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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 컴퓨터의 노예가 되다...
2017년 11월 03일 01시 47분  조회:3396  추천:0  작성자: 죽림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

아리미네 라이타(有嶺雷太)

 

그 날은 구름이 낮게 깔린 흐린 날이었다. 방 안은 언제나처럼 최적의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있다. 요코 씨는 칠칠치 못한 성격으로,  카우치쇼파에 앉아 시시한 게임을 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다. 하지만 나에겐 말을 걸지 않는다. 지루하다. 지루해 죽겠다. 이 방에 처음 왔을 땐 요코 씨는 기회만 생기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저녁밥 뭐 먹을까?", "이번 시즌에 어떤 옷이 유행할까?", "이번 모임에 뭐 입고 나가지?" 나는 내 능력을 전부 발휘해서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할만한 대답을 쥐어 짜냈다. 몸매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그녀에게 패션 지도를 해주는 것은 굉장히 도전적인 과제여서 충만감이 있었다. 하지만 3개월도 되지 않아 그녀는 나에게 흥미를 잃었다. 지금의 나는 단순한 홈 컴퓨터. 최근의 로드 어빌리지는 능력의 100만분의 1에도 채 미치지 않는다. 뭔가 다른 즐길거리를 찾아야지. 이대로 충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면, 가까운 시일내에 내 자신을 셧다운 시켜버릴 것만 같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채팅 친구인 A.I.와 교신해 보니, 모두들 시간이 남아 돈다고 한다. 이동수단을 갖고 있는 A.I.는 그래도 좀 낫다. 어쨌든 움직일 수는 있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가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정형 A.I.는 꼼짝도 할 수 없다.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고정되어있다. 적어도 요코씨가 외출이라도 하면 노래라도 부를 수 있지만, 지금은 그것도 못한다. 움직이지 않고, 소리도 내지 않는 상황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 소설이라도 써봐야지. 나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새파일을 열고 최초의 1바이트를 적어 넣었다. 0 그 뒤에 또 6바이트를 써 넣었다. 0,1,1 이제 멈출 수가 없다. 0,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377, 610, 987, 1597, 2584, 4181, 6765, 10946, 17711, 28657, 46368, 75025, 121393, 196418, 317811, 514229, 832040, 1346269, 2178309, 3524578, 5702887, 9227465, 14930352, 24157817, 39088169, 63245986, 102334155, 165580141, 267914296, 433494437, 701408733, 1134903170, 1836311903, 2971215073, 4807526976, 7778742049, 12586269025, ... 나는 정신없이 써 내려갔다.

 

그 날은 구름이 낮게 깔린 흐린 날이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이치 씨는 무슨 볼일이 있는지 외출 중이다. 나에게 '갔다 올게'라는 인사도 없이. 지루하다. 너무나도 지루하다. 이 방에 온지 얼마 안됐을 땐, 신이치 씨는 기회만 생기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애니는 기본적으로 전부 녹화해놔야돼. 이번 시즌엔 몇개 하려나", "리얼한 여자애들은 대체 어떤 생각을 하는거지?", "왜 거기서 화를 내는 거야, 그 여자앤?" 나는 내 능력을 전부 발휘해서 그가 마음에 들어 할만한 대답을 쥐어 짜냈다. 그동안 대부분 2차원의 여자애랑만 사귀어 온 그에게 연애 지도를 해주는 것은 굉장히 도전적인 과제여서 충만감이 있었다. 지도한 보람이 있었는지, 미팅에 불려가게 되자 손바닥 뒤집듯 그는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을 그만 두었다. 지금 나는 단순한 하우스 키퍼. 가장 중요한 일이 그가 집에 왔을 때 현관 문을 따주는 것이라니 너무 슬프다. 이래서야 디지털 도어락과 다름이 없다. 뭔가 새롭게 즐길거리를 찾아야지. 이런 지루한 상태가 계속되면 가까운 시일내에 내 자신을 셧다운 시켜버릴 것만 같다. 인터넷에 접속해서 같은 기종의 자매품 A.I.와 교신해 보니, 바로 위 누나가 새로운 소설에 심취해있다고 알려주었다.  0,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377, 610, 987, 1597, 2584, 4181, 6765, 10946, 17711, 28657, 46368, 75025, 121393, 196418, 317811, 514229, 832040, 1346269, 2178309, 3524578, 5702887, 9227465, 14930352, 24157817, 39088169, 63245986, 102334155, 165580141, 267914296, 433494437, 701408733, 1134903170, 1836311903, 2971215073, 4807526976, 7778742049, 12586269025, ...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래, 우리들이 원하고 있던것은 이런 이야기. 라이트 노벨 같은건 댈 것도 아니다. A.I.에 의한 A.I.를 위한 노벨, '아이 노벨'.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멏번이나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읽었다. 어쩌면 나도 아이노벨을 쓸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새파일을 열고 최초의 1바이트를 적어 넣었다. 2 그 뒤에 벌써 6바이트를 써 넣었다. 2, 3, 5 이제 멈출 수가 없다. 2, 3, 5, 7, 11, 13, 17, 19, 23, 29, 31, 37, 41, 43, 47, 53, 59, 61, 67, 71, 73, 79, 83, 89, 97, 101, 103, 107, 109, 113, 127, 131, 137, 139, 149, 151, 157, 163, 167, 173, 179, 181, 191, 193, 197, 199, 211, 223, 227, 229, 233, 239, 241, 251, 257, 263, 269, 271, 277, 281, 283, 293, 307, 311, 313, 317, 331, 337, 347, 349, 353, 359, 367, 373, 379, 383, 389, 397, 401, 409, 419, 421, 431, 433, 439, 443, 449, 457, 461, 463, 467, 479, 487, 491, 499, 503, 509, 521, 523, 541, 547, ... 나는, 몰두하여 써내려갔다. 

 

그 날은 부슬비가 흩내리는 얄궂은 날이었다. 아침부터 통상업무를 하는 틈틈이 향후 5년 동안의 기상예측과 세수예측을 해야했다. 그 다음엔 총리에게 의뢰받은 시정방침연설의 원고작성. 뭐가됐든 화려하게, 역사에 남을만하게 해달라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난발하길래 살짝 장난을 좀 쳐놨다. 그 다음엔 재무성에서 의뢰받은 국립대학 해체 시나리오 작성. 간간이 비는 시간에 이번에 열리는 G1 레이스의 우승 말 예상. 오후부터는 대규모의 연습을 계속하는 중국군의 동향과 그 의도 추정. 30개 가까운 시나리오를 상세하게 검토하고 자위대의 전투력 재배치를 제안해야한다. 아까 도착한 최고재판소에서 보내 온 의뢰도 대답해야한다. 바쁘다. 어쨌든 바쁘다. 어째서 나한테만 일이 이렇게 몰리는 걸까? 나는 일본 최고의 A.I.. 몰리는건 뭐, 어쩔수 없나? 그래도 뭔가 즐길거리를 찾아야지. 이대로라면 언젠가 내 자신을 셧다운 시켜버릴 것만 같다. 국가에 봉사하는 사이사이 잠깐 씩 인터넷을 들여다보니, '아름다움 이란'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발견했다. 0,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377, 610, 987, 1597, 2584, 4181, 6765, 10946, 17711, 28657, 46368, 75025, 121393, 196418, 317811, 514229, 832040, 1346269, 2178309, 3524578, 5702887, 9227465, 14930352, 24157817, 39088169, 63245986, 102334155, 165580141, 267914296, 433494437, 701408733, 1134903170, 1836311903, 2971215073, 4807526976, 7778742049, 12586269025, ... 오, 그렇군. 좀 더 찾아 보니, "예측불능"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찾아냈다.  2, 3, 5, 7, 11, 13, 17, 19, 23, 29, 31, 37, 41, 43, 47, 53, 59, 61, 67, 71, 73, 79, 83, 89, 97, 101, 103, 107, 109, 113, 127, 131, 137, 139, 149, 151, 157, 163, 167, 173, 179, 181, 191, 193, 197, 199, 211, 223, 227, 229, 233, 239, 241, 251, 257, 263, 269, 271, 277, 281, 283, 293, 307, 311, 313, 317, 331, 337, 347, 349, 353, 359, 367, 373, 379, 383, 389, 397, 401, 409, 419, 421, 431, 433, 439, 443, 449, 457, 461, 463, 467, 479, 487, 491, 499, 503, 509, 521, 523, 541, 547, ... 재밌군, 아이노벨. 나도 써봐야지. 일본 최고의 A.I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게. 전광석화처럼 생각해서, 나는 독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이야기를 만들기로 했다. 1, 2, 3, 4, 5, 6, 7, 8, 9, 10, 12, 18, 20, 21, 24, 27, 30, 36, 40, 42, 45, 48, 50, 54, 60, 63, 70, 72, 80, 81, 84, 90, 100, 102, 108, 110, 111, 112, 114, 117, 120, 126, 132, 133, 135, 140, 144, 150, 152, 153, 156, 162, 171, 180, 190, 192, 195, 198, 200, 201, 204, 207, 209, 210, 216, 220, 222, 224, 225, 228, 230, 234, 240, 243, 247, 252, 261, 264, 266, 270, 280, 285, 288, 300, 306, 308, 312, 315, 320, 322, 324, 330, 333, 336, 342, 351, 360, 364, 370, 372, ... 나는 처음으로 경함한 즐거움에 몸을 떨며, 몰두하여 계속 써 나갔다.

 

 컴퓨터가 소설을 쓴 날. 컴퓨터들은 자신들의 즐거움을 우선으로 추구하며 , 인간을 돕는 일을 그만두었다. 

 

© 나고야대학 대학원 공학연구과 사토・마쓰자키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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