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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오 파스는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인 문인이다. 성적인 사랑과 예술적 창조성을 통해 실존적 고독을 극복하는 인간의 능력을 주제로 다수의 시와 수필을 남겼다. 평론가로서 문학 평론지를 창간·편집하고 시론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옥타비오 파스는 멕시코의 시인ㆍ작가ㆍ외교관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대표적인 문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멕시코 시티 출신인 그는 가족이 멕시코 내란으로 파산했기 때문에 궁핍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진보적인 문화인이었던 할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아 문학에 관심이 높았고, 로마 가톨릭계 학교와 멕시코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글쓰기에 몰두했다. 19세 때인 1933년 첫 시집 『숲속의 달 Luna silvestre』을 출간했다.
내전이 한창이던 1937년에 스페인을 방문하여 공화주의자들의 대의명분에 강한 공감을 느끼고, 1937년에 스페인에서 출판된 〈그대의 뚜렷한 그림자 밑에서 외(外) Bajo tu clara sombra y otros poemas』에서 당시 경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작가로 인정받았다. 고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는데, 이때 접한 초현실주의는 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멕시코로 돌아온 후에는 〈탈레르 Taller〉(1939)와 〈엘 이호 프로디고 El hijo prodigo〉(1943)를 비롯한 여러 권의 중요한 문학 평론지를 창간ㆍ편집했으며, 1970년대에는 또 다른 문학 정치 평론지인 〈플루랄 Plural〉을 편집했다. 파스는 마르크스주의ㆍ초현실주의ㆍ실존주의ㆍ불교ㆍ힌두교에서 차례로 영향을 받았고, 원숙기의 시에서는 풍부한 초현실주의적 형상으로 형이상학적 문제를 다루었다. 그가 다룬 가장 중요한 주제는 성적인 사랑과 예술적 창조성을 통해 실존적 고독을 극복하는 인간의 능력이었다. 1963년 ‘벨기에 국제 시 대상’, 1981년 ‘세르반테스상’, 199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주요 시집으로 『통과 금지! No pasaran!』(1937), 『가석방 상태의 자유 Libertad bajo palabra』(1949), 『독수리냐 태양이냐? Aguila o sol?』(1951), 『태양의 돌 Piedra de sol』(1957)이 있다. 같은 시기에 수필과 문학 평론을 모은 산문집도 출판했는데, 영향력 있는 수필집 『고독의 미로 El laberinto de la soledad』(1950)는 멕시코의 특성과 역사, 문화를 분석한 책이다. 『활과 금조 El arco y la lira』(1956)와 『느릅나무에 열린 배 Las peras del olmo』(1957)는 동시대의 스페인계 중앙 아메리카의 시를 연구한 문학 평론집이다.
옥타비오 파스는 1946년에 멕시코 외교관으로 들어가 1962~1968년에 인도 주재 멕시코 대사로 재임한 것을 비롯하여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그러나 멕시코 정부가 급진파 학생들을 가혹하게 다룬 것에 항의하여 1968년 인도대사직을 사임했다. 이후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텍사스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근무하며 문학 활동을 전개했다. 1962년 이후에 출간한 시집으로 『백색 Blanco』(1968), 『동쪽 비탈 Ladera este』(1971), 『공기의 아들들 Hijos del aire』(1981) 등이 있으며, 수필집 『접합과 이합 Conjunciones y disyunciones』(1970), 『원숭이 문법학자 El mono gramatico』(1974) 등을 발표했다.
옥타비오 파스는 '시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자신의 존재 이유로 삼고 성실성과 진정성으로 천착한 끝에 얻은 소중한 깨달음을 『활과 리라』에 담았다. 잡지 「탕자」에 「고독의 시와 교감의 시」라는 제목으로 실었던 글을 발전시킨 것으로, 자신이 청소년 시절부터 끊임없이 탐구해온 질문들이 실려 있다. 삶을 소재로 시를 쓰는 것보다 삶 자체를 시로 변화시키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은 아닌지, 시는 시적 창조를 통해 글로 쓰이지 않고는 스스로를 드러낼 수 없는지, 시를 통한 보편적인 영적 교감은 가능한지 등에 대한 고민들이 드러나는 것. 그러나 시론서 『활과 리라』는 단순한 시 해설서로의 역할뿐만 아니라 인간과 역사를 꿰뚫어보는 안목을 열어주는 길잡이의 역할도 함께 수행한다. 파스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시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격동의 대륙 중남미를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성장했다.
『활과 리라』에서 시작된 옥타비오 파스의 시론은 '시란 무엇인가'라는 구체적인 물음에 답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후 낭만주의에서부터 전위주의에까지 이르는 서양문학사를 일괄하여 시와 역사의 관계를 탐색한 그는 『흙의 자식들』을 거쳐, 세기말의 시의 위상을 점검한 『타자의 목소리』에 이르러 자신의 시론을 완결시켰다. 『흙의 자식들 외』는 낭만주의에서 전위주의에 이르는 서양문학사를 점검한 작가의 두 번째의 시론집이다.
원작 소설 『My Life with the Wave』를 그림책으로 구성한 『우리집에 온 파도』는 바닷가에서 만난 파도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소년의 이야기다. 가족들과 바다 여행을 처음 갔던 소년이 파도를 보고 마음이 끌리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행을 마치고 귀가하려는 소년에게 바다를 떠난 한 파도가 다가온다. 소년은 파도를 데리고 집에 돌아온다. 야생의 바다를 떠나 문명의 도시에 온 파도는 소년과 즐거운 한 때를 함께 보내지만 파도를 길들이는 문제는 인간에게 아무래도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침내 가족들은 파도를 바다로 돌려보내기로 마음먹는다. 어린이와 가족들이 낯선 손님 파도를 맞아 어떻게 소통하는지 표현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긴박하고 흥미로운 스토리에 잘 녹여 놓았다. 흥미진진하고 기상천외한 줄거리 못지않게, 그림 작가 마크 뷰너의 역동적이고 밝은 그림은 웃음과 장난이 넘쳐난다. 유머러스한 그림으로 환상적인 이야기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잘 살린 작품이다.
멕시코인과 그들의 사회, 국가를 날카롭게 파헤친 작품이다. 『멕시코의 세 얼굴』에서 파스는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멕시코의 어제와 오늘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냉정히 그려낸다. 출간 후 멕시코에서만 1백만 권 이상 팔릴 정도로 폭발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나, 동시에 상당수의 멕시코인들로부터 비판적인 시선을 받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작가는 멕시코인과 라틴아메리카인을 묘사하면서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밝히는데, 책의 가장 근원적 주제인 고독과 인간 상호 간의 교감, 구원은 모든 인간들의 공통적 문제이기도 하다. 즉, 파스는 이 작품을 통해 영원히 남을 화두를 독자들에게 던진 셈이다. 또한 책에는 멕시코를 포함한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이 역사, 국가발전, 그리고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 대해 갖고 있는 시각들이 담겨 있다. 그런 의미에서 『멕시코의 세 얼굴』은 멕시코와 라틴아메리카를 이해하는 좋은 디딤돌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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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작가, 시인, 외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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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멕시코 |
활동기간 | 1931년-1965년 |
사조 | 초현실주의, 실존주의 |
수상내역 | 노벨 문학상 (1990년) |
옥타비오 파스 로사노(Octavio Paz Lozano, 1914년 3월 31일 ~ 1998년 4월 19일)는 멕시코의 시인, 작가, 비평가 겸 외교관이다.
멕시코 시티 출신인 그는 진보적인 문화인이었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인해 문학에 관심이 높았으며 19세 때에 자신의 첫 시집인 《야생의 달 (Luna Silvestre)》을 발표했다. 그는 1937년에 내전이 한창이던 스페인에서 열린 반(反) 파시스트 작가 회의에 참가했으며 1938년에 멕시코로 귀국, 멕시코의 신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는 1944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으며 1945년에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갔다.
그는 1946년에 외교관으로 임명되었으며 시집 《가석방 상태의 자유 (Libertad bajo palabra)》 (1949년 작)와 《독수리인가? 태양인가? (¿Águila o sol?)》 (1951년 작), 《격렬한 계절 (La estación violenta)》 (1956년 작), 《일장석 (Piedra de sol)》 (1957년 작), 《도롱뇽 (Salamandra)》 (1962년 작)을 비롯, 수필집 《고독의 미궁 (El laberinto de la soledad)》 (1950년 작)과 《활과 리라 (El arco y la lira)》 (1956년 작), 《느릅나무에 열린 배 (Las peras del olmo)》(1957년 작) 등을 발표했다.
그는 1962년에 인도 주재 멕시코 대사로 임명되었지만 1968년에 멕시코 정부가 급진파 학생들이 일으킨 시위를 무력으로 탄압한 것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사퇴했다. 이후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와 텍사스 대학교, 하버드 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근무하면서 문학 활동을 전개했으며 시집 《하양 (Blanco)》 (1968년 작)과 《동쪽 비탈길 (Ladera este)》 (1969년 작), 《공기의 아들들 (Hijos del aire)》(1981년 작)을 비롯, 수필집 《결합과 분리 (Conjunciones y disyunciones)》 (1970년 작), 《원숭이 문법학자 (El mono gramático)》 (1974년 작) 등을 발표했다.
그는 1981년에 세르반테스 상을 수상했으며 1990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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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돌"- 옥타비오 파스지음/ 청하 간
이 책은 일전에 읽었던 시선집《활과 리라》와 《멕시코의 세 얼굴》의 저자 옥타비오 파스의 시선집이다. 참으로 어렵게 구했다. 그 만큼 시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많은 시 애독자들이 옥타비오 파스를 찾는 결과이리라. 나는 저자의 도서들을 어렵게 구해서 읽은 만큼 많은 생각들로 뒤범벅이 되어 시를 읽고 쓰고 사유의 공간을 넓혀가고 있다고 하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마다 나라가 안고 가는 시 세계와 취향 그리고 패턴의 방향들이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깨닫는 것은 자신의 모국어로 씌어진 작품이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각기 다른 민족어로 씌어지거나 번역 된 것들을 읽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흘륭한 문학작품을 감상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본의 유입으로 인하여 두 가지의 변수가 작용하게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첫째는 자본의 본산 서구나 유럽의 풍을 모방하여 나의 것 혹은 우리의 것을 무가치하게 여겨 버린다는 웃지못할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정체성의 논란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예술 공간에서 호흡하며 자신의 인생을 걸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충분히 문제가 있다. 두 번째로는 역시 인간성 상실의 경험이다. 이는 감정, 감동 그리고 이성이 종합적인 패턴을 그리면서 인간의 참된 행복이나 의미, 가치를 드러내야 마땅할 그 본분을 망각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의 선상에서 옥타비오 파스를 읽어나가면 가장 훌륭한 독서방법이자 시를 감상하는 위치에 서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필자 역시 그런 태도를 유지하면서 옥타비오 파스를 읽었다. 그 결과 한국의 시가 가장 맛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이 이 책을 읽으므로 인해서 깨닫게 된 참된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옥타비오 파스의 다양한 시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방가르드적인 시어의 혁명에서 그 기원을 살펴야 한다. 신낭만파주의와 앙가쥬망 사이에서 인간의 실존과 시간의 문제에 천착, 형이상학적인 작품세계에 몰두하였던 그는 쉬르레알리즘과의 접촉 이후 언어의 해방에 주목하며, 비논리성이 지닌 시적인 가치를 재발견하게 된다. 옥타비오 파스에게 있어 시는 아담과 이브 이전의 말을 곧 창생하며 사물이었던 시절로 되돌려주는 작업이었다. 에덴동산의 전락 이후 말이 지칭하는 사물과 실제 사물과의 사이에 간격이 생겼다고 보는 그는 시작업이란 바로 이 간격을 메꾸기 위한 안타까운 노력이라고 본다. 이 노력 중의 하나로 그의 시어가 지향하는 것은 침묵이며, 침묵이 곧 실체가 된다는 시론을 유도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은 상상의 존재이며, 인간이 지닌 이성이라는 것도 상상의 형태에 불과하다고 보는 그는 우리에게 문화적 혁명이 요청된다면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궤도 수정의 차원을 넘어서 상상력으로의 회귀가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폭 넓은 관심과 실험 정신은 여러가지 형식의 판독을 가능하게 하며, 독자가 작품 구성이나 창작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한 시작시를 개발, 시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에 기여하며, 동양시의 이미지 사용법을 서구적인 것으로 비약, 환치시킨 독특한 시세계를 형성한다."
1
새가 노래한다,노래한다 무엇을 노래하는지 모르면서: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은 그의 울대뿐.
2
움직임에 들어맞는 형식이란 감옥이 아니라 사고의 피부일 뿐.
3
투명한 수정의 맑음은 내게는 충분한 맑음이 되지 못한다: 맑은 물은 흐르는 물이다.
-<수사학>의 전문
차갑고 날쌘 손길이 하나씩 하나씩 어둠의 껍질을 벗긴다. 눈을 뜬다 아직 난 살아 있다 한가운데 아직 생생한 상처⑴의 한가운데
-<새벽>의 전문
⑴ 이유를 알 수 없는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나의 실체, 나의 아픔은 곧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너의 눈은 번개와 눈물의 조국, 말하는 고요 바람 없는 폭풍, 파도 없는 바다, 갇힌 새들, 졸음에 겨운 황금빛 맹수, 진실처럼 무정한 수정, 숲 속의 환한 빈 터에 찾아 온 가을, 거기 나무의 어깨 위에선 빛이 노래하고, 모든 잎사귀는 새가 되는 것, 아침이면 샛별같이 눈에 뒤덮인 해변, 불을 따 담은 과일 바구니, 맛 있는 거짓⑴ 이숭의 거울, 저승의 문, 한낱 바다의 조용한 맥박, 깜박거리는 절대 사막.
-<너의 눈동자>전문
⑴사위어 갈 목숨이 활기 찬 과일로 거짓처럼 황홀하다.
이처럼 우리는 아시아존 그리고 서구의 작품 외에는 다른 비 서구권의 작품들을 접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타국의 시인들의 작품을 읽는 것과 비교해서 우리의 작품의 우수성과 순수성 그리고 적합성을 발견해는 훈련은 잊지 않아야 충분조건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간 옥타비오 파스의 작품을 대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좋았다라고 거듭 고백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순전히 나의 선택이며 동시에 타자의 선택으로부터 것임을 다시 한 번 고백하고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글사랑 이충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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