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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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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직녀가 만나는 그림 (베이징 여름궁전 회랑 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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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이름 | 칠석(七夕) |
장소 | 동아시아(중국, 한국, 대만, 일본) |
중요도 | 견우직녀 전설, 오작교 |
날짜 |
음력 7월 7일 (중국, 한국, 대만) 양력 7월 7일 (일본) |
2016년 | 8월 9일 (화) |
2017년 | 8월 28일 (월) |
2018년 | 8월 17일 (금) |
2019년 | 8월 7일 (수) |
행사 | 백설기, 밀국수, 호박부침 |
칠석(七夕)은 중국, 한국, 대만, 일본 민간전설의 견우와 직녀 전설에서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 만나는 날로, 칠석날로도 불린다. 중국, 한국, 대만 등에서는 음력 7월 7일이지만, 일본은 양력 7월 7일이다.
이날은 은하수 동쪽에 있는 견우와 서쪽에 있는 직녀가 까마귀와 까치가 놓은 오작교(烏鵲橋)에서 1년에 한 번 만나는 날이라고 전하여진다. 이날 민간에서는 명절 음식으로 밀국수, 밀전병, 호박부침, 백설기 등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1] 처녀들은 견우와 직녀 두 별을 보고 절하며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기원하고, 많은 사람이 이날 밤 견우와 직녀를 소재로 삼아 시를 짓기도 한다.
‘칠석’의 명칭이 시경(詩經)에 처음 등장하여, 춘추전국시대 이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견우직녀에 관한 전설은 한국, 중국, 일본 모두 비슷하다.
옛날 하늘의 목동인 견우(牽牛)와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織女)가 서로 사랑에 빠져 일은 않고 게으름을 피우자, 화가 난 옥황상제는 그들 두 사람을 은하수 동쪽과 서쪽으로 갈라 놓았다. 두 남녀가 애타게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다 못한 까치와 까마귀들이 매년 7월 7일 밤(칠석)이 되면 옥황상제 몰래 하늘로 날아가 서로작멀교를烏맞대는 다리를 놓아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주었다. 그래서 까치와 까마귀는 모두 머리가 벗겨고, 이날 저녁 에 사람이 흘린 눈물이 은 되어 내리며, 다음날에는 이별을 슬퍼하는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린다고 한다.[2]
요약 음력 7월 7일. 중국 주나라에서 발생한 견우와 직녀 설화가 한국, 대만, 일본 등 동아시아 각국에서 전승되어 유래되었다. 목동인 견우와 베를 짜는 직녀가 일에 게을렀던 까닭에 옥황상제가 노하여 은하수를 사이로 놓고 갈라놓았는데, 해마다 칠석날이면 까치와 까마귀가 머리를 모아 다리를 만들어 두 사람을 만나게 했다는 설화이다. 술과 떡을 준비하여 일꾼들을 격려하는 풍속이 있다.
중국, 한국, 일본, 대만 등에서 전승되는 설화에서 비롯된 날로 음력 7월 7일. 일본은 양력 7월 7일을 칠석이라고 한다.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까마귀와 까치들이 놓은 오작교에서 1년에 1번씩 만났다는 설화에 근거를 두고 있다.(→ 〈견우직녀설화〉).
견우와 직녀의 설화 모티프는 중국 주(周)나라에서 발생하여 한대(漢代)를 거쳐 한국에도 전해져서 구비전승되었다. 목동인 견우와 베를 짜는 직녀가 사랑에 빠져 소를 치는 일과 베를 짜는 일을 소홀히 하자 화가 난 옥황상제가 두 사람을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갈라 놓았다. 이 두 사람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안타깝게 여긴 까치와 까마귀가 매년 음력 7월 7일 밤인 칠석날 머리를 모아 은하수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만들어 두 사람을 만나게 한다는 설화이다. 이날 두 사람의 발에 밟혀서 까치와 까마귀는 머리가 벗겨진다고 하며, 이날 내리는 비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서 흘리는 눈물이라고 전한다.
이날 풍습으로는 걸교라 하여 처녀들이 견우성과 직녀성을 보고 바느질 솜씨가 늘기를 빌고, 선비와 학동들은 두 별을 제목으로 시를 지으면 문장을 잘 짓게 된다고 하여 시를 지었다. 농사 절기상으로는 세벌 김매기가 끝나고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라 하여 한여름철의 휴한기에 접어드는 탓으로 호미걸이 등을 놀면서 휴식을 취했다. 술과 떡, 안주를 준비하여 놀고 풍물 판굿이 꾸려지는 마을축제를 벌인 것이다. 호남지역에서는 '술멕이날'이라 하여 두레꾼들이 술푸념을 하는 날이기도 했다.
지역에 따라서는 여름 장마비에 흙탕이 된 우물을 청소하여 마을민들이 마실 우물이 깨끗하고 잘 솟아나오게 해달라며 소머리를 받쳐 우물고사를 올렸다. 아낙들은 아기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면서 백설기를 쪄서 칠성제를 올리기도 했는데, 칠성제는 정갈하게 지내는 것이라 소찬으로 준비하고 흰무리를 빚는 것이 원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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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우는 하늘나라의 목동이었고 직녀는 옥황상제의 손녀였습니다. 직녀는 부지런하고 길쌈도 잘하여 옥황상제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옥황상제는 직녀를 견우와 결혼시켰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후 견우와 직녀는 사랑에 빠져 게으름만 피우고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옥황상제는 화가나서 견우와 직녀를 은하수강 양편으로 멀리 떨어져 지내게 했으며, 일년에 한 번만 만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일년에 한 번 만나는 것도 은하수강을 건널 수가 없어 발만 동동구르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까마귀들이 하늘나라로 올라가 자신들의 머리를 잇대어 다리를 놓아주었고, 견우와 직녀는 일년만에 감격의 해후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까마귀 머리로 만들어준 다리를 오작교라 했으며, 칠월칠석이 지나면 까마귀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고 합니다.
7월7석은 절기상 비가 자주 내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칠석에 견우직녀별을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가 저녁에 내리면 상봉하는 기쁨의 눈물이고, 아침에 내리면 이별의 슬픈 눈물이라고도 한답니다.
견우성과 직녀성은 항도 운행상 가을에는 서쪽에, 겨울에는 낮에, 봄에는 초저녁 동쪽에 떠있어 보이지 않는데, 여름의 음력 7월7일에는 하늘 천정에 떠서 우리가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년에 딱 한 번 만나는 것처럼 보여 견우직녀의 설화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설화는 원래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생겨난 것이라고 합니다.
칠워칠석 풍속으로는 처녀들은 견우직녀성에게 절을 하며 길쌈을 잘 하게 해달라고 빌었으며, 나라에서는 궁중에서 잔치를 베풀고 성균관 유생들에게는 과거를 실시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또 고려 공민왕 때는 몽고인 황후와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제 바야흐로 휴가철입니다. 깊은 산 은하수가 보이는 곳에 가게 되면 재미삼아 아이들과 견우와 직녀성을 찾아보는 것도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이미지상 견우성은 남쪽 방향이며, 직녀성은 북쪽 방향에 있는 것 같습니다.
--- 까마귀야 우리님들에게도 오작교를 놓아다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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