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5시반에 일어나니 아침준비에 분주하던 안해는 밖에서 함박눈이 펄펄 쏟아진다고 귀뜸한다. 눈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북쪽 창문가로 다가가니 에크, 폭설이다. 4월의 때아닌 폭설은 이미 한자깊이의 자눈을 이루고있었다. 어제 오후 3시반부터 4시반사이 사분사분 내린 함박눈이 비물, 눈물속에 물봉당을 이룬 상태서 저다지도 두텁게 내렸으니 실제 눈은 한자폭을 넘어섰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도 온 하늘이 그대로 무너져내리는듯싶은 탐스러운 함박눈은 계속 하염없이 쏟아져내린다. 4월의 폭설이다. 그 소감을 적어두어야겠다는 충동을 전에없이 강하게 느끼였다.
이해 봄에 잡아들어 봄기후는 그지없이 반상적이다. 말그대로 이상기후다. 지난 2월 25일, 연우산악회 주말산행은 연길 북부의 뾰족산에서 펼쳐졌는데 밤사이 자귀눈이 내려 대지는 온통 소복단장을 하고있었다. 그때 봄비님 등 녀사님들은 이 눈이 이해의 마지막으로 되는 복눈이랴싶어 기념사진속에 빠져들며 2월의 눈에 깊은 사랑을 쏟아부었다.
헌데 그게 아니다. 3월 11일 주말산행으로 연우산악회 일행은 연길 로잔(老站)부근에 모이였다면 산행지 의란 두레마을 정병석사장님이 옥저님한테로 걸려온 핸드폰은 대단히 매혹적이다. 금요일 연길엔 진눈까비가 내렸다지만 두레마을과 그 일대는 이 새벽에 큰눈이 내렸단다. 과연 두레마을이 자리잡은 그제날 왕우구항일근거지 골안은 어디라없이 정갈한 눈세계여서 산행일행은 지난시기 항일유격대처럼 산속의 눈속을 헤쳐가야만 했다. 그러는 연우산악회 일행은 흥분속에 빠져버렸다. 하다면 3월 11일 큰눈이 이해 마지막 눈일가? 아니, 역시 그게 아니다. 4월 8일 토요일 주말산행지는 룡정 서남부의 대포산으로 그러졌는데 약수동 샘물터로 이어진 골안의 북쪽 산기슭에서 그날 일행은 밤새 내린 눈에 이어 또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이했다. 하늘땅을 삼키며 무더기로 쏟아지는 눈은 이윽토록 그칠줄 몰랐고 숱한 기념사진이 쏟아졌다.
골안 북쪽 산기슭 참나무무지에서 합영할 때였다. 언제봐도 유머를 토해내는 송이님이 《에헤, 봄눈이요, 풍년눈이요!》하며 좌중을 웃기더니 4월의 청명직후에 내린 눈을 우리 중국에서는 호설(好雪)인 서설(瑞雪)이라고 한다며 서설이 내리면 풍년들 징조라고 말한다. 한국인 여산님, 신벗님은 한국에서는 서설이 아닌 춘설(春雪)이라고 한다며 보기드문 4월의 눈내림이라고 그리도 기꺼워한다.
그때 필자는 이런 말을 던진바 있다. 소학고 저급학년때인 1963년인가 1964년도 4월 16일에 전에없는 큰눈이 소복소복 내리여 대지가 때아닌 눈속에 덮혀버린적 있다고, 그러면서 나이 반백에 이르러 두번째로 보는 4월의 봄눈인듯 싶다고 동을 다니 그 세월에 태여나지도 않은 30대 후반, 40대 초반의 30 40들은 짙은 흥미를 보여준다.
소학교 2~3학년 시절의 4월 16일 큰눈—그때도 오늘의 4월 20일 폭설같은 눈사태. 아침에 일어나니 밤새내린 폭설이 백옥을 뿌려 놓은듯 마을이고 들이고 산들을 덮어버렸었다. 신나기만 한 철부지 필자는 집 뜨락의 눈속에서 마구 뒹굴며 놀다가 하나밖에 없는 녀동생 명희와 누나, 형님들을 불러내 눈덩이를 굴리기 시작했다. 봄바람에 녹아져내리는 눈들은 굴릴수록 커만 갔다. 너무도 커 더는 움직일수 없을 정도에 이르러서야 눈덩이를 세워놓고 눈사람을 만들었는데 삽으로 보기좋게 변두리를 깎아내고 그우에 둥그런 눈덩이를 올려놓으니 제법 눈사람 같았다. 장난기가 동한 필자와 녀동생 둘이 나무가지를 꺾어 눈과 코, 눈섭, 입 등을 만드니 뛸데없는 눈사람이였다. 그래도 모자라는것 같아 눈덩이로 팔까지 만들고 그 사이에 자작나무로 만든 마당비를 걸쳐놓으니 눈치기에 나선 눈사람이 우릴 보고 빙그레 웃는것만 같았다.
했으나 그해가 1963년인가 1964년으로만 헤아려졌지 딱히 어느해라고 찍을수는 없었다. 필경은 철부지 시절의 일이라 4월 16일이라는 날자만이 기억에 새로울뿐이였다. 그래서 룡정의 대포산 산행시 필자는 동료들한테 두해중 어느 해라고 몽롱하게 그 나날을 돌이켰을뿐이였다. 그러던 1963년, 1964년이 1964년의 폭설이라고 밝혀졌으니 그날은 대포산 산행이 있은 뒤의 열흘후 4월 18일이였다.
4월 18일 이날 필자는 실무차 연변대학 사회과학학보 주필실에서 연변대 최후택교수를 만났고 교수의 석사연구생인 연변대 재직강사 김향화씨 등과 함께 연변대 부근의 한 음식점에서 점심상에 앉게 되였다. 식사와 이야기를 끝내고 일어서니 밖에서는 거위털같은 함박눈이 하늘이 미여지게 펑펑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반상적인 기후, 반상적인 눈을 두고 필자가 1963년도인가 1964년도 4월 16일에 폭설—큰눈이 내린적 있다고 회고했더니 필자 연변대 재학시절의 중공당사교원—최후택교수는 1964년도라고 찍어말하였다. 1964년도뿐만아니라 1955년 5월1 일에도 큰 눈이 내려 말이 아니였다고 덧붙이는 교수님, 그러는 교수님의 튕김에 안해가 하던 말이 불쑥 떠올랐다.
바로 2~3일전 4월1 6일이다. 그날도 아침에 일어나니 바깥세계는 천지간이 온통 눈세계를 이루고있었다. 큰눈은 아니지만 자귀눈 정도를 넘어서 몇센치메터 정도의 눈이여서 필자는 감탄해마지않았다.
《1963년이든가, 1964년 4월 16일 아침도 일어나니 큰눈이더니 40여년후의 오늘 4월 16일 아침도 꽤나 되는 눈이구만!》
《글쎄요. 하늘이 4월 16일을 점지한 모양이예요.》
《묘하기도 하지. 40여년을 뜸을 든 4월 16일에 두번다 서설로 불리우는 풍년맞이눈이 내리니 말이요. 60년대 그때 4월의 눈이후 더는 4월에 내리는 큰 눈을 본것 같지 않은데…》
《엄마가 말씀한데 의하면 내가 태여난 1955년 봄에 큰 눈이 내렸다고 합니다.》
안해와 주고받은 4월 16일 아침의 대화다. 3일후인 4월 18일에 연변대 최후택교수님으로부터 교수님의 소학교 2-3학년 시절인 1955년 5월 1일로 확답을 받았으니 세상사란 이같이 어울려 돌아가는 모양이다. 장장 반세기를 두고 1955년 5월 1일, 1964년 4월 16일에 폭설이 내리고 2006년 4월 16일에 또 꽤나 큰 봄눈이 내렸으니 기억도 새로운 세차례 봄눈이다. 이 세차례를 두고 4월에 내리는 큰 눈을 보지 못하였으니 필자의 선배친구인 문동규님의 4월 18일 말처럼 2006년도 봄눈은 머리에 털이 돋아 처음이라질 않는가.
이해 2월 25일 뾰족산 산행, 3월 19일 두레마을 산행, 4월 8일 대포산 산행으로부터 4월 16일 봄눈, 4월 18일 봄눈에 이르기까지 쭈욱 이어진 때 아닌 4월의 눈과 그 눈에 엉켜진 지난 옛시절의 눈이야기다. 한 겨울이나 겨울이 가는 시절의 눈도 아닌, 보기 드문 4월의 눈이야기. 4월의 청명후에 눈이 내리면 서설이고 풍년들 징조라니 그 감수가 보다 감미롭기만 하는걸가.
할진대 4월 16일, 4월 18일의 눈이 또 이해의 마지막 눈일가? 아니, 역시~ 역시 그게 아니다. 4월 16일부터 련 4~5일 눈내림이, 눈발이 흐린 날씨에 끊어졌다 이어졌다 동안을 두더니 4월1 9일 오후부터 녹으며 내린 눈은 밤새 계속되더니 폭설로 변해버렸다. 오늘 4월 20일 오전 9시가 지나서야 쉬임없이 내리던 눈은 내리기를 멈추지 않는가.
오늘의 폭설이 전례없는 대풍년의 복눈일가, 아니면 4월의 전례없는 피해눈일가—이는 올해 세월을 보아 최종판단할 일이지만 때 아닌 4월의 폭설은 연길의 거리거리부터 휘딱 뒤죽박죽을 만들어놓았다. 아침 6시부터 4월의 폭설을 사진기록하려고 사진필림 사러 집부근 거리에 나섰더니 층집아래 길가 전화선 한갈래가 끊기여나가고 주요거리의 수십년생 버드나무가지들이 무더기로 꺾기여 길바닥에 드리운 눈속 살풍경이다. 동쪽행 길가엔 30~40센치메터 폭의 버드나무 한그루가 뿌리부터 끊기며 아스팔트길을 가로질러 모든 차량들이 스톱이다.
이거 야단났다. 약삭바른 개별운전사들은 그런대로 길가를 가로질러 빠지기도 하지만 그것도 약간 차량뿐, 차들이 막혀버리니 등교길에 오른 중소학교학생들이 발을 동동 구른다. 시내뻐스가 만원(满员)을 이루고 택시차들은 학생들 쟁탈대상이다.
연변텔레비 저녁뉴스에서는 오늘의 폭설을 유사이래 보기 드문 폭설이고 력사상 처음이라지만 사실은 광복후만 해도 처음은 아니다. 그에 따라 오늘 피해사례가 속속 드러나는것 같다. 연길~도문구간 고속도로가 운행이 전면 금지되고 연길공항려객기들이 어제 저녁 8시~오늘 오후 4시까지 결항된것은 물론 려객뻐스운송이 지장을 받고 농촌의 남새하우스, 벼모하우스들이 정도부동하게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연길시만 해도 시가지 가로수들이 끊어져넘어지거나 팔뚝같은 나무가지들이 꺽어진것이 도처에서 눈에 띄인다.
연길뿐이 아닌 연변대지, 한국도 때아닌 4월의 눈피해를 심히 받은 모양이다. 강풍피해속에서 허다한 항공편, 배편 결항이 잇따르더니 강풍경보, 주의보가 이어지며 강원도 등 지방에 눈사태가 쏟아진다.
그래도 송이송이 추억을 부르는 4월의 봄눈은 연변 대지를, 연길거리를 그림같이 아르답게 수놓았다. 아빠트아래 세계, 거리의 가로수, 강가 식물원의 소나무류들을 사진속에 잡아넣으니 항간의 속담과 같이 풍년을 약속하는 길한 눈은 영원한 추억사진으로 남을것 같다.
어디 그뿐인가, 오전 9시 실무차 연변대 정문길에 들어서니 길 량켠과 연변대 중심 종합청사앞의 소나무세계가 그리도 매혹적일수가 없다. 그런 장면장면을 사진기록으로 남기는데 중심청사 앞은 벌써 기념사진을 찍는 학생들로 법석인다. 연변대도 정문에 두른 색등선이 끊기여 떨어지고 중심청사 앞의 팔뚝같은 소나무가지가 끊어져 내렸지마 소나무류에 담뿍담뿍 내려앉은 눈송이들이 어서 오라 눈짓하는상 싶다.
이번 눈도 이해의 마지막 눈일가, 그런것 같지가 않다. 이상기후 안고 서두르는 4월의 봄날은 이제도 수차나 눈발을 날릴것만 같다. 선참 근심되는것은 4월 22일 지구의 날에 펼쳐질 다채로운 활동안은 대암구간 산행이다.
(이제 더 눈이 오지 말았으면…)
연변대학 정문길에서 은근히 기원해보지만 보기드문 4월의 폭설설경을 놓칠수는 없었다. 연변대에 출근하는 안해를 부르니 직장동료 3~4명이 동행했는데 그네들을 사진속에 담는 시각이 좋기만 했다. 1964년 4월16일의 폭설을 40여년후 추억속에 떠올려 볼 때 2006년 4월 20일의 폭설도 먼 후날의 추억으로 남겠으니 어찌 흥나지 않으랴.
어제 오후부터 내린 눈은 오늘 오전 9시 지나서야 끊기였다. 점심 한때는 해가 빠끔 머리를 내밀기도 한다. 어찌하든 봄눈은 역시 봄눈이여서 오후 3시에 이르러서는 몇센치메터 두께로 소리없이 녹아내렸지만 누군가 장난삼아 만들어 놓은 아빠트 앞뒤 뜨락 눈사람 몇은 그 위용이 여전하다.
4월의 폭설, 폭설의 소감—필자는 늦은 오후 이 시각도 아빠트 창문가에 서있는다. 먼 후날 추억속에 그려볼 2006년 4월 20일이 1955년 5월 1일, 1964년 4월 16일 봄눈과 어울려 서서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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