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詩人 대학교
동시창작의 실제 - 괴로움과 즐거움은 한 조각 곽해룡
제 동시의 1차 독자는 제 자신입니다. 제가 쓴 동시를 통해 제가 위안을 받고 기쁨을 얻습니다. 다 쓴 시를 통해서만 기쁨을 얻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쓰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 편 한 편이 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시 한 편을 완성하기 위해 상상력을 총동원할 때 느끼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축구를 할 때 상대 선수들을 이리저리 제치며 상대편 문전으로 돌진하는 것과 같은 심정입니다. 상상이 절정에 다다르면 골대 안으로 공을 차 넣을 수 있다는 기대감과 넣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같은 것이 동시에 엄습해 옵니다. 이때 불안감은 없고 기대감만 있다면 안일해지거나 괜히 우쭐해져서 즐거움은 반감될 것입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단지 정상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기 위해서만은 아닐 것입니다. 만일 정상에 오르기 위해 산에 오른다면 그 사람은 산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정복하기 위해 오르는 야심가일 뿐입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친 숨을 내쉬며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 심장에 느껴지는 압박감이나 다리 근육에 느껴지는 뻐근함까지도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진정한 즐거움은 괴로움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한 조각인 것 같습니다. 시가 완성이 되면 저는 아내와 딸 세은이한테 읽어보라고 합니다. 반응이 괜찮으면 할 일은 마친 머슴(?)처럼 그날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종일 빈둥거립니다.
1. 나는 왜 동시를 쓰는가
다른 동시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제가 갓 등단했을 때부터 많이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성인 시를 쓰지 않고 동시를 쓰느냐’는 것인데, 이 자리를 빌려 그 물음에 대한 종지부를 찍고 싶습니다. 왜 동시를 쓰느냐고 묻는 의도는 대략 세 가지인 것 같습니다. 하나는, 성인시를 쓸 자신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도로 묻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동시만으로는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는데 한계가 있으니 성인시를 써보라는 권고인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성인시로 발표해도 되는 시를 왜 동시로 발표하느냐는 뜻인 것 같습니다. 질문의 의도는 다르지만 왜 동시를 쓰느냐고 묻는 말 속에는 동시는 성인시보다 아래에 있다는 것을 전재로 하고 있습니다. 우선 물음에 대한 답부터 하고 성인시와 동시의 차이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성인시를 쓸 자신이 없기 때문에 동시를 쓰는 것이 아닌가, 라는 첫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그렇다’ 입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물음은 동시와 성인시의 차이에 대한 내 생각을 말하는 것으로 충분한 대답이 될 듯합니다.
아주 작은 별에 어린이와 젊은이와 노인이 셋이서 살고 있습니다. 그 별은 점차 에너지가 고갈되어 80년 쯤 뒤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조건으로 변합니다. 죽을 날이 멀지 않은 노인의 당면 문제는 아프지 않고 춥지 않고 배고프지 않는 것입니다. 노인은 젊은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에 젊은이의 눈치를 보며 살아갑니다. 별의 에너지가 고갈되어가는 것은 노인의 당면 관심사가 아닙니다.
머지않아 늙게 될 어른에게 노인 문제는 곧 미래에 자신이 겪을 문제입니다. 미래에 아프지 않고 춥지 않고 배고프지 않으려면 어른은 늙어서 쓸 재산을 모아두어야 합니다. 또한 늙어서도 지금 어린이의 눈치를 보지 않으려면 필요 이상으로 많은 재산을 쥐고 있어야 합니다. 그 필요 이상의 재산을 모으기 위해서는 별을 마구 파헤치기도 합니다. 별을 파헤치면 별의 에너지가 더 빨리 고갈되고 그럴수록 별의 수명은 짧아질 것입니다. 어른이 별을 파헤쳐서 재산을 모으는 행위는 미래에 어린이가 쓸 재원을 미리 끌어다 쓰는 것입니다. 어른이 필요이상의 재산을 축적하는 것은 어린이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앞으로 70년 80년 더 살아야 할 어린이의 바람은 무엇일까요. 노인 문제와 어른이 겪는 문제는 고스란히 미래에 어린이가 겪어야 할 문제입니다. 거기에다가 어린이는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별이 무사해야 합니다.
작은 별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일까요.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는 노인도 아니고 별을 마구 파헤치는 어른도 아닙니다. 노인은 방관자요 어른은 자신이 벌어들인 재산의 점유자에 불과하지만 진정으로 별을 아끼고 사랑하는 주인은 바로 어린이입니다.
이 세상의 진정한 주인은 어린이입니다. 성인시는 노인문제와 어른들이 벌어들인 재산과 그 재산을 형성하는 과정에 생긴 갈등 또는 그 재산의 많고 적음에서 생기는 갈등을 주로 노래합니다. 반면 동시는 지구의 환경까지 걱정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이 아닌 다른 동식물들의 안위까지도 걱정합니다. 성인시를 쓰는 시인들 가운데 지구의 환경을 걱정하는 시를 쓰는 시인이 많은데 그런 분들은 이미 동시인의 자격을 갖춘 시인들입니다. 내가 성인시를 쓰지 않고 동시를 쓰는 이유는 어린이야 말로 내가 사는 별의 진정한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사는 별의 방관자나 점유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달팽이는 집이 동그랗다
- 내 집 많이 커졌지? 집을 등에 지고 다니며 달팽이는 자랑한다
민달팽이도 집이 동그랗다
달팽이보다 훨씬 큰 집에서 살지만 민달팽이는 자랑하지 않는다
민달팽이는 집을 안고 다닌다
-<지구> 전문
달팽이는 달랑 제 등에 집 하나를 지고 다니면서, 집을 가졌다고 우쭐댑니다. 하지만 민달팽이는 달팽이의 집보다 훨씬 큰 지구의 주인입니다. 이 시에서 달팽이는 어른입니다. 요즘 어른들은 재산 축적에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아파트 평수를 25평에서 30평으로 40평으로 늘려 가는데 집중합니다. 민달팽이는 어린이 혹은 재산 축적에 관심을 두기 보다는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입니다.
2. 시의 해체
어떤 분은 제 시가 말법이 새롭다고 하고 어떤 분은 주술관계가 잘못 된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왜 말법이 새롭게 보이는지 혹은 주술관계가 잘못 된 것처럼 보이는지 시를 해체해서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 사건과 배경 시에도 사건과 배경이 있습니다. 사건만 가지고 시를 쓰게 되면 문장이 쉽게 읽히는 대신 밋밋해서 시 같지가 않습니다. 사건만 가지고 쓴 시는 대체로 사건이 복잡해지고 시의 길이가 길어집니다.
배경만 가지고 시를 쓰게 되면 시적 분위기는 느껴지지만 시인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쉽게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이런 경우 시가 엉뚱하게 해석되기 일쑤인데 그것은 전적으로 시인의 잘못입니다.
사건과 배경을 모두 쓰면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되는데, 이때 사건과 배경이 따로 놀면 시가 억지스러워 보이고 사건과 배경이 자연스럽게 엮이면 입체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냅니다.
소금꽃
사건: 아버지(A)가 공사장(AA)에서 힘들게 일(AAA)하며 땀(AAAA)을 흘린다 배경: 바닷물(B)이 바다(BB)에서 출렁(BBB)거리며 소금(BBBB)을 만든다
일터(AA)에서 돌아온 아버지 작업복(A)에 하얗게 핀 소금꽃(AAAA)
바닷물(B)을 말리면 생기는 소금(BBBB)이 아버지 작업복(A)에 수북하다
몸을 말려 소금(BBBB)을 만들어 낸 아버지(A)는 바닷물(B)
공사장 뙤약볕(AA) 아래 오늘도 종일 출렁거렸(BBBB)을 아버지(A)
2) 시 문장과 산문 문장
산문도 사건과 배경을 쓰지만, 산문은 사건과 배경을 동시에 쓰지 않고 사건 중간 중간에 배경을 써줍니다.
시는 사건과 배경을 따로 쓰기도 하지만 동시에 쓸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동시에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없습니다. 두 가지 생각을 강요받으면 인간의 뇌는 이성이 흐려지고 감정이 고조됩니다. 사건과 배경을 동시에 써주면 문장이 일반적인 문법에서 일탈하게 됩니다. 일반 독자는 이것을 아무 문제없이 읽어냅니다. 그런데 습작을 하고 있는 독자들은 이것을 비문이 아닌지 의심하기도 하고 이를 어설프게 흉내 내어 비문을 양산하기도 합니다.
매미
사건: 지하에 세 들어 살던 아버지(A)가 2층으로 이사(AA)한 날 노래방에서 큰 소리로 노래부른다(AAA) 배경: 땅속에 살던 매미(B)가 허물(BB)을 벗고 나무에서 큰 소리로 운다(BBB)
허물(BB) 벗은 매미(B)가 나무 귀에 대고 그 동안 땅속에서 서러웠다고 고래고래 소리(BBB)지른다
지하에 세 들어 살던 우리 가족(A) 2층으로 이사(AA)한 날 노래방 마이크에 대고 우리 아버지(A) 고래고래 소리(BBB) 질렀다
3) 의사진술 의사진술을 하게 되면 독자의 독서 속도를 지연시키는 효과를 줍니다.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처음으로 접하는 낮선 표현 때문에 독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됩니다.
얼음 연못
배경: 엄마(A)가 가족(AA)의 건강을 염려해(AAA) 문단속(AAAA)를 한다 사건: 연못(B)이 물에서 사는 생물(BB)을 안전을 위해(BBB) 얼음막(BBBB)을 쳤다
연못(B)이 문을 닫았다(AAAA)
물자라 장구애비 물땅땅이 게아재비(BB) 감기 걸리지 말라고(AAA) 단단한 통유리 문(AAAA)을 닫았다
끝.
* 시의 해체에서는 자세한 설명을 달지 않았습니다. 분량이 많아지는 것을 피하고 싶었고 어설픈 이론을 문서로 공개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 ** 이 자료는 푸른아동청소년문학회 월례세미나 자료임을 밝혀둡니다. 푸른 월례세미나는 매월 넷째주 토요일 10시30분에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세미나입니다. (7,8월은 없습니다.)
*곽해룡 시인의 동시집은 '맛의 거리'(문학동네) '입술 우표'(푸른책들)가 있습니다.(美)
|
시인은 감각이 예민해야 한다 / 권영세
<1> 이미지의 유형
시는 관념이 아니라 감각을 강조한다. 관념을 전달하는 경우에도 직접 진술하기보다는 감각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가 중요하다. 이미지는 지각, 기억, 환상, 공상, 연상에 의해 태어난다. 하지만 모든 이미지는 감각에 호소한다는 특성을 공유한다. 인간만 해도 그렇다. 어떻게 태어났는가? 이런 문제도 중요하지만 태어난 인간들이 공유하는 특성도 중요하다. 탄생 과정도 중요하고, 탄생한 존재들이 공유하는 특성도 중요하다. 인간은 물론 어머니에게서 태어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인간은 안방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태어나고, 새벽에 태어나고, 아침에 태어나고, 저녁에 태어나고, 깊은 밤에도 태어난다. 순산인 경우도 있고, 난산인 경우도 있다. 태어나는 과정은 이렇게 다양하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과정을 겪으며 태어났지만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 혹은 이런 성적 차이와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이성적으로 사유하고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감성적으로 사물을 지각한다는 특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이성, 양심, 감성을 공유한다. 이 세 가지 특성가운데 어느 것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이성적 인간, 도덕적 인간, 감성적 인간이 나타난다. 이런 분류는 시각이나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미지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미지도 지각에 의해 태어나고, 기억에 의해 태어나고, 환상에 의해 태어나고, 공상‧연상에 의해 태어난다. 그런 점에서 그 탄생의 과정은 복잡하고 차이가 난다. 그러나 감각적 실체 혹은 감각적 현실이라는 점에서 모든 이미지는 같다. 이 감각의 세계를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여러 유형의 이미지들이 존재한다. 우리 신체의 감각기관은 눈, 귀, 코, 혀, 피부 등 다섯 가지이다. 이 다섯 기관을 이른바 5관官이라고 부른다.그러므로 이미지에는 시각적 이미지, 청각적 이미지, 후각적 이미지, 미각적 이미지, 촉각적 이미지가 있다. 물론 이밖에도 운동적(기관적) 이미지, 근육감각적 이미지, 공감각적 이미지 등이 추가된다. 이런 이미지들은 감각적 경험 자체를 전달한다. 이렇게 감각적 경험만을 목표로 하는 이미지를 시론詩論에서는 이른바 정신적 이미지라고 부른다. 이와는 달리 어떤 관념을 전달하거나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이미지는 비유적 이미지, 이미지가 상징이 되는 경우는 상징적 이미지 혹은 상징이라고 부른다.
<2>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
첫째로 시각적 이미지는 눈에 보이는 사물들의 사물성, 말하자면 사물에 대한 관념이나 개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시는 음악보다 회화의 특성을 강조하고, 따라서 많은 현대 시인들은 회화성, 곧 시각적 이미지를 강조하고 나아가 이런 이미지로 한 편의 시를 구성하기도 한다. 다음은 시각적 이미지로 한 편의 동시가 구성된 보기이다.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 떴다 드넓은 호수에도 붉은 노을
누구일까!
하늘과 호수에 똑같이 찍어낸 저 엄청난 그림
데칼코마니. - 하청호,「데칼코마니」전문
둘째로 청각적 이미지는 귀에 들리는 소리를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각적 이미지처럼 이미지 자체만으로 한 편의 시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설명적 기능을 하는 비유적 이미지인 경우가 많다. 다음은 청각적 이미지로 구성된 동시이다.
늦은 밤 부엌에서 보글보글, 보글보글…….
그게 무슨 소린지 넌 알겠니?
일 나간 우리 아빠 돌아오셨다고 찌개냄새가 좋아서 노래하는 소리야. - 문삼석,「보글보글」전문 [참고 문헌] 이승훈,『이승훈의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북인, 2011) pp.51-21.
시인은 감각이 예민해야 한다 / 권영세
<3> 냄새, 맛, 촉각의 이미지
셋째로 후각적 이미지는 코에 닿는 감각을 강조한다. 시인이 후각적 이미지, 특히 향기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그러니까 향기의 상상력에 의해 한 편의 시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각적 이미지나 상상력으로 한 편의 시를 짓는 일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다음 하청호 시인의「아버지의 등」을 읽고 후각적 이미지가 어떻게 한 편의 동시로 구성되었는지 살펴보자.
아버지의 등에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 하청호,「아버지의 등」전문
이 동시는 후각적 이미지를 제시하기 보다는 이런 이미지, 특히 냄새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편의 시로 구성하였다. 즉 아버지의 등에서 나는 땀 냄새, 즉 땀 냄새라는 후각적 이미지라는 말보다는 후각적 상상력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시인은 아버지의 등에서 나는 땀 냄새를 중심으로 상상력을 전개한다. 따라서 시인은 아버지가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겉으로 소리 내어 울지 않고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이고, 그 땀 냄새가 바로 속울음이라고 상상했다. 넷째로 미각적 이미지는 혀에 닿는 감각의 전달을 목표로 한다. 이런 감각 역시 여간 세련되지 않고는 단순한 설명의 차원에 머무는 수가 많다. 다음은 김영기 시인이 쓴「단비와 쓴비」이다. 미각적 이미지가 어떻게 쓰였는지 살펴보자
가뭄에 목마를 때/ 찾아온 비는 단비/“야, 그 비 참 달다.”/ 물꼬 내러 가는 아빠// 달다고/ 말은 못해도/ 춤을 추는 나뭇잎.// 태풍을 등에 업고/ 오는 비는 몹쓸 비/“야, 그 비 참 쓰다.”/ 과수밭을 보신 아빠// 쓰다고/ 말은 못해도/ 눈물 맺은 이파리.// 김영기,「단비와 쓴비」전문
이 동시는 ‘달다’, ‘쓰다’라는 맛을 나타내는 형용사를 써서 가뭄의 단비와 태풍과 함께 오는 비를 중심으로 시를 구성하였다. 여기서 비가 ‘달다’, ‘쓰다’라는 표현은 식물의 입장이 아닌 단지 시인의 상상일 따름이다.즉 가뭄에 와서 식물에 고마우니까 ‘단비’이고 세찬 비바람을 몰고 와서 식물에 해로우니까 ‘쓴비’이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촉각적 이미지는 신체, 주로 신체 표면에 닿는 감각을 전달한다. 부드럽다, 딱딱하다, 물렁하다,단단하다, 꺼칠하다 등으로 표현되는 이미지이다. 다음은 권영세 시인의 동시「손때」이다. 이 동시에 촉각적 이미지가 어떻게 쓰였는지 살펴보자.
시골집 농기구 광 속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적 연모들이/ 가지런히 벽에 걸려있다.// 지금은/ 일손 없어 쉬고 있는/ 겹겹 손때 묻은/ 괭이, 삽, 가래, 호미……// 이제는/ 그 날의 주인도 떠나고 없는/ 괭이로 텃밭을 고른다.// 이마에는 어느 새 땀방울이 맺히고/ 문득 손바닥으로 전해 오는/ 어느 할아버님의 손길인가.// 잠시 일손 멈추고/ 얼굴은 모르지만/ 손잡이에 스며있는/ 따스한 정을 느껴 본다.// 권영세,「손때」전문
이 동시에는 어느 곳에도 촉각적 이미지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다만 ‘문득 손바닥으로 전해 오는/ 어느 할아버님의 손길인가.’ 와 ‘손잡이에 스며있는/ 따스한 정을 느껴 본다.’에서 밑줄 친 ‘손길’과 ‘정’이라는 말에서 촉각적 이미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시인은 앞의 ‘손길’과 ‘정’이라는 두 말을 중심으로 시의 메시지를 설정하고 있다. 이 말 외의 시적 표현들은 결국 ‘시골집 농기구 광속에 있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적부터 겹겹 손때가 묻은 농기구’를 통해 조상의 손길과 따스한 정을 시에 담고자 하는 상황 전개를 위해 사용되었을 뿐이다.
[참고 문헌] 이승훈,『이승훈의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북인, 2011) pp.51-21.
우리는 비유 속에서 산다 / 권영세
시인은 감각이 예민해야 한다. 그렇지만 시 쓰기는 감각적 능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사물에 대한 감각적 수용이 시인의 잠재적 능력이라면 이런 능력을 언어로 구현해야 한다. 따라서 시인에게는 특수하게 말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시 쓰기는 일상인들과 다르게 말하기, 다르게 쓰기에 지나지 않는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시인은 말을 잘못 사용하는 자이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하지 않는 자이다. 일상인들은 ‘장미가 피었어’라고 말하지만 시인은 ‘장미는 타오르는 램프야’라고 말한다. 흔히 이런 말하기를 비유라고 한다. ‘장미는 타오르는 램프야’라는 표현에서 ‘장미’는 ‘램프’에 비유된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일상인의 시각에서는 말이 되지 않고, 그런 점에서 비유적 표현은 일상적 어법에서 이탈하고 벗어나는 이상한 말하기가 된다. 그러나 이런 말하기를 통해 우리는 ‘장미’에 대한 새로운 감각,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된다. 또한 답답한 세상을 신선하게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한다. 이런 표현을 통해서 시인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교육에 의한 사유를 통해 세상을 경험하지 말고 스스로 경험하라는 것, 그것도 사물을 새롭게 경험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면 이런 비유적 표현은 시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삶은 비유 속에서 비유에 의해 비유와 함께 수행된다. 비유는 우리 주위를 감싸고 우리는 비유와 함께 삶을 영위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사물들의 이름을 생각할 수 있다.
▪ 괭이갈매기 ▪ 물총새 ▪ 딱따구리 ▪ 칼새 ▪ 집게발톱 ▪ 강아지풀 ▪ 비단풀 ▪ 애기풀 ▪ 할미꽃
위에 보기로 든 본래의 각 사물들은 모두 다른 사물에 의해 비유되었다. 이런 비유를 통해 우리는 각 사물들의 특성을 좀 더 명료하고 신선하고 구체적으로 이해한다. ‘괭이갈매기’의 경우, 갈매기는 괭이 곧 고양이에 비유되고, 그것은 이 갈매기 울음소리가 고양이 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물총새’의 경우엔 물새가 총알에 비유되고, 그것은 이 새가 물가의 나뭇가지에 앉아 있거나 공중의 한 자리에 떠서 물을 살피다가 총알처럼 날쌔게 물속으로 들어가 고기를 잡아먹기 때문이며, ‘딱따구리’의 경우엔 이 새가 딱딱한 부리로‘딱딱’ 소리를 내며 나무에 구멍을 내어 그 속의 벌레를 잡아먹기 때문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런 표현은 비유가 아니라 소리 상징에 속할 수도 있다. 그러나 ‘딱딱’ 소리를 그대로 새의 이름으로 한 점에서 이 새는 소리를 비유한다고 할 수도 있고 상징 역시, 비유의 한 유형이기 때문이다. ‘칼새’는 새가 칼에 비유되고, ‘집게발톱’은 발톱이 집게에 비유되며, ‘강아지풀’은 풀이 강아지에 비유된다. 그것은 이 풀이 여름에 강아지 꼬리 같은 이삭이 나오기 때문이다. ‘비단풀’은 바다 속에 자라는 풀로 비단에 비유되고, ‘애기풀’은 풀이 애기에 비유되고, ‘할미꽃’은 꽃이 할미에 비유된다. 요컨대 이런 이름들은 비유적 특성을 보여주고, 이런 비유적 표현이 강조하는 것은 각 사물의 특성에 대한 명료한 이해이다. 그런 점에서 비유적 표현은 결코 시인만이 독점하는 독과점적 표현 형식이 아니다. 일반인도 이런 표현, 곧 비유 속에서 산다. 이렇게 비유 속에서 산다는 것은 다른 삶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이름들, 이런 사물들, 갈매기, 물고기, 풀, 새들은 얼마나 많은 다른 상상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는가? 그런 점에서 이런 사물들은 바로 시이고 혹은 시가 아니다. 아무튼 이런 사물을 통해 우리가 체험하는 것은 사물에 대한, 세계에 대한, 삶에 대한 생생한 감동이다.
다음 시를 읽고 비유적 표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참고 문헌] 이승훈,『이승훈의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북인, 2011) pp.67-69.
|
평생교육원 <동시심화과정> 수업자료 / 권영세
제3강 시의 기능은 무엇인가?
시에는 고대 시가가 그렇듯이 사회적‧현실적 효용성이 있다. 고대 시가는 이야기를 쉽게 기억하고 후대에 전하기 위한 실용적 수단이었다. 고대의 시인들은 종교나 정치의 영역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고, 사회를 하나로 통합시키는데 기여했다. 좀 더 나은 수확과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시인들은 노래하고, 이 노래가 사회를 끌고 나가며, 시인들은 또한 전쟁의 역사를 노래하고, 권력을 비판하고, 그 무상함을 노래하고 신들을 찬양했다. 그렇기 때문에 포악한 왕은 시인들을 죽였고, 반대로 훌륭한 왕은 시인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시의 이런 기능은 현대라고 해서 달라진 것이 아니고 다만 그 표현 형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러나 현대에 오면 시인들은 이런 권력이나 실제적‧현실적 효용성보다는 근대 미학의 특성인 이른바 순수 예술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현실적 효용성보다는 시 자체의 아름다움, 그러니까 현실에 대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혹은 현실과 다른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일에 몰두한다. 이렇게 현실과 거리를 두고 시 자체를 사랑하는 태도가 현실과 다른 시의 공간을 낳고, 이런 공간은 일상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가 아니라 상상력을 낳는다. 예컨대 주요한은 <빗소리>가 아닌 상상의 공간을 노래한다.
비가 옵니다.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리고 비는 뜰 위에 속삭입니다.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같이. - 주요한,「빗소리」부분
이 시는 봄밤에 내리는 빗소리를 노래한다. 일상인들의 시각에서 빗소리는 빗소리로 들릴 뿐이다. 그러나 시인은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 소리’로 상상한다. 뿐만 아니라 밤은 어미닭처럼 깃을 벌리고, 비는 어미닭 품에서 지껄이는 병아리가 된다. 요컨대 ‘뜰 위에 내리는 비’가 이 시에선 ‘몰래 지껄이는 병아리’처럼 속삭인다. 봄밤에 내리는 비는 이렇게 다정하고 기쁘고 따뜻하다. 시는 이렇게 상상력의 세계를 강조하고 상상력의 세계는 과학적 진리도 아니고 종교적 진리도 아닌 이른바 미적 진리를 추구한다. 그런 점에서 현대시의 기능은 상상력에 의한 미적 공간을 창조함에 있다. 그러나 이런 근대 미학이 심화되면서 시인들은 이렇게 현실과 다른 시적 공간을 사랑하는 태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언어 자체에 관심을 두게 된다. 시인들은 부패한 일상적 언어를 순화하고 정화시키는 일도 하지만 일상적 언어의 가치나 기능과는 다른 시적 언어의 가치와 기능을 추구하고, 심하면 일상적 언어를 파괴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파괴가 노리는 것은 일상적 언어를 초월하는 전혀 새로운 언어이고,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시인들이 추구하는 게 그렇다. 앞에서 보기로 든 ‘빗소리’는 일상어를 순화한, 그런 점에서 때 묻지 않은 언어이다. 그런가 하면이 시의 언어, 곧 시적 어법은 일상적 어법과 다른 시적 어법을 보여준다. ‘밤’을 어미닭에 비유하고, ‘빗소리’를 병아리 소리에 비유하는 게 그렇다. 그러므로 시적 언어는 시적 어법을 뜻한다. ‘병아리’라는 낱말은 일상인도 사용하고 시인도 사용한다. 그러나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다. 일상인의 경우 ‘밤’은 그대로 ‘밤’이지만 시인의 경우 ‘밤은 고요히 깃을 벌린다’ 그러니까 말하는 방법, 어법이 다르다. 비유는 시적 어법의 출발이고, 이런 비유가 발전하면 상징, 아이러니, 역설 등 여러 가지 어법이 드러난다.이 문제는 뒤에 다시 살필 예정이다. 결국 시가 언어 예술이라는 자각이 심화되면서 우리는 시적 언어의 특성에 대해 공부해야 하고, 이런 언어의 가치와 기능에도 관심을 두어야 한다.
<참고 문헌> 이승훈,『이승훈의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북인, 2011) pp. 17-19.
위의 내용과 관련하여 다음 동시를 읽고 감상해 보자.
제4강 시인이란 무엇인가?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인을 보는 사람, 견자見者, 광기에 홀린 사람으로 정의한 바 있다. 이때 본다는 것은 시인의 사유와 영감이 시인 자신을 초월해서 자신도 모르는 어떤 초월적인 것에 근거함을 의미한다. 이렇게 자신도 모르는 어떤 힘에 의해 사물을 보고 세계를 보기 때문에 시인은 광기에 홀린 자가 되고, 신비한 영감에 지배받는 자가 되고, 이른 바 견자가 된다. 따라서 시인은 일상인보다 크고 높고 귀중한 힘이 부여된 자로 인식된다.
시인에 대한 이런 인식은 틀린 것이 아니다. 사실 시인은 일상인과는 다르게 세계를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상상한다. 그러나 이런 특이한 감각, 정서, 사유, 상상은 따지고 보면 모든 인간에게 조금씩 있게 마련이고 시인은 이런 이상한 능력을 일상인들 보다 더 신뢰하고 믿고 개발할 뿐이다. 그리고 이런 능력은 그 후 낭만주의 시대에는 상상력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에는 무의식이나 환상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아직도 시인의 기본 조건으로 간주된다. 그런 점에서 시인에 대한 인식 역시 시대마다 다르고 이 시대적 차이가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근대 문학 초기만 하더라도 이광수가 말한 것처럼 시인 혹은 문인의 조건은 대학을 중퇴할 것, 연애에 실패할 것, 폐결핵을 앓을 것,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울 것, 장발이고 얼굴이 창백할 것, 가난할 것 등으로 요약된다. 이런 조건들은 일종의 세기말 퇴폐주의를 반영하고 당시 일제 식민지 시대의 병든 청춘들의 내면을 반영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 땅의 시인들은 이와는 다르지 않은가? 1960년대를 살던 시인들이 다르고 오늘날 21세기를 사는 시인들이 다르다. 사실 오늘 이 시대의 시인들은 누가 시인이고 누가 은행원이고 대기업 사원인지 모를 정도로 구별이 안 된다. 지금 시인들의 외모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사실 모든 외면은 내면을 반영하고, 얼굴은 마음을 반영하고, 스타일은 영혼을 반영한다. 요컨대 시인을 그가 살고 있는 시대의 현실과 문화에 의해 정의된다.
이 시대 시인들은 건강한 육체와 정신으로 살 수도 있고, 우울증에 시달릴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도 있다. 넥타이를 맬 수도 있고 매지 않을 수도 있고, 술을 마실 수도 있고 전혀 못 마실 수도 있다. 담배를 피우는 시인도 있고, 금연을 단행한 시인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시대엔 시인의 상투형, 그러니까 시인 하면 떠오르는 개성이 사라지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엔 시인과 일상인이 같아진 것인가? 그리고 모두가 시인이란 말인가? 사실 이 시대엔 시인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운문으로 혹은 시적 표현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자가 시인일 뿐이다.
최소한 시인은 일상인들과 다르게 사물을 보고 사물들을 낱말로 연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물론 이 시대엔 시만 쓴다고 시인이 되는 게 아니라 신춘문예, 문학잡지라는 제도를 통과해야 하고, 아니면 시집을 내야 시인 행세를 한다. 이건 근대 문학이 가진 근대 제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의 황진이는 신춘문예에 당선한 적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사회 제도와 관계없이 시인은 본질적으로 상상력이 있어야 하고, 상상력은 훈련에 의해 개발되고, 시 쓰기도 훈련에 의해 개발된다.
<참고 문헌> 이승훈,『이승훈의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북인, 2011) pp.21-22.
다음 시를 읽고 감상해 보자.
제5강 왜, 시 읽기와 시 쓰기인가?
시인이 되기 위해 혹은 시인으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시를 많이 읽는 일이다. 그것도 잘 읽는 일이다. 잘 읽는다는 것은 시를 시로서 읽어야 함을 의미한다. 시집은 신문이나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 신문을 읽을 때 관심을 두는 것은 무슨 일이 발생했는가, 말하자면 객관적 사실에 대한 정보이고, 과학 교과서를 읽을 때 관심을 두는 것은 과학적 진리나 법칙에 대한 이해이다. 그러나 시집에 실린 시를 읽는 것은 이런 읽기와는 다른 것인데, 어떻게 읽어야 할지 각자 한 번 생각해 보고 함께 이야기 나누어 보자.
나는 시를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 .................................................................................................................................................................................
제6강 시 쓰기엔 재주가 있어야 하는가?
선천적으로 뛰어난 재주를 타고난 사람을 천재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재주는 개발하기 나름이다. 천재가 탁월한 재능을 타고났다고 하지만 역사상 위대한 천재들은 재주에 앞서 일상인보다 더 노력한 사람들이고 고독한 사람들이고 근면한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천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천재는 만들어진다. 영국 속담에 ‘천재는 일종의 정신병’이란 말도 있다. 이런 말이 암시하는 것은 천재는 일상인과 다르게 사물을 보고 느끼고 상상하고, 이런 상상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자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천재는 자기의 능력을 특별한 렌즈로 초점을 맞추는 자이고, 재주를 낭비하지 않고 언제나 집중하는 자이고, 남들이 볼 때 다소 이상한 자이다. 사실 상상력이란 일종의 정신병, 곧 일상적 사유에서 이탈하고 이성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것들을 수용하고 종합하는 이상한 정신능력이다. 그리고 이런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자들은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고독하다. 그러면 상상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김춘수의「곤충의 눈」이다. 이 시에서 시인이 노래하는 대상은 ‘곤충의 눈’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것을 이상하게도, 말하자면 일상인들과는 다르게 ‘열린 창’에 비유한다. 시인은 ‘곤충의 눈’을 보면서 ‘열린 창’에 비유한다. 시인은 ‘곤충의 눈’을 보면서 ‘열린 창’을 상상하고, 2연에서 이런 상상은 ‘새벽길 위의 소녀’들로 발전하고, 마침내 3연에 오면 ‘곤충의 눈’은 ‘자라고 있는 소녀들의 창’이 된다. 물론 이때 ‘창’은 ‘눈’을 암시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도대체 어떻게 ‘곤충의 눈’이 ‘열린 창’이고 ‘자라고 있는 소녀들의 창’이란 말인가? ‘빗소리’에서 ‘병아리’를 연상하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런 상상은 시인의 고독과 남다른 직관과 사유의 소산이고, 자신의 삶에 대한 지속적 성찰로 매개한다. 요컨대 시의 천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 쓰기를 좋아하고, 꾸준히 시 쓰기에 노력하고, 언제나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에 고독한 자가 있을 뿐이다. 물론 시 쓰기에는 어느 정도 시에 대한 재능, 재주도 요구된다. 그것은 언어에 대한 남다른 감각과 상상력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재주는 살아가면서 대부분 낭비되기 때문에 재주보다 중요한 것은 지속적인 노력과 훈련이다. 따라서 재주라는 말보다 경향, 혹은 취향, 재미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사실 시는, 그리고 모든 예술은 고독한 놀이이고, 시인은 이런 놀이를 좋아하는 자이다. 축구 선수가 축구가 좋아서 볼을 차고, 과학자는 실험이 좋아서 밤늦도록 실험실에서 실험을 한다. 어디 운동선수와 과학자뿐인가? 사업가는 돈 버는 게 좋아서 사업을 하고, 학자는 공부하는 게 좋아서 공부를 한다. 돈을 벌려고 공부하는 게 아니고 이름을 내려고 공부를 하는 게 아니다. 시도 좋아서 쓴다. 좋지도 않고 취미도 없다면 돈도 안 생기고 괴로운 이 작업을 왜 하는가? 시인 혹은 시인을 지망하는 사람은 재주보다 시 쓰기에 취미가 있어야 하고, 재미를 느껴야 하고, 취향이 그래야 한다. 물론 사람마다 기호나 취미는 다르다. 시인은 시에 취미가 있는 자이고, 이 취미는 단순한 취미의 영역이 아니라 창조의 세계를 지향한다. 창조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을 남들과 다르게 보고 이 사물들을 언어로 남들과 다르게 연결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시를 쓰는 이유나 동기는 시인마다 다를 것이다. 도대체 그렇게 많은 시간을 시 쓰기에 소비하는 것은 무슨 가치가 있는가? [참고 문헌] 이승훈,『이승훈의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북인, 2011) pp.23-25.
다음 시를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며 감상해 보자.
제7강 시인은 감각이 예민해야 한다
<1> 이미지의 유형
시는 관념이 아니라 감각을 강조한다. 관념을 전달하는 경우에도 직접 진술하기보다는 감각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지가 중요하다. 이미지는 지각, 기억, 환상, 공상, 연상에 의해 태어난다. 하지만 모든 이미지는 감각에 호소한다는 특성을 공유한다. 인간만 해도 그렇다. 어떻게 태어났는가? 이런 문제도 중요하지만 태어난 인간들이 공유하는 특성도 중요하다. 탄생 과정도 중요하고, 탄생한 존재들이 공유하는 특성도 중요하다. 인간은 물론 어머니에게서 태어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인간은 안방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태어나고, 새벽에 태어나고, 아침에 태어나고, 저녁에 태어나고, 깊은 밤에도 태어난다. 순산인 경우도 있고, 난산인 경우도 있다. 태어나는 과정은 이렇게 다양하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과정을 겪으며 태어났지만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남성과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차이가 있다. 혹은 이런 성적 차이와 관계없이 모든 인간은 이성적으로 사유하고 도덕적으로 행동하고 감성적으로 사물을 지각한다는 특성이 있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이성, 양심, 감성을 공유한다. 이 세 가지 특성가운데 어느 것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이성적 인간, 도덕적 인간, 감성적 인간이 나타난다. 이런 분류는 시각이나 기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미지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미지도 지각에 의해 태어나고, 기억에 의해 태어나고, 환상에 의해 태어나고, 공상‧연상에 의해 태어난다. 그런 점에서 그 탄생의 과정은 복잡하고 차이가 난다. 그러나 감각적 실체 혹은 감각적 현실이라는 점에서 모든 이미지는 같다. 이 감각의 세계를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여러 유형의 이미지들이 존재한다. 우리 신체의 감각기관은 눈, 귀, 코, 혀, 피부 등 다섯 가지이다. 이 다섯 기관을 이른바 5관官이라고 부른다.그러므로 이미지에는 시각적 이미지, 청각적 이미지, 후각적 이미지, 미각적 이미지, 촉각적 이미지가 있다. 물론 이밖에도 운동적(기관적) 이미지, 근육감각적 이미지, 공감각적 이미지 등이 추가된다. 이런 이미지들은 감각적 경험 자체를 전달한다. 이렇게 감각적 경험만을 목표로 하는 이미지를 시론詩論에서는 이른바 정신적 이미지라고 부른다. 이와는 달리 어떤 관념을 전달하거나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이미지는 비유적 이미지, 이미지가 상징이 되는 경우는 상징적 이미지 혹은 상징이라고 부른다.
<2>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
첫째로 시각적 이미지는 눈에 보이는 사물들의 사물성, 말하자면 사물에 대한 관념이나 개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시는 음악보다 회화의 특성을 강조하고, 따라서 많은 현대 시인들은 회화성, 곧 시각적 이미지를 강조하고 나아가 이런 이미지로 한 편의 시를 구성하기도 한다. 다음은 시각적 이미지로 한 편의 동시가 구성된 보기이다.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 떴다 드넓은 호수에도 붉은 노을
누구일까!
하늘과 호수에 똑같이 찍어낸 저 엄청난 그림
데칼코마니. - 하청호,「데칼코마니」전문
둘째로 청각적 이미지는 귀에 들리는 소리를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시각적 이미지처럼 이미지 자체만으로 한 편의 시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설명적 기능을 하는 비유적 이미지인 경우가 많다. 다음은 청각적 이미지로 구성된 동시이다.
늦은 밤 부엌에서 보글보글, 보글보글…….
그게 무슨 소린지 넌 알겠니?
일 나간 우리 아빠 돌아오셨다고 찌개냄새가 좋아서 노래하는 소리야. - 문삼석,「보글보글」전문 [참고 문헌] 이승훈,『이승훈의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북인, 2011) pp.51-21. 제8강 시인은 감각이 예민해야 한다
<3> 냄새, 맛, 촉각의 이미지
셋째로 후각적 이미지는 코에 닿는 감각을 강조한다. 시인이 후각적 이미지, 특히 향기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그러니까 향기의 상상력에 의해 한 편의 시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각적 이미지나 상상력으로 한 편의 시를 짓는 일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다음 하청호 시인의「아버지의 등」을 읽고 후각적 이미지가 어떻게 한 편의 동시로 구성되었는지 살펴보자.
아버지의 등에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 하청호,「아버지의 등」전문
이 동시는 후각적 이미지를 제시하기 보다는 이런 이미지, 특히 냄새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편의 시로 구성하였다. 즉 아버지의 등에서 나는 땀 냄새, 즉 땀 냄새라는 후각적 이미지라는 말보다는 후각적 상상력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시인은 아버지의 등에서 나는 땀 냄새를 중심으로 상상력을 전개한다. 따라서 시인은 아버지가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겉으로 소리 내어 울지 않고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이고, 그 땀 냄새가 바로 속울음이라고 상상했다. 넷째로 미각적 이미지는 혀에 닿는 감각의 전달을 목표로 한다. 이런 감각 역시 여간 세련되지 않고는 단순한 설명의 차원에 머무는 수가 많다. 다음은 김영기 시인이 쓴「단비와 쓴비」이다. 미각적 이미지가 어떻게 쓰였는지 살펴보자
가뭄에 목마를 때/ 찾아온 비는 단비/“야, 그 비 참 달다.”/ 물꼬 내러 가는 아빠// 달다고/ 말은 못해도/ 춤을 추는 나뭇잎.// 태풍을 등에 업고/ 오는 비는 몹쓸 비/“야, 그 비 참 쓰다.”/ 과수밭을 보신 아빠// 쓰다고/ 말은 못해도/ 눈물 맺은 이파리.// 김영기,「단비와 쓴비」전문
이 동시는 ‘달다’, ‘쓰다’라는 맛을 나타내는 형용사를 써서 가뭄의 단비와 태풍과 함께 오는 비를 중심으로 시를 구성하였다. 여기서 비가 ‘달다’, ‘쓰다’라는 표현은 식물의 입장이 아닌 단지 시인의 상상일 따름이다.즉 가뭄에 와서 식물에 고마우니까 ‘단비’이고 세찬 비바람을 몰고 와서 식물에 해로우니까 ‘쓴비’이기 때문이다. 다섯째로 촉각적 이미지는 신체, 주로 신체 표면에 닿는 감각을 전달한다. 부드럽다, 딱딱하다, 물렁하다,단단하다, 꺼칠하다 등으로 표현되는 이미지이다. 다음은 권영세 시인의 동시「손때」이다. 이 동시에 촉각적 이미지가 어떻게 쓰였는지 살펴보자.
시골집 농기구 광 속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적 연모들이/ 가지런히 벽에 걸려있다.// 지금은/ 일손 없어 쉬고 있는/ 겹겹 손때 묻은/ 괭이, 삽, 가래, 호미……// 이제는/ 그 날의 주인도 떠나고 없는/ 괭이로 텃밭을 고른다.// 이마에는 어느 새 땀방울이 맺히고/ 문득 손바닥으로 전해 오는/ 어느 할아버님의 손길인가.// 잠시 일손 멈추고/ 얼굴은 모르지만/ 손잡이에 스며있는/ 따스한 정을 느껴 본다.// 권영세,「손때」전문
이 동시에는 어느 곳에도 촉각적 이미지에 해당하는 말이 없다. 다만 ‘문득 손바닥으로 전해 오는/ 어느 할아버님의 손길인가.’ 와 ‘손잡이에 스며있는/ 따스한 정을 느껴 본다.’에서 밑줄 친 ‘손길’과 ‘정’이라는 말에서 촉각적 이미지를 짐작할 수가 있다. 시인은 앞의 ‘손길’과 ‘정’이라는 두 말을 중심으로 시의 메시지를 설정하고 있다. 이 말 외의 시적 표현들은 결국 ‘시골집 농기구 광속에 있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적부터 겹겹 손때가 묻은 농기구’를 통해 조상의 손길과 따스한 정을 시에 담고자 하는 상황 전개를 위해 사용되었을 뿐이다.
[참고 문헌] 이승훈,『이승훈의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북인, 2011) pp.51-21.
제9강 우리는 비유 속에서 산다
시인은 감각이 예민해야 한다. 그렇지만 시 쓰기는 감각적 능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사물에 대한 감각적 수용이 시인의 잠재적 능력이라면 이런 능력을 언어로 구현해야 한다. 따라서 시인에게는 특수하게 말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시 쓰기는 일상인들과 다르게 말하기, 다르게 쓰기에 지나지 않는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시인은 말을 잘못 사용하는 자이고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하지 않는 자이다. 일상인들은 ‘장미가 피었어’라고 말하지만 시인은 ‘장미는 타오르는 램프야’라고 말한다. 흔히 이런 말하기를 비유라고 한다. ‘장미는 타오르는 램프야’라는 표현에서 ‘장미’는 ‘램프’에 비유된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일상인의 시각에서는 말이 되지 않고, 그런 점에서 비유적 표현은 일상적 어법에서 이탈하고 벗어나는 이상한 말하기가 된다. 그러나 이런 말하기를 통해 우리는 ‘장미’에 대한 새로운 감각,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된다. 또한 답답한 세상을 신선하게 바라보고 느끼고 생각한다. 이런 표현을 통해서 시인이 독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교육에 의한 사유를 통해 세상을 경험하지 말고 스스로 경험하라는 것, 그것도 사물을 새롭게 경험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면 이런 비유적 표현은 시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우리의 삶은 비유 속에서 비유에 의해 비유와 함께 수행된다. 비유는 우리 주위를 감싸고 우리는 비유와 함께 삶을 영위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사물들의 이름을 생각할 수 있다.
▪ 괭이갈매기 ▪ 물총새 ▪ 딱따구리 ▪ 칼새 ▪ 집게발톱 ▪ 강아지풀 ▪ 비단풀 ▪ 애기풀 ▪ 할미꽃
위에 보기로 든 본래의 각 사물들은 모두 다른 사물에 의해 비유되었다. 이런 비유를 통해 우리는 각 사물들의 특성을 좀 더 명료하고 신선하고 구체적으로 이해한다. ‘괭이갈매기’의 경우, 갈매기는 괭이 곧 고양이에 비유되고, 그것은 이 갈매기 울음소리가 고양이 소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물총새’의 경우엔 물새가 총알에 비유되고, 그것은 이 새가 물가의 나뭇가지에 앉아 있거나 공중의 한 자리에 떠서 물을 살피다가 총알처럼 날쌔게 물속으로 들어가 고기를 잡아먹기 때문이며, ‘딱따구리’의 경우엔 이 새가 딱딱한 부리로‘딱딱’ 소리를 내며 나무에 구멍을 내어 그 속의 벌레를 잡아먹기 때문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런 표현은 비유가 아니라 소리 상징에 속할 수도 있다. 그러나 ‘딱딱’ 소리를 그대로 새의 이름으로 한 점에서 이 새는 소리를 비유한다고 할 수도 있고 상징 역시, 비유의 한 유형이기 때문이다. ‘칼새’는 새가 칼에 비유되고, ‘집게발톱’은 발톱이 집게에 비유되며, ‘강아지풀’은 풀이 강아지에 비유된다. 그것은 이 풀이 여름에 강아지 꼬리 같은 이삭이 나오기 때문이다. ‘비단풀’은 바다 속에 자라는 풀로 비단에 비유되고, ‘애기풀’은 풀이 애기에 비유되고, ‘할미꽃’은 꽃이 할미에 비유된다. 요컨대 이런 이름들은 비유적 특성을 보여주고, 이런 비유적 표현이 강조하는 것은 각 사물의 특성에 대한 명료한 이해이다. 그런 점에서 비유적 표현은 결코 시인만이 독점하는 독과점적 표현 형식이 아니다. 일반인도 이런 표현, 곧 비유 속에서 산다. 이렇게 비유 속에서 산다는 것은 다른 삶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이름들, 이런 사물들, 갈매기, 물고기, 풀, 새들은 얼마나 많은 다른 상상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하는가? 그런 점에서 이런 사물들은 바로 시이고 혹은 시가 아니다. 아무튼 이런 사물을 통해 우리가 체험하는 것은 사물에 대한, 세계에 대한, 삶에 대한 생생한 감동이다.
다음 시를 읽고 비유적 표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참고 문헌] 이승훈,『이승훈의 알기 쉬운 현대시작법』(북인, 2011) pp.67-69.
|
동시 감상 길라잡이 / 권영세
동시와 시적 체험
동시도 우선 하나의 시작품이다. 동시가 시작품이기 위해서는 우선 시적 요건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한다.그러면 시적 요건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시인에 있어서 시적 체험을 시로 형상화할 수 있는 능력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동시라고 쓴, ‘이른바 동시인’이 쓴 것이라 하여도 시인의 안목으로 작업을 한 작품이 아닌 것이 있다. 단순히 어린이의 눈으로 또는 어린이의 입장에서 써 낸 글과 다름이 없을 때, 여기서 결여된 것이 바로 시적 체험의 형상화이다. 비록 동시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시이기는 하나, 어린이도 읽어서 어떤 시적 감동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읽는 이의 가슴에 시적 감흥이 배어나오지 않는다면, 그런 동시는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못 가지는 것이다. 이 시적 감흥은 작품 속에 형상화되어 있는 작가의 시적 체험만이 전달시킬 수 있는 것이다. 작품 속에 구현되어 있는 시적 체험과 그것을 독자가 읽으면서 스스로 느끼는 자기의 발상과 조화가 이루어질 때 시의 감흥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무리 동시라 해도 어른 시인이 어린이의 눈과 사고방식, 그리고 어린이의 단순한 입장으로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순수한 어린이가 귀여운 상상으로 쓴 어린이의 글이 더 훌륭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동시라 해도 반드시 시인의 시적 체험이 녹아들어 있어야 한다. 물론 어린이의 능력으로서는 시를 이해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즉 어린이가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는 바로 시와 동시를 구별하는 한계이다. 하지만 결코 동시는 시가 못 되는 쉬운 시나 시와는 본질상으로 다른, 쉽게 쓰는 시가 아니다. 시적 체험의 폭은 동시와 시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그것은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는 체험의 반경(半徑)과 어른들이 가진 체험의 반경과의 상당한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도 시적 체험이라는 원점에서는 일치하는 시작품으로서의 필요조건이다. 다만, 충분조건에 있어서,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는 시적 체험이냐, 어른이 이해할 수 있는 시적 체험이냐를 나눌 수 있다. 그런데 이것도 획일적인 구별은 어렵다. 그러므로 어린이는 동시를 읽지만 어른은 동시도 시도 그 감상이 모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어른이 읽어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즉 시작품으로서 아무런 감동이나 시적 분위기마저 느낄 수 없는 글이라면 동시라고 하기에는 어렵다. 그러한 글은 감동이 시적 체험의 결여에서 오는 것이든, 그것이 성숙된 시적 분위기를 구현시키지 못한 것이든 단순한 어린이의 정서만으로 쓸 수 있는 글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유경환 저 『한국현대동시론』(배영사)에 있는 것을 재구성한 것임. 다음 두 편의 동시를 읽고 오늘의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꽃비 먼 산에 꽃비 비그르르 돌아 마을에 내려서 살구꽃이 된다. 살구꽃 환한 마을을 비그르르 돌아 뜨락에 내려서는 나비가 된다. 먼 산에 꽃비 내 눈 속에 꽃비. - 김사림(1968)
씻어준다는 것
어느 누구의 몸을 씻어준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의 거친 발을 씻어준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이다
쉼 없이 흘러가며 제 몸을 씻는 저 강물도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가장 사랑한다는 것은 누구도 아닌 제 스스로를 씻는 일이다 저 투명한 강물처럼 끊임없이 씻어내는 일이다. - 하청호(2017)
동시 감상 길라잡이 <2> 시의 언어
시는 문학이고, 문학의 매체는 언어임이 자명하다. 따라서 언어란 무엇인가를 알아 두는 일이 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선결문제라 할 수 있다. 언어는 ‘음성으로 생각을 표출하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바꿔 말한다면, 형식조건으로서의 음성과 내용조건으로서의 생각이 결합된 상태를 언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언어를 보다 완벽하게 정의할 때는 다음 다섯 가지 항목이 포함된다. 첫째, 사람만이 가지고 있다. 둘째, 그 형식은 음성이다. 셋째, 그 내용은 생각이다. 넷째, 역사성을 가진다. 다섯째, 사회성을 가진다. 이 다섯 항목 중에서 ‘역사성’과 ‘사회성’이 소위 언어를 공적(公的)인 것으로 이끌어 온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의 매체를 언어라고 한다면 시의 언어 즉 시어는 어떤 특성과 기능을 가지는지 알아보자. 첫째, 시어는 일상 언어와 달리 독특한 기능을 부여받는다. 둘째, 시어는 대상의 지시기능보다 정서의 환기기능을 중시한다. 셋째, 시어는 시인의 독특한 창조적 정신세계를 드러내기 위해 작품 전체의 유기적 관계 속에서 재구성된 언어로서, 전혀 새로운 의미로 변환되어 나타난다. 넷째, 시어는 사실의 정확한 제시와 논리적 구성을 추구하는 과학적 진술과 달리, 논리를 초월하여 어떤 태도나 정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환기하는 데 역점을 둔 역설적 언어 혹은 의사진술(擬似陳述)이라 규정된다. 다섯째, 시어는 사전적 의미와 같이 이미 일반의 공인을 받고 있고, 고착된 대상을 지시하는 언어의 외연적 의미보다는 유추나 상상력의 개입을 통해서야 은폐되어 있는 복합적, 함축적 의미가 올바르게 파악될 수 있는 내포적 의미로서 존재한다. 여섯째, 시어는 그 개념이나 대상과의 관계가 엄격하게 정의, 규정되어 있는 과학적 언어나 되도록 명쾌한 의사전달을 지향하는 일상 언어와 달리, 복잡 미묘한 심리․정서를 표현하는 애매성을 의식적으로 추구한다. 이 애매성은 시어 자체의 애매성이자, 시의 주제와 관련하여 드러나는 의미의 다양성(함축성)이기도 하다.이런 용법의 애매성을 신비평가들이 말하는 긴장, 반어, 역설과 유사한 개념이 된다. <참고 문헌>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발행『문학의 이해』(1984, 형성출판사)
다음 시를 읽고 오늘의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동시 감상 길라잡이 <5>
시적 묘사 <2> 설명적 묘사와 암시적 묘사
A) [……] 네 번째, 큰 지리적 사실은 이 군도群島가 두 개의 큰 호형(弧形 : 활모양) 으로 나누어지게 되는데, 바깥쪽은 석회석의 호형이고, 안쪽은 화산석의 그것이다. 석회석의 지역은 낮고, 화산석의 지역은 비교적 높거나 매우 높다. 몇몇 섬은 석회 석과 화산석의 두 가지 모양을 다 갖고 있다. (스미스, 필립,「북미北美」)
B) 그는 한 손으로 담배를 흔들면서, 굵은 반지가 끼여 있는 가운데 손가락 밑의 살 갗이 엷게 변해 있는, 다른 쪽 손바닥을 편 채, 호레이스의 얼굴 앞으로 내밀 었다. 호레이스는 그 손을 잡고 흔든 다음 놓아주었다. “옥스포드에서 기차 B)-1 탈 때 알았습니다만, 좌우간 좀 앉을까요?” 하고 말하는 그의 다리는 이미 호레이스의 무릎과 닿고 있었다. 그는 외투―푸르스름한 재생 모직에다 기름기 가 번지르한 벨벳깃이 달린―를 좌석 위에 벗어던지고 앉았다. 그러자 기차가 멈추었다. “그럼요, 나는 언제나 친구와 만나기를 좋아하지요. 언제나……” 그 는 호레이스의 맞은편에서 허리를 굽혀 창밖을 응시했다. 규모가 작고 지저분한 정거장 B)-2, 게시판에 백묵으로 무엇인가 씌어져 있었으나 알 수 없었다. 화물차 안에 쓸쓸해 보 이는 철망 닭장 속의 두 마리 닭, 작업복을 걸친 사나이 서넛이 벽에 기대어 껌을 씹으며 시름없이 앉아 있었다. “물론 선생께서야 우리 고장에 더 있지 않겠지만, 한번 사귄 사람은 언제나 친구인 법이지요. 어디에 투표하든 말입니다. 친구는 친구니까 그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든 없든 말입니다.” 그는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손가 락 사이에 끼고, 몸을 뒤로 젖혔다. (W. 포크너,「성소聖所」)
A)는 지리적 특성을 열거하여 일정한 대상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설명적 묘사이다. B)는 A)와는 또 다르다. B)는 포크너의 소설의 한 토막이지만 고딕체로 된 부분은 묘사문이고, 나머지는 서사문이다. 그러나 B)의 고딕체로 된 묘사문도 그 성격이 다르다. B-1)은 서사, 즉 이야기의 전개를 돕는 설명적 묘사이고, B-2)는 서사에 묶여 있지만 B-1)과는 또 따른 암시적 묘사의 특성을 발휘하는 부분이다. B-2)는 차가 멈춘 정거장에 대한 정보 제공이 목적이라기보다 정거장에 관한 지배적 인상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배적 인상은 대상의 성질을 암시한다.
규모가 작고 지저분한 정거장 게시판에 백묵으로 무엇인가 씌어져 있었으나 알 수가 없었다. 화물차 안에 쓸쓸해 보이는 철망 닭장 속의 두 마리 닭, 작업복을 걸친 사나이 서넛 벽에 기대어 껌을 씹으며 시름없이 앉아 있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다른 형식으로 적으면 분명히 드러나듯이, 이 소설의 한 부분은 한적한 어느 시골 정거장의 풍경을 그린 시로 바뀐다.(시는 이런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르고, 또 다른 곳에 있다는 식의 사고는 관습적 인식의 하나이다. 작품이 좋든 그렇지 않든 모두 시이고, 이 소설 속의 한 토막도 담백한 풍경시이다.) 그것은 B-2)가 지닌 암시적 묘사의 성격 때문이다. 즉 규모가 작고 지저분한 정거장, 게시판에 씌어진 백묵 글씨, 화물차 안의 철망 닭장 속의 닭 두 마리, 무료하게 껌을 씹으며 일감을 기다리는 작업복 차림의 사내, 이들은 이 초라한 정거장 뒤에 숨겨진 삶을 암시하는 특정한 의미의 정황인 것이다. 시가 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암시적 묘사이다. <참고 문헌> 오규원『현대시작법』(문학과지성사,2011)
다음 두 편의 동시를 읽고 오늘의 주제와 관련하여 생각해 보자.
|
동시(童詩)에서의 동심(童心)
박두순(동시인)
동시에서 아이 '동'자가 늘 문제가 된다. '어린이'가 들어있는 시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린이는 어린이 실체(몸)가 아니라 '동심'을 가리킨다.
즉, 동시는 동심이 들어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시의 성격과 성패가 좌우되는 까닭에서다.
어린이와 같은 순진한 마음'이다.
동시에서 말하는 동심은 후자 쪽이다.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원초적 본성(영혼)이다. 원초적 본성은 훼손되지 않은 원석, 마음의 원형체와 같다.
인성의 바탕이 되는 그 무엇이다. 그것은 마음 밑바탕에 핵같은 알갱이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동심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존재한다.
인간 원형질을 시 속에 형상화하여 담아내는 작업이 동시 쓰기다.
어린이 생활이나 언어행동 등을 나열해 놓고, 동시라 하는 경우를 본다.
특히 5월 '어린이달'이면 심하게 나타난다.
시진 찍어 실으면서 '동심'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그 좋은 예다.
이것은 '어린이 세계'일 뿐이지 동심은 아니다.
명확히 구분, 정의해 놓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처럼 동심이란 용어 사용의 오류가 덜하다고 한다.
어린이 행동이 어른들 보기에는 유치하다. 그러나 그 행동에 담긴 마음은 때묻지 않은 것이어서 유치하지 않은 것이다.
동시는 어린이 세계를 그리면서 인간 본바탕 마음도 함께 보여주어야 한다. 여기에 동시 쓰기의 어려움이 있고, 동시의 특성이 있다.
다른 지면에서 전원범 전영관 윤이현 서재환 정갑숙의 동시가 나름대로 동심의 씨를 품고 있는 작품으로 읽혔다.
벌레를 앞에 두고 아이와 아빠가 무서워 벌벌 떤다. 벌레도 떤다. 서로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 두려움의 고리를 매우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무슨 의도인가? 인간이나 동물에겐 원초적인 두려움(공포)의 대상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람과 동물이 갖고 있는 속성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것이다.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시다. 그러나 이 때문에 단순히 웃어 넘길 수 없는 시가 되었다. 이런 데서 시의 무게가 생긴다.
어린이는 상상력이 뛰어나다. 어른은 그 싱싱한 어린이의 상상력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다. 이것도 동심의 바탕이자 특성이다.
앞의 시는 유형물(고사리)이고, 다른 하나는 무형물(바람)이다. 이 두 자연물의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방법으로 의인화를 택했다.
'어릴 때의 휘파람 불기 연습'에서 상상의 날개를 펴 의인화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 내면에 깃든 영원한 동심이 아니겠는가.
어머니는 영원한 동심의 고향이다. 어머니와 자식 사이도 영원한 동심의 고향이다. 어머니 가슴엔 자식이, 자식의 마음엔 어머니가 영원히 깃들어 있는 까닭이다.
이 시는 이런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키가 작아 사람 사이에 묻혀 있어도' 엄마는 금방 나를 알아본다.
어머니의 본능(마음)을 잘 캐내어 형상화한 작품이다. 소재가 진부하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우선 발상의 참신함이 매우 돋보이는 작품이다. 새가 알을 까고, 콩이 싹터 나오는 현상을, '특수 열쇠'로 연 것으로 상상한 점이 그렇다.
그리고 작품의 구성이나 압축, 시상 전개, 주제의 분명함, 동시의 특성인 단순 명쾌함 등이 이 시를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한다. 깊은 시적 인식 또한 그 점을 한층 뒷받침한다.
이것은 용서와 포용을 의미한다.
새살(새로운 관계)이 돋는(형성된)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 문제에 부닥치면 갈등이 일고, 풀기가 쉽지 않다.
여느 동시와는 다른 개성적인 모습이다. 이렇게 동심을 깊이 있게 해석하고 천착하는 것이 동시의 폭을 넓히고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이번 월평은 동시쓰기에서는 기본적인,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어서 조금은 낯간지러운 면도 없지 않다. 허나 더러는 '동심'의 의미를 소홀히 하면서 작품을 쓰는 경향과 일군(一群)의 작가가 있는 것으로 여겨져, '동심'에 대한 개념 정립에도 일조한다는 의미에서 거론해 보았다.
(2005년 10월『월간문학』'월평'에서) |
동시를 쓰는 이들에게 / 권오삼
만남 동시인 권오삼
동시를 쓰는 이들에게
취재, 정리 : 최현정
‘동시인’ 하면 떠오르는 아동문학의 ‘어른’이 있다. 1975년 동시로 등단, 아동문학 시장이싹트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동시’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동시인 권오삼. 수원의 자택으로찾아가 4시간 가까이 살아온 이야기, 권정생 작가의 이야기, 동시에 대한 그리고 아동문학에 대한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70년대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80년대에는 장사를 하면서 90년대 후반부터 사업을 접고 동시쓰기에 전념하기까지 그가 살아온 다양한 인생이 현실 참여 동시집부터 동심이 가득 담긴 저학년 동시집과 고학년 동시집까지 그가 만들어낸 시세계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처음부터 ‘동시를 쓰는 이들에게’라는 주제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났던 것은 아니었다.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 한참동안 망설였다.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여러 번 듣다 보니 마치 ‘동시 창작 개론’처럼 경험을 토대로 한 동시 창작의 원칙 혹은 노하우로 정리할 수 있었다. 경험을 토대로 전하는 생생한동시 창작 개론, 이번 호 만남에서는 동시를 쓰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그의 이야기를 담았다.
주변의 사물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라
“나는 95년에 수원으로 와서 13년 동안 여기 공원에서 동시를 썼어요. 그러고 보니 시집네 권이 여기서 나온 꼴이네요. 시를 쓰려면 사물과 교감이 있어야 해요. 내 가까이 있는것과 특별한 관계를 맺으면 돼요. 여기저기 돌아다녀도 무심히 보면 안 돼요. 여기저기 다니며 많이 보면 인식의 폭은 넓어지겠지만 시가 되고 글이 되는 건 아니지요. 동시는 성인시와 달라서 삶의 깊이, 무게를 다룰 수 없잖아요. 내가 공원의 도토리나무를 소재로 서너편 쓴 게 있는데, 만날 보는 도토리나무지만 어제 본 것하고 오늘 본 게 다르고, 계절에 따라 다르고, 또 해마다 보는 느낌이 다르지요. 얼마 전에 울산 암구대 반각화를 보고 왔어요. 같이 간 다른 동시인들은 반각화에 있던 고래랑 아기 고래를 보면서 시를 떠올렸을지 모르지만, 나는 길에 버려져 있던 아기 신발을보고 시를 떠올렸어요. 설마 신발을 버렸을까, 잘못 두어서 잃어버렸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고 돌아오는 내내 그 신발이 눈에 밟혔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신발을 보고 시상이 떠올랐는데 아직 쓰지는 못 했어요. 작은 거라도 나에게 의미를 줘야 그게 시가 되는 거지요. 시인이라면 언제라도 사물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사람에게는 사물이 다가오지도 않고 말도 걸지 않겠지요. 머리(의식)가 깨어있어야지요. 의식이나 감각이 깨어있어야 대상과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시가 쓰여 진다고 봐요.”
제대로 된 시 열 편만 써라
“일본 하이쿠의 대가 마쓰오 바쇼가 한 말이 있어요. ‘다섯 편만 쓰면 당신은 시인이다. 열편을 쓰면 당신은 대가다.’ 여기서 말하는 다섯 편이나 열 편은 그냥 다섯 편이나 열 편이아니라 제대로 쓴 다섯 편 열 편이겠지요.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우리나라 유명 시인들 중에도 좋은 작품 열 편을 가진 시인은 흔치 않다고 봐요. 김소월, 이상화, 김영랑 등 이들 시인의 작품 중에서 좋은 작품이 몇 편이나 되는지 생각해 봐요. 뛰어난 시가 열 편만 된다면대단한 시인이지요. 그리고 그 시들이 시간의 무게를 견뎌내어 50년, 100년 뒤에도 남는다면 정말 대단한 거지요. 보들레르나 랭보, 김소월 같은 시인은 시집을 한 권만 냈잖아요. 시집은 평생 한 권만 내면되는데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작품이 나올까 싶어 쓰다 보니 시집이여러 권 되는 거지요.” 퇴고 과정에 많은 시간을 투여하라
“나는 지금도 습작생이에요. 미당 선생이 이런 말을 했지요. ‘작품은 언제나 미완성이다’라고. <어린이와 문학> 6월호에 발표한 「바람 부는 날」은 작년에 낸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 있던 건데 다시 보니까 미흡한 점이 보여 고쳐서 발표했어요. 함께 발표한 「나무」도 다시 보니까 세 군데나 미흡해서 고친 뒤 내가 운영하는 카페에 올렸어요. 쓸 때는안 보이다가 활자로 된 다음에야 꼭 눈에 띈단 말이에요. 그래서 나는 아직도 습작생이에요. 완전하게 써서 첨삭할 때가 한 군데도 없다, 마음에 든다, 그래야 되는데. 김소월도 「진달래꽃」을 스무 번 정도 고쳐서 발표했다고 했나, 가끔은 발표한 작품을 다시 고쳐 보기도하지만 고치지 않은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고칠까 말까 고민하다가 보면 나스스로 혼란에 빠져서 판단이 잘 안서요. 그럴 때는 시간을 두고 봐야 돼요. 쓴 작품을 묵힌 뒤에 다시 보고 나서 만족하면 발표를 해야 돼요. 몇 년 전에 쓴 거라도 계속해서 그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고쳐야 해요. 얼마만큼 그 작품에 시간을 투여했느냐가 중요하거든요. 쉽게 써서 급하게 발표하면 안 돼요. 두고 두고 고친 뒤에 발표해야 돼요. 나 역시 충분히봤다고 생각하고 작품을 보낸 뒤, 발표된 작품을 보면 또 미진하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는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그게 잘 안 돼요. 그래서 나는 아직도 습작생이에요.”
동화와 비교하지 마라
“동시를 동화와 비교하면 상대적인 박탈감이 들어요. 7,80년대에는 동화나 동시나 시장이없어 대부분 자비 출판했고, 인쇄 출판은 거의 없었어요. 상대적 박탈감이 없었지요. 90년대 이후부터 동화는 아주 빠르게 시장이 커지고 동시는 느린 상태였으니까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껴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동시도 30년 전보다는 시장이 커졌어요. 나도 80년 초에 동시집을 자비출판을 했지만 그때는 거의 그랬어요. 동시는 동시인 지망생이나 동시인들끼리만 보는 거였어요. 돌이켜 보면 그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좋아졌어요. 지금은 경제적 여유도 있고, 부모들도 아이에게 동시를 읽히려고 하지요.”
동시는 본래 어려운 장르다
“동시가 동화보다 독자들에게 확산이 안 되는 이유는 운문문학의 특성 때문이라고 봐요.시는 본래 어려운 거예요. 쉬우면 시가 아니고 유행가 가사여야지요. 서사문학은 스토리거든요. 이야기니까 사람들이 그 내용을 따라가면 되지요. 옛이야기는 지금 봐도 재미있잖아요. 시대를 초월해서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가치라든가 재미는 그대로 지니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시는 정서를 표현하는 거잖아요. 정서를 표현하다 보니 그 정서를이해하지 못하면 독자가 못 따라 오는 거지요. 정서라는 건 1학년과 3학년이 틀리고, 5학년하고도 틀리잖아요. 그래서 동시가 참 어려워요. 개선책은 있을 수 있지만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에요. 이원수 선생님 동시를 예로 들어볼게요. 이원수 선생님의 동시 200여 편 중에 아이들이 좋아할 동시만 4,50편 묶어서 동시집을 낸 게 있잖아요. 그러면 그게 베스트셀러가 되어야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거든요. 왜 그럴까요? 공감하는 독자도 있지만 공감 못하는 독자도 있다는 거지요. 이원수 선생님의 좋은 동시는 삶을 표현한 것인데 요즘 독자들에게는 정서가 안 맞는 거지요. 이런 게 동시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요, 한계라고 봐요.성인시는 그렇지 않지만.
동시가 안 팔린다고 해서 서운해 할 필요 없어요. 좋게 생각하면 동시는 동화와는 다른 고고한 물건이라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보면 돼요. 그렇다고 동시 쓰는걸 대단하게 생각해서는 안 돼요. 아이들에게 깨우침을 주고, 교훈을 주고, 아이들의 정서를 순화시키고, 심성을 곱게 하고……. 나도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를 썼어요.그래야 내가 보람된 일을 하는 것 같고, 내가 하는 일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지금은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음악이나 그림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듯 동시도 그렇게즐겁게 감상하면 되는 것이고, 고급 오락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대단하게 여길 건 없다고봐요. 독자가 소수더라도, 그 소수의 독자가 내 동시를 읽고 잠시라도 즐거웠다면, 잠시라도 기쁨을 맛봤다면 그걸로 족한 거지요.” 상상력을 해방시켜 틀 밖으로 나와라
“성인시 쓰던 시인들이 쓴 동시를 보고 나도 많이 느낀 게 있어요. 불성실한 답변일지는 모르지만 정직하게 말한다면 시는 고급 오락이라고 생각해요. 동시단에 있는 이들은 전형적인 동시를 고수하지요. 동시의 원줄기가 있다면 거기서 다양한 곁가지들이 뻗어 나와야하잖아요. 그런 시가 최승호 시인의 말놀이 동시나 김기택, 최명란 시인의 동시라고 봐요.말놀이 동시에도 약점이 있어요. 그게 한 권으로 그쳐야 하는데 2권, 3권, 4권 계속되면 첫권의 모방밖에 안 된다는 거지요. 나는 그렇게 봐요. 정통적인 동시는 새로운 소재를 만나발상이 참신하면 새로운 동시가 되지만, 말놀이 동시의 경우는 양적으로 늘이는 것뿐이지매 권마다 새로울 수는 없지요. 상투성에 빠지기 쉽지요. 아쉬운 건 왜 동시인들은 이제까지 그런 동시 쓸 생각을 못했나 하는 거지요. 오래 전 나도말놀이 동시를 몇 편 썼어요. 그땐 이건 동시가 아니다, 라고 낙인찍어 버리고 더 이상 안쓴 거지요. 이제까지 대다수 동시인들은 틀 안에 갇혀서 벗어날 줄 몰랐어요. 그만큼 상상력이 빈곤했다는 거지요. 최승호 시인이나 김기택, 최명란 시인은 그런 면에서 자유로웠던 거예요. 동시인들은 교육적인 것에 매여서 거기서 벗어날 생각을 못했는데, 그 사람들은 그런 게 없었던 거지요. 그들이 그런 동시를 발표하면서 동시인들의 상상력을 자극시켜 주었다고 봐요.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은 동시만 쓰는 동시인들은 동시를 의미 있게 쓰려고 하고, 성인시를 쓰는 시인들은 동시를 그냥 재미있게 쓰려고 한다는 겁니다. 역할이 뒤바뀐 거예요. 표현 방법에서도 동시인이 써야 할 방법을 그들이 쓰고, 성인시인들이 써야 할 방법을 동시인들이 쓰고. 까닭은 성인시를 쓰는 이들은 의미나 메시지 따위는 성인시로 풀어낼 수 있으니 동시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지요. 그러다 보니 동시를 발랄하게 재미있게 쓰려고 한 거지요. 그들은 성인시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을 동시로 풀어낸 거지요. 반면에 동시인들은 자신이 겪은 인생이라든가, 하고 싶은 말을 달리 풀어낼 길이 없으니 거꾸로 동시에다가 담아 보려는 유혹을 끊임없이 느끼지요. 그러다 보니 동시가 무거워지고딱딱해지고 그러는 거 같아요.”
꾸준히 실험시도 써보라
“동시를 쓸 때는 독자를 배려해야 돼요. 나도 예전에 뭘 모르고 쓸 때는 독자에 대한 배려가 없었어요. 지금은 쓰면서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생각해요. 작품을 읽을 때도 아이의 눈높이로 작품을 보려고 해요. 아이들이 이 작품을 이해할까? 어떻게 생각할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감응을 할까? 이런 걸 생각하면서 동시를 읽고 써요. 내가 쓴 시 중에도 순전히 내 문학적 욕심으로 쓴 게 있어요. 실험시라고 할 수 있는 건데독자를 위해 쓴 게 아니라 순전히 동시문학을 위해서 쓴 거지요. 성인시에서는 실험시가많이 나오잖아요. 동시도 필요하다고 봐요. 3년 전부터 시도하고 있는데 어려워요. 실제로해 보면 실패할 확률이 높거든요. 지금까지 쓰던 시 쓰면 위험부담은 없지요. 하지만 새로운 것도 시도해 봐야 돼요. 동시문학을 위해서죠. 그렇게 하다보면 새로운 방향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때가 있겠지요. 능력 있는 후배 동시인들이 실험을 통해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고 설령 실험이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건 작품이 실패한 것이지 시도 자체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성인시도 여러 갈래가 있듯이 동시도 여러 갈래의 시를 위해 새로운 길을 찾으면서 계속업그레이드 시켜나가야 돼요. 전통적인 방법에만 머물러 있으면 그냥 대필이라고 할 수있지요. 지금부터 현대적인 작품을 써야 몇 십 년 지나도 구닥다리가 안 되는 거지, 지금부터 현대성이 없는 시를 쓰면 5, 6년만 지나도 낡은 시가 되어 버릴 수 있지요. 오늘 새로운것도 내일이면 낡은 것이 되잖아요. 동시를 쓰다 보면 고민거리가 많이 생겨요. 고민거리가 많다는 건 좋은 현상 아닙니까? 고민거리가 없으면 현실에 만족하고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보면 됩니다. 상품과 마찬가지로작품도 늘 불만을 가져야 새로운 게 나오겠지요. 불만을 가지려면 현재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해요. 낡은 시도 제대로 못 쓰는 사람이 새로운 좋은 시를 쓸 수는없는 거지요. 기성 동시인들도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고 해야 합니다. 나도 노력을 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요. 쉽지 않으니까 도전해 볼만 한 거지요. 새로운 형식과 내용, 기법으로쓰느라 전달에 문제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어린독자를 제대로 배려하지 못했다 하더라도)시간이 지나 어느 단계 이르면 독자 배려 문제도 해결된다고 봐요.”
최고가 될 수 있다, 용기를 가져라
“어떤 후배가 지금부터 30년 이내에 발표된 동시들을 보니 제대로 된 동시가 별로 없더라해요. 그래서 내가 그랬지요. ‘기회가 좋네! 네가 조금만 잘 써도 되겠네.’ 했지요. 그렇지않아요? 이제까지 마음에 드는 시가 별로 없다면 자신이 조금만 노력해서 쓰면 우뚝하게드러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동시는 시시해, 좋은 동시가 없어, 그렇게 냉소적으로 부정만 해버리면 바람직하지 않지요.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쓰면 내가 아무리 잘 써도 돋보일 확률은 낮지요. 모두가 잘 못쓴다고 여겨질 때 생각을 바꾸어 내가 조금만 잘 쓰면 되겠구나,이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동시를 쓰면 좋잖아요. 권오삼 동시를 보니 형편없네,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권오삼이보다는 더 잘 쓰겠다, 이러고 쓰면 후배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신나고 통쾌하고 재미있어요. 그러니 용기를 내어 치열하게 작품을 쓰라고 말해두고 싶어요.” 권오삼 시인은 인터뷰 말미에 필자에게 ‘아동문학을 위해 애쓰는 젊은 사람’ 에게 아무 것도 줄 것이 없어 미안하다 했다. ‘젊은 사람들이 잘 해주길 부탁한다’는 말 속에는 아동문학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가 오랜 동안 동시인의 자리를 지키면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동시를 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고 있는 게 아닐까?
( 권오삼)
1943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1975년 월간문학 신인상에 「5 월」이, 1976년 소년 중앙문학상에 「그네 타는 아이」가 각각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동시집으로 『강아지풀』, 『가시철조망』, 『물도 꿈을 꾼다』, 『고양이가 내 뱃속에서』, 『도토리나무가 부르는 슬픈 노래』,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이 있다. (어린이와 문학 2008년 8월호)
|
동시를 잘 쓰는 요령 - 김원기
1. 동시란? |
여러 빛깔의 동시 읽기(알기)
권오삼
1. 들어가는 말
동시의 첫 번째 독자는 누가 뭐라 해도 어린이이고 어른은 두 번째 독자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어른 독자(*동시인, 동화작가, 평론가, 교사, 출판사 종사자, 글쓰기지도 교사, 학부모, 도서관 종사자, 일반인 등)가 첫 번째 독자인 어린이를 대리해 매우 중요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연하면 동시의 두 번째 독자인 이 어른 독자가 동시의 으뜸 독자인 어린이를 대신해 검열관 노릇을 하고 있는 동시에 어린이에게 줄 시를 전달하는 전달자의 막중한 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독자로서는 이차 독자에 불과한 이 하위 어른 독자가 실제로는 두려울 정도로 막강한 자리에 있기에, 이들의 결정에 따라 힘없는(?) 독자인 어린이 -사실은 가장 막강한 자리에 있는 어린이- 에게 주어질 시들이 결정되고, 어린이는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이 어른이 골라주는 시에서 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선택의 자유가 꽉 막힌 불행한 처지에 있는 것이다. 단지 어리고 구매권이 없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데 이 막강한 어른 권력자가 어떤 고정관념이나 편향성에 빠진다면 어떻게 될까? 어린 독자는 불행하게도 편식을 해야 하고 종내는 영양실조에 빠지든지 아니면 시란 음식을 아주 멀리 하는 길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여러 가지 방향의 여러 가지 동시를 읽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교과서에 수록된 동시가 어린이에게 주는 영향은 크다 하겠고, 한 방향에만 치우친 동시를 게재할 때에는 의외의 폐단을 가져 올 우려조차 있을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무엇보다도 내용이 될 소재의 다면 다양을 권해야 하겠다. 감각적인 시, 사유적인 시, 유희에서 얻은 시, 노동에서 얻은 시……그 외 온갖 방면에서 시를 찾아내게 할 일이다.절대로 어느 한 종류의 시만 시로 알게 해서는 안 되겠다.’ (이원수 아동문학전집 28권. 아동문학입문 317쪽)
이원수가 위의 글을 발표한 것이 1961년이니 이원수야말로 식견을 지닌 우리 동시문학의 선각자요, 어린이를 배려한 훌륭한 시의 교사라 하겠다. 우리 동시의 역사를 보면 늘 정치, 사회적인 영향에 의해 어느 한 방향으로만 흘러간 불우한 환경에 있었다고 본다. 이원수가 ‘어느 한 종류의 시만 시로 알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한 것도 이와 같은 사정과 무관치는 않다고 하겠다. 따라서 어린 독자들에게 다면 다양한 시를 주려면 시에 대한 일차 검열자요, 선택권을 지니 어른들이 편향성에 빠지지 않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동시를 보는 눈을 넓힐 필요가 있다.
2. 여러 빛깔의 동시 읽기(알기)
⑴ 사물을 소재로 한 동시(사물동시 -이미지 동시)
사물동시(이미지동시)는 시인이 시심(동심)으로 어린이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 세계의 사물을 심상으로 표현하거나 또는 묘사한 시라고 하겠다. 이런 유형의 시에서는 시적 발견을 볼 수 있다.
가. 사물을 동심으로 보고 형상화한 것
풍경 소리 최새연
추녀 끝에 물고기 한 마리
죽었을까? 살았을까?
바람이 살짝 건드려 봅니다
땡그랑 땡그랑
물고기는 잔잔히 물결을 일으키며 맑고 고운 소리를 냈습니다
땡그랑 땡그랑
죽은 물고기를 바람이 살려놓고 갔습니다.
눈꽃 이경애
소나무에 피어도 눈꽃 싸리 가지에 피어도 눈꽃
억새 줄기에 피어도 눈꽃
색깔도 하나 이름도 하나
백두산에도 한라산에도 똑 같이 피는 겨울꽃 눈꽃.
이 2편의 시들은 시심 혹은 동심의 순수한 눈으로 대상인 사물을 이미지로 형상화한 시다. 화자는 결코 어린이가 아니다. 시인 자신이다. 다만 시인이 동심의 눈으로 새롭게 발견한 사물을 단순소박하게 표현했기에 화자가 어린이인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할 뿐이다. 이처럼 사물을 그린 사물동시에선 꼭 화자가 어린이일 필요는 없다. 시의 대상이 된 사물을 어린이들도 눈앞에 떠올릴 수 있도록 또렷하게 형상화만 잘하면 된다.
물총새 권정생
물총새가 날아간다. 비가 줄줄 쏟아지는데 물총새가 쪼꼬맣게 날아간다.
언덕 밑 둥지엔 아가들이 입을 쫙 쫙 벌리고 엄마한테 먹이를 받아먹는다.
빗줄기가 줄줄 쏟아지는 날 엄마 물총새가 물고기 먹이를 입에 물고 쪼꼬맣게 날아간다.
이 시는 앞서의 2편의 시와는 다르게 시적 대상인 사물을 발견한 것이라기보다 사물을 동심적으로 자세하게 묘사한 것이다. 화자는 어린이가 아니라 시인 자신이다. 이처럼 사물의 모습을 관찰 묘사할 때에는 화자가 굳이 어린이일 필요는 없다.
나. 사물을 동심으로 의인화하여 형상화한 것
빗방울 권오삼
어, 어 나뭇잎에 떨어졌네!
그럼 또르르 구슬 되어 굴러가지
어, 어 전깃줄에 걸렸네!
그럼 어디 한번 매달려 볼까?
대롱대롱대롱
아이고 힘 빠졌다 톡―.
이 시는 화자가 분명하다. 바로 빗방울 그 자체다. 시인이 대상인 사물에다 동심을 입히고 말을 하게 한 것이다. 즉 대상에다 자신을 투사(投射)시켜 의인화한 것이다. 이런 유형의 시는 시적 대상에다 자신을 투사, 또렷하게 이미지화 하지 않으면 시가 유치해지거나 무미건조하게 될 우려가 있다.
⑵ 생활이나 삶을 소재로 한 동시(생활동시, 삶의 동시)
생활이나 삶에서 소재를 얻어 아이 눈으로 표현한 유형의 시가 생활동시, 또는 삶의 동시라 하겠다. 이런 동시는 비유나 이미지보다 시가 지닌 진정성, 진실성 -즉 생활감동이 중요하며 표현은 진솔한 게 특징이다.
가. 시 속에 삶을 담은 것
밤중에 이원수
달 달 달 달…… 어머니가 돌리는 미싱 소리 들으며 저는 먼저 잡니다 책 덮어 놓고. 어머니도 어서 주무세요, 네?
자다가 깨어 보면 달달달 그 소리. 어머니는 혼자서 밤이 깊도록 잠 안 자고 삯바느질 하고 계셔요.
돌리시던 미싱을 멈추시고 "왜 잠 깼니? 어서 자거라
어머니가 덮어 주는 이불 속에서 고마우신 그 말씀 생각하면서 잠들면 꿈 속에도 들려옵니다. "왜 잠 깼니? 어서 자거라 어서 자거라……."
고무신 두 짝처럼 서정홍
아버지 밥상 펴시면 어머니 밥 푸시고 아버지 밥상 치우면 어머니 설거지하시고 아버지 괭이 들고 나가시면 어머니 호미 들고 나가시고 아버지가 산밭에 옥수수 심자 하면 옥수수 심고 어머니가 골짝밭에 감자 심자 하면 감자 심고 고무신 두 짝처럼 나란히 나가셨다가 나란히 돌아오시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
위의 2편의 시는 삶의 한 단면을 말의 수사 없이 그냥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시는 생활감동을 잘 담아내지 못하면 평범한 생활 주변의 밋밋한 이야기로 되어 시가 평범한 일기문, 혹은 산문처럼 될 수 있다. 따라서 시를 선택할 때 신문기사 같은 시냐, 아니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나. 시 속에 아이 마음이나 심리를 담은 것
할아버지 요강 임길택
아침마다 할아버지 요강은 내 차지다
오줌을 쏟다 묻으면 더럽다는 생각이 왈칵 든다 내 오줌이라면 옷에 쓱 닦고서 덕도 집어먹는데
어머니가 비우기 귀찮아하는 할아버지 요강을 아침마다 두엄더미에 내가 비운다 붉어진 오줌 쏟으며 침 한번 퉤 뱉는다
시준이 그림일기 김은영
어젯밤 번개 치고 천둥 쳐서 우리 식구 모두 큰방에서 잤어요
형아가 내 자리 자꾸 샘내서 엄마 옆에 꼬옥 붙어 잤어요
이 두 편의 동시는 어른인 시인이 짐짓 아이가 되어 아이 마음이나 심리를 표현한 것이다. 시인 자신이 경험한 것이거나 아니면, 아이의 말이나 행동을 보거나 들은 간접 경험을 시화한 것이라고 본다. 이런 유형의 시는 직접이든 간접이든 경험 없이 쓰면 어색하거나 유치할 우려가 있다.
⑶ 정서를 표현한 동시(서정동시)
시가 이미지나 메시지가 배제된 채 오로지 정서로만 물들여진 동시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주의할 것은 시에서 시인이 아이가 아닌 어른의 감정을 삐죽 내밀게 되면 어른의 감정 흘림이 되어 비동시가 되거나 어린이 독자에게 정서적 거부감을 줄 우려가 있다. 시점 설정과 감정 통제가 중요하다고 본다. 주정적인 동시라고 하겠다.
눈 내리는 밤 강소천
말 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누나도 잠이 들고 엄마도 잠이 들고
말 없이 소리 없이 눈 내리는 밤.
나는 나하고 이야기하고 싶다.
새와 산 이오덕
새 한 마리 하늘을 간다.
저쪽 산이 어서 오라고 부른다.
어머니 품에 안기려는 아기같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날아가는구나!
「눈 내리는 밤」은 시인의 정감이 주된 색조로 짜여 진 시이고 「새와 산」도 대상을 보는 시인의 눈이 이지적이라기보다 역시 정감에 닿아 있기 때문에 두 편 모두 서정동시라 할 수 있다.
⑷ 메시지를 담은 동시(메시지동시)
시인이 아이의 자리에서 아이처럼 말하든, 시인 자신이 직접 말하든 관계없이 시인의 관념(사상이나 윤리도덕, 가치관, 계몽, 가르침 등)을 은연중 표면에 드러낸 게 바로 메시지 동시라고 할 것이다. 서경에 詩言志란 말이 있다. 志 는 뜻이니까 메시지라 할 수 있다. 시에서 메시지는 사회성을 띤다. 그러니까 가르치려는 의도가 있다. 독자를 자기 사상(관념) 쪽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주의할 것은 그것이 강요가 아닌 설득의 목소리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른 되면 권태응
우리가 어서 자라 어른 되면은 지금 어른 부끄럽게 만들 터야요.
같은 형제 동포끼리 총칼질커녕 서로 모두 정다웁게 살아갈래요.
밭 한 뙈기 권정생
사람들은 참 아무 것도 모른다. 밭 한 뙈기 논 한 뙈기 그걸 모두 ‘내’거라고 말한다.
이 세상 온 우주 모든 것이 한 사람의 ‘내’ 것은 없다.
하느님도 ‘내’거라고 하지 않으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아기 종달새의 것도 되고 아기 까마귀의 것도 되고 다람쥐의 것도 되고 한 마리 메뚜기의 것도 되고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우리가 어른 되면」은 아이의 자리에서 아이가 되어 말하고 있다. 이에 반해 「밭 한 뙈기」는 시인이 직접 말하고 있다. 다만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눈높이를 낮추어 말하고 있을 뿐이다. 두 편 모두 계몽의 의미를 둔 메시지를 강하게 담고 있으나 강요가 아니라 설득의 목소리여서 무난하다.
⑸ 생각이나 사색, 성찰에서 나온 동시(사유동시 / 의미동시)
생각에서 나온 동시도 생활 속에서 얻은 것이기에 그냥 머릿속에서 추상적, 개념적으로 쓴 관념시와는 구분해야 한다. 그런데 흔히 보면 이런 생각에서 나온 시를 관념시와 동일시하는 감상자들이 많다.
세상 김은영
나무도 나무도 혼자 살면 심심해서 숲에 모여 산단다
햇살도 햇살도 혼자 피면 쓸쓸해서 꽃들과 함께 핀단다
달님을 봐 달님을 봐 밤하늘 혼자 뜨면 무서워서 별들과 함께 뜨잖니
사람도 마찬가지야 먼 길 혼자 가면 외로워서 길동무들 찾잖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 권오삼
여름 가뭄 때 물 한 통이라도 준 일 있니? 아―니요
비바람 몰아 칠 때 한번이라도 지켜 준 일 있니? 아―니요
그래도 가을되니 가져가라고 예쁜 열매 아낌없이 떨어뜨리는 밤나무 ․ 대추나무 ․ 도토리나무…….
두 편 모두 생활 속에서 건진 생각을 사물에 기탁하여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생각은 교훈이나 계몽과는 또 다른 것으로 어떤 의미나 사유를 시 속에 품고 있다. 그 의미는 주로 통찰이나 성찰에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낡은 도덕적 교훈이나 추상적 의미를 담은 의미동시는 관념시로 떨어질 수 있다.
⑹ 회화적 표현의 동시(서경동시)
언어로 그림을 그리 듯 사물의 모습이나 풍경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게 서경동시(회화동시)라 하겠다. 어린이시에서는 사생시로 나타난다.
나무가 있는 풍경 오규원
몹시 허리가 구부정한 한 그루 나무가 엉덩이를 불쑥 내밀고 다른 나무 사이에 생긴 그 초생달 같은 빈 틈에 파아란 하늘이 한줌 박혀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간들간들 흔들리는 조그만 나뭇잎 하나가 그 하늘을 잘랐다 붙였다 하고 있다.
저녁 풍경 권오삼
가로수 위로 땅거미 몰려드네 새들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네
새하얗던 얼굴빛의 가로등들 호박처럼 발갛게 불을 켜고
높다란 아파트 창문마다 고양이 눈빛처럼 반짝이는 불빛들
하늘은 어느 새 문밖에다 작은 별 하나 촛불처럼 꺼내놓았네
두 편 모두 주관을 배제한 체 객관적 묘사로만 일관하고 있다. 시 제목 그대로 나무가 있는 풍경이요, 도시의 저녁 풍경이다. 한 폭의 풍경화를 보듯 하면 된다. 이처럼 말로 그림을 그리 듯 쓴 시는 대상이 눈앞에 또렷이 떠오르게 이미지가 선명해야 한다. 만약 그러지 못할 때에는 어린이들에게 난해한 시가 될 것이다. 이런 회화적 서경동시는 우리 동시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간혹 나타난다. 감상 대상은 고학년 어린이가 될 것이다.
⑺ 유희나 놀이적인 동시(유희동시, 놀이동시)
말 그대로 말유희 동시, 말놀이 동시라고 하겠다. 이런 유형의 동시는 발상이 기발하고 표현이 재미있어야 한다. 율동감이 있고 유머러스해야 한다. 아이들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운율을 지닌 시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동서가 똑 같다는 게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보들레르는 그의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에서 ‘인생에는 단 하나의 매력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장난의 매력이다’라고 했는데, 나는 이를 아이들에게 적용시켜 ‘어린이의 삶에서 진정으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면 그것은 장난의 매력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 장난을 시에서 보는 것도 아주 매력적이고 흥미 있는 일이다.
구구셈 김용택
이이는 누렁니 칠칠은 뺑끼칠 팔팔은 곰배팔 구구는 닭모시 어느새 구구셈을 다 외웠네
밥 먹기 권오삼
숟가락아 나 배고프다 빨랑 밥 떠넣어라
젓가락아 밥 들어왔다 빨랑 반찬 집어넣어라
이빨들아 일감 들어왔다 싸게싸게 움직여라
알았다 밥통아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잖니!
뻐꾸기 안도현
봄이 간다 뻐꾹 꽃이 진다 뻐꾹 알 낳았다 뻐꾹 남의 둥지에 뻐꾹 나는 아니다 뻐꾹 남의 둥지에 뻐꾹 알 낳지 않았다 뻐꾹 도리도리 뻐꾹 정말이다 뻐꾹 찾아봐라 뻐꾹
⑻ 말 익히기를 위한 동시(말놀이동시)
유치원 단계에 있는 어린이를 위한 말 익히기 동시라 하겠다. 이런 동시는 내용이 엉뚱하고 난센스에 가까우며 운율이 있어 말 익히기 단계에 있는 어린 나이의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사자 최승호
사자야 사자야 서커스 사자야 마술사 엉덩이를 왜 물었어? 엉덩이가 사과니? 엉덩이가 사탕이야? 사자야 사자야 마술사 엉덩이를 왜 물었어?
이 시는 ‘시옷’을 익히게 하기 위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시옷’이 들어간 단어를 동원하고 있다. 사자, 사과, 사탕, 서커스가 그러며 그 단어를 반복해서 쓰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의도를 밖으로 전혀 드러내지 않았기에 말놀이 동시로서 성공했다고 본다.
⑼ 이야기를 시의 그릇에 담은 이야기 동시(동화시, 우화시)
동화와 우화를 시의 그릇에 담은 것으로 이야기가 있는 시라 하겠다.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동화적 요소를 담은 동화시와 우화적 요소를 담은 우화동시로 나눌 수 있다.
가. 동화를 시의 그릇에 담은 것
개구리네 한솥밥 (백석) -창작동화를 시의 그릇에 담은 것 가래떡(위기철) -전래동화를 재구성하여 시의 그릇에 담은 것
나. 우화를 시의 그릇에 담은 것
고양이 세탁 권오삼
털빛이 눈처럼 새하얀 고양이가 있었어요. 아이는 이 고양이를 무척 좋아했어요.
눈처럼 새하얀 나의 고양이 미로! 미로! 너는 나의 귀여운 친구
미로는 털빛이 새하얗다 보니 털이 금방금방 더러워졌어요. 아무리 물로 닦고 문질러줘도 본래대로 깨끗해지지 않았어요.
‘어떻게 하면 내 고양이를 눈처럼 새하얗게 해줄까?’ 아이는 혼자 곰곰이 생각했어요.
‘……아, 좋은 생각이 있네!’ 아이는 곤히 잠자고 있는 고양이를 가슴에 안았어요. 그리고는 고양이를 세탁기 안에 넣은 다음 가루비누를 뿌리고 얼른 뚜껑을 닫은 뒤 살짝 스위치를 눌렀어요.
윙― 윙윙윙윙 윙윙윙윙 꿈나라에서 신나게 놀고 있던 고양이는 갑자기 온몸이 팽글팽글 머리가 어질어질 속이 능글능글 야옹! 야옹! 나 미로 죽어요 미로 죽어요 세탁기 안에서 죽는다고 울부짖었지요.
난데없는 미로의 비명소리에 아이 어머니가 달려왔어요. 어머니 아니었으면 빨랫감이 되어 죽을 될 뻔했던 미로 용케 목숨을 건졌어요.
그런 일이 있고나서 미로가 아이 보고 말했어요. “나는 털빛 따위엔 관심 없어. 그건 사람들 맘이지. 그러니 나를 가만히 내버려 둬. 그게 나를 위하는 거야. 까딱하면 하늘나라로 갈 뻔했잖아!” “그래도 나는 네 털빛을 새하얗게 해주고 싶어.” “애야! 너는 사람이고 나는 고양이란다. 그러니 나를 좋아한다면 제발 이 고양이가 바라는 대로 좀 내버려 둬. 알겠지, 응! 야옹!”
산토끼랑 달팽이랑 오은영
허둥지둥 언덕길 뛰어가던 산토끼가 글쎄 달팽이 보고 혀를 찼대.
너처럼 느릿느릿 가다간 언덕 너머 산비탈 뒤덮은 진달래꽃 잔치 못 보겠다.
달팽이도 글쎄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대!
너처럼 빨리빨리 가다간 제비꽃 깽깽이풀 얼레지 족두리풀 매미꽃 봄까치꽃 애기풀 들바람꽃…… 언덕길 따라 줄줄이 핀 풀꽃 잔치 하나도 못 보겠다.
우화와 교훈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고양이 세탁」은 인간 생활을 배경으로 한 철리(哲理)우화에 가까운 것이라면 「산토끼랑 달팽이랑」은 동물과 자연을 배경으로 한 이솝 우화(원시동화)에 가까운 우화라 하겠다. 우화동시는 아무리 연과 행을 갖추어도 산문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우화동시는 걸음마 이전의 아주 낮은 단계에 있다고 하겠다. 보기 드물다는 것이다.
⑽ 실험성이 강한 동시(상상력에 바탕한 동시)
지금 까지 말한 여러 유형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실험성이 강한 동시로 상상력(이미지)에 바탕하고 있는 동시다. 우리 동시에는 실험성이 강한 작품이 드물다. 실험성이라고 하여 어린이의 이해를 무시한다든가 의미 전개에서 논리적 질서가 없거나 이미지가 선명하지 못하면 전달성에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단순히 말의 요설에 머문 것은 터무니없는 말장난 놀음이기에 거부감을 준다.
신발 속에 사는 악어 위기철
악어야, 악어야, 신발 속에 사는 악어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더러운 발. 발을 씻지 않는 아이가 신발을 신으면, 발을 꽉 깨물어 먹어라.
생쥐야, 생쥐야, 베갯속에 사는 생쥐야. 세상에서 가장 좋은 놀이터는 때 묻은 얼굴. 세수 안 한 아이가 잠을 자면, 얼굴에 올라가 춤을 추며 놀아라.
공장 구경 -시간을 만드는 공장에 가다 권오삼
우랄랄랄 오늘 나 혼자 시간을 만드는 공장에 갔다네 공장은 전체가 둥그런 하얀 건물이었다네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첫눈에 띄는 게 큼직한 12개의 숫자와 작은 눈금들 그리고 마중 나온 세 명의 안내원 첫째는 땅딸보 둘째는 키다리 셋째는 말라깽이
공장 안으로 들어서니 공장안은 온통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 소리뿐이었다네 째깍째깍째깍 똑딱똑딱똑딱 땡땡땡땡 맞물려 돌아가는 복잡한 기계들과 가래떡처럼 쏟아져 나오는 제품들 기계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최신 자동 기계였다네 생산되어 나오는 제품을 보니 구겨지거나 찌그러지거나 금이 가거나 흠이 난 불량 제품은 하나도 없었다네 상표를 보니「명품 은빛시간」 (생략)
3. 맺는 말
내 나름대로 이러저런 동시들을 10가지로 분류하고 한두 작품을 예로 들어 보았다. 많은 동시들을 여러 빛깔로 분류한다는 게 사실 쉽지 않다. 어떤 작품은 작품 속에 빛깔이 겹쳐져 있어 경계가 모호하고 분류하기가 애매한 것도 있고, 또 어떤 작품은 보는 이의 눈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작품도 있다. 그리고 예로 든 작품 외에 다른 좋은 작품들을 더 많이 예로 들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한 것은, 이 원고가 동시에 대한 토론을 위한 자리에 쓰일, 제한된 시간에 맞는 분량의 원고여야 한다는 점 때문이다.
어른들은 어른이라는 그 특권(?) 하나만으로 어린이가 직접 선택해야 할 동시를 어린이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자신들이 독점, 선택 ‧ 공급하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좋으나 잘못된 권력 행사가 늘 부작용을 낳듯 동시를 선택 ‧ 공급하는 과정에서도 독단적 권력 남용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독단이 없으려면 여러 빛깔의 동시를 알아야 하며 또 제대로 감식하는 안목도 길러야 할 것이다. 시가 아무리 주관성이 강한 장르라 해도 경향성을 떠나 ‘시가 된 양질의 동시와 그렇지 않은 저질의 동시’ 쯤은 가려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이러려면 여러 빛깔의 동시를 선입견 없이 두루 맛 볼 필요가 있다. 저질의 동시든 고질의 동시든 자기 입맛에만 맞추려 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완성도가 높은 동시라면 어떤 경향의 동시든 아이들에게 권하려는 소견 넓은 어른 독자, 안내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뜻에서 이 졸고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2007 1. 27) |
동시의 여러 가지 표현 기법 ㅡ 김관식
⑧ 이야기시의 활용 방법
어린이는 처음 보는 사물에 호기심이 많다. 따라서 사물의 실체를 알아내기 위해 관찰활동을 하게된다. 관찰활동은 사물을 인지하기 위한 일련을 다각적인 활동을 시도하게 된다. 우산 가까이 있는사물을 만져보려고 한다. 촉감으로 사물의 실체를 파악하는 행위가 먼저 이다. 위험한 물체나 상황이라는 것을 어른이 일러주어도 직접 만져봄으로써 만지면 안 되는 물건이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인지하게 된다. 만져보고 두드려서 나는 소리를 들어보기도 하며 냄새를 맡아보거나 입으로 맛을 보기도 하는 등눈, 코, 귀, 입, 손을 이용한 시각, 창작, 후각, 미각, 촉각 등의 다섯 가지 감각에 의해 사물을 인지하는 활동을 일컬어 관찰활동이라고 한다. 우리는 흔히 관찰한다고 하면 시각에 의한 눈으로 만 보고 사물을 인지한다는 것은 피상적인 사물인식이며 실제적이기 보다는 관념적인 인식으로 파악될 뿐이다. 관찰은 시각뿐만 아니라 오감을 통한 인식활동을 모두 포함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시의 원리는 바로 다섯 가지 감각으로 인식하고 그 인식한 경험과 정서를 환기시켜주기 위해 감각적으로 표현되어야 구체화 되는 것이다. 이의 원리에 의해 그와 유사한 사물을 끌어와 비유하기도하고 그것을 상징할 수 있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어린이들은 이와 같이 사물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가까운 주위의 사람들이 귀찮을 정도로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묻는다. 어린이들이 묻거나 오관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어린이들은 가만히있지 않고 친구들에게 이야기 하고 싶어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했거나 알고 있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 한다. 또한, 옆에서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호기심이 있으며, 대화상대에 끼어들기를 잘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는 본성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이들이 만나면 시끄럽게 떠들어댐으로써 자가 표현하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심리리가 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지 못하거나 이야기를 하지 못하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소외감을느끼게 되며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와 같이 사람은 본성적으로 묻고 답하는 이야기 나눔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며, 궁금한 점을 알아내려고 한다. 또한 이야기를 나누면 서로 가까워지고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동시뿐만 아니라 성인시에서도 시적 대상과 이야기를 나누는 원리를 적용한 이야기 표현방법으로시를 쓰게 되는 데 이를 이야기시라 한다. 이야기동시는 동심의 본질에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고, 동시를 읽는 사람에게거리를 좁힐 수 있는 방법 때문에 많이 쓰는 기법중의 하나이다. 이야기 동시의 특성은 첫째, 기존의 동시와는 달리 시인과 화자가 내면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강한호기심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성인시일 때는 화자의 내면적인 갈등이 담겨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 대화체의 짜임이나 동화와 다른 서술 방식이라는 점이다. 인물, 사건 배경이 생략되는 경우가많을 뿐더러 셋째, 상상력을 불어 넣는 압축과 상징적인 시어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문삼석의 「바람과 빈병」을 보면, 이야기시가 인물, 사건, 배경이 없이 숲속에 버려진 빈병에 바람이 들어갈 것이라는상상력으로 압축과 상징적 시어를 활용하여 대화시로 표현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바람과 빈병
문삼석
바람이 숲 속에 버려진 빈 병을 보았습니다.
"쓸쓸 할 거야."
바람은 함께 놀아주려고 빈병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병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보오, 보오."
맑은 소리로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넷째, 정서나 경험을 전달하기 위한 감정표현 방식을 활용하기 때문에 다양한 서술 방식으로 표현된다. 예를 들면, 시간 역행적 짜임, 액자식 짜임, 편지체 형식, 일기체 형식. 대화체 형식, 묘사, 쉬운어휘의 선택의 방법 등이다. 이 시는 201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동시인 서지희의 「쑥덕」이다. 떡집에서 산 쑥떡을 먹는사건에 대한 정서나 경험을 전달하기 위한 감정표현 방식으로 대화체 형식을 채택한 예이다.
쑥떡
서지희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하다가 떡집에서 산 쑥떡을 먹으면
-아 맛있다, -엄마도 한번 먹어봐 -너나 많이 먹으렴 엄마와의 대화가 없던 나도 어느새 파릇한 쑥처럼 쑥덕 쑥덕 말이 많아진다.
다음의 예는 201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동시인 박미림의 「숙제 안 한 날」인데, 화자가 혼자중얼거리는 독백체 형식으로 자신이 겪은 경험을 일기체와 대화체 형식으로 표현한 시이다.
숙제 안 한 날
박미림
친구랑 둘이 남아 벌 청소 한다 하늘을 나는 대걸레
배는 점점 고파오고 대걸레 휘휘 돌리니 아하, 대걸레가 몽땅 짜장면이다 꿀꺽, 침 삼키고 바라보니 세 그릇쯤 된다 색종이로 오이 송송 단무지 한 쪽
후루룩 쩝쩝 하하하 일기 안 쓴 예찬이 한 그릇 나 한 그릇 에라, 모르겠다 선생님도 드리자.
에궁에궁 신기한 짜장면, 배는 안 부르고 예끼 선생님이 주신 짜장면 값 꿀밤 한 알 미소 한 접시.
김관식 저 |
동시의 유형동시의 유형은 형태에 따라 정형동시/자유동시/산문동시/서사동시/서정동시/극시로 나눌수가 있습니다.
정형동시
-4.4조나 7.5조의 일정한 음수율을 지키면서 창작된 동시로 동요로 불리던 음악성 위주의 시가 정형동시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전통적인 시조 작법에 바탕을 두고 창작된 동시조와 전래동요도 포함됩니다.
-정해진 글자 수나 행수, 운율을 지키는 외재율에 의해 음악성을 나타내는 동시입니다.
-윤석중<초승달>, 윤극영<반달>, 이원수<고향의봄>, 전래동요<새야새야>
자유동시
-자유동시는 내재율에 의해 음악성이 나타나는 동시이다.
-자유로운 형식속에서 나름대로의 리듬을 지닌다.
-글자수나 행가름, 운율의 정형적 구조들에 제한이 없이 자유로운 글자 수와 행수 또는 운율을 취하는 시를 말한다.
-박목월<엄마하고>
산문동시
-시의 의미의 본질인 음악성, 상징성, 함축성을 내포하므로 산문과 구분되는 형태의 동시이다.
-산문동시는 자유동시와 유사하지만 행가름을 하지 않고 아무런 리듬을 보이지 않는 산문에 가까운 동시다.
-산문적 어조이면서도 산문이 지닌 지시적 의미 전달의 틀을 벗어나 함축적 의미 작용의 내면 구조를 갖는 것을 말한다.
-유경환<아이와 우체통>
서사동시
-서사동시(동화시, 이야기시)는 한사건을 운문으로 표현하는 긴 시를 말한다.
-호모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밀턴의 실낙원 등이 대표적이며 아동을 위한 서사동시로는 민담의 내용이거나 작가의 상상력 등으로 창작한 짤막하고 재미있는 동화같은 이야기이다.
-주로 설화나 역사적 이야기, 위인전기의 일부, 혹은 저부를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다.
-박경용<이런 꿈을 꾸며>
서정동시
-시의 음악성(리듬)이 중시되며 현재적인 표현이 많은 시이다.
-서정동시는 주로 시인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짧은 시를 뜻한다.
-아동들이 흔히 접하는 정형동시, 자유동시, 산문동시등에 이에 속한다.
-자연세계의 불가사의함과 아름다움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고, 작가의 주관적인 감정 표현으로 형상화 한다.
극시
-연극이나 희곡의 내용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동시의 종류
(1) 형식상의 분류
외형적 운율에 따라 정형동시, 자유동시, 산문동시, 동화시
정형동시:음수율, 행수, 운율에 따른 동시.음악성이 강하여 동요로 많이 불린다.
자유동시:음수율, 행수, 운율이 정형적 구조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형태의 동시
산문동시: 자유동시와 비슷하다. 그러나 자유동시가 내재율을 반영하여 자유로운 운율구조의 음악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반면, 산문동시는 시의 의미의 본질인 음악성, 상징성, 함축성 등을 갖추고있다.
동화시: 형식면에서 볼 때 시적인 짜임새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 안에 동화적인 내용을 담은 시. 이것은 자유시와 비슷하지만 스토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담고있다는 면에서 자유시와는 분명히 다르다.
(2) 내용상의 분류
시인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한 서정동시
한 주제에 대해 운문으로 길게 표현한 서사동시
극적인 내용을 시적언어로 표현한 극시로 나눈다.
유아들한테 읽어줘야 할 동시
1.시대가 변해도 공감가는 시
2.행동을 묘사한 시
3.오래된 시와 현대시를 함께
4.유아가 있는 시
5.긴시보다는 짧은시
6.감각적, 함축적, 명백하고 기억될만한 시어를 사용한것
7.주제가 색다르거나 일상생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것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