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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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흥부를 닮은 사람들(외1편) 댓글:  조회:1205  추천:0  2013-07-11
.미니수필. 흥부를 닮은 사람들(외1편) (훈춘)  김동진 지난 봄, 춘화진의 한 농가부녀가 자기 집 울바자에 걸린 새끼노루 한마리를 “생포”하였다. 먹이를 찾아 뜨락에 들어왔다가 나간다는것이 울바자 틈새에 끼여 오도가도 못한것이다. 그 녀인은 어린 노루를 바자틈에서 구한 다음 긁힌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먹이를 먹여 산으로 돌려보내였다. 여름에는 경신진 이도포촌 촌민이 날개를 상한 가마우지 한마리와 왜가리 한마리를 조류전문가에게 맡겨 치료를 한 다음 날려보내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행실이 아닐수 없다. 나는 그들의 미담에서 현대판 흥부를 보았다. 흥부의 가난에 대해 공론하는것을 떠나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치료하여 살려준 선량한 마음씨만은 어느 시대의 사람이건 따라배울바가 아닌가싶다. 동물사랑, 철새사랑이 산내들사랑과 함께 화초목사랑과 함께 생태평형을 추구하는 인간생활의 한개 내용으로 자리매김을 할 때만이 인간이 더욱 인간다워질수 있으니 말이다. 흥부를 닮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인간과 자연은 더욱 화목할것이다. 흥부를 닮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자연도 인간을 더욱 사랑할것이다.   뛰는 가슴 복잡한 일로 마음이 무거울 때면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히 생각해보라는 말이 있다. 가슴이 뛰는 소리를 느끼면서 생각하라는 말이다. 가슴이 뛴다는것은 심장이 뛴다는것이요, 심장이 뛴다는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근으로 표현한것이 “두근두근”과 “두근닷근”이다. 겁나거나 놀랐거나 긴장할 때의 정도에 따라 때로는 너근이 되고 때로는 일곱근이 된다는 형상적인 표현이다. 각설하고 가슴이 뛴다는것은 살아있는 자만이 소유할수 있는 특혜이기에 뜨거운 피가 끓고있는 심장 하나를 가슴에 품고있다는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뛸 일이다. 생명의학의 관찰기록에 의하면 정상적인 사람의 심장은 하루에 10만번을 뛴다고 한다. 대단한 수자이다. 그렇다면 70년쯤 산 사람의 한생에 뛴 심장의 박동수는 천문수자로 될것이다. 심장이 뛴다는것은 생명이 뛴다는것이고 희망이 뛴다는것이다. 나에게 이런 심장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뛰는 심장을 무엇인가 유용한 일을 하는데 써야 하겠다. 뛰는 가슴이여! 나의 생명이여! 료녕신문
57    찰떡꽃이 피였습니다 (외1편) 댓글:  조회:691  추천:0  2013-05-31
찰떡꽃이 피였습니다 (외1편) 찰떡꽃이 피였습니다. 해마다 대학교입시때면 어김없이 피여나는 연변특유의 찰떡꽃입니다. 시험장앞에 피여난 찰떡꽃은 우리의 응시생들이 시험을 잘 치기를 바라는 학부모들의 간절한 마음의 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전통음식인 찰떡이 이처럼 음식의 의미를 초월하여 자식들의 공부길이 더욱 넓게 트이기를 바라는 행위의 의미로 새로운 찰떡이미지를 구축하였습니다. 이른새벽부터 시험장 정문앞에 마련된 소원빌기판에 하얗게 피여나는 찰떡꽃! 그 꽃을 보노라면 “철썩! 붙어라! 대학에!”라는 찰떡꽃의 꽃말이 들려옵니다. 그 모진 가난과 굶주림속에서도 자식만은 까막눈을 만들지 않으려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온 우리 민족이 그리고 소를 팔아서 자식의 공부뒤바라지를 해온 우리 조상님들의 자식사랑이 오늘의 찰떡꽃으로 피여난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찰떡꽃은 우리의 응시생들을 위해 찰떡으로 빚은, “찰떡처럼 철썩! 대학에 붙어라!”는 간절한 소망의 꽃이요, 기원의 꽃이랍니다. 찰떡꽃은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해마다 약속처럼 피여나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응시생들의 가슴에 무한한 용기와 신심을 안겨줄것입니다. 쑥쑥 잘도 크는 쑥   안해가 장바구니를 들고 나갔다오더니 밥상에 쑥국이 올랐다. 아무데서나 쑥쑥 잘 자란다는 쑥을 만나니 쑥 한뭉치와 마늘 스무개를 먹고 동굴안에서 백날을 견디여 웅녀로 된 곰이 환웅의 씨를 받아 우리 민족의 시조-단군왕검을 낳았다는 신화가 떠오른다. 신화라고 하지만 어쩌면 실말처럼 안겨오는 고전이다. 누가 어떻게 리해하든간에 쑥은 반만년의 력사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삶과 끈끈한 인연을 이어온 풀인것만은 틀림이 없다. 쑥은 식용으로, 약용으로 그리고 생필품으로 그 기여가 대단하다. 가난을 감내해온 수많은 세월속에 쑥은 우리를 한번도 떠난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민초의 삶에는 쑥떡, 쑥국, 쑥밥이 있었고 의원의 방에는 뜸쑥, 찜쑥, 약쑥이 있었으며 시골에는 모기쑥, 쑥나무가 있었다. 보다싶이 쑥은 신령을 접한 풀로서 “모든 풀의 왕초”가 되기에 부끄럽지 않다 일본의 원폭지인 히로시마의 재더미속에서 제일 먼저 살아난 풀이 쑥이 아니였던가! 그러니 우리 민족의 유전자속에 이처럼 생명력이 놀라운 쑥향이 들어있다는것도 하늘이 주신 복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쑥쑥 잘도 크는 쑥, 나는 항상 우리 민족도 쑥처럼 아무데서나 허리를 곧게 펴고 쑥쑥 자라나기를 바란다.
56    흥부를 닮은 사람들(외1편) 댓글:  조회:592  추천:0  2013-05-28
.미니수필. 흥부를 닮은 사람들(외1편) (훈춘) 김동진 지난 봄, 춘화진의 한 농가부녀가 자기 집 울바자에 걸린 새끼노루 한마리를 “생포”하였다. 먹이를 찾아 뜨락에 들어왔다가 나간다는것이 울바자 틈새에 끼여 오도가도 못한것이다. 그 녀인은 어린 노루를 바자틈에서 구한 다음 긁힌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먹이를 먹여 산으로 돌려보내였다. 여름에는 경신진 이도포촌 촌민이 날개를 상한 가마우지 한마리와 왜가리 한마리를 조류전문가에게 맡겨 치료를 한 다음 날려보내였다. 참으로 아름다운 행실이 아닐수 없다. 나는 그들의 미담에서 현대판 흥부를 보았다. 흥부의 가난에 대해 공론하는것을 떠나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치료하여 살려준 선량한 마음씨만은 어느 시대의 사람이건 따라배울바가 아닌가싶다. 동물사랑, 철새사랑이 산내들사랑과 함께 화초목사랑과 함께 생태평형을 추구하는 인간생활의 한개 내용으로 자리매김을 할 때만이 인간이 더욱 인간다워질수 있으니 말이다. 흥부를 닮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인간과 자연은 더욱 화목할것이다. 흥부를 닮은 사람들이 많을수록 자연도 인간을 더욱 사랑할것이다.   뛰는 가슴 복잡한 일로 마음이 무거울 때면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히 생각해보라는 말이 있다. 가슴이 뛰는 소리를 느끼면서 생각하라는 말이다. 가슴이 뛴다는것은 심장이 뛴다는것이요, 심장이 뛴다는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심장이 뛰는 소리를 근으로 표현한것이 “두근두근”과 “두근닷근”이다. 겁나거나 놀랐거나 긴장할 때의 정도에 따라 때로는 너근이 되고 때로는 일곱근이 된다는 형상적인 표현이다. 각설하고 가슴이 뛴다는것은 살아있는 자만이 소유할수 있는 특혜이기에 뜨거운 피가 끓고있는 심장 하나를 가슴에 품고있다는 생각만 해도 심장이 뛸 일이다. 생명의학의 관찰기록에 의하면 정상적인 사람의 심장은 하루에 10만번을 뛴다고 한다. 대단한 수자이다. 그렇다면 70년쯤 산 사람의 한생에 뛴 심장의 박동수는 천문수자로 될것이다. 심장이 뛴다는것은 생명이 뛴다는것이고 희망이 뛴다는것이다. 나에게 이런 심장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뛰는 심장을 무엇인가 유용한 일을 하는데 써야 하겠다. 뛰는 가슴이여! 나의 생명이여!
55    새벽편지(외1편) 댓글:  조회:1085  추천:0  2013-05-08
.미니수필. 새벽편지(외1편) 김동진 전자우편함을 열어보니 “바다”라는 시인의 카페에서 새벽에 보내온 편지가 한통 있었다. 내가 그 카페에 회원가입을 할 때 수신허용란에 동의한다는 체크를 했더니 이렇게 가끔 편지를 보내오는것이다. 그날의 새벽편지는 아주 짧은 토막이야기였다. 태여날 때부터 소경이 된 사람이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가엽게 여겨달라고 쓴 광고판을 들고 거리에 나가 행인들이 깡통에 떨어뜨리는 각전으로 살아가는데 그나마 날이 가고 달이 가고 시간이 흐르면서 동정의 마음이 식어지는지 각전을 주는 사람이 점점 적어지였다. 그러던 어느날 지나가던 행인이 광고판을 보고 잠간 생각하더니 원래의 글을 지우고 “봄이 오고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볼수 없습니다”라고 써주었다. 그랬더니 그 글을 보는 행인들이 저마다 돈을 내놓았다고 한다. 두마디밖에 안되는 짧은 글이지만 너무나 문학적이고 함의가 깊은것이여서 행인들의 마음을 흔든것이다. 우리 말 속담에 “좋은 말도 세번 하면 듣기 싫다”고 했다. 말도 그러하고 글도 그러하다. 새롭지 않으면 누가 들을것이며 누가 볼것이며 누가 감동을 받을것인가? 이 한통의 새벽편지는 나에게 반짝아이디어의 중요성을 알려주었다. 나는 나에게 이런 새벽편지를 보내주는 “바다”의 시인님이 참으로 고맙다. 살 구 꽃 4월이면 훈춘의 살구나무거리는 살구꽃이 만개하여 마치 연분홍너울을 쓴 녀인들이 줄지어 선것처럼 아름답다. 해마다 진달래가 피여날 때면 약속이나 한것처럼 다투어 피여나는 살구꽃이다. 살구꽃향기가 풍기는 살구나무거리를 걸으면 이 마음도 어느새 연분홍꽃물이 드는것 같다. 그래서 사람은 늙어도 마음은 아니 늙는다고 하는가보다. 성미가 급한 “아가씨의 수집음” (살구꽃의 꽃말)이라 할가? 살구꽃은 여느 꽃과는 달리 잎이 돋기전에 꽃망울을 빚고 잎이 돋기전에 피였다가 잎이 돋기전에 지는것이 특징이다. 살구꽃이 질 때면 하늘에서 화려한 꽃비가 내리는듯 무수한 꽃잎이 흘러내린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바라보면서 단 며칠이라도 더 피였으면 하는것은 사람의 욕심일뿐 살구꽃은 숙명의 꽃자리를 비우기에 여념이 없다. 그것은 이제 곧 연록의 기발을 들고 나올 새 생명의 잎을 위한 비장한 추락이다. 화사한 빛으로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사명을 마치고 가볍게 떠나가는 살구꽃! 나는 올봄에도 그렇게 사랑스런운 꽃비속을 걸어보았다. 살구꽃비에 몸과 마음이 함께 젖어보는 연분홍 4월이다.
54    탈피하는 뱀처럼(외1편) 댓글:  조회:832  추천:0  2013-04-02
탈피하는 뱀처럼(외1편) (훈춘) 김동진 2012 임진년 흑룡의 해가 지나가고 2013 계사년 뱀의 해가 밝아옵니다. 뱀띠해라고 하니 뱀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게 되는군요. 성경속의 뱀은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도록 꾀하여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고구려벽화무덤인 천왕지신총에는 뱀의 몸체에 남녀의 사람머리가 달린 그림이 있는데 지신(地神)이라고 씌여있고 중국신화속의 복희씨와 녀와씨도 인두사신(人+⒭淀?으로 되여있으며 그리고 고대의 일본인들은 뱀을 저들의 조상으로 모시였다고 합니다. 뱀은 상징성이 강한 파충류입니다. 뱀은 성장기에 허물벗기 즉 탈피를 하기에 영원한 재생의 상징이 되는데 그리스신화속의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뱀이 이상한 풀을 물고와 병든 동료뱀을 살려내는것을 보고 약초를 연구하였다고 하니 뱀은 또 지혜의 상징이 되기도 하고 알을 많이 낳는 다산과 풍요가 있어 끈질긴 생명의 화신으로 불리우기도 합니다. 뱀은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에게 공포를 느끼게 하는 징글스러운 흉물이지만 민속신앙의 세상에서는 이처럼 신적인 존재로 부각되여 인류의 정신력사속에 또아리를 틀고있습니다. 그러므로 뱀의 해에는 우리 모두가 이런 뱀을 생각하면서 괴롭고 아프고 힘들고 슬펐던 지난 일들을 모조리 낡은 해의 언덕에 묻어버리고 탈피하는 뱀처럼 새롭게 태여나기를 희망합니다. 맹령의 “돈나무” 기쁜 소식 알립니다. 여기는 “연변의 소강남”인 훈춘시 반석진 맹령촌입니다. 60년의 재배력사를 가지고있는 맹령사과가 산업발전대상으로 지목되고 품종개량과 과학재배를 거쳐 마침내 항암원소를 많이 함유한 셀렌사과로 검증되였습니다. 하여 이태전까지만 해도 킬로그람당 겨우 3원 하던 맹령사과가 지난해엔 일약 12원으로 껑충 뛰여오른것입니다. 실로 일할수록 성수나는 세월이 온겁니다. 한국에 나가 품팔이를 하던 남해란씨, 채영범씨를 비롯하여 돈을 벌겠다고 외지와 외국으로 나간 사람들중 이미 20여명이 다시 마을로 돌아와 자기 집 사과밭에서 “돈나무”를 가꾸고있답니다. 그들은 셀렌사과덕분에 지난해에 호당 평균수입 8만원을 돌파하였는데 년수입이 20만원이 넘는 집이 15호, 10만원이상이 되는 집이 20호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맹령촌의 노래는 이제부터 “모두다 갔다”가 아니라 “모두다 돌아온다”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마을에 이처럼 좋은 “돈나무”가 있는데 누가 외국에 나가 고생을 사서 하겠습니까? 산과 들, 언덕과 뜨락에 봄이면 하얀 사과꽃이 구름처럼 피여나고 가을이면 빠알간 사과가 노을처럼 타오르는 맹령촌. 만무과원을 꿈꾸는 맹령촌에 “돈나무”가 살아있는한 맹령촌 촌민들의 치부몽도 주렁지는 사과처럼 둥글어질것입니다.
53    눈물겨운 모성애(외1편) 댓글:  조회:894  추천:0  2013-03-27
눈물겨운 모성애(외1편) (훈춘) 김동진 “알몸어머니의 모성애”라는 작가미상의 글을 읽으면서 모성애란 천하 최악의 경우에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천직처럼 한몸을 희생할 각오가 되여있는 엄마의 비장하게 위대한 사랑임을 눈시울이 뜨겁게 느끼였다. 이야기는 조선전쟁시기, 눈이 덮인 강원도의 깊은 산골짜기에서 들려온 아이의 울음소리로 시작되고 후퇴하던 군인이 그 울음소리를 따라가 눈구덩이속에서 아이를 꺼내려고 눈을 치우면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한다.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녀인의 알몸이 나온것이다. 피난을 가던 엄마가 눈이 내리는 골짜기를 벗어날수 없게 되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입고있던 옷을 팬티까지 모조리 벗어 아이를 감싼 다음 끌어안은채 얼어죽은것이였다. 자식에 대한 엄마의 선천적이고 본능적인 사랑이 알몸이여도 부끄러울것 한점 없는 죽음을 만든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이 아이를 살게 한것이다. 약한 녀자를 강한 엄마로 만든 모성애! 이 이야기는 내가 상식적으로 알고있던 이왕의 모성애를 훨씬 초월하여 자식을 위해서라면 알몸으로 죽어도 부끄럽지 않다는 눈물겨운 모성애를 보여주었다. 이 얼마나 비장한 모성애인가! 이 얼마나 위대한 모성애인가! 메주꽃 피는 마을에 경사가 났네 메주꽃이란 간장과 된장이 분리되는 순간에 피여나는 하얀 곰팡이털을 이르는 말입니다. 거미줄 같기도 하고 이슬 같기도 한 이 신비한 꽃이 무더기로 피여나는 마을에 경사가 났습니다. 의란진의 깊은 산속에 자리잡은 민들레마을에서 우리 민족의 전통된장으로 생태산업화의 길을 모색하는 리동춘회장의 끈질긴 탐구와 실험이 마침내 “오덕장로주” 라는 술을 개발하여 보란듯이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단심, 화심, 항심, 선심, 불심을 구비하였다는 우리 민족의 전통된장이 영양과 건강을 선물하는 새로운 술문화를 창조한것입니다. 하여 심산속의 민들레마을이 생태적문화사회를 구축하는 창업의 길에서 획기적인 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이는 전통된장으로 인간의 생태혼을 불러일으킨 뛰여난 장거입니다. 전통된장과 술의 만남으로 제조된 오덕장로주! 오덕장로주는 길림성신제품감정을 무난히 통과한 기쁨과 함께 CCTV “매력 중국.향촌행”프로에 올랐으니 이 어찌 희사에 경사가 겹친것이 아니겠습니까? 연변민들레마을에는 생태문명의 향기로 피여나는 메주꽃이 있습니다. 연변민들레마을에는 오덕문화의 향기로 익어가는 장로주가 있습니다.
52    창문에 비낀 봄 (외3수) 댓글:  조회:814  추천:0  2013-03-27
창문에 비낀 봄 (외3수) 김동진 봄이 왔다고 하여 고개를 들고 보니 누군가 우리 집 유리창에 연두색 페인트를 칠해놓았다 그날 아파트 정원에는 아기잔디가 태여나고 나무잎들이 눈을 떴다 며칠이 지나 다시 창문을 바라보니 연록의 바탕색에 노오란 개나리꽃이며 연분홍 살구꽃을 그려 놓았다 그날 아파트화단에는 꽃들의 잔치가 있었다 기척도 없이 살그머니 와서 우리 집 창문에 페인트로 유화를 그려준 사람 무상으로 풍경을 그려준 사람 고맙다, 그 사람 봄이라는 명함을 지닌 화가출신의 그 사람이 꽃잎이 동동 동구밖 시내물에 꽃잎이 동동 떠가는걸 보니 어디선가 벌써 꽃이 지고있음을 알겠다 동구밖 시내물에 꽃잎이 동동 떠가는걸 보니 지금쯤 열매가 크고있음을 알겠다 동구밖 시내물에 꽃잎이 동동 떠가는걸 보니 나역시 꽃이 지면서 남긴 한알의 씨앗인줄 알겠다 랑랑 18세 봄은 랑랑 18세 초록치마에 다홍저고리 물오른 몸매 풍기는 향기 느낌이 설레인다 봄은 랑랑 18세 새뽀얀 가슴에 핑크빛 꽃망울 목걸이 반짝 귀걸이 반짝 악세사리 눈부시다 살구꽃 사뿐사뿐이 살구나무거리로 연분홍노을이 걸어옵니다 한오리 봄바람에 울렁이는 처녀가슴 마침내 꽃망울을 터치는군요 잎새보다 먼저 꽃이 피였습니다 꽃이 먼저 피여도 시샘을 모르는 잎은 꽃비가 내릴 날을 기다립니다 꽃비가 흩날리는 날 뒤늦게 돋은 잎새들이 꽃이 가는 길 바래줍니다 초록손 흔들어 바래주네요
51    립춘가절(외1편) 댓글:  조회:810  추천:0  2013-02-05
.미니수필. 립춘가절(외1편) (훈춘) 김동진 언젠가 설을 앞두고 시골집대문에 붙여놓은, 먹내음이 흐르는 춘첩자를 보면서 농가의 마음을 읽은적이 있다. 고풍스럽긴 해도 우리 민족이 아껴온 글귀 “립춘대길(立春大吉), 건양대경”이였다. 그것은 새해의 새봄에 대한 집안 어른들의 대를 이어 변함없는 하나의 간절한 소망이였다. 해마다 설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다가오는 새해의 첫절기가 립춘이다. 그래서 춘절을 쇤다는 말은 립춘을 쇤다는 말과 별로 다를게 없다. 립춘이다! 우리 모두 얼마나 기다려온 푸르른 이름인가! 립춘이란 겨울을 이겨낸 봄이 일어섰다는 뜻인바 누워있거나 앉아있다는 말이 아니다. 일어섰으니 가기마련인데 립춘이 가는 길도 순탄하지는 않다. 이제 어느날 심술쟁이 꽃샘추위가 막아설것이고 때아닌 폭설의 세례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모래바람이 몰고온 누우런 먼지속을 헤치고 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넘어지거나 쓰러질 립춘이 아니다. 그 모진 시련앞에서 휘청거릴수도 있고 흔들릴수도 있겠지만 한번 일어선 봄은 결코 넘어지는 법이 없으니 어김없는 약속대로 얼음은 풀리고 진달래는 피여나고 종달새는 하늘로 날아오를것이다. 일어선 봄, 불가항력의 봄앞에서 건방을 떨지 말자. 겸허한 마음으로 이 몸을 봄이라는 글자곁에 세우면 그게 바로 립춘가절에 고목봉춘이 아니고 무엇이랴.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해도 우리네 세시풍속에는 명절도 많습니다. 음력설과 정월대보름, 청명과 단오, 류두날과 칠석날, 추석과 동지… 모두가 하나같이 소중한 날들입니다. 그것은 명절마다 건강과 풍요,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우리 민족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기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한민족의 삶의 근본적인 추구와 지향은 변함이 없으며 그런 지향과 추구가 세시명절속에 녹아들어 한민족 풍속문화의 검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는게 아닐가요? 하기야 오랜세월의 부대낌에 많이 변형되고 퇴색한 농경사회의 세시풍속이지만 그속에 우리가 대를 이어 유산처럼 지켜야 할 조상들의 뜨거운 숨결이 있음을 망각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해도 변할수 없는 삶의 지혜와 슬기, 즉 자연을 떠날수 없는 인간의 기본적인 정신과 태도가 아닌가싶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해도 우리가 지켜가는 민속명절은 찰떡과 오곡밥, 수리떡과 인절미, 송편과 오그랑팥죽으로 우리만의 색과 맛과 향을 풍길것입니다. 그것은 자연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살가운 마음가짐입니다. 그것은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고저 하는 진지한 민속예술입니다.
50    사랑 배우기(외2수) 댓글:  조회:838  추천:4  2012-12-13
사랑 배우기(외2수) 김동진   다른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한채 사랑의 호수에서 허우적거렸다 사랑을 하면서야 사랑이란 받는것보다 주는것이 더 많아야 하는것인줄 알았다 사랑이란 잘못에 대한 용서이고 상처를 싸매주는 붕대이고 배고픈 아이에게 물리는 젖이며 대신 죽어줄수 없는 눈물인것을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향기로운 슬픔인것을 그때는 정말 알지 못했다 사는바 하곤 명금을 쥐고 살아보노라면 가탈스러운 세상사에 허리 다리 머리에 마음까지 눈물나게 아플 때가 많지만 그래도 버릴수 없는 사랑인것을 사는바 하곤 죽는 날까지 뜨는 해와 뜨는 달을 뜨는 달과 뜨는 별을 그리고 풀잎에 맺힌 새벽이슬을 피 뜨거운 가슴으로 보듬어야지 당 부 나에게 불행이 오더라도 너만은 행복해야 한다 나때문에 너마저 불행해야 할 리유가 없고 너는 너로서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거다 나에게 최악의 경우가 온다 해도 너만은 꼭 살아서 웃어라 아픔을 깨물면서 피여나는 꽃처럼 반짝이는 새벽이슬 머금고 활짝 그리고 곱게 웃어라  
49    추천사 (2010 7.19~ 7.26) 댓글:  조회:717  추천:30  2010-07-19
추천사 (2010 7.19~ 7.26)   꺼질줄 모르는 시혼을 불태우며 50여성상 작품활동에 정진해온 김동진 시인이 동시집을 펴냈다.  “색동목도리”, 라는 제명의 시집은 시인의 동심란만한 동시 160여수를 수록하고있다.   김동진 시인은 1944년 흑룡강성 녕안시 동경성진에서 출생. 다년간 훈춘시문체국창작실 창작원으로 시창작에 전념해 왔다.   김동진 시인은 2004년 정년퇴직, 중국민족예술가협회 회원.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 중국 훈춘작가협회 고문등 다양한 사회직무를 력임해왔다.   주요저서로는 시집  “두만강새벽안개”, 시조선집 “청자의 꿈”, 아동문학선집 “금모래 은모래”, 실화집 “호사유피 인사유명”, 수필집 “산, 산, 산…”, 가사집 “산향천리”, 문집 “풍진세상 티끌인생”등 무려 15부의 작품집을 펴내였다.   연변작가협회문학상, “연변문학”윤동주 문학상, 한국해외동포상 등 굵직한 상을 수상했다.    “문학이 본연에로의 회귀를 촉구하는 모진 진통속에서 깨달은것이라면 흔들림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진선미(眞善美)에 대한 인간의 추구였다. 작가, 시인은 언제 어디서나 진선미에 대한 추구를 영원한 사명으로 받들어야 한다.”고 창작자세를 밝히고있는 시인은 일관적으로 민족정신의 함양과 민족의 운명에 대한 고민 그리고 민족의 삶의 현장에 대한 조명작업에 혼신을 불태우고 있다.   문학닷컴 편집부
48    김동진 동요동시집 “색동목도리” 출간. 댓글:  조회:721  추천:40  2010-07-19
    해아씨 목도리는 색동목도리 하늘나라 공장에서 만든 목도리 소나기 울고 간 푸른 다락에 아롱다롱 곱지롱 걸려있다야…   김동진 동요동시집 “색동목도리”가 연변인민출판사에 의해 출간되였다.   김동진 시인은 1944년 중국 흑룡강성 녕안시 동경성진에서 출생. 다년간 훈춘시문체국창작실 창작원으로 시창작에 전념해 왔다.   동시집은 “색동목도리”, “꽃꽁 숨어라”, “이름이 고운 애들”, “호박엄마”, “써클공 부” 등 5부로 나뉘여 동심란만한 동시 160여수를 수록했다.   김동진 시인은 2004년 정년퇴직, 중국민족예술가협회 회원. 중국소수민족작가학회 회원. 중국 훈춘작가협회 고문등 다양한 사회직무를 력임해왔다. 주요저서로는 시집  “두만강새벽안개”, 시조선집 “청자의 꿈”, 아동문학선집 “금모래 은모래”, 실화집 “호사유피 인사유명”, 수필집 “산, 산, 산…”, 가사집 “산향천리”, 문집 “풍진세상 티끌인생”등 10여부가 있다.   연변작가협회문학상, “연변문학”윤동주 문학상, 한국해외동포상 등 굵직한 상을 수상했다.   김혁 기자   “종합신문” 2010년 7월 12일  
47    물빛으로 다듬은 시혼, 진선미에 대한 끈질긴 추구 댓글:  조회:743  추천:29  2010-07-19
   물빛으로 다듬은 시혼, 진선미에 대한 끈질긴 추구―김동진시인의 근작시작품을 평함 최삼룡1 김동진시인의 이름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꺼질줄 모르는 시혼을 불태우며 40여성상 작품활동에 정진한 김동진시인은 새로운 세기에 들어온이래 계속 왕성한 작품활동을 벌리고있다. 새로운 세기에 들어선 이 몇년 시인은 이미 시집으로 《백두산에 가서는》, 《락엽귀근》, 《봄비와 사랑과 두만강》, 《장성과 안개와 백두산》, 시조선집 《청자의 꿈 백자의 향》, 가사집 《산향천리》등 6부의 시집을 창출해내였다. 새 세기에 진입한이래 시인의 새로운 탐구작들은 특히 민족의 구심점을 찾으려는 시인의 몸짓이 돋보이며 새로운 력사의 풍파속에서 피흘리는 령혼의 몸부림을 치는 겨레의 삶의 현장에 눈길을 돌리는 시적자세가 어여쁘며 자연을 읽고 자연과 대화하는 지혜가 대견스러운데서 시인이 닿은 새로운 고도를 보여주고있으며 사상 및 예술상에서 보다 완숙된 모습으로 읽는 이들의 가슴에 접근해오고있다.  조선족시단의 활약적인 시인들중 평생 기층에서 삶을 영위하며 작품활동에 종사하는 시인은 많지 않은데 김동진은 그중  대표적인 한분으로서 그래도 조선족의 농업, 농민, 농촌과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사는 시인이 김동진이라고 말할수 있겠다. 이것은 온 나라가 바야흐로 도시화되는 시점에서 말하면 시인에게 꼭 유리하게만 작용하는 생활환경이 아니겠지만 우리 겨레의 가장 낮은 밑바닥 인생을 영위하는 농민들과 대화할수 있고 대자연과 직접 교감할수 있는 환경임에는 틀림없다.  다음 김동진시인은 장기간의 작품활동중에서 시종 진선미에 대한 추구를 견지했으며 꾸준하게 인간의 애심, 인류의 친선, 세계의 평화를 읊조리였다. 이에 대하여 시인이 스스로 피력한바 있다. 《문학이 본연에로의 회귀를 촉구하는 모진 진통속에서 깨달은것이라면 흔들림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것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진선미(眞善美)에 대한 인간의 추구였다. 세계명작을 보아도 문학으로 승화된 진선미는 사상과 리념과 체제와 국경을 초월하여 세계적인 심미공감대를 이룩하는것이였다. 그러므로 작가, 시인은 언제 어디서나 진선미에 대한 추구를 영원한 사명으로 받들어야 한다. 이는 생활과 문학이 나에게 알려준것이지 나의 발견이 아니다.》 (《김동진문집1》 17페지)여기에서 알수 있는바 진선미에 대한 추구는 김동진시인의 작품활동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이며 또 최고의 목표이다. 그다음, 김동진시인이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에 정진하기 시작한 1980년대는 조선족시단도 커다란 변화를 겪은 계절이였는데 사실주의방법의 복원과 현대주의, 후현대주의 방법의 수용이 그 주요한 표지로 된다. 이 변화속에서 시적실험 내지 시적모험을 하는 선봉시인들이 애쓴 결과 주지주의시, 상징주의시, 초현실주의시, 토템시 등이 대량 산출되였다. 하여 사실주의 시만 창작하던 국면이 크게 타파되여 오늘의 시단을 굽어보면 보다 다양하고 풍부하고 복잡한 시풍경이 나타나게 되였다. 이 거대한 변화속에서 고전시학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있다는것이 김동진시인의 작품에 대한 필자의 총적인 인상이였다. 사실 랭정하게 생각해보아도 시단이나 평단에서 김동진시인의 시에 대한 평가가 오래동안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고 미미했던것은 바로 김동진시인의 시에서 고전시학에서 탈출하려는 모험을 찾아볼수 없었기때문이 아닐가 생각된다. 김동진의 근작들은 계속 옛날의 시학에 몰입하는 김동진시인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또 고전시학과 현대시학, 전통시와 현대시의 접목에 애를 쓰는 김동진시인의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2 김동진의 근작에 일관된 의식성향은 민족정신의 함양이고 민족의 운명에 대한 고민이고 또 민족의 삶의 현장에 대한 조명이다. 시 《영원》은 이 주제에 받쳐진 시편들중 가장 대표적인것이라고 할수 있다.  이 시의 시적대상은 부제에서 밝힌바 조종의 산 백두산이다. 하지만 본문에는 백두산이란 말 한마디도 없다. 시인은 백두산을 《당신》이라고 부르면서 백두산의 산봉우리, 천지, 온천을 쓰고 백두의 령혼 즉 배달겨레의 영원한 령혼을 구가하였다. 이처럼 백두산에 기탁한 민족정신에 대한 구가는 그의 많은 시편에서 주선률로 되고있다. 시인은 백두산을 바라보면서 《이제 천년을 흐른다 하여/장백이라는 산과 흰옷 입은 사람들을/갈라놓을수 있을가//천심이 민심이고/지심도 민심이니/천지물은 항시 푸르리라》(《백두명상》에서)는 명상에 잠겨도 보고 고조할매의 거울 천지에 찾아가 《풍진속세에 찌든 가슴에/속죄의 향불이 피여오른다》면서 자아성찰도 해보고(《고조할매의 거울》에서) 백두대간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면서 《이 땅의 무슨 말을 들어보려고/누구의 무슨 한을 달래주려고/하늘벼랑 락화암에서/하얀 치마폭 뒤집어쓴 꽃잎이/내리고 내리고 또 내리는가》라는 환상에 잠겨보기도 하고(《백두대간에 내리는 눈》에서) 백두대간에 솟는 해를 바라보면서 《백두대간에 솟는 해는/3억리의 머언 길 단숨에 달려왔다》면서 《이 강포에 굴함없는 령혼의 산과/이 정의로 굽이치는 력사의 강을/차마 례사로이 만날수가 없어 백두대간에 솟는 해는/동해바다에서 목욕단장을 하고왔다》는 상상도 해보며(《백두대간에 솟는 해》에서) 백두대간에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너는 투명한 노래가락으로/나의 가슴에 스며들고/나는 감격에 떨리는 두팔로/너의 젖은 몸 안아보며/우리는 이렇게 사랑하였다》고 웨쳤으며 (《백두대간에 내리는 비》에서) 두만강기슭을 거닐면서 《눈물젖은 사공의 노래는/천년의 갈숲에 스며들고/세월은 아픔을 삼키며/아득히 흘러가고있었다》고 하면서 《두만강―력사의 강/너는 진작 눈물이 말라버린/저 하늘의 빛이요/이 땅의 소리였다고》 노래하였다.(《두만강은 눈물이 아니다》에서) 백두산을 우러르면서 두만강을 거닐면서 읊조린 이와 같은 시편들에는 한결같이 애족애향의 감정이 충일되여있으며 영원한 민족정신과 빛나는 민족문화에 대한 함양이 도고하며 민족의 운명에 대한 깊은 고민이 안받침되여있다. 이렇게 민족의 운명에 대하여 깊은 고민을 안고 사는 시인이기에 김동진시인은 내내 민족의 삶의 현장에서 눈을 떼지 않고있으며 따라서 그의 시에는 민족의 생존상황에 대한 커다란 우환의식으로 일관되여있다. 흩날리는 버들꽃을 바라보며 마음이 왜 무거워져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그냥 모르겠지만 흰색을 좋아하기로 허옇게 소금 돋히는 강바닥까지 자랑거리로 삼을수는 없다 이것은 시 《엄마야 누나야》의 제1련이다. 이렇게 강바닥에 소금 돋히는 현실을 소묘하면서 갈라터진 강변에는 여울소리 울리는 언어가 없고 물빛으로 일렁이는 문자가 없다고 한탄한다. 서글픈 분위기와 쓸쓸한 기분을 조성하는 고향의 강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은 처절하기만 하다. 시 《비여있는 집》은 바야흐로 해체되고있는 조선족 농촌의 스산한 현장을 비여있는 집으로 은유하면서 뿌리박은 터가 소버짐을 앓기 시작하고 사람내음이 떠나버린 개바자는 바라보는 눈알을 아리게 한다고 하였으며 내장을 뽑아내고 박제된 두더지 같은 빈집, 잡초의 향연에 묻혀버린 빈집은 한무지 흙으로 무너진다고 하였다. 시 《저기 저 산기슭에》에서 시인은 모든것이 기억만으로 남아있고 현실에는 없는것들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에 잠겨 그 산기슭에는 원래 《나의 살던 고향》이 있었는데 재미있는 동네, 달콤한 동네, 그림 같은 동네, 사랑밭 가꾼 동네가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없어졌다고 통곡을 치고있다. 시 《저기 저 마을》에서도 역시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가시내들에 대한 그리움을 절절하게 표현하고있다. 어시 닮은 가시내들, 이슬 맺힌 가시내들, 옷깃 여민 가시내들, 해달 같은 가시내들, 잘도 크더니 잘도 크더니 잘도 크더니… 몇번 곱씹고 뒤말을 잇지 못하고있다. 총적으로 동포들의 삶의 현장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시인의 마음은 불안하며 초조하며 착잡하다. 어느새 김동진시인의 시에서도 전에 부르던 《이 아니 농가지락인가》하는 식의 전원목가는 가뭇없이 사라졌다. 3 조선족 농촌의 해체와 조선족의 운명 그리고 조선족 전통문화의 소실은 근심을 자아내지만 김동진시인의 진선미에 대한 추구는 멈춰지지 않는다. 그의 많은 시편들이 이를 증명하고있다. 시 《그리움의 강물》에서 읊은것처럼 사는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봄은 따사롭고 세상은 아름답다는것은 바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시인의 신념으로 굳어졌다. 시인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먼저 자기 신변의 친인들에게서 찾아보았다.  여기서 먼저 시 《엄마의 새벽》을 보자. 이 시에서 시적화자는 자식의 공부뒤바라지때문에 콩나물을 이고 새벽길을 걸어 시장으로 가는 엄마의 모습을 그리고있다. 새벽이 열리기전 엄마는 떠나야 한다 깊이를 알수 없는 밤의 먹물속에 잠긴 엄마는 오십고개에 처진 빈약한 젖가슴으로 바위처럼 무거운 어둠의 대문을 밀고나간다 엄마의 머리에는 엄마보다 더 큰 싸리광주리 광주리안에는 엄마의 꿈처럼 어둠속에서 눈을 뜬 콩나물의 음악이 있다 ―《엄마의 새벽》 전반부 이렇게 시작된 이 시에서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영원한 사랑, 절대적인 사랑을 인상깊게 찬미하고있다. 시 《당신의 체온 36. 5도》는 안해의 사랑을 특색있게 읊조린 시편으로 우리에게 큰 감동을 안겨준다. 시의 시작에서 창밖에는 삭풍이 울부짖어도 당신의 체온이 내곁에 있기에 나에게는 겨울이 없다고 단도직입적으로 직설한후 시적화자는 《문득 처마밑에 깃든 참새 아빠도/이렇게 참새 엄마의 체온으로/이 겨울을 따스하게 살리라는 생각과/밤이면 추워서 잠이 안온다는/이웃집 홀아비의 말이 떠오릅니다》라고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안해의 사랑을 읊조리고있다. 당신이라는 꺼질줄 모르는 화로가 있어 성에가 끼지 않는 나의 방에는 겨울을 모르는 꽃이 피는군요 나를 업어키우신 할머니의 잔등과 언 손을 품어주시던 엄마의 가슴과 신통히도 같은 당신의 체온 36.5도 그 체온을 나에게로 보내주신 저 하늘에 늘 감사하는 두팔로 나는 당신의 체온을 안아봅니다 창밖에 삭풍이 울부짖는 날 이 시에 대한 설명은 모두 쓸데 없는 군더더기로 될것이다. 봄이 따스하고 세상이 아름다운것은 바로 36. 5도의 체온을 갖고있는 안해의 뜨거운 사랑이 있고 엄마의 절대적인 사랑이 있고 활등처럼 휘여든 허리로 새끼들을 업어키우신 할머니들의 영원한 사랑이 있기때문이다. 이밖에  또 《임당수》 등 여러 시편에서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이미 많이 색이 바래진 사랑― 효를 찾아 헤매기도 하며 《려명의 천사》 등 여러 시편에서는 시적인 상상력을 동원하여 인간의 사랑을 고양하고있다. 《려명의 천사》에서 시적화자는 려명의 창문밖을 내다보면서 밤의 면사포를 벗기는 새벽빛을 천사의 예쁜 손으로 련상하면서 사랑의 위대한 힘을 확인하고있다. 망울 터치는 꽃나무의 전률에 무늬지으며 흔들리는 새벽호수 가위눌린 가슴이 부풀어오르도록 흘러내리는 새날의 싱싱한 강물이여 우리의 아름다운 노래와 춤사위가 물빛으로 설레이는 까닭도 알겠다. 이 시에서 풍기는 분위기를 통하여 우리는 시인의 드팀없는 신념, 래일에 대한 락관적인 전망 그리고 진선미와 사랑에 대한 끈질긴 추구를 다시한번 확인하게 된다. 4 김동진의 근작에서  또 한가지 우리의 주의를 끄는것은 시인의 자연을 읽는 지혜와 자연과 대화하는 수준이다. 우리는 그의 많은 시편들이 자연에 대한 감각과 자연현상에 대한 관찰로부터 발상되고있음을 보아낼수 있으며 이러한 시편들에 인간과 민족, 시대와 사회에 대한 철리적인 사색이 깊이 깔려있음을 보아낼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김동진의 시에서 일종의 자연현상으로서 눈과 단풍이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해볼 필요가 있으며 산과 바다 그중에서도 백두산과 두만강이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는것을 독자들에게 환기시키고싶다. 5 김동진의 근작들을 두루 살펴보면서  필자가 제일 기꺼워지게 되는것은 새 세기에 진입한이래 김동진시인의 시가 많이 탈바꿈되였다는 점이다. 어느 글에서 시인은 《나는 접목을 시도한다》고 선언한바 있는데 이 말의 함의는 바로 전통적인것을 버리지 않으면서 혁신을 시도하겠다는 뜻이고 고전적인것과 현대적인것, 동방적인것과 서방적인것의 결합을 시도하겠다는 뜻일것이다. 김동진시인이 이 시적슬로건의 실천에 골몰하는 모습 참으로 돋보인다. 첫째, 시이미지 창조. 하아얀 소복차림으로 개벽의 첫새벽에 떠놓은 정화수 한대접에 북두칠성 우러러 합장하고 서있는 당신의 모습이 영원으로 비꼈습니다 숙명으로 다져진 어시의 마음으로 혹시나 어느 자식 배를 곯을가 밤낮으로 쉬임없이 찧고 또 찧는 쿵덕쿵덕 절구방아소리에도 당신의 영원은 들려오고 당신의 가마전에 피여오르는 식을줄 모르는 더운 김에서도 당신의 영원은 하얀 치마자락으로 나붓깁니다 이것은 조종의 산 백두산에 대한 송가인데 여기에는 이른바 시적대상으로 된 원형에 대한 복제는 거의 없고 모두 시인의 상상에 의한 시적이미지로 창조되였다. 《하아얀 소복차림》, 《정화수 한대접》, 《북두칠성 우러러 합장하고 서있는 당신》이 무엇을 은유하고있는가는 더 설명이 필요없고 《밤낮으로 쉬임없이 찧고 또 찧는 쿵덕쿵덕 절구방아소리》는 폭포소리의 은유이고 《가마전에 피여오르는 식을줄 모르는 더운 김》은 온천수의 은유임에 틀림없을것이다. 이 시에 창조된 이미저리는 동적인것이 특징적이며 또 시각적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창조된것이 특징적이다. ① 하늘나무에 걸려 찢어진 바람     그 바람의 람루처럼 펄럭거리는    삭막한 계절의 옷자락을 여며주려고    눈은 저리도 내리는것인가 ② 백두대간    하얀 너울    백설천지    하얀 꽃춤 ③ 하늘벼랑 락화암에서    하얀 치마폭 뒤집어쓴 꽃잎이    내리고 내리고 또 내리는가 이 세련의 시는 모두 《백두대간에 내리는 눈》에서 발취한것인데 ①에서 《삭막한 계절의 옷자락》은 민족의 어떤 생활상을 은유한 형태적인 이미지이고 ②에서 《하얀 너울》과 《하얀 꽃춤》은 시각적 이미지이고 ③에서 《하얀 치마폭 뒤집어쓴 꽃잎》도 시각적 이미지인데 이 세개 이미지는 모두 시인의 상상에 의하여 창조된 시적원형에 대한 복제가 아닌 시적 이미지다. 김동진의 시에는 이렇게 예민한 감각과 심각한 사색 그리고 풍부한 상상의 결합으로 창조된 풋풋한 생명이 살아숨쉬는 시적 이미지가 점차 많아지는 추세를 보여주고있다. 그리고 이런 시적이미지에 힘입어 그의 근작들은  어느 한수의 시도 결코 허술하게 창조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남겨주고있다. 둘째, 최근에 창작된 시편들은 김동진시인이 시창작중에서 점차 지성을 중시하고있으며  따라서 그의 시편들중 주지시가 많아지고있음을 보여주고있다. 40년간의 작품활동중에서 김동진시인은 오래동안 주로 주정시를 써왔으며 또 지금도  주정시가 그의 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는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점차 시창작에서 지성을 중히 여기고 또 주지시 창작에도 흥취를 보이고있는데 이는 김동진시인의 시적인 곤혹과 변신의 모지름을 과시하는 대목이다. 이른바 주지시란 주정시의 대립개념으로 감각과 정서보다는 지성의 작용을 중요시하는 창작태도 혹은 그 경향을 의미한다. 여기서 지성의 작용이란 작품내용이 지적(知的)이라기보다 대상에 대하여 감정을 억제하는 시인의 태도를 가리키며 그 가치취향으로 놓고 말하면 주지시는 현대문명의 병페에 대한 비평 내지 고발이 위주이다. 이런 의미에서 국내외의 많은 학자들이 주지시와 모더니즘시 사이에 같기 부호를 치는것이다. 살면서 몸과 마음에 입혔던 온갖 빛갈 고운 옷가지를 모조리  벗어버린다는건 수치로만 해석할 일이 아니다 그런 날 가슴 헤친 해가 솟아오르면 해살을 타고 흘러내리는 가장 뜨거운 언어들이 알몸의 진실을 어루만진다 알몸의 예술 진실의 미학 나무는 그것을 만들려고 해마다 봄, 여름을 넘어 가을로 가고있다   ―《가을로 가는 나무》 전문 이 시는 제목 그대로 나무를 쓰고있지만 시의 내용은 그것이 아니라 시적대상 즉 가을로 가는 나무에 대한 감정이나 정서가 아니라 사색이고 나무로부터 창조된 시이미지는 없는바 이 시의 주제는 시인의 자유에 대한 동경과 알몸의 예술과 진실의 미학 그리고 자아의 철저한 해방에 대한 추구이다. 시 《갈대의 추억》의 내용도 갈대에 기탁한 인생의 허무와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사색인바 전편 시에서 주체를 이루고있는것은 갈대의 이미지가 아니라 인생에 대한 사색이다. 시 《나의 이름》은 완전한 주지시로서 자아의 가치에 대한 랭철한 분석으로 일관되여있다. 이 시에는 권세와 금전의 유희 그리고 명예의 유혹을 초월한 극히 평범하면서도 참다운 인생에 대한 추구가 분명히 암시되고있다. 이밖에도 《사막시대》, 《탈이 많은 세상》, 《열리지 않는 문》 등 주지시에서는 현대문명의 페단에 대한 비판에 예봉을 돌리고있다. 셋째, 김동진시인의 시는 점차 이미지의 창조에 주력하고 또 지성을 중시하는 과정에서 일부 시인의 주관원망과는 달리 언어의 폭력조합 내지 이미지폭력조합 등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는 현대시에 많이 쓰이는 시어의 폭력조합이요 이미지폭력조합이요 하는것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김동진문집》(1) 17페지)라고 말한바 있는 김동진시인이지만 그의 근작들에서 우리는 시어의 폭력조합은 물론 이미지의 폭력조합까지 어렵잖게 찾아볼수 있으며 심지어는 난해한 시까지 적지 않게 보인다. 이것은 김동진시인의 시의 모순 아니 시인의 모순이라 할수 있는데 이 모순이야말로 김동진시인이 비로소 진정한 현대시창작의 차원에 입문했다는 증거로 된다. 총적으로 김동진의 근작은 시인의 진선미에 대한 추구가 계속되고있으며 시인이 꿈꾸는 고전시학과 현대시학, 전통과 현대를 접목하려는 모지름이 계 속되고있다는것을 증명하고있다. 김동진시인의 시가 좋아지고있어서 기쁘다. <<연변문학>> 2007년 11월호    
46    시인과 시 그리고 소통의 길 댓글:  조회:773  추천:34  2010-07-19
시인과 시 그리고 소통의 길중국조선족시단의 경우김동진 주지하다싶이 중국조선족시단에 “시의 위기설”이 제기된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새로운 력사시기가 수용한 새로운 사조의 침투와 관념갱신의 시대적인 요구속에서 시인 저마다 나름대로의 진통을 겪어야 했다. 적어도 무엇을 어떻게 새롭게 쓸것인가를 다시한번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진통은 우리의 시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는데는 별로 큰 효력을 발생하지 못하였는바 고루한 과거형에서 탈피하는 몸부림이 질적으로 일정한 제고를 가져왔다고는 하지만 시의 길은 여전히 락관적이 되지 못하는것이 오늘의 시단상황이다. 객관적으로 시장경제의 충격, 금전숭배에 따른 가치관의 변화, 사이버문학의 흥기, 그리고 조선족인구의 마이너스성장과 민족공동체의 해체로 인한 독자군의 축소 등이 원인이 될것이다. 그러나 좀더 자각적인 자성으로 문제를 분석할 때 이런 위기의 근본적인 책임이 다른 사람이 아닌 시인들 자신에게 있다는 주관원인을 배제할수 없다. 시인이 밤을 패며 써서 요행 발표한 시를 독자들이 보기 싫어할 때 어찌 그 무거운 책임을 독자들에게 밀수 있단 말인가? 탈바꿈이라는 명목아래 난해하고 난삽한 시, 말장난글장난의 시를 내놓고 독자들더러 곱게 보아달라고 한다면 이런 억지는 어느때건 통할리가 만무하다. 그러니 “시가 시시하다, 무슨 헛소리를 쳤는지 모르겠다”는 독자의 혹평앞에서 시인들은 억울함보다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것이다. 그런데도 부끄러워할줄 모르니 우리의 시인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낯이 두꺼워졌는지 모를 일이다. 시인이라면 현대시의 위기가 중국조선족시단에만 국한된것이 아닌 세계적현상이라는것쯤은 알아야 할것이다. 따라서 세상의 많은 시가 독자를 멀리하면서 자아만족에 빠지고있을 때 우리가 그것이 좋다고 북을 치며 따라가지 않았는가를 검토해보아야 할것이다. 멕시코의 시인이며 문학평론가인 루엔 레이바는 현대시의 위기가 형성된 “주된 원인은 시인들에게 있다”, “독자와의 괴리에 대한 책임은 거의다 시인들과 일부 평론가들의 책임”이라고 지적하면서 시인이 자초한 위기인만큼 이 “위기를 극복하고 해결하는 일의 주체도 시인이 되여야 한다”고 피력하였다. 필자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한다. 시의 위상이 일락천장이 된 세상에서 시인의 모습은 대체로 가긍하다. 서점가의 진렬대에서 랭대를 받는 시집과 독자들이 선망의 눈길을 주지 않는 시를 놓고 일부는 불평을 토로하고 일부는 고뇌에 빠지고 일부는 그래도 좋다고 떠드는 모습은 보기가 썩 좋은 풍경이 아니다. 얄팍한 호주머니를 털어 자비(自费)로 출판한 시집을 문우들과 친구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억지로 즐거운 표정을 짓는것이 요즘의 우리네 시인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위기에 처한 우리의 시를 구하는 길에서 시인들이 선행해야 할 일이 무엇일가? 답안이야 많겠지만 필자의 미숙한 생각으로는 생활속에 더 깊이 들어가 독자를 망라한 광범한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면 집안에 앉아서 누가 이 위기를 해소시켜 주기를 바라지 말고 주동적으로 방법을 대여 대중과 소통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것이다. 이 면에서 연변시인협회는 하나의 좋은 보기가 되고있다. 김응준원로시인님을 회장으로 모신 연변시인협회는 2006년 4월 창립대회에서 공개한 자신의 약속을 굳건히 지켜가고있는바 지난 4년간 시리론강좌와 세미나, 시총서 《시향만리》의 출간외에도 밑바닥생활체험을 통한 현지창작과 형식이 다양한 시랑송을 견지하여 시단에 신선한 활력소를 주입하였다. 그들의 주도적인 시관념은 민족시의 우수한 전통에 현대시의 새로운 기법을 접목하는것으로 비록 정품(精品)이라 할수 없고 량적으로 많지 못하지만 중국조선족의 현실에 립각한 괜찮은 시편들을 창작하였다. 조양촌의 개울가에, 태양촌 농가의 온돌방에, 봉천동의 강냉이밭에, 춘화진 초모산정에, 백금향 9호동의 산자락에 찍힌 연변시인협회의 발자국은 결코 무가치 무의미한것이 아니였다. 뿐만아니라 그들은 곳곳에서 시랑송회를 조직하여 시와 대중의 만남의 장을 마련하였다. 지면에 고정된 활자를 벗어나 살아움직이는 진실한 언어로 펼치는 시랑송이 청중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때 시의 내용을 모조리 터득하지는 못해도 정감을 토로하는 시의 본성이 어떤것인가를 조금이라도 새겨주었다면 이런 시랑송은 가히 성공적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연길의 음악살롱에서의 시와 음악의 만남, 태양촌에서 촌민들과 함께한 시와 오락의 밤, 훈춘5중학생들과의 명사시랑송회, 영안촌에서의 촌민들과의 만남, 훈춘동아무용학교에서의 시와 무용의 밤… 이같은 행사를 통하여 우리의 시가 학생들과, 촌민들과, 음악과, 무용과 만날수 있었으니 비록 외국의 대형이벤트와는 비할바가 못되는 미소한 움직임이지만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이러한 적극적인 실천행위는 절대로 과소평가해서는 안될줄로 안다. 소식에 따르면 추락하는 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미국에서는 해마다 4월이면 “전미(全美) 시의 달”을 선포하는데 1996년부터 미국 시인아카데미가 정부기관과 언론, 출판사의 후원을 받아 한달내내 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모으는 행사를 펼친다고 한다. 그리고 프랑스에서는 1999년부터 매년 3월이면 문화부와 교육부의 후원을 받는, “시인들의 봄”이라고 명명한 시축제의 막이 열린다고 한다. 일전에 독일의 브레멘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펼친 “제8회국제시축전”도 시의 본성을 되살리고 시민들에게 시사랑을 심어주는 이벤트로서 그기간 학교는 물론 도심을 순환하는 전차속에서까지 시랑송회가 열렸다고 하니 시를 되살리기 위한 몸부림은 어느 한 민족만이 아닌 대중적인, 국제적인 움직임으로 번지였음을 알수 있다. 세계시단의 형세가 이러할진대 우리에게도 연변 내지 중국조선족시문학축제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건만 금전이 대소사를 좌우지하는 세월에 가난한 몇명 시인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시를 되살리기 위한 정부차원의 지지와 여론계의 협력과 작가협회 주관부문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런 여건이 주어지지 못한 상황에서도 개별적으로 우리 시의 운명을 관심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감사한 일이 아닐수 없다. 례하면 연변TV위성방송은 “영상시와의 만남”이라는 프로그램을 고정시켰고 연변인터넷방송에서는 영상문화로 시랑송을 올리고있으며 송미자시인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인터넷조글로사이트에 클래식과 시의 접목을 시도하는 시랑송을 하고있다. 그리고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의 한석윤회장님은 지난해부터 연길공원에서 중한시화전을 펼치여 “시와 시민의 만남”의 장을 마련하고있다. 시인들의 활동을 위해 고생스레 번 돈을 후원금으로 내놓은분들과 더불어 이러한 형식과 내용은 모두 의심할바없이 시의 대중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한것인바 우리는 마땅히 여러 조직과 주어진 다양한 시설 그리고 시청각매체를 리용하여 시를 되살리는 이러한 미거에 감사를 드려야 한다. 한국에 갔다가 시로 하여 크게 감동받은적이 있다. 하나는 공공장소에서 아주 쉽게 시를 만날수 있었는데 특히 서울 도심의 긴 담장에 그림과 사진이 배합된 좋은 시가 정교한 액자로 줄지어 걸려있어 거리의 문화품위를 높인것이였고 다른 하나는 깊은 산중에 있는 도장공의 작업실 쉼터공간에 한국 유명시인들의 친필시가 빈틈없이 걸려있는것이였다. 소통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고 국민의 시사랑이란 그런것이였다. 마음을 합치고 힘을 합치면 얼마든지 할수 있는 이런 일마저 우리는 너무나 등한시한것이다. 시인이란 아무튼 영원토록 듣기좋은 이름이다. 우주만물과 교감할줄 알고 인간세상의 진선미(真善美)와 가악추(假恶丑)를 형상적으로 표현할줄 아는 사람이니 말이다. 오죽하면 세네갈의 시인대통령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는 “나는 시인대통령으로 기억되기보다 대통령을 지낸 시인으로 기억되고싶다”라고 했으랴. 중화위인들의 생애를 보아도 거의모두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였다. 모택동이 그러했고 주은래가 그러했으며 진의가 그러하지 않았던가! 현시대에 와서 세계가 공인하는 온가보총리의 시사랑은 너무나 유명하다. 2006년 영국방문시 “주로 무슨 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가?”라는 외국기자의 엉뚱한 물음에 온가보총리는 시인 굴원과 정판교의 시구로 대답하였다. “긴 한숨 쉬며 남몰래 우는건/ 고생하는 민생이 애처로운 탓이요” “관저에 누워 대나무소리 듣자니/ 백성들 아파하는 소리로 들리는것 같아” 보다싶이 온가보총리의 가슴속에는 온통 고생하는 민생과 아파하는 백성뿐이다. 그것을 고전명시 4행으로 완벽하게 표달했으니 나는 이런 시야말로 진짜시이고 고급시라고 단언한다. 자고로 이름을 남긴 시인치고 민족과 민생의 희노애락을 외면한 시인이 있었던가? 순수문학을 한다하여 시의 사회적책임과 대중과의 소통을 우습게 아는것은 바람직한 처사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의 시인들이 “포스트모더니즘시대의 시는 물우에 뜬 기름과 같다”라고 한 사울 아바르고옌(우르과이의 시인이고 소설가이며 교수)의 말의 함의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면 한다. “쌍백방침(双百方针)”과 “쌍다원리(双多原理, 다원공생,다각공존)”에 의한 여러가지 류파의 존재는 정상적이며 합리한것이다. 하지만 어떠한 류파든지 민심을 우습게 보거나 거역한다면 아무리 큰소리로 떠든다해도 스스로 존재가치를 상실하게 될것이다. 민심이 곧 천심인데 시인의 시심(诗心)이 민심을 얻지 못하면 어찌 시의 번영과 부흥을 바랄수 있겠는가? 독자, 대중과의 거리를 단축하고 소통을 이루는 길은 민초의 생활에 접근하고 우리가 살고있는 삶의 현장과 흙을 가까이 하는 길뿐이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 그 길을 가야만이 우리 나라가 중국특색의 사회주의를 건설하듯이 우리의 시단도 중화의 땅에 살고있는 중국조선족의 시세계를 구축하게 될것이다. 그러한 시로써 인민대중과의 끈끈한 뉴대를 형성하는 시스템—시와 시민, 시와 촌민, 시와 학생, 시와 음악, 시와 무용, 시와 드라마, 시와 미술, 시와 촬영, 시와 TV, 시와 인터넷, 시와 소품, 시와 영화의 어울림을 형성한다면 우리의 시는 긍정코 되살아날것이며 지금처럼 우리 시의 전망에 대해 비관하는 일은 없을것이다. 나는 인류가 존재하는한 문학이 존재하고 문학이 존재하는한 시가 존재하리라고 믿으면서 동시에 우리의 시인들이 신들메를 조이고 대중의 사랑을 받는 시인의 바른길을 걸어가리라고 굳게 믿는다. 연변문학 2010.2호  
45    [시]가을로 가는 나무 댓글:  조회:780  추천:30  2010-05-01
가을로 가는 나무   김동진     살면서 몸과 마음에 입혔던 온갖 빛갈 고운 옷가지를 모조리 벗어버린다는건 수치로만 해석할 일이 아니다   그런 날 가슴 헤친 해가 솟아오르면 해살을 타고 흘러내리는 가장 뜨거운 언어들이 알몸의 진실을 어루만진다   알몸의 예술 알몸의 미학 나무는 그것을 만들려고 해마다 봄,여름을 넘어’ 가을로 가고있다.   -2001년     시인략력: 김동진,1944년 흑룡강성  동경성 출생.연변대학 통신학부 졸업.시집 <가야금소리>, <청자기의 꿈> 등 6권이 있음.       - <중국조선족 명시> 에서 선정.
44    훈춘의 봄 댓글:  조회:778  추천:23  2010-01-08
미니수필훈춘의 봄김동진경인년, 올해따라 훈춘의 봄은 빨리도 왔습니다.나는 지금 백설이 덮힌 훈춘의 설원에서 이 봄노래를 부릅니다. 대소한추위를 녹이는 봄바람을 안고 훈춘의 봄노래를 부릅니다.북경에서 불어온 한갈래 훈훈한 봄바람이 25만 훈춘시민들의 가슴에 세기적인 숙망을 이룩하는 찬란한 봄을 안겨주었습니다. 두만강지역개발이 국가급전략으로 급상하면서 동북아의 명주로 불리는 훈춘시가 《장-길-도》 선도구 창구도시로 지목되였습니다.나라에서 전략의 봄을 마련하였으니 이제 우리는 전술의 봄을 만들어야 하겠지요. 그리하여 근로용감하고 분발향상하는 훈춘사람들은 지금 일심협력으로 구역성수출입가공제조업, 경외자원개발, 생산봉사, 국제물류구입, 다국관광 등 기지건설의 웅위로운 설계도를 펼치고있습니다. 화창한 봄날의 대문이 열리자 대건설의 함대가 울리는 출항의 고동소리가 메아리칩니다. 이제 훈춘의 봄은 우리 연변경제발전의 눈부신 봄으로 설레일것이고 두만강지역합작개발의 들끓는 봄으로 꽃필것입니다.훈춘의 봄은 선도구 창구도시를 건설하는 봄입니다.훈춘의 봄은 동방의 노트르담을 건걸하는 봄입니다.훈춘은 청춘입니다. 복받은 청춘, 세계에로 나래치는 청춘입니다.                                               2010.1
43    날개돋힌 호랑이 댓글:  조회:915  추천:27  2010-01-08
미니수필날개돋힌 호랑이김동진얼씨구나 절씨구! 호랑이네 집에 경사가 났네! 두만강지역 호랑이네 집에 경사가 났네!지난해 11월 13일, 중국 훈춘.제1회 동북호랑이관광문화축제가 성황리에 열렸는데 닷새후인 18일에는 국무원에서 “중국두만강지역합작개발전망계획요강”을 비준하여 동북호랑이에게 황금날개를 달아주었으니 이 어찌 특대경사가 아니랴! 게다가 이런 희사를 미리 알고 온듯이 경인년(庚寅年)의 대문---호랑이해의 대문이 활짝 열렸으니 이 또한 하늘이 하사한 다채로운 축복이 아닐수 없다.의심할바 없이 이제부터 “두만강지역”이라는 동북호랑이는 더는 맹호복초 (猛虎伏草)가 아닌 비호출산(飛虎出山)이 되여 호호생풍(虎虎生風)을 과시할 때가 되였다. 우리의 두만강지역이 “선도구건설”을 앞세우고 나래돋친 호랑이마냥 용력과 용맹, 지혜와 슬기를 펼칠 때가 되였다는 말이다.경인년의 해돋이를 우러러 장백의 벼랑끝에서 포효하는 동북호랑이의 “따웅” 소리가 메아리쳐온다. “따웅”소리는 호랑이해의 종소리이고 “따웅”소리는 호랑이해의 주제가이며 “따웅”소리는 호랑이해의 주선률이다.이제 우리는 저 날개돋친 동북호랑이를 타고 백두대간을 주름잡아 바다를 날아넘어 세계에로, 세계에로 나래쳐가리라.
42    [시] 생명의 락인 댓글:  조회:795  추천:19  2009-11-19
생명의 락인-건국 60돐에 삼가 드림김동진생명의 나무에는거부할수도지워버릴수도 없는세개의 락인이 있다성명과 민족과 국적을 떠나나는 세상과 대화를 할수 없다강보에 싸여 맞이한 광복과소꿉놀이대 울린 개국의 례포를철모르기 짜개바지가어찌 알수 있었으랴만공화국과 더불어 살아온60개의 나이테속에아로새겨진 세개의 도장에서나는 내 생명의 존엄을 보았다석룡으로 솟아오른 만리장성에 뛰여올라수룡으로 굽이치는 황하장강을 굽어보며할아버지 지어주신 나의 이름으로나의 민족을 사랑할수 있고나의 조국을 노래할수 있는 땅아, 나에게 공민의 자호와 긍지를 준사랑하는 나의 조국이여연변문학 2009년 제10호
41    딸애의 에피소드 댓글:  조회:838  추천:24  2009-07-24
딸애가 소학교 2학년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학년말총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딸애가 <<다른것은 다했는데 우등을 못했 습니다.>>라고 하면서 울먹이는것이였다.   우등을 못하고 다른것은 다했다는 말이 이상하여 통지서를 펼쳐보았더니 웬걸 최우등에 개근생에 3호학생이라고 씌여있었다. 최우등생이 되고서도 우등을 못했다고 울상이 된 딸애의 표정이 너무나 우스워 나는 터지는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최우등도 하고 우등도 해야 훌륭하다고 여기는 생각, 그것이 바로 천진하면서 유치하고 단순하면서 솔직한 딸애의 동심이였다. 좋은것은 무어나 다 되고싶어하는 딸애의 마음은 탐욕과 허욕이 아닌 순수한것으로서 과장도 없고 축소도 없는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꺼내보인 진실함이 이같은 에피소드를 만들어낸것이다.   딸애의 이 에피소드는 후날 우리 집안에서 웃음을 자아내는 추억거리가 되였다.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근심걱정 없는 날이 없다지만 이런 엉뚱한 이야기가 있기에 웃으면서 사는게 아닌가싶다. 3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도 우등 하나 못하고 다했다고 하던 딸애의 에피소드를 생각하면 마루바닥에 선채로 울먹거리던 그날의 아홉살짜리 단발머리소녀로 하여 웃음이 절로 나온다.      
40    워낭소리 댓글:  조회:885  추천:21  2009-07-24
  내 기억의 갈피에서 오래동안 망각되였던 워낭소리가 갑자기 메아리쳐온것은 관객 200만명을 돌파한 한국독립다큐영화<<워낭소리>>소개글을 보는 순간이였다. 농민의 아들로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 있어서 워낭소리는 결코 낯선 소리가 아닌 정다운 고향의 소리이건만 이 몇해간 도회지물을 먹으면서 사는 일에 부대끼다보니 부지중의 잊음이 된것이다. 농사군에게 소만큼 값진 재산이 더는 없던 세월, 주인이 한집식솔같은 소에게 걸어준 사랑의 목걸이, 그게 바로 워낭이 아니던가. 그리하여 일밭으로 오갈 때 왈랑절랑 기분좋게 울리던 워낭소리! 워낭소리는 가난해도 나름대로 흥겨웁던 시골의 멋으로서 땅에 목숨을 걸고 희망을 건 농부의 가락이였고 흙에서 희열을 찾고 행복을 찾는 농부의 애착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워낭소리가 우리를 떠나고있다. 우경(牛耕)사회가 기계농사로 발전하면서 사라져가는 워낭소리, 게다가 수많은 농민들이 땅을 떠나는 요즘같은 세상에서는 더욱 그러할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산간의 수레길에서 울리던 워낭소리가 그립다. 락후한 농경사회에 대한 어리석은 미련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고향의 산과 물 그리고 후더운 이웃사랑을 그리워하는것과 같은 그런 감정으로서 농사군과 함께 대를 이어 고생한 소라는 말못하는 짐승에 대한 한가닥 추억과 련민때문이다.    
39    아르메니야의 책사랑 댓글:  조회:755  추천:29  2009-07-03
중동에 1991년에 요행 독립된 아르메니야라는 작은 나라가 있다.1100년이나 토이기, 몽골, 로씨야 등 강국의 군화에 짓밟히며 략탈과 학살을 당한 나라, 전쟁의 재난속에서 1000만명이 세계 각지에 흩어지고 지금은 겨우 인구 300만밖에 안되는 나라.어느 책에선가, 이 나라 녀인들의 책사랑이야기를 보고 깊은 감동에 젖은적이 있다. 잔혹한 전란속에서 테이불만큼 큰 필사본 한권을 옮길수 없어 녀인들이 그것을 뜯어 나누어가지고 떠났는데 강을 건너야 했다. 그때 그녀들은 데리고 가던 아이의 손을 놓고 두손으로 책을 안고 강을 건넜다는 이야기다. 책때문에 자식까지 버린 그녀들의 행위는 어찌보면 모성의 상실같기도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였다. 그것은 모성애마저 희생시킨 애국애족의 눈물겨운 처사였다.바로 이런 국민들이 있음으로 하여 아르메니야는 끝끝내 세계 최고의 사서를 보존할수 있었고 10여세기를 넘는 외세의 탄압속에서도 자신의 언어와 문자를 지켜낼수 있었다. 나는 아르메니야의 책사랑에서 아르메니야를 지켜낸 아르메니야인민의 정복되지 않는 정신을 보았다. 이런 정신을 소유한 나라와 민족은 작아도 위대한것이다. 무게가 75킬로그람이나 되는 지혜의 집성—“탈무드”를 가슴에 품고 나치독일의 무차별 학살에 저항하여 살아남은 유태민족처럼 아르메니야는 작아도 강하고 위대한것이다.  (연변일보 2008-6-19 1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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