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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토머스 트란스트뢰메르.
뛰어난 은유기법과 간결하지만 공명이 있는 언어로 유명한 스웨덴의 서정시인으로 2011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
그가 작품에서 사용하는 은유는 다른 대상을 빌려서 표현하는 것이 아닌, 표현하려는 대상 자체를 언어적으로 변형한 것에 가깝다.
문학계의 초현실주의 작풍과 연결되어 있는 그의 시는 일견 이해할 것 같으면서 동시에 불가사의한 면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버지는 언론인이었고 어머니는 교사였으나 두 사람이 이혼하면서 어머니와 외가에서 살게 되었다. 청년 시절 당시 스웨덴의 병역의무에 따라 군대를 다녀왔다. 최초의 시 모음집 〈17편의 시 17 dikter〉(1954)는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절제된 언어와 놀라운 형상화를 보여주며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1956년 스톡홀름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후 심리학자이자 사회복지사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이어진 그의 시집들, 곧 〈여정의 비밀 Hemligheter påvgen〉(1958), 〈미완의 천국 Den halvfärdiga himlen〉(1962), 〈반향과 흔적 Klanger och spår〉(1966)들은 화법이 좀 더 분명해지고 작가적 시각도 뚜렸해졌다. 이러한 시집들과 후기 저서들에서 나타나는 자연에 대한 시적 관찰은 극도의 간결함이라는 형식을 취하면서 의미적으로도 풍부함을 더했다.
한 비평가는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들은 음향적으로 완벽한 실내악이다.
그 안에서 모든 모순된 떨림들을 긴장감 없이 들을 수 있다."고 적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 신세대 시인들과 몇몇 비평가들은 그의 시에 정치적 메시지가 결여되어 있다며 그를 비난했다.
1960년대 그는 미국 시인 로버트 블라이와 서신을 교환하며 우정을 쌓았고, 이후 블라이는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데 앞장섰다. 블라이가 처음으로 전권을 번역한 시집 〈어둠 속에서 보기 Mörkerseende〉(1970, 영문판 제목은 Night Vision)는 , 트란스트뢰메르가 스웨덴의 시인으로서 어려운 시기를 보낼 당시에 쓰여진 시들이었다.
그가 1973년에 펴낸 〈작은 길 Stigar〉에는 블라이의 작품 몇 개가 스웨덴 어로 번역되어 함께 실렸다.
소년 시절 그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던 발트 해안은 〈발틱스 Östersjöar〉(1974)라는 시집의 배경이 되고 있다. 후기 작품으로 〈진실의 장벽 Sanningsbarriären〉(1978), 〈와일드 마켓플레이스 Det vilda torget〉(1983),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하여 För levande och döda〉(1989) 등이 있다.
1990년 트란스트뢰메르는 노이스타드 국제문학상을 수상했으나 같은 해 뇌졸중에 걸려서 말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이런 건강 상태에도 굴하지 않고 그는 회고록 〈기억이 나를 본다 Minnena ser mig〉(1993), 2권의 시집 〈슬픔의 곤돌라 Sorgegondolen〉(1996)와 〈거대한 수수께끼 Den stora gåtan〉(2004, 모음집)를 출판했다. 〈곤돌라의 슬픔〉은 프란츠 리스트의 〈슬픔의 곤돌라 La lugubre gondola〉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2011년에는 〈시와 산문 1954~2004 Dikter och prosa 1954~2004〉을 발간했다.
직접적인 언어와 강력한 이미지로 만들어진 그의 시작품은 그를 20세기 후반 영어권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번역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시인으로 만들었다.
블라이가 번역하여 세상에 나온 트란스트뢰메르의 모음집들에는 〈친구여, 어둠을 마셨는가 : 3인의 스웨덴 시인들, 하리 마르틴손, 군나르 에켈뢰프,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Friends, You Drank Some Darkness: Three Swedish Poets, Harry Martinson, Gunnar Ekelöf, and Tomas Tranströmer〉(1975),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 1954~86년의 시선집 Tomas Tranströmer: Selected Poems 1954~86〉(1987, 다른 번역자들과 공동번역), 〈미완의 천국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명시 The Half-Finished Heaven: The Best Poems of Tomas Tranströmer〉(2001)가 포함되어 있다.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다른 많은 언어로도 번역되었다.
한국에서는 그의 시와 에세이를 모은 〈기억이 나를 본다〉(2004)가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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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에 걸친 시작 활동을 통해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그가 발표한 시의 총 편수는 200편이 채 안 된다. 평균 잡아 일 년에 네댓 편 정도의 시를 쓴 ‘과묵한’ 시인인 셈이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독일의 페트라르카 문학상, 보니어 시상(詩賞),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 등 다수의 세계적인 문학상을 수상한 스웨덴 출신의 시인이다.
1931년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스톡홀름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방에서 심리상담사(psychologist)로 사회 활동을 펼치는 한편, 20대 초반에서부터 70대에 이른 현재까지 모두 11권의 시집을 펴냈다. 그의 시는 지금까지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있을 정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누렸다.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한마디로 ‘홀로 깊어 열리는 시’ 혹은 ‘심연으로 치솟기’의 시이다. 또는 ‘세상 뒤집어 보기’의 시이다. 그의 수많은 ‘눈들’이 이 세상, 아니 이 우주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그런 만큼 그의 시 한편 한편이 담고 있는 시적 공간은 무척이나 광대하고 무변하다.
잠과 깨어남, 꿈과 현실, 혹은 무의식과 의식 간의 경계지역 탐구가 트란스트뢰메르 시의 주요 영역이 되고 있지만, 처녀작에서는 잠 깨어남의 과정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 전도되어 있다. 초기 시에서 깨어남의 과정이 상승의 이미지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하강, 낙하의 이미지로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시의 지배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는 하강의 이미지 주변에는 또한 불의 이미지, 물의 이미지, 녹음(綠陰)의 이미지 등 수다한 군소 이미지들이 밀집되어 있다. 이 점만 보더라도 트란스트뢰메르는 이미지 구사의 귀재, 혹은 비유적 언어구사의 마술사임을 알 수 있다.
초기 작품에서 스웨덴 자연시의 전통을 보여주었던 그는 그 후 더 개인적이고 개방적이며 관대해졌다. 그리고 세상을 높은 곳에서 신비적 관점으로 바라보며, 자연 세계를 세밀하고 예리한 초점으로 묘사하는 그를 스웨덴에서는 '말똥가리 시인'이라고 부른다.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자연환경에 대한 깊은 성찰과 명상을 통해 삶의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서구 현대시의 새로운 길을 연 스웨덴의 국민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그는 정치적 다툼의 지역보다는 북극의 얼음이 해빙하는 곳, 또는 난류와 한류가 만나는 화해와 포용의 지역으로 독자들을 데리고 간다. 그리고 북구의 투명한 얼음과 끝없는 심연과 영원한 침묵 속에서 시인은 세상을 관조하며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보편적 우주를 창조해냈다.
50여 년에 걸친 시작 활동을 통해 그가 발표한 시의 총 편수는 200편이 채 안 된다. 평균 잡아 일 년에 네댓 편 정도의 시를 쓴 ‘과묵한’ 시인인 셈이다. 이러한 시작(詩作) 과정을 통하여 그가 보여준 일관된 모습은 차분하고 조용하게, 결코 서두름 없이, 또 시류에 흔들림 없이, 꾸준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고요한 깊이의 시 혹은 ‘침묵과 심연의 시’를 생산하는 것이었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2015년 3월 26일, 8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90년대부터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다 끝내 2011년 수상의 영예를 안은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1996년 폴란드의 비수아바 심보르스카 이후 15년 만에 탄생한 시인 수상자였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시작 활동과 더불어 심리학자로서 약물 중독자들을 상대로 한 사회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순간에 대한 강렬한 집중을 통하여 신비와 경이의 시적 공간을 구축하면서 우리들의 비루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그의 시는 말똥가리처럼 세상을 높은 지점에서 일종의 신비주의적 차원에서 바라보되, 지상의 자연세계의 자질구레한 세목들에 날카로운 초점을 맞춘다. 전통과 현대, 그리고 예술과 인생의 빛나는 종합을 성취하였으며 자연과 초월과 음악과 시를 사랑하는 시인의 작품을 통해 심연으로 치솟기, 혹은 홀로 깊어 열리는 시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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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린데그렌과 1940년대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현대의 초현실주의뿐만 아니라 바로크 시대의 고전적인 형식 및 시와의 대비 및 암시로 가득 차 있다. 그가 사용하는 시적 이미지는 자연에 대한 관찰력을 담고 있는 동시에 문체를 지극히 단순화시키면서도 그 의미를 풍부하게 전달하고 있다.
첫 시집인 〈17편의 시 17 dikter〉(1954)에서 그는 스톡홀름 앞바다의 다도해를 보고 받은 인상을 우주적인 관점에서 표현하고 있고 〈길 위의 비밀 Hemligheter påvägen〉(1958)은 여행에서 받은 인상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철저한 심상주의적 문체에도 불구하고 트란스트뢰메르는 여전히 자연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1966년까지 소년범들을 수용하는 록스투나 소년원에서 임상심리 의사로 근무했고, 헝가리와 미국의 시를 번역했으며, 1966년에 벨만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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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출간된 그의 책은 <기억이 나를 본다>가 유일하다.
<기억이 나를 본다>는 2004년 출간된 시선집으로 ‘오늘의 세계 시인’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사과나무, 벚나무, 호수, 잔디밭, 햇볕, 얼음, 눈, 붉은 벽돌집 등 시에 등장하는 소재만으로도 북유럽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스웨덴의 차갑고 투명하며 깨끗한 자연 속에서 그는 우리가 모두 공감하는 보편적 우주를 창조해 냈다.
고은 시인이 책임∙편집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소곡小曲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좀처럼 가지 않는 어두운 숲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죽은 자와 산
자가 자리바꿈하는 날이 오리라. 숲은 움직이게 되리라. 우리에겐
희망이 없지 않다. 많은 경찰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장 심각한
범죄들은 미결로 남으리라. 마찬가지로 우리 삶의 어딘가엔 미결
의 위대한 사랑이 있는 것이다. 나는 어두운 숲을 물려받았지만 오
늘은 다른 숲, 밝은 숲을 걷는다. 노래하고 꿈틀대고 꼬리 흔들고
기는 모든 생명들! 봄이 왔고 공기가 무척 강렬하다. 나는 망각의
대학을 졸업하였고, 빨랫줄 위의 셔츠처럼 빈 손이다.
기억이 나를 본다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엔 너무 이르고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
밖에 나가야겠다 녹음이
기억으로 무성하다, 눈 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
새 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1979년 삼월에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말로, 언어는 없고 말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지겨워
눈 덮인 섬을 향한다.
야성은 말이 없다.
쓰여지지 않은 페이지들이 사방팔방 펼쳐져 있다!
눈 속에 순록馴鹿의 발자국을 만난다.
언어, 말 없는 언어.
검은 엽서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1
달력이 꽉 채워지고, 미래를 알 수 없다.
케이블이 국적 없는 포크송을 흥얼댄다.
납빛 고요의 바다에 강설降雪, 그림자들이
부두에서 씨름하고 있다.
2
생의 한가운데서 죽음이 찾아와
몸의 치수를 잰다. 방문은
잊혀지고 삶이 계속된다. 하지만 침묵 속에
옷이 재봉되고 있다.
불꽃 메모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암울한 몇 개월 동안, 내 삶은 당신과 사랑을 나눌 때만 불타올랐다.
개똥벌레가 점화되고 꺼지고, 점화되고 꺼지듯이, 밤의 어둠 속
올리브나무 숲 속에서 눈여겨보면
개똥벌레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다.
암울한 몇 개월 동안, 영혼은 움츠러들고 망가진 채 앉아 있었다.
하지만 육신은 당신을 향한 자신 통로를 택하였다.
밤하늘들이 울부짖었다.
우리는 우주의 젖을 훔쳐먹고 연명하였다.
서곡(序曲)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깨어남은 꿈으로부터의 낙하산 강하.
수막히는 소용돌이에서 자유를 얻은 여행자는
아침의 녹색 지도 쪽으로 하강한다.
사물들이 확 불붙는다. 퍼덕이는 종달새의 시점에서
여행자는 거대한 뿌리 체계를,
지하의 상들리에 가지들을 본다.
그러나 땅 위엔 녹음,
열대성 홍수를 이룬 초목들이 팔을 치켜들고
보이지 않는 펌프의 박자에 귀 기울린다.
여행자는 여름 쪽으로 하강하고,
여름의 눈부신 분화구 속으로 낙하하고,
태양의 터빈 아래 떨고 있는
습기 찬 녹색 시대들의 수갱(竪坑) 속으로 낙하한다.
시간의 눈 깜빡임을 관통하는
수직 낙하 여행이 이제 멈추고,
날개가 펼쳐져
밀려드는 파도 위 물수리의 미끄러짐이 된다.
청동기시대 트럼펫의
무법의 선율이
바닥 없는 심연 위에 부동(不動)으로 걸려 있다.
햇볕에 따뜻해진 돌을 손이 움켜잡듯,
하루의 처음 몇 시간 동안 의식은 세계를 움켜잡을 수 있다.
여행자가 나무 아래 서 있다.
죽음의 소용돌이를 통과하는 돌진 후,
빛의 거대한 낙하산이 여행자의 머리 위로 펼쳐질 것인가?
/번역 이경수
동요받은 명상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밤의 어둠 속, 아무것도 갈지 않으면서
폭풍이 풍차의 날개를 사납게 돌린다.
동일한 법칙에 따라 그대는 잠깨어 있다.
회색의 상어 배(服)가 그대의 가냘픈 램프.
형체 없는 기억들이 바다 바닥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낯선 조상(彫像)으로 굳어진다.
해조가 들러붙어 그대의 노걸이는 녹색.
바다로 가는 자가 돌이 되어 돌아온다.
돌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우리가 던진 돌들이 유리처럼 선명하게
세월 속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골짜기엔
순간의 혼란된 행위들이
나무 꼭대기에서 꼭대기로
날카롭게 소리치며 날아간다. 현재보다
희박한 대기 속에서 입을 다문 돌들이
산꼭대기에서 꼭대기로
제비처럼 미끄러져,
마침내 존재의 변경(邊境) 지대
머나먼 고원에 이른다. 그곳에서
우리의 모든 행위들이
유리처럼 선명하게 떨어진다.
바로 우리들 자신
내면의 바닥으로.
사물의 맥락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저 잿빛 나무를 보라. 하늘이
나무의 섬유질 속을 달려 땅에 닿았다.
땅이 하늘을 배불리 마셨을 때, 남는 건
찌그러진 구름 한 장뿐. 도둑맞은 공간이
비틀려 주름잡히고, 꼬이고 엮어져
푸른 초목이 된다. 자유의 짧은 순간들이
우리 내부에서 일어나,
운명의 여신들을 뚫고 그 너머로 선회한다.
아침의 입장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태양 선장, 검은 등갈매기가 항로를 잡는다.
갈매기 아래로는 넓은 물,
물 속의 다채색(多彩色) 돌처럼
세상은 아직 잠들어 있다.
해독되지 않은 하루, 하루들.
아즈텍 상형문자 같은!
나는 음악의 고블랭 비단
덫에 걸려, 팔을 치켜들고
서 있다. 원시 예술에 나오는
인물처럼.
자정의 전환점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소리없이 움직임 없이 숲 속의 개미가
공(空)을 들여다본다. 들리는 것은 오직
어두운 나뭇잎 똑딱이는 소리, 여름 협곡 깊은 곳
밤의 웅얼거림뿐.
가문비나무가 긴 시계바늘처럼 뾰족
가리킨다. 산그늘 속에서 개미가 반짝 빛난다.
새 한 마리의 외침! 이윽고, 구름 마차가 천천히
구르기 시작한다.
에필로그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십이월. 스웨덴은 해변에 정박한
삭구(索具)를 뗀 배. 황혼의 하늘을 배경으로
돛대가 날카롭다. 황혼이 낮보다
오래 지속되고, 이곳의 길은 돌투성이.
정오가 지나야 빛이 도착하고,
겨울의 콜로세움이 비현실적인 구름의
빛을 받아 솟아오른다. 즉각
흰 연기가 마을에서 구불구불
치솟는다. 구름이 높고 또 높다.
바다는 다른 무엇에 귀 기울이는 듯 흐트러진 모습으로,
하늘나무의 뿌리에 코를 대고 킁킁거린다.
(영혼의 어두운 면 위로
새 한 마리 날아들어, 잠든 자들을
울음으로 깨운다. 굴절 만원경이
몸을 돌려, 다른 시간을 불러들인다.
때는 여름이다. 산들이 빛으로 부풀어
포효하고, 시냇물이 투명한 손으로
태양의 광휘를 들어올린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사라진다.
영사기의 필름이 다 돌아갔을 때처럼.)
저녁별이 구름 사이로 불탄다.
집들, 나무들, 울타리들이
어둠의 소리없는 눈사태 속에 확대된다.
별 아래 또 다른 숨겨진 풍경이
자꾸자꾸 모습을 드러낸다. 밤의 엑스선에 비친
등고선의 삶을 사는 비밀의 풍경들,
그림자 하나가 집들 사이로 썰매를 끈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다.
저녁 여섯시, 바람이
일단의 기병대처럼 어둠 속 마음의 길거리를 따라
천둥처럼 질주한다. 검은 소동이 어찌나
반향하고 메아리치는지! 집들이 꿈속의 소동처럼
부동(不動)의 춤을 추며 덫에 걸려 있다. 강풍 위에
강풍이 만(灣) 위를 비틀거리면서, 어둠 속에서
머리를 까딱거리는 난바다 쪽으로 빠져나간다.
우주공간에서 별들이 필사적인 신호를 보낸다.
별들은 영혼 속을 배회하는
과거의 구름들처럼, 자신이 빛을 가릴 때에만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곤두박이
구름들에 의해 명멸한다. 마구간 벽을
지나면서 나는 그 모든 소음 속에서
병든 말이 안에서 터벅터벅 걷는 소리를 듣는다.
이제 폭풍이 자리를 뜬다. 부서진 대문이
쾅쾅 소리를 내고, 램프가 손에서
대롱거리고, 산 위의 짐승이 겁에 질려
울부짖는다.폭풍이 퇴각하면서
외양간 지붕 위에 천둥이 구르고,
전화선들이 포효하고, 지붕 위의
타일들이 날카로운 휘파람을 불고,
나무들이 속절없이 머리를 까딱거린다.
백파이프 소리가 울려 퍼진다!
백파이프 소리가 길을 걷는다! 해방자들의
행렬! 숲의 행진!
활 같은 파도가 들끓고, 어둠이 꿈틀대고,
수륙(水陸)이 움직인다. 갑판 밑으로 사라져
죽은 자들, 그들이 우리와 자리를 함께 한다.
우리와 함께 길을 걷는다. 항해는, 야성의 돌진이 아니고
고요한 안전을 가져다주는 여행.
세계가 끊임없이 텐트를 새롭게
친다. 어느 여름날 바람이 상수리 나무 장비를
움켜잡고, 지구를 앞으로 민다.
백합이 연못의 포옹 속에서, 날아가는 연못의 포옹 속에서
감추어진 물갈퀴로 헤엄친다.
표석(漂石)이 우주의 홀에서 굴러내린다.
여름날 황혼에 섬들이 수평선 위로
솟아오른다. 옛 마을들이 길을 간다.
까치소리 내는 계절의 바퀴를 타고
숲 속 깊숙한 곳으로 퇴각한다.
한 해가 자기 부츠를 벗어던지고
태양이 높이 솟아오를 때, 나무들은 잎사귀로
피어나 바람을 받고 자유의 항해를 떠난다.
산 아래 솔숲 파도가 부서지지만,
여름의 깊고 따뜻한 큰 파도가 오고,
큰 파도가 천천히 나무 꼭대기들 사이를 흐르고, 일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가라앉는다.
남는 건 잎사귀 없는 해안뿐. 결국,
성령(聖靈)은 나일강 같은 것, 여러 시대의
텍스트들이 궁리한 리듬에 따라
넘치고 가라앉는다.
하지만 신(神)은 또한 불변의 존재이고,
따라서 이곳에선 좀처럼 관찰되지 않는다. 신은
옆구리로부터 행렬의 진로를 가로지른다.
기선(氣船)이 안개 속을 통과할 때
안개가 알아채지 못하듯. 정적.
등불의 희미한 깜빡거림이 그 신호.
고독한 스웨덴의 집들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뒤엉킨 검은 가문비나무와
연기 뿜는 달빛.
이곳에 나지막이 엎드린 작은 집이 있고
한 점 삶의 기미도 없다.
이윽고 아침 이슬이 웅얼거리고
노인이 떨리는 손으로
창문을 열어
올빼미를 내보낼 때까지.
멀리 떨어진 곳에는 새 건물이
김을 내뿜으며 서 있고,
세탁소의 나비가
모퉁이에서 퍼드덕거린다.
죽어가는 숲의 한가운데서
퍼덕이는 나비, 그곳에서 썩어가는 것이
수액(樹液)의 안경을 통해
나무껍질 뚫는 기계의 작업을 읽는다.
짖어대는 개 위로
삼단 같은 머리결의 비 또는
한 점 고독한 천둥구름을 동반한 여름이 있고,
씨앗이 땅 속에서 발길질하고 있다.
흔들리는 목소리들, 얼굴들이
황야의 먼 거리를 가로질러
발육부진의 잽싼 날갯짓으로
전화선 속을 날아간다.
강 속에 있는 섬 위의 집이
자신의 초석(礎石)을 골똘히 생각한다.
끊이지 않는 연기, 누군가가
숲의 비밀문서를 태우고 있다.
비가 하늘을 선회하고
불빛이 강 속에서 사리를 튼다.
비탈 위의 집들이
폭포의 흰색 황소들을 감독한다.
일단의 찌르레기 무리를 거느린 가을이
새벽을 저지하고,
사람들이 불 켜진 극장에서
굳은 동작으로 움직인다.
이들이 경보(警報)없이
위장한 날개들을 느끼고,
어둠 속에 사리를 튼
신(神)의 에너지를 느끼게 하라.
지붕 위의 노랫소리에 잠깬 사람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아침, 오월의 비. 도시는 산 속의 작은 마을처럼
아직도 조용하다. 길거리들도 조용하다.
하늘에는 청록색 비행기 엔진 소리.
창문이 열려 있다.
엎드려 누워 잠자던 사람의 꿈이
순간 투명해진다. 그는 몸을 뒤척이며
관심의 악기들을 찾아 더듬기 시작한다.
거의 공중에서.
기상도(氣象圖)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시월 바다가 신기루 등지느러미를 달고
차갑게 반짝인다.
아무것도 요트 경기의
백색 현기증을 기억하지 않는다.
어스푸레한 호박(琥珀) 빛이 마을 위를 비추고,
온갖 음향들이 천천히 날아다닌다.
개가 짖는 소리는 정원 위의
대기 중에 그려진 상형문자.
정원에는 노란 과일이 나무를
바보 만들며 제 멋대로 떨어진다.
낮잠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돌들의 성령강림절, 불꽃 튀기는 혀들---
한낮의 시간 동안, 무중력의 도시.
부글거리는 빛 속의 매장, 자물쇠 채워진
영원의 탕탕 주먹소리를 익사시키는 북소리.
독수리가 잠든 자들 위로 솟구치고 또 솟구친다.
물레방아 바퀴가 천둥처럼 돌아가는 곳에서의 잠.
두 눈 가린 말들의 유린.
자물쇠 채워진 영원의 탕탕 주먹소리.
잠든 자들이 폭군의 시계 속 시계추마냥 매달려 있다.
독수리가 태양의 백색 물결 흐름 속을 죽어서 떠내려간다.
라자로의 관 속에서처럼 시간 속에서,
자물쇠 채워진 영원의 탕탕 주먹소리들의 메아리.
길 위의 비밀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한낮의 빛이 잠자는 사람의 얼굴을 강타하였다.
그의 꿈이 더욱 생생해졌지만
그는 잠깨지 않았다.
어둠이 태양의 강렬한
참을성 없는 광선 속을 남들과 더불어
걷는 사람의 얼굴을 강타하였다.
갑자기 억수처럼 어둠이 내렸다.
나는 모든 순간을 담고 있는 방,
나비 박물관 속에 서 있었다.
태양은 이전이나 다름없이 강렬하였다.
태양의 참을성 없는 붓들이 세상을 그리고 있었다.
선로(線路)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새벽 두시. 달빛. 열차가 평원 한가운데 멈추어 섰다.
멀리 시가지의 불빛들이
지평선 위에 차갑게 깜빡인다.
마치 어떤 사람이 너무 깊은 잠 속으로 들어갔을 때,
자기 방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이
그 꿈속에 있었던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듯.
아니면 어떤 사람이 너무 깊은 병 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 사람의 생애 모두가 몇 개의 깜빡이는 점들, 지평선 위
작고 차가운 불씨 때가 되듯.
열차는 완전 부동(不動)으로 서 있다.
새벽 두시, 환한 달빛 속, 별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키리이*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때때로 내 삶은 어둠 속에 눈을 떴다.
마치 내가 투명인간처럼 서 있는 동안
군중들이 어떤 기적을 향하여 맹목과 불안 속에
길거리를 밀고 나가는 듯한 느낌.
어린아이가 제 심장의 무거운 박동소리에
귀 기울리며 두려움 속에 잠이 들듯.
천천히 천천히, 이윽고 아침이 광선을 자물쇠 속으로 집어넣어
어둠의 문이 열릴 때 까지.
*키리리(Kyrie); Kyrie Eleison의 줄임말.
카톨릭에서 미사의 첫머리에 외는 지비송으로,
그리스어로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의 뜻.
발병(發病) 이후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병이 난 소년,
뿔처럼 딱딱한 혀를 가지고
비전 속에 감금되어 있다.
소년은 밀밭 그림 쪽으로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턱을 둘러싼 붕대가 방부 처리를 짐작케 한다.
안경은 잠수부 안경처럼 두툼하다. 어둠 속에 울리는 전화벨처럼
만사가 대답 없이 요란하다.
하지만 소년 뒤의 그림,
그림은 밀밭이 황금 폭풍일지라도 보는 사람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는 한 폭의 풍경화.
청색 해초 같은 하늘과 떠다니느 구름들.
아래쪽 황색 파도 속에는
백색 셔츠가 몇몇 항해하고 있다.
추수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림자를 던지지 않는다.
밀밭 건너 멀리 한 남자가 서 있고, 이쪽을 바라보는 듯,
챙 넓은 모자가 남자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운다.
도움이라도 주려는 양, 남자는 이곳 방 속의 어두운 형체를 관찰하는 모습이다.
자기 몰두의 병약한 소년 뒤에서, 모르는 사이에
그림이 차츰 확대되면서 열리기 시작한다.
그림이 불꽃을 튀기면서 탁탁 소리를 낸다.
소년을 깨우려는 듯, 밀알 하나하나 불타오른다!
밀밭 속의 남자가 사인을 보낸다.
그가 가까이 와 있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여행의 공식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1955년 발칸 반도에서
1
쟁기꾼 뒤의 중얼거리는 목소리들.
쟁기꾼은 둘러보지 않는다. 빈 들판을.
쟁기꾼 뒤의 중얼거리는 목소리들.
하나씩 하나씩 그림자들이 풀려
여름 하늘의 심연 속으로 돌진한다.
2
하늘 아래 네 마리 황소들이 온다.
황소들에겐 자랑스런 기색이 조금도 없다. 양모처럼
두터운 흙, 곤충들의 펜이 긁어댄다.
역병의 회색 알레고리 속에서처럼 야윈,
한 떼의 말들의 소용돌이.
말들에겐 부드러운 구석이 전혀 없다. 태양의 광란.
3
깡마른 개들이 있는, 마구간 냄새 풍기는 마을.
장터 광장의 당(黨) 간부.
백색 가옥들이 있는 마구간 냄새 풍기는 마을.
당 간부의 천국이 그를 수행한다. 천국은
첨탑 내부처럼 높고 협소하다.
산허리의 날개 끄는 마을.
4
한 고가(古家)가 이마를 불쑥 내밀었다.
두 소년이 황혼 속에 공차기를 한다.
한 무리의 신속한 메아리들. 갑작스런, 별빛.
5
긴 어둠 속의 길 위, 내 손목시계가
시간의 감금된 곤충과 더불어 완고히 빛을 발한다.
붐비는 차칸 속의 정적이 조밀하다.
어둠 속에 초원들이 흘러 지나간다.
하지만 작가는 반쯤 자신의 이미지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동시에 독수리 겸 두더지 되어 길을 간다.
커플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그들이 불을 끄자 불빛의 흰 그림자가
어둠의 유리잔 속 알약처럼
잠시 깜빡거리다 용해된다. 다음은 상승.
호텔 벽들이 하늘의 어둠 속으로 치솟는다.
사랑의 동작이 잦아들고, 그들은 잠이 든다.
하지만 그들의 가장 내밀한 생각들은 만난다.
학교 다니는 아이가 그림 그릴 때 젖은 종이 위에서
두 색채가 만나 서로서로의 속으로 흘러들 때처럼.
어둠고 조용하다. 그러나 불 꺼진 창들과 더불어
도시가 오늘밤 더 가까이 다가왔다. 집들이 다가왔다.
집들이 무리지어 가까이 서서 기다린다.
표정 없는 얼굴의 군중들.
나무와 하늘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비속의 나무 한 그루가 이리저리 거닐고 있다.
우리를 지나 쏟아지는 잿빛 속으로 질주한다.
나무에겐 해야 할 일이 있다 과수원의 지빠귀처럼
나무는 빗속에서 생명을 거두어들인다.
비가 멈추자 나무도 멈춘다.
나무는 맑은 밤 조용히 서서
천지사방 눈송이 꽃피어나는 그 순간을
꼭 우리들처럼 기다린다.
얼굴을 맞대고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이월엔 삶이 정지했다.
새들은 마지못해 날갯짓하였고,
보트가 제 묶어 있는 부두에 몸 비비듯
영혼은 풍경에다 몸을 비벼댔다.
나무들은 나에게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깊이 싸인 눈은 죽은 밀집으로 측정되었고,
발자국들은 바깥 언 땅 위에서 늙어갔다.
방수모(防水帽) 밑에서 언어가 시들어갔다.
어느 날 무언가가 창으로 다가왔다.
잎이 떨어졌고, 나는 쳐다보았다.
색채들이 화르르 타오르고, 만물이 회전했다.
땅과 나는 서로서로를 향하여 튀어올랐다.
종소리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종소리가 울리고 개똥지빠귀가
사자(死者)들의 뼈 위에서 노래를 날렸다.
우리는 나무아래 서서
시간이 가라앉고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두 강물이 바다에서 만나듯,
교회 묘지와 학교 운동장이 서로 만나
상대방 속으로 확대되어 들어갔다.
교회의 종소리는 부드러운 활공기 지레장치에 실려
사방팔방으로 솟아올랐다.
종소리가 떠나고 뒤에 남는 것은
더욱 거대해진 땅 위의 정적,
그리고 한 그루 나무의 소리없는 발걸음,
소리없는 발걸음.
정오의 해빙(解氷)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아침 공기가 타오르는 우표를 붙인 자기 편지를 배달했다.
눈(雪)이 빛났고, 모든 짐들이 가벼워졌다.
일 킬로그램은 칠백 그램밖에 나가지 않았다.
태양이 빙판 위로 높이 솟아, 따뜻하면서도 추운 지점을 배회했다.
마치 유모차를 밀듯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나왔다.
가족들이 밖으로나왔고, 수세기만에 처음인 듯 탁 트인 하늘을 보았다.
우리는 마음을 아주 사로잡는 이야기의 첫 장(章)에 자리하고 있었다.
꿀벌 위의 꽃가루처럼 모피모자마다 햇살이 달라붙었고,
햇살은 겨울이라는 이름에 달라붙어,
겨울이 떠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눈 위의 통나무 정물화가 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나는 물었다.
'내 유년 시절까지 따라올래?' 통나무들은 대답했다.'응'
잡목 덤불 속에는 새로운 언어로 중얼거리는 말들이 있었다.
모음은 푸른 하늘, 자음은 검은 잔가지들,
그리고 건네는 말들은 눈 위에 부드러웠다.
하지만 소음의 스커트 자락으로 예(禮)를 갖춰 인사하는 제트기가
땅위의 정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헤엄치는 검은 형체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사하라 사막 바위 위
선사시대의한 그림에 대하여.
검은 형체 하나가 젊은
옛 강물 속에서 헤엄치고 있다.
무기도 전략도 없이,
휴식도 질주도 없이,
제 그림자에 잘려 나가
강의 바닥을 미끄러진다.
검은 형체는 잠자는 녹색 그림을
벗어나, 마침내
강기슭에 닿아
제 그림자와 하나 되려 애썼다.
비가(悲歌)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그가 펜을 치웠다.
펜이 탁자 위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펜이 텅 빈 방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그가 펜을 치웠다.
쓸 수도 침묵할 수도 없는 일들이 이토록 많다니!
멋진 여행 가방이 심장처럼 고동치지만,
그의 몸은 먼 곳에서 일어나는 무슨 일로 뻣뻣해진다.
밖은 초여름.
초목에서 들려오는 휘파람소리, 사람인가,새인가?
꽃핀 벚나무가 집에 돌아온 짐차를 껴안는다.
몇 주가 지나간다.
밤이 서서히 다가온다.
나방들이 창유리에 자리잡는다.
세상이 보내온 조그만 창백한 전보들
알레그로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검은 하루가 끝나고, 하이든을 연주한다.
손 안에 얼마간의 온기가 느껴진다.
건반들이 흔쾌한 태도이고, 부드러운 망치들이 친다.
울리는 소리는 초록색, 생생하고 차분하다.
자유는 존재한다고, 황제에게 세금 내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고 음악은 말한다.
하이든 포켓에 손을 쑤셔넣고
세상을 차분히 바라보는 사람을 모방한다.
하이든 기(旗)를 내건다. '우리는 굴복하지 않는다,
평화를 원한다'고 깃발은 말한다.
음악은, 돌이 날고 돌이 구르는
비탈 위의 유리 집.
돌이 곧바로 집으로 굴러들지만
창유리 하나하나 모두 건재하다.
미완의 천국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절망이 제 가던 길을 멈춘다.
고통이 제 가던 길을 멈춘다.
독수리가 제 비행을 멈춘다.
열망의 빛이 흘러나오고,
유령들까지 한 잔 들이킨다.
빙하시대 스튜디오의 붉은 짐승들,
우리 그림들이 대낮의 빛을 바라본다.
만물이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한다.
우리는 수백씩 무리지어 햇빛 속으로 나간다.
우리들 각자는 만인을 위한 방으로 통하는
반쯤 열린 문.
발밑엔 무한의 벌판.
나무들 사이로 물이 번쩍인다.
호수는 땅 속으로 통하는 창(窓).
야상곡(夜想曲)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밤중에 차를 몰고 마을을 지난다. 헤드라이트 불빛 속에
집들이 일어선다. 집들이 잠 깨어 마실 것을 찾는다.
집들, 곳간들, 표지판들, 버려진 차들, 지금이 바로
이들이 생명의 옷으로 갈아입는 때이다. 사람들은 잠들어 있다.
어떤 사람들은 평화의 잠을 자고, 어떤 사람들은
영원을 위한 고된 훈련 중인 듯 얼글을 찡그린다.
이들은 깊은 잠 속에서도 놓여나지 못하고,
신비가 지나갈 때 아래로 내려진 건널목 차단기 같은 휴식을 취하고 있다.
마을 바깥으로는 멀리 숲 속으로 길이 뻗어 있다.
나무들, 서로서로 한마음으로 침묵을 지키는 나무들.
이들의 색깔은 불붙은 나무들처럼, 연극색!
잎사귀 하나하나가 어찌나 또렷한지! 나무들은 바로 집까지 따라온다.
잠자리에 드러눕는다. 눈꺼풀 너머로 어둠의 벽 위에
알 수 없는 그림들과 알 수 없는 기호들이 휘갈겨진다.
깨어 있음과 꿈 간의 작은 틈새로
커다란 편지가 밀고 들어오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겨울밤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폭풍이 집에 입을 갖다대고
불어서 음악을 만든다.
나는 불편한 잠을 자다 돌아누워, 감은 눈으로
폭풍의 텍스트를 읽는다.
하지만 아이의 두 눈은 어둠 속에 동그랗다.
아이에게는 폭풍이 울부짖는다.
아이와 폭풍은 둘 다 흔들리는 램프를 좋아한다.
둘 다 말이 어눌하다.
폭풍은 아이 같은 손과 날개를 가졌다.
카라반 호(號)가 라플란드 쪽으로 치닫고,
가지 손톱의 별무리기가 벽을
꼭 움켜잡는 것을 집은 느낀다.
우리 층에서는 밤이 고요하다.
이곳은 기한 끝난 발자국들이 모두
연못 속에 가라앉은 잎사귀처럼 쉬고 있지만.
바깥에서는 밤이 야성적이다.
세계 위로는 더한 폭풍이 지나간다.
우리 영혼에 입을 갖다대고
불어서 음악을 만든다 폭풍이
우리를 텅 비게 불어 버릴까 두렵다.
아프리카 일기 중에서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1963년)
콩고의 장터 예술가의 그림 속에서
사람들은 곤충처럼 조그맣게 움직인다. 인간의 에너지를 빼앗긴 듯.
두 가지 생활양식 간의 힘든 길.
도달한 자는 먼길을 가야만 한다.
한 아프리카 청년이 오두막 사이에서 길 잃은 외국인을 발견했다.
청년은 친구로 여겨야 할지 협박 대상으로 여겨야 할지 결정할 수 없었다.
이것이 청년을 당혹케 했다. 둘은 혼란 속에 헤어졌다.
유럽 사람들은 마치 엄마라도 되는 양 차 둘레에 주렁주렁 매달린다.
매미는 전기면도기만큼 강하다. 차들이 돌아간다.
머잖아 아름다운 어둠이 오고, 불결한 빨랫감을 떠맡는다.
잠.
도달한 자는 먼길을 가야만 한다.
어쩌면 철새 무리 같은 악수가 도움될지 모른다.
어쩌면 진리를 책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도움될지 모른다.
우리는 더 멀리 가야만 한다.
학생이 밤중에 책을 읽는다.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읽고 또 읽는다.
시험이 끝나면 학생은 다음 사람을 위한 계단이 된다.
힘든 길.
도달한 자는 먼길을 가야만 한다.
겨울의 공식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1
침대 속에서 잠들었고
용골(龍骨) 아래서 잠깨었다.
새벽 네시.
살을 깨끗이 발라낸 삶의 뼈들이
차갑게 상호 교제한다.
제비들 속에서 잠들었고
독수리들 속에서 잠깨었다.
2
램프불빛 아래 길 위의 얼음이
돼지기름처럼 빛난다.
이곳은 아프리카가 아니다.
이곳은 유럽이 아니다.
이곳은 '이곳'이외의 어느 곳도 아니다.
그리고 '나'였던 것은
십이월 어둠의 입 속에서
한 마디 말에 불과할 뿐.
3
어둠 속에 모습을 드러낸
병원 가건물이
텔레비전 화면처럼 빛난다.
큰 추위 속에
감추어진 소리굽쇠가
음(音)을 내보낸다.
나는 별이 총총한
아늘 아래 서서
세계가 내 코트 안팎을
개미집처럼 들락거리는 것을 느낀다.
4
눈(雪) 밖으로 튀어나온 검은 상수리나무 세 그루.
투박한 거구지만, 민첩한 손가락을 가졌다.
넉넉한 나무 병(甁)들로부터 봄이면
초록 거품 터지리라.
5
버스가 겨울 저녁을 뚫고 기어간다.
좁고 깊은 죽은 운하 같은 가문비나무 숲길에서
버스가 배처럼 깜빡거린다.
몇 안 되는 승객, 몇 안 되는 노인, 몇은 아주 젊은이.
만일 버스가 멈추어 불을 끈다면
세계가 삭제되리라.
아침 새들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차를 깨운다.
꽃가루가 바람막이 유리를 뒤덮는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다.
새의 노래가 어두워진다.
그 동안 누군가 열차역에서
신문을 산다.
멀지 않은 곳에 큰 화물차가
온통 붉은 녹을 뒤집어쓰고
햇빛 속에 빛난다.
어디에도 빈 데는 없다.
몸의 온기 속으로 서늘한 복도가 뚫려 있다.
한 남자가 서둘러 달려와
위층 상사의 사무실에서
모함받은 이야기를 한다.
풍경의 뒷문에서
까치가 날아든다
검은색 흰색의 까치, 헬*의 새.
검은지빠귀가 이리저리 날아다녀
빨랫줄 위의 흰 빨래만 빼고
마침내 풍경 전체가 한 폭 목탄화가 된다.
이것은 팔레스트리나**합창단.
어디에도 빈 데는 없다.
내 자신이 작아지는 동안
시가 커지는 환상적인 느낌.
시가 자라고, 내 자리를 차지하고,
나를 밀어낸다.
나를 둥지 밖으로 팽개친다.
시가 완성되었다.
*헬(Hel): 북유럽 신회에서 죽음의 여신.
**팔레스트리나(Palestrina): 16세기 이탈리아의 교회음악 작곡가.
역사에 대하여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1
삼월 어느 날 바다로 내려가 귀 기울인다.
얼음이 하늘처럼 푸르다. 태양 아래 부서지고 있다.
태양이 얼음 밑의 마이크에 대고 속삭인다.
거품이 일고 부글부글 들끓는다. 멀리서 시트를 잡아채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이 모든 것이 '역사'와 같다 우리들의 '지금'. 우리들은 그 속으로 내려가 귀 기울인다.
2
회담들은 불안하게 날아다니는 섬들.
나중엔, 타협의 기나긴 흔들리는 다리.
모든 차량이 그 다리 위를 지나간다. 별들 아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창백한 얼굴들 아래,
쌀알처럼 이름 없이 텅빈 공간에 내동댕이쳐진 얼굴들 아래.
3
1926년, 괴테는 지드로 변장하고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모든 것을 보았다.
어떤 얼굴들은 사후에 본 것으로 하여 더욱 분명해진다.
알제리 소식이 나날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올 때
큰 저택 한 채가 보이고, 저택의 창들은 하나만 빼고
모두 검었다. 그 창에서 우리는 그레퓌스의 얼굴을 보았다.
4
급진과 반동은 불행한 결혼 속에 동거한다.
서로를 갉아먹으면서, 서로에게 기대면서.
하지만 그 자식들인 우리는 우리들 자신의 길을 찾아야만 한다.
모든 문제는 자신의 언어로 소리치는 법!
진실의 흔적을 따라 탐정처럼 길을 가라.
5
건물에서 멀지 않은 공터에
신문지 한 장이 몇 달째 누워 있다. 사건을 가득 담고
빗속 햇빛 속에 밤이나 낮이나 신문은 그곳에서 늙어간다.
식물이 되어가는 중이고, 배추가 머리가 되어가는 중이고, 땅과 하나 되어가는 중이다.
옛 기억이 서서히 당신 자신이 되듯.
어떤 죽음 이후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한때 충격이 있었다.
뒤에는 긴 창백한 깜빡이는 혜성 꼬리.
그것은 우리를 집안에 묶어둔다. 그것은 TV 화면을 흐리게 한다,
그것은 전화선 위에 차가운 물방울로 내려 앉는다.
지난해의 잎새들이 몇몇 매달려 있는 관목 숲에서
아직도 우리는 겨울 태양 아래 천천히 스키를 즐길 수 있다.
잎새들은 오래된 전호번호부에서 뜯겨져 나온 책자 같다.
사람들의 이름은 추위가 삼켜버렸다.
아직도 심장 고동소리를 듣는 것은 아름답다.
하지만 대로 그림자가 몸보다 더 실재(實在)일 때가 있다.
검은 용비늘 갑옷 옆에서
사무라이는 조그맣게 보인다.
여름 초원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너무 많은 것들을 우리는 보아야만 했다.
현실은 우리를 너무 많이 닮게 했다.
하지만 마침내 여름이다.
커다란 비행장, 관계사가 한 짐 한 짐
짐을 부려 놓는다.
얼어붙은 외계인들.
풀과 꽃들의 나라, 우리가 착륙하는 곳.
풀 나라엔 초록 감독이 있고,
그에게 나를 신고한다.
압력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푸른 하늘에서 귀청 찢는 엔진 소리.
모든 것이 떨리는 공사장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돌연 대양의 심연이 열릴 수도 있는 곳.
조가비와 전화기가 뒤엉켜 소리 내는 곳.
옆으로 잽싸게 보면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빽빽한 곡식 들판의 다채로움이 황색 강으로 흘러간다.
머리 속의 불안한 그림자들이 그곳에 가고 싶어한다.
곡식알 속으로 기어들어 자기도 황금색이 되고 싶다.
어둠이 내린다. 한 밤중에 잠자리에 든다.
작은 배가 큰 배에서 떨어져 나온다.
물 위의 홀로움.
사회의 검은 선체가 멀리멀리 흘러간다.
열린 공간 닫힌 공간 /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장갑같은 일을 통해 사람은 세상을 느낀다.
한낮에 잠시 장갑을 벗어 선반 위에 올려놓고 쉰다.
장갑은 선반에서 갑자기 자라고 펼쳐지고,
집 전체를 안으로부터 검게 만든다.
검어진 집이 떨어져 나가 봄바람 속에 선다.
'사면(赦免)이야' 속삭임이 풀밭을 달린다. '사면이야.'
한 소년이 하늘로 비껴 올라가는 투명한 줄을 잡고 내닫는다.
소년의 야성적인 미래의 꿈이 하늘에서 교외보다 더 큰 연과 더불어 난다.
꼭대기에서 보면 더 북쪽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소나무 숲의 푸른 융단.
구름 그림자가
가만히 서 있다.
아니, 날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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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나를 본다
토머스 트란스트뢰메르
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엔 너무 이르고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
밖에 나가야겠다. 녹음이
기억으로 무성하다, 눈 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
새 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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