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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수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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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돌이 나를 보고 웃는다
2006년 04월 22일 00시 00분  조회:4173  추천:92  작성자: 두만강수석회
돌이 나를 보고 웃는다


김학송


(돌이 나를 보고 웃는다?) 웃기는 제목이다. 혹자는 (이 사람 좀 돈거 아니야?) 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돌은 웃고 있다. 내 앞에서 나를 바라보며 아주 호쾌히 웃고 있다. 얼마 전 두만강에서 탐석된 돌인데, 되게 잘 생겼다. 미륵보살을 닮았다. 벙글사 웃는 모양이 가관이다. 나는 돌님에게 (귀빈)이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었다. 비눗물로 샤워시키고 최고급 좌대에 앉혀 안방에 모시니 집안이 온통 신령한 빛으로 차고 넘친다. 수수 억년 속절없이 뒹굴던 예사로운 자연석이 마침내 목숨을 가진 돌, 즉 수석으로 태어난 게다. 찾아온 손님마다 눈독을 들인다. 한국서 온 K씨는 달러는 섭섭지 않게 줄 테니 팔라고 애걸복걸이다. 내 대답은 (노우)였다. 나와는 억겁의 인연으로 만난 귀한 돌인데 아예 당치도 않는 말씀. 어떤 친구는 한 사흘쯤만 보고 냉큼 돌려 줄 테니 빌려달라고 한다. 그 간청에도 내 대답은 인색했다. (될 수 없는 일, 혹시 와이프를 빌려달라면 몰라도...)

돌이 나를 보고 웃는다. 이제 나는 돌을 보며 또 다른 인생을 즐기고 있다. 그래서 돌의 진면모를 뒤늦게야 눈뜬 일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어찌 보면 나와 돌의 인연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열일곱 나이에 (문화대혁명 시기) 귀향청년으로 농촌에 갔을 때는 겨울마다 돌을 쪼아 제방이며 대채전을 만들었다. 그때 으깨진 손가락의 상처는 추운 계절의 추억으로 지금도 남아있다. 소중한 내 젊음을 밭이랑에 묻은 대가로 빈하중농의 추천을 받아 공농병학원에 입학했다. 미리 정해진 운명인지는 몰라도 그 학교는 이상하게도 돌을 연구하는 학교였다. 지질학이 전공이었으니 시간마다 돌을 만지는 건 당연지사. 연구실에 가도 돌, 실습 나가도 돌... 싫도록 돌만 만지다가 마침내 졸업을 하고 배치 받아간 곳 역시 돌을 파내는 광산이었다. 짓궂게도 내 운명을 쫓아오며 내 청춘을 괴롭히던 돌이었다. 그때는 돌이 얼마나 밉고 지겨웠는지 모른다....

돌과의 인연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90년대 초에 한국나들이를 갔다가 뜻하지 않게 또 돌과 만났으니 역시 운명은 피할 수가 없는 것.

어느 시인의 안방에는 돌들이 여러 가지 모양을 하고 진열장 안에 소담히 앉아 있었다. 예전에 신물 나게 보던 그런 막돌이 아니었다. 기기묘묘한 돌들이었는데, 수석이라고 했다. 그때에야 나는 세상에 수석이라는 게 있다는 것, 수석은 취미생활의 으뜸이라는 것, 더 나아가 수석은 동양문화의 꽃이라는 것도 대충 알게 되었다. 첫 눈에 반해버렸다. 그 후 한국의 수석인들과 자주 접촉하면서 조금씩 수석사랑을 다져나갔다. 광주에서 원로 수석인을 만났던 일은 지금도 그림 같은 추억으로 내 가슴을 숭고함에 젖게 한다. 여가선용으로 수석을 선택한 경지 높은 수석인이었다. 그분은 고차원의 수석 한 점을 소장하고 계시는데, 너무 아끼는 돌이어서 웬만해선 구경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다행히도 그 원로분과 교분이 두터운 B씨의 안내로 그 집의 높은 문턱을 간신히 넘을 수가 있었다.

정작 만나고 보니 선풍도골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학발의 노인이었다. 수인사를 나누고 찾아온 연유를 두루 여쭈었더니 노인은 어디론가 표연히 사라졌다. 응접실 소파에 몸을 묻고 한 시간 남짓 기다려서야 노인이 나타났다. 목욕재계하고 한복까지 정히 챙겨 입으신 노학자, 그의 두 손엔 흰 비단을 씌운 어떤 물건이 들려져있었다. 노인은 사뭇 근엄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그 물건을 탁상 위에 내려놓더니 천천히 비단 천을 벗기였다. 순간 우리는 아연해 지고 말았다. 자연미의 극치를 자랑하는 예사롭지 않은 수석 한 점! 전율에 가까운 감동이 온 몸을 강타한다. 금강산을 닮은 명석의 운치도 대단했지만 그 돌을 아끼고 경외시하는 노학자의 그 깊은 마음이 크게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얼마나 수석을 사랑하면 목욕재계에 새 옷까지 갈아입고 깨끗한 심신으로 저 수석 앞에 마주앉는 것이랴...

그때 일은 나에게 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전기를 마련해주었다.

( 수석이 있는 안방은 성역이야!...) 라고 하시던 노학자의 말씀이 늘 귀전에 맴돈다. 그렇다. 돌은 그냥 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숭배하고 아껴야 하는 자연의 한 부분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 우주의 모태인 것이다. 수석은 동양사상에서 생겨난 자연사랑의 표현일진대 그것은 동양적인 정서와 정감의 발로요, 풍류이며 멋이다. 중국에서 발원하여 한국, 일본을 누비며 천년 세월을 풍미하다가 근년엔 동남아, 구라파... 전 세계로 파도쳐가는 도도한 수석문화의 물결, 이 아닌 장관인가!

돌은 말이 없다. 억년 풍우를 인내로 버티며 무언의 진리를 안으로만 다져왔다. 자연의 섭리에 대한 순응으로 고요히 침묵하는 돌들, 강물의 흐름 따라 모든 거품들은 춤을 추고 모든 껍데기는 껑충거려도 오직 돌들만은 주어진 자리에 안주한다. 거짓 없고 욕심도 부리지 않는다. 늘 겸손하다. 또한 착하다. 언제 봐도 변함이 없다. 이런 돌들 앞에서 나는 부끄럽다. 물욕을 쫓아 한없이 나붓거리는 오늘의 인류는 부끄럽다. 가만히 주변을 살펴보면 흔들리는 목숨들이 너무도 많다. 쌩쌩 불어오는 요상한 바람에 몸이 흔들리고 마음이 흔들리더니 마침내는 시대의 거품이 되어 유행의 강물 따라 타국으로 타향으로 정처 없이 떠나가는 허허로운 욕망들...

문명의 탈을 많이 쓸수록 감정은 황폐화 되어가고, 배가 부를수록 인간성은 사라져 가는 게 현실이고 보면 우리 어찌 한 점 수석 앞에 부끄럽지 아니하랴.

돌은 말이 없지만 분명히 나의 스승이다. 돌은 날마다 신의 예술로 나를 즐겁게 하고, 자연의 철학으로 나를 눈 뜨게 한다. 백 년도 못 사는 나는 실제상 허망의 덩어리일 뿐, 한 점 수석에 비하면 너무나도 빈약하고 가냘픈 존재일 뿐, 자연 앞에서의 인간의 우월감이란 한갓 유치한 착각일 뿐...... 나는 때늦게야 그 허무를 알아본다. 그래서 나는 돌을 사랑하며 돌에게 경도하며 탐석여행을 즐긴다. 돌밭에 가면 엔도르핀 생산이 잘 되는 것은 물론이고 바이오세라믹의 작용으로 심신이 쨍하니 맑아진다. 하므로 애석행위는 정신수련과 건강도모에 그만이다. 더없이 좋은 영약이 아닐 수 없다. 물질의 범람과 지배 속에서 인간적인 정서와 가치가 파괴를 면치 못하는 카오스의 시대, 오직 순수한 정신만이 종국적으로 인간을 구원하게 될 것이다. 미래의 행복의 발견은 자연으로 회귀하는데 있다고 세계적인 석학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으고 있다. 좀 느리게 유유자적하며 적은 변화로 조화롭게 사는 인생이야말로 위대한 생존이 아니겠는가!

가난해도 떳떳하게 살 수 있는 정신을 수석이 내게 가르친다.

빠른 속도에 의해 죽어가고 있는 그 귀중한 것들을 아파할 수 있는 마음을 수석이 내게 열어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존재와 생명의 깊은 본연에서 수석이 주는 무궁한 정신을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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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2 ]

2   작성자 : marlboro
날자:2006-04-24 09:57:50
가난해도 떳떳하게 살 수 있는 정신을 수석이 내게 가르친다. 빠른 속도에 의해 죽어가고 있는 그 귀중한 것들을 아파할 수 있는 마음을 수석이 내게 열어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존재와 생명의 깊은 본연에서 수석이 주는 무궁한 정신을 감탄한다
1   작성자 : 향이
날자:2006-04-22 02:09:22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그리고 오늘 사이버아카데미에서의 강연도 受益不淺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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