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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충남 아산 이충무공 유허(사적 제155호) 내 현충사에 걸려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친필 현판과 숙종 친필 현판이 그대로 유지된다.
문화재청은 21일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가 현충사 현상변경 안건을 검토한 결과를 받아들여 현판을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 현충사는 한국전쟁을 거친 뒤 성역화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신 현충사와 일제강점기인 1932년 6월 중건된 구 현충사가 있다.
구 현충사는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 헐린 사당을 국민 성금으로 다시 지은 것으로, 재건 직후 충무공 후손이 보관해 오던 숙종 현판이 걸렸다. 지금도 구 현충사에는 숙종 현판이 있고, 박 전 대통령 현판은 신 현충사에 걸려 있다.
문화재위원회는 "구 현충사에 걸려 있는 숙종 사액 현판을 떼어내 1960년대 지어진 신 현충사에 설치하는 것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건물과 현판의 일체성을 훼손하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충무공파 후손들 간에도 서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며 "두 개 현판에는 모두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충사 현판 교체 검토는 이순신 가문의 15대 종부인 최순선씨가 지난해 9월 박 전 대통령이 한글로 쓴 현충사 현판을 숙종이 1707년 하사한 친필 한자 현판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하면서 이뤄졌다.
당시 최씨는 현판을 교체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소유권이 있는 '난중일기'를 비롯한 충무공 관련 유물의 현충사 전시를 불허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덕수이씨 충무공파 종회가 1960년대 성역화 사업을 통해 제작된 박 전 대통령의 현판에도 나름의 역사성이 있다는 점을 들어 현판 교체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면서 현판을 둘러싼 문중 갈등이 첨예화하기도 했다.
현충사 현판이 현행대로 유지된다는 소식을 접한 최씨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지인들과 논의한 뒤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 무과에 급제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으로, 조선 숙종 32년(1706) 사당이 세워졌다.
한편 문화재위원회는 경북 안동 도산서원(사적 제170호) 내에 있는 일본 특산종 나무인 금송을 사당 권역 밖에 옮겨 심기로 결정했다. 충남 금산 칠백의총(사적 제105호)의 금송 이전 문제는 조경정비계획이 수립되면 문화재위원회에서 심의하기로 했다.
앞서 문화재위원회는 지난해 11월 현충사 사당 권역에 있는 금송 이전 안건을 심의해 가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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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충남 아산 현충사의 현판을 둘러싼 논란의 불똥이 국보인 난중일기로 튀게 됐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을 내리고 과거 숙종이 사액한 현판을 올리자는 게 후손들의 주장이었는데, 어제(21일) 문화재청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지금 것을 그대로 쓰기로 결정했죠. 이에 반발한 후손 측이 난중일기 진본 전시를 아예 중단하겠다고 했습니다.
윤영탁 기자입니다.
[기자]
난중일기는 2013년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이후 현충사측은 유네스코의 권고에 따라 진품은 수장고에 보관하고 복사본을 전시해 왔습니다.
그래도 충무공 탄신일이 있는 4월을 포함해 연간 몇 차례 진품을 꺼내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올해는 이마저도 어려울 전망입니다.
발단은 현판입니다.
충무공 후손 덕수 이씨 종가측은 숙종이 사액한 예전 것으로 바꿔 달라고 줄곧 요구해왔습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어제 문화재청이 심의를 했는데 결국 지금의 현판을 존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현재 사액현판은 1932년 재건된 구 현충사에 달려있습니다.
1960년대 성역화 작업을 통해 새로 지어진 현재의 현충사 현판 자리에는 크기가 맞지 않다는게 문화재청 판단입니다.
또 교체를 반대하는 후손들도 있어 종친 전체의 입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난중일기의 소유권이 있는 종가측은 문제가 해결될때까지 난중일기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종가는 숙종 현판을 돌려달라며 서울중앙지법에 인도 소송을 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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