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함
http://www.zoglo.net/blog/liguangren 블로그홈 | 로그인
<< 1월 2025 >>
   1234
567891011
12131415161718
19202122232425
262728293031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나의카테고리 : 칼럼/단상/수필/기행

내 고향 여행(26)ㅡ평봉산에서 최대 돌성벽을 발견하다(2)
2006년 02월 19일 00시 00분  조회:2723  추천:91  작성자: 리함
내 고향 여행(26)

평봉산에서 최대 돌성벽을 발견하다(2)

리 함


병풍산 동쪽가 돌성벽을 떠나니 걸음마다 아찔아찔한 벼랑바위가이다. 이런 벼랑바위가 동북쪽으로 방향을 돌리며 구비구비 돌아가는데 옛장성은 내내 흔적조차 알리지 않는다. 홀몸으로 벼랑가 구비를 타고타는데 까마득히 깊어만 보이는 거대한 벼랑구비가 앞을 막아나선다.
벼랑가에서 숨을 돌리노라니 홀연 필자의 시선에는 저앞 벼랑바위를 날아예는 독수리 한마리가 맞혀왔다. 나래를 펼치고 여유작작 날아예는 독수리는 산속의 일반 새류들에 비해 엄청나게 커보이였다. 또 벌써 벼랑바위 중턱에서 몇번이나 선회하였는지 모른다. 보매 인기척에 놀라 하늘에 날아오른 모양인데 봄이 다가선다고 둥지짓기에 여념이 없을수도 있으리라, 독수리가 벼랑바위를 떠나지 못하는걸 보면 그 부근에는 필경 독수리만의 둥지가 있을것이 뻔했다.
그러는 필자에게는 독수리를 처음 보았던 소학교 4학년시절이 선히 떠올랐다.
아마도 봄날의 4~5월기간으로 기억된다. 워낙 시골아이라 산을 타기 좋아하던 필자는 그날도 나 또래 아이 둘과 더불어 셋이서 마을의 서남쪽 높은 산인 봉산림에 올랐다. 봉산림 정상은 평소 인적이 닿지 못하는 산지대로서 정상부는 옹근 바위로 이루어졌다. 하루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른다고 무작정 정상이라고 오르고보니 남쪽구간은 가파른 산기슭이고 정상아래는 높지 않은 낭떠러지인데 산아래 평지로는 베개봉에서 발원하는 해란강이 오유히 흘러내려 그림같이 아름다왔다.
그때였다. 발밑 정상아래를 굽어보니 해묵은 참나무 웃초리에 시골의 닭궁주리나 까치둥지보다도 더 큰 검스레한 최대형 둥지가 보이였다. 봄이면 봄마다 여러가지 새둥지 들추기에 이골이 튼 철부지 시골아이가 이런 둥지를 지나칠리가 만무했다. 앞장서 바위아래로 내려가니 바위앞은 몇메터는 잘되여보이는 공지인데 그 공지에 자라난 아름드리 참나무 웃부분에 최대형둥지가 자리를 틀고있었다. 처음 보는 둥지를 보고 입을 딱 벌리다가 참나무에 바라오르기 시작하는데 어디선가 아츠러운 새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우를 쳐다보니 아풀싸, 두 날개를 펴든 독수리 한마리가 높은 상공에서 곧추 하강하며 비명을 지르고있었다. 그러는 독수리가 어찌도 커보이는지 시꺼먼 몸둥이아래로 내리드리운 두 마리의 날카로운 발톱이 그대로 보이였다.
급해난것은 필자였다. 독수리를 쫓느라고 나무가지를 흔들며 소리지르다가 나무아래에 이른 두 애를 보고 몸에 지닌 낫을 뽑아 흔들며 소리치라고 소리질렀다. 그 서슬에 금시 덮칠듯 급하강하던 독수리는 10여메터 상공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하늘에 오르는 것이였다. 이렇게 수차나 급하강을 시도하다가 세아이의 결사적 반격에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였다.
그래서야 한시름 놓았지만 온몸은 땀투성이였다. 독수리는 어린애기도 척척 채가지고 날아간다는 어른들 말이 생각나니 초긴장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구러 독수리둥지에까지 오르니 둥지는 까치둥지와는 달리 닭둥주리처럼 위는 막지 않았고 복판에 방아호박같은 깊이가 생겨났다. 주변은 새털, 종이, 마른풀들로 두르고 그 안에는 거위 알보다도 더큰 독수리 알 하나가 댕그라니 놓여있었다. 후에보니 독수리알속에는 독수리 새끼가 형성되고있었다.
그때가 어제런듯 싶은데 어언 40여년전 일이다. 그런데 40여년이 지난 오늘 또 발치에서 날아예는 독수리를 보았으니 감수가 류달리 새로왔다. 소시적 고향의 어른들도 평생가도 고향산에서 독수리를 보지 못하였다는 독수리를 필자는 두번이나 보았으니 행운이라면 큰 행운이였다. 하긴 갈길이 급해 독수리둥지가 어디에 있는지 가려볼 사이가 없었다.
여러개의 벼랑구비가 끝나는 곳에 반원을 이룬 벼랑바위가 나지고 그우에 옛 봉화대가 솟아있었다. 지칠대로 지친 필자는 어느결에 반원형 벼랑바위를 돌았는지 몰랐다.
봉화대에 이르니 그닥 크지안은 일반형 봉화대가 필자를 맞아주었다. 울컥 치미는것은 누군가 이곳에서도 흙과 돌로 축조된 봉화대 심장부를 마구 파헤쳐 볼성사나운 모습을 드러낸 것이였다.
탄식이 절로 났다. 팔도 쌍봉촌 동쪽구간에서 말무덤을 제외하고 두번째로 발견한 봉화대인데 모두가 파헤쳤으니 무지몽매한 행동이 가증스러웠다.
그 시각에 서쪽 병풍산 나무숲에서 필자를 부르는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하나의 목소리가 아니라 여럿이 목소리를 합친 소리였다. 그런 소리와 단소리가 여러번 들리기에 온힘을 다해 수차 소리질러도 그들은 듣지 못한 모양이였다. 겨울바람이 갈바람되여 서쪽에서 불어오니 동쪽에서의 웨침이 그들한테 전해질리 만무했다. 핸드폰이 꺼진것도 몰라 그들이 걸어오는 핸드폰도 받을수가 없었다. 뒤미처 그들이 봉화대에 이르렀을 때는 한시간은 잘 지난것 같았다.
뜻하지 않은 불찰로 또 하나의 시간소모와 스트레스를 초래했다. 필자의 불찰에서 인기되였으니 선후 두번의 곤혹에서 우린 두어시간의 보귀한 시간을 잃어버렸다.
이날 첫 봉화대를 떠나 동으로 벼랑가 나무숲을 헤쳐갈 때 또 하나의 봉화대가 나타났다. 이 봉화대는 비교적 큰 축에 속하는데 전부가 돌로 쌓여져 인상적이였다. 봉화대우에서 쉬면서 일행은 지닌 과일과 샘물을 나누었고 려로의 스트레스를 풀었다. 오는 정 가는 정에 산악회는 산행의 기쁨을 다시 찾았다. 이 기쁨에 걸맞게 엄청난 기쁨이 우리한테로 다가오고있었다.
돌로 축조된 봉화대를 지나 한참 나아가니 서쪽에서 동쪽으로 경사진 풀밭이 나타났다. 동서 두쪽은 낮다란 바위산이였고 필자의 두눈은 혜성처럼 빛났다. 두 바위산 사이를 옛 석성이 가로 질렀으니 말이다. 어디서 그런 힘 솟구치는지 필자는 《저 아래 돌성벽이 있다!》고 소리지르며 선두에서 마구 내리달았다. 뒤미처 뜻밖의 기쁨에 접한 일행도 하나둘 석성에 다가들었다.
두 바위산 사이 석성은 좋이 300~400메터는 잘 되여보인다. 500메터가 될지도 몰랐다. 기본상 무너져 내린 모습이지만 한두자, 한메터쯤 쌓여진 구간도 가끔 보이였다. 일행은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 옹근 고구려 300리 옛장성 중 지금까지 본데서 최대길이의 돌성벽이였으니 그럴만도 하였다.
옥저님이나 상공님은 디지털사진찍기에 여념없고 필자도 연속 사진기셔터를 눌러댔다. 송이님은 병풍산에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비디오촬영기를 들이댄다. 그러는 속에서 시간은 빨리도 흘러갔으나 누구도 개의치 않고 옛 석성 감상에 시간가는줄 몰라했다.
동쪽구간 바위산에 오르니 수십메터 밖 동남쪽에 또 벼랑바위가 나지고 그 사이에 또 20메터 쯤의 석성이 내려다 보이였다. 이미 오후 두시가 가까와 오는 때라 배고픔이 들볶았으나 일행은 최대형 돌성벽 발견으로 배고픔을 이겨갔다. 금방 두번째로 산행에 가담한 목장님과 오늘 첫날인 청계님도 10여킬로메터 산행길을 용케도 이겨냈다.
병풍산에서 뻗어내린 벼랑바위 최동단가에서 연우산악회 13명 일행은 또 나지막한 산을 방불케하는 최대형 봉화대를 발견하였다. 동서길이는 상대적으로 짧은 대신 남북길이는 산세따라 20여메터는 되여보이고 높이는 4~5메터는 넘어보이였다. 목측의 대강 수치지만 여적 보아온 봉화대가운데서 최대형인것만은 틀림없었다.
벼랑바위 최동단에서 산세는 동북쪽으로 심하게 구비를 탈았다. 아직도 한구간 구비를 돌아야 오늘의 주공방향—평봉산의 두 바위산 사이 돌성벽에 이를수 있는데 시간이 너무도 빨리 흘러가 후일로 미루어야 했다. 동쪽으로 10리쯤은 되여 보이는 대암치기 마을의 한 민가에서 시골음식상을 끝냈을 때는 오후 3시를 넘긴 시점이였다. 전체일행의 등산신 전부가 신안까지 후줄근했고 바지가랭이까지 젖어들어 신이고 바지고 온통 흙봉당이다. 처음 겪어보는 모습들이다.
연속 곤혹을 치르기도 하고 최대형 돌성벽과 최대형 봉화대를 발견하기도 한 하루는 이렇게 흘러갔다. 필자는 산행답사를 마치는 산비탈 내리막구간에서 고구려 옛사람들의 손길이 닿은 타제석기 모양의 돌 한점을 주었으니 행운이 찾아들기도 한 하루이기도 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전체 [ 1 ]

1   작성자 : 특송
날자:2006-02-20 04:41:44
덕분에 옛 고구려 장성 팔도에서 평봉산 구간을 답사할수 있어 감사합니다. 평봉산 기슭(한국분이 경영하는 소 방목장)에서 기슭으로 부터 산으로 잇는 돌 성벽과 옛 돌집으로 추정되는 돌로 쌓은 약 150-200평방메터쯤 되는 흔적을 보통님과 함께 다른 코스로 내려오며 발견하였습니다. 참고바랍니다.
Total : 391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71 [스케치]옛 장성으로 이어진 지구의 날 산행 2006-04-23 113 3459
70 100돐기념론문ㅡ북향회와 강경애고문의 활약상 2006-04-21 121 3607
69 내 고향 여행(34)ㅡ폭설—4월의 봄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2006-04-20 98 3942
68 내 고향 여행(33)ㅡ우린 백석라즈에서 서로 만났다 2006-04-17 79 3434
67 론문(6)ㅡ강경애는 김좌진장군을 암살한 공범인가? 2006-04-14 92 3963
66 강경애 연변 룡정에서의 11년 2006-04-14 78 3375
65 강경애의 첫 간도행은 1931년 2006-04-14 92 3102
64 내 고향 여행(32)ㅡ눈내리는 4월에 대포산 빗나가다 2006-04-08 95 4477
63 내 고향 여행(31) 소녀의 렬사비앞에서 2006-04-03 83 4378
62 내 고향 여행(30)ㅡ북도끼봉 산행이야기 2006-04-02 87 3285
61 내 고향 여행 (29) 칼바위산에 이어 남도끼봉에 올랐다 (2) 2006-03-26 75 2946
60 내 고향 여행 (29) 칼바위산에 이어 남도끼봉에 올랐다 (1) 2006-03-25 67 3235
59 내 고향 려행 (28) 초모정자에 올라 봉오골 굽어보다 2006-03-19 91 3430
58 론문 (5) 윤동주는 우선 먼저 우리 조선족시인 2006-03-13 74 3617
57 론문(4)ㅡ윤동주시의 별세계 2006-03-09 63 3375
56 내 고향 여행(27)ㅡ이른 봄의 뾰족산 산행 2006-02-25 90 3883
55 내 고향 여행(25)ㅡ평봉산에서 최대 돌성벽을 발견하다(1) 2006-02-19 99 3280
54 내 고향 여행(26)ㅡ평봉산에서 최대 돌성벽을 발견하다(2) 2006-02-19 91 2723
53 론문(3)ㅡ극본《혈해지창》,《싸우는 밀림》의 진실한 배경과 작자문제 2006-02-15 93 4126
52 내 고향 여행(24)ㅡ산속 옛장성은 10여리를 뻗어갔다 2006-02-12 83 3381
‹처음  이전 12 13 14 15 16 17 18 19 2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