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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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    사회가 《장애》 댓글:  조회:2193  추천:0  2021-08-24
월전에 인테넷 “길림신문"이 장춘 경찰이 가짜《화페》337만원을 몰수한 소식에 이어 연길시 삼도만진 당위 부서기, 조직워원, 판공실주임, 비서, 삼도진정부 부진장, 출납, 방산관리소 일군, 진무장부 부장 등 8명 공무원들이 시장애자협회조직 담당과장의 알찬 노력으로 제2대《장애자증》을 딴 소식을 올렸다. 《장애(障碍)》란 《무슨 일을 하는데 거치적거리며 방애(妨碍)가 되는 일》, 《장애인》은 《신체적, 정신적인 결함으로 각종 생활에서 제약을 받는 사람》을 말한다. 장애인은 비록 심신적으로 열악할뿐 결코 무슨 일을 하는데 방애되거나 또는 《장애물》이 아니다. 그런데 장애인이 무슨 일을 하려는데 오히려 《사회가 장애》로 되는것이 문제다. 홀로서기로 공인받은 모시 2급지체장애자 최모가 제2창업으로 해당부문에 무리자대부금을 수차 신청하니 2만원을 주겠다더니 《하강증(下岗證)》을 가져오고 국가공무원으로 담보인을 찾으란다. 꿈에도 상강(上岗)을 못해본 《앉은뱅이》가 어디에 가서 하강증을 떼와야 하며 친척에 공무원이라는 명색조차 없는데 누구를 찾아가서 《앉은뱅》의 담보인으로 서달라 하겠는가? 할수없이 또 해당부문을 찾았더니 글쎄 《몇년전에 맡은 무리자대부금도 상환하지 않고 무슨 또 대부금이냐?》며 《신용불량자》란 모자를 씌우며 퇴자를 줬다. 금시초문이였다. 요행을 바라는 대부금신청인데 《신용불량자》란 웬 말이냐고 반문하니 몇년전에 시장애인련합회책임자가 최모의 이름으로 무리자대부금을(5만원) 맡았다며 꾸중했다. 연길시 삼도만진 8명공무원들이 《장애자》증을 딴 일, 시장애인협회책임자가《앉은뱅이》의 이름을 도용해 자기들의 사리를 챙긴 이 모두가 그래《사회가 장애》가 아닌란 말인가. 미국 부시대통령이 취임후 첫 국민만남이 장애인대표였다. 미국적 한인맹인 강영우씨도 장애인대표로 자리를 같이 했다. 그때 강영우씨가 대통령한테 《나한테 국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할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힘껏 잘하겠습니다》고 말했더니 얼마후 대통령이 《국가장애인위원회 정책차관보의 자리를 줄테니 5400만명의 장애인들을 위해 일을 잘 해달라》고 당부했다. 하여 강영우는 미국백악관 최고위 맹인공직자로 되여 한국인구보다 더 많은 미국장애인들의 복지사업을 위해 적극 기여 한데서 미국사회의 명인으로 발탁되였다. 제2차 전국장애인설문조사에 따르면 연변에 16만명이나 되는 장애인이 있다. 이는 도문시인구에 상당한 주민(州民)이 장애인이라는 말이다. 장애자사업은 더는 《장애자의 날》이나 단적인 하루활동수단으로 추진할 사업이 아니다. 선진국에는 전세기 90년대에 벌써 《장애인 차별금지법》을 실시, 국회위원에 장애인대표비례까지 제정되여있다. 조화사회건설에서 장애인의 사업은 더더욱 법적보호와 보장을 받아야 한다. 필자는 《장애자》를 《불편(不便)자》로 칭하자는 주장이다. 《불편자》란 어떤 일을 하는데 거치적 거리는 《장애(障碍)》나 방애(妨碍)되는 사람이 아닌, 《지체불편자》다. 정상인들이 못하는 일을 지체가 불편자들이 해내는 실례가 너무도 많다. 《광주아세아장애인운동회》가 이를 너무나도 훌륭하게 실증해 줄것이다.        오기활                                                             길림신문 : 2010,12,11,                    
379    목단강반의 “연변” - 서안구 댓글:  조회:2325  추천:0  2021-08-21
지난 7월 말,  필자는 목단강철도로간부부 리헌(85세,조선족) 옹이 “8.1”절에 목단강에서 열리는 ‘흑룡강성관광사업현장회’ 를 계기로 목단강을 관광하라는 초청을 받고 목단강을 다녀왔다.   낮 기온이 35도를 웃도는 삼복철에 2박3일간의 관광이 비록 “말타고 꽃구경”이였으나 (연길에도 없는 우리 민족의 거물급 민속대형조각상과  경물들이 목단강에있구나!)는 것으로 필자는 큰 감동을 먹었다. 목단강은 흑룡강성에서 조선족이 제일 많이 집거(4만명)한 도시로서 서안(西安)구에 1만 6000명, 흑룡강성의 유일한 조선족가도,와 해남조선족향이 서안구내에 자리하였다.   목단강시정부는 2000년에 목단강시관광발전규획에 따라 서안구에 “조선민족민속거리”를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서안구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목단강 조선족상업무역단지의 중심에 자리한 “조선족민속거리”는 총 길이가 1900메터, 남북너비 500메터로 총 면적이 100만평방메터,“조선족민속거리”의 입구에는  높이가 5메터너나 되는 “조선족민속거리”라는 석비에 맞춰 거리량쪽의 거의 모든 간판이 조, 한글로 된“연변간판”이였다.  목단강시 조선족 중, 소학교, 조선족도서관, 조선족예술관, 한국정품성, 조선민족병원 등 단위와 점포 400여 개가 “조선족민속거리” 주변에 자리하였다. 구정부 관계자의 소개에 따르면 서안구는 목단강시 음식업의 1번지로서 시음식업 총수입의 46%, 그중 200여개나 되는 조선족들이 경영하는 음식업수입이 40%란다. 전국서 “왕아매”로 불리는 목단강“조선족어머니 독보조”도 목단조선족가두판사처관할내인 동단사구 3층에 있다. “조선족 어머니독보조”는 1953년에 흑룡강성렬사모범인 김정순어머의 발기하에 7명의 회원들로 조직,개인집을 활동장소로 하였었다. 근 70년간을  이 독보조 회원들은 초심을 잊지않고 독보조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청명절 렬사비참배, “8.1”절 옹군활동, 재해구지원 등 사회활동과 공익사업에 적극 참여한데서 정부에서 3층짜리 활동장소를 제공, 지금 150여명의 회원들이 매날을 즐겁게 보내고 있다. 이 독보조는  흑룡강성정부와 국가 해당부문으로부터 “옹군우속(拥军优属)”모범”,  “?j옹모범(双拥模范)”, “군민일가친(军民一家亲)”등 많은 영예를 수여받은데서“광명일보”,“중국재경보” 등 국가급 신문과 잡지에까지 소개되였다. 필자는 서안구가 목단강시 명브랜드로 목단강시 문화관광산업발전의 명실공한 “효자”로 될것이라 믿어진다. 오기활    
378    옛 이야기로 배우는 인생조언 댓글:  조회:2155  추천:0  2021-08-11
                  사랑과 관심   사람은 누구나 얼마간의 장애를 갖고 살아 간다. 단지 정상인으로 보일 뿐이다. 비록 몸은 정상이지만 마음에 욕심과 시기와 질투가 가득 차 있다면 과연 정상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다. 몸의 장애보다 마음의 장애가 더 무섭다. 우리 주위에는 몸의 장애로 힘겨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일가? 풍요로운 물질보다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 그리고 정상인과 장애인을 구분하지 않는 시선이다.  우리가 먼저 그들에게 따뜻한 손을 한번 내밀 때 그들은 행복해 한다. 이런 훈훈한 사랑과 관심이 그들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하는 비타민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W 부부는 1967년에 그들의 다섯 살 난 아들 아더가 정신장애라는 것을 처음 알게되였다. 이들은 아들이 가족사랑을 모르고 또 그 사랑에 보답하지 못할 것이라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은 아더를 장애아수용소에 보내지 않고 그냥 집에서 키우기로 했다.   이들은 아이를 비장애아처럼 대하려고 노력하였다. 일요일에는 교회에 함께 갔고 평일에는 특수학교를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도록하였다. 그러나 아더는 여전히 바보처럼 웃기만 할 뿐 말도 제대로 못했다. 어느새 아더는 특수학교를 졸업하고 장애인들이 모여서 일하는 직장을 다니게 하였다. 허나 아더는 일보다는 가족들과 노는 것을 더 좋아 하였다. 시간이 흘러 아더가 20대 후반의 건장한 청년이 되였다. 그는 장애인 직장에서 간단한 전자장비를 조립하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새로 부임된 캐렬이라는 책임자는 아더에게 숨은 힘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컴퓨터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가르쳤다. 또 몇년이 더 지나는 사이에 캐렬은 아더가 매우 똑똑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는 너무도 기삐서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아더의 부모를 청하였다. 그리고는 함께한 자리에서  컴푸터 자판으로 아더에게 “오늘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더는 손가락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힘들게 움직여 키보드를 쳤다.  아더가 한 문장을 만드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드디여 글이 완성되였다.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하게 되여 행복합니다!”   아들의 글을 읽은 부모들은 너무나 놀랍고 감동되여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힘껏 아들을  포옹했다...      오기활   
377    21세기의 "리시진" 김수철(련재37) 댓글:  조회:2119  추천:0  2021-08-03
제 3부           신문잡지로 읽는 김수철 제 10            “내 인생의 저녁에 아침을 보태 주었습니다!” 지난 10월 12일, 연변대학 로간부처, 연변대학 로과학기술사업자협회, 연변로교수협회 책임자들과 김수철교수의 학우대표들이 김수철교수(92세)의 저택을 방문하였다. 제4기 연변농학원졸업생일동은 “福如東海 壽比南山”“21세기‘ 리시진’ 김수철교수에게  드립니다”는 글문을 새긴 금기를 증송하였다. 김수철교수는 45년 동안이나 연변농학원식물학교연실에서 교학과연구사업에 종사하면서 농학, 과수, 축목, 생물화학 등 농학원전업반과   의학원학생, 연구생들에게 식물학, 수목학, 과수분류학, 라틴어 등 교학을 하면서 나라의 인재양성에 큰 기여를 하였다. 뿐만 아니라 한국 서울시립대학 박사연구생들의 장백산원정실습, 연변의학원 한국반학생들의 장백산현지식물실습 도 지도하였다.   김수철교수는 동북3성의 험산준령을 메주밟듯 하면서 25000점의 표본을 수장한 식물표본실을 건립한데서 우리나라의 식물교학과 그에 따른 과학연구에 튼실한 기초를 마련하였다. 김교수는 연변생물학회리사장, 길림성식물학회리사, 길림성초원학회고문, 길림성자연자원(동부자원식물, 목초, 중초약재등)조사사업기술고문, 중화인민공화국동식물검역국(도문)기술고문 등 직무를 지냈고 “연변중초약”, “장백산동북경제식물지”등 저서를 편찬, 출판하여 중국축목사, 길림성정부농업위원회 등 국가와 성급정부에서 발급한 성과상과 길림성로력모범의 영예를 따 냈다. 그가 “대중과학”에 발표한 “진달래”는 길림성과학기술협회상을, 그가 그린 사생화(버섯)는 한국에서 출판한 “백두산버섯도감”에 수록되였다. 최근 3년간 김수철교수는 “중국길림성식물도감”(한문,북경인민출판사)의 출판을 위하여 90고령에 독거생활을 하면서 2600폭에 달하는식물세밀화를 친히 그렸다. “여러분들이 고군분전하는 저를 집까지 찾아와서 위문하니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여러분들이 나의 저녁(만년)에 아침(새힘)을 보태준 셈입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일을 잘하는것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미국의 강철대왕이며 최고 자선가인 카네기는 한사람이 취득한 업적에는 사회의 힘과 노력이 85%를 점하고 개인의 노력과 힘이 15%를 점한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저의 15% 노력을 여러분들에게 회보하겠습니다” 김수철교수는 이렇게 겸손하게 말하며 교수님의 대표적 저서와 친히 그린 “길림성식물세분화”그림을  보여 주었다. 김수철교수에 따르면 “길림성식물세밀화” (2600종)를 그리려면 20여명의 화가들이 동원돼야 하는데 화가들이 식물을 모르고 그리기 때문에 틀린 것이 있어 마음에 안든단다. “이미 출판된 길림성식물명록에 빠진 것이 적지않아 내가 보충해야 한다. 심양의 림업토양연구소의 보고서도 틀린 것이 있다 “중국길림성식물도감”은 마땅히 한족이 출간해야하는데 지금 그림을 직접 그리는 식물학자가 나밖에 없으니 내가 해야한다. 조선족으로서 떳떳하다” 이렇게 말하는 김교수는 이번에 출판할 “중국길림성식물도감”은 해당부문의 항목이 아닌 개인적으로 출판하며 독자들을 책임지기위하여 자기의 식물표세분화에 질좋은 식물원색사진을 배합하고저 지난 여름부터 혼자서 내몽골서북지구를 돌아다니며 만여장의 사진을 찍었다고 하였다. “술은 마십니까?” “원래는 애주가인데 지금은 마시면 취기  때문에 공제를 합니다.” “담배는 피웁니까?” “원래 배우지 않았습니다. 담배는 재난입니다.” “몸에병은없습니까? 늙으면무엇이다릅니까?” “병은 없는데 늙으니까 귀가 덜 듣기고 맥이 없는 것이 다릅니다 ” 이날 방문객들은 김교수의 숭고한 인생가치관에 감동되였고 우리민족의 걸출한 인재를 뒤늦게 발견한 것에 미안을 표하면서 연변대학 당안관에 김수철교수의 인물관을 세우기 위한 사업을 적극 추진할 것을 표시하였다.                              오기활                                              길림신문                     2016-10-28 10
376    옛 이야기속의 인생조언 댓글:  조회:2227  추천:0  2021-07-08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끈   한 목동이 수백 마리의 양떼를 몰고 강변으로 오고 있었다. 아마도 그 많은 양떼를 몰고 강을 건너려는 것 같았다. 물을 싫어하는 양들을 몰고 강을 건넌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였기에 지나가다가 그 광경을 본 아들이 걱정이 되여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저 목동이 저 많은 양떼를 몰고 어떻게 강을 건너려는 거지요?” “글쎄, 하지만 애야, 저 목동의 얼굴은 아무 걱정도 없이 평온해 보이지 않니? 자기만의 무슨 방법이 있어 보인는데...” 그래도 걱정이 풀리지 않은 아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목동에게로 다가가 물었다. “아니, 이 많은 양떼를 어떻게 강을 건러려고 합니까?” 목동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그야 간단하지요, 세상의 리치만 알면...” 그러나 아들은 여전히 리해할 수 없었다. 그때 강변에서 양떼들이 울며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물을 본 새끼 양들은 놀란 눈으로 어미 양 옆으로 모여 들어었다. 그때였다. 목동은 겁먹은 눈으로 서 있는 많은 양들 가운데서 귀여운 새끼 양 한 마리를 안아서 번쩍 높이 들어 올리더니 자신의 어깨에 둘러 메였다. “어머니, 목동이 어쩌려고 저럴까요?” “곧 알게 될 테니 기다려보자꾸나.” 어머니는 목동이가 양떼와 함께 강물을 건너는 방법을 알았다는 듯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새끼 양을 둘러멘 목동은 성큼성큼 강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강폭은 넓었지만 물은 그다지 깊지는 않았다.  순간 새끼를 빼앗긴 어미 양이 놀란 울음을 울더니 강물속으로 성큼 뛰여 들었다. 그것이 신호가 되여 수백 마리의 양들이 일제히 물속으로 뛰여들어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ㅡ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끈은 사랑이다. 이 사랑의 끈은 어떠한 칼에도 끊어지지 않는다. 위협이나 시련이 닥치면 오히려 더욱 튼튼해 지는 신비한 힘을 지니고 있다. 사랑은 쓰러진 사람을 일어서게도 하고 웃음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웃음을 되찾아 주기도 한다. 또 때로는  기적을 일으키기도 한다. 사랑이 없이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나무와 꽃에는 사랑이 향기리라면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힘이다. 사랑이 깊은 한 마리의 어미 양이 다른 많은 양들로 하여금 강을 건너게 했던 것이다. 오기활
375    21세기의 "리시진김수철" (련재36) 댓글:  조회:2010  추천:0  2021-07-01
              9 ,“한족이 해야 할 일을조선족이 하니 영광이지요.” 지난 1월 12일 필자는 정경락선생과 함께 “조선족리시진” 김수철옹(92세)을 찾아가 건강자문을했다. 떠나기 안날에 전화로 련계하니 장담은 못하나 놀려오는셈치고 한 번 와 보란다. 연변농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던 김수철교수는 한국 해당부문과 손잡고 연변에 중초약기지를 건설했다. 그러던 중 룡정시조양천진삼성촌5대의 풍수지리에 매혹 되여 정년퇴직후 10여 헥타르의 토지를 임대맡고 삶터를 이 곳에 옮겼다. 88세 나이에120세를 내다보며 90여 평방짜리 문화주택까지 짓고 만년을 식물채집과 저서 집필 및 식물연구로 보내고있다. 김교수는 퇴직한후 중한전문가팀을 무어 2년간 장백산의 식물을 탐사하고1994년에 농학, 식물학, 약학, 림상학, 축산학 등 자연과학의 연구지침서로《백두산자원식물(김수철, 안상덕, 리상래공저)를 세상에 처음 내놓았고 17 권(건)의 귀중한 론문과 저서를 출간한 평생교수이다. 김교수의 댁에 들어서니 복도부터 방에까지 온통 책무지였다. 자료를 정리하던 김교수가 “아직 일을 끝내기전에 절대 보도하지 말라”는 부탁으로 김교수가 하는 일을 잠시 “비밀”로 한다. 김교수는 “나처럼 그림까지 그리는 식물학자가 중국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안경을 모르고 일한다.”며 언보를 뗏다.  “나는 지금 죽을 준비를 한다. 자료를 정리해 놓고 죽어야지. 정판룡교수가그랬다. 암에 걸린 몸으로 죽기 묘칠전까지 일을 하다가 죽었다. 나는그에 비하면 죽을 날이 아직 멀었다. 정리해야  할 자료가 너무 많아서 정말 아깝다.” “내가 정리하는 식물그림을 그리자면 화가들이 20명은 동원돼야 할 것이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린다고 해도 식물을 모르고 그리기에 마음에 안 든다. 그들이 샘플을 보고 그리기에 안된다. 꽃잎이 다섯개인데 열개나 그린다. 둥근 것을 압축한 표본을 보고 그리니까 안 되는 것이다. 례하면 금혼초(金婚草)를 제대로 그린 온전한 그림이 없다.”  “나는 지금 합작이 아닌 혼자서, 항목이 아닌 개인으로 2300가지식물을 그리고 있다. 이미 출판된 《길림성식물명록》에 빠진 것이 많아서 내가 보충해야 한다. 지금은 재료가 많아 조건이 구비되였다. 심양에 동북림업토양에 관련한 《동북식물연구소》가 있는데 식물연구소의 역할만 할 뿐이다. 그들의 보고서를 보면 틀린 것이 많다.” “한족이 해야 할 일을 조선족이 하는 것이 영광이지요” “나는 혼자서 지내며 식사는 좋다는 재료를 다 섞어서 한가마에 끓인다. 아무래도 위에서 합해지는데 영양을 따지며 먹으면 된다.” “감태는 암에 좋다. 지난세기 70년대 캄보쟈의 시하누크친왕이 담낭염에 걸려 중국에 와서 중약치료를 했다. 그때 감태와 참대잎을 주약으로 치료했다. 페는 발과 련계된다. 발은 페의 반사물이다.” “암치료는 안마부터 하면 더욱 빠르고 철저하다. 몸에 기운이나면 병을 빨리 이긴다. 병치료는 급해말고 개울물이 늘 흐르듯이 해야한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위해 기타를 배제하고 치료를 꾸준히 견지해야 한다. 자연규칙에 위반되는 일은 몸도 용서하지 않는다. 순응을 해야 약이 잘 든다.” “술은 좋은 음식인데 술의 좋고 나쁨은 마시는 사람에게 달렸다. 술은 피를 흐리게 한다. 그런데 내가 왜 마시는가구?” “술은 사람관계의 매개로 만들어 졌다. 술을 례의로 마신다. 손님을 만나고 접대하고… 경상적으로 마시지 말아야 한다. 드문드문 폭음을 하는 것은 홍수가 물곬을 청소하듯이 혈관 청소에 유조하다.” 동석한 정경락선생이 “ 92세까지 살면서 어느 때가 황금시기였습니까?”는 물음에 김교수는 “지금이다. 시간이 많고 하고싶은 일을 하니깐 정말 행복하다. 지금은 겁이 없다. 이 세상이 다 내 것인듯 하다. 참 자유롭다.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다. 혼자서 일하는 멋이 있고 혼자서 사는 법도 배운다. 나는 지금 로친을 딸집에 보내고 혼자서 지내며 일을 다그친다.” “죽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합니까?”는 정경락선생의 물음에 김교수는 “겁이 안 난다. 자연사 인생으로 받아 드리면 겁이 적어진다. 죽음이란 참외나 도마도가 다 익으면 절로 떨어지는 것과 같다. 이것이 자연사이다. 옛날엔 화장터에 가면 겁이 났는데 지금은 화장터가 친해진다. 공포감이 없다. 자연사는 철학적인생이다. 로자의 철학이 과학적이다. 불교사상에 로자의 철학이 담겨져 있다.” 김교수는 한참동안 정경락의 명함장을 보고 또 보았다. “정성룡을 아오? 내가 지금 정성룡의 아들을 생각하고 있는데….”, “정성룡은 우리마을(당년의 태양향횡도촌9대)사람이오. 해방을 같이 맞이 했고 문예공연도 함께한 동갑내기요.” “내가 정성룡의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85세에 사망하였습니다.” 너무나도 뜻 밖인 정경락의 대답에 김교수님은 “경락이 여기 오오, 한번 안아 보기요” 하면서 힘껏 포옹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필자도 흐르는 눈물을 감출수 없었다. 우리는 준비한 음식으로 술상을 차렸다. 정경락선생이 김교수에게 큰절을 올리고 술을 부어 올렸다. “신문사부주필까지 했다니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구만…오늘 정말 좋은 분들을 만났소.” 김교수는 이렇게 말하면서 증손자 한테서 선물로 받은 일본술을 내놓았다.  “이 기쁜날에 안마시면 언제 마시겠소. 경락이 우리 한잔을 하기요!” “나는 담대포천(膽大包天)이다. 나에게는 비밀이 없다. 나는 진짜 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깊은지를 모른다. 내가 하는 일을 끝내면 사회의 감독과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김교수의 말을 이어 정경락선생이 “사회의 지지를 받는다는데 어떤 지지인가요?”고 묻자 김교수는 “주위의 사람들이 와서 청소도 해주며 여러모로 생활을 돌보아 준다. “ 고 했다. “선생님에 대한 평가는 자기에 대한 평가이다. 나는 오기활선생이 온다고 하니 집을 거뒀다. 미루 집청소를 했으니 이만하지 그렇지 않으면 선생님들이 앉을 자리도 없을 것이다. 기억력이 떨어져 손에 쥔 물건도 찾을 때가있다. 나는 찾기 쉽도록 널어놓고 일을 한다. 열어놓을 開에 놓을 放으로 몽땅 개방하고 일을 한다. 볼라니 한국의 어느 시인도 나처럼 살더군. 허허허…나는 앞만 보고 뒤를 모른다. 나는 뒤거두매를 못한다. ” 김교수는 정경락선생이 기침을 할 때마다 등을 다독이면서 솔잎차를 마시는 등 교수님의 처방대로 1년간 견지하면 병이 꼭 치유되니 걱정말라며 희망을 주었다. “우리는 령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자유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애들이 왜 그렇게 즐거워하는가? 애들은 명예욕이 없는 자유인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조용히 사는 것이다. 법정스님은 자기집을 감옥이라고 했다. 감옥에서는 그래도 석방 될수 있는데 집은 영원 한감옥이라고 했다.” 정경락선생이 “ 석정스님이 하늘냄새가 그립다는데 하늘냄새란 무엇입니까?”고 믈으니 교수님이 “하늘은 늘 비여있는 마음이다. 령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무런 욕심이 없는 것이다.” 고 답했다.  “나는 혼자라고 해도 적적할새가 없다. 지금 해야 할 일로 인민출판사에 련계하고 있다. 《중국길림성식물독본》을 한족이 펼쳐내야 하는데 할 사람이 없어서 내가해야 하니 생각하면 조선족으로서 떳떳하다.” “지난해에는 《연변일보》가 배달이 잘 안돼서 올해는 《연변일보》사에 직접 찾아가서 주문을 했더니 장려로 《민족문학》잡지를 주더라. 시간이 없어서 수필만 봤다.” “오기활선생은 연변에서 인간수양필독서인 명심보감을 펴냈다. 사회를 폭로하고 사회를 진맥, 치료하며 침을 찌르고 사상을 관리하며 조선족을 위해 노력한다. 남은 좋은 말만하는데 오선생은 문제를 집어내고 비평을 가한다. ” “《길림신문》에서 연변축구를 춰세웠다. 민족발전과 경제발전에는 체육과 정비례 된다고 본다. 《길림신문》이 연변축구를 살려냈고 길림축구를 위해 공헌했던 타계한 사람들을 살려내는 큰 일을 했다.” “연변일보가 우리민족문화를고집, 발전시키는데 공을 세웠다. 밥도 못 먹고 빈방에서 덜덜 떨며 일을 했다는 오태호식기자들에게 동정이 간다. 신문은 민족의 기둥이라 할수 있다. 우리민족을 키워주고 앞길을 열어주는 좋은일을 하고 있다. ” 이날 교수님은 길림축구의 유공자를 화두로 신문과 건강에 대하여 매우 많은 덕담을  하였다. “다음엔 아무것도 들고오지마오. ‘습근평정부’는 렴결을 제창하오…” 우리가 떠날 때 멀리까지 나와서 바래다 재봉을 약속하는 김교수의 부탁이다. 정경락, 오기활    길림신문   2016-01-28
374    《익수당》(益寿堂)의 추구-치료+양생 댓글:  조회:2233  추천:0  2021-06-19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6-18 14:34:32 ] 클릭: [ ] 세계를 휩쓴 코로나 사태를 겪어내면서 사람들의 관심사는 자연 건강쪽으로 보다 많이 쏠리고 있다. 건강이 대세인 오늘날에 이르면서 병원경영에서도 리념의 변화를 촉구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라 하겠다. 병원은 병을 치료하는 곳이라는 보편인식을 넘어‘양생'이라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양생쉼터',‘건강충전소'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병원이 있다. 연길시 신흥가 민안골목 6-2호에 자리잡고 있는 《익수당》종합문진은 워낙 맥박을 짚어 병을 진단하고 침구와 중약치료를 위주로 하는 중의진료소이다. 이 진료소는 최근 들어 천억복(天亿福)그룹과 손잡고 건강관리봉사쎈터를 내왔으며 건강검진과 질병치료, 예방과 양생에 관한 시설들을 도입하였다. 천억복그룹은 봉사를 근본취지로 하는‘중국뢰봉기업'이다. 산하 천억복건강관리쎈터는 국민들의 비건강생활방식을 개변하고 국민들의 아건강상태를 개선하는데 운영 목적을 두고 있다. 양생과 건강 , 봉사를 일체화하는 천억복건강관리봉사쎈터에서는 신체 건강 정밀 검사, 신체 조기 건강 평가, 보조 물리 치료, 시력 건강 관리 및 고등학교 과학연구제품 등으로 봉사차원의 경영을 진행하고 있다. 《익수당》종합문진 리철범 원장은 천억복건강관리쎈터의 시설에 대해 네가지 방면으로 소개를 한다. 첫째, 10분내에 인체의 4대 조직, 8개 계통 및 224개의 혈 등 인체수치 지표를 정밀 검사하여 조기 건강을 평가한다. 둘째, 테헤르츠광파 세포복구기기로 전립선염, 부과염증, 유선염, 피부병, 담낭염, 관절염, 풍습 등과 같은 병치료효과를 높인다. 셋째, 선자기공명복구기로 아건강상태, 고혈지, 고협압, 고혈당, 면역력 증강 등에 조절효과를 높인다. 넷째, ‘대자연공기 속의 비타민'이라 불리우는 유산소이온으로 머리를 맑게 하고 피부의 탄력을 증강시키며 로쇠를 완화할 뿐만 아니라 호흡계통질병과 심뇌혈관질병을 예방한다. 리철범 원장은 다년간 연길시정치협상회 의료조 위원으로 활약하면서 의료차원에서 백성들의 건강도를 높이고 행복감을 높일 수 있는 경로를 탐색하였다. 그는 건강은 일종 행복이고 책임이며 양생은 또한 인생의 계획이고 의무라고 한다. 그러면서 “미래의학은 더는 환자를 사경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고 예방, 재활과 조기건강을 수호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우리 부모, 형제자매들이 익수당에서 적은 비용을 내고 병치료도 하고 양생도 하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보람이 따로 없겠다."고, 익수당을 하나의 '건강쉼터'로 환자들과 지역주민들이 널리 활용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373    옛이야기로 배우는 삶의 지혜 댓글:  조회:2530  추천:1  2021-06-10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오래전 어느 마을에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다 알고 있다고 알려진 로인분이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동네방네에 그렇게도 용한 로인이 계신다는 것이 입소문으로 널리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을 찾아가서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하루는 어떤 젊은이가 그 분을 찾아가서 자신의 힘겨운 생활과고민을 털어 놓으며 “저에게 힘이 될수 있는 글을 주십시오, 비탄에 빠졌을 때 희망을 주고 행복에 겨워 있을 때에는 교훈을 줄수 있어야 합니다. 제발 저에게 그런 진리를 주십시오.” 젊은이의 간절한 소원을 듣고난 로인은 한동안의 심사숙고 끝에 이런 글을 써 주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겨울이 지나가면 봄이오기 마련이다. 행복과 불행이 우리에게 찾아 오는것을 막을 수 없듯이 행복과 불행이 지나가버리는 것 또한 막을 수 없다. 위기(危機)란 위험과 기회가 공존한다는 것으로 위기속에 기회가 있다.  문제는 어떻게 화위전복(禍爲傳福)하느냐에 있다. 기회는 준비된 자의 몫이다.  일은 있는데 할 사람이 없고 사람은 있는데 할일이 없다.  필자는 이 지구촌의 촌장이 그 할아버지를 찾아서 “지금 온 지구촌이 코리나로 비탄에 빠져 허덕이는데 마땅한 대응이 없을가요?”고 묻는다면 아마도 로인님이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처방전을 줄 것이리라고 믿어진다.   오기활    
372    21세기의 "리시진" 김수철 전(련재35) 댓글:  조회:2050  추천:0  2021-06-01
                                               제 3부:  신문잡지로 읽은 김수철 8 . 얼굴이 뜨거워 졌다 11월 30일 오기활선배와 함께“중국 길림성 식물도감” 출판을 위하여 밤낮으로 고군분전하는 연변대학 농학원 김수철교수님(94)을 방문하였다. 첫 눈에 안긴 저택대문 어구에 자리한 큰 종이함 “신문상(報刊箱)”, “오늘 새벽 4시까지 글을 쓰다 보니 방금 잠에서 깨여났습니다”며 손님 맞이에 등한했다는 사과의 말씀, 지금까지 해마다 연변일보, 길림신문 등 신문잡지를 주문한다는 소개, 며칠 전에 1000원을 팔아 “20세기 중국조선족 문학사료전집”(총 30권)을 샀다는 자랑…에 실로 젊은이로서 얼굴이 뜨거워 났다. 배움의 길은 끌이 없다. 94세 고령에 초심을 잊지 않고 뭉치 돈1000 원을 팔아“20세기 중국조선족 문학사료전집(全集)”을 사놓고 열심이 구독한다는 김교수님의 독서욕에 머리가 숙여지며 어쩌면 내고향 산천의 한 줄기 시내물이 계곡을 헤치며 쉼없이 용용히 대해로 내달리는 경관을 보는 것만 같았다 필자가 얼굴이 뜨거워 진 데는 이런 원인도 있다. 지금은 년말이라 새해의 당보, 당간행물을 주문하라는 상급의 문건정신에 따라 큰 단위는 만 여원, 작은 단위는 몇 천원씩 팔아 당보, 당간행물을 주문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신문잡지를 참답게 구독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필자가 알아 본데 따르면 령도분들은 시간이 없다는데서, 또 재직 공무원들은 별로 볼 내용이 없다는 데서이다. 그래서 많은 당간행물들이 우편봉투도 뜯지 않은 채 쓰레기 신세로 년말에외면되여 쓰레기로팔린다. 이런 현상과 현실은 재정랑비이고 지식재충전의 랑비다. 글쎄 공무시간에도 핸드폰에 눈을 떼지 않으면서도 신문잡지는 시간이 없고 내용이 없어 안 본다니 말이다. 그렇다면 94세 김옹이 2300종에 달하는 “중국 길림성 식물도감” 출판을 위해 지난 2년간 거의 혼자 몸으로 길림성과 몽골지구산천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또 신문사와 잡지사를 찾아 다니며 신문잡지를 주문하는데 그에게 시간이 남아설가? 아니면 “볼 것이 없는” 신문잡지에서 남없는 “보물”을 찾으려고? 김교수의 말씀이다. “나는 신문잡지에서 칼럼과 수필을 빠짐없이 다 봅니다. 거기에는 인생을 깨우치는 철리가 있으니까요?” 이에 비춰 도문시 법원 최은호법관의 말이 생각된다. “몇 십년간 신문에서 수집한 ‘법률해석’ ‘법률문답’ 자료책이 나의 사업에 큰 도움이 되였습니다” 90고령에도 인생의 철리를 찾아 방황하는 김수철교수님을 새 시대 새 삶의 모델로 모시며 뜨거운 얼굴을 식혀본다.                               성송권                                2017년 12월 03일 (조글로)  
371    21세기의 "리시진" 김수철 전(련재 34) 댓글:  조회:2123  추천:0  2021-05-01
제 3부 :           신문잡지로 읽는 김수철 7,      자식을 낳아 준 로친이 정말 감사하지요!” 4월 23일, 연변농학원농학계의 “3 인방”이라고 불린 김수철(93), 황영수(85),김륜범(82)옹이 조양천 김수철댁에서 한자리를 하였다. 이날의 만남은 룡정의 황영수옹과 김륜범옹이 필자가 김수철옹을 만나려 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필자에게 연변농학원의 “불로송”, 조선족의 “리시진”으로 불리는 김수철교수의 감동적인사적을 제공하려고 특별히 동행했단다. 지금 김수철교수님은 2300여 종에 달하는 “길림성식물도감”을 출간하고저 로친을 딸집에 보내고 홀몸으로 조양천 세집에서 고군작전을 하고있다. 11시 20 분경, 세 분 교수님들이 하곱던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에 “경복궁”(식당명)에서 여러분들게  점심을 잘 대접하겠다는 김수철교수님의 말씀에 필자가 김교수님이 일부러 아침시장에서 점심준비를 했다는데 이좋은 분위기속에서 교수님이 마련한 음식대접을 받자고 건의하니 주객모두가 “서로가 허물이 없는데…”하며 주방간 일에 솜씨가 있다는 황영수 옹이 김수철 옹의 시킴에 따라 점심상을 차렸다. 이날 술상에서 오가는 로교수님들의 생활담에서 필자는 종래로 들어 못보고 읽어 못 본 “가정수양”교육을 받으며 감사했고 자책도 하였다. 교수님이 주방벽에 모신 로친사진   술잔을 부딪치며 된장술을 한모금 쭉ㅡ마이고 나서 김수철옹이 하는 말씀이다. “우리 로친이 아무런 장애나 허물도 없는 건실한 자식 4남1녀를 낳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그중에 불구자가 하나만 있다면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겠소? 아무리 명망이 높은 교수나 국회위원도 불구자식이 있다면 마음이 편하고 가정이 행복할가요?” “나는 나이를 먹을수록 로친에게 감사한 마음이오. 그래서 로친의 사진을 주방벽에 붙혀 놓고 늘 보면서 늘 감사해 한다오”  이에 자식이 2녀 1남이라는 황영수 옹, 자식이 2남이라는 김륜범 옹이 김교수님의 말씀이 철리라면서 수철교수님이야말로 명실공한 “불로송”이요 가정병을 치료하는 “리시진”이라고 하였다. 김수철옹의 계속되는 얘기다. “우리의 혼사는 두집 부모들이 내가 낳기도 전에 정했다오.” “로친(맹영자)이 문맹인데다가 나보다 년상(94)이여서 처음에는 곡절도 많았구,,,” “지금보면 정말 다행이오. 로친에게 농촌녀성의 매력이 있고 거기에 문맹이다보니 리론적으로 나의 학술을 반박할 일이 없으니 얼마나 편안하고 화목한지 모르겠소. “ “나는 80년대 현대문명에 오염 되였지만 로친은 현대문명에도 오염이 안된 록색로친이지요, …” “록색로친”이라는 신조어에 모두가 배꼽이 빠지도록 웃음보를 터뜨렸다. 김수철옹은 막내로 딸이 있으니 얼마나 좋냐며 딸이 돈벌이로 한국에 갔다가 년로한 어머니를 잘 모시겠다며 돌아와서 어머니를 모신다며 기쁨의 실눈으로 술잔을 들었다. 이날 “3인방”이 오가는 인생담에 감복된 필자는 존경하는 지식분자 들에게 존경의 술을 부어 올렸다.                                 오기활                              “조글로”   2017년 5월 8일
370    김학송 시인의 못 말리는 고향애, 민족애 댓글:  조회:2163  추천:0  2021-04-13
     필자는 길림신문이 한창 펼치는 '구술' (문화를 말하다)의 김학송 시인을 읽고 깊은 감수를 받았다.   김학송 시인의 구술에서 필자는 우리 조선족 선배시인들의 명작을 피부로 감수하면서 선배시인님들의 고상한 인격과 고귀한 품격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며 흠모하였다.    김학송 시인의 구술에 비춰 필자는 한동안 지켜본 김학송시인의 못 말리는 고향애와 민족애를 반추하면서 뛰는 가슴을 더욱 소리나게 울렸다.    김학송씨는 필자의 고향(딸라자툰)과 강건너 마을(곡수촌)서 1952년에 탄생하였다.   시인은 시로 말한다.   필자보다 5년 년하인 김학송시인은 언녕 시, 수필, 가사 등 문학저서를 30여 권이나 출간하였고 30년 전(1993)에 중국측 대표로 아시아 시인대회에 참석, 작품이 전국 소수민족 '준마상', '해외동포문학상', 주정부 장백산문예상, 단군문학상을 수상, 작품이 《세계시인선집》에 수록되였다.    김학송시인의 《내 사랑 연변》은 중조 대역본으로 출판되여 자치주 창립 65주년 헌례작품으로 선정, 대형음악무용서사시 는 건국 70돐 경축 극본으로 선정되였다.    필자의 시각으로 김학송작품은 우리 민족의 과거, 현재와 미래를 담고 민족의 자부심과 민족의 얼을 노래, 특히는 고향과 민족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였다   필자는 지난세기 70년대에 도문시 '모택동사상학습활용강연회'에서 처음으로 김학송씨를 알게 되였고(김학송은 생산대 논물관리원, 필자는 생산대 돼지사양원 신분으로 대회서 강연했다) 80년대부터는 그를 '연변일보 통신원', 시인으로 알고 평범히 지내다가 도문시 창시 45주년과 자치주창립 60주년 기념행사와 그가 상기 행사로 두만강수석기념관(홍보철)을 창설한 것을 계기로 좀 더 깊이 알게 되였다.       시인의 고향애   김학송 시인은 탯줄이 묻힌 땅, 혼을 키우고 꿈깃을 펼쳐준 하늘로 연변을 그렇게도 사랑하며 노래하였다.   그의 시 《혼의 노래》다.   -주머니가 조금 비여도 좋다, 내 부모, 내 형제 내 정든 사람들과 늘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 혼이 있는 기쁨, 뿌리있는 행복이다.   - 여기는 연변, 세상에 하나뿐인 조선족의 고향! 아리랑 장단에 어얼쑤, 천년만년 우리 노래 불러야 하리, 후손만대 혼의 노래 불러야 하리.   지난 2010년 7월, 도문시 건시 45주년 기념행사와 함께 펼치는 2010년 중국두만강문화관광축제 때다.    김학송 시인은 그 누구의 부탁도 없이 축제행사 개막식을 몇달 앞두고 자기가 완성한 노래를 자기의 돈주머니를 풀어 작곡가와 가수를 선택하여 록음테프로 제작하여 도문시 해당부문에 올리고도 부족하다며 세인들게 도문을 더 널리 홍보하고저 자기가 한동안 뇌즙을 짜며 다듬어 낸 '도문홍보 구호'(10조목)를 보충하여 도문시 해당부문에 올렸다.    한편 김학송은 2010년 두만강문화관광축제의 한획으로 될 (홍보청)을 꾸리기에 연길서 오가며 자기 형제들의 18년간 생사를 무릅스고 땀흘리며 수집한 300여 점의 두만강수석을 형제들의 투자로 을 꾸려 도문창시 45주년 축제행사에 선물하였다.    당년에 을 전문 찾은 주정부 부비서장 마경봉은 "은 연변수석문화에 진지를 마련했다. 이 진지를 선도로 전 주 수석애호가들의 합작과 교류를 추진하라"고 부탁했다.   시인의 민족애    김학송 시인은 자치주환갑을 자기 부모의 환갑처럼 관심하였다.    2012년 6월 20일, 필자는 김학송씨한테서 이런 메일을 받았다.   ㅡ 안녕하십니까?    신문매체에 글들을 보면서 역시 오기활의 글들이 례사롭지 않구나 했습니다.    민중의 후설다운 사변적인 문장들에 박수와 경의를 표합니다.    어제 연변가무단에 갔다가 들은 소식인데 자치주 60주년 경축 주제가가 이미 완성되였답니다 .    그런데 참 좋은 일인데 몇가지 리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습니다.     1, 가사는 리흥국선생이 중문으로 썼다고 합니다.    언어와 문자에는 한 민족의 혼과 온기, 정서와 꿈이 묻어있습니다. 하기에 우리 가요는 우선 우리글로 씌여져야만이 우리의 정서를 가장 잘 담을 수 있게 됩니다. 자치주 60잔치를 경축하는 주제가는 더구나 그렇습니다.   주제가의 제목이 라고 하는데 이 제목은 연변조선족의 본질적인 정사와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사실상 해란강이 두만강보다 연변조선족의 력사와 삶과 정서의 복판을 흐르는 강입니다 .    2, 노래의 작곡도 북경의 장천일선생이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천일선생은 저명한 작곡가이기는 하지만 연변조선족의 삶과 먼 곳 게시는 분이기에 정서적 표현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레서 저는 연변에서 나서 자란, 연변에 대한 애정이 가장 깊은 연변의 조선족작곡가가 작곡했더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3, 더욱 리해할 수 없는 것은 환갑주제가를 몽골가수가 부른다고 하는데 참으로 답답합니다. 부모의 회갑잔치에 동네집 보다는 자기 자식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게 상식이 아닙니까?   이상 내용 참조하여 오기자님의 좋은 글을 보고 싶습니다.   김학송 시인의 메일을 받은 날 저녁에 필자는 시인의 피타는 민족애와 그에 따른 애달프고 불타는 '걱정'으로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필자는 온 밤을 우뭉자뭉하다가 사회에 대한 기자의 사회에 대한 첵임감으로 새벽 3시에 일어나 는 제목으로 김학송씨의 메일 전문외에도 자치주환갑에 올리는 연변텔레비방송국특집프로 리허설을 보고서 기자를 찾아와 "자치주 환갑에 (에루아 어절씨구 좋구나 좋네,,,연변 조선민족 자치주 세웠네)가 없어 되는가며 질문을 하는 연변의 '독서왕' 송해숙할머니의 '원성'을 보충하여 는 제목의 글을 신문에 발표했더니 독자들의 반향을 컸다.   다음은 몇몇 독자의 댓글이다.   ㅡ"우리의 어른들이 왜 그랩니까? 한때는 주지도자 어른이 연변조선족자치주를 없애고 무슨 시를 만든다고 하더니... 자치주환갑이 지나면 우리 주가 계속 존재하겠는지 걱정됩니다.."(길림신문 2012.6.28)   ㅡ오선생님, 이글의 제목을 로 수정했으면 좋겠습니다(.2012-07-04)   ㅡ차치주 창립 주제가를 한여라는 몽골족이 부른답니다. 기가 막힌 일이지요. 자치주 창립 60돐에 전국 56개 민족대표가 모두 오겠는데 축제주제가를 몽골족이 부른다면 기타 민족대표들이 연변조선족을 뭐라고 하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2012-07-02)     이 밖에 필자는 김학송 시인이 필자의 사진작품에 배시한 것을 평생의 자랑과 영광으로 간직하고 있다.     [사진과 시]도문 일광산 7 경개     갑옷 입은 장수   오랑캐를 무찌른 용맹한 장수런가? 눈에는 불길, 코등엔 뢰성 철갑을 스치는 옛날의 바람이 따사롭구나.   당승과 저팔계     저오능과 당현장이 영원한 전설로 마주서서 서천길 얘기를 주고받네.     흑인용사     정의를 웨치는 의로운 분노에 흑인용사 손길에 하늘이 배시시 문을 여네.     범진령 호랑이       범진령의 호랑이가 깊은 잠에서 깨여나 세월의 숲속을 어슬렁거리네.       일광산 복강아지      내고향 지키는 복술강아지 컹!-컹! 먼 하늘에 복을 부른다      일광산 사자봉     앉은 듯 일어선 름름한 사자 숨은 듯 드러난 웅훈한 기상 오, 기지개 켜는 동방의 사자.   두만강 굽이굽이   백의겨레 꿈 심고 출렁출렁 일광산 감돌아 구비구비 일천리 먼길엔 사연 또한 많더라.   /사진 오기활, 시 김학송     끝으로 필자는 2015년 3월의 어느 모임에서 연변의 '독서왕' 송해숙할머니의 출연으로 이 글을 맺는다.   ㅡ 나는 김학송시인을 한번 따뜻이 대접하고 싶습니다. ...요즘에 김학송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시를 쓰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가끔씩 한답니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김학송 시인의 시를 읊어드리겠습니다.   …언덕마다 들판마다 옛말이 숨 쉬는 곳 나무마다 바위마다 전설이 주렁진 곳 골마다 계곡마다 자음과 모음이 돌돌 여울져 흐르는 곳  여기는 연변 – 세상에 하나뿐인 조선족의 고향! 아리랑 장단에 얼씨구- 천만년 우리 노래 불러야 하리 후손만대 혼의 노래 불러야 하리    오기활/     
369    옛이야기로 배우는 삶의 지혜 댓글:  조회:2341  추천:0  2021-04-01
                   아버지의 유서 책을 아무리 많이 읽은 젊은이라고 해도 삶에서 다양한 경험을 체득한 로인의 지혜를 따라가기가 어렵다고 한다.   필자가 이에 체득하기는 60년 전에 고향마을에서 대학생 리모가 낫을 놓고 “ㄱ” 자도 모르는 김인길 로인과 장기를 놀면서 번번히 지고나서 불복하는 하는 것을 목격한 것이 계기로 되였다. 김 옹은 비록 장기쪽의 글을 한 자도  읽고 쓸 줄을 모르는 문맹이지만 장기쪽의 글씨를 그림으로 보고 익히고 장기쪽이 다닐수 있는 길에 능숙하기에 자기만이 쌓아온 장기수로 장기쪽의 글을 읽고 쓰는 대학생을 변변히 이길수 있은 것이다.    책 속에서 배우는 지식은 리론적인 것에 지나지 않지만 인생에서 얻는 경험은 몸과 마음으로 느끼면서 깨달은 지혜이다. 그래서 누구나 몸소 경험하며 배운 지헤를 값지고 중요하다고 한다.   어느 철학자는 “하늘은 사람의 나이에 맞게 지혜를 준다”고 말했다. 즉 젊으면 젊은 사람에게 맞게, 나이 들면 그 나이에 맞는 지혜를 내린다는 것이다. .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현명한 유태인이 아들을 에루살렘의 학교에 보냈다. 그런데 아들이 공부하는 동안 병을 얻고 아무래도 아들을 만나보지 못하고 죽을 것 같아서 유서를 썼는데 내용인즉 자기의 전 재산을 자기집 노예에게 물려주고 아들에게는 그가 원하는 한 가지 재산만을 주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병이 나서 얼마후에  세상을 떠나자 노예는 주인의 아들에게 그의 아버지 죽음과 함께 아버지가 남긴 유서를 전달했다.    아들은 몹시 슬픈 마음으로 아버지의 장례를 끝낸 후 랍비를 찾아가 전후 사연을 설명하며 이런 불평을 털어 놓았다. “아버지가 왜 저에게 재산을 한 가지만 물려 주엇을가요? 저는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   아버지의 뜻을 거역한 일이 한 가지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러자 랍비가 말했다. “천만에, 자네의 아버지는 매우 현명한 분으로 자네를 진심으로사랑하신 것일세.” 그러나  아들은 계속하여 아버지를 원망하였다. “나의 아버지가 재산을 노예에게 전부 물려주고 내게는 한 가지만 주라는데도 말입니까?”  이에 랍비가 말했다. “자네도 아버지만큼 현명해져야 하네. 자네 아버지가 무엇을 진심으로 바라셨는지 잘 생각해 보게나, 그러면 아버지께서 자네에게 전부의 재산을 물려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네.”  “자네 아버지는 림종할 무렵 자네가 집에 없기 때문에 노예가 재산을 가로채고 도망쳐 버리거나 아니면 아버지가 죽은 사실조차 자네에게 전하지 않을 것이 걱정되여 재산 전부를 노예에게 준다고 한 걸세.  노예는 재산을 물려받고  기뻐서 자네에게 달려가 그 사실을 확인시키려고 한 것이네. 만약에 아버지의 유산이 실현되면 전부의 집재산이 고스란히 보존될 것이 아닌가?” 그래도 아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그것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에 랍비가 답답한 어조로 말했다. “자네는 젊은이라 역시 지혜가 부족하군, 자네는 노예의 재산이 모두 주인에게 속한다는 법을  모르는가?  부친이 자네에게 원하는 재산을 한 가지를 물러 준다고 했으니 자네가 노예만 선택하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러니  자네의 아버지가 얼마나 현명한가?”   오기활
368    21세기의 "리시진" 김수철(련재 33) 댓글:  조회:2155  추천:0  2021-03-18
제 3부;                                                                신문잡지로 읽는 김수철 6, 그날, 또 다른 젊음을 보다 올해 93세인 “조선족 리시진”, “식물의 왕중왕”으로 불리우는 로학자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일전에 들뜬 가슴을 달래며 그분을 만나게 되였다. 그분이 바로 연변대학 농학원 퇴직교수 김수철교수님이다. 자애로운 미소로 반겨주던 그분을 흔히 우리 젊은이들이 상상할수 있는 그런 모습으로 지레짐작을 했었는데 놀랍게도 전혀 다른 90세 고령의 모습이였다. 돋보기도 끼지 않은채 책을 보았고 아무런 부축도 없이 이동이 자유로왔다. 하지만 옥에 티라면 교수님은 난청이여서 무등 안타까웠다. “나이는 수자에 불과하다”고 그날 나는 교수님한테서 또 다른 젊음을 보았다. 젊음이란 무엇인가? 탄력 있는 피부, 건장한 체격, 곧은 허리, 튼튼한 두다리면 젊음인가? 하지만 이런것들이 꼭 젊음의 간판은 아니다. 깊고깊은 인생의 샘물속에 간직된 신선미ㅡ 강인한 의지, 시들지 않는 열정과 그에 따른 끈기와 의력이 곧 젊음이다. 또한 어려움을 뚫고 나가는 기백과 거친 땅을 일구어 옥답으로 만드는 힘이야말로 젊음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한결같이 김교수님은 오로지 “중국 길림성 식물도감”의 출판을 위하여 초심을 잃지 않고 꿋꿋이 앞만 보고 달린다. 누군가의 말처럼 성공은 자연연소의 결과가 아니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불을 지펴야 한다. 성공을 위해서는 자신의 전부를 거는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온몸을 던진 완전한 희생으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결과라 할가, 김교수님은 일생을 통째로 장백산식물 연구사업에 바쳐왔다. 수십년 세월을 식물연구에 온갖 심혈을 기울이고 장백산맥 곳곳을 메주 밟듯 다니다보니 어떤 식물이 어떤 곳에 생장한다는 것을 손금 보듯 환히알고있다. 그리하여 후배 교수들이 어떤 식물이 어디에 생장하는지 몰라 문의해올 때마다 교수님응 “아무 산, 아무 언덕에 가면 있다.”고 가르쳐줄 정도이다. 식물에 대해서는 학자중의 으뜸, “식물의 왕중왕”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명조시기에는 유명한 의약학자 리시진이 있었다면 오늘날 우리 신변에는 “조선족 리시진”으로 김수철교수가 있다. 과연 김교수한테 있어서 식물(산촌초목)이란 무엇일가? 평생 산천초목과 같이 보냈다니 아마도 산천과 초목은 김교수의 초상화요 명함이요 인생이리라. 교수님은 불타는 사명감으로 93세의 고령에도 여전히 장백산식물연구사업에 투신하고있다. 김교수는 그야말로 자학천재이다. 자학으로 영어, 라틴어, 로씨야어를 익혔다. 교수님의 학구열은 보기 드물게 뜨거웠다. 영어학습장만 해도 교수님 인생의 한 발취로서 인생의 한 갈피에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수십년 세월이 흘러 이미 색바래지고 보풀이 일었건만 인쇄한듯이 반듯한 영어 필기책 한장한장에서는 그 노력의 흔적과 구슬땀이 밴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놀랍게도 어느 한 글자도흐트러집이 없이 빼곡히 또박또박 곱게 정연히 씌여져있었다. 어떠한 일을 하든지 마음가짐도 중요하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수많은 덕목중 하나가 바로 열정이다. 열정은 아무에게나 생기는 것이 아니다. 비로서 한곳에 치중하여 관심을 갖고 사랑을 갖고 시간을 투자할 때만이 열정이 돋아난다. 과거의 자학학습에서 충분한 분발과 끈기를 보여주었기에 오늘날 그 누구보다 발전하고 성장할수 있었다. 현재 집필중인 “중국 길림성 식물지”출판자료중에 김교수가 직접 그린 2600장의 장백산식세밀화(线條图)가 상자 가듣 담겨있었고 장백산맥 곳곳을 누비며 찍어둔 사진들이 또 다른 한 상자속에 수북히 쌓여있었다. 퇴직해서 32년간 장백산맥을 답사하며 식물표본을 채집하고 일일이 사진을 찍고 직접 하나하나 손으로 그렸다고 한다. 교수님처럼 식물표본을 그림으로 그리는 식물학자는 우리 나라에 거의 없다고 한다. 나도 5년간 가까이 그림을 배워온 사람이지만 교수님이 그린 그름을 보는 순간 그만 “와ㅡ”하고 터져나오는 감탄을 누를수 없었다. 갖가지 식물들의 이름은 잘 모르지만 어찌나 필을 령활하고 섬세하게 다루었는지 그 한장한장의 식물들이 생생히 살아있는듯했다. 그림 그리기는 가느다란 선으로 시작하여 팔목을 360도로 돌려 여러가지 형태로 그려내는거라 가볍게 생각될지라도 실은 어마어마한 정력과 집중력, 관찰, 인내심이 필요된다. 세상에 이런 일에 나올수있는 90세 고령은 흔치 않다. 이런 김교수님을 보니 나는 문득 나뽈레옹의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란 명언이 떠 올랐다. 늙어갈수록 “예전에 비해 사는게 락이 없다.”고 신세를 한탄하는 추이다. 하지만 김교수님은 어떤 일이든지 그속에서 행복을 찾아낼수 있는 사람처럼 “내가 하고싶은 일을 마음껏 할수 있어 더 없이 행복하다.”고 얼굴에 담고있다. 인생은 나이로 늙어가는게 아니라 리상의 결여로 늙어가는게 아닐가싶다. 하여 남은 여생도 자기만의 취미로 이루고 저 하는 꿈으로 맛갈스레 제2의 인생을 즐기고있다. 그렇다. 젊음은 20대 소년에게만 있는게 아니라 90대 로년에게도 있다. 김은하 “로인세계” 2017년 제1기 (이달의 인물에서)                
367    남성의 세계는 녀성이 만든다 댓글:  조회:4370  추천:1  2021-03-04
“남자의 그늘에 녀자가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이 표현을 “완전히 옳다고  못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가끔 녀성의 영향을 받지 않아도 자기는 얼마든지 남자답게 산다고 뽐내는 남성을 만나게 된다. 그런 남성일수록 오히려 녀성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지 못하는 것이 아닐가 싶다. 즉 자기의 남자다움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결함을 보완해 보이는 심리인지 모르겟다. 남자들의 가장 큰 원동력은 녀자를 기쁘게 해주고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상고시대에 사냥꾼이 곰 두마리를 잡아서 동굴로 끌고 왔는데 옆의 동굴에서는 한마리도 못 잡았거나 겨우 한마리밖에 잡지 못했다면 곰 두마리를 잡은 그 사냥꾼은 가슴을 활짝 펴고 기뻐했음이 틀림이 없다. 다른 남자보다 먹을 것을 많이 얻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자기 안해에세 보여줄 자랑스러움을 상상해 보면 이쯤을 금방 짐작하게 될것이다.  현대의 사냥꾼은 필수품과 사치품을 사는 수단,  다시  말해서 돈을, 먹고살기 위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돌아간다. 만일 그가 정직한 남자라면 가슴을 쭉 펴고 내 아내를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런 말구가 귀맛이 향기롭다.   세상을 움지이는 것은 남자지만 그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녀자이다.   남자는 집을 짓고 녀자는 가정을 짓는다.   안녕“安”자를 파자하면“집안에 녀자가 있다”, "집안에 녀자가 있으니 안녕하다”로 풀이된다. 그래서 “안해”란 집안의 해(태양)이라  뜻한다.    남자는 출생되고 녀자는 창조(안해, 며느리, 어머니로)된다.   1류 안해가 1류 남편을 만들고 1류 남편(세대주)이 1류 가정을 만들며 1류 가정이 1류 국가를 만든다.   오기활
366    21세기의 "리시진" 김수철 전(련재32) 댓글:  조회:2107  추천:1  2021-03-01
                                       제 3  부;  신문잡지로 읽은 김수철               5,   미리 배워야 할 “죽음학” “누구나 생을 다하면 무덤으로 간다. 죽음은 생의 파멸이며 안식과 평화를 얻는 순간이기도 하다. 죽음은 령혼의 일부분이며 무덤저쪽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다. 죽음을 미리 준비하라는 유언이나 장례절차, 제사의식 등의 준비가 아니라 그대 령혼이 안식할 수 있는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죽음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는 준비 하면서도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다.” 이는 로씨아의 대문호 똘스또이의 말이다. 필자가 “죽음학”을 미리 배워야 한다고 인식하기는 다음과 같은 계기와 모델들이 있었다. 첫 계기와 모델은 우리민족의 “로신”으로 김학철선생님이다.  김학철선생님은 2001년 9월, 풍진세월을 외다리로 버티던 몸이 불치병으로 85세에 생의 가망이 없게되자 “작가로 글을 쓰지못하면 운명이 끝이다” “병원, 주사 절대거부, 조용히 떠나 겠다” “사회의 부담을 덜고 가족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더는 련련하지 않고 깨끗이 떠나간다”며 최후의 21일을 단식, 단약했고 사망후 유언대로 추도식이 없이 소규모의 친척과 친지들이 골회를 두만강에 띄워 조선 원산의 고향으로 흘러 보냈다. 둘째 계기와 모델은 조선족의 “리시진” 김수철( 93세) 교수님이다. 교수님은 “죽음을 어떻게 생각합니까?”는 물음에 “죽음은 참외나 도마도가 다익으면 절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자연사이다. 자연사인생을 받아 들이면 겁이 없게 된다.” “나는 지금 죽을 준비를 한다. 죽기전에 할 일을 해놓고 죽어야 한다. 정판룡교수가 그랬다. 정교수는 암병에 시달리며 죽기전까지 해야 할 일들을 정리 하였다. 지금 나는 합작이 아닌 혼자서, 항목이 아닌 개인적으로 ‘중국길림성식물도감’출판을 위해 2600가지 식물을 그리고 있다. 교수님은 “이미 출판된 《길림성식물명록》에 빠진 것이 많아 “내가 보충해야 한다”며 로친(94세)이 있으면 불편하다고 딸집에 보내고 90고령에 독거생활을 하면서 고군작전 했다. 세 번째 계기와 모델은 한국의 영동농장 김용복회장(84세)이다. 김회장은 사람농사, 흙농사, 사랑농사를 하는 뜨거운 농사군이다. 3살에 어머니를잃고 15살에 월사금을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난 후 홀로 고향을 떠나 삶을 개척, 40대에 열사막의나라 사우디에서 남새농사를 성공하여 부자로 되여 금의환향한후 버려진 간석지를 사들이고 개척하여 매년1만 2000여석의 량질미를 나라에 바치는 한국 제1농장주로 되였다. 김회장은1982년에 사재 10억원을 출자하여 “용복장학회 (재)”를 설립, 2005년 70세에 “흙농사”로” 130억원을 출자해 “한사랑농촌문화재단”을 설립, 80 세에 제3세계 어린이와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해 “사랑농사”로 여생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 4월 20일, 김회장은 인생무대의 마지막 연출로 5천만원을 투자해 “제10회 한사랑농촌문화상시상식” 마무리를 한 뒤를 계속하여 “월정김용복어린이복지재단”에 33억원, “영동농장 신사옥 출범에 55억원, “ (재)용복장학회”에20억원, “아너소사이어티(사랑의 열매)에 1억원, 강진군 로인복지재단출범에 2천만원을기부 하였다. 이날 김회장은 귀빈들에게 자기가 준비한 죽음 준비를 이렇게 소개하였다. “나의 몫의 재산(부인과반반으로나눔)전부와 장기(腸器)를 사회에 바친다”는 유서를 금고에 보관했다.” ㅡ사망이 판단되면 사전에 수액관(輸液管)을 뽑아야 한다. 그리고 운명을 하면 박수로 저승에 보내라고 부탁을 하였다. 만약 어느 누가 울기만 하면 벌떡 일어나서 귀쌈을 칠 것이다. ㅡ장례 때 준비로 유상(遺像)(활짝웃으며찍은채색사진)과 제일 즐겨 부르는 노래 3곡을 선정해 놓았다. ㅡ장기를 모두 기증한 나머지 유체는 화장한후 고향땅에 뿌린다. 필자가 만난 “죽음학”의 “3김”은 모두 값진삶으로 인생을 마무리를 하면서 아무런 미련도 없이 죽음을 당연히 받아 들이는 분들이였다. 프랑스제 5임 대통령 드골장군은 “나중에 죽엄이 언제나 승리 한다”고, 영국의 유명작가 토마스풀러는 “훌륭하게 죽는법을 모르는 사람은 한마디로 살았을 때도 사는 법이 나빴던 사람이다“고 말했다. 죽음이 삶을 받쳐준다. 때문에 그삶이 더욱 빛난다. 그래서 누군가는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고유한 삶의 방식이 있듯이 죽음도 그 사람다운 죽음을 택할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우리가 일찍부터 삶을 배우듯이 “죽음학”도 미리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오기활                                 길림신문   2016-06-01 10  
365    “건강주권”을 찾으라 댓글:  조회:3082  추천:0  2021-02-24
2003년 필자는 연변농학원 김수철교수가 “대중과학”잡지에 련재로 발표한 “솔은 건강장수의 묘약이다”를 읽고 그 해부터 지금까지 김교수의 처방에 따른 “솔순주”와 솔즙을 거의 매일 복용한다.   17년 간 꾸준히 견지한 “솔식(松食)료법”은 필자의 몸건강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례하면 머리털이 빠졌던  정수리에  많은 머리가 자라났고 해마다정기적으로 하는 신체검사에서 번마다 혈액이 깨끗한 것으로 나타났고 색갈이 검고 형태가 흉하던 발톱이 희고도 정결하게 되였다.   이 밖에 가끔씩 때를 거려도 무력하거나 배고픈감이 없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필자를 알고 지내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70대 중반인 필자를 60대 초반이라면서 “젊어지는 비결이 무엇입니까”고 물어본다.  이런 와중에 필자는 지난해 말에 연길에 “솔박사”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서로간 솔의 효능을 담론해 보고저 지난 12월 초에 연길 환락성(원 신세기호텔)에 자리한 “연변장백산솔잎연구유한회사” 의 조경수사장을 세번이나 만났다. “솔이 어머니를 살렸습니다!”   조경수는 1956년1월 2일에 흑룡강성 화천현에서 출생하였다. 조국해방전쟁, 항미원조전쟁의 참전용사인 그의 아버지(공산당원)가 중년에 불의의 사고로 사망되자 경수씨는 젊은 나이에 어머니와 두 동생들을 책임진 세대주로 중임을 떠멘외 공천단서기, 민병련장 등 직책까지 맡고 삶에 열심하다가 안도에 이사와서 세집살이를 하던 때인1998년에 어머니(최영숙)가 중풍으로 쓰러져 4개월간 현병원에 주원하여 치료를 받았으나 별다른 호전이 없자 출원하였다.   어머니의 중풍병은 경수씨를 의학공부에 전념하게 하였다,  어머니의 중풍치료에만 목적을 두고 동서고금의 의학서적을 탐독하던 경수씨는 리시진의 “본초강목”에서 “중풍 치료에 솔이 백가지 나무의 최고다” 는 등 소나무의 약효능을 읽고 머리속에 가파른 바위에 뿌리를 박고 령하 40도에서도 얼지 않고 여름철 폭염에 데지 않는 사철푸른 소나무가 떠올랐다. 게다가  “중국의 약왕”으로 불리는 손사묘(孙思邈,기원 542ㅡ682)가 “식약동원(食药同源)의 양생법으로  솔식(松食)을 하여 141세까지 살았다”는 의서를 읽고 경수씨가 “솔만이 어머니를 살려 낸다”는 희망을 굳혔다. 그로부터 경수씨는 솔채집에 나서 솔뿌리, 송진, 솔잎, 솔껍질, 솔방울 등 소나무 모두를 알뜰하게 100  여근을  채집하여 큰가마로 밤낮을  달여서 측출한 걸쭉한 솔농축액 7병을  어머니에게 정성껏 대접하였다.  효성이 지극하니 돌우에도 꽃이 폈다. 어머니가 28일 만에 의식을 회복하더니3개월만에는 제법 동네나들이를 하였고 더욱 신기하게도 어머니가 회춘하여 이발이 새로 나고  생리까지 생겼는가 하면 백발머리가 검해진데서 동네서 어머니를 “2층머리 아매”라고 불렀다.   어머니의 병으로 우연하게 솔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어머니를 살려낸 경수씨는 “한 생을 솔과 함께 살리라”는 굳운 결심으로 2003년 “연변장백산솔잎연구유한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하면서 체계적인의학공부를 공부하고저 2005년에  사평위생학교에 입학하여4년간의 의학전문지식을 배웠다.  지금까지 경수씨가 접대한 만 수천명의 국내외 고객(환자)과 중에 20년간 당뇨병으로 시달리던 박춘산씨가 몸건강을 되찾고 “근로한 인생 휘황한 열매, 백세가 꿈이 아니다”는 글을 박은 금기를 경수씨에게 증송.... 간경화 말기로 죽음만을 기다렸다는 단동시의 김인철(49세, 전화 155 6763 0166)씨는 지난1월 6일에 필자의 전화취재에서 “조사장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였다”며 조사장게 드리는 새해의 선물로 최근( 12월 26일)에 진찰한 간화험단를 조사장게 부쳐보냈다며 기뻐 하였다. 중국의 “솔왕”으로   2006년 5월 16일 연변일보(한문)는 1면 톱기사에 중국 “솔연구의 제1인자”라는 제목으로 “연변장백산솔잎연구유한회사” 조경수의 사적을 큰 폭으로 소개하였다   경수씨에 따르면 기타 소나무의 잎은 두, 세개이고 모양도 반달형인데 장백산홍송은 잎이 다섯개고 모양이 3각형이다. 장백홍송은 기타 소나무들보다 잎이 많지만 삼격형으로 표면적이 작기에 바람을 이겨내고 빗물을 쉽게 털어내는 우세로 생명력이 강하다. 장백홍송의 잎은 기타 소나무의 잎보다 색갈이 검푸르고 맛이 쓰고, 떮고,  시구며 영양성분이 높고  약효능이 좋 다.  그리고 장백홍송의 열매(잣)와 씨는 독성이 없기에 직접식용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연변장백산솔잎연구유한회사”가 제품품종이 제일 많고 (18종)과 획득한 국가전매특권도 제일 많다(4개).   2006년 전국성신3A진선령맹에서 조직한 회의에서 이 회사가 “3A상”을 수여 받았고 2007년에 중국경제엘리트론단련석회에서 조직한 “제1기중국기획절지정례품”회의에서 이 회사의 제품이 “국가지정례품”으로 선정되였다.   2020년에  이 회사는 중국서 제일 처음으로 “솔잎식품생산허가증”을 획득한 회사로 부상되였다.   그가 하고 싶다는 말    1, 건강의 비결은 “건강할때 건강을 지키는 것”이다.  동,서양 의학을 전공하고 “뇌내혁명” 저서로 국내외에서 이름을 떨친 일본의 의학박사 하루야마 시게오(春山茂雄)는 “척추동물의 수명은 뇌 발육 기간의 5배이다... 인간은 25살까지 뇌가 성장하므로 125살까지 살 수있다.”  “사람은 인체“미병( 未病) 단계에서 건강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 고 했다.   이에 비춰 누구나 건강을 챙기려면 무척대고 많이 먹어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전통 습관과 병이 난후 병원을 찾는 전통관념과 철저히 결렬해야 한다. .   한마디로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고 장수는 무병장수를 해야 한다.  병치료로 우리를 찾지 말고 “미병”단계에 솔식료법으로 141세를 산 “중국약왕”(孙思邈)을 따라 배우라. 2, “장수우물”을 활용하라  우리는 올해에 “다 함께 건강을 챙기자”는 리념으로 마를줄 모르는 “장수우물”을 파놓고 여러분과 “분향경제(分享经?)를 실행한다. “분향경제”(장수우물)란 우리의 제품을 사용하려는 고객들이 먼저 1년어치의 선불금을 내고 제품을 사용한후 년말에 선불금 전액을 되돌려받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지난날 약과 병원(의사)에 의탁하여 건강을 지키려는 “식민건강”(殖民健康)에서 벗어나  “미병” 때 자신의 건강을 챙기는 “건강주권”(健康主权)을 찾기를 바란다. 필자는 “나는 연구원일뿐 사회적인 인간교제에는 거의 빵점이다” 며 솔연구에만 꾸준하다”는 경수씨가 돋보여 보였다. 오기활  
364    옛이야기속의 인생조언 댓글:  조회:3218  추천:3  2021-02-10
                에디손의 욕심    사람들 마다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면 안된다. 무리한 욕심은 발전보다는 오히려 화를 불러들인다. 그러니깐 어떤 일이든지 모자라지도 앟고 넘치지도 않을 만큼이 적당해야 할것이다.  고무풍선을 크게, 더 크게 부풀리려고 무리하게 공기를 주입하느라면 당연히 “펑”하고 터져 버린다. 음식도 포만감의 정도를 벗어나 많이 먹게 되면 탈이 나게 되니까 아무리 맛있이 있더라도 조금 더 먹고 싶을 때 수저를 내려 놓는것이 건강에 리롭다. 모두가 세상에 무리로 하여 리로운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잊지 말하야 한다.   다.  우리는  욕심을 버릴 줄을 알아야 한다. 욕심은 짧게는 인격을, 길게는 인생을 망가 뜨리는 암적인 존재와도 같다. 만물의 령장인 인간에게 욕심에 따르는 “과식병”이 있지만  산짐승들은 “과식병” 이 없단다.       에디손의 욕심 이야기다.   축음기, 영사기, 전구... ... 등 무려 1300여 건이 되는 발명을 세상에 내놓은 에디손은 생의 만년에 특유한 고집(욕심)으로 실패를 거듭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에디손은 평소에 “몸은 머리를 여기 저기 옮겨주는 데만 필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하는 일에만 미치였다. 그는 70세가 넘어서도 잠자는 시간이 고작 하루에 4시간좌우밖에 안 되였다.  그는 자신의 축음기 회사에 과도한 애착을 느낀 나머지 라지오방송이나 전기식 레코트플레이어의 시장성을 무시한 것이 그의 실수였다. 에디손은 불가능하다는 사람들에게 이런 억지를 부렸다. “사람들은 라지오방송국이 일방적으로 내보내는 프로그램에 곧 싫증을 내고 우리 회사의 축음기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싶어할 것입니다.”  아무리 설득해도 아버지가 끝내 고집을 꺽지않의니 세 아들은 아버지 몰래 전기식 레코드플레이어 제조에 나섰다가 에디손을 분노하게 하였다. 그는 70대 후반이 되여서야 주변의 충고를 받아들여 축음기 생산을 그만두고 라지오 제조에 나섰지만 2년 후 2백만 딸러의 손해를 보고 공장을 페쇄하고 말았다. 80세에 에디손은 고무 제조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미국 내에 자생하는 식물들에서 고무 성분을 추출하는 일이였다. 에디손부인의 회고이다.   “그는 고무 생각과 고무 이야기, 고무 꿈만 꾸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5년 내에 고무생산국이 된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만든 고무는 천연 고무에 비해 제조과정이 복잡하고 무엇보다도 품질이 떨어졌다. 에디손은 만년에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이 로년을 보내다가 결국 84세에 눈을 감았다.    사자성어의 “과유불급”은  지나칠 과( 過), 도리여 유 (猶). 아니 불(不) 미칠 급(及)으로 이는 과한 것은 모자람보다 못한것으로 항상 정도와 균형을 따지라는 뜻이다.  오기활                                                                
363    21세기의 "리시진" 김수철 전 (련재 31) 댓글:  조회:2015  추천:0  2021-02-01
                                                제 3부; 신문잡지로 읽는 김수철            4, 조선족 125살은 산다고 필자는 연변농학원 최고령교수인 김수철(88세, 부인 맹영자,89세)교수가 100세를 내다보며 올해에 90여평방짜리 집을 짓고 지난 9일에 새집에 입주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16일, 연길시 조양천진 삼성촌에 자리한 교수님댁을 찾았다. 김교수는 중한수교후 한국과 손잡고 연변서 중초약기지를 마련하던중 삼성촌의 풍수지리에 매혹되여 헐망한 집과 토지 10여헥타르를 임대 맡고 정년퇴직 후에  아예 이곳에 삶터를 옮겨 왔다. 오전 11시경에 도착하니 딸 김혜란(57)씨가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며 아버지는 우리가 오후에 온다는 것으로 전달받고 텔레비죤을 사러 연길에 갔고 어머니는 록두가을을 하느라 밭에 나갔다고 하였다. 세상물정이 밝은 90대 할머니 우리가 한창 혜란씨의 얘기를 재미나게 듣는데 키꼴이 큰 할머니가 어깨에 메고오던 묵직한 마대짐를 혜란씨에게 넘겨주면서 저 뒤에 할머니가 온다고 하였다. 이윽하여 할머니가 도착했다. 《감사하기도, 그 로친도 70인데…》 할머니는 딸이 받은 마대짐을 펼치면서 당신을 도와 준 키큰 할머니를 감사하다고 하였다 우리를 본 할머니는 반갑게 인사하며 이런 골안을 어떻게 왔는가고 물었다. 우리가 조양천에서 30원을 내고 택시를 타고 왔다니 낮은 소리로 넉두리를 하였다. 《나쁜놈들, 외지 사람이라고 비싸게 받았구나. 우리는 20원이면 되는데…》 《그런데 비싼차비를 팔고와서 아바이를 못 보고가면 어떻게 하오? …》 우리를걱정하는 할머니다 우리가 이틀전에 오겠다고 두번 전화를 하니 모두 할머니가 전화를 받더라고 하니 할머니는 그런줄을 모르고 그저 평상시에 제자들에게서 오는 문안전화거니 생각하고 아바이에게 전달을 안했다는 둥, 먼발에서 키가 훤칠한 손님들을 보고 오늘 신카포(싱가포르)에 간 손녀가 온다더니 벌써 왔는가 했다는 둥, 올해에 집질을 하느라고 아바이가 폴싹했다는 등 여러가지 사설을 많이 하셨다.                                                       아기자기한 모녀간   딸의 소개에 따르면 할머니의 기억력이 상당히 좋고 세상물정에 무척밝단다. 하기에 혜란이는 《엄마가 뻑하면 나의 따거다에 전화를 걸어서 자심해 죽겠다》며  “불만”으 로 엄마를 자랑했다.    할머니는 단을 지어 벽에 걸어 말리우는 푸른보리를 가르키며 《우리 며느리들의 병을 아바이가 거반 떼오》라며 이 푸른보리는 큰며느리가 간이 좋지 않아서 달여먹는 약인데 요즘에 크게 나아졌다며 기뻐하셨다. 《언젠가 내눈에 고기가 살아나서 수술을 했습꾸마, 사람들은 내가 눈을 떴는데도 눈 을 감았다며 내눈이 작다고 놀려 주꾸마.》 유모아적인 할머니의 말씀에 우리는 나오는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12시가 퍽 넘어서야 김교수가 돌아왔다. 《땐스를 샀음두? 몇촌짜리를 샀음두?》 《40촌짜리를 삿소…》 《그리 크게스리, 새집을 영화관을 꾸리겠습둥?》 《명년에는 농사를 적게 지읍소, 사람만 바쁘게 굴면서…》 로부간의 아기자기한 대화다. 그런데 한동안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 찾았더니 손님들에게 토종닭알을 대접하려고 동네돌이를 하였단다. 《세집이나 다녀 보았는데 모두 없습데. 요행 한족집에 물어 봤더니 다섯개밖에 없다고 합데. 그것이라도 팔라니 기어코 돈을 안받고 그저 줍데.》 할머니는 세상물쩡이 너무 빤해서 90고령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늙으막 사랑투정 교수님량주는 정말 유모아적이였다. 부모들의 본을 땄다고 할가, 그 부모에 그 딸로 혜란씨도 퍼그나 유모아적인녀자였다. 교수님은 자식이 4남 1녀다. 막둥이 혜란(57)이는 부모와 오빠들의 사랑속에서 너무나행복하게 자랐단다. 《저 딸이 없었더라면 어쨌을가?》 《… … 》 막내로 딸이 있으니 얼마나 좋냐며 딸 자랑을 하는 늙은량주의 두눈이 실눈으로 웃음꽃을 피웠다. 《우리의 혼사는 두 집부모들이 내가 낳기도전에 정했다오.》 《로친은 문맹인데다가 나보다 년상이여서 처음에는곡절도 많았구,,,》 《지금보면 정말 다행이오. 로친에게 농촌녀성의 매력이 있고 거기에 문맹이다 보니 리론적으로 나의 학술을 반박할 일이 없으니 얼마나 편안하고 화목한지 모르겠소. 》《나는 한생 채집을 하는 직업이라 무엇이나 버릴줄을 모르는 병이 있어도 로친이 평생 타발을 안 하니 얼마나 편안하오…》 교수님의 유머적인 말씀에 딸이 보충한다. 《문화차이가 많다보니 전에는 곡절이 많았답니다. 어머니는 19살에 시집을 와서 아버지를 공부 시켰다는데 그것두 모르고 아버지가 엄마를 싫다고 리혼을 하겠다고 야단을 쳤답니다.》 《우리 아버지는 따거다를 세개나 팽개쳤습다. 령감이 어디에다 전화를 치면 어느 녀자 친구한테 전화를 치는가구 어머니가 하도 밝혀서…》 《더럽다, 따거따(大哥大)를 가지고 어디다 전화를 치겠으면 치라지, 차라리 그때만큼 젊었으면 좋겠다. 다른 로친을 만날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로인들은 핸드폰을 《쑈지》라고 하는데 할머니는 학자의 부인답게 제법 따거따 라며 반론한다. 《과거에는 아버지가 리혼을 하자고 야단 쳤는데 지금은 어머니가 리혼을 제기합니다. 령감이 옷을 잘못 입었다거니, 양말이 어지럽다거니 잔소리를 하면서…》 《젊어서 구속을 받던 녀자들이 늙으면 보복을 한다더니 지금도 아버지가 성격이 강한데도 어머니는 늘 먼저 도전합니다.》 《나는 80년대 문명에 오염되였지만 우리 로친은 현대문명에 오염이 안된 록색로친이지요, …》 《록색로친》이라는 교수님의 신조어에 모두가 배꼽이 빠지도록 웃음보를 터뜨렸다. 점심술상에서 교수님은 인생에서 술이 없어서는 안된다면서 한 때는 60도 빼갈을 한근 반은 마셨단다. 《술은 정말 좋은 음식인데 술의 좋고 나쁨은 마시는 사람에게 달렸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교수님은 원래의 희망이 문학가였다며 름름한 언보(言步)로 명시두수를 읊조려 술상을 고조에로 이끌었다.   조선족《리시진》 125살은 산다고   김교수가 없는 사이에 필자는 교수님의 일기책을 펼쳐놓고 교수님의 하루하루를 읽었다. 두툼한 일기책은 달력으로 자작한 것으로 큼직하여 사용에 편리했다. 책에는 명언, 명시, 치료처방, 집설계도, 인체부위별로 표시된 속사, 손님접대,.. 아무튼 하루를 빠짐없이, 그것도 신문, 잡지독후감, 텔레비시청후감까지 기록한 백과일지였다. 필자가 교수님의 일기책을 《평론》 했더니 《그건 이기에 누구도 보면 안되는데…》하면서 너털웃음으로 《항의》를 표했다.   김교수는 중약은 무철에, 서약은 단발총에 비유하며 중초약의 약효를 설명한다. 《병원에서 쉽게 뗄수 없는 병을 민간초약 처방으로 쉽게 떼는 병들이 너무 많습니다》 《리시진의 본초강목에 인삼과 되꼬리를소개한 문장의 편폭이 똑 같습니다. 많은 약값은 약상들이 돈벌이를 위해 약효 과대선전으로 잔뜩 올린 것입니다.》 《내가 1994년에 한국서 모진 감기에 걸렸는데 되꼬리(蒼耳子)란 단방 처방으로 감기를 뗐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가요?》 이밖에도 김교수는 자기의 체험으로 병치료는 뜸이 최고란다. 《암치료에는 뜸입니다. 나는 골질증생도 뜸으로 치료합니다.》 《불이야! 하면 도 펄떡 일어서 도망친다고 하지않습니까? 병들도 불을 만나면  쩔쩔 매지요,》 《선생님들이 이번 걸음에 우리아버지한테서 몇가지 뜸치료법만 배워가도 큰 수확입니다.》 교수님의 말씀에 따른 혜란씨가 부언이 필자의 귀맛을 당겼다. 김교수는 젊어서 한쪽 신장이 병으로 공능을 거의 상실해 한때는 농학원의 《절름발이》라는 별명이 뒤를 따랐다면서 자기의 신장치료, 둘째 며느리의 림파암, 딸의 유선종양도 모두 뜸으로 뗐단다. 지금 많은손님들이 김교수를 찾아서 중초약을포함한 여러가지민간료법을 배우는데 김교수는 아무런싫증도없이 그렇게도자세하게 설명해준다. 지금까지 교수님의 신체는 아주 멀쩡하다. 량주간의 몸에는 로년반점이 하나도 없다. 단 선친들이 허리가구 불다보니 그것도 내력인지 김교수의 허리도 좀 구불기는 하지만 아픈데는 없고 행동에는 아무런 불편이 없단다. 그래서 자식들이 아버지가 100세는 문제없다는 말에 김교수는 《생리학리론대로 산다면 125세까지 산다》면서 앞날을 그리며 새 집을 지었단다. 제자는 평생 스승이신 김수철교수량주의 건강장수를 기대한다. 오기활기자                                               길림신문  2012-09-24             
362    옛 이야속의 인생조언 댓글:  조회:2486  추천:0  2021-01-27
                   수상을 벌금시킨 경찰관 어떠한 순간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일을 실천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책임과 신념을 바꾸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대방의 직책이 높다해서 굽실거리지 않고 또한 자신보다 낮은 신분의 사람들도 무시하지 앟는다.  이들은 늘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허나 주위를 살펴보면 상황에 따라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기회주의자들이 많다. 자신에게 리익이 된다고 싶은 사람에게는 온갖 아첨을 떨고 자신에게 그다지 리익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다.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되였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할 뿐만 아니라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세상에 많았으면 이 세상이 더욱 살맛이 나겠는데 말이다. 이런 옛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처칠(영국의 정치가로 두번 총리에 취임, 1953년 노벨문학상 수상)이 시간에 쫓겨 운전기사에게 차속력을 내라고 했다. 운전기사는 보통 차들보다 훨신 빠른 속도로 내 달렸다. 그런데 교통 경찰관이 수상을 태운 자동차가 과속으로 달리는 것을 보고 재빨리차를 세우도록 했다. 그리고 면허증 제시를 요구하는데 운전기사가 경찰관에게 말했다. “수상께서 타셨소.” “알고 있소. 그러나 과속은 과속이요. 딱지를 떼겠으니 벌금을 물도록 하시오.”   운전기사의 말에 경찰관이 끄떡도 하지 않고 벌금을 재촉하자 이번에는 처칠이 특유의 여송연을 입에 물고 언성을 높혔다. “이봐, 내가 누군 줄 알아?”  “예, 얼굴은 우리 수상 각하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법을 지키는 것은 비슷하지 않습니다.”  경찰관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결국 처칠은 벌금을 내야만 했다. 처칠은 의회에서 업무를 마치고 올라와 경찰총감을 불렀다. 그때 만난 경찰관을 격려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그 경찰을 찾아 특진시킬것을 명했다. 그러나 경찰총감은 과속차를 적발했다고 특진시키는 규정은 없다고 거절했다.   엄격한 자기 관리, 사회에 대한 책임, 출중한 자신감, 벼슬을 싫어하는 “생리”로 자신를 지키며 평생분투하는 이런 사람들로 세상이 하루하루가 가꾸어 진다.     오기활
361    21세기의' 리시진' 김추철 전(련재 30) 댓글:  조회:1936  추천:0  2021-01-26
                                            제 3부 ; 신문잡지료 읽는 김수철 3, 경영인을 찾으라 지난 3월28일 기자는 독자들이 민간약초에 관한 질문에 정답을 주고저 연변농학원 농학부 식물학교연실 정년퇴직교수 김수철 옹을 만났다. 교수님과 필자는 지난세기 70년대 사제간이다. 오후 4시경, 우리를 마중나온 교수님은 생각보다도 더 건강하셨다. 자애로운 실눈길로 두손을 힘껏 잡아주는 교수님이 아주 건강하다는 필자의 경탄에 며 너털웃음을 앞세웠다. 올해 87세인 교수님은 연변농학원 제1기생으로 1950년부터 1987년에 정년퇴직할 때까지 연변농학원 농학부 식물학교연실의 강사, 교수로 식물형태, 식물해부, 식물분류, 식물라틴어 등 과문의 교학과 식물연구에 전념하였다. 지금 교수님은 연변생물학회 명예회장, 길림성초원학회 고문, 대한민국자원식물학회 고문, 연변동광ALOE연구소 소장 등 직무를 맡고 석양을 빛내고있다. 교수님은 식물퀴즈이다. 1973년 김교수님이 우리를 이끌고 백두산아래 청산림장에서 15일간 중초약을 교학할 때 아무튼 어떤 풀이나 물어보면 학명, 별명, 생육지, 리용, 채집계절, 분포를 빠짐없이 알려줬다.  필자는 교수님의 높은명망을 한국에서 실증했다. 1999년 필자가 세계자연농업의선도사로 호칭받는 조한규박사님(한국)의 자연농업특강을 일주일간 수강했다. 어느 날 조박사가 필자를 데리고 서점에 가더니 이란 투터운책을(값 45,000원)을 사서 선물했다. 은 한,중두나라전문가들이 팀을무어 2년간 백두산의 유용자원식물을 탐사한 기초상에서 농학, 식물학, 약학, 림상학, 축산학 등 자연과학연구지침서로 세상에서 처음 출판을 했다. 그때 필자가 책값이 너무 비싸다니 조박사는며 특히 이 책은 김수철교수님이 집필한 값진 책이라고 하였다. 필자가 바로 김수철교수의  제자라고 하니 조박사는 오선생이 훌륭한 스승님을 만났다고 부언하였다. 교수님은 정년퇴직후14 권(편)의 귀중한 론저를 출간한 평생현역형교수였다. 교수님의 저택은 책으로 장식되였다. 심지어 광주리며 눈에 쉽게 띄우는 그릇에 마저 책으로 넘쳐났다. 교수님은 지금까지 안경을 모르며 2007년 일본 동경대학에서 주체한 국제학술대회에서 영문,일문발언고를  친히 컴퓨터로 타자 했단다.  건강비결을 얘기 하는 교수님은 주변에 개발할 중초약과 민간료법이 정말 많다면서. 값이비싸야 좋은 약이라는 편견을 청산해야 한다며 생당쑥, 익모초, 삽주, 골담초의 특별한 효능을 렬거 하면서 솔잎 한 가지로만으로도 많은 성인병을 막아낸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교수님은 을 쓴 리시진은 장사군이 아니고 나와 같은 학자입니다. 학자들은 경영의식이 없지만 의식주가 해결되였기 때문에 돈욕심이 없습니다.>> 겸허에 유머까지 우리의 만남은 37년만이다. 교수님은 연변일보와 길림신문의 애독자라며 기자들의 이름도 곧잘 외웠다. 교수님은 우리와의 만남을 대단한 영광이라며 우리더러 교수님이 스크랩한 신문기사에 친필싸인을 해 달라고 하였다. 교수님의 겸허함은 자기을 멀리함에 집합되였다. 교수님은 필자가 요구하는 자료에서 수상편만은제공하지 않았다. 교수님은 인생에서 술이 없어서는 안된다며 이 좋은 만남에 술이 없으면 안된다며 손수 술상을 차리고 젊은에게 를 대접하였다. 한때는 60도 배갈을 한 근반은 마셨다는 교수님은 술은 정말 좋은 음식인데 술의 좋고 나쁨은 마시는 사람에게 달렸단다 ., 김수철교수님은 백두산의 정기를 받으며 책무지와 길가의 풀을 안주로 술과 동무하면서 평생을 식물과 함께 하는 건강장수학자라 하겠다. 긍정적 사고로 사는 인간에게  나이는 수자에 불과하다. 필요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제자는 김교수님의 백세장수에 따르는 그의 불타는 여열을 기대해본다. 오기활                   ( 길림신문ㅡ 201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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