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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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룡정시 아동문학학회 사업총화 및 송구영신모임 댓글:  조회:2763  추천:1  2011-12-26
                                                              룡정시 아동문학학회 사업총화 및 송구영신모임 지난12월24일 룡정시룡문가 사회구역2층회의실에서 룡정시아동문학학회 사업총화 및 송구영신모임을 가지였다. 이날 모임에는 룡정시 원로 작가 리태수, 민간문학거장 김재권, 로작가 전광하, 로촬영가 리광평, 저명한 작곡가 박동호, 주민간아동문학학회회장 김현순, 룡정텔레비죤방송국기자 안인학 등 룡정시아동문 학회 회원20여명이 참가하였다. 룡정시 아동문학학회 현임 리운학회장의2011년도 사업총화발언과 룡정아동문학학회 주관지 “룡드레 넋” 제5-6기 출간 마무리 사업보고가 있었고 리광평선생의 조선족문화교육의 발상지 룡정지구문물 촬영작품전시 설명과 저명한 작곡가 박동호선생의 가곡집”고향 의 달” 발행과 동심에 어울리는 “가사를 어떻게 쓸것인가?”라는 리론강좌경청이 진행되였다. 그리고 새해 창작활동과 학회활동계획을 선독하였다. 끝으로 원로 작가 리태수선생님은 우리 말 우리 글을 지키고 창작의 질을 향상하려면 “그릇이 되지 말고 물이 되여” 생활속에 깊이 들어가서 체험깊은 질높은 글을 창작할것을 부탁하였고 민간문학거장 김재권선생님의 최근 작품집” 서한집” 설명과 신문 “이야기천지”를 무상으로 회원들에게 나누어주면서 평생 수수한 활미꽃처럼 살려는 자신의 인생담을 곁들면서 룡정문화전통을 잘 지켜갈것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20    열린 마음으로 민족교육발전 도모해야 댓글:  조회:2071  추천:6  2011-11-01
                                                            열린 마음으로민족교육발전도모해야   일전 장춘시조선족중학교 과당교수개혁단계성총화모임 및 교수개방활동에 참가하여 뜻깊은 인상을 받았다.  글로벌시대에 어울리는 민족학교운영리념을 선도하면서 열린마음으로 민족교육교수발전을 도모하는 활약적이고 도전적인 모습에 힘찬박수를 보낸다.   먼저 리종선교장의 총화발언은 장춘시조선족중학교의 도전정신과 활약적인 교수개혁실천실태를 여실히 반영해주었다.  교원들의 분발정신과 탐구정신은 시대발전에 어울리고 연구와 개혁을 선도하는 선진적인 모습에서 다분하게 엿보였고 령도가 앞장서고 20-30대 젊은 교사들이 개혁의 선두에서 소인수학급교수를 실천하고 학생주체의식을 농후하게 개발해나아가는 생기넘치는 교수현장은 긍정과 찬탄을 자아냈다.     그들은 열린마음으로 교육사상을 갱신하였다.  전통적인교육모식에서 탈피하고 교류로 한족들의 선진경험과 한국의 선진경험을 도입해 민족교육발전을 도모하였다.   장춘시조선족중학교 교원들의 론문집을 살펴보면 교장으로부터 일반교사에 이르기까지 지식형의교원,  학습형의 교원 형상구축에모지름을 쓰고있음을 읽을수있다.  문화경제시대에 우리교원들이 대학을졸업하고 몇십년을 벌어먹던시대는 이미지났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물론 조선어문교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어로 썼지만 그들의 많은 론문과 칼럼이 간행물 혹은 신문에 이미 발표되였다는점을 감안하면 그들의 노력과 실력을 짐작할수있었다. 이런 모습은 비교적 민족교육이 앞선 연변지구 어느 학교들에서도 보기 힘들다.  오늘 우리 교원들은 배워야 한다. 아무리 대학을 졸업하였다고해도 배움만이 살아갈수있다는도리는 다 알고있는 현실이다.   공개연구교수와 개방교수를 선택해보는 활동에서도 많은것을 느낄수 있었다.  조선어문교사 박설화교원의《재료작문의중심확정》과당은 다층차 다각도적인 기능훈련을 바탕으로 비교평가교수를 주선으로 비교가운데서 학생들의 글짓기 흥취를 불러일으키는 보기좋은 수업이였다.  황복란교원의《가난한날의행복》교수도 리해, 분석, 개괄 능력제고를 목표로《옴니뻐스》구성의 특점을 장악하게하고 따라서 습작방법을 장악, 활용 할수있게 하는것이 아주 능란하였다.  신편교재리념을 잘체현하였고 소인수학급교수모식에도 뒤떨어 지지않았다. 문뜩 한국교사들의 개그맨같이 활약하는 모습과 비교해보게  된다.   열린마음으로 민족교육의 발전을 도모하는 장춘시조선족중학교의 앞날은 참으로 기대가 된다.  민족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는 낡고 전통적이며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학교운영모식과 교수모식의틀에서 대담하게 탈퇴해야 한다.   글로벌시대에 어울리는 민족교육을 선도하며 학습형의 교원, 지식형의 교원 발굴을 위한 인재육성에 심혈을 기울여야 민족교육이 살아남는다는 도리는 너나가 다 아는 리치일것이다.  
19    보재 리상설력사기념관 립비재건 댓글:  조회:2475  추천:0  2011-10-21
보재 리상설력사기념관 립비재건 2011년 2011년10월20일 룡정중학--- 대성중학리상설력사전시관앞 보재 리상설기념관립비재건. 우리 학생들에게 중국근대조선족교육의 력사를 널리알리고 리상설교육사상을 전파시키기 위하여 립비재건을 함
18    《제2회 윤동주문화제》 룡정중학교서 댓글:  조회:2311  추천:5  2011-09-25
                                                            《제2회 윤동주문화제》 룡정중학교서    지난 9월24일,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가 주최하고 연변동아량자생물과학기술유한회사에서 후원한 《제2회 윤동주문화제》가 시인의 모교인 룡정중학교에서 개최되였다.    중국조선족이 낳은 저명한 저항시인이며 항일투사인 윤동주의 문학정신과 업적을 기리는것을 취지로 설립된 윤동주문화제는 지난해10월에 열린 《제1회 윤동주문학제》에 이어 해마다 진행되는 행사로 올해부터는 《윤동주문화제》로 개칭되였다.    문화제 제1부로 룡정중학교 학생470여명이 모두 윤동주를 새긴 샤쯔를 입고 참가한 백일장, 룡정중학교 윤동주시비광장에서 진행되였다. 백일장은 《윤동주시비앞에서》,《아버지의 가을》,《하늘을 우러러》, , 등9개의 제목이 주어져 학생들이 마음껏 글재주를 뽐내게 했다. 심사를 거쳐 3학년2학급 홍하영학생을 비롯한 15명이 동상을, 3학년3학급 우향정학생을 비롯한 10명이 은상을, 2학년1학급 김류경학생을 비롯한5명이 금상을 수상했다.    문화제 제2부는  룡정시청소년활동중심 대회장에서 개최되였는데 이 행사는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조성일회장의 인사의 말씀,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부회장인 김관웅교수의 개막사에 뒤이어 윤동주시 랑송과 시노래 한마당,  윤동주백일장 시상식, 축하공연 등으로 엮어졌다. 룡정중학교 교원과 학생들의 윤동주 시 집체랑송과 시인 김인선, 리순옥, 배우 리순자 등의 윤동주 시, , 등 랑송이 멋지게 진행되였고 연변 조선족작곡가가 윤동주 시에 곡을 붙인(라성도 곡), (라성도 곡), (한정자 곡) 등을 연변동아량자생물합창단5인창, 소합창, 가야금병창의 형식을 빌어 열창하였는바 참석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윤동주 시 노래 한마당, 백일장시상식에서  시인, 배우들이 윤동주 시를 랑송하고 또 동아량자생물합창단이 윤동주 시 노래 한마당으로 《반디불》, 《서시》,《눈 감고 간다》를 열창해 참가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대회 마지막에 감사패 기증과 연변동아량자생물과학기술유한회사 김진룡동사장의 격려사, 연변동아량자생물합창단의 정채로운 축하공연이 있었다. 《제2회윤동주문화제》에는 문학예술계의 문인과 예술인, 길림신문, 연변일보, 흑룡강조선문신문사, 조글로, 아리랑방송국, 연변텔레비죤 방송국기자,  룡정중학교 학생과 교원 그리고 연변동아량자생물합창단 등 500여명이 참가했다.  
17    중국조선어문교사 모임” 사이트 오픈 댓글:  조회:3163  추천:3  2011-09-23
                                 “중국조선어문교사 모임” 사이트 오픈       지난 9월20일,  "조선어교원 초청연수 "사이트 (http://koreanteacher.korean.net) 가       “중국조선어문교사모임” 사이트로 새롭게 태여났다. 재외동포재단의 후원으로 고고성을 울린 이 사이트는 중한조선어문교사들의 교류, 중국조선어문교사들의 교수연구 활동현황, 중국조선어문교수 현장, 중국조선족 학생들의 우리말 우리글 사랑을 자랑하는 글짓기 공모 등 활동을 선도하며 글로벌시대에 어울리는 네트워크구성에 취지를 두고 있다. 이 사이트는 조선어문교수개혁과 조선어문교수-학습방법연구, 실천에서 얻은 경헙과 자료를 공유하고 기층 조선어문교사지간 네트워크 구축을 도모하며 학생들의 조선어문 능력제고를 목적으로 중국조선어문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여러가지 활동을 전개하는 사이트이다. 2011년 재외동포 중국조선어문교사초청연수활동을 바탕으로 향후 중국조선어문교사들의 전문지로 거듭날것이며 제1차 중국조선어문교사 31명 연수생들의 활동을 널리 전할것이다. 광범함 중국조선어문교사들은 활발하게 자신들의 사이트활용을 진행하며 나아가서 우리 말 우리 글 자랑을 만천하에 길이길이 전해갈것이다.    
16    한 평범한 교사가 이루어낸 꿈의 비전 댓글:  조회:2673  추천:11  2011-08-31
                                                       한 평범한 교사가 이루어낸 꿈의 비전 화초는 물과 빛을 먹고 꽃을 피운다는 말이 있듯이 리춘연교원의 꿈의 비전이 사실로 증명되지 않았나 싶다. 2011년 고중입학시험 결과가 인터넷, 각종 매체에 공개되면서 학생, 학부모, 교원들로부터 룡정중학교 3학년 4학급의 담임교원 리춘연에 대한 열찬이 이어지고있다. 일개 이름없던 평범한 교원인 그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게 된데는 그럴만한 사연이 숨겨져 있다. 리춘연교원은 2005년 8월에 장춘사범대학영어전업을 졸업하고 룡정중학교 영어조에 배치되여 교원생활을 시작하였다. 교육사업에 갓 몸을 담은 그녀에게는 교학실습에서 얻은 아리숭한 교수경험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로교원과 선배교원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열심히 배우면서 교수안쓰기로부터 교수실천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익혀갔다. 날이 갈수록 교학에 대한 재미를 느꼈고 학생들과의 생활도 흥미롭게 이어졌다. 다채로운 교원생활에 점차적으로 적응되여가는 그녀에게 학교에서는 담임교원사업을 맡기였다. 이것은 젊고 경험이 부족한 리춘연교원에게는 한차례 고험이 아닐수 없었다. 리춘연교원이 맡은 학급은 31명 학생이 있었는데 몇명의 우수학생 학부모들은 그가 나이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고 인맥을 리용하여 자기학생을 다른 학급으로 옮겨갔다. 이런 현실에서 그는 마음속에는 내가 맡은 이 학급을 꼭 우수학급으로 만들고 내가 맡은 학생들을 꼭 우수학생으로 키워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책임감과 오기는 리춘연교원으로 하여금 학급관리의 과학화 체계화건설에 더욱 힘을 기울이게 하였다. 엄격하면서도 자유로운 사생관계를 구축하고 공감대형성에 공을 들이는 한편 칭찬을 위주로 하는 수단으로 학생들의 주체적인 작용을 능란하게 발휘시켰다. 동시에 그녀는 학생들에게 《어떤 고봉에 오르자면 혼자가면 빨리 갈수도 있겠지만 함께 가면 멀리갈수 있다》를 항상 명기시켰다. 룡정시 희망원에 있는 박상우학생은 고아이며 영향실조로 자격지심이 농후하고 머리는 총명하지만 학우들과의 교류가 따분하였다. 리춘연교원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있는 그에게 하루 10원 표준으로 3년동안 지원해주는 등 그가 학교생활에서 신심을 가지도록 도와나섰다. 결과 그는 고중입시에서 총성적 540점을 따냈고 인젠 다른 학생을 배려할줄 아는 학생으로 성장하였다. 리춘연교원은 가정방문을 절대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학급의 25명 결손가정자녀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가정방문으로 학생을 료해하고 그들에게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하여 학교생활에서 동력을 심어주었다. 그녀는 학급학생들과 혼연일체가 되여 성과를 불문하고 개성을 키워주고 우월감을 가지게 하여 자신심을 키우는데 모를 박았다. 담임교원이 열린 마음으로 스스럼없이 학생들과 어울리니 학생들의 심리에 큰 변화가 일어나 감사해 할줄 아는 집단분위기가 형성되였다. 학생들과 함께 한락연공원을 찾아 초중3학년 마지막 운동대회때 그는 신결석으로 병상에 누워있게 되였다. 자리에 누워있는 순간 남편한테 미안하고 시부모님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갈마들었다. 두차례 류산으로 몸에는 병마가 찾아들고 몸은 너무 지쳐있었다. 그런데 반장은 전화로 운동성적을 수시로 보고해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자리에 편안히 누워있을수 없었다. 그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체육장으로 향했다. 담임교원이 운동장에 도착하자 전체 학생들이 기립인사하면서 환영해주었다. 그번 운동대회에서 그의 학급은 1등의 월계관을 받아 안았다. 지난 3년동안 리춘연교원은 휴식일이 따로 없이 학급과 학생들의 성장을 위하여 고심참담하였다. 고중입시를 앞둔 어느날 그녀는 전반 학생들에게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따낼것을 축하하면서 수험증과 함께 응원메시지가 적힌 특수한 봉투를 나누어주었다. 학생들은 《나는 무조건 해낸다!》 등 응원메시지와 백원짜리 지페 한장 그리고 쵸콜렛(초콜렛을 먹으면 힘이 난다고 한다) 두개씩 받았다. 후날 리춘연은 자기가 3년간 친자식처럼 키운 학생들을 시험장에 들여보낼 때 저도모르게 학부모의 마음으로 변해버렸다고 해석하였다. 시험결과가 공개된후 학부모들은 자발적으로 금기를 만들어 교육국과 학교에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공든 탑이 무너지랴. 리춘연교원의 끈질긴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그의 학급 31명 학생중 고중입시에서 500점 이상을 따낸 학생이 19명, 그중 5명 학생이 연변1중에 추천되여 학교를 위해 영예를 따냈고 그도 시우수교원, 영어올림픽경색지도교원, 시우수담임교원, 시사덕건설선진개인 등 영예를 받아 안았다.  
15    청춘(외1수) 댓글:  조회:2243  추천:3  2011-08-27
청     춘(외1수) 청춘은 아름다운 꽃송이 한순간을 살아도 값있게 살자 땀으로 번져가는 일력장마다에 참회를 말자 후회를 말자   청춘은 아름다운 꽃송이 어느때 피였다 어느때 지나 파랗게 살고지는 삶의 터전에 자만을 말자 자책을 말자   아, 청춘은 길어도 짧아도 인생태양을 깨끗이 가꾸자.      추억의 꽃시절 그리운 동창들 한자리에 모이면 친형제 만난듯이 한없이 즐거웁네 학창시절 허물없던 달콤한 그 이야기 내물마냥 쉬임없이 가슴속에 흐른다네   아, 인생의 꽃시절 추억의 꽃시절은 오늘도 아름다워   화창한 봄날에 들놀이 할 때면 해님도 뜨겁게 우정을 불태우네 철없이 즐겨놀던 꽃시절의 그리움이 아롱다롱 무지개로 가슴속에 피여나네.    
14    강원도에서의 1박2일 댓글:  조회:2627  추천:15  2011-08-23
                                                                           강원도에서의 1박 2일   여름방학 한국초청연수활동을 원만히 마무리고 귀국을 4일 남겨놓고 우연히 강원도 속초, 삼척, 강릉시를 돌아보는 행운을 가지게 되였다. 나는 간단히 관광준비를 하고 13일 아침 9시 25분, 서울시 고속뻐스터미널에서 동행들과 만나 속초행 고속뻐스에 올랐다. 우리일행은 고속뻐스에 몸을 싣고 안전별트를 착용한 다음 저마다 혼곤히 잠들어버렸다. 그동안 줄줄이 이어지는 연수활동으로 몹시 피곤하였기 때문이였다.   고속뻐스기사가 마침 여름휴가철이라 오가는 차량들이 많기에 운행시간이 지연될수 있으므로 량해를 구한다고 하기에 창밖을 내다보니 정말 오가는 차량들이 속도가 느리였다.   우리를 태운 고속뻐스는 5섯시간을 달려 드디여 속초고속뻐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속초시 《하나뷔페》대표 리주동선생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우리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다시 그의 차에 올라 《아바이마을》로 달리였다. 청초호공원 《아바이마을》의 유명한 단천식당에서 시원한 랭면으로 중식을 먹고 일행은 청초호공원을 돌다가 전망대에 올랐다.   산과 바다와 호수가 어우러진 속초시는 참으로 한폭의 수채화를 방불케하는 아름다운 도시로서 그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아득히 펼쳐진 바다에 갈매기가 자유롭게 재롱을 부리고 시야엔 등대가 우람지게 안겨들었다. 《가을동화》와 《대조영》 촬영지로 널리 소문이 나 근래엔 대형행사가 이어지고 거기에 KBS의 《1박 2일》팀의 방문공연으로 인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급급히 전망대를 내려서 청초호공원을 빠져나와 영랑호기슭을 달리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다음 도착지는 영랑호공원의 세계 말타고 활쏘기 대회장이였다. 리주동선생도 속초에서 태여나 여지껏 살면서 처음보는 운동이란다. 비속에서 선수들이 말을 질주하면서 활을 쏘는 신출귀몰하고 용맹스러운 모습은 너무 신기하였다. 텔레비죤에서나 보아오던 운동을 직접 현장에서 관람하는 기분은 정말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는 동해바다가의 《열린 바다카페》로 옮겨 동동주를 마시면서 스토리를 이어갔다. 나는 리주동선생의 기동령활하고 진정어린 마음에 감탄했고 한곳이라도 더 보여주려는 그의 열정과 성의에 감동을 먹었다. 그리고 출렁이는 동해바다를 감상하면서 동해바다와 갯벌을 삶의 터전으로 오늘과 같은 세계적인 행사가 이어지는 도시로 건설한 속초인들의 신근한 노력과 지혜에는 감탄을 금할수 없었다.   리주동선생의 안내로 한국에서 관광지로 유명한 설악산을 바라보면서 설악산산맥에 자리잡은 화엄사를 돌아보고 저녁 모듬자리로 옮겼다.   우리 일행이 도착하니 속초지구 문인들이 미리 준비하고 우리들을 반겨 맞아주었다. 우리는 동족애가 짙은 분위기속에서 우의와 문화교육교류를 위하여 술잔을 높이 들었다. 저녁어둠이 서서히 짙어가고 청초호공원 6층노래홀은 환락의 노래소리로 들끓었다. 나는 속초시 소설가, 시인, 작가분들의 정성과 열정에 또 한번 감동으로 가슴이 울컥하였다.    다음은 청초호공원 엑스포광장으로 옮겨 김태원탬버 속초공연 마지막부분을 감상하는것이였다. KBS방송국 《위대한 탄생》에서 중국 연변적 백청강을 지도하여 1등으로 탄생시킨 김태원가수가 한창 열정적으로 기타연주를 하고 몇천명의 속초관중들이 잔잔히 내리는 비속에서 전체 기립하여 열광하는 모습은 말그대로 장관이였다. 나는 무대우의 김태원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감사의 인사를 올리였다.   우리일행은 이튿날 려행을 위하여 급급히 대회장을 빠져나와 리주동선생의 댁으로 이동하였다.   이튿날 늦은 아침 삼척여자고등학교 박문구교사와 합류하고 대구해물탕으로 해정삼아 아침식사를 하고 커피점으로 옮겨 안동지구 려행을 론하였다.   가석하게 나와 서선생의 귀국일정때문에 우리 두사람은 안동려행을 가지 못하고 박문구교사의 안배를 따르기로 하였다. 그리고 하루동안 우리들에게 물심량면으로 도움을 주고 편리를 도모해주신 리주동선생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다음지점으로 이동하였다.   박문구교사는 우리일행을 강릉시 《강릉오죽헌시립박물관》으로 안내하였다. 그날따라 강릉의 하늘은 맑고 날씨는 너무 무더웠다. 《강릉오죽헌시립박물관》에 도착하니 차량과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일행은 입장권을 구매하고 박문구교사의 안내하에 율곡기념관, 오죽헌, 문성사, 어제각, 바깥채 등 곳을 돌아보면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박문구교사는 사임당을 《겨레의 어머니》라고 칭하는 원인을 구수하게 들려주었다. 정몽주 어머니 리씨. 세종대왕의 어머니 민씨, 퇴계 리황의 어머니 박씨, 리순신장군의 어머니 변씨 등 우리 력사속에는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분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들은 어느 한분야에서 뛰여났지만 사임당은 지극한 효녀요, 어진 안해요, 7남매의 훌륭한 어머니인데다가 학문이 깊고 시문에 뛰여난 녀류문인으로서 글씨와 그림, 바느질과 자수에 이르기까지 정묘하지 않은 분야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의 아들 율곡에 대하여서도 들여주었다. 16세기 정치, 문학, 교육가이면서 조선 성리학을 꽃피운 대학자 율곡 이이(1536---1584)가 1972년에 오천원권 화페 인물이 됐다면 그로부터 37년이 지난 2009년 어머니 사임당까지 오만원권 화페인물이 되였다. 이로써 세계최초 모자가 함께 화페에 들어가는 유일한 국가가 되였다고 자랑하였다. 확실히 《겨레의 어머니》, 《겨레의 스승이 태여난 성지》 라 높이 찬송함에 손색이 없음을 절감하게 되였다.   우리는 박문구교사가 살고있는 삼척시에서 점심을 먹고 관동팔경의 제일루인 죽서루로 이동하였다. 관동팔경의 제일루라고 하니 문득 고중학생들에게 관동별곡을 강의하던 기억이 살아나면서 무척 흥미를 가지고 재료를 펼쳐들었다.   재료에는 삼척 죽서루 유래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현재 삼척시 성내동 오십천 절벽위에 위치한 보물 제213호인 죽서루는 루각이다. 조선시대에 일종의 관아시설로 활용된 루각이였고 삼척부의 객사였던 진주관의 부속건물이였다. 지방에 파견된 중앙관리들이 묵던 숙소로서 공공시설이면서 접대와 향연을 위한 장소로 활용되여 삼척을 찾아오는 시인 묵객들이 정신수양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사용되였다고 전하고있다. 우리일행은 죽서루, 용문바위성철유적, 삼척읍성지표식, 허목의 죽서루루기를 읽어내려갔고 송강 정철가사의 터표석을 돌아보면서 깊은 감회를 느껴보기도 하였다.   송강 정철가사의 터표석 정면에는 커다랗게 송강 정철의 가사의 터라고 새겨져있고 해설문이 있었다. 한국문화관광부에서는 1991년 2월을 송강 정철의 달로 정하고 가사문학에 커다란 업적을 남긴 송강 정철을 기념하는 표석을 2개소에 세웠다. 하나는 《관동별곡》에 나오는 관동8경의 하나인 삼척 죽서루 경내이고 다른 하나는 《성산별곡》의 무대인 전남 담양의 식영정부근이다. 삼척과 담양에 세워진 《송강 가사의 터》 표석은 종전의 일반적인 시비와는 달리 팔각형의 장대 표석과 8각형의 기단으로 이루어 졌는데 기단 8각의 각면마다 송강의 대표작과 친필, 수결, 세움말, 가사창작의 배경을 담아 송강의 생애와 문학에 관한 미니박물관 구실을 하도록 되여있다고 밝히고있다. 우리일행은 우리말의 정수이며 가사창작의 대가이신 송강정철에 대한 경모의 정을 표하면서 삼척해변가로 이동하였다.   삼척해변가는 여름철 휴가를 즐기는 유람객들로 북적거렸고 동해바다의 맑은 물에 몸과 마음을 적시면서 스트레스 해소로 즐기였다. 우리일행도 그들속에 끼여들어 무거운 마음을 털어버리고 피곤한 몸에 충전하면서 맑고 깨끗한 공기로 몸과 마음을 흠뻑 적시였다. 박문구교사는 자신이 근무하고있는 삼척여자고등학교로 마지막코스를 정하였다. 삼척여자고등학교 정문에 들어서니 참으로 환경이 깨끗하고 정갈하였다. 박문구교사는 약간 흥분된 기분으로 우리일행에게 고3교실, 교무실, 학생숙소, 학교체육관 등에 대하여 일일히 설명하면서 교사의 긍지감을 숨기지 않았다.   각일각 헤여질 시각이 다가오고있었다. 아쉽지만 별수 없었다. 《말타고 꽃구경》식으로 1박 2일을 꽉 챙겨가면서 관광과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그 와중에도 박문구교사는 느긋하게 삼척시뻐스고속터널부근의 단골음식점으로 안내하였다. 한잔의 막걸리로 리별의 아쉬움을 달래면서 중한문화교육의 교류를 기원하였다.   나는 진정으로 우리 일행의 강원도 속초, 삼척, 강릉시 관광에 사심없는 배려와 도움을 주신 속초지구 문인들과 리주동선생 그리고 박문구교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싶다. 기회가 되면 중국에서 만나 다시 회포를 나눌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정섭특약기자
13    천년고도 경주로 가다 댓글:  조회:3046  추천:11  2011-08-11
                                                                                    천년고도 경주를 가다   세계58개 국가 한글학교 교사 초청연수활동 제2단계 마지막코스는1박2일로 일정이 잡혀진 경주지역 력사문화체험이였다.   대형전용뻐스5대에 갈라앉은 우리 일행233명은8월7일 아침8시에 한양대학교 창의인재관을 떠나 경주지역 력사문화체험을 떠나게 되였다. 중국에서 온 조선어문 교사31명은 제2팀으로 구성되여 가이드 최희덕의 인솔을 받게 되였다. 모두들 간단한 세면도구를 준비하여 가지고 제2호차에 승차하여 자리를 잡고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들뜬 기분으로 출발을 기다리였다. 한양대학교 봉사팀의3명 학생과 촬영팀의2명 학생이 승차하여 간식으로 매개 교사들에게 샘물과 바나나, 과자와 사탕이 들어있는 비닐주머니를 나누어 주고 인원을 점검한 다음 정식 출발하였다.    우리를 실은 고속전용뻐스는 서서히 한양대학교 정문을 차례로 천천히 빠져나가고있었다. 최희덕씨는 한때 금강산가이드팀에서 봉사한적 있는 자신의 경력을 소개하고 중국 조선어문 교사들과 함께 경주행을 하게 되여 무척 기쁘고 즐겁다고 하면서 려행시 주의사항에 대해 상세하게 소개하였다.   고속전용뻐스는50호 영등고속국도를 달리다가 안산시, 수원시를 경유하여 다시1호 경부고속국도에 들어서 천안, 청원, 대전, 옥천, 김천, 구미, 대구를 경유하여 드디여 경주에 도착하였다. 경주까지 달리는4시간동안의 로정에서 중국 조선어문 교사들과 한양대학교 봉사팀 학생들, 재외동포재단 이영선과장과 기사까지 합세하여 환락과 즐거운 노래자랑이 이어졌는데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우리민족의 특성이 돋보였다. 차창밖으로 스쳐지나는 수려한 산천과 생태환경문화는 우리들을 놀라게 하였고 편리한 교통시설은 말그대로 감동이였다.   경주에서 유명한 신라쌈밥음식점에서 중식을 치루고 대릉원일대에서 신라시대로 돌아가는 기분을 느껴보는 시간이 주어졌다. 제한된 시간이지만 우리들은 천마총, 첨성대, 계림, 안압지 등 여러곳을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스탬프를 들고 보고 듣고 느끼면서 스탬프투어의 시간동안 기념촬영을 하면서 즐기였다.   3시30분이 되여 다시 용담정으로 이동하였다. 가이드의 소개에 따르면 용담정은 경주시내에서 북동쪽으로 략10km 떨어진 현곡면 가정리에 해발594메터인 구미산에 있으며 천년고도 경주의 정기를 받아안아 후천다시개벽의 대성 수운 최재우대신사의 탄생을 예고한 곳이며 천도 동학을 계승받은 천도교의 발상지라 한다. 그러면서 용담정의 유래를 들여주었다. 한양대학교 문학박사 윤석산박사는 인내천 경주 용담 재외 한글학교 교사를 위한 특별강좌를 가지고 용담, 수운선생, 동학에 대하여 들려주었다. 천도교에 대하여 별로 흥취가 무딘 필자는 조용히 용담정 정자를 찾아보고 샘물터에서 샘물을 마시면서 기념촬영을 한 다음 하산하여 잠간 휴식을 취하였다.   5시30분, 전 팀은 다시 경주에 돌아와 코오롱호텔에 주숙을 정하였다. 저녁만찬후 잠이 오지 않아 일행중 남성교사6명이 나의 침실에 모였다. 우리는 다시 우리식으로 맥주를 마시면서 하루동안 보고 들었거나 느낀 바를 나누다가 한밤중이 되여서야 헤여졌다.   이튿날 새벽에 기상하여 밖을 내다보니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있었다. 꽉 짜여진 그날 일정이 근심스러웠다. 그런대로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한 다음 전용뻐스에 피곤한 몸들을 실었다. 잠시후 주최측에서 매개 팀원들에게 일회용 비옷을 나우어 주고 일정대로 첫 코스인 석굴암을 향해 움직이였다. 전용뻐스는 힘겹게 안개에 휩싸인 석굴암의 굽이굽이를 톺아올랐다. 다행히 정차장에 이르니 비는 멎었으나 안개가 자오록하여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운무속을 헤집으며 가이드의 뒤를 따라 석굴암의 구석구석을 누비였다. 석굴암은 자랑스럽게도 유네스코에 등록된 문화재였다.   한국의 날씨는 정말 변화무쌍하였다. 맑았다가 흐리고 비오다가 끊고 안개가 자오록하다가도 거짓말처럼 불시에 개이는데 종잡기 어려웠다. 우리들의 호기심은 날씨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변함이 없었다. 석굴암로정의 비와 안개속을 누비다가 불국사로 이동하니 비는 그치고 날씨는 완전히 맑아졌다.   재료에 의하면 경주불국사는 신라 경덕왕10년(751)에 재상 김대성이 발원하여 개창되고 혜공왕10년(774)에 완성되였다. 조선 선조26년(1593) 임진왜란때 의병의 주둔지로 리용된 탓에 일본군에 의해 건물이 모두 불타버렸다.    그후 대웅전 등 일부를 다시 세우고1969년부터1973년까지 처음 건립 당시의 건물터를 발굴조사하고 대대적으로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였단다. 동서길이90여메터 되는 석축과 청운교, 백운교, 위에 자하문, 대웅전, 무설전이 남북으로 놓였고 석가탑, 다보탑이 서있다. 그 서쪽에 연화교, 칠보교, 안양문과 여래좌상 금동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이 있다. 무설전 뒤편에는 금동비로자나불 좌상을 모신 비로전과 관음전이 있다.   불국사는 화려하고 장엄한 부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워 찬미하던 수도자들의 불도를 닦던 곳이다. 풍부한 상상력과 예술적인 기량이 어우러진 신라 불교미술의 정수로1995년 석굴암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였다고 전해지고있다. 우리 일행은 숭엄한 마음으로 불국사를 돌아보면서 짧은 순간이나마 신라1000년의 시대를 이끌어간 원동력을 절실히 감안하면서 다음 코스로 이동하였다.   우리는 경주에서 유명한 순두부음식점에서 중식을 먹고1박2일 마지막 코스인 양동마을로 이동하였다.   최희덕 가이드는 양동마을은 500여년의 력사와 생생한 삶이 공존하는 력사마을로서 전 세계적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력사마을중에서도 손꼽는 마을이란다. 양동마을은 단순한 문화재나 민속관광지가 아니라 국제적인 권위를 가진 살아있는 정주유산이라 양동의 모든것은 귀중한 유산이란다. 그러면서 사람이 실제 살고있기에 주민사생활 보호하기, 정중한 옷차림하기, 쓰레기 줍기, 소음줄이기 등4개 면에서 주의를 돌리기 바랐다.   필자는 집체로 움직이는데 따라가지 않고 략도를 보면서 몇곳을 돌아보았다. 그중에서도 처음으로 500년을 그대로 담았다는 3칸 초가 정순이 가옥을 돌아보고 500년 마을지기 노거수를 돌아보면서 양동의 생명같은 특별한 존재를 감지하였다. 현재 양동에는150여그루의 노거수들이 자신의 내력과 풍경을 자랑하고 있다. 은행나무, 느티나무, 배롱나무, 감나무, 오동나무 등 몇가지 나무들을 직접 확인하면서 양동의 다양한 노거수들은 다양한 품격과 상징성을 보여주고 위풍당당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경주지역 1박2일 력사문화체험은 너무나도 감동적이였고 감미로웠다. 그도 그럴것이 한국의 전통과 문화유산 지킴이 돋보였고 그 개발의 령활성이 너무나도 선진적이였다. 경주의 곳곳은 문화유산이고 경물이라는 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선조들의 고귀한 정신을 마음껏 누리기에는 시간이 많이 부족하였지만 그래도 재외동포재단과 한양대학교에서 우리 연수단에 돌려준 지극하고 따뜻한 배려는 영원히 우리들의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아있을것이다.    한국 화성시 창곡리에서 2011년8월11일 오전   
12    한국초청연수에서 주은 사색 댓글:  조회:2892  추천:7  2011-08-06
                                                                한국초청연수에서 주은 사색     한양대학교 한국어 문화원에서 주관하는 초청연수활동에 참가한31명의 중국 조선어문 교사들의 연수생활은 첫날부터 흥미로왔다.   교육프로그램이 정해져있었고 숙소안배, 식사안내, 인터넷사용안내와 도서관, 지어는 전화사용 안내, 신체단련 안내까지 빈틈없이 준비되여 아주 놀라왔다. 그리고 교수들의 봉사정신은 너무나 친절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마치 《촌닭이 관청에 온》 격이였지만 약간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그래도 연수강좌를 열심히 청강하였다. 오직 배우려는 일념으로 하루하루를 강좌속에 푹 빠져들었다.    경북대학교 이상규교수의 《조선어교육의 중요성》으로부터 시작하여 서울대학교 민현식교수의 《한국의 국어교육》, 서울교육대학 원진숙교수의 《작문지도법》, 이화여자대학교 서혁교수의 《독서지도법》, 상명대학교 박재현교수의 《화법 지도법》, 한양대학교 차혜영교수의 《문학 교육론》, 국민대학교 김호정교수의 《문법 교육론》, 경희여자중학교 강용철교수의 《다매체 활용 교육》, 교수학습개발쎈터의 리종육교수의 《파워포인트로 교재 만들기》 등 강좌가 전문성을 가지고있었다면 실습활동에서 안산행복례절관 임영희원장의 문화례절교육과 생활체육대학 인희교교수의 댄스 스포츠는 중국에서 온 우리 조선어문 교사들을 즐겁게 만들었고 흥분시켰다.  다음은 수업시연이였다. 슬기초등학교 허옥희교사와 별망중학교 김은주교사의 수업에 학생신분으로 참가하고 중국 조선어문 교사2명이(소학교와 중학교 대표) 수업을 담당하고 모의수업분석과 평가활동을 진행하는것이였다. 허옥희교사의 교수는 학생들의 개성발굴에 유조하고 교수용품사용이 다양하며 교수목표가 선명하며 웃음으로 이어져 말그대로 개그연출을 보는 느낌이였다면 별망중학교 김은주교사의 《감동적인 체험 글로 표현하기》교수는 《쓰기수업의 필요성》을 연시하고 《마음열기》, 《생각에 날개 달기》, 《비유하는 문장 만들기》, 《맺으며》로 이어지면서 과연 쓰기수업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삶속에 있는것을 찾아내고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마음껏 쓰게 하며 자기발견과 깨달음을 통해 창조사유를 유발하고 나와 나의 관계, 나와 이웃, 세계와의 관계를 조화롭게 하며 그러한 과정에서 친구들과 서로의 가치있는 경험을 공유하고 생각의 폭도 넓어지고 서로의 리해를 깊이하는 좋은 글쓰기 수업이 아닐수 없었다.    드디여 문화와 문화, 교수와 교수의 만남이 혈연과 지연이라는 인맥속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은 너무나 돋보였다. 중국 조선어문 교사 소학교대표인 길림성 연길시공원소학교 리춘매교사의 식자교수는 중국 조선어문교육과정을 잘 모르던 한국 교수님들을 놀라게 했다면 중학교대표인 길림성 연길시제3중학교 서영란교사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의 교수는 중국 조선어교육의 성숙미를 다분하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준비시간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처음으로 한국에 온 조선어문 교사연수단을 대표하여 중국조선어문 과당수업과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중한교사들의 교류는 많은 감동과 사색을 불러오고있다. 전문가 교수평가는 정도부동하게 두 나라 한민족의 차이를 여실하게 반영하였다. 재외동포재단에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14차의 연수활동을 진행해오면서 유독 중국 조선어문 교사들을 이번에 처음 초청한것도 피치 못할 원인이 있겠고 의문스럽지만 교수학습개발쎈터 리수진연구원은 중국 조선어문 교사들의 교수를 보고 깜짝 놀라는 모습에서 교육뿐만아니라 전반 중국 조선족을 너무 모르고있다는 점에 섭섭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우리 교육과 문화의 차이를 절감할수 있었다. 우리는 배워야 한다. 선진적인 한국의 문화와 교육을 배워 우리식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사실 두 나라의 언론이나 교육은 현저한 차이를 보여주고있지만 우리 문화와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온 우리가 배우지 못할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교류의 향연은 아름답고 도전은 더욱 아름답다. 31명의 중국 조선어문 교사들은 배워가지고 돌아가서 자신들의 작용을 충분히 발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점의 불꽃이 되여 열심히 살아가는 민족교육자로 자긍심을 안고 떳떳이 살아가리라 믿는다.                                                                  2011년8월5일 아침. 한양대학 창의관에서.  
11    한차례 뜻깊은 교육리론강좌 댓글:  조회:1996  추천:32  2011-06-03
한차례 뜻깊은 교육리론강좌   지난주 금요일 오후, 룡정중학교에서는 연길시연신소학교 박송원교장을 초청하여 소인수학급 교육리론강좌를 조직하였다.   교직생활을 해오면서 수없이 많은 교육리론강좌를 청취해온 필자로서는 형식에 얽매우고 따분한 공상적 교육리론강좌는 질색이다. 이날 강좌도 자리지킴이나 하는 그런 강좌가 아니기를 바라면서 앞쪽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박송원교장의 강좌는 시작부터 달랐다. 《이것이 미래의 교육이다》라는 거창한 주제와 유머감각이 짙은 재치있는 연설이 듣는이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   이전에 들은 교육리론강좌들은 대다수가 무엇을 들었던가싶이 인상에 남지 않았는데 그의 강좌엔 저도 모르게 휘말려들게 되고 적어도 소인수학급이라는 교수활동 행위에 대한 인식을 넓히게 되여 교사로서 직업적인 사색을 하지 않을수 없게 만들었다.   특히 긍정할만한것은 박송원교장의 교육에 대한 과학적인 태도와 단단히 다져진 교육교수실천과 리론지식이다. 풍부한 교육교수실천경험과 열린 마음으로 한개 집단을 이끌어가는 리더십이 돋보이기도 하였다.   그가 뚜렷하게 생존성교육과 창의성교육, 발전성교육을 시종일관하게 제기하고 소인수학급교수에서 개별학습, 자주학습, 주도학습, 스스로의 학습, 즐거운 학습을 선도하는 개성적인 견해가 그의 령도방법에 대한 긍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문뜩 전문가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 교원들의 습관적인 주입식교수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을 화면으로 아주 생동하게 풍자적으로 표현하여 흥미를 끌어가면서 소인수학급교수에서 교원들의 역할은 강요하거나 던져주지 말고 배움의 즐거움을 가르치고 학생들의 재능을 발견할 줄 아는 밀어주는 교육을 선도하는것이라고 말한다. 미래교육은 사회변화를 배우는것이라는데 력점을 찍는다. 나뿐이 아닌 모든 참가자들의 마음에 와 닫는 견해라 장내엔 순식간에 박수갈채다. 재래식방법에 습관되고 절어온 우리 교원들의 굳은 사유에 충격을 주는 견해였다.   인민이 만족하는 교육을 꾸리고 과학적 발전관을 전면 시달하기 위하여 금년부터 소학교에서 실험했던 소인수학급교수실천경험으로 초중에서도 소인수학급교수를 전면 실시하는 시점에서 우리 초중교원들에 대한 부담과 압력은 커가고있다.   모든것을 바꾸어야 한다. 생각을 바꾸고 지식을 늘이고 자질을 키워야 하며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고생을 하지 않고 달콤한 열매를 따기는 어렵다. 대학을 졸업하고 몇십년을 벌어먹던 시대는 지났다. 《이미지정치》를 지향하는 령도는 민심을 얻지 못하며 인맥을 리용하여 개인의 리익만을 챙기는 사람들이 불편해 할때가 도래한것이다. 경쟁의식에 시달려야 하는데 진정 지식형의 교원이 되여야 생존위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유롭게 긍정적인 삶을 살수 있는것이다.   언어학자 려숙삼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읽어야 할 세가지 책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첫째는 자기의 전업과 관계되는 책인데 이런 책은 전문일군들의 처세자본이다. 둘째는 전업과 관계되는 기타분야의 책인데 이런 책은 사고력을 높이고 견식을 늘이며 수양을 깊이 하는 동시에 리해력과 판단력을 높이는데 아주 좋은 점이 있다. 셋째는 현대 중국인이 꼭 읽어야 할 책인데 이런 책을 통해 오늘의 중국에서 생활하고있는 모든 사람들은 마땅히 자기 민족과 자기 민족의 유구한 사상, 문화, 과학사를 리해하여야 하며 자기가 처하고있는 시대, 환경 및 이런 시대환경에서 움트고있는 각종 새 기술, 새 사조, 새 문화를 리해하여야 한다.   불안한 일은 주위에서 《지부생활》잡지를 읽어보는 당원이나 교과서외에 《중국조선족교육》잡지나 참고서적, 신문을 읽는 교원이 너무나 적다는것이다.   현상유지나 하면서 《바보》인체 하는 《똑똑한 바보》들이 년말평가에서 모든 리익을 챙겨간다. 령도들이 인맥관계를 리용하여 사람을 등용하고 권익을 제공해주며 교학제1선에 있는 일부 기층교원들은 령도의 눈치만 살피면서 그럭저럭 응부해가는 이런 현실에서 민족교육과 학교발전을 운운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소인수학급교육은 령도 본인이 진정으로 사상을 개방하고 과학적인 리론으로 지도할것을 요구하며 해박한 지식으로 교원들의 사유를 바꾸고 민족의 후대들에게 책임질것을 요구하고있다.   박송원교장의 강좌는 반박할수 없는 론점과 론거로 이점을 충분히 증명해주었다.   필자는 그의 간력을 살펴보았다. 석사연구생학력, 33년 교직생활에 18년 교장사업, 《90년대 중국개방교육의 창시자》, 《2000년대 소인수학급교육의 선구자》로 평을 받음, 저서로는 《개방교육의 리론과 실제》, 《소인수학급교육의 리론과 실제》 등이 있으며 다년래 국가급 론문 10편, 성급론문 20여편이 발표됨.   현재 그가 교장으로 사업하고있는 연신소학교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중소학교 소인수학급교육양성기지》로 명명되였는데 이는 그의 끊임없는 교학연구와 교수실천과 갈라 놓을수 없다. 그의 이런 노력과 탐구는 우리 령도들 나아가서 전체 교원들이 따라배울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2011년6월3일 룡정에서 
10    리욱시비를 찾아서 댓글:  조회:1759  추천:63  2011-05-02
리욱시비를 찾아서   올해 여름방학에는 유람삼아 연변의 몇개 현시 관광명소들을 돌아볼 타산이였다.   얼마전에 도문의 일광산 화엄사, 도문강공원의 정몽호문학비, 량수진의 온성단교를 돌아보고 집에서 휴식하는데 장춘사범대학을 다니는 련옥학생으로부터 두만강문학답사에 동행해줄것을 요청해왔다. 련옥학생은 고중시절부터 글짓기에 남다른 흥취를 가지고 열심히 글을 써왔고 여러차례 상을 받은 문학지망생이였다. 나는 흔쾌히 제자의 요청을 수락하고 어디로 갈것인가를 생각던 끝에 오래전부터 한번 찾아보고 싶었던 중국조선족 시문학의 선구자의 한분인 리욱선생님의 시비가 모셔져 있다는 화룡시 로과촌 호곡령을 찾아 문화산책을 하기로 하고 다음날 떠나기로 약속했다. 다음날(7월17일) 한 아빠트단지에 있는 후배 김선생과 함께 약속한 지점에 도착하여 정각 8시에 우리 일행 3명을 싫은 택시는 화룡시 로과촌 리욱시비를 찾아 떠났다. 룡정과 화룡구간을 40십여분정도 달리면서 차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농촌마을들은 그처럼 정다웠다. 화룡에서 우심산을 지나 소골령밑에 이르면 도로는 두갈래로 갈라지는데 좌측도로는 남평방향이고 우측도로는 숭선방향이였다. 택시는 우측 숭선방향 소골령 굽이굽이를 힘겹게 오르기 시작하였다. 소골령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우리들은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신기한 풍경에 취해버렸다. 공기가 맑고 신선할뿐만아니라 울울창창 나무숲이 우거지고 우불구불 아슬아슬하게 한굽이 한굽이를 톺아 오르는데 마치 자연의 원시림을 달리는 상쾌하고 긴장되고 이상한 기분이였다. 문뜩 머리속에 옛시구가 떠오르면서 입속으로 읊어보았다. 《산이 첩첩하고 물이 겹겹하여 길이 없나했더니 굽이를 돌아서니 새 마을이 나타나네.》 과연 선인들이 과찬하던 명시구였다. 가까스로 소골령을 내려서면서 눈앞이 확 트이고 두만강이 가로 막아서고 조선의 산천경개가 한 눈에 안겨왔다. 두만강기슭에 자리잡은 로과촌에 도착한것이다. 그런데 차는 변방부대훈련기지라고 간판이 보이는 건물앞에서 멈추어서야 했다. 한창 도로건설중이라 사처에 흙을 파헤쳤놓았고 차량들이 앞을 막고 있어 건어갈수 없었다. 그참에 슬적 차에서 내려 길옆집에 찾아 들어가서 공손히 인사를 드리고 리욱시비를 찾아가자면 어떻게 가야하는가고 물었더니 집주인은 아주 따뜻하게 대해주면서 상세하게 알려주는것이였다. 남평방향으로 6리쯤 가면 령이 있는데 그 령에서 오른쪽 오솔길로 50-60메터쯤 올라가면 있다는것이다. 너무 감사했다. 길옆집에서 돌아서 나오니 길이 열리였다. 그곳을 재빨리 빠져나와 남평방향으로 달리였다. 울퉁불퉁하고 산처럼 파헤친 흙무지를 에돌아가면서 천천히 가파롭고 위험한 산고개를 향해 달렸다. 도로건설로동자들의 곳곳에 표시해놓은 안내패쪽에 따라 산마루에 도착하니 차는 더는 나갈수 없었다. 차에서 내려 오른쪽을 보니 과연 오솔길이 있었다. 무더운 여름날씨에 땀을 흘리면서 나무숲이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니 리욱시비가 눈앞에 나타났다. 시비로 올라가는 층계는 풀이 많이 자랐고 참나무가지가 우거져 층계를 가리고 있어 멀리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드디여 리욱시비를 마주하고 묵묵히 인사를 드리면서 시비를 살펴보니 보수가 잘 되지 않아 시비곳곳에 금이가고 기초부분의 벽체가 떨어져있어 마음한구석은 어쩐지 아쉽고 섭섭하였다. 우리는 파손된 콩크리트쪼각들을 바로잡아놓고 시비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였다. 리욱시비는 1988년 9월 5일에 정부와 문화지성인들에 의하여 세워졌고 시비정면에 리욱선생님의 시 《할아버지의 마음》 전문을 새겨넣었다. 우리들은 함께 시비에 새겨진 시를 읊어 내려갔다. 할아버지의 마음에 담긴 깊은 뜻을 음미하면서 자리를 찾아 앉아 땀을 들이면서 조선무산시의 전경을 굽어보고 있는데 련옥학생이 선생의 생애와 문학활동을 알고싶다고 물어왔다. 그래서 얼마전에 찾아본 재료를 더듬으면서 강의를 하게 되였다. 리욱(1907.7.25.-1984.2.6) 저명한 조선족시인, 로씨야 연해주 신한촌에서 출생. 1910년 봄 화룡현 로과향 강장동에 이주. 1923년에 룡정 동흥중학교에 입학. 1924년에 《생명의 례물》, 《봄비》를 각기 《간도일보》와 《조선문단》에 발표하여 시적재능을 과시하였다. 30년대말부터 1945년 《8.15》광복까지의 민족문화사의 암흑기에 《척촉화》, 《바위》, 《금붕어》, 《석양》, 《봄꿈》, 《혈흔에 핀 꽃》, 《나의 노래》, 《락엽》, 《5월》, 《별》, 《모아산》 등 대표적인 작품을 발표하였는데 이런 시작들은 모두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으로 빚어진 참담한 현실을 고발하면서 그 험난한 환경에서도 민족의 얼을 간직하고 자유로운 미래에로 나아가려는 민족에 대한 충정과 념원과 신념을 노래한 작품들이였다. 본문 저자와 련옥학생 이렇게 질서없이 시인에 대한 소개를 마무리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련옥학생과 김선생은 이번 걸음에 한차례 문학공부를 하게 되여 기쁘고 조선족 시문학의 개척자이신 리욱선생을 알게 되여 많은것을 배웠다고 거듭 치하, 그러면서도 보수가 잘 되지 않아 볼품없이 된 시비에 대해서는 아쉽고 섭섭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거기에 후배로서 이렇게 늦게 찾아온 부끄러운 마음이 내내 우리의 발목을 잡아 죄스러운 생각까지 갈마들어 귀로에 오르는 우리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였다. 보기에도 민망스러운 리욱시비 우리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였다.
9    알송정의 푸른넋 댓글:  조회:2012  추천:70  2011-04-25
내고향 명물;                                     일송정 푸른넋   룡정시 비암산 북쪽 산봉우리 정상에는 정자모양의 한그루의 소나무가 자라고있다. 그 소나무가 선구자의 이미지로 우리 마음속에 깊게 부각되여있는 일송정소나무이다. 소나무의 모양은 아주 신기하다. 비암산 절벽우에 있는 너럭바위에 억척스레 뿌리박고 모진 가물과 매서운 설한풍을 용케도 이겨가면서 그 넓은 세전벌과 평강벌을 흘러가는 해란강의 푸른 물줄기를 굽어살피며 우뚝 서있는 소나무의 그 름름한 모습은 마치도 나라 잃은 우리 선조들이 고향을 등지고 남부녀대하여 두만강을 건너 이 땅에 와서 뿌리내리고 열심히 살아가는 선구자의 형상인듯 하다.   1919년 일어났던 반일운동을 시작으로 룡정에서는 항일의 불길이 갈수록 세차게 타올랐다. 이 꺼질줄 모르는 항일투쟁의 근원이 비암산 일송정에 있다는 풍수쟁이의 말을 믿고 일본놈들은 갖은 방법으로 이 소나무를 죽어벼렸으니 그때가 바로 1938년이라고 민간에서는 전해오고있다.   중국대지에 개혁개방의 봄바람이 세차게 불어오자 룡정사람들은 비암산 일송정 소나무를 다시 심어야 할 필요성을 심심히 느끼고 1991년3월12일에 비암산 일송정소나무를 다시 심고 전에 없던 6각형정자도 새로 건설하여 그해 9월3일에 준공하였다.   비암산 일송정 푸른 소나무는 오늘도 민족의 얼을 안고 선구자의 름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8    룡정 답사 사색 댓글:  조회:1891  추천:27  2011-04-17
룡정 답사 사색 습관적으로 컴앞에서 컴항행을 즐기는데 문득 핸드폰 신호가 울려 받아보니 뜻밖에도 소설가 김혁선생이였다. 중국조선족력사문화 동호회 발족모임이 있는데 룡정의 한양커피점에서 함께 자리를 하면서 이야기도 할겸 면목도 익혀가자는 내용의  전화였다.  나는 소설가 김혁선생을 매체에서는 익숙히 알고 있었으나 한번도 만난본적은 없었다. 그래서 좀 놀랐고 의외였다.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데 그장소에 존경스러운 “룡정 ‘3.13’기념사업회” 최근갑회장님과 국가1급작가 리태수선생님을 만나게 되여 너무 반가웠다. 사실 이날은 중국조선족력사문화의 재조명을 꿈꾸는 30, 40대의 작가, 학자,  편집, 기자들로 똘똘 뭉친 중국조선족력사문화동호회 발족의식을 가지는 날이였다. 그것도 중국조선족의 문화의 발상지인 룡정에서 고고성을 터뜨리게 되여 더 의의가 있었다. 나는 저으기 감동되였다. 이런 거창하고 중대한 행사에 나같은 일개 교원나부랭이를 청해주다니 참으로 고마웠다. 그와중에 덩달아 동호회 탄생 축배의 잔을 들었다. 답사의 첫코스는 유서깊은 룡정, 전설의 룡정이 였다. 룡정에 대한 14차례되는 답사는 이렇게 막을 열게 되였다. 력사가 살아숨쉬는 룡정지구력사문화유적지 50여곳을 도보로 샅샅이 누비면서 력사문화 감각을 되찾으며 새로운 력사문화 재료를 발견, 수정, 정리 작업의 향기속에 푹 빠져들었다. 답사내내 젊은 지성인들의 력사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유머적인 언어구사에 감탄하면서 흥미로웠고 감회가 깊었을 뿐만아니라 서로간에 도시락밥과 찬을 주고받으면서 한잔의 종이컵술을마시면서 의사소통으로 우정을 돈독히 다듬어가고 있었다. 윤동주시인의 모교, 서전서숙, 일송정, 해란강기슭 비암산자락의 룡주사옛터, 비운의 녀류작가 강경애 자취를 찾아 그가 거주했다는 옛자리터, 룡드레우물옛터, 3.13반일운동 유적지, 윤동주묘비, 송몽규묘비, 조선족문학의 정초자인 김창걸문학비, 장재촌서쪽 산비탈에 자리잡고  있는 근대조선족교육의 선구자 김약연묘비, 5.30폭동유적지, 15만원 탈취유적지, 주덕해옛집터, 문익환생가(복원중), 명동소학교(복원완료) , 윤동주생가, 대포산과 선바위를 찾았다. 위인들의 흔적을 되새겨보고 그들의 생애와 위대한 업적에 매료되여 가을비가 줄창내리고 고생스러워도 력사와 문화를 익혀가는 마음은 항상 즐거웠다. 날이 갈수록 력사문화유적 답사의 향기는 짙어가고 늦게나마 인생공부에 열중하면서 배움의 열망을 식히지 않았다. 가장 잊지못할것은 룡정 향토사학자이며 “룡정’3.13’기념사업회”회장이신 최근갑옹을 모시고 룡정시내에 소재한 제창병원옛터, 은진중학교옛터, 윤동주장례식을 치렀던 옛집터, 실천녀학부옛터, 영국더기, 광명중학교옛터, 조선은행 룡정지점, 중앙교회옛터, 3.13종탑옛터 등 많은 유적지를 재확인하는 반추의 시간동안 추운날씨임에도 85세 고령의 정정한 모습으로 우리 답사팀 맴버들에게 열정적으로 자상한 설명을 주시면서 마지막까지 안내해주신 최근갑회장님의 옳바른 삶의 자세를 배웠고 세파속에서도 끈질긴 우리민족력사문화에 대한 사랑을 뼈속으로 느끼게 되였다.  답사팀은 해란강과 륙도하 합수목에 신축한 우리 민족의 걸출한 정치가 사회활동가 저명한  화가이며 중국 최초의 조선인 공산당원인 한락연선생의 이름으로 명명한 공원을 돌아보았고 “신민보”유적지, 제2윤동주라 불리우는 심련수시인의 묘비도 찾아 감회를 서로서로 나누어 가기도 하였다. 그리고 룡정시한락연연구회와 공동으로 무게있는 “홍색화가” 한락연 탄신 112주년 기념행사를 주체하여 중국조선족 력사문화 동호회의 실력과 작용을 충분히 뎥보여주었다. 몇달동안 답사활동은 진정 놀음으로 등산이 아니였을 실감했고 고생도 어려움도 마다하고 한결같이 뜻을 같이 한 우리 맴버들의 의지는 한결 돋보였다. 나는 답사내내 젊은 지성인 맴버들한테 미안한 마음을 감출수없었다. 룡정에서 살면서 자신이 살고있는 고장의 력사문화에 대하여 령점이였다는 점이 그지없이 난감하였다. 그래서 나름대로 열심히 배우기로 했다. 답사의 어렵고 고된 로정의 향기속에서 10년을 배워도 미치지못할 력사문화지식을 배웠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인젠 학생들 앞에서 떳떳하게 우리 룡정의 력사문화를 전달해줄수 있는 기초를 튼튼히 다지게 되여 자못 뿌듯하다. 그리고 일개 교원나부랭이를 동호회맴버로 받아주고 호흡을 함께 하면서 기회를 마련해준 상무 맴버(주성화, 김혁, 김창희)들에게 정중히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향후 중국조선족 력사문화 동호회가 우리 민족력사문화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우리 민족사회 후대들에게 알찬열매로 세세대대 영원히 전해가리라 기원해마지 않는다.      
7    삼 륜 차 댓글:  조회:2246  추천:56  2011-03-14
삼   륜   차      나는-----   생존경쟁 틈에서 흘러나온     바람타고 산다       요리조리 달리는       세바퀴 땀내밴 작은 생의      노오랗게 무르익는 소원향해           약동하는 시대 줄달음속에서         남먼저 새벽꿈 향기털고         오금에 고달픈 노래선률 울린다          입김서린 필사적 근력       사지가 푸들푸들       힘겨웁게 푼돈 한잎 두잎 벌며       천자만홍 아롱진 유혹     령롱한 도시세계에      둥그런 삶의형상을 그린다.
6    세방살이 댓글:  조회:2092  추천:54  2011-03-14
세방살이 채색세계... 유혹에 끌려 시골의 기름진 농토를 버리고 벼락이사온 황홀한 꿈은 도시틈새에 끼운 구차한 세방살이다 인사치레 면사포에 가리운 되박만한 단간방 허울좋은 옹색한 삶 빈둥거리는 멀쩡한 세월이다 눈먼 욕망 빈말에 덩달아 얼추 속아사는 오라질신세 그래도 도시허공에 어스럼히 노오란 꿈을 그리며 외롭게 온 육신을 태운다 집에 올리기 차리는 리욕 현대의식의 시달림에 두 내외 빠지직 타는 마음
5    믿음과 사랑은 받침돌 댓글:  조회:1568  추천:39  2010-12-27
                 믿음과 사랑은 받침돌   김정섭 jin-5857@hanmail.net                 [서울=동북아신문]담임교원은 학생들에게 믿는 마음을 키워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관심하고 배려하고 보듬어 주어야만이 진정으로 학생들과 호흡을 맞추고 보조를 함께 할수 있는 뉴대가 형성될수 있고 조화로운 인간관계가 형성되여 학급운영이 유유히 화기롭고 주체의식이 농후해질수 있는것이다. 지난 일요일 아침이다. 총망히 출근길에 올라 먼저 교실로 들어선 나는 교실환경정리를 깔끔히 살펴보고 담당구역을 돌아본 다음 학생들과 어울려 운동장으로 나갔다. 국기계양식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오는데 복도에서 정일학생이 “선생님”하면서 쪽지 한장을 넘겨주는것이였다. 그런데 교실에 들어서서 첫수업준비를 시켜놓고 교무실로 돌아와 궁금한 마음으로 그 쪽지를 펼쳐들었다. 존경하는 선생님 ! 저 군영입니다. 깊은 고민끝에 이렇게 선생님한테 편지를 씁니다. 우선 청가도 없이 급급히 장춘으로 떠났는데 깊은 사죄를 드림니다. 덕분에 친아버지를 만나보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제가 장춘에 도착한 이튿날에 돌아가셨습니다. 저의 마음은 너무 아프고 복잡하며 아버지가 너무 원망스럽습니다. 지난 10년여년동안 저를 한번도 찾아주지도 않았고 돌봐주지도 않은 무정하고 얄미운 아버지와 할말도 많았는데…정말 저의 마음은 너무 아프고 복잡합니다. 세상이 두렵고 누구도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마음이 너무 답답해서 누구한테 토로하고싶어도 토로할수 없고 그래서 선생님한테 이 글을 올림니다. 선생님, 저한테 며칠만 청가를 주십시오. 복잡하고 답답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주십시오. 그리고 선생님과 할아버지 할머니를 볼면목이 없습니다. 렴치없지만 선생님, 저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십시오. 할아버지 할머니는 저를 아까워 욕 한마디, 손찌검 한번도 하지 않습니다. 진정 제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면 열심히 공부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못난 이 제자를 용서해주십시오. 제자 군영 올림. 2009년*월*일 군영학생의 쪽지를 읽노라니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어들면서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학생들의 믿음에 사랑을 주지 못한 자신이 민망스러워지기도 했다. 군영학생의 부모는 그가 여덥살되던 해 리혼하였다. 어려서부터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슬하에서 자란 군영학생은 자존심이 강하나 자제력이 차하고 자주 학교로 오지 않거나 병을 핑계로 선생님을 속이면서 학급의 성적을 말아먹는 학생중의 한명이였다. 그리하여 여러번 암시를 주었고 개별담화로 교육을 했었다. 그날도 몇명 학생들이 함께 학교화장실부근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정교처주임한테 발각되여 혼났었다. 그길로 며칠 학교에 오지 않았다. 나는 이번엔 단단히 혼내놓으려고 벼르던 참이였는데 이렇게 쪽지를 보내오고 또 그 사연이 너무 마음아픈 사연이고 슬픈 사연이다. 우리 학급의 50여명 학생들 가운데 절반이상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생활하고있지만 이처럼 아프고 슬픈 사연이 숨어있음을 미처 몰랐다. 담임교원으로서 더우기 조선어문교원으로서 이것은 너무도 무감각, 무책임한 일이였다. 나는 방망이에 뒤통수를 한매 되게 얻어맞은것처럼 모진 자책속에서 안절부절못했다. 담임교원사업을 해오면서 나름대로 학급의 전반 학생을 대학에 진학시킬수는 없다 하더라도 인간으로 키우고 시대의 흐름에 보조를 맞추는 감각을 키워주고 부모다운 믿음과 사랑으로 우리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자신의 삶을 영위할수 있는 능력이나마 키워주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뛰여왔지만 진정으로 담임교원에 대한 그들의 믿음에 사랑을 주지 못했음을 자책하게 되는 순간이였다. 사랑과 믿음은 담임교원사업의 승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담임교원은 학생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들로 하여금 학습생활과 학교생활에서 상처를 입는것을 피면하도록 관심과 방조를 주며 사랑의 마음을 키워야 함을 다시 한번 절실히 느끼게 되였다. 뿐만아니라 학생들의 내심세계를 잘 파악하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학급관리방법을 모색하면서 다시 한번 담임교원사업을 착실하게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또한 편부모, 무부모 학생들의 상황을 새삼스레 되새겨보면서 학급학생들의 미음에 사랑으로 보담하고 또 그들에게 믿음과 사랑을 주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게 된다. [저작권자(c) 평화와 희망을 만들어가는 동북아신문(www.dba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4    고향가는 길 댓글:  조회:1770  추천:44  2010-12-24
                                           고향가는 길       국경절 날 화룡 누님네 집에 모여 어머님 3년제를 무난히 지내고 이튼날 형제들과 작별하면서 우리부부는 내가 세상에 고고성을 울리며 태줄을 묻은 고향, 아직 고향의 어느 산 언덕에 아버지가 외롭고 쓸쓸하게 누워 있는 그 곳, 그곳으로 찾아 떠났다. 딸과 함께 갔더라면 더 좋았으련만 사업때문에 어쩔수없이 딸은 그냥 훈춘으로 향했다. 이제 고향에 가면 심장에 꽁꽁 묻어둔 그리움을 따뜻하게 마음을 열어주는  고향땅에서 달래보아야지.   택시가 소골령 아흔아홉고개 굽이굽이를 아츠랗게 달리노라니 어즈러움증이 있는 안해는 자주 신음소리를 내군 했다.  그러면서도 가을풍경이 다분한 소골령의 황홀한 단풍과 기묘한 산세에 저도모르게 감탄을 토하군 했다. 동남쪽으로는 조선이 환히 보였고 상류인 두만강을 거슬러 달리면서 보노라니 두만강 건너쪽 조선의 산변두리는 칼로 벤듯한 절벽에 은띠같은 한줄기 폭포까지 조화를 이루면서 제법 한폭의 수채화를 방불케 하였다. 포장길 량옆에는 단풍든 나무들이 주인인양 줄느런히 서서 길손들을 반갑게 맞아주고 있는가 하면 미술가의 세련된 손에서 조예가 깊게 다듬어진 미술작품처럼 죽-죽 줄무늬 간 절벽들이 머리우에서 내려보고있어 그 전경이 한결 돋보였다.   어느덧 하천벌을 지나 군함산기슭에 오붓하게 자리잡은 하늘아래 첫 동네로 불리우는 숭선진 고성리에 이르렀다. 장장40여년만에 찾아 뵙는 고향, 고향의 산언덕 어디선가에서 무정하고 불효한 이 자식의 초라하고 로숙한 모습을 아버지께서 내려다 보시는것만 같아 하고 아버지의 혼을 향해 목 빠지도록 힘껏 부르고 싶었다. 세상에 태여나  4살에 돌아가신 아버지, 평생 한번도 아버지를 불러보지도 못한 설음과 한이 북받쳐올라 오늘만큼은 실컷 아버지를 부르고싶어졌다. 목청껏 부르면 화답이 올듯 두만강이 출렁출렁  흐르고 군함산이 쩌렁쩌렁 울리는듯싶었다.    인젠 어머님까지 돌아가셨으니 아버지의 산소를 더는 찾을길 없고 찾는다 하더라도 확인할수 없을것 같았다. 40여년의 긴긴 세월에 손길이 닿지 않았던 외로운 묘지라 형체를 알수 없을것 같아 나는 그냥 고성리를 아버지집이라고 하고 싶었다. 진정 군함산을 아버지산이라고. 믿어서인지 마치 아버지께서 뒤늦게야 찾아온 매정하고 무정한 우리를 보고 흐뭇해하고 기뻐하시는것만 같았다.   안해의 요청으로 화룡시 풍경구인 숭선진 고성리 홍기하에 가 보기로 했다. 길이 생소했던 우리는 도보로 5분이면 갈수 있는 거리를 15원에 택시를  타고 갔다. 참으로 홍기하는 도화원 같았다. 거기에 장관인 폭포까지 있어 더 아름다왔다. 아츨한 산꼭대기를 가리마처럼 살짝 가르고 쏟아져 내리는 상상할수도 없는 한줄기 하아얀 물줄기, 볼수록  신기하기만 한 폭포였다. 쉼없이 내리는 폭포는 아직까지   마을이 여느 마을들처럼 황페화되지 않고 오붓하고 아담하며 생생함을 뜻하는것 같았다.   아버지께서 외롭고 쓸쓸하게 오늘까지 기다리셨듯 래일도 기다리실거다. 고성리의 산과 물은 모두다 아버지같았다. 어지러운 세월에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하여 라진배농장에 자리를 정해놓고 돌아오시다가 두만강에서 수중고혼이 되신 아버지, 남평해관 임직원들에 의해 임자없는 시신으로 군함산기슭에 묻힌 아버지, 아버지 령혼이 살아숨쉬고 있고 나의 태줄이 고스란히 묻혀있는 고성리는 정녕 나의 사랑스러운 고향이다. 50여년을 눈물없이 꿋꿋이 살았지만 사나이는 결국은 고향땅에 눈물을 휘뿌려본다. 장장 50년만에 찾은 아버지의 령혼이 살아숨쉬고 있는 그곳 고성리에!.   짤리운 군함산 꼬리를 빠져나오면서 어딘가에서 넉가래같은 손을 젓는 아버지가 있을것 같아 자꾸만 차창뒤 유리창을 내다보았다. 아버지께서 흐뭇히 미소를 머금고  손을 저으시면서  따라오기라도 할것처럼.[래원:연변일보 2010-12-2]
3    교류의 향연 댓글:  조회:1604  추천:45  2010-12-24
[서울=동북아신문] 다년간 고3조선어문교수를 담당해온 나는 학생과의 진지한 교류야말로 학습능률과 교수효과를 배로 늘이는 지름길임을 날이 갈수록 깊이 터득하게 된다. 예전에 나는 조선어문교원은 학생작문을 통해 그들의 내면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것만큼 학생들의 심리에 대한 료해가 남달리 깊다고 늘 자신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였다. 학생들과 이메일대화를 시작하면서 그제야 진정으로 마음을 나누는 교류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게 되였다. 학생들애게 이메일을 공개하고 작문을 위주로 활발한 교류를 기대했을 때 한 학생이 이런 이메일을 보내왔다. "10여년의 학교생활에서 선생님과 이메일을 주고받기는 처음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선생님인 것 같아 친근한 느낌입니다. 글짓기에 더 열성을 낼 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반응은 초반에 내가 상상했던것 이상이였다. 평소 글짓기수업에서 무표정하던 학생들도 이메일을 리용하여 글을 써보냈고 복도에서 얼굴을 마주쳐도 어색해하던 학생들이 마음의 문을 빠금히 열어보이기 시작했다. 글짓기와 무관한 생활속의 이야기거나 마음의 고충을 털어놓고 조언을 부탁하는 학생도 있었다. 공부성적은 그닥 우수하지 못해도 미래에 대한 고운 꿈을 품고있고 또 꿈과 현실이 너무 덩떨어져있는것에 곤혹을 느끼고 지난날에 대한 뼈저린 후회에 젖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의 고민을 이름을 밝히지 않고 믿는 선생님한테 솔직히 털어놓을수 있어 좋은 모양이였다. 이메일대화의 빈도가 늘고 폭이 넓어질수록 후회의 마음도 짙어갔다. 마음을 교류하기보다는 무작정 교수내용을 주입하기에 급급했던 예전의 교육태도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학생들 마음의 지기처럼 친구처럼 다가가고 그들의 성장과 진보에 정말 힘이 되고 뒤떨어진 학생들을 사랑으로 보듬어주는 교원으로 거듭나야겠다는 다짐을 굳힌 나는 저녁마다 이메일로 들어온 작문을 세심히 읽고 열심히 평어를 써주고 진보에 박수를 보내는 등 늘 한밤중까지 컴퓨터를 떠나지 못했다. 학생들의 작문은 륙속 중학생관련 신문, 잡지들에 발표됨에 따라 글짓기 흥취나 열정이 한결 높아졌고 성적도 제고되였다. 사생지간의 진정어린 교류는 세대차이를 해소하고 원활한 소통을 이루어가는 윤활유이다. [저작권자(c) 동북아신문(www.dba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단, 공익 목적 출처 명시시 복제 허용.]  
2    일광산을 찾아서 댓글:  조회:1638  추천:46  2010-12-24
[서울=동북아신문] 얼마전에 대학입시를 끝마치고 학생들과 함께 장춘, 북경 등지의 직업교육에 대한 문화려행과 고찰을 다녀온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던 7월 4일 도문에 있는 동서의 전화를 받고 우리 부부는 도문으로 가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일광산 화엄사로 찾아가기로 약속하고 재료를 찾아보게 되었다. 도문시는 산과 물을 끼고 있는 경치도 좋고 교통도 편리한 변경통상구도시로서 자고로 《도문강반 첫도시》라는 미칭을 갖고 있으며 도문시 구역면적은 1142.3평방킬로메터, 인구는 12.99만명, 그중 조선족이 7.02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54.04%를 점한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도문시에는 매우 풍부한 관광자원이 있다. 독특한 매력을 갖춘 두만강공원, 웅위롭고 장엄한 국문, 경치가 수려한 일광산, 불교성지 화엄사, 민족풍정이 다분한 월청조선족 《농가락》, 풍경이 아름다운 《룡가미원》과 전원생활을 체험할수 있는 량수유가농업관광원 등 관광구와 관광명소가 있다. 그밖에 동하국 도읍-성자산장, 발해국시기의 24개 돌 등 많은 문화재와 력사유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부부는 일광산화엄사에 호기심이 동했고 한번 가보기로 작심하였다. 이틀날 오전 9시경에 도문시에서 5키로메터 상거해있는 일광산 화엄사를 찾아 떴났다. 일광산 화엄사는 한창 건설중이였고 간밤에 내린 비로 인해 진흙길은 물이 고여있고 미끄러웠다. 조심조심 마른땅을 골라 걸으면서 화엄사의 첫 관문인 산문에 이르렀다. 산문앞에서 굽어보니 도문시의 전경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남양시의 아름다운 경치가 매력적으로 눈앞에 안겨들면서 저도몰래 무한한 격정이 감돌아쳤다. 앞을 바라보니 화엄사주위는 푸른 수림이 우거지고 무성하며 삼면에 기암괴석이 우중충한 산을 등지고 물을 끼고 있어 가관이였는데 마치 하나의 조각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느낌이 새삼스러웠다. 화엄사의 전반 건축은 중국과 조선의 고대건축예술을 융합하여 독특한 풍격을 갖추었는데 동북에서 제일 큰 사찰중의 하나이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조선풍격과 당나라풍격을 모방한 사찰이라고 한다. 화엄사가 중생들로 하여금 선량한 심지와 복스러운 덕을 키우게 하고 곤혹을 풀고 도리를 깨우치며 고난을 멀리하고 락을 보게 하며 나아가서 성불하는 보기드문 훌륭한 인연이라니 더욱 매력적이고 감동의 마음을 감출수 없었다. 와중에 우리 부부는 일광산 화엄사의 첫 문인 산문을 지나 천왕전에 이르렀고 천왕전 돌기둥과 벽면에 교묘하게 조화롭게 조각된 룡과 학을 감상하면서 드디여 대웅전 전당에 들어섰다. 대웅전 정면에 웅장하고 위엄스러운 5개의 불상이 정중히 모셔져 있었다. 그리고 전당에는 공작일군인듯한 5-6명 녀성들이 오갔고 그중에 한명의 조선족 아가씨가 다가오면서 반갑게 맞아주면서 어찌나 살갑고 정답게 헌금으로부터 소망을 기탁하며 기도를 드리는 방법까지 해설해주는지 선뜻이 단돈 5원을 험금하고 정성껏 기도를 드리였다. 돈 10원을 더 내고 건축에 사용하는 기와장에 소망을 서명하고 기념으로 남기기도 하면서 신비스러운 마음으로 대웅전 이모저모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우리부부의 눈길은 고집스레 불상좌측에 모셔진 서월선사의 안내글에 쏠리게 되였고 처음부터 자세하게 훑어보게 되였다. 1912년 조선의 대덕고승 수월선사는 두만강을 건너 일광산에 터를 잡고 《수월정사》를 지었다. 정사에서 들려오는 경읽는 소리와 청정한 범어는 그 당시 주변의 중생들에게 길상과 복을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수월선사는 일광산과 그 주변지역에 불법의 도리를 고양하여 중생을 구제하며 선행과 희사를 즐겨 병을 봐주고 죽는 삶을 구하고 부상입은 사람을 치료하며 리재민을 구제하고 가난한 사람을 구해줌으로써 부근 백성들의 마음을 덥혀준데서 성승으로 불리웠다. 그 당시 일본중들도 일광산의 풍경을 매우 선호하여 사찰을 지었고 일광산이라 이름하였는데 지난세기 3,40년대에 일광산에는 여러개의 사찰이 있었고 출가한 중과 집에서 수련하는 사람들도 아주 많았다고 한다. 일광산 화엄사에는 많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아주 먼 옛날부터 태고의 신비한 거룡 한마리가 장백산으로부터 동쪽으로 날아가는 도중에 수려한 두만강에 매혹되여 몸놀림을 멈추고 은빛으로 반짝이는 두만강을 넋없이 바라보다가 웅장하고 우미하며 상서로운 기운이 감도는 불교성지 일광산으로 변했다고 하는가하면 근대조선시대의 리성계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활을 쏘아 가파로운 절벽을 만들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그외에도 많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는 불손산, 사자봉, 범바위, 와불 등 모습은 너무나도 신비하고 우미하여 려행객들의 눈길을 모으고 있었다. 우리는 일광산 화엄사 중심선 건축물을 돌아보면서 하냥 즐거웠고 리평림거사가 정부와 종교부문의 대폭적인 지지하에서 가산을 팔아 파란곡절을 겪으면서 화엄사를 재건한데 감탄을 금할길 없었다. [저작권자(c) 동북아신문(www.dbanews.com), 무단복제-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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