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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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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연길대교 댓글:  조회:4289  추천:73  2007-06-29
  . 칼럼 .   연길대교 김 혁      1, 미라보 다리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삶이 느리듯이 희망이 강렬하듯이/…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현대시의 시발자로 불리는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의 한구절이다. 프랑스의 상징인 미라보 다리는 아폴리네르의 이 시로 갑절 유명해 졌다. 이처럼 뭇시인들이 시상을 떠올리는 풍경이 흔히 다리이고 많은 그림과 영화의 소재도 다리를 삼는 경우가 많다. 건축물의 분야별로 따지면 가장 인상에 남는 건축물이 다리라고 대답하는 유람객들 그리고 토목기술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어릴적 나에게는 보고픈 다리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많았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긴 우리나라의 다리라는 자호감에 장강대교를 가보고싶었고 항일의 첫 총성이 울린 다리라 로구교를 가보고싶었다. 그 로구교가 원나라때 북경을 찾은 려행자 마르코 폴로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불리게 된 사연을 알게 되자 갑절 더 가보고싶었다.   그후로 가보고싶은 다리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였다. 단 사흘간의 격정적인 사랑을 가슴에 묻고 가정과 륜리를 지켜내는 중년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린 로버트 제임스 윌러의 소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37주 동안이나 지켰고 내가 좋아하는 정통 연기파 배우 메릴 스트립의 주연으로 영화화도 된 작품. 그 작품에 나오는 다리가 감질나도록 가보고싶었다. 하지만 결국 그 어느 다리도 가보지 못하고 글에서나마 그 호기심과 정감을 무마하고있다.   2, 다리의 력사는 인류의 진화와 호흡을 같이한다. 무릇 사람이 모여 사는 곳에는 길이 생기고 또한 다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농사짓기나 고기잡이의 편리를 위해 강이나 바다가에 모여 살았다. 이렇게 모여 살다보니 자주 다니는곳은 길이 되였고 길을 가로막는 호수나 강에는 통나무를 걸치거나 너부죽한 돌을 띄엄띄엄 놓아 다닐수 있도록 한 징검다리가 다리의 원초의 모습이였다.   6,70년대의 연길교   철거직전의 연길교 그리고 다리에는 다양한 전설과 민속과 사화가 깃들어있다.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에도 까치들이 만들어준 오작교가 있고 “이 몸이 골백번 죽고죽어”라고 충정을 읊조렸던 정몽주의 전설에도 선혈이 슴배인 선죽교가 있다.   이처럼 우리의 조상들은 다리를 통행수단으로 리용하였을 뿐만아니라 생활문화로 흡수했다. 그래서 단순한 교통소통이라는 기능을 뛰여넘어 다리마다에는 사람들의 정감 어린 삶과 추억이 담겨있다.   3, 지난 12일 아침부터 연길교(하남교)가 본격적인 철거를 시작, 이로써 70여년간 부르하통하의 흐름과 그 연안 사람들의 운명과 맥을 같이해온 연길교가 력사의 갈피에 색바랜 한 페지로 남게 됐다. 부르하통하에 가로놓인 연길다리는 청조 선통원년(1909년) 2월에 축조되였는데 목조물구조로 길이가 240메터, 너비가 6메터였으며 애초의 명칭은 연평교(延平桥)였다. 30년대에 일제의 연변침탈의 전략적수요로부터 콩크리트구조로 재건되였었고 해방후 홍수에 의해 훼손되여 한차례의 보수를 거쳤다가1986년에 확장공사를 실시, 그후 재보수를 거쳐 오늘날의 연길교가 완성된것이다. 연길교는 연길시구역 교통운수량의 40%를 감당할만큼 그동안 도시의 남북을 잇는 교통중추역활을 해왔다. 연길교의 주체부분은 이미 70여년의 시간을 경유한만큼 다리의 적재감당능력이 쇠잔해졌고 더우기 최근년간 경제발전과 더불은 차량의 증가로 만부하의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었다. 이제 보수로서는 다리의 안정성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임이 검측됨에 따라 정부는 년륜이 묻어있는 연길다리를 철거하기로 최종 결정한것이다.   새로 축조될 연길대교의 가상도   새로 축조되는 연길대교는 총투자액이 1억 1000만원, 교량 4개와 주제광장 및 량측 교두(引路)로 구성된다. 총길이는 240메터이고 너비는 51메터, 그중 기동차도가 24메터로서 쌍방향 6차선이며 량측 인도는 각각 6메터이다. 다리의 가상도를 보니 민족문화특색을 살렸고 교량주체 웃부분 구조가 꼭 나래펼친 학을 닮았다. 한편 연길시에서는 사회에 향해 신축할 연길교명칭을 공개징집하고있다. 징집공고는 중국조선족의 특유한 력사, 문화, 경제, 사회, 지리 등 방면의 내포를 반영하고 적극적인 사회적 영향력을 구비하면서 지역특징과 자치주수부 연길시의 인문내용을 구현할것을 요구했다. 다리는 흔히 지역 일대의 중요한 기념물로 되군한다. 이제 시공간을 뛰여넘어 생활과 문명을 이어주는 다리는 더 이상 교통을 위한 구조물만이 아니다. 자치주 수부 연길로 들어서는 길목에 가설되는 연길대교, 그저 길고 웅장한 다리나 삭막하고 무미건조한 다리가 아니라 미학과 문화가 꿈틀거리는 다리로 우리 민족의 어제의 력사와 래일의 웅비를 보여주는 아이콘으로, 연길시의 표지성 명건축물로 축조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연변일보" 週刊 "종합신문" 2010- 1-18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2    유월, 누리의 축제 댓글:  조회:4639  추천:78  2007-06-29
. 칼럼 . 유월, 누리의 축제 “남아공 월드컵” 우감(偶感) - 1  김혁   1 드디여 축제는 시작되였다. 무대는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의 희망봉이다. 희망봉에서 솟아오른 축구공은 이 한달동안 지구와 함께 공전하며 온 누리를 행복한 멀미로 뜨겁게 달굴것이다. 월드컵은 쓰나미(海啸)나 토네이도(龙卷风)처럼4년마다 주기적으로 한번씩 일어나는 사변이며 기적이다. 따라서 6월이면 지구는 거대한 축구공이 된다. 지구촌 60억 인구는 저마다 그 축구공을 아름벌려 가슴에 품는다. 월드컵은 32개국 축구의 신들이 벌이는 한판의 쇼이다. 브라질, 아르헨띠나, 독일, 영국, 아프리카, 한국의 축국용장들은 날따라 업그레이드 된 기술과 감각으로 축구를 더 높은 차원에로 승격시켰다. 때로 탱고처럼 우아하면서 정교한 기량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 들판을 누비는 치타처럼 용맹하고 빠르고 유연하다. 팀원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정신력과 체력의 극치를 자랑하면서 펼치는 90분 내내 박진감으로 흥건한  률동의 축구… 축구는 기하학처럼 창의적이고 시처럼 압축적이며 축구장에서 정열과 힘을 바쳐 조국과 민족의 영광을 위해 뛰는 선수들의 모습은 또한 감동적이다. 그야말로 눈뿌리가 아찔하도록 풍성한 볼거리는 축구만이  보여줄수있는 지상 최대의 쇼이다.   2 70년대 병마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인들을 도웁기 위한 중국의료진의 감동스토리를 다룬 련환화에서 나는 맨 처음 아프라키에 대해 알게되였다. 사실 우리에겐 너무나 먼 그곳에 대해서 아는것도 많지 않았다. 기껏 안다고 해야 인류의 조상을 생성시킨 곳, 우거진 밀림속 맹수들이 뛰노는 곳, 세상에서 가장 작은 키의 피그미족이 살고있는 곳이라는 정도이다. 하지만 처녀작으로  “피그미의 후손”이라는 단편소설을 내였던 내게서 아프리카는 신비의 국도로 여느 사람들과는 농도와 줄기가 짙은 감성으로 다가왔다. 월드컵이 처음 열리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북쪽은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와, 북동쪽은 모잠비크, 스와질란드와 접해 있다. 4천 480만 인구를 가지고있으며 다양한 문화, 언어와 신앙을 갖고있다. 남아공은 풍부한 자연환경으로 축복받은 나라이다. 8개의 유네스코 지정 세계 유적지를 소유하고 있다. 농목업이 발달되여있어 밀이 많이 생산되며 포도, 오렌지, 설탕 등이 산출되기도 한다. 지하자원으로 금, 다이아몬드, 우라늄, 백금, 망간, 석탄 등이 산출되는데 금은 세계 전체 생산량의 60% 정도가 산출되고 다이아몬드도 세계 전체 생산량의 약 20%를 차지한다. 무한한 창의성과 의연함을 가진 남아공 사람들은 또한 노벨상 수상자를 7명 이나 배출했다. 전 남아공 대통령 넬슨 만델라는 "우리는 축구를 통해 저항과 단결을 배웠다"고 감개를 표했다.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아프리카는 적어도 축구에서만큼은 더 이상 아프리카가 세계의 변방이 아님을 널리 알릴것이며 아프리카의 이미지를 다시한번 전세계에 각인시키게 될것이다.   3 축구는 스포츠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원시적이다. 그래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깨우며 전 세계인을 환호와 열광속으로 몰아넣는 힘을 가졌다. 얼핏 보면 멀쩡한 이들이 가죽으로 만든 물건 하나를 놓고 빼앗기를 거듭하며 90분간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우습강스러울수도 있다. 남자들이 정신없이 축구에 빠져드는 리유는 원시 수렵시절 사냥감을 쫓던 버릇이 면면이 이어져 내려오며 뇌속에 각인돼 있기 때문이고 규칙도 잘 모르는 녀자들이 기꺼이 응원에 나서는데는 사냥을 잘하라는 격려의 뜻이 담겼다는 재미난 해석도 있다. 축구, 작은 공이 만들어내는 그 커다란 마력은 많은 사람들을 끄당기고 어우러지게 한다. 거리의 로점상이든 마천루우의 공무원이든, 수염터기 남자든 치마두른 녀자든 당신의 지위와 성별 나이에 관계없이 축구로 인해 어우러질수 있다. 현대 축구의 전술을 속속들이 연구한 전문가가 아니여도 축구를 오래동안 즐겨 본 골수팬이 아니여도 맥주집에서 벌컥벅컬 맥주를 마시며 카운터쪽에 매단 텔레비에서, 출근뻐스에서 시루속처럼 부대끼면서도 운전기사가 틀어놓은 방송에서  경기동향을 경청하며  옆자리에 앉은 생판 모르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도 있으리. 그러니 이처럼 막강한 파워를 갖게 된 축구의 제전이 펼쳐지는 유월을 맨송맨송 지나가면 무지무지 서운할터이다. 이제 축구는 단지 축구라는 단일 스포츠는만이 아니다. 축구는 이제 단순히 스포츠를 넘어서 세계인을 묶어주는 글로벌 네트워크이자 돈이고 산업이며 국력과 민족의 힘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미국 저널리스트 프랭클린 포어는 “축구야말로 어느 경제기구보다 앞서서 세계화를 이끈 주역이다”고 단정한다. 또한 이 세상의 이데올로기와 정치학에 맞추어 보면 축구경기는 또한 격이 다른 관전이 될거다. “무지개 아래 우리는 자랑스럽게 하나가 됐다”를 슬로건으로 내건 남아공 월드컵, 이처럼 축구공 하나에 우리는 피부색과 국경ㆍ종교ㆍ리념을 초월해 하나가 된다. 축구는 사람들을 화합시키고 열정ㆍ기쁨을 함께 나누고 적대감을 해소할수있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영국 시인 월터 스콧은 “인생 그 자체가 축구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매일 힘든 삶살이에 발목묶여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월드컵은 그 골치거리를 잠재워 주는 처방전이 되여줄것이다. 리기와 경쟁과 불신으로 가득찬 요즘 세월에 통용되지 않는 무한한 자유와 화합을 축구경기는 우리에게 선사한다. 많은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현상에 타당성을 부여할수 있는 가장 큰 근거도 이때문이 아닐가. 지구촌의 가장 매혹적인 축제인 월드컵, 이제 가족, 친구, 동료와 어우러져 함성 울리고 장단맞추며 신명나는 굿판처럼 농익어가는 유월의 향연에 빠져보자. “종합신문” 2010년 6월 14일    
1    미아(迷兒), 펜으로 정체성을 묻다 댓글:  조회:4757  추천:74  2007-06-29
. 칼 럼 .   미아(迷兒), 펜으로 정체성을 묻다 김 혁   * “문학창작과 민족정체성 지키기”세미나에서 발표한 문장       어떤 게으름뱅이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할가한다. 그는 게으르다 보니 직업도 가정도 없고 사는게 말이 아니였다. 자신의 뒤탈린 운명을 두고 궁여지책 점집을 찾아갔는데 점쟁이는 그의 전생이 나폴레옹이였다는 놀라운 점괘를 내렸다. 이에 흥분한 게으름뱅이는 “전생의 나폴레옹이 이렇게 살면 안 되겠지”하는 늬우침과 생각과 결심을 뼈물러 먹고 무사안일(無事安逸)의 생활태도를 바꾸기시작했다. 결과 괜찮은 회사에 특채되였고 승승장구로 과장자리에까지 오르게되였다. 그는 점쟁이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바뀐것이 무척이나 고마워서 인사라도 드릴 요량으로 다시 그 점집에 찾아갔다. 그러나 점쟁이는 그를 기억하지 못했고 다시 점을 본뒤 “당신의 전생은 나폴레옹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였다, 전번의 점괘는 실수로 잘못 내려진것”이라고 새로운 점괘를 내렸다. 이에 그는 커다란 실의에 빠졌고 다시 옛날의 게으름뱅이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이 우담(寓談)은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따라 인간이 어떻게 변할수 있는가 하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나 역시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깊이 빠진적이 있었다. 자신이 입양아라는 처지를 알게된것은 사춘기때였다. 그 “질풍노도의 시기”에 알게된 숙명적인 운명에 대한 락인으로부터 나 자신은 어데서 왔으며 나의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하는 질문과 방황은 그후의 나의 생활에 깊이 관여되였고 작품에도 깊이 반영되여 왔다. 어쩌면 창작초반의 거의 모든 작품의 주인공이 방황과 좌절을 거듭하고 해결점을 찾지못한채 죽어가는 비극적인 인물들이다. 90년대 중기에 출간된 나의 첫 소설집에서 근 10편되는 중편소설중 주인공은 모두가 근원적인 아픔을 지니고 맞닥뜨린 운명속에서 해결책을 찾지못하고 죽어나가는 인물들이였다. 이에 평단은 “문단에서는 결여되였으나 세계문단에서 이미 오래전에 주류를 이루었던 비극미를 다시금 환기시키고 있다.”, “우리 문단에서 보기드문 ‘한풀이’ 문학의 한 쟝르를 제시해주고있다”고 나름 “어루 만지기”를 해주기도 했다. 나는 자신의 불운한 운명과 굽이굽이에서 닥쳐온 절망적인 처지를 회피하지도 숨기지도 않았고 그동안 작품의 소재로 무척이나 많이 활용해 온것 같다. 그만큼 나의 실의와 방황의 크기가 컸고 깊었던것이였기 때문이였다. 그 와중에 한 랭철한 비평가의 한편의 평문이 나의 정곡을 모나게 찔렀다.  “천부적인 재능과 수려한 문체로 개인의 유리파편우를 걷는 것이 아니라 민족적인 아픔이라는 숙명의 칼날우를 걷는 것이 모든 문단의 바램”이라는 명징한 비판이였다. 진정 작품에서의 나의 추구와 나의 아픔의 양상이 변모되기 시작한것은 96년경 중국전역에서 벌어진 일부 몰지각한 한국인들의 조선족 한국초청사기건을 논픽션으로 다루면서였다. 3만여명이 무려 3억이라는 거금을 사기당하고 자살자, 병사자가 속출하고 회사가 부도당하고 마을이 폐교되는 그 아비규환의 수라장속에 수백명의 피해자들을 취재하고 키높이 되는 고소서, 진정서들을 읽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나의 육신밖의 아픔 그리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집단적인 아픔을 피부로 느낄수 있었다. 사기를 치고 한국 사기군이 도망가버린 뒤 전 재산을 날리고 텅 비여버린 건물앞에서 괴물앞에 내동댕이 쳐진 먹이의 처지처럼 선지피와 같은 절규를 뿜는 사람들의 무리속에 섞여, 또 한국 종로거리에서 원상복구를 촉구하며 13일간의 단식을 벌리다 들것에 들려온 피해자대표들이 위경통으로 쓰러지는 장면을 목전에서 지켜보면서 나는 역시 울대뼈를 밀며 올라오는 덩어리 진 비명과 위장이 탈리는듯한 아픔을 온 몸으로 느낄수 있었다. 드디여 나는 그들의 아픔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바로 장편르포 “천국의 꿈에는 색조가 없었다”이다. 요즘같은 피페한 출판풍토에 5천여부의 발매량을 기록하고 자치주정부 “진달래”문예상, “흑룡강신문” 한얼문학상 대상, 그리고 연변인민출판사 청년문학지의 상을 거듭수상한 그 작품으로부터 갓길에 섰던 나의 필봉은 새로운 좌표를 찾기 시작했다. 그후로 나는 모든 쟝르를 동원해 중국조선족이라는 이 공동체의 아픔과 그 행보에 대해 기록하는데 주력하기 시작했다. 우선 “중국조선족 문제 테마소설”이라는 부제하에 변혁기 중국조선족의 고뇌를 다룬 작품들과 천입민족으로서의 그 력사의 행정을 다룬 작품들을 10여편 펴냈다. 첫 장편 “마마꽃, 응달에 피다”는 자서전적 색채가 짙지만 역시 중국소수민족의 일환으로서 전대미문의 문화대혁명이라는 홍역을 치루는 과정에서의 농도와 줄기가 다른 민족집단의 아픔을 다루었고 두번째 장편 “국자가에 서있는 그녀를 보았네”에서는 도시로 외국으로의 진출 과정에서 조선족 녀성들이 겪게 되는 아픔을 다루면서 우리가 처한 현실, 그 원인에 대해 짚어보고자 했다. 요즘들어 나는 또 우리민족의 우수한 인걸들을 재조명하기 위한 작업에 모든 시간과 정력을 바치고 있다. 연변이 낳은 걸출한 민족시인 윤동주의 생애를 문단 처음으로 소설화하여 장편으로 련재를 마쳤고 중국조선족자치주의 전반 기반을 닦은 조선족의 “대부” 주덕해 초대주장에 대한 전기물의 집필을 마치고 출판을 앞두고 있다. 한편 조선족이 낳은 저명한 화가이며 반파쑈투사인 홍색화가 한락연의 일대기를 다룬 평전을 집필, 련재중에 있다. 이한 작업 역시 력사의 물줄기를 바꾼 그 인걸들의 삶을 통해 우리의 어제날과 만나고 그 시대의 공과를 헤아려 보면서 그 와중에 오늘의 변화하는 시대를 보아내고 넉넉한 삶을 예시하는 새로운 눈을 갖추기 위한 작가로서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과 문체적 창신의 발상에서였다. 민족의 발전을 위해 기여한 인물들을 새롭게 투영하여 만방에 그 위상을 표방하는 이러한 작업이 분명 민족의 발전과 우리의 삶에 기(氣)를 불어넣는 좋은 작업으로 될것이라 나는 믿어의심치 않는다. 정체성, 그것은 비단 개인만이 아니라 민족 전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하지만 우리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 결과 변혁기의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가치관은 완숙하게 정립되여 있지 않고, 방황과 좌절과 곤혹을 거듭하고있는것이다. 근년래 지성들이 분연히 일어나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대성질호하고 나름 그에 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 지고있지만 아직도 부족하며 그한 노력은 계속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체성을 잘못 리해하면 민족의 결집과 발전에 방해가 됨은 자명한 일이다. 긍정적이면서도 이 민족의 우수한(面面)을 많이 발굴하여요즘의 이지러지고 흔들리고있는 정체성을 대신해 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미래적인 지향을 가지도록 하는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사실 억지로 만들자는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것을 찾아내면 된다고 생각한다. 변혁기를 거치면서 위기론이 거론되고있는 오늘날, 위축되기 이전의 건강한 우리의 정체성은 분명히 있다. 이주하여 동이땀을 흘리면서 이 바람 거치른 척박한 불모의 땅을 일국(一國) 황제의 수라상에도 그 결실이 오를수있는 정도의 곡창으로 가꾸었고 가장 처절하게 반일항쟁의 선두에 서서 붉고 흥건한 피를 산산야야에 휘뿌렸고 독보적인 교육과 예술의 무르익은 향연을 휘모리로 펼쳐 세간의 주목속에 중화인민공화국 56개 민족중의 떳떳한 일원으로, 그 선두주자로 부상한 우리 자랑스럽고 위대한 중국조선족이 아닌가!!! 그것을 더듬어내고 고수하는것이야말로 목전의 진통을 엎누르고 다시 우수한 민족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도 꼭 선결되여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엑스트라(配角)가 아닌 주인공이 되여 만들어 온 이 위대한 신화, 우리가 경유해 온 이 불멸의 력사는 지금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양상이요, 훌륭한 정신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상황에 부딪힐때 그 정체성을 파악을 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 때문에 요즘같이 우리의 공동체에 대한 위기론이 거론될때 그한 호성은 더 높은것이다. 나의 뿌리가 닭이였는지 아니면 독수리였는지, 나폴레옹이였던지 염황(炎黃)이였던지 아니면 단군이였던지를 알아야 선각의 현자이든 위계높은 장군이든 파워있는 리더이든 나올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야만 현실에 안주해 보금자리를 지키든 울타리를 박차고 하늘높이 날아예든 할것이 아니겠는가? 요즘처럼 조화로움과 생성이 세계적인 화두로 되고있는 시점에서 자기를 잘 알아야 타인을 수용할수가 있고 자기 주체성이 있고 그우에 다른것을 리해하고 받아들일때에야만 발전이 이룩되고 그 발전이 빠를수 있는것이다. 민족의 생성과 현재와 미래를 우리의 학자들 그리고 작가들은 경험적, 문헌적, 지식적, 예술적으로 적극 구현하여야 한다. 그렇게 할때에만 우리의 현재의 처경과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래일의 좌표를 구사하며 물결 세찬 강을 건너 온 우리의 “월강족속”들이 다시금 건너야 하는 숙명의 강에서 해일과 같은 시련속에서도 건전하게 항해할수 있을것이다. 민족공동체 전반에 위기론이 거론되는 요즘의 절체절명의 시점, “발등의 불”, “락미지액”의 시점에서도 안타깝게도 자기 중심주의의 독선이나 일말이라도 생산적이지 못한 당파의 파쟁(派爭)에 빠져있는 일부 작가들의 근시안적인 사고가 유감스럽고 가소롭기만하다. 진정 위기상황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모색으로 자신이 스스로 얽동인 협애한 사유의 덫과 스스로 빠져든 “니전투구”의 감탕에서 벗어나 우리의 작가들이 “칼보다 강한 펜”으로 민족에 대해 고뇌하고 대안을 찾으면서 그에 대한 문학적인 성과물로 민족문학의 획을 그을수 있는 자세를 보여야할때이다. 이것이 바로 중국조선족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민족문학을 지향하는 문학인이라면 조속히 실천해야 할 그리고 조건없이 마땅히 리행해 나가야할 숙명의 과제가 아닐까!    갓길에 선 미아, 그리고 미아들, 이제 작은 감성의 펜에 흥건한 사상의 잉크를 재워들고 우리의 어제를 기록하고 나아 갈 탄탄대로를 찾는 작업에 그루를 박아 볼 볼 일이다.     ☞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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