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깜깜한 밤하늘은 세상 아름다움의 반이라고 별빛이 내리는 야외에서은가루를 뿌려놓은듯한 별세계에 도취되여 별자리와 별이름을 별들로 다가서는 큰곰자리와 작은 곰자리의 북두칠성과 북극성,여름밤, 가을밤에 이어 머리우로 흐르는 아름다운 은하수와 은하수를 사이두고 바라보는 견우별과 직녀별—전설속의 이런 별들을 대할 때면 더욱 멋지기만 하다. 가슴을 울렁이며 들뜨게 하는 그 시각의 설레임과 정겨움과 황홀경은 실로 그무엇으로도 표현하기어렵다. 내고향 시인이요, 조선족시인인 윤동주가 바로 이런 경지에 빠져든 시인이였다. 별세계에 대해 유별난 애착을 가진 윤동주시인에게 있어서 보석처럼 빛나는 별들은 특별히 동경의 대상으로, 꿈의 세계로, 다정한 친구사이로 되였다. 하기에 한국과 중국의 여러 문학평론가들은 윤동주시인을 《암흑기 하늘의 별》(1) 《암흑기 최후의 별》(2) 《어둠속에서 별을 바라보며 민족과 조국을 생각한 시인》⑶ 이라고 평가를 모았다. 알다싶이 중국 당나라때 시인 리백은 달에 대하여 특이한 사랑을 지니고 달을 노래한 위대한 시인이다. 이에 대비해 윤동주는 별에 대하여 특이한 사랑을 지니고 별을 노래한 내고향 시인이다. 그만큼 윤동주는 일제치하에서 《별을 바라보며 민족과 조국을 생각한 시인》이고 별을 시의 원천으로 간주하면서 별과 운명을 같이한 하나의 별로서 그의 시에는 별을 노래한 시가 많고 산문에도 가끔 별이 떠오른다. 요즘 필자는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 의해 출판된 윤동주시집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이》(4)를 살펴보았는데 사용도가 가장 높은 시어는 나, 내, 밤, 하늘이고 그 버금으로 가는것은 달과 별로서 달의 언급이 32개, 별의 언급이 24개였다. 그중 별과 관련된 시가 《서시》,《눈감고 간다》, 《별 헤는 밤》, 《산림》, 《무얼 먹고 사나》,《오줌싸개지도》 등인데 시 《별 헤는 밤》에만 해도 별이 무려 열두번이나 떠오른다. 이는 우리 시단에서 극히 보기 드문 현상으로서 별의 시인인 윤동주의 품위를 말해주고도 남음이 있다.이런 고로 많은 문학평론가들은 자기 론문이나 평론들에서 별과 시인을 이어놓으며 평론하기를 잊지 않았으며 《연변지역의 밤하늘, 특히는 가을의 밤하늘에서 뭇별들이 쏟아져내리는듯한 그 야경을 보지 못하고서는 윤동주가 읊조린 하늘이요 별들에 대해 리해하기 힘들것이》⑸라고 지적하기에 이르렀다. 허나 유감스러움도 없지 않다. 우리 학계에서는 아직 별의 시인으로서의 윤동주와 시인의 별세계를 전문 다룬 론문이나 평론을 한편도 찾아볼수 없고 이 면에 대한 연구가 따르지 못하고있는 실정이다.이에 비추어 본 고에서는 별과 별세계에 대한 진지한 리해가 없이는 윤동주시인을 옳바로 리해할수 없다는데 초점을 두면서 머리말과 맺음말외 별 애착의 뿌리와 그 계승, 동심에 젖은 맑은 별시들, 맑지만 않은 슬픈 모습도, 별에 희망을 기탁한 시인의 참모습 등 4개 부분으로 나누어《윤동주시의 별세계》를 전문 검토하고자 한다. 본 론문은 한국과 중국의 겨례문학평론가들의 해당론문과 평론들에 토대해 2002년 7월 흑룡강 조선민족출판사에 의해 출판된 윤동주시집—《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이》를 기존 연구사료로 하였음을 밝히면서 윤동주와 그의 시 연구에 힘을 보태리라고 믿어마지 않는다.
2. 별애착의 뿌리와 그 계승
윤동주는 별에 특이한 사랑을 지니고 별세계에서 희망과 광명의 새 세계를 찾은 시인이다. 하다면 윤동주시인이 어찌하여 별에 대하여 그다지도 유별난 애착을 가지게 되였을가? 한 인간의 성장에서 대대로 내려온 집단무의식(集体无意识)의 침전을 무시할수 없다고 할때 우리 배달민족의 반만년의 력사를 거스르면서 고시대부터 헤아리면 이런 애착의 뿌리와 그 계승을 잘 알수 있을것이다.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란 말이 있듯이 인간이 지닌 본성을 인성이라고도 하고 천성이라고도 한다. 인성이 천성이라고 함은 사람과 하늘이 아주 가깝고 서로 통한다는 의미를 띠고있다. 이같이 인성은 하늘의 원칙인 천성으로 받아들여지면서 하나의 일치를 이루고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늘은 곧 해와 달과 별의 세계로서 하늘에 희망을 기탁하면서 하늘을 우러르고 숭상하는것은 지구상의 모든 고대민족들에게서 다 찾아볼수 있는 일이다. 배달민족도 례외가 아니지만 오랜 기간 유고문화속에서 살아온 우리 민족은 《하늘》 혹은 《하느님》(하나님)을 자주 부르지 않고 가슴속에 깊이 소중하게 모셔왔다. 그만큼 표면상 하늘을 숭배하는 일에 유별나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했으나 오늘날 한반도의 남부지역에 별을 새긴듯한 선사시대의 암각화, 즉 바위그림이 여러곳에서 발견된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별을 인식하고 별세계에 집착한것으로 알려진다. 나일성 저, 한국천문학사에 따르면 경남 울산군 두동면 천전리와 경남 한안군 가야읍 도항리, 경북 고령군 개진면 양전리 등 세곳에서 고대인들의 별을 상징하는 암각화가 발견⑹되였다. 이런 암각화들에는 동심원으로 곱게 새겨진 무늬와 점들이 있어 아주 인상적이다. 도항리의 암각화에는 수많은 작은 둥근 점들이 박힌 가운데 여러 개의 동심원 무늬가 새겨져 특기할만하다. 천전리 이북의 영일군 칠포면 칠포리에서는 1994년에 포철 고문화연구회에 의해 수십개의 암각화가 발견 또는 조사⑺되였다고 하는데 어떤 바위에는 북두칠성을, 어떤 바위에는 복잡한 모양의 별들이 기록, 또는 새겨져있었다. 상고시대 고대인들은 별에 관한 자료도 남기였다. 이런 자료들중 가장 오랜것은 낙랑시대의 고분에서 출토된 기원 1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2점의 토기와 두개의 석판⑻이라고 한다. 2점의 토기는 달을 상징한 그림이고 두개의 석판에는 북두칠성이 새겨져있단다. 그후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조 세종시대에 별을 관측한 기록이 많은데 이런 기록들은 《삼국사기》, 《고려사》천문지와 오행지, 《조선왕조실록》, 《증보문헌비고》, 《승정원일기》 등 ⑼에 자세히 남아있다. 고려(918-1391)시대에 일식, 월식을 비롯한 여러가지 천문과 기상현상관측자료가 풍부히 기록되여있다면 조선조 세종시대에는 관측의기가 완비하리만치 천문관측이 활발했다. 암각화나 천문기록자료가 이러하다면 전설 또한 상당히 풍부하다. 그중 우리들에게 가장 친숙하게 안겨지는 전설은 북두칠성이나 견우, 직녀 전설일것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땅의 40, 50대들 치고 어린 시절 할아버지나 할머니, 그리고 자연시간 선생님의 말씀에서 상기 전설이야기를 듣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것이다. 더우기 우리 동양문화권에서 베틀을 돌리는 소녀로 전해지는 직녀별, 이 별이 포함한 거문고자리 작은 삼각형에는 우리가 어린 시절 많이도 들었던 선녀와 나무군의 전설이 살아 생생히 숨쉬고있다. 이같이 하늘나라, 별나라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과 밤별을 바라보며 꿈을 키우는 소망은 의식, 무의식간에 어린 윤동주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수 없었다. 여기에 별자리이야기를 두고 가슴을 뭉클케 하는 생동한 자료가 있다. 윤동주의 친동생인 한국의 고 윤일주교수⑽는 형님 동주의 서울 연희전문학교 시절⑾ 귀향때의 모습을 두고 이런 이야기를 남기였다.
동생들은 방학기간에 그에게서 많은것을 배웠다. 방학숙제도 같이하고 대학생이던 그와 구슬치기며 공차기 등 장난도 많이 하였다. 책 볼 시간이 아까우면서도 동생들이 귀여워서 놀아주는것이다… 또 한가지 잊혀지지 않는것은 내가 소학교 4학년때로 짐작되는데, 그에게서 별자리를 배우던 일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북두칠성과 북극성들의 위치를 마당에 나와서 가리키면서 참 요령있게 가르쳐주던것이다. 여름 저녁의 시원한 바람, 어린 나를 안다싶이 하던 정다운 그의 체취, 별을 가리키던 그의 손가락 등 모든것이 그립다…⑿
동생 윤일주가 형님을 그리는 윤동주의 연전문과 1학년때의 생생한 모습이다. 그 시절 교과서에 별자리랑 오른 모양인데 그때 벌써 별자리를 알고 동생들에게 요령있게 가르쳤다는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지금의 이땅의 많은 사람들이 별자리와 별자리의 위치를 모른다는것을 념두에 둘때 더욱 그러하다. 이에 비해 윤동주는 그 시절에 벌써 별자리를 가르칠만치 별세계에 숙달하였다. 윤동주에게 있어서, 지옥이라 일컽는 땅을 살피면 시원한 호흡 한번 바로 할수 없이 숨막히기만 한데 천당이라 일컽는 하늘을 바라보면 가슴이 탁 트이니 그런 하늘에 집착할수 밖에 없은것 같다. 한데서 윤동주는 그제날 일제치하에서 별수없이 별에 희망을 기탁하고 시를 써서 마음의 념원을 표달한것이 아닐가.
3. 동심에 젖은 맑은 별시들
윤동주의 시를 읽으면 가슴 뜨거이 와닿는것이 동심과 같이 청순하고 거짓없는 마음이다. 하기에 명동 장재촌 출신이고 시인이고 명동소학교시절 윤동주와 동기동창인 한국의 고 문익환목사는 《윤동주를 회상하는것만으로 언제나 정신이 맑아진다.》고 내심을 토로⒀한적 있다. 확실히 윤동주의 시는 읽는 이들로 하여금 가슴을 울렁이며 정신이 맑아지게 하는 특점이 있다. 동심의 경우도 례외가 아닌데 지금까지 알려지는 윤동주의 시작품 110여수중 35수 정도가 동시들로서 《이들 동시의 세계는 순수하고 청순한 동심의 세계라 할수 있》⒁을것이다. 윤동주는 1931년 3월에 15살나이로 명동소학교를 마치고 달라자의 현립1교에서 6학년공부를 하다가 1932년 4월에 룡정의 은진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명동소학교시절 벌써 송몽규 등 또래들 같이 자체로 문예지 《새 명동》을 간행하고 동요, 동시 창작에 열을 올리였으며 은진중학교 1-2학년때는 제법 윤석중의 동요, 동시에 깊이 심취되여있었다. 광명중학교 4-5학년을 다니던 1936년과 1937년 2년동안에는 시창작의 왕성기를 보이며 무려 29편의 시작품을 남기였는데 광명중학교 첫해인 1936년은 윤동주가 동시를 많이도 쓴 해였다. 이해에 쓴 16편 시중 10편이 동시로 나타난다. 1936년과 1937년 이 시기는 윤동주가 동시창작으로부터 시창작의 원숙한 모습을 보이던 시절로서 병아리, 비자루, 오줌싸개 지도, 무얼먹고 사나, 거짓부리 등 5편의 동시가 북간도의 어린이월간지—《카톨릭소년》에 실리였다.⒂ 그중 《카톨릭소년》 1937년 1월호에 발표된 《오줌싸개 지도》와 1937년 3월호에 발표된 《무얼 먹고 사나》가 별나라와의 관계속에서 씌여졌다. 《오줌싸개 지도》는, 빨래줄에 걸어논 요에는 간밤에 동생이 오줌싸 그린 지도가 그려졌는데 시인의 눈에는 그 지도가 천국에 계신 엄마의 별나라지도로 보인다. 《무얼 먹고 사나》도 별나라와 통하는데 별나라 자체가 벌써 동심이 흐르는 세계이다.
바다가 사람 물고기 잡아먹고 살고
산골사람 감자 구워먹고 살고
별나라 사람 무얼 먹고 사나
—《무얼 먹고 사나》 (1936.10)에서
이 동시는 참으로 동심이 넘치며 감칠맛 있게 씌여진 작품인데 바다가 사람, 산골 사람, 별나라 사람간의 대비속에서 동심의 시야로 안겨지는 미지의 세계—별나라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드러냈다. 1936년이후 윤동주의 시는 보다 원숙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그의 원숙한 시속에는 의연히 동시적인 가락이 면면히 흐르고있다. 그 대표적인 시가 바로 1941년 11월 5일에 쓴 《별 헤는 밤》이다.
……상략……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씀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하략……
이 시는 청신한 가을밤의 맑은 별빛이 넘치는 아름다운 시이다. 시에서 윤동주는 별 하나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보는데 그속에는 달라자 현립1교시절에 한 학급에 다니던 패, 경, 옥 등 중국인 소녀들의 이름이 곁들어지는가 하면 대자연의 동물군체까지 곁들면서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우에》자기를 내세우고 《나는 아무걱정이 없이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 합니다.》하고 내심을 드러낸다. 일제치하의 암담한 시절에도 가을 밤하늘아래 하늘을 우러러 별을 헤는 그 시각만은 잠간이나마 어지러운 세상을 잊게 한다. 그만큼 이 시에는 동심이 가득 넘치고 있는바 그 동심은 추억과 사랑과 쓸쓸함과 그리움과 슬픔으로 나타나면서 동심의 세계는 그리움으로 확산된다. 서울 연전졸업반때 지은 이 시는 멀리 북간도에 대한 그리움을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보면서 쏟아붓는다. 그러면서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면서 밝아오는 새 세상을 한없이 동경한다. 이렇듯 윤동주와 시인의 시세계—별세계는 맑고 청결한 기품으로 흘러넘치면서 천진란만한 동심에 함뿍 젖어있다. 하기에 허다한 시인과 문학평론가들은 윤동주의 어지럽혀지지 않은 순결은 영원한 동심이라고 평가를 한곬으로 모았다.
4. 맑지만 않은 슬픈 모습도
윤동주의 순결은 영원한 동심으로서 맑고 청결한 기품이 흐른다지만 시인과 시인의 시세계는 결코 맑지만은 않다. 하늘 나라, 별나라를 스친 그의 시세계는 가끔 슬픈 모습들이다. 먼저 《무서운 시간》(1941. 2. 7)을 보기로 하자.
거 나를 부르는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있소
한번도 손들어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것이요. ……하략……
보다싶이 윤동주는 《무서운 시간》에서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있는 《나》를 그리면서 험악한 그 세월의 하늘에는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고 《어디에 내 한몸 둘 하늘》도 없다고 통탄한다. 이는 그 시대에 대한 강렬한 울분과 하소연이 아닐수 없다. 시 《아우의 인상화》(1938. 9. 15)는 하늘나라의 달이 그려져있는데 시에서 나오는 달은 싸늘한 모습이다. 《싸늘한 달》의 어린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일 수밖에 없다. 윤동주는 아우의 인상화를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은 《슬픈 그림》이라고 형상성있게 그려냈다. 시 《비애》(1937. 8. 18)에 그려진 젊은이는 《호젓한 세기의 달》아래에서도 《피라미처럼 슬픈》모습인데 그런 모습에 《끝없는 광야를 홀로 거니》니 그 처경은 《외로》울뿐. 윤동주는 1937년 4월 15일에 쓴 《달밤》에서 또 다른 하나의 슬픈 모습을 살려냈다.
흐르는 달의 흰물결을 밀쳐 여윈 나무그림자를 밟으며 북망산을 향한 발걸음은 무거웁고 고독을 반려한 마음은 슬프기도 하다
……하략……
이 시에서 나오는 주인공은 달빛이 흐르는 달밤에 북망산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북망산은 묘지를 상징하는데 고독한 마음에 북망산을 향한 마음은 슬플수밖에 없다. 윤동주시에 반영된 또 하나의 슬픈 모습이다. 이런 슬픔 모습속에서 1936년 6월 26일, 시창작의 왕성기에 쓴 별시 《산림》은 희망이 동반된 새로운 모습도 보여준다.
시계가 자근자근 가슴을 때려 불안한 마음을 산림이 부른다
천년 오래인 년륜에 짜들은 유암한 산림이 고달픈 한몸을 포옹할 인연을 가졌나보다
산림의 검은 파동우로부터 어둠은 어린 가슴을 짓밟고
이파리를 흔드는 저녁바람이 솨 —공포에 떨게 한다
멀리 첫 여름의 개고리 재질댐에 흘러간 마을의 과거는 아질타
나무틈으로 반짝이는 별만이 새날의 희망으로 나를 이끈다
시로 보아 첫 여름의 고느적한 저녁 한때인데 시속의 주인공은 《불안한 마음》, 《고달픈 한몸》을 달래려고 산림으로 향한다. 허나 《어둠》, 《바람》으로 상징한 일제치하는 어린 가슴을 짓밟으며 공포에 떨게 한다. 슬픈 모습이 나타나는 또 한수의 시지만 이 시에서의 모습은 슬프지만은 않다. 나무틈새로 비껴드는 별빛은 《불안한 마음》, 《고달픈 한몸》에 새날의 희망을 듬뿍 안겨준다. 윤동주의 여러 시들속에서 맑지만 않은 슬픈 이모저모의 이미지들을 살펴보았다. 그 시대의 락인인 슬픈 모습들이다. 하늘나라, 별나라를 통한 슬픈 모습들에서 우리는 시대상을 재치있게 다룬 윤동주의 세련된 솜씨를 깊이 터득할수 있다.
5. 별에 희망을 기탁한 시인의 참모습
윤동주는 하늘과 별에 꿈과 희망을 기탁하면서 밝아올 세상을 기대하는 아름다운 시편들을 많이 써냈다. 1938년 2월, 22살에 나는 윤동주는 룡정 광명중학교 5학년을 졸업하고 4월에 고종사촌 송몽규와 함께 서울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는데 1938년 이해 한해동안 《새로운 길》 등 8편의 시와 《산울림》 등 5편의 동시, 《달을 쏘다》 산문 1편을 써냈다.(16) 이같이 윤동주는 연전시절에 시창작에 몰두했는데 인생의 갈림길에서 공부하던 1941년 한해 동안에만 해도 그의 대표작으로 되는 《서시》, 《또 다른 고향》, 《십자가》,《별 헤는 밤》,《새벽이 올 때까지》등 시작품을 포함해 주옥같은 수십편의 시편들을 썼다. 윤동주의 만 27년이란 생애에서 연희전문 문과시절 4년은 《가장 풍요로왔던 시기, 가장 자유로웠던 시기》로 알려진다. 이 시기의 시들이 그 앞선 시기보다 확연히 다른것은 시인의 보다 원숙한 모습인데 그의 시작품들에는 일제 암흑기에도 열심히 살고 깨끗이 살려는 깊은 정서가 푹 배이면서 주어진 길, 새로운 길을 추구하며 밝아올 새벽, 아침을 기대하는 마음,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을 바라는 마음이 여느 때보다 강하게 안겨든다. 서울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후 윤동주가 쓴 첫 시는 《새로운 길》(1938.5.10)이다. 이 시에서 윤동주는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이라고 쓰면서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펼친 청춘의 활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시 《십자가》(1941.5.31)는 명동소학교시절의 그리움을 나타내면서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처럼 되라고 한다면 기꺼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여나는 피를/ 어두워가는 하늘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하고 맹세한다. 겨레를 위해서라면 한 목숨도 주저없이 바치겠다는 비장한 맹세가 거침없이 풍겨온다. 시 《새벽이 올 때까지》(1941.5)에서 시인은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소리 들려올거외다》하고 확신하면서 일제가 꼭 멸망하고 조선민족이 꼭 해볕을 볼 날이 올것임을 보여주었다면 시 《또 다른 고향》(1941.9)에서는 어둠이 비낀 고향 아닌 《아름다운 또 다른 고향》—새 세상을 동경한다. 일제의 멸망을 예고한 윤동주의 이색적인 시는 1942년 6월 3일 일본땅에서 쓴 《쉽게 씌여진 시》이다. 이해 4월 윤동주는 일본 도꾜 립교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가을에 다시 도꾜 동지사대학 영문과에 다니게 되였는데 그때의 조선은 창씨개명까지 강요당한 일본의 식민지였다. 그런 식민지나라의 청년이 자기의 시 《쉽게 씌여진 시》에서 일본은 남의 나라—6첩방이라고 지적하면서 자기는 일본의 신민이 아님을 결연히 선언했다. 한편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스스로를 깊이 반성한다. 나중에 자기의 마음을 다잡으며 자신을 새롭게 정립하기에 이르렀다.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이 시구에서 윤동주는 일제의 식민통치를 《어둠》에 비유하면서 《등불》로 이 어둠을 내몰아간다면 해맑은 아침이 밝아오리라고 굳게 확신한다. 일본땅에서의 대담한 마음의 거사가 아닐수 없다. 어둠과 밝음의 명암대비를 잘 보여준 한편의 훌륭한 시라 하겠다. 이밖에 상기와 같이 별과 관련된 시 《산림》에서도 어둠의 불안한 마음을 나타내면서 새 생활의 상징, 광명의 상징인 별만이 《나무틈으로 반짝》이며 《새날의 희망으로 나를 이끈다》고 했다면 별시 《눈 감고 간다》(1941.5.31)에서는 《태양을 사모하는 아이》,《별을 사랑하는 아이》 모두가 밤처럼 어두운 세상에서 눈 감고 가더라도 광명을 바라고 《가진바 씨앗을 뿌리면서 가거라》고 호소한다. 이 씨앗을 뿌리며 가는자는 다름 아닌 항일의 선구자들일것이다. 윤동주시인의 세계관, 인생관의 발전과정과 나아갈 길은 그의 산문 《별똥 떨어지는데》, 《화원에 꽃이 핀다》와 가장 대표적인 시들인 《별 헤는 밤》,《서시》 등에서 잘 드러난다. 어둠과 밝음의 명암대비가 선명한 산문 《별똥 떨어지는데》에서 윤동주는 일제치하 현실사회의 어둠과 밝음, 불행과 행복을 뚜렷한 명암대비속에서 보여주면서 《행복이란 별스런 손님을 불러들이기》위한 어둠과의 전투를 선언했다. 이 선언이 바로 《밤을 쫓고 어둠을 짓내몰아 동켠으로 훤히 새벽이라는 새로운 손님을 불러》오는것이다. 결국 시인은 동서남북—《어디로 가야 하느냐》에서 《별똥 떨어진데가 내가 갈 곳》이라고 단언하면서 나아갈 길을 찾는다. 또 다른 산문 《화원에 꽃이 핀다》에서는 세계관, 인생관을 스치면서 《정확한 진리를 탐구》하는 모습을 보이였다. 이 모습속에서 시인은 《서리발에 끼친 락엽을 밟으면서 멀리 봄이 올것을》 굳게 믿었다. 별시를 포함해서 윤동주시의 가장 대표적인 시는 《서시》와 《별 헤는 밤》(1941.11.5)이다. 우에서도 스치고 지났지만 《별 헤는 밤》에서 별은 12차나 거듭된다. 윤동주는 아름다운 말을 붙여보는 이런 별 하나하나에 희망을 기탁하면서 밤이 물러가면 아침이 오듯이 겨울이 지나면 희망의 별에도 봄이 온다며 밝은 미래를 확신한다. 《서시》에서는 윤동주시인의 세계관, 인생관, 나아갈 길이 가장 훌륭하게 표현되고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와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 《서시》는 윤동주가 1941년 11월 20일에 쓴 시로서 연전졸업기념으로 출판하려던 18편의 시에 담은 머리시이다. 머리시는 한국의 송우혜선생이 분석한것처럼 《자연히 지금까지의 삶을 뒤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에 대한 각오를 총체적으로 담는 내용》(17)으로 엮어졌다. 보다 더 강조한다면 이 머리시는 윤동주 생활의 신조이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시인의 세계관, 인생관의 집대성으로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와 했》던 시인 윤동주의 량심을 그대로 드러냈다. 따라서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속마음을 내비치면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한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결의한다. 이 결의가 바로 그한테 《주어진 길》을 따라 나아가는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서시》를 통하여 윤동주사상의 성숙과정과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점 부끄럼이 없》이 살기를 원하는 시인의 진정을 헤아리게 된다.
6. 결속어
본 론문에서는 내고향시인이고 조선족시인인 윤동주를 처음으로 별세계와의 관계속에서 조명하면서 별에 대해 유별난 애착을 가진 윤동주의 참모습을 헤아리려고 시도하였다. 본문 시작에서 별애착의 뿌리를 거스르면서 윤동주의 성장에 끼친 집단무의식의 침전을 건드려본것이 그러하고 윤동주의 시를 별시에 따라 분류하면서 맑은 동심이 반짝이는 시들, 흐리고 슬픈 모습들, 별에 희망을 기탁하며 삶을 도모한 진지한 모습을 헤아린것이 그러하다. 윤동주에게 있어서 별은 동심이요, 슬픔이요, 희망이요, 결의요, 참모습이였다. 문학을 지향한 윤동주는 하늘과 별을 시상을 기탁하는 매개물로 삼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윤동주시인이 어찌하여 시세계에서 그토록 별에 희망을 기탁하면서 그토록 밝아올 새벽, 아침을 기대하였는가를 보다 리해하게 된다. 어찌할수 없는 현실에서 별에 희망을 기탁한 시인 윤동주의 참모습이 우렷히 떠오른다. 그 참모습을 아래와 같이 개괄해볼수가 있다. 첫째, 하늘과 별에 대한 전통숭배의식은 의식, 무의식간에 성장하는 윤동주에게 영향을 끼쳤다. 우리 배달민족은 여느 민족들에 못지 않게 하늘을 받드며 별을 숭배하여온 민족이다. 본문에서 취급한 선사시대의 암각화나 력대의 천문자료들, 대대로 전해내려온 전설들이 이를 잘 알려주고있다. 한데서 명동소학교와 은진중학교, 서울 연전시절을 통한 윤동주는 하늘에 숙달하리만치 별과 별자리에 익숙했다. 이는 문학을 지향한 윤동주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을수 없었다. 둘째, 일제하 암담한 시대에 직접 행동으로 일제에 저항할수 없은 윤동주는 새 세계, 새 희망을 별에 기탁하면서 동심이 흐르는 맑은 시들을 적잖게 창작하였다. 동시로부터 보다 원숙한 모습으로 나타난후에도 그의 시에는 보이는바와 같이 동시적인 가락이 그대로 흘러넘치고있다. 동심과 같이 청순하고 거짓없는 윤동주에게 있어서 별의 세계는 그야말로 희망이 넘치는 세계요, 환상의 세계였다. 숨막히는 시대에 살면서 윤동주가 마음상 위안을 느끼며 잠간이나마 어지러운 세상을 잊은 때가 바로 하늘나라, 별나라를 바라보는 그 시각이였을것이다. 하늘과 별의 세계에서 마음을 달랜것이다. 셋째, 실생활속의 윤동주가 보는 세계는 어지러운 세상 그대로여서 이런 숨막히는 현실은 시인의 시작품에 반영되지 않을수 없었다. 그 직접적반영이 하냥 동심과도 같이 맑을수만은 없는 슬픈 모습의 등장이다. 손들어 표할 하늘이 없다는것이나 싸늘한 모습의 달과 그에 비낀 아우의 슬픈 인상화나 북망산을 향한 슬픈 마음이나 세월에 찌든 고달픈 한몸 등등이 그 진실한 체현이라 하겠다. 넷째, 윤동주는 살아가는 험악한 현실에서 직접 행동으로 일제에 저항한 시인은 아니여도 그의 시세계는 결코 소극적무저항이 아니라 적극적저항이 곳곳에 엿보이는 세계였다. 윤동주시인이 어찌하여 시세계에서 그토록 별에 희망을 기탁하면서 그토록 밝아올 새벽 그리고 아침을 기대하였는가가 여기에서 풀려간다. 하늘과 별, 자연의 섭리가 시에서의 이미지형상화에 좋은 감으로도 되겠지만 일제하 험악한 세월에 윤동주시인은 시라는 무기를 들고 그런 방식으로 싸워갈수밖에 없었다. 시창작이란 이 주어진 길로 나아가는것이 윤동주시인의 삶의 자세였다. 결론은 하나다. 윤동주는 별을 사랑하고 별을 노래하려는 결의를 지니고 시창작에 나선 별의 시인이였고 자기한테 주어진 길—시창작으로 훌륭한 시편들을 써내며 마음을 표달한 투사시인이였다.
주해:
(1)(2) 한국 충남대 신용협선생의 론문—《윤동주론》에 따르면 한국의 백철선생이 윤동주를 《암흑기 하늘의 별》로, 김우종선생이 《암흑기 최후의 별》로 보았다. 《윤동주론》은 1994년 제6호 《문학과 예술》지에 실리였다. (3) 박충록, 윤동주의 시세계, 《장백산》1991년 제3호, 제123페지 (4)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2002년 7월 (5) 김성호, 민족시인 윤동주님을 기리며: 윤동주시집,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2002년 7월 (6) 나일성 저, 한국천문학사,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년 10월, 제61-62페지 (7) 동상서, 제65페지 (8) 동상서, 제67-68페지 (9) 동상서, 제107페지 (10) 윤동주는 항렬에서 맏이고 그들 남매는 3남 1녀였다. 동주 아래로 녀동생 혜원, 남동생 일주, 광주가 있었는데 막내 광주가 룡정태생인외 웃 3남매는 모두 명동태생이다. (11) 1917년생인 윤동주는 1925년, 만 8살에 명동소학교 입학, 1931년 3월 25일에 졸업하고 달라자 현립1교 6학년에서 1년 공부, 1932년 4월에 룡정 은진중학교에 입학, 그간 평양 숭실중학교에 다니다가 페교되니 룡정 광명중학교 4학년에 편입, 1938년 2월 17일에 광명중학교 5학년 졸업하고 4월 9일에 서울 연전에 입학. (12) 송우혜: 윤동주평전, 한국 열음사, 1988년 10월, 제199-200페지 (13)(14) 신용협 (한국 충남대): 윤동주론, 문학과 예술, 1994년 제6호, 제60페지 (15) 송우혜, 윤동주평전, 한국 열음사, 1988년 10월, 제175페지 (16) 동상서, 제191페지 (17) 동상서, 제248페지
《도라지》 2005년 제4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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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2 ]
2 작성자 : 상공
날자:2006-03-10 10:32:13
인제는 시에 대한 연구를 하시는가요?
아므튼 多才多藝입니다.
1 작성자 : 연암
날자:2006-03-10 09:46:42
윤동주시인 별애착의 뿌리에 대한 분석--선사시대의 암각화로부터 력대의 천문자료와 전설에서 그 뿌리를 찾은 분석은 설득력이 있으며 다른 론문들과 구별되는 시각이 독특하다. 론문의 깊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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