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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만원탈취거사지점문제 (1)
2006년 07월 20일 00시 00분  조회:3366  추천:127  작성자: 리함
바로 잡아야 할 우리 력사 (13)

15만원탈취거사지점문제 (1)

리 함

1920년 1월에 벌어진 15만원 탈취거사 지점문제를 두고 우리 사학계에는 주로 세가지 설법이 존재하고있다. 즉 동량어구, 부처골어구, 재박골(재바위골)이다. 그중 동량어구 설법은 이렇게 말하고있다.

《1920년 1월 4일,…해가 질 무렵 동량어구에 나타난 송금일행은 제일 앞에 우편물을 실은 마바리와 은행돈을 실은 마바리를 세우고…오후 6시경에 룡정에서 약 15리 떨어진 화룡현 승지촌부근인 동량어구에 이르렀다. 이때 버들방천에 매복하고 있던 윤준희 등은 송금호송대에 불의의 습격을 가했다.》①

재박골 설법은 1993년 8월에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판된 룡정향토전설집— 《룡정전설》에 나타나고있다. 이 전설집의 《재바위골 15만원탈취시말》에는 이렇게 밝혀졌다.

《1920년 1월 3일, 동량어구 재바위골 술집에는 낯모를 학생과 농민들이 들락날락하였다. 그들인즉 지형을 탐지하러 온 〈결사대〉 대원들이였다. 지형을 정찰한후 그들은 두개 조로 나누었다. 최봉설 등 3명은 섬바위밑 아래쪽에 매복하고 윤희준을 비롯한 세 사람은 동량어구 재바위골 버들방천에 매복했다가 놈들이 포위권안에 들면 앞뒤에서 기습하여 일망타진하기로 하였다.》

이것이 재박골설법이라면 부처골어구 설법은 15만원탈취거사의 주요참가자인 최봉설의 회억이다. 15만원 탈취거사후 최봉설, 윤준희, 림국정, 한상호 등은 빼앗은 돈을 가지고 로씨야 연해주 신한촌에 갔다가 그들의 주숙지가 일제놈들의 돌연습격을 받았다. 이 습격에서 최봉설은 적의 시선을 자기한테로 끌며 동지들을 구하겠다며 선참 문을 박차고 나갔다가 구사일생으로 포위돌파에 성공하였다.

최봉설은 팔의 상처를 치료한후 홍범도장군이 이끄는 독립군부대를 찾았고 원동공화국인민군부대와 빨찌산들과 함께 원동출병 일본군대와 로씨야백파군과 싸웠다. 그뒤 그는 치따당학교에서 레닌의 교시를 직접 듣기도 하였다가 쏘련에서 생활하게 되였다. 1956년에 최봉설은 고향인 연길시 와룡동을 찾아 창동학원 옛터를 돌아보면서 옛전우들을 그리였고 부처골어구가 15만원탈취거사지점이라고 회억하였다.

1990년 5월에 최봉설투사의 맏아들이며 원 연변총공회 주석 최동현(그때 73살)과 그의 부인, 최동현의 친동생이며 우즈베크공화국 따슈껜트시 꼴호즈총공정사인 구쏘련 공민 최단일(그때 53살), 최단일의 아들 최리쨔(그때 15살) 등이 연변에 친척방문을 왔던차에 해당인사들의 동행하에 15만원탈취거사지점을 돌아보았다. 헌데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그들과 동행답사기회를 갖지 못하였다가 후에 그네들을 통하여 최봉설이 쓴 력사실화—《15만원탈취거사》를 받아보게 되였다. 구쏘련에서 출판된 조선문 이 책은 진실한 력사를 다룬 력사실화집인데 15만원탈취거사지점을 부처골어구라고 찍으면서 15만원탈취거사의 전후관계를 이야기화하였다.

이로부터 보면 세가지설법 모두가 자기의 도리가 없는것이 아니였다. 필요한것은 현지답사라고 느껴졌다. 이에 필자일행은 1990년도에 15만원탈취거사의 발자취를 따라 와룡동, 재박골, 해란강, 삼봉동, 조양천 등지를 돌아보았다. 그해에 와룡동답사에 이어 부처골어구의 신화 6대에 가보니 도로표식은 5킬로메터를 가리키고있었다. 여기서 큰길 따라 서남방향으로 산굽이를 조금 돌다가 륙도하를 건너면 재박골(신화7대)이고 재박골에서 산기슭을 따라 다시 남으로 1킬로메터 가량 나가면 하승리(원 광신향 승지 1대, 지금의 지신진 승지1대)마을이다. 필자일행은 하승리마을에서 박병선(90년도에 73살), 박병렬(90년도에 63살) 두 로인을 찾았다.

두 로인은 6촌간으로서 모두 하승리태생이다. 이들의 말에 의하면 할아버지때 조선회령서 이주해와서 여기를 개척한지도 90여년이 된다고 하는데 1920년초 당시에 10여세대 조선인들이 살고있었다고 한다. 원래의 길은 지금 위치가 아니라 지금의 부처골어구에서 산굽이를 돈후 륙도하를 건너 재박골에서 하승리쪽으로 올리뻗었단다. 륙도하동쪽 산굽이로 뻗은 지금의 신작로는 일제놈들이 이땅을 강점한후인 지난세기 30년대에 닦은것으로 알려진다.

하승리의 두 로인과 이야기를 나눈후 필자일행은 재박골과 부처골어구를 답사하였다. 재박골에서 보니 룡정에서 남으로 펼쳐진 륙도하벌은 6킬로메터지점인 재박골부근에서 좁아지면서 신작로가 거의 갈지자를 이루었는데 달라자 명동촌과 승지촌사이 관문으로 되는 선바위가 환히 안겨왔다. 그래도 거리는 재박골에서 5킬로메터는 잘 되였다. 승지촌은 물건너 동남쪽 2킬로메터 지점에 있었다. 이때에야 우리는 당년 투사들이 선택한 지리적위치가 자못 독특하다는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거사후 와룡동, 의란구를 거쳐 로씨야땅으로 가야 했으니 재박골 남쪽의 달라자나 동량어구, 하승리 건너편 쪽은 취할바가 못되였고 룡정쪽은 더구나 말도 말아야 했다. 이런 몇개 방향은 일본놈들이나 중국측군경 경계가 삼엄하고 불리한 생소땅이여서 제일 좋기는 하승리아래마을 재박골어구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10여리 재박골로 빠지다가 동성참, 해란강을 건너 와룡동, 의란구로 가는것이였다. 이점을 그네들은 똑똑히 보아내고 사전에 길들을 모두 익혀두기까지 했었다. 여러 자료들이 그러하고 최봉설의 력사실화책이 그러했다.

와룡동, 부처골어구, 재박골, 하승리 답사를 거쳐 필자는 동량어구설을 부인할 근거를 찾았다. 동량어구설법은 일본의 《외무성경찰사》자료에 의해 15만원탈취거사 지점을 동량어구로부터 승지촌사이—강변도로 가까이로 인정했는데 이는 력사사실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떄 신작로는 상기지적과 같이 지금의 강동쪽이 아니라 강서쪽 산굽이를 따라 이어졌으니 일본자료는 믿을바가 못되고 또 승지촌과 동량어구촌엔 중국순경들이 진을 치고있는데다가 이곳엔 15만원탈취후 빠져나갈 곳이란 없다. 이 지대를 아는 사람이라면 서남쪽으로 뻗은 용신, 백금행 신작로 쪽으로는 근본 해란강쪽으로 빠지지 못한다는것을 잘알고있다.

재박골설법은 지대로 보아 바람직한 지점이기는 하나 당년에 지금처럼 마을이 없었고 주말집도 없었다.

이제 남은것은 부처골어구이다. 이곳엔 마을도 있고 주막집도 있었다. 거리상 재박골보다 조금 떨어지기는 했으나 최봉설은 15만원탈취거사지점이 이곳이라고 긍정적으로 밝히였다. 15만원탈취거사의 직접적인 참가자여서 설복력이 강하다. 일제측의 해당자료에서도 동량어구라고 긍정적으로 밝히지 못한 형편에서 더욱 그러하다. 현지답사로 보아도 부처골어구에서 재박골로 곧추 빠지면 쥐도새도 모르게 된다. 최봉설의 회억이 이를 잘 알려주고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연구자료로 보아 하승리와 재박골사이가 가장 현실적인 지점으로 다가선다.

아래 15만원탈취거사의 그 나날에로 돌아가 보면 이 모든것이 잘 알려진다. 15만원탈취거사를 말하자면 아마 당년의 연길현 와룡동으로부터 말해야 할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선참 찾은곳이 와룡동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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