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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는 아름다움의 대명사입니다.
그런데 장미는 가시가 있습니다.
자기도 찌르고 남도 찌르는
그런 가시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장미의 가시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접수합니다.
아름다움 존엄의 상징이니까요.
그런데 옛날 스승과 제자 간에
이런 대화가 오갔습니다.
"가시나무를 보았는가?"
"예 보았습니다."
"어떤 나무들이 있던가?"
"탱자나무, 찔레나무, 장미나무,
아카시아나무 등이 있습니다."
“몸통이 한 아름되는
가시나무를 보았는가?“
"못 보았습니다."
"그럴 것이다.
가시가 있는 나무는
몸통 한 아름 되게 크지 못한다.
가시가 없어야 몸통 한 아름 되는
큰 나무가 되는 것이다.
가시 없는 나무라야 큰 나무 되어,
기둥으로, 대들보로 쓸 수 있지.
가시 없는 큰 나무는 다용도지만,
가시 있는 나무 별로 쓸모 없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시가 없는 사람은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고,
꼭 필요한 사람이며,
성현이 될 수 있는 그릇이다."
"가시는 남을 찔러서 아프게 하고,
상처를 내서 피를 흘리게 한다.
입을 통해 나온 말의 가시,
손발을 통해서 나온 육신의 가시,
욕심을 통해서 나온 마음의 가시,
나무가 가시가 없어야
다용도로 널리 쓰이듯
사람도 가시가 없어야
유용한 사람이 되느니라."
그 스승님의 교시가
눈물겹도록 가슴을 울렸지만
전부 다 접수할 수는 없었습니다.
천하의 나무가 모두 한 아름 되게
크게 자랄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에 대 재목도 필요하지만
작은 초목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리고 가시가 있어서
크게 자라지 못하는 것 아니라
크게 자라지 못하게 되니
가시가 생기는 것입니다.
무고한 사람을 찌르는 가시는
비난 받아야 하겠지만
자아보호 차원에서 가시는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무고하게
누군가의 가시에 찔려
상처를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누군가를
가끔 가시로 찌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찔리고 찌르면서
우리는 서로 상처 받으면서도
화해하며 아물구며 살아갑니다.
어쩌면 가시에 찔려보는 것도
필요한 인생 공부입니다.
그 아픔으로 우리는 하나씩
인생을 깨달아 가는 거죠.
서로 가시로 찌르지 말자고!
서로 아프지 말고 살자고!
가끔은 내가 인간관계에서
가시를 만든 적 없는지?
지금도 말이나 글이나 행위에서
나도 모르게 가시가 생겨,
무고한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찌르고 있지나 않는지?
항상 반성하는 마음입니다.
현용수 작성 서울왕십리
2021년 8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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