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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번도 반복되는 하루는 두번 다시 없다...
2017년 10월 22일 00시 15분  조회:2686  추천:0  작성자: 죽림

 
출생 1923. 7. 2, 폴란드 포즈나인 브닌
국적 폴란드

요약 폴란드의 시인. 1996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동료 시인인 즈비그니에프 헤르베르트 및 타데우슈 로제비치와 함께 현대 폴란드의 투쟁, 즉 제2차 세계대전, 유대인 학살, 소련 점령,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스탈린주의, 계엄령, 민주화 등을 증언했다. 고도의 철학적 문제를 다루려는 욕망과 강렬한 휴머니즘으로 이것을 부드럽게 조율했으며, 1996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심보르스카는 1945~48년 크라쿠프의 야기엘로니안대학교에서 문학과 사회학을 공부했다. 그녀의 시는 1945년에 잡지에 처음 발표되었다.

1952년에 첫 시집이 나온 데 이어 1954년에 2번째 시집이 나왔지만, 심보르스카는 이 두 시집이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맹목적으로 헌신했다는 이유로 이 시집들을 자신의 작품 목록에서 줄곧 제외해왔다. 소련이 검열을 완화한 뒤에 처음 출간된 시집 〈예티에게 외치다 Wo anie do Yeti〉(1957)는 표제 인물인 설인(雪人) 예티를 통해 스탈린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그 후에 나온 시집으로는 〈소금 Sol〉(1962)과 〈끝없는 재미 Sto pociech〉(1967) 등이 있다. 〈아마 Wszelki Wypadek〉(1972)의 표제작은 그가 자주 다루는 주제인 우연을 검토하고 있으며 후기 시집으로 〈큰 수(數) Wielka liczba〉(1977), 〈끝과 시작 Koniec i pocz tek〉(1993) 등이 있다.

1953~81년 그녀는 주간지 〈문학생활 Zycie literackie〉에 〈과외 독서 Lektury nadobowiazkowe〉라는 칼럼을 기고했으며, 1980년대에는 〈아르카 Arka〉와 〈쿨투라 Kultura〉라는 잡지에 기고했는데, 〈쿨투라〉는 프랑스 파리에서 발간되는 폴란드 망명 문학 잡지였다. 심보르스카는 16, 17세기의 프랑스 시에 대해 전문지식을 가진 저명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심보르스카는 개인적인 문제에 보편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폴란드의 다른 시인들과 구별된다.

그녀의 시에서는 일상적인 것들이 더 넓은 배경 속에서 철저히 재검토된다. 섬세한 문체는 재치와 깊이와 초연함에서는 고전적이지만, 아이러니와 냉담함에서는 현대적이다. 또한 꾸밈없는 언어가 곁가지를 모두 제거하고 대상을 향해 곧장 나아가는데, 이것은 1950년대 중엽에 동유럽 시문학을 지배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 수법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어조는 잔뜩 비꼬는 대화체인 경우가 많다.

지난 30년 동안 폴란드에서 시집 7권을 발표한 이 은둔자는 기법의 미묘함 때문에 번역하기 어려운 시인이라고 알려져왔으나, 그녀의 시집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나왔다. 영어판 시집으로는 〈소리, 느낌, 생각 Sounds, Feelings, Thoughts〉(1981), 〈다리 위의 사람들 People on a Bridge〉(1990), 〈모래알이 있는 풍경 View with a Grain of Sand〉(1995) 등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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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은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내 이름을 큰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단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ㅡ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ㅡ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심안(心眼)을 가진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생애와 시(詩)의세계

 

 

2015 광화문글판 겨울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의 시 '두 번은 없다

 

[펌] 가장 이상한 세 단어 - 비수아바 쉼보르스카

1. 시인의 생애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tawa Szymborska, 1923~2012)는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폴랜드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시인은 역사와 예술의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에서부터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인간의 본질과 숙명에 대한 집요한 탐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품 세계를 펼쳐 보임으로써 실존 철학과 시를 접목시킨 '우리 시대의 진정한 거장'으로 불리고 있다.

  1923년 폴란드 중서부의 작은 마을 쿠르니크에서 태어난 쉼보르스카는 여덟 살 때 폴란드 남부의 유서 깊은 문화 도시 크라쿠프krakow로 이주했다. 크라크프는 발트 해에서 흑해 연안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며 유럽의 강대국으로 군림하던 폴란드 야기엘론스키 왕조(1386~1572)의 수도였다. 폴란드의 역사와 전통,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고도(古都)에서 시인은 시적 감수성과 풍부한 예술 감각을 키우며 성장하였다. 명문 야기엘론스키 대학에서 국문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쉼보르스카는 1945년 <단어를 찾아서>라는 시로 문단에 첫발을 내디뎠다.

 

  

단어를 찾아서 / 쉼보르스카

 

 

솟구치는 말들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싶었다.

있는 그대로의 생생함으로.

사전에서 훔쳐 일상적인 단어를 골랐다.

열심히 고민하고, 따져보고, 헤아려보지만

그 어느 것도 적절치 못하다.

 

가장 용감한 단어는 여전히 비겁하고,

가장 천박한 단어는 너무나 거룩하다.

가장 잔인한 단어는 지극히 자비롭고,

가장 적대적인 단어는 퍽이나 온건하다.

 

그 단어는 화산 같아야 한다.

격렬하게 솟구쳐 힘차게 분출되어야 한다.

무서운 신의 분노처럼.

피 끓는 증오처럼.

 

나는 바란다. 그것이 하나의 단어로 표현되기를.

피로 흥건하게 물든 고문실 벽처럼

네 안에 무덤들이 똬리를 틀지언정,

나는 정확하게, 분명하게 기술하고 싶다.

 

그들이 누구였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지금 내가 듣고 쓰는 것, 그것으로 충분치 않다.

터무니없이 미약하다.

 

우리가 내뱉는 말에는 힘이 없다.

그 어떤 소리도 하찮은 신음에 불과하다.

온 힘을 다해 찾는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 헤맨다.

그러나 찾을 수 없다.

도무지 찾을 수 없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tawa Szymborska, 1923~2012)

다작(多作)을 꺼리는 작가로 유명하다. '한 편의 시를 봄에 쓰기 시작해서 가을에 가서야 완성하는 경우도 많다"는 시인 자신의 고백에서도 잘 알 수 있듯이, 시인은 완성된 시를 곧바로 발표하지 않고, 오랜 수정과 선별 작업을 거쳐 출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인으로 등단한 지 60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출판한 시집은 불과 열두 권에 불과하다.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찬사에 걸맞게 시어의 선택에 있어 결벽증에 가까울 만큼 완벽을 추구한 결과이다.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인 만큼 일단 시집에 수록, 공개된 시들은 한 편, 한편이 모두 대표작이라고 할 만큼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지금까지 출판된 저서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1952), <나에게 던지는 질문>(1954), <예티를 향한 부름>(1957), <소금>(1962), <애물단지>(1967). <만일의 경우>((1972), <거대한 숫자>(1976), <다리 위의 사람들>(1986), <끝과 시작>(1993), <모래알갱이가 있는 풍경>(1996), <순간>(2002), 어른을 위한 그림책<운율놀이>(2003), <콜론>(2005), <여기>(2009), <충분하다>(2012)등이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갑작스레 쏟아지는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부담스러워했던 쉼보르스카는 크라쿠프에 거처를 두고, 슬로바키아와의 국경 지역에 있는 휴양지 자코파네를 오가며 은둔 생활을 했다.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대신 작품을 통해 꾸준히 독자들과 소통해왔던 쉼보르스카는 2012년 지병인 폐암으로 타계했다.

  1991년 독일의 괴테 문학상을 수상한 쉼보르스카는, 1996년에 노벨문학상의 영예와 함께 펜클럽 문학상도 받았다. 스웨덴 한림원은 쉼보르스카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발표하면서 "시인의 작품 세계는 그 특유의 치밀한 풍자로 인간의 실존 문제를 역사적, 생물학적 특성과 연계하여 명쾌하게 드러내 보였다. 시인의 시어는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으면서도 메너리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풍부한 영감, 그리고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단어를 꼭 알맞은 곳에 배치하는 '위대한 평이성'으로 인해 시인은 '문학의 모짜르트'라 불리고 있다. 그러나 시인의 시 속에는 '베토벤'의 분노와 같은 그 무엇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쉼보르스카의 작품은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스웨덴어, 러시아어, 일본어 등 총 28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계속)

 

 

번역; 최성은

 

                            한국 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 및 같은 대학원 동유럽어문학과 졸업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 폴란드 문학박사 학위 받음

                         바르샤바 대학교 한국문학과 교수한국외국어대 폴란드어과 교수.

                                  

 

 

Ernesto Cortaz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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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심안(心眼)을 가진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생애와 시 세계 2 / 최성은

 

 

2. 작품 세계

 

 

  "모짜르트처럼 잘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 같은 웅장함을 겸비했다"는 찬사를 받아온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는 낭만적인 감상이나 서정적인 소재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역사와 문학에 대한 고찰과 문명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인간의 실존 문제에 대한 철학적 명상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쉼보르스카의 시는 인류의 공통적인 정서를 아우르는 보편성과 특정한 사조에 얽매이지 않는 독특한 자유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A. 평범한 일상에서 건져 올린 비범한 삶의 지혜

  쉼보르스카의 시의 가장 큰 특징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로부터 건져 올리는 비범한 삶의 지혜이다. 이것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인 특유의 독창적 방법과 오랜 철학적 사유의 소산이다.

  쉼보르스카는 대상의 핵심을 향해 무리하게 돌진하거나 집착하지 않고, 언제나 한 걸음 물러서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조적인 자세로 대상의 진면목을 파악한다, 성급한 감상이나 경솔한 주관적 견해를 배제하고 냉정하면서도 객관적인 시각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파악한 대상의 본질을 풍부한 상징과 알레고리, 풍자와 해학, 아이러니 등을 동원하여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독자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쉼보르스카의 실질적인 등단 시집으로 꼽히는 <예티를 향한 부름>에 실린 <두 번은 없다>는 폴란드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폴란드의 전 국민이 애송하는 시인의 대표작이다. 이 시에서 쉼보르스카는 단순하고 평이한 시어로 삶의 소중한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두 번은 없다

 

     두 번 일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고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는 연습 없이 태어나서 
     실습 없이 죽는다. 

     인생의 학교에서는 
     꼴찌라 하더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같은 공부는 할 수 없다. 

     어떤 하루도 되풀이 되지 않고 
     서로 닮은 두 밤[夜]도 없다. 
     같은 두 번의 입맞춤도 없고 
     하나같은 두 눈맞춤도 없다. 

     어제, 누군가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불렀을 때, 
     내겐 열린 창으로 
     던져진 장미처럼 느껴졌지만. 

     오늘, 우리가 함께 있을 때 
     난 얼굴을 벽 쪽으로 돌렸네 
     장미? 장미는 어떻게 보이지? 
     꽃인가? 혹 돌은 아닐까? 

      악의에 찬 시간. 너는 왜 
      쓸데없는 불안에 휩싸이니? 
      그래서 넌ㅡ흘러가야만 해 
      흘러간 것은ㅡ 아름다우니까 

      미소하며, 포옹하며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방울의 
      투명한 물처럼 서로 다르더라도.

                                   (전문)

 

  인간 실존에 대한 시인의 명쾌한 자각은 인간을 "투명한 물방울"에 비교하면서 시작된다. 거대한 세상 속에서 인간은 한 줌의 티끌처럼 미약하지 이를 데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 세상 어디에도 나와 똑같은 존재는 없다는 사실이다.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할 정도로 꼭 닮은 두 개의 물방울, 그러나 그 투명한 물방울도 알고 보면 엄연히 서로 다른 개체이듯 인간도 '사회'라는 거대한 집단 속에서 부속품처럼 닮아 있지만 개개인을 들여다보면 고유한 인성을 가진 독립적인 존재인 것이다.

  타인으로 대치될 수 없는 독자적인 개인의 실존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쉼보르스카의 사상은 키르케고르나 포이어마흐의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키르케고르는 헤겔이 주장하는 보편적 정신을 부정하고, 인간 정신을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것으로 보아 개인의 주체성이 진리임을 주장했다. 포이어바흐는 인류의 본질이 개별적인 '나'와 '너'로 형성된 집합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처럼 너와 내가 '다르다'는 실존적인 자각이 선행될 때, 우리는 비로소 화해와 일치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서로 다른 무수한 물방울이 모여 시내를 이루고, 대지를 타고 흘러 강이 되고, 마침내 거대한 바다 속에 하나로 융합되듯이 우리 각자는 서로 다르다. '상대성'을 먼저 인정함으로써 상대방을 포용할 수 있는 일치점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시인은 역설하고 있다.

  현란한 수사나 언어의 유희를 배제하고, 쉽고 단순한 시어로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언어적 감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로 <가장 이상한 세 단어>를 들 수 있다.

 

   가장 이상한 세 단어

 

   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 단어의 첫째 음절은 이미 과거를 향해 출발한다.

 

   내가 "고요"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나는 이미 정적을 깨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무언가를 창조하게 된다.

   결코 무(無)에 귀속될 수 없는

   실재하는 그 무엇인가를.

 

  오랜 숙고와 관찰을 통해 얻은 실존적 자각을 현학적인 수사가 아니라 소박하고 진솔한 시어, 절제되고 압축된 표현을 통해 생생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쉼보르스카는 존재 그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근원적 본성'과 인위적인 형식에 불과한 '언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다.

 

    언니에 대한 칭찬의 말

 

    우리 언니는 시를 쓰지 않는다.

    아마 갑자기 시를 쓰기 시작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시를 쓰지 않았던 엄마를 닮아,

    역시 시를 쓰지 않았던 아빠를 닮아 

    시를 쓰지 않는 언니의 지붕 아래서 나는 안도를 느낀다.

    언니의 남편은 시를 쓰느니 차라리 죽는 편을 택할 것이다.

    제 아무리 그 시가 '아무개의 작품'이라고 그럴듯하게 불린다 해도

    우리 친척들 중에 시 쓰기에 종사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언니의 서랍에는 오래된 시도 없고,

     언니의 가방에는 새로 쓴 시도 없다.

     언니가 나를 점심 식사에 초대해도

     시를 읽어주기 위해 마련한 자리는 아니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녀가 끓인 수프는 특별한 사전 준비 없이도 그럴싸하다.

     그녀가 마시는 커피는 절대로 원고지 위에 엎질러질 염려가 없다.

 

      가족 중에 시 쓰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그런 가족들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결국 시인이 나왔다면 혼자만의 문제로 끝나는 법은 없다.

      때때로 시란 가족들 상호간에 무시무시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세대를 관통하여 폭포처럼 흘러간다.

 

      우리 언니는 입으로 제법 괜찮은 산문을 쓴다.

 

      그러나 그녀의 유일한 글쓰기는 여름 휴양지에서 보내온 엽서가 전부다.

 

      엽서에는 매년 똑같은 약속이 적혀 있다;

      돌아가면

      이야기해줄께

      모든 것을,

      이 모든 것을,

 

   <언니에 대한 칭찬의 말>에서 시인은 평범한 일상에 대한 동경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시어(詩語)의 세계에 갇혀 창조를 향한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시인의 운명은 시를 쓰지 않는 언니의 안온한 삶과의 대비를 통해서 역설적으로 부각된다.

    <양파>에서도 우리는 지극히 단순하고, 사소한 대상의 본질을 향해 속속들이 머무는 시인의 애정 어린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양파

 

      양파는 뭔가 다르다.

      양파에겐 '속'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양파다움에 가장 충실한,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완전한 양파 그 자체이다.

      껍질에서부터 뿌리 구석구석까지

      그러므로 양파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스스로의 내면을 용감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

 

      우리는 피부 속 어딘가에

      감히 끄집어낼 수 없는 야생 구역을 감추고 있다.

      우리의 내부, 저 깊숙한 곳에 자리한 지옥,

      저주받은 해부의 공간을,

      하지만 양파 안에는 오직 양파만 있을 뿐

      비비꼬인 내장 따윈 찾아볼 수 없다.

      양파는 언제나 한결같다.

      안으로 들어가도 늘 그대로다.

 

      겉과 속이 항상 일치하는 존재.

      성공적인 피조물이다,

      한 꺼풀, 또 한 꺼풀 벗길 때마다

      좀 더 작아진 똑같은 얼굴이 나타날 뿐.

      세번째도 양파, 네번째도 양파,

      차례차례 허물을 벗어도 일관성은 유지된다.

      중심을 향해 전개되는 구심성(求心性)의 아름다운 푸가,

      메아리는 화성(和聲) 안에서 절묘하게 포개어졌다.

 

      내가 아는 양파는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둥근 배.

      영광스런 후광을

      제 스스로 온몸에 칭칭 두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있는 건 지방과 정맥과 신경과

      점액과, 그리고 은밀한 속성뿐이다.

      양파가 가진 저 완전무결한 우둔함과 무지함은

      우리에게 결코 허락되지 않았다.

 

  '인간'인 시인은 한낱 '식물'에 지나니 않는 양파가 지닌 일관성, 벗겨도 벗겨도 똑같은 얼굴이 나타나는 그 한결같은 속성를 가리켜 "구심성의 아름다운 푸가"이자 "절묘하게 포개어진 메아리의 화성"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그 "완전무결한 우둔함과 무지함"을 갈망하고, 부러워 한다.

 

  2002년에 발표한 시집 <순간>에서도 대상의 본질을  포착하는 특유의 예리한 관찰력은 어김없이 번뜩이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구름>이라는 시이다.

 

       구름

 

      구름을 묘사하려면

      급히 서둘러야만 하지,

      순식간에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형상으로 변하기에,

 

      구름의 속성이란

      모양, 색조, 자세, 배열을

      한순간도 되풀이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기억할 의무가 없기에

      사뿐히 현실을 지나치고.

 

      아무것도 증언할 필요가 없기에

      곧바로 사방으로 흩어져버리네.

 

      구름과 비교해보면

      인생이란 그래도 확고하고 안정적인 것.

      상당히 지속적이고, 꽤 영원하네.

 

      구름 곁에서는 바윗덩이조차도

      의지할 수 있는 형제처럼

      믿음직스럽게 느껴지네.

      그에 비하면 구름은 마치

      변덕스런 먼 사촌 누이 같네.

 

      인류여, 원한다면 계속해서 존재하라.

      그 다음엔 차례차례 죽는 일만 남았으니.

      구름에겐

      이 모든 것이

      조금도 낯설거나 이상스럽지 않다네.

 

      너의 전 생애와

      아직은 못 다한 나의 생애 너머에서,

      구름은 예전처럼 우아하게 행진을 계속하네.

 

      구름에겐 우리와 함께 사라질 의무가 없다네.

      흘러가는 동안 눈에 띄어야 할 필요도 없다네.

 

  2005년에 출판된 <콜론>에 수록된 <맹인들의 호의>는 시각장애들 앞에서 시 낭송을 하게 된 한 시인의 에피소드를 소재로 하고 있다. 한창 낭송을 하던 중 시인은 빛과 색조, 구체적인 풍경 등 시각적인 표현이 들어간 대목에서 안타까움과 당혹스러움을 절감하게 된다. 자신은 볼 수도 없는 시인의 서명을 요청하는 한 시각장애인 독자의 모습을 묘사한 대목에서 비장애인들보다 더 깊은 이해심과 포용력을 가진 장애인들의 너그러운 마음과 그들의 비애가 실감나게 표현되고 있다.

 

       맹인들의 호의

 

       시인이 맹인들 앞에서 시를 낭독한다.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미처 몰랐다.

       목소리가 떨린다.

       손도 떨린다.

 

       여기서는 문장 하나하나가

       어둠 속의 전시회에 출품된 그림처럼 느껴진다.

       빛이나 색조의 도움 없이

       홀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그의 시에서

       별빛은 위험한 모험이다.

       먼동, 무지개, 구름, 네온사인, 달빛,

       여태껏 수면 위에서 은빛으로 반짝이던 물고기와

       높은 창공을 소리 없이 날던 매도 마찬가지.

 

       계속해서 읽는다- 그만두기엔 너무 늦었기에-

       초록빛 풀밭 위를 달려가는 노란 점퍼의 사내아이.

       눈으로 개수를 헤아릴 수 있는 골짜기의 붉은 지붕들.

       운동선수의 유니폼에서 꿈틀거리는 등번호들.

       반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벌거벗은 낯선 여인에 대해서.

 

       침묵하고 싶다 - 이미 불가능한 일이지만-

       교회 지붕 꼭대기에 올라앉은 모든 성인(聖人)들,

       열차의 창가에서 벌어지는 작별의 몸짓,

       현미경 렌즈와 반지의 광채,

       화면과 거울, 그리고 여러 얼굴들이 담겨진 사진첩에 대해서.

       하지만 맹인들의 호의는 정말로 대단하다.

       그들은 한없는 이해심과 포용력을 가졌다.

       귀 기울리고, 미소 짓고, 박수를 보낸다.

 

       심지어 그들 중 누군가가 다가와서는

       거꾸로 든 책을 불쑥 내밀며

       자신에겐 보이지도 않는 저자의 서명을 요청한다.

 

   이처럼 쉼보르스카의 시는 특별히 현학적인 시어를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소박하고 진솔한 언어로 우리에게 삶의 소중한 진리를 일깨워준다. 시인은 결코 목소리를 높여 단언하거나 애써 독자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단순 명료한 어조로 독자들의 귓가에 생의 의미에 대해 나직하게 속삭이고 있을 뿐이다. (계속)

 

번역; 최성은

 

                                       한국 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 및 같은 대학원 동유럽어문학과 졸업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 폴란드 문학박사 학위 받음

                                       바르샤바 대학교 한국문학과 교수 역임. 현재 한국외국어대 폴란드어과 교수.

                                       2012년 폴란드 정부가 수여하는 십자 기사 훈장 받음

                                       저서; <안녕하세요 교황님>외 다수.

                                       번역; <쿠오 바디스>,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등 다수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김영하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는가>를 비롯, 김소월, 윤동주, 서정주 3인 시선집을 폴란드

                                              어로 번역하여 출간하기도 했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생애와 시 세계  / 최성은 (3)

 

 

2. 작품 세계

 

B. 만물을 포용하는 생명 중심적 사고

 

  쉼보르스카는 인간 중심적인 잣대나 일체의 선입견을 배제한 '자연의 눈'으로 사물의 본질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에 예술의 참된 가치가 있고, 생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강조한다. 그렇기에 "시골 길에 쓰러져 있는 "딱정벌레"와 같은 작은 생명체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 미물들이 지닌 놀랄만큼 묵직한 존재감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보인다.

 

    위에서 내려다본 장면

 

    시골 길에 죽은 딱정벌레 한 마리가 쓰러져 있다.

    세 쌍의 다리를 배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은 채,

    죽음의 혼란 대신 청결과 질서를 유지하면서,

    이 광경이 내포하는 위험도는 지극히 적당한 수준,

    갯보리와 박하 사이의 지정된 구역을 정확히 준수하고 있다.

    슬픔이 끼어들 여지는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다.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푸르다.

 

    우리의 평화를 유지시켜주기 위해,

    동물들은 정말로 죽는 것이 아니라 표면적으로만 숨을 거둔다.

    우리들이 믿고 싶어 하는 대로, 감각이나 이승에 대한 미련을 훌훌 떨쳐버린 채,

    우리들이 짐작한 대로, 저승보다는 덜 비극적인 이 세상을 홀연히 떠난다.

    그들의 온순한 영혼은 절대로 어둠 속에서 우리를 겁주지 않는다.

    그들은 거리를 유지할 줄 안다.

    그들은 배려가 뭔지를 안다.

 

    여기 길 위에 죽은 딱정벌레 한 마리가 있다.

    그저 한 번 쳐다봐주는 것도 딱정벌레에겐 커다란 추모일 수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지극히 태평스러워 보인다.

    중요하고 심각한 일은 모조리 우리, 인간들을 위해 예정되어 있다.

    삶은 오로지 우리들의 것이며,

    언제나 당연한 듯 선행권(先行權)을 요구하는 죽음 또한 오로지 우리들만의 전유물이다.

                                                                                    (전문)

 

  존재의 본질을 향해 크게 부릅뜬 시인의 심안은 사람들이 좀처럼 관심을 두지 않는 보잘것없는 미물, 죽은 딱정벌레를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한낱 벌레 한 마리가 숨을 거두었다고 슬퍼하거나 아쉬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인간의 죽음에 어김없이 뒤따르는 요란한 추모 의식도, 비통한 애도의 눈물도 없다. 쉼보르스카의 시에서 생에 대한 구구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은 언제나 인간들이다. 동물들은 "청결과 질서를 유지하면서"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고, 조용하게 담담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인다. 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조화로운 공생과 평화를 위해 다른 생명체에 함부로 발을 들여놓지 않으며,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줄"도 안다. 우주 만물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본원적 생태계에서 모든 생명에는 자연에서 태어나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생일

 

    온 세상이 사방에서 한꺼번에 부스럭대고 있어요.

    해바라기, 배따라기, 호루라기, 지푸라기,

    찌르레기, 해오라기, 가시고기, 실오라기,

    이것들을 어떻게 가지런히 정렬시키고, 어디다 넣어둘까요?

    배추, 고추, 상추, 부추, 후추, 대추, 어느 곳에 다 보관할까요?

    개구리, 가오리, 메아리, 미나리

    휴우, 감사합니다. 너무 많아 죽을 지경이네요.

    오소리, 잠자리, 개나리, 도토리,

    돗자리, 고사리, 너구리를 넣어둘 항아리는 어디에 있나요?

    노루와 머루, 가루와 벼루를 담을 자루는 어디에 있나요?

    기러기, 물고기, 산딸기, 갈매기, 뻐꾸기는 어떤 보자기로 싸놓을까요?

    하늬바람, 산들바람, 돌개바람, 높새바람은 어디쯤 담아둘까요?

    얼굴빼기 황소와 얼룩말은 어디로 데려갈까요?

    이런 이산화물(二酸化物)들은 값지고. 진귀한 법.

    아, 게다가 다시마와 고구마도 있군요!

    이것들은 모두 밤하늘의 별처럼 그 값이 어마어마하겠지요.

    감사합니다. 하지만 과연 내가 이걸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이 모든 노력과 수고가 나 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니 과분하기 그지 없네요.

    이것들을 다 만끽하기엔 인생은 너무도 짧은걸요.

    나는 여기에 그저 잠깐 동안 머물다 갈 뿐입니다, 아주 짧은 찰라의 시간 동안.

    멀리 있는 것은 미쳐 보지 못하고, 가까이 있는 것은 혼동하지 일쑤랍니다.

    이 촉박한 여행길에서 나는 사물이 가진 허무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그만 길가의 조그만 팬지꽃들을 깜빡 잊고,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사소한 실수가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그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답니다.

    아, 이 작은 생명체가 줄기와 잎사귀와 꽃잎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을까요.

    오직 한번 무심한 듯 세심하고, 당당한 듯 연약한 모습을 드러냈다가

    영원히 사라질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오래 조바심쳐가며 애타게 기다렸왔을까요.

                                                    (전문)

 

  이 시에서 "나"와 "길가의 조그만 팬지꽃"은 모두 "대자연"이라고 하는 거대한 생명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이다.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된 우주의 삼라만상 속에서 인간인 '나'와 식물인 '팬지꽃'은 동등한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상호 의존적인 공생 관계에 놓여 있다. 불교의 연기설(緣起設)이 설명해주듯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의존-의지하는 인연과 화합의 관계 속에 묶여 있기에 '나'와 '팬지꽃'은 서로의 존재를 알아보고 인정해주어야 할 본질적이고 필연적인 의무를 지니고 있다. '생의 절정'을 맞이 한 팬지 꽃을 깜빡 잊고, 놓쳐버린 '나'의 실수를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릴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자연의 필터를 통해 들여다보면,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그 자체로 이미 존엄하고 경이로운 존재인 것이다.

  쉼보르스카는 사물의 본성과 상대적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자생적 생명의 원천인 자연과 직접적으로 교감을 나눈다. <알레그로 마논 트로포; 빠르게 그러나 적당히>에서 시인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빠르게 그러나 적당히

       Allegro ma non troppo

 

      나, 생을 향해 말한다- 너는 아름답기 그지없구나

      더 할 나위 없이 풍요롭고,

      한결 더 개구리답고, 마냥 밤꾀꼬리답고,

      무척이나 개미답고, 꽤나 종자식물답다.

 

      생으로부터 사랑받고, 주목받고,

      찬사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순종의 의사를 얼굴 가득 드러내고서

      언제나 제일 먼저 그 앞에 무릎을 끓는다.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기를 쓰고 쫓아간다.

      환희의 날개를 단 채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도 하고,

      경탄의 물결에 휩쓸려 몸을 던지기도 한다.

 

       이 메뚜기는 얼마나 초원에 잘 어울리는지.

       이 산딸기는 얼마나 숲 속에 잘 어울리는지

       만약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감히 이런 생각을 품지도 못했으리라!

 

       나, 생을 향해 말한다-너와 견줄 만한 대상을

       결국 찾지 못했노라.

       그 무엇도 똑같은 솔방울을

       만들어 낼 수는 없으리라.

       그보다 낫지도 못하지도 않은

       바로 그 솔방울은 더 이상 없으리라.

 

       네 관대함과 창의력, 깔끔함과 정확성에

       머리 숙여 찬사를 보내노라.

       음, 또 뭐가 있을까- 그래, 더 나아가

       네 마법과 마력에도 경의를 표하노라.

 

       단지, 네 기분을 망치지 않기를.

       너를 화나게 하거나 귀찮게 하는 일 없기를.

       수천 년 전부터 나는 늘 미소를 잃지 않고,

       네 비위를 맞추려고 무던히 노력 중이다.

 

       잎사귀의 끝자락을 향해 손을 뻗어

       생을 잡아당겨본다

       그래 정지했는가? 무슨 소리 들렸는가?

       아주 잠시라도 좋으니 단 한순간만이라도,

       어디로 가는지 잊은 적이 있었던가?

 

  개구리는 개구리답게, 개미는 개미답게 살아갈 수 있을 때, 즉 모든 사물과 생명체가 자신에게 주어지는 고유한 본성과 근원에 가장 충실할 때. 비로소 존재는 그 본연의 의미에 부합하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가치를 확보할 수 있음을 시인은 일깨우고 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을 향한 시인의 겸허하고 애정 어린 시선, 그리고 생명의 미세한 숨결에 귀 기울이려는 겸허한 태도는 만물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본원적 생태계를 향한 동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특유의 해학적 친화력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 (계속)

 

 

 번역; 최성은

 

                                       한국 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 및 같은 대학원 동유럽어문학과 졸업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교 폴란드 문학박사 학위 받음

                                       바르샤바 대학교 한국문학과 교수 역임. 현재 한국국외국어대 폴란드어과 교수.

                                       2012년 폴란드 정부가 수여하는 십자 기사 훈장 받음

                                       저서; <안녕하세요 교황님>외 다수.

                                       번역; <쿠오 바디스>,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등 다수

                                              황선미의 <마당을 나온 암탉>김영하의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는가>를 비롯, 김소월, 윤동주, 서정주 3인 시선집을 폴란드

                                              어로 번역하여 출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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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본질을 꿰뚫는 심안(心眼)을 가진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생애와 시 세계  / 최성은 (9)

 

 

  타인과의 유대와 소통의 부재

  쉼보르스카의 시에는 현대 조직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단절되고 파편화된 인간관계와ㅡ 그 속에서 타인과의 유대나 소통의 실패로 소외와 갈등을 경험하는 개인의 모습이 집약되어 있다.

  사회적 연대감이나 공동체 의식을 상실한 '너'는 바로 옆에 누워 있는 유일한 가족에게서조차 경험을 공유하는 게 불가능한 막막한 고립을 맛본다. '나'는 어떻게든 그의 본질을 향해 다가서고 싶지만, 꿈속에서조차 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것은 젊은 날 서커스 극단에서 표를 받던 첫사랑이다. 결국 '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표면과 내면의 역설적인 단절을 뼈저리게 체험하게 된다(<난 너무 가까이 있다>)이처럼 도덕적 자의식 없이 사소한 일상의 자기 세계에 머물러 있는 현대인들은 상대방의 대화 코드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 채, 표면적이고 해체적이며 유희적인 언어를 주고받게 된다. (<바벨탑에서,>).

  <뜻밖의 만남>은 현대인들이 나누는 작위적인 대화와 그로 인한 소통장애를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아주 공손하게 대하며,

   오랜만에 만나서 매우 기쁘다고 말한다.

 

   (-----)

 

   문장을 잇다 말고 우리는 자꾸만 침묵에 빠진다.

   무기력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 인간들은

   대화하는 방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뜻밖의 만남> 부분

 

  <돌과의 대화> 역시 불모지와 같은도시에서 인간성 상실과 교류의 단절로 인한 개인의 소외, 그로 인한 근대적 주체의 심리적 갈등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나, 돌의 문을 두드린다.

   - 나야 들여보내줘.

  네 속으로 들어가서

  숨처럼 너를 깊게 들여 마시고 싶어.

 

  돌이 말한다.

  -저리 가, 난 아주 견고하게 닫혀 있어.

  내 비록 산산조각 나더라도

  변함없이 굳게 문을 잠글 거야.

  부서져 모래가 되고, 가루가 된다 한들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을 거야.   -<돌과의 대화> 부분

 

 이처럼 쉼보르스카의 시에는 대도시 안에 고립된 섬 같은 존재로 고독을 느끼는 얼굴 없는 우리들에게 건네는 내밀한 영혼의 울림이 담겨 있다. 시인이 깨우친 심오한 자각에는 비인간화 시대의 메마른 영혼들을 향한 애틋한 연민과 안타까운 호소가 담겨 있어 더욱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진다.

  쉼보르스카의 작품 가운데 가장 난해한 시로 꼽히는 <애물단지>에는 인류를 향한 시인의 무한한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지금 이 순간이 비록 찰나에 불과할지라도 이대로 지속되기를.

  깜빡이는 저 작은 은하수 아래서 끊임없이 빛을 발하기를!

  미약하나마 이미 세상에 존재하기에

  앞으로 무엇을 탈바꿈할는지

  희미한 윤곽이나마 드러낼 수 있기를.

  (---)

  어째건 그는 애물단지.

  측은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

  실재(實在)하는 인간.              -<애물단지> 부분.

 

  흔히 '애물단지'라는 말은 부모의 입장에서 너무나 사랑스럽고 애틋한 대상, 한없는 기쁨과 위안을 가져다주지만 한편으로는 근심과 걱정의 대상인 어린 자식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다. 시인은 바로 이 '애물단지'라는 상징적인 시어를 통해 부와 행복, 영원과 자유, 전지전능함, 그 밖에 자기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수많은 가치를 갈망하고, 좌절하는 인간을 향해 안타까운 측은지심(惻隱之心)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시인 스스로가 미완의 삶의 살아가고 있는 인간, 영원 불가사의의 대상임을 인정하는 자성적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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