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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인식의 매개물로서의 공포
2009년 11월 24일 09시 27분  조회:1842  추천:36  작성자: 김혁

 

. 평론 .

 
현실인식의 매개물로서의 공포

- 김혁의 중편소설 “산장”을 읽고

 

 
이색적인 추구로 늘 독자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우리 문단의 중견작가 김혁씨가 이번에는 진짜 등골이 서늘해나는 이야기를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공포소설이라는 다소 낯선 이름의 중편소설로 해괴한 귀신이야기를 하고있는것이다. 그것도 이번 소설 한평으로 마무리하는게 아니라 일어서는 머리칼이라는 계렬소설의 제1탄으로 준비한것이라고 한다. 문학지들에서 지면을 제공해주는한 우리는 한동안 어쩔수없이 이 피와 죽음과 귀신의 세계에서 공포와 전율을 체험하면서 지낼수밖에 없을 것 같다.

 

문제작으로서의 이 소설의 파격실험이 고요한 우리 문단에 던져줄 충격과 파급효과를 상상한다면 문단의 변화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얼마간은 모두 이 소설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것으로 확신한다.

 

이 소설을 접하면서 필자가 먼저 생각했던점은 저자가 왜 하필이면 공포라고 하는 이러한 이야기방식을 선택했을가 하는 점이였다. 다시 말하면 이 공포소설의 타당성여부나 성공여하를 떠나서 좀 거시적인 관점에서 조감했을 때 왜 지금의 이 시점에서 공포라고 하는 방식이 새롭게 문제시되느냐 하는것이였다. 필자는 일단으 그 실마리를 공포의 대중성에서 찾을수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창작수기에도 나와있지만 미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공포계렬의 소설, 영화가 늘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있으며 또 최근에 있었던 한국의 공포영화 녀고괴담의 흥행을 곁에서 지켜보았던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공포는 상당한 대중성을 지니고있는 것이 사실이다. 무시무시한 사건과 인물들의 전경화가 인간의 심리에 내재되여있는 안전욕구와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여 자기도 모르게 이야기속으로 빨려들어가게 하는 마적인 힘을 가지고있는게 바로 공포라고 하는 매개물이다. 소설이 갈수록 독자들을 잃어버리고있는 오늘의 시점에서 볼 때 이러한 매개물을 우리가 여태껏 잠재워두고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이상하기 까지 하다. 물론 공포가 대중성에 영합하기 위해서 폭력 에로티즘 잔인성과 결탁하여 건전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를 위험성을 안고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러한 위험성 때문에 공포라는 이 매개물 자체를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필자는 우리 문단에 진정한 대중소설이 등장하기를 바란지 오래다.평론가들이 뭐라고 비평을 하든 상관없이 독자들이 스스로 판단하여 가슴을 조이며 읽을수 있는 대중소설(그것이 련애소설이든 무슨 소설이든)이 나타나 무미건조한 우리 소설의 관행에 시원한 바람을 불어넣어주기를 은근히 바랐었다. 김혁의 이번 시도가 이러한 대중성 획득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본다며 일단은 거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다음으로 요즘 공포가 회자되고있는 리유를 살펴보면 매체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듯싶다. 문자매체에서 음성매체로, 음성매체에서 다시 영상매체로 그 중심이 전이되는 과정에서 시청각적 효과가 극대화디면서 공포의 가능성을 더욱 크게 열어준것이다. 듣기만 해도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이야기를 눈과 귀를 통해, 그것도 컴퓨터 그래픽을 통한 생생한 모습과 음성으로 체험한다는 것은 우리가 마치 저공비행에서 느끼게 되는 스릴같은 것을 경험하게 한다. 공포적 효과가 극대화될수있는 가능성이 제공됨에 따라 공포에 대한 탐험의 빈도도 잦아지고 수위도 높아지기 마련인것이다.

 

산장김혁의 소설중에서 가장 영화에 가까운 이야기하기방식으로 씌여진 소설이다. 소설속의 묘사가 그렇고 시점이 그렇고 언어가 그렇고 몽타주기법이 그렇다. 묘사는 화면을 위하여, 시점은 카메라의 렌즈를 위하여, 언어는 대사를 위하여 존재하는것이다. 이러한 소설 시학적장치들에서도 공포를 하나의 단순하 ㄴ이야기만이 아닌, 영상화된 시청각적 감각으로 상승시켜 그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감지된다 김혁은 창작수기를 통해 영화와 소설의 영향이 컸었다고 이야기하고있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영화의 영향력이 거의 절대적이지 않았나 하고 짐작된다.

 

공포쟝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수없는 것이 귀신이다. 무속의 해석을 빌리면 귀신은 자연물이나 천체현상이 종교적 관념으로 숭앙되면서 나타난 자연신, 조상령혼 숭배에서 나온 조상신, 유가족이나 후손에 의해 가족신으로 모셔지지못한 원귀, 원령 ,객귀로 나뉠수 있다. 이들 가운데서 자연신은 수호신으로, 조상신과 원귀는 사령신으로 분류되며 조상신이 흰빛이 선의의 귀신이라면 떠도는 넋으로서의 객귀는 검은빛의 악의의 귀신이며 저주와 재양 질병의 원인으로서 공포의 대상이 되고있다. 공포쟝르에서 흔히 등장하는 귀신은 바로 이처럼 위로받지 못하는 원혼으로서의 객귀가 일반적이다. 현실의 불합리한 모순속에서 죽어서도 그 령혼이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면서 인간들을 괴롭힌다면 그것은 인간세상의 어떤 거울이 아닐가 하는 의문이 가능하게 된다. 거울이 자기 반성의 매개물이 될수 있다면 귀신 역시 오늘의 우리 사회와 현실을 조명하는 하나의 매개물이 될수 있을것이다. 역설적으로 귀신은 현실 생활속의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문학리론에서 강조하는 상징으로서의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할수 있게 되는것이다. 다시 말하면 귀신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인식하고 고발하고 비판할수 있게 되는것이다.

 

이렇게 접근할 때 소설속의 무지개산장은 많은 상징성을 띠고있는것으로 분석될수 있다. 작게는 오늘날 물질만능의 애정관이 초래한 척박한 사랑이 될수도 있고 좀 크게는 시장경제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우리 조선족 농촌의 피페한 모습의 전경화로 치환될수도 있다. 번성했던 어제날의 무지개산장과 공포의 대상으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 오늘날의 귀신산장”. 아름다운 저수지와 거기에 어울리지 않게 자리잡은 외로운 무덤, 치한으로만 보이던 필용이와 두려움없이 귀의 앞길을 막는 필용이, 소설속의 이러한 극명한 대비는 반전과 공포의 그물로 인간의 무의식속에 담긴 두려움과 불안을 끄집어내여 인정하기 싫은 현실로 우리 자신을 감싸게 한다. 현실세계에 대한 독자들의 불만과 고민은 귀신이라는 매개물을 통해 표출되며 그 과정에서 대리만족을 얻게 된다.

 

다른 공포소설과 마찬가지로 김혁의 소설에도 귀신외에 불길함이나 사악함을 의미하는 많은 상징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고양이, 어둠, 선혈, , 무덤, 외딴지역(산장) 등이 등장하여 소설의 공포적인 분위기를 더하여주며 동시에 그것들은 또한 소설시학적장치로도 작용한다.

 

이렇게 봤을 때 김혁의 이 소설은 단순한 귀신이야기가 아니라 귀신을 매개체로 한, 또는 공포를 매개물로 한 현실이야기가 된다. 대상과의 치환을 통해 드러낸 현실이야기, 귀신의 눈과 입을 통해 바라본 오늘 우리의 이야기, 공포의 안경을 쓰고 바라본 너와 나 일상의 이야기가 바로 산장인것이다

 

물론 김혁의 이 작품에서도 아쉬움은 느껴진다. 심리공포의 서사가 부족하다는점이 그중 대표적인것으로 지적될수 있을것이다. 저자가 공포의 효과성을 시각적묘사와 청각적묘사에 지나치게 집중시킨 나머지 인물들의 심리에서 심리에로 전이되는 그 공포의 과정이 소상하게 드러나지 않고있다. 김혁이 직접 패러디를 한적이 있는 리상의 그 유명한 시오감도:시 제1만 보더라도 이러한 공포의 심리이전이 얼마나 더 공포감을 확대시키는지는 잘 드러나리라 생각된다. 더구나 시나리오가 아닌 소설이라고 할 때 공포의 묘미와 우세는 시청각 감각에 의한것보다는 심리적으로 눈덩이 굴리듯 갈수록 커져가기만 하는 그 불안한 심리라고 할수있다. 이러한 불안심리, 공포심리가 새로운 불안과 공포를 조작하고 생성한다는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을줄 안다. 이러한 공포심리에 대한 자세한 묘사는 공포에 떨고있는 주인공들의 행동을 묘사하기보다 갑절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그 공포감을 전달해주리라 믿는다

 

다른 하나는 소설 첫부분부터 암시하고있는 공포분위기가 과연 소설에 효과적일가 하는 의문이다. 소설이 전지적인 시점을 구사하고있는 만큼 주인공들의 심리, 주변환경이 명랑하게 처리되고 다만 저자와 독자들만이 그 공포를 예감하고 확인하고 리해한다면 극적인 반전이나 대비 측면에서 더 효과적이지 않을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무튼 그 어느해보다도 추웠던 이 겨울에 산장으로 하여 다시 한번 몸서리를 쳤던점은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될 것 같다.

                                                  

서영빈 (북경 대외경제무역대학 한국어학과 교수)

 도라지” 2003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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