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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언어이지만 시인은 그 언어의 장벽을 넘어설줄 알아야...
2017년 09월 19일 17시 13분  조회:2590  추천:0  작성자: 죽림
강하게 말하기와 약하게 말하기 

황정산 (문학평론가, 대전대 교수) 



  시는 분명 언어이지만 그냥 언어는 아니다. 말이면서 말을 부정하고 말이 아니면서 진정한 말이 되기도 한다. 상투적인 언어들의 허위와 허망함을 사물의 본래적 생생함으로 환원시키는 것이 바로 이런 시적 언어의 기능이기도 하다. 이런 시어를 통해 시인들은 가려진 진실을 보기도 하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신의 영역을 훔쳐보기도 한다. 시가 말이면서 말을 넘어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시는 말의 의미로 말을 만들지 않는다. 그것은 종교적 교의나 정치적 신념 같은 것을 만들어 내는 말의 방식이다. 시는 말하는 방식을 통해 말을 거부하고 또 말을 만든다. 최근 발표된 시 중에 이런 말하기 방식이 특별한 몇 작품을 주목해 보고자 한다. 

흔히 시인들은 말을 넘어서기 위해 말을 증폭한다. 사소한 것들을 과장 해서 대단한 것으로 만들고 남들이 쉽게 느끼지 못하는 아픔을 비명으로 내질러 고통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어금니 세 개가 빠졌다 
  앞니가 1㎜쯤 벌어졌다 

  금강교 아랜 꽃잎 그득 흐를까 
  개골산 쪽으로 갔다는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지나간 다음에야 알았다 뿌리까지 캐낼 듯 
휘감는 모습을 몽타주로도 그려낼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달려들지 
도대체가 묘연한 얼굴들, 
  경사진 쪽으로만 불었다 골바람처럼 매서웠다 바람을 겨누던 발암發癌이 
바람으로 읽히었다 투신자살을 시도하려던 발자국들이 서서히 방향을 틀었다 

  곪아터진 흔적이 고스란히 담겼다 
  빠져나가는 뒷모습이 선명히 잡혔다 

  씹히는 바람마다 이빨사이에 끼이고 
  여전히 마무리 중, 
  어디에도 기록되기를 원치 않는다 

                     - 박정원,「 디카에 잡힌 바람」(《우리詩》2010년 6월호) 


  ‘디카’는 디지털카메라의 약자이다. 대개 그것은 디지털카메라 중에서도 아주 조작하기 간편한 콤팩트형 카메라를 일컫는 데 쓰는 용어이다. 그래 서 그것을 흔히‘똑딱이’라 말하기도 한다. 시인은 그런 카메라에 잡히는 풍경을 그리고 있다. 디지털카메라에 잡히는 풍경이란 아주 사소한 것이다. 큰맘을 먹고 작품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고 사람들을 불러 세워놓고 기념촬영을 한 것도 아니다. 다만 지나가는 길에 문득 보이는 한 장면과 한순간의 흔적에 불과하다. 그런데 시인은 그 흔적에서 참으로 많을 것을 본다. 무엇보다도 시인은 사진 속에서 바람을 본다. 사진에 찍힌 대상과 배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스치고 있는 바람을 보고 있다. 흔히 바람을 한 순간 스쳐지나가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것은 없는 것이 기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덧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인은 그바람의 모습을 증폭해서 우리에게 낯설게 보여준다. 디카에 잡힌 풍경이 바람을 강조하듯이 시인의 언어가 바람의 느낌을 강렬한 경험으로 과장하고 극대화한다. “어금니가 세 개가 빠”지고“앞니가 1㎜쯤 벌어”진 것은 결국 바람 때문이다. 세상의 풍파가 시인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바람이 그런 흔적을 남긴 것이다. 그래서 디카에 잡힌 바람에는 “곪아터진 흔적”과 “빠져나가는 뒷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를 늙게 만들고 곪아터지게 만들지만 어디에도 기록되기를 싫어하는 바람은 결국 우리의 욕망이기도 하고 또한 자유이기도 하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고통 속에 우리를 던지고 우리를 휘감고 달려드는 삶의 억압을 견디고 있다. 


  사내는 몸속에서 울음을 꺼냈다 울음은 우는 화살이 되어 허공을 갈랐다 
울음의 변방에 빗살무늬를 장치한 구름이 빗발쳤다 

  과녁을 향해 당겨지는 화살은 빗줄기의 연대, 피할 도리가 없으므로 그 
가 사랑한 사슴과 말과 여자는 붉은 비애, 피가 홍건했다 

  광대처럼 광대싸리나무 속에 울음을 가둔 그는 온몸이 화살통인 사내, 
핏발 선 눈으로 뼈를 날려 보내는 

  사랑이 과역이라면, 흉노의 피를 지닌 그를 사랑하련다. 오랑캐, 오랑캐 
하고 부르면 말편자처럼 닳아 돌아오는 그를, 

  구멍 뚫린 염통에서 붉은 울음 꺼이꺼이 토해내는 서녘을 밟고 일몰의 
태양이 멀어진다 입시울소리처럼 오래전에 잃어버린 일촉즉발의 활시위가 
팽팽해진다 

  배를 갈라 울음을 꺼낸 단발명중은 살부림의 효시

  북방중원의 무덤 속인 듯 오후 6시의 과녁이 운다 몸이 떨리고 목젖이 
운다 과녁을 삼킨 나의 화살은 그렇게 흐느낀다 

                             - 강영은,「 우는화살」(《시안》2010년 여름호) 


  이 시는 자극적인 언어로 우리의 모든 감각을 일깨우고 있는 작품이다. “몸속에서 울음을 꺼냈다”는 것은 화살을 꺼내는 행위를 두고 한 말이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우는 소리를 내며 날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울음을 꺼낸다는 표현은 아주 처연하게 느껴진다. 온몸으로 자신의 고통을 하나씩 꺼내는 한 사람의 모습이 생생한 이미지로 나타내고 있다.   살기 위해 벌이를 하고 사랑하고 또 그것들 속에서 상처를 입는 일들은 일상 속에서 아주 흔한 일들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이 그런 것들의 의미 없는 연속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인은 이 상투적인 일상사를 흉노족 사내의 활쏘는 모습으로 바꿈으로써 그 상투성 속에 있는 삶의 진실을 꿰뚫어 보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그 일상의 일들이 사실은 항상 피를 흥건히 준비하고 있는 팽팽한 긴장의 연속임을 시인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깨달음을 역설하기 위해 시인은 “붉은 울음”과 도 같은 강력한 언어로 일상에 함몰된 우리의 무딘 감각을 다시 깨우고 있다. 

  다음 작품은 좀 더 재밌는 방식으로 언어에 힘을 부여한다. 


늦동이 하나 낳으면 잉여라고 이름 짓겠다 
떨어지지 않는 애물단지 
과분하게도 가치창출의 꽃이라네 
널출넌출, 홍냥홍냥 
이 가지 저 가지 앵겨붙는 

귀룽열매 눈망울 순한, 햇빛 좋은 날 소풍 같은 아이야 

사랑이 밑밥인 밥통잉여가 엄마의 업이다 
월척의 꿈 놓아건지는 낚시다 
너는 전승의 꽃가지를 확, 불질러 버리거라 
장벽이나 구획 따위에 물리지 않는 

잉여, 물색 다른 그님은 
한 생이 붕어해도, 잉어해도 해갈 안되는 물고기 

우리는 
소시랑게 눈흘김 얄랑얄랑 너름새 넣어 
노들강변 한허리 감아 도는 잉어이고 싶었다 
한 목숨 수족관 잉여로 치부되는 순간이란다 
저인망 논리가 바다까지 털기 전에 
절체절명이여, 
그 아리아리한 효율 토란 알토란 낳기를! 

                        - 이인주,「 잉여」(《애지》2010년 여름호) 

  잉여는 남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그런데 남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늦동이 아이처럼 또는 과분한 선물 같이 아름답고 또한 기쁨을 주는 존재이다. 사실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이 남는 것으로부터 기인하는지 모른다. 세상에 쓸모없는 것이 예술이 되고 당장에 먹고사는 일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창조적인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이것을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착취하여 가치창출의 수단으로 만들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업신여긴다. 시인은 바로 이런 것을 표현하기 위해 언어의 전복을 시도한다. 경제학적인 용어로 흔히 사용되는 잉여라는 말을 예쁜 늦동이 아이의 이름으로 갖다 앉히기도 하고 잉여를 잉어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잉여라는 말과 그 말에 들어 있는 사회적 함의를 뒤집어 보고 그 안에 들어 있는 허위의식을 꼬집는다. 언어의 전복이 생각의 전복을 만들고 그러한 전복의 힘이 우리의 의식에 확 불을 지르고 있다.하지만 강하게 말하여 과장하고 자극적으로 감각에 호소하는 것만이 시적 말하기의 방식은 아니다. 최근 강하게 말하기 방식이 시단의 주류를 형성하여 피가 튀고 살점이 흩어지는 하드고어적 언어가 난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약하게 말하는 방식이 훨씬 더 큰 시적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건물 더미에 한쪽 다리를 묻은 소녀가 이쪽을 쳐다본다. 
  그날 밤, 엄지발가락이 이상하게 욱신대더니 통풍痛風이란다. 
  바깥으로 빠져나가야 할 게 안으로 쌓였다니 
  안팎으로 통通하지 못한 잘못을 따끔하게 찔린 통痛이다. 

  통풍에 잘 듣는다는 노간주나무를 찾았다. 
  노간주나무의 몸통을 아래로 바짝 휘게 해서 한쪽 발로 누르고 열매를 
땄다. 
  파랗게 여문 햇것도 검게 익은 묵은 것도 가리지 않고 마구 그러담다가 
가시에 찔리고야 나무를 놓아주었다. 

  접힌 허리가 다 펴지지 않아 반쯤 올라가고 반쯤 누운 나무가 그제야 눈에 
뜨인다. 
  평생을 불임과 요통으로 고생할 노간주나무, 그를 슬퍼하듯 곡소리를 내는 
바람이 사무친다. 
  미안하다, 자신을 건사하려고 이렇게 주위를 아프게 하다니. 

  부기가 덧난 발가락을 꼬무락꼬무락한다. 
  통증은 통通하려는 마음을 부르는지 동상에 걸린 노간주나무의 부러진 
가지가, 
  없는 다리를 긁을 소녀의 눈망울이 그렁그렁하다. 

                      - 이동훈,「 아이티소녀의눈물」(《우리詩》2010년6월호) 

  아이티는 최근 지진 피해를 당해 참혹함을 겪은 나라이다. 그곳에서 발견된 한 소녀를 시적 대상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비참함과 삶의 고통과 남겨진 자의 비애가 두드러지게 표현되는 것이 당연한 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인은 아주 담담한 어조로 그것을 표현하고 있다. 지진 피해의 참상을 직접 그리지도 않고 피해를 당해 다친 몸으로 살아 남았을 소녀의 심정을 직접적으로 대변하고 있지 않다. 반대로 시인은 아주 뜬금없이 노간주나무와 자신의 통풍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하여 노간주나무의 부러진 가지와 소녀의 잘려진 다리 그리고 통풍으로 아픈 자신의 다리를 연결시키고 있다. 그것을 통해 아주 먼 나라의 한 아이의 아픔이 자신의 아픔이고 지상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의 아픔임을 아주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약하고 낮은 목소리로 에둘러 표현하는 것 역시 시의 오래된 말하기 방식 중의 하나이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한발 물러나 생각을 하게 만들고 또한 목소리 높은 모든 주의주장들의 허위를 꿰뚫어 보게 하기도 한다. 


땡볕 아래 납작하게 눌린 
갈대가 모래를 건너간다 
평평한 모래밭을 기어오른다 

사방을 움켜쥔 갈퀴손 
한 번씩 쉴 때마다 단단하게 뿌리를 박아둔다 
그것은 모래를 다잡는 유일한 방법 

촉지의 어금니를 디디며 
한발 한발 모래밭을 기어오른다 
어디서 물 냄새가 난다 
고도 제로, 수평의 정상에 물이 있을 것이다 

아직 멀었다 몇 번 비가 오고 비가 그치고

바람은 그 다음의 일 
흔들리는 것은 그 다음의 일 

근친들이 불어터진 발목을 담그고 서 있는 
그 곳 
뼈만 남은 나룻배 하나 

                             - 정병근,「 갈대」(《통》2010년봄호) 


  시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감추고 있다. 애써 나지막하게 말함으로써 자신의 느낌을 가급적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그냥 사물의 모습을 그리고자 한다. 그것도 아주 자세를 낮추고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과 성질을 포착해내고 있다. 그런 시인의 눈으로 봤을 때 갈대는 모래밭을 기어서 건너고 있다. 갈대가 모래밭에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번져가는 모습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리 라. 흔들리는 갈대라는 상투적인 말을 시인은 “그 다음의 일”이라는 점잖은 표현으로 부정해 버린다. 그럴 때 비로소 갈대의 살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불어터진 발목을 담그”는 삶의 진창을 함께 하면서 모여 서로의 생명을 확장해가는 갈대의 강인함을 시인은 발견한다. 
이렇듯 시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낮추고 자신의 신념과 격정을 가라앉히며 사물 그 자체에 낮은 자세로 육박해 들어갈 때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진실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약하게 말하는 것이 결국 큰 언어적 힘을 얻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점에서이다. 

  이 점에서 다음 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묵중한 눈꺼풀 사이로 소리와 냄새가 먼저 들어왔다. 

  어린 나는 마을 어귀 나무평상에 앉아 일하러 가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 
는다. 조석으로 내 앞을 지나 들로 나가는 여러 종류의 마을 가축들을 만난 
다. 각기 다른 발굽 소리와 특유의 냄새가 목에 달린 종소리와 나 사이에서
보초를 선곤 했다. 

  페스Fez의 골목, 나귀가 경쾌한 걸음으로 내 앞을 지나간다. 비킬 사이 
도 없이 오줌을 확 갈긴다. 그때 목에 달린 종소리가 도덕 같은 안전장치는 
될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표정으로 그놈이 날렵하게 다시 걸어갈 때 
크고 묵직한 소리를 내는데 흙길에서조차 원초적인 것, 영원해 보이는 것을 
향해 기꺼이 다가가는 나의 발자국 소리와 다르지 않았다. 

                    - 윤향기,「 나귀들의시간」(《시로여는세상》2010년봄호) 


  시 안에서 이미 시적화자는 목소리를 낮추고 있다. “ 어린 나”로 시적화자를 설정함으로써 세상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목소리를 아직 갖지 못한 인물로 자신을 대신하고 있다. 바로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볼 때 나는 세상의 한 모습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시인은 그것을 “영원해 보이는 것을 향해 기꺼이 다가가는 나의 발자국 소리와 다르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서 너나 없이 안달이다. 목소리 높여 말하고 무엇인가를 큰 목소리로 주장해야 자신의 정체성이 확고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못하면 고통스러운 비명이라도 내질러야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 시의 시인은 자신을 먼 외국을 여행하는 어린 아이로 설정함으로써 자신을 지우고 있다. 그럴 때 바로 세상 사람들과 나 아닌 모든 것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말들이 꽉 차 서로를 주장하는 이 시대에 이렇게 나직하고 약하게 말하는 시들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은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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