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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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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그 정도의 대접 댓글:  조회:2247  추천:0  2015-07-08
   유명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쇼팽이 한번은 별로 친하지도 않은 어떤 집에 억지로 끌려가 저녁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음식도 변변치 않게 장만하고 쇼팽을 초청한 그 집 주인은 식사를 마치기가 무섭게 음악을 한곡 연주해달라고 청을 들었습니다.    쇼팽은 그들의 무례한 태도에 속으로 화를 삭이면서도 은근히 골탕 먹여줄 생각으로 피아노 앞에 앉았습니다. 그러고는 어느 곡의 맨 끝 한 구절만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습니다.     그 집 안주인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습니다.    “아니, 무슨 곡인데 그렇게 짧죠?”    그에 쇼팽이 자기 모자를 챙겨 들며 대답했습니다.    “미안합니다만, 전 오늘 이만큼밖에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139    펭귄(외2편) 댓글:  조회:2191  추천:0  2015-06-20
펭귄   남극 아닌 플랫폼에서,   조수(潮水) 아닌 인파(人波)를 마주하고 옹기종기 모여 서서   엄마는 누구일까, 아빠는 어디 있나?   갸웃거리는 저 펭귄들… 홍매(紅梅)  열 손끝 깨물어 방울방울 핏방울로   하얀 종이 위에 쓴 빠알간 혈서 눈(4)   바람에 홀려 우주까지 따라갔던 민들레아이들   놀다 지쳐 내려옵니다   엄마한테 야단맞을까 숨죽인 채 가만가만 내려옵니다
138    <단편소설> 엄마의 일기 댓글:  조회:1729  추천:1  2015-04-30
엄마의 일기 2008. 3. 2 일기라는 걸 써본지가 언제던가… 일기장을 펼쳐 놓으니 눈물부터 앞선다. 나이 일흔이 다 돼서 새삼 일기를 쓰려고 마음먹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언제부턴가 집안에 열쇠를 두고 출타하지 않으면 이것저것 깜빡깜빡 까먹기 일쑤고 오늘은 동대문에 갔다가 무엇을 사러 갔던지 생각나지 않아서 반나절 헤매고 다니다 양말 한 켤레 달랑 사들고 왔다. 치매가 올 조짐임에 틀림없다. 언젠가 TV에서 일기쓰기가 치매 예방에 도움 된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아서 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방 한구석에 덤덤히 쌓여 있는 자료들을 바라보노라니 눈물만 난다. 내가 벌써 치매라니?! 아직 할 일이 많은 몸인데……. X 연구를 시작한 지도 벌써 1년 하고도 10개월. 두 달이 모자라는 2년이다. 지난 1년 동안 나는 마침내 X의 기본체계와 규율을 파헤쳤고, 나아가서는 그 구체적인 룰과 내재된 비밀까지 대체적으로 파악했다. 드디어 실천에 옮길 때가 된 듯싶어서 도전장을 내밀었는데 첫 도전에 그만 오발했다. 계산은 옳게 했는데 Q를 잘못 써먹은 것이다. 두 번째 도전 역시 간발의 차이로 빗나갔다. 너무 안타깝고 맹랑해서 가슴을 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력을 들였는데… 나를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 보기가 부끄럽고 미안하다. 우선 묵묵히 말없는 응원을 보내주는 그이에게 죄송하다. 그리고 터무니없는 짓이라고 극구 반대하고 구박하는 애들 볼 면목이 없다. 아직 내 노력이 부족했단 말인가? 하느님께서 아직 내 정성, 내 간절한 소망에 동요되지 않으셨단 말인가?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힘껏 머리를 외친다. 아니다! 아직 무언가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한층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이제 이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다리가 부실해서 남들처럼 막벌이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파고들어야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하지 않았던가! 2008. 3. 6 오전에 병원에 다녀왔다. 얼마 전부터 눈앞이 뿌옇고 침침해지는가 싶더니 요즘 들어 안경 없이는 TV화면에 자막도 알아보기 힘들다. 안약이나 처방받을 요량으로 안과에 갔더니 백내장이란다. 그것도 증세가 심각해져서 하루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앞으로 1년을 못 가 완전 실명할 수도 있단다.   엎친 데 덮친다고 실명이라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그런다고 당장 수술해달라고 들이댈 수는 없는 일.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는 의사한테 눈물을 보이기 싫어서 그냥 잘 알겠다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왔다. 아직 할 일이 많은 눈인데… 온전히 해놓은 것도 없는데…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른 거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다지만, 억울하고 서글프다. 돌이켜 보면 나는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볼 사이도 없이 허둥지둥 앞만 바라고 뛰어왔다. 젊은 시절 욕심을 부려 그 어려운 시기, 임시공 신세에 아이 셋씩이나 낳아 키운 탓에 사람들 말밥에 오르내리며 별의별 고된 일을 다 했고, 그 미열로 얻은 지병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규직에 배치되고 남부럽지 않은 공정사 자격증도 따냈고, 밖에서는 남자들도 설설 기는 실력자로, 가정에서는 현처양모에 손색없이 성심껏 남편과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해주었다. 그렇게 젊어서 애들을 너무 호강시킨 탓인지 우리 애들은 다른 집 애들보다 늦됐다. 게다가 눈에 흙이 들어가도록 시름 놓지 못할 병신자식까지 있으니……. 사람들은 자식 인생은 자식 몫이고 불쌍한 건 불쌍한 거지만, 그런다고 자기 인생 전부를 자식한테 바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도 팔자 좋은 사람들이나 하는 소리지, 정작에 병신자식 하나 있고 보면 그런 말이 쉬나오지 못할 것이다. 사실 그이 병수발 때문에 일찍 퇴직했지만, 우리 두 사람의 퇴직금으로 노후를 보내기에는 아무 걱정이 없다. 큰애와 막내딸도 성가하여 저들끼리 잘 살고 있어서 큰 걱정이 없다. 병신 된 둘째가 걱정일 뿐이다. 절로 끙끙거리며 글도 쓴답시고 애쓰고 있고, 언제는 무슨 문학상까지 타 와서 우리를 놀라게 한 적도 있지만, 나이 40이 다 되도록 장가들지 못했으니 걱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남들은 자식 잘 둔 덕에 세계유람도 다니고 한다지만, 나로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한시도 지체 말고 돈을 벌어야 한다. 꼭 성공해야 한다! 둘째가 그렇게 어이없이 병신이 되지만 않았어도, 그이가 한창시절에 그렇게 쓰러지지만 않았어도 내 팔자는……. 속절없고 덧없는 인생이라더니……. 이제 내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다. 일흔이 다 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흔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의식하지 못하고 살았건만……. 그래, 다 팔자소관이다. 그런 자식 두게 된 것도 정해진 내 팔자이거늘 이제 남은 시간을 이 일에 올인하는 길밖에 없다. 오후부터 X를 처음부터 하나하나 다시 분석하고 파고들기 시작했다. 요행을 바라는 건 장대로 하늘 재기. 아직 내 노력이 부족한 거다. 하루속히 이것들을 정복해야지! 2008. 3. 16. 왜 자꾸 눈물이 나는 걸까? 사랑하는 남편과 병신자식까지 내버려둔 채 부득부득 우기고 왔는데 성공은 갈수록 묘연하기만 하다. 금방 손에 잡힐 것 같아서 손을 뻗으면 또 저만치 앞에서 손짓한다.   남들은 매일같이 돈만 잘 번다는데… 부실한 다리 때문에 남들처럼 일도 못하고 하루하루 적자만 늘어가고 있으니… 정녕 하느님은 이렇듯 매정하게 내 꿈, 내 간절한 소망을 외면할 속셈인가? 암만 생각해도 억울하고 하느님이라는 작자가 야속하기만 하다. 그이가 보내준 돈도 이제 거의 바닥났으니… 이젠 일거리를 찾아 경비를 충당해야겠다. 萬難을 물리치고 끝을 봐야 한다. 그냥 이대로는 돌아갈 수 없다! 2008. 3. 29 이제 다시는 울지 않겠다. 지금이 어디 눈물 쥐어짜며 신세타령이나 하고 있을 땐가! 아까 초저녁에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 당장 돌아오라!”고 호통이었다. 아무리 늦어도 봄이 오기 전엔 꼭 돌아가마고 약속했는데… 기다리다 못해 폭발한 거겠지? 무척 격앙된 목소리에 나는 할 말을 잃고 어물어물하다가 전화를 끊고 말았다. 나도 조급하긴 마찬가지다. 27만원짜리 월세 방에 들어 살면서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일을 못하는 한, 암만 아껴 쓴다 해도 월 40~50만원은 고스란히 까진다. 이제나 저제나, 이번엔 꼭! 하고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가도 그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면 허탈하고 원통해서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행여나, 이번에야 되겠지 하는 생각에 또 하회를 기대하게 되고……. 그이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보기만 해도 한숨이 절로 나가는 병신자식과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끼니, 빨래까지 도맡아 해야겠으니 오죽하겠는가……. 나라고 왜 하루빨리 내 남편, 내 새끼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서 발편잠 자고 싶지 않을까만, 시한부 생명이나 다름없는 몸으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이 일뿐, 모든 희망을 이 공정에 걸고 이날 이때까지 견뎌왔는데… 설령 운명의 조롱이라 하더라도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월요일부터는 식당일이라도 해서 경비를 마련해야겠다. 여태 부실한 다리 때문에 일할 엄두를 못 냈지만, 오늘 열심히 치료하면 곧 나을 거라던 의사의 말에 신심이 생겼다. 그리고 오늘은 그 동안 미처 생각지 못했던 X의 아주 중요한 룰을 찾아냈다. 여태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알 것 같다. 그렇다.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거늘 그 동안 들인 공력이 얼마인데… 이제 성공의 그 날이 곧 다가오리라! 그런데 왜 이러지? 못난 눈물이 어느새 안경알에 흥건히 고여 있다. 다시는 울지 않기로 했는데……. 여보, 조금만,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줘요. 지금까지 잘 참아오셨잖아요.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조금만… 사랑해요. 2008. 4. 1   월요일부터 일자리를 찾아 "벼룩시장"이며 가로수와 교차로 전선대들에 붙여놓은 구인광고들을 이 잡듯이 훑고 다녔다. 눈에 띄는 내용들에 빨간색 볼펜으로 체크를 해가며 일일이 전화를 해봤는데 대부분 연령제한이라는 조건을 내세워서 맹랑했다. 선택의 여지는 극히 적었다. 출근시간대와 식당별로 전화를 해서 두세 곳에 면접을 가보았는데, 처음으로 면접 보러 간 돈까스점은 전화에서 초보자도 가능하고 교포도 환영한다 해서 잔뜩 기대하고 찾아갔는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여사장이 "60세 이하라고 밝혔는데요!" 하고는 바쁘다며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나이를 속일 때도 이젠 지났구나 하고 씁쓸한 마음으로 동대문에 위치한 돈까스점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원래 130만 이상이라던 월급을 나에겐 120만원밖에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똑같이 일하고 그런 차별을 당할 수야 없지 싶어 그냥 나와 버렸다. 이튿날 다시 신촌현대백화점 맨 위층에 있는 돈까스점을 찾아갔는데 그곳에선 나이제한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신촌백화점 맨 위층은 "전주비빔밥집"이 대부분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목적하고 갔던 돈까스점을 찾다가 우연히 "전주비빔밥집" 본점의 구인전단지가 눈에 띄는 바람에 금세 생각이 바뀌어 "전주비빔밥집" 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러다 신호가 가는 순간,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전주비빔밥집"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전주 출신일 것이고, 우리 어머니가 전주 이 씨에 전주 출신이 아니던가?! 수화기 저편에서 사장이라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최대한 애교 어린 투로 말했다. "저어, 저는 전주 이 씨인데요. 교포이고 낯선 고국 땅에 와서 서먹서먹하던 차 이렇게 한 고향 분 목소리를 들으니 너무 기쁘고 반갑네요……." 수화기 저편에서 여사장이 잠깐 뜸 들이는 듯싶더니 지금 바로 면접을 오라는 것이었다. 옳거니! 하고 부랴부랴 그리로 달려갔다. 아주 친절하게 나와 이 말 저 말 주고받던 여사장은 오늘부터 이틀간 시험 삼아 일해본 다음 결정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시험 삼아 해보라는 말을 듣고 나니 망설여졌다. 아까 현대백화점 위층에 위치한 돈까스점이 여기보다 일도 더 쉬울 것 같았고 무엇보다 그 희미한 불빛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내 얼굴에 얼기설기 늘어앉은 주름살들이 희미한 조명 아래에서라면 너무 선명하게 나타나진 않을 테니까. 내가 쭈볏거리며 대답을 않자 여사장은 지금 한창 바쁜 시간이라 훗날 다시 연락하자며 자리를 떴다. 비빔밥집에서 나와 다시 신촌현대백화점에 위치한 돈까스점으로 갔는데 그곳 사장은 무척 바쁜 모양, 나와 몇 마디 간단히 주고받고 나서 훗날 다시 전화로 연락하마고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아까 "전주비빔밥집" 여사장이 시험 삼아 해보라고 할 때 제꺽 대답했을걸~ 하고 냉가슴만 앓았다. 오늘까지 이틀이 지나도록 기다리던 전화는 아무 데서도 걸려오지 않았다. 2008. 4. 3 어제 전단지들을 훑고 다니던 중 이태원에 위치한, 집에서 도보로 30분 거리 되는 곳에 위치한 김밥집에 가서 면접을 봤는데 사장님이 이튿날 바로 출근하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곳은 말이 김밥집이지 실상은 얼추 30~40가지나 되는 음식을 만들어 파는 짬뽕 가게였다. 그리고 나는 명색이 주방보조였지 실은 무엇이든 시키는 일은 다 해야 하는 잡역부였다. 그러다보니 간혹 손님이 없을 때에도 앉아 쉴 틈이 없었다. 내가 받기로 한 월급은 135만원, 그나마 주방장에 비하면 많은 편이었다. 그 집에서 4년째 일한다는 주방장의 월급이 겨우 150만원이었으니……. 주방장 역시 나와 같은 연길 출신의 교포였는데 요즘 그 정도 실력이라면 170~180만원은 충분히 받아야 할 것이다. 나는 비록 경력은 짧다지만 불고기집에서부터 한식집 등을 전전하면서 한국음식을 만드는 법에 익숙해서 주방보조 역할을 하기엔 손색이 없다. 그나저나 이젠 일거리가 있어서 한시름 놓인다. 지갑에 달랑 3만원 남짓 간들거리는데……. 2008. 4. 6 오늘 김밥집을 그만두었다. 12시간 내내 잠시도 앉아 쉴 틈 없이 일해야 했던 터, 내 부실한 다리로는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주방장도 계속 같이 일해주었으면 했지만, 나는 다리가 부실해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고 잘라 말하고 나흘 수당을 받고 나왔다. 그런데 좀 전에 김밥집 사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일당 6만씩 쳐주겠으니 사람을 찾을 때까지만 하루 이틀 더 해주면 안 되겠느냐는 것이다. 며칠 동안 같이 일한 것도 인연인데 싶어서 대답하고 말았다. 2008. 4. 11 김밥집을 그만두고 다리 때문에 이틀 쉬다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중, 그날은 운이 좋았던지 월 150만원을 받기로 하고 양대창집에서 일하게 됐다. 그 "양창구이집"은 금방 개점한 집이라서인지 손님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며칠째 파리만 날리던 여사장은 오늘 공연히 주방을 들락날락하더니 뜬금없이 나 보고 부대찌개를 끓이라고 했다. 앞서 면접할 때 불고기집에서 일해본 적은 있지만, 부대찌개는 할 줄 모른다고 분명히 말해두었는데 말이다. 생트집이었다. 하는 수 없이 어림짐작으로 쪽마늘을 갈아 넣고 잘 다져진 돼지고기를 한줌 정도 넣고 생강 등 양념과 고춧가루를 듬뿍 떠 넣고 부대찌개를 끓였다. 한참 끓인 뒤 맛을 봤더니 고춧가루가 많이 들어간 탓인지 국물이 좀 진했다. 여사장 보고 맛 좀 보라 해서 국물을 한술 떠 맛보던 여사장은 이런 걸 어찌 사람 먹으라고 내놓을 수 있느냐며 물 한 바가지 떠다가 찌개그릇에 확 부어넣었다. 부대찌개는 핑계고 나를 내보내기 위한 수작임에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여사장 보고 그럼 다른 사람을 물색해보라고, 새로 사람을 얻을 때까지 일해주마고 했다. 그 말에 여사장은 기다렸던 듯, 손님도 없고 한데 오늘부로 그만두라는 것이었다. 오늘은 금요일이다. 오늘 당장 그만두면 토, 일 이틀 동안은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사정조로 내일까지만 일하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여사장은 눈 한번 깜빡 않고 일단 3일치로 계산해준다며 지갑에서 15만원을 꺼내 주는 것이었다. 화가 울컥 치밀었지만 가까스로 내리누르고 차분하게 따졌다. "월급을 150만원으로 정했더라도 중도에 내보내면 미안해서라도 일당 6만은 쳐줘야 할 텐데 일당 5만원이라니 너무한 것 아닌가요?" 그러자 여사장이 하는 말이 부대찌개도 끓일 줄 모르는데, 설거지 일당 표준으로 쳐줘도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런 억지에 순순히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보세요, 요즘은 설거지도 일당이 6만이라구요! 어질다고, 교포라고 너무 우습게 보는 것 아닌가요?! " 여사장은 변명거리가 없었던 듯 다른 말은 못하고 빨리 가라는 말만 반복했다. 사실 3일 동안 일하면서 지내보니 직원들 밥상에 반찬 하나 변변히 내놓지 않는 한심한 짠순이였다. 직원들은 거의 김치쪼가리에 맨밥을 먹다시피 했고, 어제는 저녁도 못 먹은 채 11시가 넘도록 일을 했다. 나는 더 이상 시비를 따질 기력도 없고 하여 밥이나 먹고 가마고 걸상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여사장은 들은 척도 않고 휑하니 주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식사를 하고 있던 손님 한 분이 내 처지가 안 돼보였던지 닭다리 하나를 떼어 들고 와서 건네주며 요기하라고 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여사장은 저녁 6시가 되도록 얼굴도 내밀지 않다가 밥 먹을 때에도 나 보고 밥 먹으란 소리 한 마디 없었다. 부아가 치밀고 현기증까지 일어 더 이상 그 자리에서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따끔하게 쏘아붙이고 나와 버렸다. 그깟 3일치 수당 더 쳐줘봤자 2~3만원밖에 더 되겠냐고. 암만 어째두 엄마뻘 되는 사람인데 밥 한술 먹고 가라는 말도 못하냐고. 젊은 사람이 부모도 없이 막 자란 모양이라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설움이 북받치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온전히 걸을 수가 없었다. 길가 벤치에 주저앉아 실성한 사람처럼 한참을 목 놓아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니 속이 좀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오늘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내 몸, 내 나이에 식당일은 이제 무리라는 사실을……. 이제 다른 일거리를 찾아봐야겠다. 2008. 4. 14 오전에 간병인원 모집 광고를 보고 "대한간병사"에 등록을 했는데, 오후에 내일 일 나올 수 있겠느냐는 전화가 걸려왔다. 대뜸 갈 수 있다고 대답해놓고 나니 안도의 숨이 활 나갔다.   요즘은 안경을 쓰고도 글이 잘 보이지 않아서 며칠째 작업을 하며말며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몸으로 환자를 잘 돌볼 수 있을는지… 그나저나 월세 낼 날이 당금인데 일자리가 생겼으니 천만다행이다. 오늘은 일찍 자둬야겠다. 2008. 4. 16 어제, 오늘 간병 일을 하고 왔다.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힘들진 않았다. 반신불수로 운신이 불편한 82세 할머니를 간호하게 되었는데 아침, 저녁으로 목욕을 시켜드리고 휠체어에 태워 아파트단지 공원에서 해바라기 좀 하고 들어와 빨래를 하고 식사를 거들면 되는 일이었다. 아들, 며느리도 서글서글한 사람들이어서 크게 긴장할 일이 없었다. 할머니를 시중하는 내내 의료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어버린 둘째가 자꾸 떠올라서 눈물이 찔끔거렸다. 그래서 더 지극정성으로 시중을 드는데, 영문을 모르는 할머니가 애잔한 눈빛으로 유심히 나를 살핀다. 남편과 둘째는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는 거겠지? 이제 전화통화한 지도 한참 되었는데… 내일 즈음 전화나 해봐야지. 2008. 5. 17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평화롭다. 입원한지 꼭 한 달째, 내일모레면 퇴원이다. 한쪽으로 돌아갔던 입도 거의 돌아왔고 이젠 부축해서 바깥출입도 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주치의 말로는 조금만 늦었어도 생명이 위태로웠을 것이란다. 아버지가 뇌졸증으로 쓰러지셨다는 둘째의 전화를 받고 안주인을 찾아 눈물을 펑펑 쏟으며 사정을 얘기했더니 참 안 됐다며 약값에 보태 쓰라고 10만원짜리 수표 두 장을 쥐어주었다. 그리고 대한항공 매표소에서 일한다는 딸에게 전화를 넣어 항공권까지 예약해주는 것이었다. 고맙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지만 변변한 인사도 못한 채 허겁지겁 귀국길에 올랐다. 돈이 무엇인지, 욕심이라는 게 무엇인지… 조금만 일찍 돌아왔던들… 앞서 전화 왔을 때라도 못이기는 척 돌아왔던들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후회막심이었다. 2008. 5. 18 아까 오후 편에 둘째가 다녀갔다. 너무 온천하고 예쁘장한 아가씨를 데리고 와서는 결혼할 여자라며 소개시켰다. 신수 멀쩡한 아가씨가 왜 하필? 하면서도 은근히 응원하고 싶었다. 하지만 전에도 이런 일이 몇 번 있었고 번마다 헛물만 켜고는 냉가슴 앓던 둘째가 안쓰러웠던 터, 우리는 그저 아가씨가 서운해하지 않을 만큼 적당히 응수해 보냈다. 그런데 둘째가 나가다 말고 다시 들어와서 내게 귓속말로 “어머니, 임신 6주째래요. 손자 봐줄 준비나 하쇼.” 하고는 눈을 찡긋해 보였다.   둘째가 다녀간 뒤 우리 양주는 적이 들떠 있었다. 이번만큼은 정말 잘됐으면 좋겠는데……. 2008년 5월 19일 또 눈물이다. 하지만 오늘은 이왕과는 달리 기쁨의 눈물이다. 오늘 오전 그이가 퇴원했다. 주치의가 장기 복용할 약 처방을 떼어주면서 회복은 빠르겠지만 이제 재발하면 곤란할 것이니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며 주의를 주었다. 저녁 편에 둘째가 그 아가씨를 집에 데리고 와서 모처럼 화기애애하게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했다. 남편은 밥 몇 술 뜨다 말고 입덧 때문에 조심스러운 모양, 야채만 야금야금 집어 먹는 아가씨를 자꾸 보고 또 본다. “그만 봐요. 민망해서 먹을 것도 못 먹겠어요.” 내가 핀잔을 줘서야 그이는 겸연쩍게 웃으며 수저를 드는데 둘째가 시무룩이 웃으며 허두를 뗐다. “저, 어제 정식 장인, 장모님 허락을 받고 왔습니다. 올 여름에 결혼식 올리겠다고.” “아니, 얘가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결혼식이라니?!” “왜, 며느릿감이 맘에 안 드십니까? 그럼 뭐, 물릴밖에…” 둘째가 씨물씨물 웃으며 엉너리를 친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할 말을 잃고 그이를 돌아보니 그이는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할 뿐, 아직 상황파악을 못하신 모양이다. “아버지, 어머니도 이견이 없으신 거죠? 그럼 어머닌 이제 다시 한국 갈 생각일랑 마시고 슬슬 결혼식 준비나 서둘러주쇼. 드디어 이 애물단지를 내쫓게 되었는데.” “아니, 그게 정말이오? 부모님 모두 동의하셨단 말이지?!” 내가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아가씨를 빤히 마주보며 묻자 아가씨는, 아니, 며느릿감은 “예.” 하고 곱게 대답하고는 다소곳이 머리를 숙인다. 정말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당신도 들었죠? 철이가 결혼한대요, 이 아가씨랑. 철이가 장가간대요. 지금 이게 꿈이 아니죠?” 내 말을 여겨듣고 한참만에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 듯, 그이는 물끄러미 나를 마주보더니 이윽고 아이들 쪽을 건너다보며 입귀를 실룩이고 있었다. 두 눈 그득 고인 눈물이 주르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렇게 강하시던 이가, 위암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약한 모습 한 번 보인 적이 없었던 그이가 이번에 앓고 나서부터는 걸핏하면 눈물을 보이곤 한다……. 그래. 네가 가정을 이루고 제구실하고 잘만 산다면 더 이상 무얼 바라겠냐만, 아무래도 너무 짝이 기우는 것 같아서 걱정이구나.   아까 설거지를 할 때도 눈여겨보니 어려운 집안에서 고생하며 자란 탓인지 손발이 잽싸고 눈치도 빨라서 살림은 착실하게 잘할 것 같더라만, 어린 나이에 빈주먹으로 사회에 나와서 식당일부터 시작하여 재봉사, 보따리장사를 두루 거쳐 자그마한 옷가게를 운영하기에 이르렀다는 그 아이와 과연 기죽지 않고 잘 받들고 살 수 있을는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둘째가 기죽지 않고 살게 하려면 다른 건 몰라도 집 한 채 정도는 마련해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형편에서 집 한 채가 다 무언가? 그이 때문에 이제 다시 한국에 나갈 수도 없는 일이고……. 그래, 그거다! 그 동안 정신없이 돌아치느라 방치해두었던 X 연구를 계속하는 거다! 요즘은 인터넷이 사통팔달해서 컴퓨터만 있으면 집에서도 그때그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인 즉! 그러려면 컴퓨터도 배워야겠고… 내일은 안과부터 가봐야겠다. - 에필로그 어느 날, 책장을 뒤적이다가 책장 깊숙이 숨어있는 목책 한 권이 눈에 띄어 별 생각 없이 펼쳐 들었다. 어머니의 일기장이었다. 호기심에 한 장, 두 장 펼쳐보기 시작했는데 몇 장을 읽는 사이 나는 어느덧 눈물범벅이 되어 있었고, 30페이지 정도 분량의 일기를 눈물로 다 읽었다. 어머니 생전에 내가 조금이나마 효도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머니의 이 일기 내용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이 글을 쓴다. 어머니는 건축공정사로 퇴직하셨다. 처녀시절, 청운의 꿈을 안고 북조선으로 건너가 평양영화대학 연극학과를 다니시던 어머니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거면 관계를 정리하자는 아버지의 엄포에 부득불 돌아오셨는데, 북조선에 있다 돌아와서 호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십여 년을 임시공으로 일해야 했다. 중한수교 초기, 화가이신 아버지를 따라 처음 한국나들이를 간 어머니는 그곳 모모한 사회 각계 인사들의 접견도 받고, 대접깨나 받으셨다. 그러다 아버지가 갑자기 위암으로 쓰러지셨는데 조기치료와 어머니의 지극정성 덕분에 기적같이 20년 넘게 무탈하시다가 이태 전에 우리 곁을 떠나셨다. 반신불수의 몸으로 변변한 직업 하나 찾을 수 없었던 나는 한때 장사를 한답시고 납돌다가 家産을 거의 탕진했고, 아버지 병구완 때문에 앞당겨 퇴직하셨던 어머니는 보따리장사며 옷가게를 전전하시다가 종당에는 한국에 품팔이를 나가시기에 이르렀다. 명망 높은 화가의 아내로서, 한때는 그곳 상류층 사회에서 존귀한 사부인 대접을 받으셨던 어머니가 한낱 파출부로 전락해 돈 몇 푼 때문에 식당 업주들로부터 갖은 업심과 수모를 당하셨을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 저변底邊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민다. 병신자식 하나 둔 게 당신의 죄가 되어 그 같은 수모를 감수甘受하면서 평생을 고스란히 자식한테 바치신 어머니……. 요즘 들어 어머니의 치매 증세는 날로 가중해지고 있다. 얼마 전엔 바람도 쏘일 겸 막내이모네 집에 간다고 나가신 어머니가 행방불명이 되어 친척, 친구들과 파출소까지 동원해 시내를 발칵 뒤집어서 겨우 찾아 모셔오는 사건도 발생했다.   이쯤에서 수년 간 지속된 어머니의 그 꿈, 그 신비한 - X 연구공정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한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도 생전에 말리다 못해 두손 들고 항복하셨고, 우리 삼남매의 간곡한 만류와 구박에도 요지부동이던 그 연구과제는 다름 아닌 로또 당첨의 미스터리를 푸는 일, 건축공정사의 치밀한 계산법으로 로또 당첨번호를 알아맞히는 공정이었다. 그야말로 허황하고 눈물과 모성애로 얼룩진 아름다운 도전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치매 증세가 완연한 요즘에도 어머니가 하루 세끼 식사보다 더 꼼꼼히 챙기시는 일이 바로 X 연구작업이다. 철없던 시절, 병신 된 내 신세를 한탄하며 부모님을 원망할라치면 눈물을 훔치며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휴, 글쎄… 될 수만 있다면 내 몸뚱이를 통째로 다 바꿔줘도 좋지 않겠니…….” 현대의학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될 수만 있다면 충분히 그러시고도 남을 어머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머니 평생에 자기 자신을 위해 하신 일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무슨 일이든 그것은 오직 우리 가족, 이 病身자식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 세상 모든 어머니들께, 그리고 세상 모든 불효자들에게 삼가 이 글을 바친다. 2014. 1월
137    고개를 숙이면 댓글:  조회:2167  추천:0  2015-03-09
 열아홉의 어린 나이에 장원 급제를 하여 스무 살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된 맹사성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무명선사를 찾아가 물었습니다. "스님이 생각하시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오?" 그러자 무명선사가 대답했습니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런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찾아온 내게 해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란 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습니다. 그러자 무명선사가 좋은 차가 있으니, 차나 한잔 하고 가라며 붙잡았습니다. 맹사성은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이윽고 차를 내온 선사는 찻물이 넘쳐나도록 그의 찻잔에 자꾸만 차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에 질펀합니다." 맹사성이 몸을 펄쩍 일으키며 소리쳤지만 무명선사는 태연하게 계속 차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낯색 한번 변치 않고 잔뜩 화가 나 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 선사의 이 한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귓볼이 붉어졌고,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에 황급히 일어나 방 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 상방에 머리를 세게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무명선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허허허…"
136    합법적인 거짓말 댓글:  조회:2205  추천:0  2015-02-12
 하루는 몸집이 뚱뚱한 경찰이 유태인 식당을 찾아와서 공연한 트집을 잡았습니다. "유태인들 모두 머리가 좋다고 하던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지 알고 싶군 그려.” 식당 주인은 대꾸조차 하기 싫었지만 적당히 둘러댔습니다. “예, 우리 유태인은 날마다 잉어를 먹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난히 총명한 거랍니다.” 그 말을 딱 곧이들은 경찰은 매일 유태인 식당에 와서 잉어 요리를 시켜 먹었는데, 꼬박 다섯 달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이 아주 험상궂은 표정으로 식당 주인을 찾아 따졌습니다. “이 사기꾼 같으니! 여기 메뉴판에는 분명 500그램당 50센트라고 적혀 있건만, 그 동안 나한테는 꼬박꼬박 1달러씩 받아먹었군. 나를 바보 취급하는 거야?!” 그러자 식당 주인이 씩 웃으며 넉살좋게 대꾸했습니다. “그것 보세요. 잉어를 많이 드시더니 정말 효과가 있지 않습니까?”
135    장수 비결 댓글:  조회:2078  추천:0  2015-02-06
 뮬라 나스루딘이 백 살이 되었습니다. 신문기자들이  그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몰려왔습니다. 그가 그 도시에서는 처음으로 탄생 백 주년을 맞은 시민으로 알려졌던 것입니다.  기자들은 그에게 장수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고, 여자에게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것이 장수의 비결입니다."   그때 옆방에서 무언가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와 여자의 새된 비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신문기자들이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뮬라가 대답했습니다.   "우리 아버지일 겁니다. 아버지가 또 술에 취해서 하녀의 뒤를 쫓아다니고 있는 모양입니다."  *****************************************   뮬라의 아버지는 틀림없이 120세는 넘었을 것이다.  뮬라는 라고 장수의 비결을 말했다. 그러나 그때,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뛰어 다니며, 술에 취해 여자를 붙잡으려 하고 있었다.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성을 탐닉할 수도 있고 독신을 즐길 수도 있지만, 그것은 결코 아무런 차이도 초래하지 않는다.
134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줄 댓글:  조회:2160  추천:0  2015-02-03
   소년 시킴이 어머니와 함께 아랍 국가 시리아를 여행하고 있 었다.    두 모자가 어느 강가에 도착했을 때였다. 목동 하나가 수백 마 리의 양떼를 몰고 나타났다. 아마도 목동은 그 많은 양떼를 몰고 강을 건너려는 것 같았다.    물을 싫어하는 양들을 몰고 강을 건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한 일이었기에, 시킴이 이를 이상히 여겨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저 목동은 많은 양떼를 몰고 어떻게 강을 건너려는 거죠?"    "글쎄다. 하지만 얘야, 저 목동의 얼굴은 너무나도 태평하지 않니?"    시킴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고는 호기심을 참다못해 목동 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니, 이 많은 양떼를 몰고 어떻게 강을 건너려고 합니까?"    그러자 목동이 호탕하게 웃어 젖혔다.     "하하하! 그야 세상의 이치만 알면 간단한 일이지!"    시킴은 더욱 히해할 수 없었다.    강가에선 양떼들이 "매애, 매애" 하며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강물을 본 새끼 양들 역시 놀란 눈으로 어미 옆에 바싹 붙어있 었다.     바로 그때였다. 목동은 겁먹은 눈으로 서있는 양떼들 가운데 서 귀여운 새끼 양 한마리를 번쩍 들어 올리더니 어깨에 둘러메는 것이었다.     "아니, 대체 어쩌려고?!"     "곧 알게 될 테니 두고 보자꾸나."     어머니는 그제야 목동이 양떼를 거느리고 강물을 건너는 방법 을 알았다는 듯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새끼 양을 둘러멘 목동은 성큼성큼 강 한가운데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강폭은 넓었지만 물은 그다지 깊지 않았다. 순간 새끼 를 빼앗긴 어미 양이 몇 번인가 "매애, 매애" 울더니 강물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가 되어 수백 마리의 양들이 일제히 물 속으로 뛰어들어 강물을 건너는 것이었다.     ********************     그 목동은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튼튼한 줄이 무엇인지를 알 고 있었던 것이다.
133    맨손치기 댓글:  조회:2316  추천:0  2015-01-17
 미국의 한 시골마을에 혼기가 다 찬 외동아들을 둔 노인이 있었는데, 어느 날 낯선 사내가 불쑥 찾아와 말했습니다. “영감님, 아드님이 참 영특하고 잘 생겼군요. 아드님을 도시로 데려가서 크게 출세시킬까 합니다만.” 노인은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냐며 버럭 화를 냈습니다.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가보시게나!” “제가 좋은 며느릿감을 찾아드린다 해도 싫으십니까?” “안 돼! 대체 뭘 믿고?! 어림없는 소리!” “그 며느릿감이 록펠러의 딸이라 해도 마다하시겠습니까?” “엥? 뭐라? 아..,니, 석유왕 록펠러 말인가?” “네, 맞습니다. 석유왕 록펠러의 딸 말씀입니다.” 록펠러의 딸을 자기 집 며느리로 들일 수 있다는 말에 노인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 노인의 동의를 얻은 후, 그 사내는 다시 록펠러를 찾아갔습니다. “제가 회장님 따님한테 잘 어울리는 신랑감을 물색해왔습니다만…” 록펠러가 시답잖은 투로 남자를 올리보고 내리 훑고 하더니 딱 잘라 말했습니다. “허튼 수작 집어치우고 나가게!” “그 신랑감이, 회장님 사위가 될 사람이 세계은행의 부총재라고 해도 마다하시겠습니까?” “뭐라? 아니, 자네 그게 참말인가?!” 그렇게 결국 록펠러도 동의했습니다. …… 며칠 후, 그 남자는 다시 세계은행 총재를 찾아갔습니다. “총재님, 지금 당장 부총재 한명을 새로 임명하셔야겠습니다.” 총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습니다. “그럴 일은 없소. 지금도 부총재가 남아도는 형편인데, 무엇 때문에 한명을 더 늘린다는 거요? 그것도 지금 당장이라니?!” 남자가 총재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그 부총재 후보가 록펠러의 사위 되는 사람이라 해도 마다하실 겁니까?” “엉? 무어?! 아니, 그게 정말인가?!!!”
132    마늘과 파 댓글:  조회:2367  추천:0  2015-01-14
    옛날 중국의 한 상인이 마늘 두 자루를 가지고 사막을 지나 아랍에미리트로 갔습니다.   난생 처음 마늘을 접한 아랍에미리트 주민들은 맵고 자극적인 그 맛에 홀딱 반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 신비한 물건을 전해준 상인을 후하게 대접했고, 몇몇 추장들의 논의 끝에 그가 돌아갈 때에는 황금 두 자루를 선물로 주어 보냈습니다.       얼마 후, 이 소식을 전해들은 다른 한 상인이 아주 기발한 발상을 했습니다.    “마늘을 그 정도로 좋아한다면 아마 파도 엄청 좋아할 거야! 그래! 그거다!!”    상인은 그 즉시 나귀 등에 파를 잔뜩 싣고 사막을 지나 아랍에미리트로 갔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난생처음  파를 보는 아랍에미리트 사람들은 파를 마늘보다도 맛있고 귀한 물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상인을 전에 마늘을 가져온 상인보다 훨씬 더 환대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몇몇 추장들의  오랜 논의 결과, 그 고마운 마음을 황금으로는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되어 그 상인에게 마늘 두 자루를 선물하기로 했습니다.    ****************    기동성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남의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며 흉내만 내다가는 고작 “마늘”이나 차례질 뿐입니다.  
131    고열치 반응 댓글:  조회:2026  추천:0  2015-01-05
 고열치는 어느 서방국가의 대통령이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대통령이 부인을 동반하고 어느 양계장을 참관하게 되었는데 영부인이 양계장 주인 보고 물었습니다.  “수탉은 얼마만에 한 번씩 암탉에게 남자의 직책을 수행하는 거죠?”   “에, 시시각각 직책을 다 합죠.아마 하루에 열 번 정도는 할 것입니다만...”   그에 영부인이 냉랭하게 말했습니다.   “그 말 그대로 각하한테 전해주세요.”    한편 양계장 주인으로부터 그 말을 전해들은 대통령이 양계장 주인 보고 물었습니다.    “그럼 번마다 한 암탉에게만 직책을 다 하는 겁니까?”    “물론 아니죠, 번마다 상대를 바꿔가면서 하죠.”   그에 대통령이 씩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 말 그대로 영부인한테 전하시오.”   *******************************************   훗날 심리학에서는 수컷이 새로운 이성을 보면 마음이 변하는 현상을 “고열치 반응”이라 이름하였습니다. 이 반응은 모든 포유동물들한테서 다 증실 되었는데, 고급동물이라 하는 인간도 불가피하게 이 반응의 흔적이 아직 잔존해있다 합니다.
130    가로등(동시) 댓글:  조회:2441  추천:0  2015-01-01
 가로등   어둑어둑 땅거미 기어내려오더니   발 닿는 곳마다 빨갛게 노랗게 하얗게...   아롱다롱 밤꽃을 피워놓네요.
129    수탉(동시) 댓글:  조회:2365  추천:0  2015-01-01
 수탉   어뜩새벽, 홰에 오른 수탉이   꼭! 깨워~   빨간 아침 한 알 토해냅니다.
128    초보남편과 아내들에게(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1763  추천:0  2014-12-09
  끔찍이 사랑하던 한쌍의 남녀가 마침내 결혼했습니다.   결혼 전에 이들 커플은 주로 남자가 이야기하고 여자가 듣는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더니 아내가 이야기하고 남편이 듣는 역할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결혼 3년이 지나자 남편과 아내 둘 다 소리를 질러대어 이웃이 듣는 역할이 되었습니다.   결혼 5년째 되던 어느 날, 참다 못한 여인이 수피를 찾아갔습니다. 더 이상 남편과 살 수 없다며 이혼을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녀가 벌써 셋이라, 헤어지면 아이들을 똑같이 나눌 수 없어서 난감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수피가 말했습니다.   “조금 더 살다가 아이가 하나 더 생기면 그때 다시 이혼을 생각해보면 어떻겠소?”   1년 반이 지난 어느 날, 수피는 길에서 그 여인을 만났습니다.    “부인, 아이를 낳으셨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이혼을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부인이 쭈볏거리더니 말했습니다,    “아니요, 아이를 낳기는 했는데 그만 쌍둥이를 낳았네요.”    요즈음 젊은이들을 보면 사랑하는 상대에게 “넌 내꺼야.” “내 안에 너 있어.” 등의 닭살 돋는 사랑의 표현을 스스럼없이 던집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예 내 소유로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소유도 오래도록 지속된다면 별문제 없겠지만 세상 일이란 그렇게 자기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만은 아닌가 봅니다.    솔직히 제 주위의 친구들을 보면 결혼해서 애 낳고 깨가 쏟아지게 잘 사는 친구들보다는 몇참 못 가서 이혼하고 뿔뿔이 흩어져 사는 친구들이 더 많은 실정입니다.    "첫사랑 삼년은 개도 산다"는 속담이 생각납니다.    따지고 보면 이제 겨우 결혼 3년 차에 접어든 저로서는 "사돈 남 말할" 처지가 못되지만, 그리고 그 동안 저 역시 적지 않은 파국의 위기를 어렵사리 넘긴 초보 경력자에 불과하지만, 오늘은 주제 넘게 저의 미흡한 경험을 바탕으로 많은 신혼커플들과 결혼을 준비 중인 커플들을 위해 충언 몇마디 하려고 합니다.    먼저 신랑들에게 부탁합니다. 절대 아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지기 쉽습니다. 왜냐고요? 지금 당신의 경력 내지 실력으로는 절대로 아내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해하려는 노력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좋습니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오히려 오해만 커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어떡하냐고요? 답은 있습니다. 사랑입니다. 아내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대신 무조건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아무리 난해한 아내더라도 이해가 됩니다.    언젠가 아내를 도무지 알 수 없다 싶으면 그저 덮어놓고 아내를 끔찍이 사랑해주십시오. 그러면 자연 아내가 이해됩니다.    “여자의 질투심은 하나의 원인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 원인은 오직 하나. 사랑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여자들은 바로 불안해지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사랑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질투, 의심하게 하지 말고 깊이 사랑하십시오.    ………    다음, 아내 한 사람만 사랑하십시오. 외간여자에게 눈을 돌리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유대 격언에 “한 남자에 대한 평판은 두 볼 사이와 두 다리 사이에서 결정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두 집 건너 결손가족인 우리 실정을 감안한다면, 이것을 지키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력하십시오. 아내 한 사람만 사랑하도록… ……    그리고 술은 마시되 정신줄 놓을 정도로는 마시진 마십시오. 부득이한 상황에서 혹여 정신줄을 놓더라도 집에 들어서면 입 뻥긋 말고 이불 속으로 직행하십시오.    “악마가 너무 바쁠 때는 술을 대리인으로 보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술이 들어가면 비밀이 밖으로 밀려나간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것도 오늘날 우리 실생활에서 지켜지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꼭 지키도록 노력하십시오. 과음하진 맙시다. 이 세 가지만 잘 지키면 훌륭한 남편, 훌륭한 아버지, 든든한 가장이 될 수 있습니다. …………    다음, 아내들에게 부탁합니다. 무엇보다 남편의 기를 세워주십시오. 남편은 아내의 존경을 먹고 사는 동물입니다. 아내에게 무시당한다는 것은 남편에게 치명적인 일입니다.    남편을 죽이고 싶다면 남편을 팍팍 무시해버리면 됩니다. 그러나 남편이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남편의 기를 팍팍 세워주십시오. 남자들은 밖에 나가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힘듭니다. 왜 남자가 밖에서 허리를 굽힙니까? 왜 남자가 이를 사려물고 참습니까? 아내를 위해서이고, 자식을 위해서입니다.    집에 오면 허리 좀 펴게 해주십시오. 기를 팍팍 세워주십시오. 온 세상이 남편을 무시하더라도 아내가 존경해주면 남편은 일어섭니다. 반대로 온 세상이 다 인정하는 남편이더라도 아내가 무시하면 그 남편은 바로 아내 곁을 떠나 밖에서 헤매게 됩니다.  .“친구를 고를 때에는 한 계단 올라서고, 아내를 고를 때에는 한 계단 내려서라.”는 말이 있습니다. 왜일까요? 자기를 무시하는 아내와 사는 것이 그렇게 힘들기 때문입니다.    요즘 보면 석사, 박사, 교수, 그리고 보스 아내도 수두룩합니다. 공부도 많이 하고 아주 유능한 아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밖에서 잘나가는 여자더라도 집에 와선 남편보다 한 계단  내려 서십시오. 자신이 선택한 남자를 존경해주라는 얘깁니다. 아내의 존경도 받지 못하는 남자가 밖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해내겠습니까?    그리고, 따뜻한 아내가 되어주십시오. “남자의 집은 아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차가운 아내와 사는 남자는 평생 추운 집에 사는 것과 같습니다. 밤새 집에서 너털다 나온 남자가 무슨 일을 제대로 하겠습니까? 따뜻한 밥에 뜨거운 찌개를 끓여주십시오. 절대 아침 굶긴 채 출근시키지 마십시오. 남자는 아이와 같습니다. 따뜻하게 품어주고 따뜻하게 말해주고 따뜻한 밥 해주면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른답니다.    ………    이상 남편들에게 부탁한 세가지, 아내들에게 부탁한 두가지, 이것만 잘 지킨다면, 신랑과 신부가 화성에서 왔건 금성에서 왔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알콩달콩 잘 살게 될 것입니다.
127    8자소관이란... 댓글:  조회:2278  추천:0  2014-12-07
  옛날 한 임금이 있었는데, 어느 하루 잠결에 침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두  내관이 소근거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중 한 내관이 말했다.   "내가 오늘날 이렇게 호의호식 근심걱정 없이 살고 있는 것은 모두 전하의 은혜 덕분이라 생각해."   그러자 다른 내관이 말을 받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결국 다 각자 타고난 팔자에 따른 것이여."   이 말을 들은 임금은 왕의 은혜 덕분으로 산다는 내관에게 상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왕후에게 사람을 보내 알렸다.   "내일 내관 한 사람을 보낼 테니, 그가 오면 금은보화와 좋은 옷을 주어 포상하도록 하시오."   이튿날 임금은 그 내관을 불러들여 함께 술을 마시다가 반쯤 남은 술잔을 건네며 왕후에게 갖다주라고 시켰다.    그런데 임금의 명을 받들고 왕후가 있는 곳으로 가던 내관은 갑자기 코피가 흘러 멈추지 않았다. 그때 마침 타고 난 팔자대로 산다고 말했던 그 내관이 지나가기에 자기 대신 그 술잔을 왕후에게 갖다 주라고 부탁했다.   한편 왕후는 한 내관이 술잔을 갖고 오자, 전날 왕의 전갈이 있었던지라 그 내관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아무 연고 없이 상을 받은 내관은 왕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다.   그 말을 들은 임금이 깜짝 놀라며 원래 술잔을 맡겼던 내관을 불러 물었다.   "어찌된 일인가? 내가 그대를 왕후에게 가보라고 했거늘 왜 그대는 가지 않고 딴 사람을 보냈는가?"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분수에 넘치게 전하께옵서 따라주는 약주를 받아 마신 탓인지, 도중에 코피가 흘러 멈추지 않았습니다. 왕후께서 제 그런 꼴을 보면 놀라시기라도 할까 봐, 그래서 다른 내관에게 대신 술잔을 왕후에게 갖다 드리라고 부탁했습니다."   전후 사연을 알게 된 임금은 비로소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법이라더니... 역시 옛말 그른 데 없구나! 타고 난 8자라는 건 역시 뜯어 고칠 수 없는 법이거늘."
126    배려, 혼인&사회(견이의 횡설수설) 댓글:  조회:1558  추천:0  2014-12-04
    한 젊은 여자가 남편과 이혼하려고 결심했습니다. 철두철미하게 깨끗이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혼 사유는 지극히 간단했습니다.    “그 사람과 결혼한 지 5년째 되는데 밥을 먹고나면 꼭 내가 설거지를 해야 한단 말이에요. 내가 어디가 모자라서 왜 나만 그냥 설거지를 해야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니까요!”   그렇게 이튿날 그들 부부는 이혼수속을 하러 법원으로 향했습니다. 도중에 도랑물을 건너게 되었는데 여자가 건너뛰지 못하는 것을 본 남자가 말했습니다.    "잠시만, 내 저기 저 바윗돌을 들어다 놓을 테니 그걸 딛고 건너도록 해.”    그렇게 남자가 안간힘을 다해 비틀비틀 바윗돌을 들어다 놓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여자가 이윽고 왈칵 눈물을 쏟으며 남자 품에 안기며 앞으로 군소리 없이 설거지를 할 테니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더랍니다.       ***************    대부분 여자들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기준도, 그리고 결별을 결심하게 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항상 세절적이고 사소한 일들 때문이지, 결코 재물이나 권세 따위를 중요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스카프 한 장, 꽃 한 송이, 혹은 “사랑한다” 는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그네들로 하여금 가슴 활랑이게 하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들은 흠잡는 데 있어서 전문가이며 천성적으로 항상 남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면밀히 살펴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남자의 사소한 행위에서 자신이 그 사람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분량을 가늠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천성은 결혼을 했다거나 애가 딸린 아줌마가 되었다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의 모든 여인들이 꽃과 옷을 사랑하는 것처럼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몸에 배어 있는 것입니다.    여자들로부터 "연애고수"라 추앙 받는 한 남자가 여자들한테 제일 잘 써먹는 말은 “당신은 금방 빨아 넌 손수건 같단 말이야!”라는 지극히 상투적인 표현이라고 합니다. 그 말의 진정한 함의는 확실치 않지만 그 말을 듣게 되면 대부분 여인들은 자기의 우점부터 떠올리게 될 것이고, 그러면 그 우점은 자연 “금방 빨아 넌 손수건”처럼 좋아 보이게 될 것입니다. 금방 빨아 넌 손수건이 어떤 모양인지를 모르는 여자더라도 말입니다. 이상한 것은 거의 모든 여성들이 그 말을 그렇게 시적이고 감동적이라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어느 지명잡지에서 유럽의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을 상대로 혼인설문조사를 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의 배우자를 결정하게 된 동기 1위가 배려하는 마음이었다고 합니다.     혼인뿐만 아니라 전반 사회가 배려하고 배려 받는 세상이라면 무시하고 무시당하는 사회풍조, 그리고  "이혼시대"라 불릴 만큼 이혼률이 고조하지도 않겠지만 현실은 참으로 냉혹합니다.    처지가 어려운 친구로부터 한동안 전화가 없으면 안부도 묻지 않다가 자신의 처지가 어려울 때, 잘나가는 친구의 연락이 없으면 무시당하는 느낌이 듭니다. 자존심 상한 마음에 이쪽에서 연락하지 않으면 자칫 절교로까지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사소하지만 서로 배려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화가 떠오릅니다.    중국 방문팀 일행이 유럽을 순회방문하던 중, 영국 버킹검궁 오찬에 초대 받았습니다. 과일을 먹기 전에 손가락을 담그는 핑거볼이란 그릇에 물이 담겨 나왔는데, 영국 식사 예절을 모르는 방문팀 중 일원이 그 물을 마셔버렸습니다. 그 광경을 본 엘리자베스 여왕은 그가 무안해할까봐 자신 앞에 놓인 핑거볼을 들어 그 물을 마셔버렸다고 합니다.     배려는 이렇게 사소한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이같은 배려는 공부와는 달라서 단기간 학습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장기간 습관화하는 과정에 몸에 배어야 비로소 완숙해지는 것입니다.    거창한 배려가 없듯이, 혼인생활에서, 또는 대인관계에서 사소한 무시 또한 없어야 할 것입니다. 조금 더 있다고, 직위가 조금 더 높다고, 조금 더 잘났다고, 조금 더 배웠다고 무시하다가는 조만간 그로 인해 당하게 될 것입니다. "배려와 무시는 양날의 칼과 같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음미해봅니다.    오늘 그 동안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등한시했던 집사람에게 넌지시 "여보, 수고 많군. 사랑해~" 하고 말해줬더니 저녁 밥상메뉴부터 확 바뀌었습니다.  
125    섬김 댓글:  조회:2063  추천:0  2014-07-04
   옛날 중국 하남성에 단하라는 선사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해 겨울 여행을 하던 중 혜림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루종일 눈을 맞으며  걸었기 때문에 매우 지쳐 있었고, 옷차림도 오랜 여행으로 인해 남루했습니다.    그런데 그 절 주지스님이 단하 선사에게 반찬도 없이 찬밥 한덩어리를 차려주고는, 그 추운 겨울인데도 꽁꽁 언 방으로 안내하고는 휭하니 돌아져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방에 들어가 방 안을 둘러보니 한쪽 구석에 나무를 깎아 만든 목불이 진열되어 있는 게 눈에 띄었습니다.     절에서 목불을 만들어 내다 파는 모양이었는데 단하 선사는 코가 얼 정도로 추운 방에 앉아 한참을 생각하다가 도끼를 들고 부엌으로 나가 진열되어 있던 목불을 모조리 쪼개 불을 땠습니다.     단하 선사가 따뜻하게 잠을 자고 새벽 일찍 일어나 그 절을 떠난 뒤에 절 주지스님이 일어나 방 문을 열어보니 방 안이 따끈따끈했습니다. 목불을 모두 쪼개서 불을 땐 흔적을 본 주지는 기절초풍할 지경이었습니다.     화가 치밀어올라 씩씩거리며 그 길로 하산한 단하 선사를 바삐 뒤쫓아서 마침내 얼마 멀리 못 간 단하 선사를 따라잡았습니다.     주지가 단하에게 따졌습니다.    “명색이 당신도 스님이 아니시오! 그런데 어찌하여 섬겨야 할 목불을 죄다 쪼개 땔 수 있단 말이오?!”     단하가 대수롭잖은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여래를 화장하면 사리가  나온다기에 사리를 받으려고 그랬소.”      그러자 원주가 힐책하듯 말했습니다.      “당신 참으로 모자란 소리를 하는구려. 어찌 목불에서 사리가 나온단 말이오?!”       그러자 단하가 되받아쳤습니다.      “사리가 안 나올 바에야 나무토막이지 그게 무슨  부처란 말이요!>        원주는 그 말에 씩씩거리기만 할 뿐,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단하를  노려보기만 할 뿐인데,  단하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사람 섬길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부처를 섬긴단 말이오. 사람이 바로 산 부처요!”                  ***************          사람 섬길 줄도 모르면서 나무토막을 깎아 만든 부처나 건물 꼭대기의 십자가를 섬긴다고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유신론, 무신론을 떠나서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124    댓글:  조회:2507  추천:1  2014-07-04
首   긴 장마가 막바지에 이를 무렵, 세상이 온통 썩어문드러진 것들을 청산하는 바람으로 술렁이는 계절에   시골 처가 채마전에선 오래전부터 날기를 거부한 목 잘린 백조 한 마리 푸득푸득, 갈팡질팡하는데...   "내일 날씨 참 좋을까 봐요!" 아내의 턱끝을 따라 바라본 서녘하늘     서슬푸른 서산 단두대에 걸린 해의 마지막 절규 천지를 빨갛게 물들인다. 
123    가는 곳을 모른다 댓글:  조회:2226  추천:0  2014-06-12
      국경 근처의 작은 마을에 아지즈라는 랍비가 살고 있었는데, 그는 십여 년이 넘도록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마다 광장을 지나 회당으로 기도하러 다녔다. 그럴 때마다 그는 유독 유태인을 증오하는 한 경찰에 의해 감시의 눈초리를 받아야만 했다.      그날도 아침 기도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그 경찰이 다가와 시비를 걸었다.       "당신,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오?"      아지즈가 침착한 어조로 대답했다.      "잘 모르겠소."      그 말을 들은 경찰이 버럭 화를 냈다.      "모르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당신이 지난 십여 년 동안 광장 너머 회당에 기도하러 가는 걸 내가 죽 지켜봐왔소. 그런데도 어딜 가는지 모른다고 시치미를 떼? 흥, 내 오늘은 따끔한 맛을 보여주지!"      경찰은 늙은 랍비의 수염을 거머쥐었고 저항할 힘조차 없었던 아지즈는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경찰은 아지즈를 끌어다가 무자비하게 유치장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막 자물쇠를 잠그려는 순간, 말없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지즈의 눈과 마주쳤다.      아지즈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내가 모른다고 한 이유를 이젠 알겠소?"       ♥ ♥ ♥ ♥ ♥ ♥      순교자, 진정한 수행자란 시련 가득한 자신의 삶과 그 종말을 예감하면서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122    실감 댓글:  조회:2296  추천:1  2014-06-11
     기나긴 전쟁을 무사히 넘기고 난 어느 노부인이 오랜만에 이웃집 사람을 만나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은 참 자비로우신 분이라는 걸 이번 전쟁을 통해 실감했어요."      "그래요?"       "네, 전쟁통에도 우린 기도만을 거듭했지요. 아 글쎄, 그랬더니 날아온 폭탄들이 모두 이웃 마을에 떨어지지 뭐예요."               ♥ ♥ ♥ ♥ ♥ ♥        쯔쯧, 내 이웃의 불행이 어찌 내 행운일 수 있단 말이!
121    나는 어디에 있는가 댓글:  조회:2146  추천:1  2014-06-09
     건망증이 지독한 바보가 있었다. 정도가 어찌나 심한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어제 저녁에 벗어 놓은 자기 옷이 어디 있는지 찾는 일로 골머리를 앓곤 했다.      그러니 출근 시각을 지키기도 힘들었고, 밤에 돼서도 다음날 일어날 걱정에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바보의 머릿속으로도 문득 번쩍하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였다!      그는 먼저 종이와 펜을 준비한 다음 저녁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지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되자 옷을 하나 하나를 벗으면서 그 옷가지 별로 이름과 놓아둔 장소를 메모해두었다.      다음날 아침잠에서 깬 그는 먼저 첫 번째 메모지를 찾아 읽었다. 거기에는 라고 쓰여 있었고, 바지는 마침 제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는 얼른 바지를 입고 나서 다시 메모지를 읽었다. 다음은 였다. 셔츠 역시 제자리에 있었다. 그는 셔츠를 걸쳐 입고 다음 메모지를 찾았으며, 도 마찬가지로 제자리에 있었다.      그는 잽싸게 그것을 머리에 눌러썼다. 넥타이, 양말, 손수건도 모두 그런 식이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그 바보는 자신이 고안해 낸 방법에 대해 무척 대견스러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이어 매우 불길한 느낌이 엄습해 왔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 있는 거지……?"      옷가지를 비롯한 다른 모든 것들은 모두 찾을 수 있었지만 자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그것을 적어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끝내 그 스스로를 찾지 못했다.       ♥ ♥ ♥ ♥ ♥ ♥       는 어디에 있는가? 수천 가지의 얼굴을 하고 있는 라는 관념을 전부 지워버리고 마음을 넘어선 존재, 개체라는 감각을 넘어서 스스로 빛을 발하는 존재, 그것이 바로 나다. 그대는 정녕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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