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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의 무늬들은 새로운 세계와 세상의 풍경을 만든다...
2017년 07월 24일 04시 25분  조회:2040  추천:0  작성자: 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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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물통을 들고와 죽은 나무에 물을 준다.

황량한 들판, 홀로 선 앙상한 나무에 물을 준다. 별다른 이유 없이 말을 할 줄 모르는 아이. 물은 준 아이가 나무 아래 눕는다.

기다리는 것이다.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희생}의 이 마지막 장면은 유명한 상징으로 알려져 있고, 강한 이미지로 모든 사람의 가슴 속에 닿았다.

우리 현실 속 불안과 황무지와 상실의 이미지와, 그에 대한 희망과 기다림과 구원의 이미지가 강하게 맞물려 굵은 수레바퀴자국을 남겼다고나 할까.
아이는 기억한다. 매일 물을 주어 3년 후에 꽃이 온통 만발했다는 죽은 나무이야기를, 끝없이 노력하면 세상을 변하게 한다는 알렉산더의 이야기를 믿는다.

유일한 소통자는 말을 못하던 아들뿐이었던 알렉산더는 정신병원으로 끌려간 뒤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는 {희생}의 마지막 자막은 [안개 속 풍경]의 결말과 비슷하다.

이는 무엇을 암시하는 말일까. 새로운 소통? 새로운 희망?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장면들은 매우 시적이다.

이 영화에서 우체부인 오토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기다리죠. 무엇인가를." 알렉산더도 말한다.

"내 삶은 긴 기다림에 불과했지." 평생 기차역에 서서 기다리는 느낌, 그것이 인생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이미지의 마술사인 타르코프스키는 다양하게 변주되는 환상적인 영상 속에서 끊임없이 속삭인다.

 그 내밀한 언어는 절망 속의 희망일 터이다. {희생}은 불안과 단절이라는 구조 속에 있는, 소통과 희망의 한 길목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리라. 
황량한 길. 몸뚱이만 남은 나무들이 길을 만들고 있다.

그 길을 두 여인이 서로 기대어 걷는다. 고립되고 단절된 시간과 공간을 '함께' 걷는다.

그래서 사진은 전혀 황량하지 않다. 모순된 충동들 사이로 어떤 조화를 이루는 순간이 작은 믿음을 만들고 있다.

소통은 내 안으로 난 길이고, 또한 함께 가는 길이다.

결국 우리가 찾고자 했던 것은 '함께 걸을 길'이었고, '함께 걸을 그대'였던가. 이렇게 이 사진의 은유는 우리에게 존재의 각성을 가져오고, 또 스스로 위로하는 법을 제시한다. 살아왔고, 살아갈 모든 이유는 '함께'라는 길이었던 것.
이처럼 세계는 카메라의 파인더 속에서 숨겨진 목소리를 낸다.

주변사물과 우리를 이어줌으로 형성되는 수많은 관계와 소통. 그 속에서 우리는 삶의 의미를 전달하고 전달받으며, 삶을 견디는 방법을 알게 된다.

시나 사진이나 영화에 관한 욕망은 바로 이런 은유의 세계를 통해 한 그리움에 닿고자하는 열망과도 같은 것.

이러한 강렬한 존재를 체험하고자 하는 의지가, 의식보다 원래 시적이라는 무의식의 세계를 통과해 이미지로 전개되는 것이리라. 
서정적이며 순수한 예술 영화로 우리가 잃어버린 원초적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작품들은 소박하면서도, 가슴 밑바닥을 뒤흔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1997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체리 향기}는 일상의 사소한 풍경을 통해 삶의 근원적인 질문에 접근한다. 영화 속의 절제된 영상과 단순한 서사구조는 근원적 울림으로 가득하다.

자살을 결심한 40대의 남자가 자신을 묻어줄 사람을 구하기 위해 거리를 헤매는 과정 속에 불거지는 삶의 아름다움.

주인공은 수면제를 먹고 나무구덩이 속에 누워 있을 자신의 시신 위로 흙을 덮어줄 사람을 찾아다닌다.
그의 제의를 받아들인 사람은 세 번째에 만난, 박물관에서 박제를 만드는 노인이다.

제의를 받아들이면서도 노인은 자신이 본 다양한 삶의 아름다움과 살아 있음에 대한 축복을 가르쳐 준다. 노인은 늘 죽음 곁에 사람이라는 것도 하나의 은유이다.

주인공은 결국 삶을 선택한다. 고독과 방황과 기다림은 결국 인간에게 구원이라는 희망을 위하여 있다.

존재의 바닥을 탐구하려는 키아로스타미의 집요한 정신이 내는 커다란 울림. 일상에 숨겨진 삶의 신비를 드러내는 은유의 풀꽃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오마르 카이얌의 4행시에서 더욱 향기로워진다.

인간이여
삶을 즐기려면
죽음이 뒤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체리 향기를 맡아보아라


6

다시 상상한다. 씨앗 위에 흙을 덮는다.

솜털 투명한 떡잎, 줄기에서 벋어나는 가지, 가지에 부푸는 망울들, 경이에 눈을 치뜨는 꽃술, 잎새를 말갛게 통과하는 햇살, 꽃부리에 유희하는 바람, 다시 씨방 안에 맺히는 씨앗들, 그 씨앗을 받는 그대, 그대 앞에 놓인 길. 그리고 잎보라. 눈부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진실에 대한 어떤 가치와 순수. 무엇보다 우리는 우주 속에 있는 무한한 은유의 세계를 상실하고 있다.

부단히 반복되는 삶. 이제 어디에서 그 비밀의 세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모든 답은 '그대'이다. 그대는 '희망' 자체니까. 그대와의 소통이 삶의 이유이다.

모든 풍경의 이유이다. 시를 쓰는, 사진을 찍는, 영화를 보는, 아름다운 이유이다.
소통이 씨앗을 뿌리는 일이고 희망이 꽃을 피우는 일이라면 여기엔 기다림이 필요하다.

상상력은 기다림이라는 열에너지. 수많은 이미지가 피고 진다.

결론적으로 꿈이란 소통에의 의지. 그 꿈은 상상력으로 우리의 삶을 교직하고 채색한다.

이 상상력의 무늬들은 새로운 세계와 인식을 열면서 세상의 풍경을 만든다.

은유의 눈동자들이 만들어낸 이 무늬 속에 희망은 이미 예비되어 있을 것. 사람과 사람들이 이 길목에 선다. 그리고 기다린다. 
사유를 제시하는 어떤 이미지들 속에서 오늘도 우리는 울림을 듣는다.

북소리 같은 울림이 아니라, 깊은 동굴 속 어둠 어디선가 떨어지고 있는 물방울 같은, 맑은 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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