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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전혀 몰랐던 지구 반대편 아메리카의 시단 알아보기...
2017년 11월 13일 20시 38분  조회:2054  추천:0  작성자: 죽림
 

지역성의 역사”: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즈와 옥타비오 파스의 시학

 

                                                          심 진 호(신라대학교)

 

 

오늘날 북미와 중남미를 아우르는 아메리카의 정체성담론은 새로운 국가사상과 비전의 모색이라는 명제로 여러 작가들과 비평가들로부터 자주 논의되고 있다. 20세기에 이르러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은 문화적 식민주의를 심화시키는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에서 탈피하여 아메리카 고유의 지역성을 강조한 문학적문화적 주체성을 구축하려 했다. “객관주의”(Objectivism)의 주창자로 잘 알려진 미국 시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즈(William Carlos Williams)는 일평생 접촉”(contact)과 지역성”(locality)에서 연유한 글쓰기를 통해 미국적 정체성을 구현하려 했다.

윌리엄즈는 당대를 대표하는 미국 작가들 중에서 스페인어와 스페인 문학에 가장 관심과 조예가 깊었던 시인이라 할 수 있다실제로 전기에서 후기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을 살펴보면 스페인어와 스페인 문학의 지속적인 영향력을 볼 수 있다이는 그가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 출신의 어머니를 통해 일찍이 스페인어와 라틴 아메리카 문화를 습득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언어적문화적 이중성(duality)을 인식한 것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윌리엄즈는 여러 작품을 통해 지금이곳”(here and now)에 근거한 진정한 미국적 정체성을 역설했으며미국은 청교주의를 표상하는 영국의 문학문화적 유산을 계승하기를 단호히 거부해야한다고 강조한다그는 1939년에 쓴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ía Lorca”)라는 에세이에서 후안 루이즈(Juan Ruiz), 후안 데 메나(Juan de Mena), 루이스 데 공고라(Luis de Góngora), 로르카 등과 같은 스페인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밝히고 자신이 이런 스페인 문학계보를 계승해나갈 것이라고 주장한다(SE 222-25). 이런 점에서 스페인의 유산을 계승한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윌리엄즈의 관심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사상가인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는 스페인-인디언의 혼혈인 메스티소(mestizo) 아버지와 스페인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그는 17세 때 첫 시집을 출간했으며 일평생 여러 시와 산문을 통해 멕시코와 멕시코인의 정체성을 멕시코의 현실 인식의 문제와 연계시켜 다루었다.윌리엄즈가 그러했던 것처럼파스는 17세기 스페인의 대표적인 바로크 시인이었던 공고라와 케베도에게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 여러 산문에서 이들을 자주 언급한다아울러 그는 지속적으로 지금이곳에 토대를 둔 시학(poetics)을 강조한다그는 1956년에 발표한 산문 활과 리라(The Bow and the Lyre)에서 시는 내재성으로 충만한 빈 공간이며 . . . 시는 지금이곳의 탐구이다”(“A poem is an empty space fraught with imminence . . . Poetry: a quest for here and now”)(243-44)라고 강조한다요컨대 윌리엄즈와 파스는 시간적공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아메리카인 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동시에 고유한 시학을 역설하고 있다.

윌리엄즈와 파스에게 미국과 멕시코는 영원한 시적 영감의 원천즉 뮤즈이다그들의 지역성에 기반을 둔 글쓰기는 영국 작가 로렌스(D. H. Lawrence)의 장소의 영”(spirit of place)이라는 개념에 비견된다.로렌스는 미국 고전문학 연구(Studies in Classic American Literature)에서 모든 대륙은 그 장소 고유의 위대한 영을 가지고 있다”(12)고 말한다여기서 로렌스가 말하는 장소의 영이라는 개념은 지역성과 타자성을 억압하면서 아메리카의 고유문화를 유럽문화의 종속물로 환원시키려는 유럽중심주의적 가치관에 맞서 접촉을 통해 토착적인 것을 끌어안는” 신세계 정신을 표상한다고 할 수 있다윌리엄즈와 파스는 이런 장소의 영에 근원한 정체성 확립과 자아 탐구를 시학의 목표로 삼고 있다윌리엄즈는 1925년에 발표한 미국적 기질(In the American Grain)에서 미국인들은 결코 자신들을 인지해본 적이 없었다. . . .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그것은 누군가가 독창적 용어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226)고 말하며새로운 미국적 정체성 구축을 위한 기원성(originality)을 탐구한다파스 또한 1950년에 발표한 고독의 미로(The Labyrinth of Solitude)에서 정복에서 혁명에 이르기까지 멕시코의 모든 역사는 외래의 제도(alien institutions)로 인해 일그러지거나 위장된 우리 자신의 자아에 대한또한 그것을 표현하는 형식에 대한 탐구로 이해될 수 있다”(166)고 말한다따라서 멕시코 역사의 주체성 확립이 곧 자신의 자아 탐구라는 점을 강조한다요컨대 미국적 기질과 고독의 미로는 시학과 역사를 접맥시켜 자아 탐구와 정체성 확립의 주제를 공유하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일례로 고독의 미로는 미국적 기질의 후속 주석(belated commentary)으로 읽혀질 수 있으며 동시에 이 두 작품은 우리 자신의 자아 탐구”(search for our own selves)라는 주제를 공유한다는(37) 베라 쿠친스키(Vera M. Kutzinski)의 주장을 통해서도 그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윌리엄즈와 파스는 정체성 확립과 자아 탐구의 영역을 아메리카의 역사와 연관시켜 다루는데,이는 미국적 기질에서 윌리엄즈가 강조한 주목할 만한 지역성의 역사”(remarkable HISTORY of the locality)(IAG 223)라는 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윌리엄즈는 진정한 미국 작가로 포우(Edgar Allan Poe)를 지적하며 포우의 언어는 주목할 만한 지역성의 역사가 된다고 역설했다즉 그들은 기존의 아메리카의 역사가 유럽 중심주의적 시각으로 쓰였기 때문에 스스로 정체의 상태 속에 머물러 왔다고 비판한다.그리하여 그들은 유럽중심주의의 단일한 시각이 아닌 주변부와 타자적 시각으로 쓰인 새로운 역사 쓰기를 시도함으로써 왜곡되고 상실된 아메리카의 역사와 문화를 재해석하고 재정립하려 했다윌리엄즈는 역사역사우리 바보들우리는 무엇을 알고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는가?”(IAG 39)라고 질문하며 역사의식이 결여된 미국인들을 비판함은 물론 미국의 뿌리에 대해 탐구해나갈 것임을 역설한다파스는 고독의 미로에서 멕시코 역사는 자신의 조상과 근원을 찾는 인간의 역사”(Labyrinth 20)이며고독이란 스페인 정복의 유산으로 고통 받는 멕시코인들이 처해 있는 역사적 상황을 가리킨다고 말한다이렇게 역사는 지역성의 역사와 맞물려 그들에게 시적 상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윌리엄즈와 파스는 시간적공간적 한계를 초월하여 서로의 작품에 강렬한 관심과 예술적 동질감을 느꼈다이는 그들이 서로의 시를 번역을 통해 영어권과 스페인권 국가들에 소개한 사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해럴드 블룸(Harold Bloom)이 파스를 17세기 바로크 시기의 시인이었던 공고라와 케베도의 후계자로 간주했다는 사실(608)을 고려하면파스는 윌리엄즈가 주장한 스페인 문학계보를 잇는 시인이라고 볼 수 있다이렇듯 윌리엄즈와 파스는 그때그곳’(then and there)을 표상하는 유럽에 맞서 지금이곳에 기반을 둔 토착 아메리카적 정체성을 구현하려 했다그들은 각각 청교주의 정신을 계승한 유럽중심주의적 문학 전통에서 해방된 고유한 미국과 멕시코의 문학적문화적 정체성을 찾으려 했다따라서 두 시인이 지향하는 시학은 신세계 정신의 핵심이 되는 지역성과 역사라는 개념 속에서 불가분의 연관성을 지니게 되었다.

영미문학과 스페인 문학이라는 별개의 틀에서 다루고 있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과 멕시코 시인을 포괄적으로 비교분석함으로써 그들의 작품에 지속적으로 강조되는 지역성의 역사에 기반을 둔 시학을 살펴보고자 한다특히 윌리엄즈와 파스의 대표적 산문집 미국적 기질과 고독의 미로를 중심으로 이 두 책의 공통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아메리카의 정체성 문제를 조명할 것이다이는 지금까지도 윌리엄즈의 미국적 기질이 인종과 국가를 초월하여 여러 작가들에게 지역성의 역사를 규명하는데 있어 하나의 전거가 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최근에 카렌 카도조(Karen M. Cardozo)가 미국적 기질이 상호텍스트적(intertextual) 가치를 지닌 작품이며 맥신 홍 킹스턴(Maxine Hong Kingston)과 리처드 로드리게스(Richard Rodriguez)와 같은 소수인종 미국 작가들이 그들의 경험의 복잡성을 포착할 수 있는 형태를 찾는데 있어 그들을 고무시킨 사람은 바로 윌리엄즈이다”(2)라고 말한 것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해 준다이런 점에서 이 논문은 20세기 미국과 멕시코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간주되는 윌리엄즈와 파스가 공유하고 있는 지역성의 역사를 토대로 논의를 이끌어 그들의 상호 관계성을 조명하고 아울러 그들이 지향하는 시학의 유사성을 밝히고자 한다.

 

 

윌리엄즈와 파스 사이의 고리를 잇는 연결점은 그들이 지역성을 지속적으로 다루었고 이를 통해 진정한 아메리카적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다는 데 있다그들은 여러 시와 산문을 통해 유럽중심주의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문학적문화적 주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윌리엄즈는 자서전에서 지역적인 것만이 보편적인 것이며모든 예술의 초석이다”(The local is the only universal, upon that all art builds)(391)는 언급을 통해 가장 미국적이며동시에 보편적인 것은 지역성의 토대위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파스 또한 1969년에 쓴 결합과 해체(Conjunctions and Disjunctions)에서 현재를 회복하라다가오는 시대는 이곳과 지금으로 규정된다”(“The return of the present: the time that is coming is defined by a here and a now”)(139)라고 말한다윌리엄즈와 파스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지금이곳은 단지 미국과 멕시코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 아메리카 대륙으로 확장된다는 것이다중요한 점은 두 시인이 강조하는 지역성은 단순히 유럽과의 차이만을 부각시키며 아메리카의 우월성만을 주장하는 편협한 지역주의 혹은 국수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발현되지 않았지만 분명히 잠재해 있는 장소의 영을 구현해냄으로써 정체성 확립의 길을 제시한다는 개념을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메리카는 두 시인에게 영원한 뮤즈로 자리 잡았는데이는 그들의 첫 만남에서 멕시코와 미국을 포함한 전체 아메리카 대륙과 아메리카인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실에서 여실히 알 수 있다.파스는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즈삭시프라즈 꽃(“William Carlos Williams: The Saxifrage Flower”)이라는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윌리엄즈는 커밍스(cummings)보다 말이 적었고 그의 대화는 당신이 그를 존경하기 보다는 그를 사랑하도록 만들었다우리는 멕시코와 미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자연스럽게 우리는 뿌리에 대한 이야기로 빠져들었다. . . . 비록 나쁜 건강상태가 그를 더 악화시켰지만 그의 성격과 생각은 완전했다우리는 다시 한 번 셋혹은 일곱 아메리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이를 테면 붉은빛의흰색의검은색의초록빛의자줏빛의 아메리카를. . . . (On Poets and Others 23)

 

이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윌리엄즈와 파스에게 뮤즈로 자리 잡은 아메리카는 단지 미국과 멕시코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며 혹은 일곱 아메리카와 같이 북미와 중남미를 아우르는 아메리카 대륙에 확장을 의미한다이런 맥락에서 그들이 지향하는 시학적 목표는 보다 분명해 진다곧 전체 아메리카의 정체성 구축을 위함이다이와 관련해 쿠친스키는 윌리엄즈의 라틴 아메리카 문학에 대한 두드러진 관심이 옥타비오 파스를 하나의 준거점(reference point)으로 만들었다는 언급을 통해 이들이 우리 자신의 자아 탐구라는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 부각시켰다.

 

윌리엄즈의 라틴 아메리카 문학에 대한 두드러진 관심은 옥타비오 파스를 여기서 하나의 귀중한 준거점즉 단순히 간략한 언급 이상으로 논의될 만한 것으로 만든다파스와 윌리엄즈는 서로의 시를 상호 몇 편 번역했다. 1970년대 파스는 낸터켓(“Nantucket”),어린 향나무(“Young Sycamore”), 붉은 손수레(“The Red Wheelbarrow”), 그리고 아스포델(“Asphodel”)을 번역했고한편 윌리엄즈는 70세에 이르러 폐허 속의 송가(“Himno entre ruinas”)의 훌륭한 영어판을 출간했다게다가 파스의 고독의 미로와 윌리엄즈의 미국적 기질은 우리 자신의 자아 탐구를 공유한다. (37)

 

윌리엄즈와 파스는 서로의 작품을 통하여 언어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이질성을 초월해 긴밀한 유사성을 발견하게 된다말하자면 그들이 공유하는 주제는 외래의 제도로 인해 왜곡되고 상실된 아메리카의 역사를 새롭게 수정하며 미래의 아메리카를 위한 자아를 창출하기에 이른 것이다파스의 폐허 속의 송가는 그의 시집 언어 밑의 자유(Libertad bajo palabra)의 마지막에 수록된 시로 윌리엄즈는 1955년에 이 시를 번역한다이 시는 17세기 바로크 시인인 공고라가 쓴 대표적 장시 폴리페모와 갈라테아의 우화(Fábula de Polifemo y Galatea)에서 시실리 바다를 거품 일어나게 하는 곳 . . .”(Where foams the Sicilian sea . . .)이라는 제사(epigraph)를 가져왔다공고라가 윌리엄즈와 파스에게 끼친 영향력을 생각해 볼 때 윌리엄즈가 폐허 속의 송가를 영어로 번역한 것은 공고라와 파스에게 보내는 일종의 찬사(tribute)로 이해할 수 있다이것은 윌리엄즈의 장시 방랑자(“The Wanderer”)가 공고라의 장시 고독들(Las Soledades)과 폴리페모와 갈라테아의 우화에서부터 구성과 스타일뿐만 아니라 어조구문,신화 등을 차용했다고 말하는 훌리오 마르잔(Julio Marzán)의 언급(174-75)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여기서 주목할 점은 윌리엄즈의 번역이 매우 훌륭해서 파스를 감동시켰다는 사실에 있다즉 파스는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즈삭시프라즈 꽃에서 스스로 번역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것과 비교되는 윌리엄즈의 번역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1970년 여름 캠브리지의 처칠(Churchill) 대학에서 나는 윌리엄즈의 시 여섯 편을 번역했다후에 두 번의 여행에서즉 베라크루즈(Veracruz)와 지와타네호(Zihuatanejo)에서나는 그의 나머지 시를 번역했다나의 번역은 축어적 번역이 아니다축어적임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비난할만한 것이다. . . .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내가 윌리엄즈의 리듬에 준하는 리듬을 스페인어로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하지만 나 자신이 시 번역의 무한한 주제에 휩쓸리게 되는 대신에내가 어떻게 그를 만나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싶다도날드 앨런(Donald Allen)이 나의 시 폐허 속의 송가(“Hymn among the Ruins”)의 영어판을 내게 보냈다그 번역은 두 가지 이유로 나를 감동시켰다즉 그것은 매우 훌륭했고 그 번역가는 바로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즈였다(On Poets and Others 22)

 

여기서 중요한 점은 윌리엄즈의 리듬에 준하는 리듬을 스페인어로는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가장 후회한다는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윌리엄즈가 뛰어난 리듬감까지 배어있도록 시를 번역했다는 사실이다이는 윌리엄즈에게 스페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스페인어가 윌리엄즈의 글쓰기 언어로 짜 맞추어지게’(interknit) 운명 지어졌고” 또한 이런 언어적 이미저리를 통해 시인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이중 문화(dual cultures)의 소리의 상호 작용을 시로 번역했다”(149)는 마르잔의 언급을 통해서도 거듭 확인할 수 있다이렇게 폐허 속의 송가는 윌리엄즈가 지닌 이중 언어와 문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이 시는 파스가 1948년 이탈리아 나폴리(Naples)에서 쓴 것으로 전체 7연으로 구성되어 있고로마체(romans)와 이탤릭체(italics)로 된 연이 번갈아 나타난다즉 로마체로 쓰인 홀수 연은 신성하고 영원한 빛의 세계를이탤릭체로 쓰인 짝수 연은 어두운 현실 세계의 디스토피아적 비전을 암시한다동시에 이는 화자의 분리된 자아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이와 관련해 제이슨 윌슨(Jason Wilson)은 이 시는 은유적 가치 시스템으로서 낮과 밤을 대조시키는 연들이 6연까지 지속되며 마법적인 7연에 이르러 통합을 이루는 하나의 피라미드(pyramid)처럼 엄격하게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다(45).

무엇보다 폐허 속의 송가의 화자는 저자인 파스이면서 동시에 번역자인 윌리엄즈라고 볼 수 있다이 시의 1연은 천상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태초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다시인은 이런 광명의 세계를 빛과 신의 이미지로 제시한다: “태양이 바다 위로 그 황금빛 알을 낳고 모든 것은 신이다”(the sun lays its gold egg upon the sea. / All is god.)(CP2 342). 하지만 바로 다음 행에서 폐허가 20세기 세계를 의미하는 생중사의 세계”(a world of death in life)에서 살아있다고 말한다이어지는 2연에서 화자는 멕시코의 과거현재그리고 미래를 조망하며 고대 아즈텍 도시인 테우티우아칸의 폐허 속에서 생기를 잃고 방황하는 멕시코인들의 현재 모습을 보여준다.

 

밤이 테오티우아칸에 떨어진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소년들이 마리화나를 피우고,

거친 기타소리가 들린다.

어떤 풀어떤 생명수가 우리에게 생명을 줄 것인가,

우리는 어디서 단어를 발굴할 것인가,

노래와 말도시와 눈금자를

지배하는 관계들을,

멕시코의 노래는 하나의 저주 속에서 폭발한다,

꺼져버린 하나의 착색된 별 속에서,

우리의 접촉의 문을 방해하는 하나의 돌 속에서.

땅은 썩은 땅의 맛이 난다.

 

Night falls on Teothihuacán.

On top of the pyramid the boys are smoking marijuana,

harsh guitars sound.

What weed, what living waters will give life to us,

where shall we unearth the word,

the relations that govern hymn and speech,

the dance, the city and the measuring scales?

The song of Mexico explodes in a curse,

a colored star that is extinguished,

a stone that blocks our doors of contact.

Earth tastes of rotten earth. (CP2 342)

첫 3행은 고독의 미로의 주제인 멕시코인의 보편적 소외(universal alienation) 경험을 농축하여 포착한 것처럼 보인다여기서 화자는 피라미드로 대변되는 화려한 과거의 멕시코와 대조하며 마리화나를 피우고 거친 기타소리를 듣는 현재의 멕시코 소년들을 병치시키며 우리는 어디서 단어를 발굴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여기서 화자가 말하는 단어는 인간을 생명으로 되돌아가게 자각시키는 말이다(Wilson 46). 10행의 우리의 접촉의 문을 방해하는 하나의 돌이라는 말은 자신의 뿌리에 접촉하고자 하는 멕시코인을 분리시키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인은 멕시코 테우티우아칸의 폐허에 뒤이어 전쟁의 여파로 황무지처럼 변모한 현대 유럽 세계의 폐허를 4연에서 선명하게 묘사한다.

 

뉴욕런던모스크바.

그림자가 그 유령 담쟁이덩굴로,

흔들리고 열병에 걸린 식물로,

그 쥐색의 털로 대지를 덮고그 쥐들이 들끓는다.

때때로 결핍의 태양이 부르르 떤다.

 

New York, London, Moscow.

Shadow covers the plain with its phantom ivy,

with its swaying and feverish vegetation,

its mousy fur, its rats swarm.

Now and then an anemic sun shivers. (CP2 343)

 

여기서 화자는 결핍의 태양으로 상징되는 20세기 서구 세계의 불모성과 여기에 만연한 소외라는 질병을 그림자로 제시한다인간은 흔들리고 열병에 걸린 식물과 처럼 병에 걸려 신음하고 위축된 모습으로 제시되고시인의 사유 또한 배출구가 없는 강과 같은 하나의 미로가 된다그리하여 6연에서 시인은 나의 생각은 분리되고헤매고뒤얽혀 자라난다,/다시 시작한다,/ 마침내 전진하지 못한다”(My thoughts are split, meander, grow entangled,/ start again,/and finally lose headway)(CP2 343)고 말한다.그리고 희망이 부재한 세계의 미로에 감금된 시인의 고뇌는 모든 것이 정체된 강물의 이런 튀김 속에서 끝나야 하는가?”(And must everything end in this spatter of stagnant water?)라고 물으며 6연을 끝낸다.

하지만 시인은 7연에서 자신의 분리된 자아를 하나로 통합시키면서 고뇌의 미로에서 탈출한다시인의 메마르고황무지 같고합리적 지성은 몸으로 다시 연결되어 더 이상의 몸-마음의 분리를 나타내는 이원성(duality)이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Wilson 49). 이것은 시란 분리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파스와 윌리엄즈의 대답으로 볼 수 있다.

 

하루되풀이 되는 하루가,

24개의 빛살을 지닌 오렌지를 비춘다,

전체가 하나의 노랑 달콤함으로 충만한!

마음은 형상으로 구체화하고,

두 적개심이 하나가 되고,

양심-거울이 액화시킨다,

한 번 더 전설의 샘을:

이미지들의 나무인 인간을,

꽃인 말은 행위인 과일이 된다.

 

Day, round day,

shining orange with four-and-twenty bars,

all one single yellow sweetness!

Mind embodies in forms,

the two hostile become one,

the conscience-mirror liquifies,

once more a fountain of legends:

man, tree of images,

words which are flowers become fruits which are deeds. (CP2 343)

 

두 적개심이 하나가 되고라는 말은 인간의 이성은 자신의 순수한 감정과 융합되고 인간은 하나의 고양된 의식으로서 통합을 경험한다는 것을 암시한다여기서 시인은 우리 인간을 자연 세계로 되돌려 나무처럼 뿌리내리게 함으로써 수액처럼 흐르는 자연 언어를 풀어 놓게 만든다(Wilson 50). 그리하여 소외의 이미지들이 화해와 통합의 이미지로 극복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이미지들의 나무인 인간을/꽃인 말은 행위인 과일이 된다는 구절로 끝을 맺는다즉 시인은 인간이 이미지들의 나무가 되는 시와 신화의 원천으로 회귀함으로써 분리된 자아를 통합시킬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한다마지막 행은 지역적인 것만이 보편적인 것이다라는 윌리엄즈의 말을 상기시키듯이단지 멕시코인과 미국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이렇듯 파스와 윌리엄즈가 지향하는 시학의 유사성은 멕시코와 미국이라는 특정한 지역성에서 출발하지만 이런 한계를 뛰어넘어 보편성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는데이는 역사에 대한 그들의 시각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윌리엄즈와 파스는 신세계 정신의 토대가 되는 지역성에서 연유한 글쓰기는 아메리카의 역사와 불가분적 관계가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그들은 각각 미국적 기질과 고독의 미로에서 기존의 유럽중심주의적 시각으로 쓰인 역사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새로운 역사 쓰기를 시도한다윌리엄즈는 미국적 기질에 수록된 영원한 젊음의 샘(“The Fountain of Eternal Youth”)에서 진리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파헤쳐라 그러면 뒤집혀진 것을 보게 될 것이다”(the truth is not so easily to be discovered. Let us dig and we shall see what is turned up.)(IAG 196)라고 주장한다그리하여 그는 미국적 기질에서 헤르난도 코르테즈(Hernando Cortez), 코튼 매더(Cotton Mather),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및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과 같은 인물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토마스 모튼(Thomas Morton), 세바스티앙 라슬레 신부(Père Sabastina Rasles), 다니엘 분(Daniel Boone), 샘 휴스턴(Sam Houston) 그리고 에드가 앨런 포우(Edgar Allan Poe)를 새로운 미국적 정체성을 표상하는 진정한 영웅으로 간주한다.

윌리엄즈는 미국적 기질의 전반부에서 콜럼버스(Columbus), 코르테스(Cortes), 후안 퐁세 데 레옹(Juan Ponce de Leon)과 같은 아메리카 대륙의 초기 정복자들의 물질적 욕망과 그로 인한 신세계 파괴를 신랄하게 비판한다그는 이 정복자들이 신세계가 지닌 새로움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을 보여주면서 신세계에 내재해 있는 장소의 영의 불멸성과 잠재성을 부각시킨다그는 미국적 기질에 수록된 테노치티틀란의 파괴(“The Destruction of Tenochtitlan”)라는 에세이에서 몬테수마(Montezuma)의 경이로운 도시가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지만 몬테수마의 영혼은 다시 불타오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거리대중 광장시장사원궁전도시가 그곳에 뿌리내리고 가장 풍요로운 아름다움에 민감한 신세계의 땅 위로 어두운 삶을 펼친다. . . . 그것의 독특하게 연계된 전 세계는 결코 다시 타오르지 못할 땅 속으로 가라않았다최소한 영혼 속에서를 제외하고는다시는 타오르지 못할 것이다즉 신비롭고건설적이고독립적이고자연의 풍요로움으로 강인한 영혼심지어 깃털처럼 가볍고 그 땅 속에 상실된 영혼 속에서를 제외하고는(IAG 31-2)

 

여기서 윌리엄즈는 물질적 욕망에 눈이 멀어 아즈텍 문명을 파괴한 코르테스로 대변되는 유럽인들의 잔인성을 비판함은 물론 아즈텍 문화가 현실에 대한 깊은 지각”(IAG 33)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그는 코르테스에 의해 파괴된 테노치티틀란은 결코 다시 타오르지 못할 것이지만 장소의 영을 상징하는 신비롭고건설적이고독립적이고자연의 풍요로움으로 강인한” 몬테수마의 영혼은 다시 불타오를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즉 윌리엄즈는 그 땅 속에 상실된” 몬테수마의 영혼과 같이 지역성에서 연유한 신세계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미국적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는 길이라고 보았다이는 몬테수마로 대변되는 토착 메소아메리칸 영혼이 윌리엄즈에게 중요하지만 그 영혼은 대개 지역 문화에 대한 존경과 지역적 뿌리에 대한 감응으로 변형되었다”(43)는 스티븐 웨이런드(Steven Weiland)의 언급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몬테수마를 부각시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윌리엄즈는 유럽 남성중심주의 이데올로기를 피력하는 서구의 전통 역사에 의문을 나타내며 그동안 소외되고 주변화 되었던 인물들의 목소리를 다성적으로 병치시킨다그는 청교주의의 단일한 시각으로 쓰인 역사에서 탈피하여 복수성과 이질성을 부각시키는 새로운 역사쓰기를 보여준다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뒤집혀진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이런 맥락에서 브라이언 브레멘(Brian A. Bremen)은 윌리엄즈가 기존의 역사 텍스트를 되쓰는 것은 청교주의 중심의 미국역사를 폭로함으로써 현재의 역사(what history is)를 폭로하고 아울러 청교주의 전통이 억압해오고 있는 목소리를 포함시킴으로써 역사가 그래야만 하는 것(what history should be)을 제시하는 것”(142)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윌리엄즈는 미국적 기질에서 미국문학에서의 신세계 정신을 청교주의 정신과 대비시켜 보여준다그는 미국 예술가가 진정한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은 엘리엇(T. S. Eliot)이나 파운드(Ezra Pound)처럼 자신의 지역성과 무관한 유럽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발아래 있는 바로 그 토대에 대한 지식에 의해 충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누군가가 프랑스에 간다면그것은 도 레 미 파 솔을 배우러 가는 것이 아니다그는 낯선 신세계를 보러 가는 것이다.

모든 면에서 새로운 문화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만족은 느껴야 한다그는 토대자신의 토대바로 그 토대그가 아는 유일한 토대그의 발아래 있는 그것에서 자신의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나는 미학적 만족을 말하는 것이다바로 미국이 결여한 이것은 토대에 대한 지식시적 지식에 의해서만 충족될 수 있다(IAG 213)

 

윌리엄즈는 미국적 기질의 에드가 앨런 포우(“Edgar Allan Poe”)에서 모든 식민주의적 모방은 일소되어야 한다”(all ‘colonial imitation’ must be swept aside)고 말하며 미국문학이 맹목적인 유럽문학의 숭배에서 벗어나 고유성을 찾아야한다고 주장한다그는 진정한 미국 작가로 포우를 부각시키며 예술가는 자신의 장소가 품은 가능성무겁고화산과 같은 필연성을 지녀야한다고 주장한다(IAG 225). 아울러 그는 에드가 앨런 포우에서 신세계 정신을 지닌 포우의 언어는 주목할 만한 지역성의 역사”(IAG 223)가 된다고 강조한다.

요컨대 윌리엄즈는 주목할 만한 지역성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식민주의적 모방에서 탈피하여 진정한 지역성의 역사가 된다고 본다지역성에 토대를 둔 언어적 주체성에 대한 강조는 파스의 작품에 드러나는 핵심적인 주제이기도 하다두 시인은 아메리카가 아직 문학적문화적으로 독자적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원인을 신세계 아메리카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부재에 있다고 보았다그리하여 그들은 영어와 스페인어가 아닌 아메리카 대륙이라는 토대에서 파생한 미국어(American English)와 멕시코어(Mexican)를 역설한다윌리엄즈는 영국식 영어를 청교주의의 유산으로 간주하며 심지어 스스로 영국식 영어를 말할 수 없었다”(SE 177)고 말한다아울러 그는 미국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신대륙에서 파생한 언어로 쓰인 고유한 문학이 노쇠한 유럽 문학에 대한 처방책이 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한다그리하여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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