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뜻하지 않은 꽃샘추위가 으스스 들볶더니 토요일 주말산행날 4월 1일은 화창한 봄날이다. 중형뻐스로 팔도를 거쳐 북도끼봉 북쪽기슭에 이른 산행일행은 첫시작부터 숨을 헐떡이며 웃옷들을 훌훌 벗어내친다. 산중턱에 이르러 다리쉼을 할때는 너도나도 간편한 봄철옷차림이다.
고즈넉한 북쪽기슭은 하늘을 찌르는 참나무숲 세계이다. 봄이 왔다고 뭇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귀맛좋게 들리는데 산정으로 이어지던 발구길은 중턱에서 동강나고 가파른 산기슭부터는 눈이 쭈욱 깔려 말째다. 그속에서도 산중턱 웃가에 바위무리가 나타나 일행은 바위무리에 올라 산행의 첫 즐거움을 맛본다. 그때의 즐거움은 산행인이 아니고서는 리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음 구간부터는 눈이 무릎을 넘는 산지대라 하겠다. 꽁꽁 다져진 눈들이 오는 봄을 이기지 못하여 무너져내리니 매 한걸음 톺을 때마다 발이 푹푹 빠지며 무릎을 넘어선다. 가까스로 이 구간을 지나니 거대형 바위산—북도끼봉이 앞을 막아나선다. 잠간 쉬면서 보노라니 북도끼봉 동쪽가는 수직이다싶이 가파른 바위산인데 서쪽가는 느슨하게 경사진 바위산이다. 산신님이 선발대로 서쪽가 바위굽으로 사라질 때 동쪽가에 다가선 옥저님이 일행을 부른다. 봇나무님이 벌써 앞장서고 너나없이 줄레줄레 이어선다.
했으나 북도끼봉 동쪽가는 급하게 경사진 절벽지대여서 이 구간으로 정상에 오른다는 것은 무리였다. 정상에는 벌써 우리 패가 아닌 두어사람이 서성거리며 서쪽가로 올라야 한다고 소리지른다. 그럴 때 수정님과 봇나무님은 느슨한 바위구간을 보아내고 동쪽가로 오른다고 서둘러댄다. 일행은 무리라고 나무리며 바위밑을 에돌아 서쪽가로 향했다.
북도끼봉은 웅장한 바위산이였다. 한참이나 바위굽을 도는데도 서쪽가가 나타나질 않는다. 경사도가 급한 바위구간이 이슥토록 이어서는데 두터운 바위이끼가 해면마냥 푹신푹신하여 신명이 난다.
경사도 급한 바위구간을 지나니 동서로 완만하게 뻗어오른 바위기슭이 곧추 정상으로 이어섰다. 이 지대에 들어선 이는 옥저님, 목장님, 뿌리님, 두만강님 넷이다. 넷이 북도끼봉 정상에 다가설 때는 서쪽가 선발대로 나선 산신님과 수정님, 봇나무님이 손저으며 맞아준다. 수정님과 봇나무님은 일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동쪽가 바위굽으로 정상에 오른 모양이였다. 그러는 두 녀사님이 돋보이기만 했다.
이윽고 서쪽가 중간지대로 상공님, 신벗님, 바우님, 향기님, 심진님 5명과 송이님이 정상에 올랐다. 때는 정오를 바라보는 오전 11시 반, 그러니 중형뻐스에서 내려 북도끼봉 정상에 오르기까지 장장 두시간이 걸린 셈이였다. 실제로 북도끼봉 북쪽 산아래 길가에서 도끼봉 바위굽에 이르기까지는 한시간밖에 걸리지 않아 동서남북으로 북도끼봉에 오르는 최단거리이기도 했다.
연우산악회 일행 13명은 북도끼봉 정상에서 먼저 오른 진달래산악회와 마음잇기(心连心) 산악회 일행 20여명과 기꺼운 제휴를 가지였다. 다같이 기념사진도 남기고 야호삼창도 부르니 북도끼봉 정상은 30여명 산악인들로 북적이였다. 옥저님과 상공님은 명함장을 교환하며 진달래산악회, 마음잇기산악회 회장님들과 어울려 돌아가며 향후우정을 돈톡히 쌓아갔다. 그사이 연우산악회 녀사님들은 신벗님과 기념사진을 남기며 정상의 기쁨을 나우었고 필자는 남쪽의 남도끼봉과 석산골, 금불골을 굽어보기도 하고 북쪽산너머의 김정숙 녀사 생가터—도끼봉마을과 팔도구 호조골에 눈을 팔기도 하였다.
북도끼봉 정상에서의 크라이막스는 정상부에서 가진 점심참이다. 연우산악회가 세워져 야외에서 가지는 첫 점심참은 밥이며 여러가지 채며 무우오리며 명태며 간식이며 송이술이며가 풍성하여 일행은 시간가는줄 몰랐다. 상공님이 4월 22일 지구의 날 행사를 선포하면서 어제가 두만강님의 생일이였다고 공개하여 서로간 술잔이 오가는 속에 《생일축하》노래가 우렁차게 터져올랐다. 북도끼봉 정상은 이윽토록 노래소리, 웃음소리 그칠줄 몰랐다.
♣ 산행이야기 2
정오 12시가 지나 일행은 북도끼봉에서 하산하기 시작했다. 북도끼봉 서쪽가 또다른 하산길이라 눈이 녹은 산비탈은 내리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바위산을 내리니 또 왼쪽으로 에돌아 바위산아래 기슭으로 산을 내려야 했는데 가랑잎으로 덮힌 가파른 산기슭은 숨은 얼음판세계여서 까닭하면 궁둥방아를 찧기가 십상이다. 벌써 궁둥방아를 찧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웃음판이 터진다. 잇따라 궁둥방아를 찧는 이들이 늘어가다가 향기님이 당해 한참 일어나지 못한다.
모두가 가슴을 조일 때 선두에서 산을 내리던 산신님이 내리막속도를 죽이지 못하다가 궁둥방아를 찧어 땅을 짚던 두손이 기우는 몸에 눌려 정신이 아찔해 한다. 그저 웃고지날 일이 아니였다. 일행이 조심조심 산을 내리니 하산속도는 느리여졌지만 안전에 비상이 걸리여 좋기도 헀다. 급지대 산기슭을 내려 평지대 참나무 숲속에서 다리쉼을 가질 때 옥저님이 디지털사진기를 내들어 숲속의 그 시각이 고스란히 기념사진으로 남는다.
일행은 어느덧 북도끼봉 남쪽기슭을 내려 저멀리 산아래 석산마을로 이어진 산길에 들어섰다. 동남으로 뻗은 10여리 산길이 즐겁기만 한데 도중에 달래캐기에 나선 아낙네 여럿을 만나 봄기운에 한껏 젖어보기도 했다.
이때다. 웅장한 북도끼봉이 그리도 장관일수가 없다. 봇나무님이 북도끼봉이 아닌 연우봉으로 안겨든다고 소감을 터놓자 일행은 연우봉이 좋다고 떠들어댄다. 하긴 북도끼봉에 진달래패며 마음잇기패며 연우패며 동행했으니 연우(连友)가 옳기도 했다.
♣ 산행이야기 3
10여리 산길을 내리니 여러개 마을로 이루어진 석산촌이 일행을 반기여준다. 집뜨락에서 나무를 패는 마을사람들과 잠간 이야기를 나누니 석산촌 여러개 마을을 합쳐 보아야 50~60세대밖에 안된다고 한다. 얼핏 보기에는 100여세대도 넘어 보이는 마을인데도 말이다.
산아래 첫두마을인 석산 1대, 2대를 지나니 앞마을 3대가 바라보인다. 인상적인 것은 3대 마을 뒤 산기슭에 유표하게 안겨드는 렬사비다. 이 렬사비 서쪽가에 최순임소녀 기념비가 있어 더더욱 마음을 끄당긴다.
최순임소녀는 이름난 항일렬사이다. 소녀는 1917년생이고 구수하 영창동사람으로서 항일소선대원이였다. 1933년 6월 26일, 최순임소녀는 조직의 지시로 영창동소선대원 허수옥과 부부로 가장하고 봉림동 긴급통신수행길에 나섰다가 봉림동어구 구역에서 소완자자위단 놈들에게 붙들렸고 연길 일본헌병대에 압송되여 죽을지언정 굴하지 않다가 연길공원에서 비장한 최후를 마치였었다. 이들 두 소선대원의 영웅적 사적은 필자의 정리로 되여 갓 출판된 《인물조선족항일투쟁사》 제4책 소년아동편에 올랐는데 그때까지도 필자는 최순임소녀가 구수하영창동 사람이라는것만 알았지 소녀의 가정형편과 래력을 몰랐다.
그러던 지난 3월 6일 필자는 최순임 소녀의 유가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고 만남의 기회가 이루어졌다.
전화를 걸어온 이는 연변해륭경제기술합자유한회사 사장 오준석씨. 젊음이 넘쳐나는 오준석씨는 최순임소녀의 유가족으로서 그의 어머니 최길자(64세)의 아버지 최태우면 최순임소녀의 친남동생이였다.
1957년에 4남매중 장자 최태갑이 연변대학 황교수가 넘겨주는 최순임렬사증과 렬사비 100여원을 받게 된다. 최태갑은 이는 자기가 받을 돈이 아니라며 그나날 인차 룡정에 가서 돌비석을 만들었고 지금의 비석을 세운 날자는 1957년 4월 5일이였다. 이 날자가 비석에 그대로 새겨있는데 비석정면은 《고 혁명렬사 최순임지기념비》로 되고 뒤면은 《故 렬사 최순임동지는 九水河 永昌洞人 당시 十六岁 소선대원으로서 一九三三年六月二十六日 통신공작중 불행히 적들에게 체포되여 영용불굴히 투쟁하다가 총살당하였다. 一九五七年四月五日》라는 글이 새겨져있었다.
이는 3월 6일 필자가 오준석씨한테서 넘겨받은 자료인데 그 렬사비와 비석앞에 처음으로 나선것은 근 한달뒤인 4월 1일이니 감개가 무량했다. 먼저 렬사비에 이른 산신님이 비석을 깐깐히 훓어보고 뒤미처 이른 심진님이 잘 알리지 않는 비석 뒤면글을 헤아리느라 여념이 없다. 상공님, 옥저님은 부지런히 렬사비를 디지털사진기에 담는다. 그 모습들이 전에 없이 가슴에 와 닿는다.
석산 3대마을에 들어서는데 마침 중형뻐스 한대가 달려왔다. 그통에 일정이 잡힌 마을 앞구간 길성저수지 동쪽 구릉릉선으로 뻗은 고구려옛장성을 답사할수가 없어 유감으로 남았으나 시름놓고 연길까지 곧추 직행할수가 있어 좋았다. 오후 2시가 넘은 시점이였다. 참으로 즐겁고 신나기만 한 산행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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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성자 : 특송
날자:2006-04-02 10:45:55
북도끼봉은 우리가 오른 팔도의 산장마을에서 올라 남으로 조양천진 석산마을로 내려오는것이 제일 좋은 산행코스인것같습니다.시간도 절약되고 체력이 좋을때 정상에 오르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다른팀들은 남에서 북으로 행하였다니 이제 산나물철이면 우리도 형제팀들의 코스를 한번 행해보는것이 어떨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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