한국현대시선」을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한국 현대 시선」으로 요미우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2006년 2월9일, 도쿄도내의 자택에서 7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1946年 戯曲「とほつみおやたち」-희곡 [도보벌 부모들]

1948年 童話「貝の子プチキュー」、

「雁のくる頃」-동화 [조개아이 뿌티큐], [기러기가 올 무렵]

1955年 詩集「対話」

1958年 詩集「見えない配達夫」

1965年 詩集「鎮魂歌」

1967年 「うたの心に生きた人々」

1969年 「茨木のり子詩集」「おとらぎつね」(愛知県民話集)-「이바라키 노리코 시집」「호랑이여우」(아이치현 민화집)

1971年 詩集「人名詩集」

1975年 「言の葉さやげ」

1977年 詩集「自分の感受性くらい」

1979年 「詩のこころを読む」

1982年 詩集「寸志」

1983年 「現代の詩人7 茨木のり子」

1986年 「ハングルへの旅」「うかれがらす」(金善慶童話集・翻訳)-「한글로의 여행」「신이 난 유리 」(금선경 동화집·번역)

1990年 「韓国現代詩選」

1992年 詩集「食卓に珈琲の匂い流れ」

1994年 選詩集「おんなのことば」

1999年 詩集「倚りかからず」「기대지 않고」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시집『의지하지 않고』(筑摩書房)1999年

 

( 「휴식중에」에서)

40년전의 어느 가을 저녁

밤에 출발해서 아침 일찍히

나라역(奈良駅)에 도착했다

호류사(法隆寺)에 가고 싶었지만

아직 버스도 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어제밤 산 역에서 파는 도시락먹고 있자

그 대합실에 역장이 가까이 닥아와

2, 3명의 손님에게 차를 대접해 주었다

완만하게 흐르고 있던 시간

역장의 얼굴은 잊어 버렸지만

큰 주전자와 제복과

따라 준 뜨겁고 진하고 떫은 차의 맛은

지금도 생각이 난다.

 

 

 

 

<심야통신> 죽은자가 보내온 부음/서경식

 

 

시인 이바라기 노리코가 부친 편지가 왔다. 봉투를 뜯어 보닌 첫 행에 이렇게 씌어 있다.

“이번에 저는 (2006)년 (2)월(17)일, (지주막하출혈=뇌막졸중)로,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됐습니다.” 인쇄된 글이지만 ()속만은 손으로 쓴 글씨다. 2행에는 “이것은 생전에 써 둔 것입니다”라고 돼 있다.

그 분이 돌아가신 것은 2월20일 신문보도를 보고 알았다. 고령이었고 몸이 편찮으신 것도 알고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어쨌든 장례식 안내라도 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본인이 직접 쓴 편지가 온 것이다.

“내 의지로 장례·영결식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집도 당분간 사람이 살지 않게 되니 조위금이나 조화 등 아무것도 보내지 말아주세요. ‘그 사람도 떠났구나’하고 한순간, 단지 한순간 기억해주시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자신의 죽음이 가까운 것을 안 시인은 사전에 편지를 준비한 뒤 사후에 우인이나 지인들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해 두었던 것이다. 어쩐지 그답다고나 할까. 언제나 우뚝 서 있던 사람이 조용히, 깔끔하게 떠나갔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여성시인이다. 내가 그의 시를 처음 읽은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의 첫 시집 <대화>(1955), 두번째 시집 <보이지 않는 배달부>(1958)는 이미 나와 있었으나, 세번째 시집 <진혼가>(1965)는 당시 아직 나와 있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13살 아이였지만, 그도 아직 30대로 ‘젊은이’라 해도 좋을 나이였다. 그런데 어쩌면 그토록 뚜렷한 존재감을 갖고 있었던 걸까.

‘장 폴 사르트르에게’ ‘6월’ ‘내가 가장 고왔을 때’… 못보던 신선한 과일을 손에 넣은 듯한 기쁨에 들떠 그의 시를 읽고 또 읽었다. 그때 생각난 이미지는 불에 탄 기왓장들이 나뒹구는 거리를, 눈부신 오후 햇살을 온몸에 받으면서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걸어가는 여성의 모습이다. 봉건제의 속박과 군국주의의 중압에서 해방된 여성들이 주권재민, 평화주의, 남녀동등권 등 전후 일본 헌법이 구가한 민주주의 이념을 향유하면서 그것을 대담하게 실천해가는 모습이다.

그 무렵부터 오늘날까지 거의 40년간 그의 시를 계속 읽어왔다. 긴 세월 동안 내게 그는 멀리서 동경하는 대상이었을 뿐 서로 어떤 연락도 없었다. 그런데 1980년대 전반 어느 날 뜻밖에도 당시 내가 살고 있던 교토에 그가 찾아와 직접 만나게 됐다. 그 경위에 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나의 형(서준식)도 또한 그의 시에 대해서는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그는 17년간 감옥생활을 하는 동안 250통 이상의 장문의 편지를 썼는데, 그 가운데서 다섯 차례에 걸쳐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옥중서간집> 야간비행). 1982년 7월31일 소인이 찍힌 편지에서는 ‘6월’을 자신이 우리말로 번역해, “이것은 하나의 아름다운 ‘유토피아’다. 내 마음 속에는 이런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가 또아리를 틀고 있다”고 썼다. 82년이라면 군사정권 시대 중에서도 가장 험악한 시기였다. 형은 옥중생활 10년을 넘기고 출옥 전망도 전혀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런 그가 그럼에도 자기 마음속에는 “실현 가능한 ‘유토피아’”가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어디엔가 아름다운 마을은 없을까”로 시작하는 그 시 ‘6월’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한다.

 

어디엔가 사람과 사람의 아름다운 힘없을까

같은 시대를 더불어 살아가는

친근함과 재미, 그리고 분노가

날카로운 힘으로 바뀌어 나타난다

 

형의 편지를 받아든 뒤 나는 당시 일면식도 없었던 이바라기 노리코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굳이 교토까지 찾아와 주셨던 것이다. 실제로 만나 본 그는 예상했던 대로 몸집이 크고 삽상한 사람이었다. 말하는 거나 동작 모두가 명쾌했으며, 여리거나 정서과잉인 듯한 구석은 전혀 없었다.

전후 일본의 여성시인 이바라기 노리코가 그려 보인 유토피아가 옥중의 형에게 버틸 힘을 주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스며있는 ‘일본’을 “알코올로 씻어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히 했던 형은 설령 일부분이었을지라도 그것이 자신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다른 편지에서 나에게, 설사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가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거기서(즉 일본 시인들의 시적인 세계에서) 억지로라도 빠져나와 조선민족의 치열한 시적 세계에 몸을 던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것은 현실의 고통을 토대로 한 근거 있는 주장이고, 일본에서 계속 살아온 나를 근저에서 위협하는 문제제기였다. 지금도 나는 그 화두가 정당하다는 걸 인정하고 계속 그 해답을 찾고 있다.

이바라기 노리코는 80년대 후반부터 한글을 배워 조선민족의 시를 번역하기 시작했다. 윤동주를 소개한 그의 에세이는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수록돼 있다. 만년의 그는 일본사회의 우경화를 우려하면서 전후 민주주의 이념이 줄줄이 삭아가는 현실을 개탄했다. 전후라는 시대의 빛을 함께 쬔 시인들(특히 남자들)이 현상 긍정적인 자세로 변절한데 대해 분개했다. 1999년 시집 <기대지 말고>는 분노의 시집이었다. 그 시처럼 그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홀로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나는 지금 조용히 형에게 보고하고자 한다. -형, 형과 나에게 ‘유토피아’를 주었던 시인이 세상을 떠났어. 그 다운 최후였어. “어딘가에 아름다운 마을은 없을까”, 일본인들 대다수가 잊었든지 체념하고 있던 그 마을. 기억하고 있는 자들도 어색하게 냉소를 흘리며 얘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을.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건 얄궂은 일이겠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일지도 몰라.

 

 

/한겨례

 

 

유월 - 이바라기 노리코

 

어딘가에 아름다운 마을은 없는가

하루의 일과 끝에는 한 잔의 흑맥주

괭이를 세우고 바구니를 내려놓고

남자나 여자나 커다란 조끼를 기울이는

 

어딘가에 아름다운 거리는 없는가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단 가로수가

어디까지나 잇달았고 제비꽃 빛깔의 석양녘은

젊은이들의 다정한 속삭임이 충만한

 

어딘가에 아름다운 사람과 사람의 아름다운 힘은 없는가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친숙함과 우스꽝스러움과 노여움이

날카로운 힘이 되어 솟아오르는

 

 

 

한국 시를 누구보다 사랑했고 일본어로 가장 완벽하게 번역해낸
일본의 여류시인이 영면했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한국 시인 12명의 시를 실은 일본어 번역시집 ‘한국현대시선’을 펴내 1991년 요미우리문학상을 수상한 이바라기 노리코 시인이 최근 자택에서 별세한 것으로 확인됐다. 향년 79세.

한국현대시선은 출간됐을 당시 번역시집이 아니라 창작시집 같다는 평이 지배적이었을 정도로 작품성을 높이 평가받았다.

번역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영역에 속하는 시 번역을 이처럼 뛰어나게 해 낸 이바라기 시인이 한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것은 모국어를 공부하기도 쉽지 않은 50세 때였다. 당시는 한국어를 배운다고 하면 모든 일본인이 “왜 하필 한국어냐”고 물을 정도로 한국을 무시하던 때다. 이바라기 시인이 ‘한글에의 여행’이라는 에세이집에서 “오싹하다”고 썼을 정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한국어 공부에 이바라기 시인이 혼신의 힘을 쏟은 이유는 홍윤숙(洪允淑) 시인과의 만남이 계기가 됐다.

이바라기 시인은 홍 시인이 일본어를 무척 잘하는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다. “학생 때부터 배워서”라는 대답을 들은 이바라기 시인은 자신의 둔감함을 뼛속 깊이 뉘우쳤다. 이바라기 시인은 많은 일본인에게 27세의 젊은 나이로 일제의 형무소에서 요절한 한국의 민족시인 윤동주(尹東柱)를 알게 해 준 시인으로도 기억된다. 이바라기 시인이 윤동주에 대해 쓴 수필이 1995년 일본의 한 출판사가 펴낸 고교 현대문 교과서에 실렸던 것.

이바라기 시인은 ‘윤동주’라는 수필에서 “그는 일본 검찰의 손에 살해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통한(痛恨)의 감정을 갖지 않고는 이 시인을 만날 수 없다”고 썼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녀가 50세에 한국말 공부를 시작해 63세때 펴냈다던 번역시집

한국현대시선(韓國現代詩選) (1990년 東京 花神社)

 

 

 

이바라기 노리코와 관련하여 도움이 될 만한 책

 

> 1) (對譯版) 일본 명시선(名詩選) / 김희보 지음 (1985년 종로서적)

> 2) 현대일본어시집(現代日本語詩集) 2-4 / 유정 (1984년 탐구당)

> 3) 일본여성시인대표시선(日本女性詩人代表詩選) / 영뢰청자 (1988년 문학세계사)

> 4) (日本) 현대시(現代詩) / 오영진 편 (1988년 성학사)

> 5) (日本) 명시감상(名詩鑑賞) / 오영진 편 (1992년 성학사)

> 6) 일본현대 대표시선 / 유정 편역 (1997년 창작과비평사) -> 새책으로 판매함

> 7) 일본 근.현대 詩 / 임성규 편 (2000, 제이앤씨(계명)) -> 새책으로 판매함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울리는 경종-작가의 메시지>

 

이바라기노리코는 모든 일을 남의 탓으로, 친구 탓으로, 가까운 친척 탓으로, 시대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고 한다. 3연에서 말한  なにもかも下手だったのはわたくし처럼 무얼하든 서툴기만 했던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꼬집어 이야기 하고 있다.

 

요즘 세상이 각박해져가고 메말라 간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정을 찾아보기 힘들다. 남을 밟지 않으면 자신이 밟히고 마는 각박한 사회 현실 속에서 우리의 감수성은 사회의 모습과 같이 메말라 간다.

 

바싹바싹 말라간다, 나날이 까다로워진다, 초조함이 더해간다, 초심이 사라져간다, 바람직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난다 - 는 문구들의 나열은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작가는 마지막에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자신이 지키라고 한다. 사회를 한탄 하지 말고 그 누구를 탓하지도 말고 바로 나 자신이 지키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회의 한탄을 안 할 수가 없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인문학의 위기 라는 말이 있다. 실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취업이 어렵다고 해서 이공계에 비해 인문학을 멀리하는 경향을 말한다. 사람을 다루는 학문인 인문학이 없이는 어떠한 학문도 출발할 수가 없다. 아무리 의술이 뛰어난 사람도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의사로서의 자질이 없다. 사람을 다루는 일을 의학적 지식만으로 해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문명의 발전도 모두 사람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이 좀더 편리한 생활을 추구하는데서 과학을 개발하고 발전시킬 필요성을 얻게 된 것이고, 사람을 기준으로 사람의 쓰임에 맞추어 과학이 발전한다. 모든 근원의 중심이 사람인데, 이 사람을 연구하는 학문을 경시한다는 것은 뿌리를 잘라내고 꽃이 피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과 같다.

 

요즘 도시 어린이들은 자연을 많이 접하지 못한다. 매일 집에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만 하는 아이가 많다. 일본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져 가상공간이 마치 자신의 삶처럼 생각하는 아이들을 히키코모리라고 하여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어릴 때 동심이라고 일컬어지는 순수한 마음이 요즘 도시 환경에서 자라기 어렵다. 어린이들에게 IQ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시 되야 할 것은 EQ 라고 한다. 창의력과 상상력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바로 감성, 감수성에서 온다.

 

이러한 현실 사회 속에서 감수성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인문학의 위기라고 하는 이 시대에, 어린이들이 자연을 접하지 못하고 컴퓨터 가상현실 속에서 재미를 찾고 있는 이 때에 우리가 메마를 대로 메말라버린 감수성을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까? 나는 그 해답을 '시'에서 찾아보았다. '시'를 읽음으로서 인간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투영해 본다. 또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여유와, 자신이 그토록 힘들어했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도 한다. 시는 풍부한 상상력과 감정을 지니고 있다. 시를 읽는 것만으로 우리의 메마른 감수성을 채울 수 있다.

 

자신의 감수성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바보같으니라고! 경종을 울린다. 아무리 사회가 각박해도 그 사회를 이루는 것은 개인이다. 나도 사회를 이루는 개인으로서 메말라져가는 현실에 조금이라도 보템이 되고 싶다. 시인에게 바보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시를 많이 접하고 읽음으로서 내 마음에 차곡차곡 감수성을 담을 생각이다. 한사람 한사람이 모여 나부터라는 생각으로 실천하면 조그만 감수성들이 모여, 각박한 사회에 윤활유 역할을 하게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따뜻한 정을 지닌 나라이다. 급박하게 사회발전을 이룩하느라 놓쳐버린 우리 고유의 정을 되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자신이 지키자!

 

 

 

한글의 독특한 매력과 저력

 

 

“한글은 마치 편물(뜨개질) 기호 같은 문자야.”

 

같이 한글을 배우던 친구가 무심결에 중얼거린 말이다. 편물 기호라니. 재미있는 말을 한다. 그러고 보니 코늘림, 코줄임, 교차뜨기 같은 기호와 닮지 않은 것도 아니다.

 

'멋이 있습니다, 맛이 있습니다'

'님의 것, 남의 것'

 

모음에 달린 막대기가 하나인가 둘인가, 오른쪽을 보고 있는가 왼쪽을 보고 있는가, 위로 튀어나왔나 아래로 튀어 나왔나, 그 작은 차이 하나로 발음도 의미도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모음이 다채롭지 못한 일본인 입장에서는 어색한 게 많지만, 하나하나 알아 갈수록 너무나 훌륭하게 창조된 문자라고 탄복할 수밖에 없다.

...중략...

 

한글은 지금부터 500여 년 전, 세종대왕이 집현전의 학자들에게 명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한반도의 역사는 5,000여년으로 ‘말하는’ 언어는 조선조 이전부터 꾸준히 쓰여 왔지만 ‘쓰는’ 언어는 한문밖에 없었다. 지금도 ‘유식한 사람’, ‘무식한 사람’과 같은 표현이 쓰이고 있는데, 이른 바 ‘지식인’, ‘교양인’이란 한문을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대다수의 ‘무식한 사람’들의 경우, 말은 해도 읽고 쓰지는 못했다. 이것은 옛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세종대왕은 한국에서 성군으로 추앙받는 위대한 임금으로, 이를 불쌍히 여겨 자신의 심정을 누구나 손쉽게 쓰고 읽을 수 있도록 문자를 만들게 했다. 이에 명석한 학자들이 언어를 모조리 음소로 분해해 한문과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표음문자를 창조한 것이다.

혀나 목구멍, 입 안, 이, 입술의 움직임을 본뜬 독특한 발음기호를 발명, 그 조합이 그대로 문자가 되었다고 하면 될까. 따라서 문자를 읽을 때도 혀를 위턱에 붙인다, 뒤로 뺀다, 중간에 딱 멈춘다, 입술을 딱 다문다, 같은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렇게 분석적이고 복잡한 작업은 머리 나쁜 나 같은 사람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다.

 

 

인용도서: [한글로의 여행]

이바라키 노리코 지음,

원저 1986, 번역판
2010 뜨인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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