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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商周시기에 “유교”와 “도교”가 있었습니다.
-김정룡의 史論
학술적으로 엄밀하게 따지면 夏商周시기에 유교와 도교가 있었다고 말하면 상당한 어폐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역사문화이야기는 신문에 연재로 실린 글이고, 신문 특성상 편폭의 제한을 받기 때문에 방대한 말들을 매우 함축성 있게 줄여 써야 하므로 어떤 구절은 역사적인 맥락에 의해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공자를 유교의 교주라고 하는데 사실 이 관점도 엄밀하게 따지고 보면 맞는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유교는 종교의 의미로서 한나라 때 경학통치가 수립됨에 따라 본래 하나의 학파였던 유가가 하나의 종교인 유교로 전환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유교의 전신은 유가라는 얘기이지요.
유가의 창시자가 공자인듯하나 공자는 “술이불작(述而不作)”, 즉 나는 선인들의 것을 종합해서 말했을 뿐 내가 창작한 것이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공자가 말한 선인은 멀리는 요임금이고 가깝게는 주공이었습니다. 삼황오제는 한나라 때부터 나타난 전설이고 공자시대에는 요임금이 가장 최초의 조상이라 인식했으며 요임금은 훌륭한 성군이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문화의 뿌리가 요임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아울러 요임금의 문화적인 주축이 ‘儒’라고 인식했던 것입니다.
주공이 지은 <<周禮>>는 요임금 시대부터 夏商에 걸쳐 흘러온 맥락에 의해 창작된 것이고, 아울러 주공의 이념과 사상이 3천년 동안 중국을 지배해왔습니다. 주공의 이념과 사상이 곧바로 ‘儒’였습니다.
사마천이 <<사기>>를 지으면서 堯-周公-孔子-孟子 및 자신에 이르는 하나의 도통을 세우려고 애썼던 것을 보면 한나라 때부터 종교로 자리매김 되었던 유교의 뿌리가 요임금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필자는 이런 역사적인 맥락에서 夏商周시기에 “유교”가 있었다는 표현을 쓰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음 도교도 한나라 때부터 하나의 학파였던 도가가 하나의 종교인 도교로 전환되었습니다.
한나라 시기 학자들은 도가의 뿌리는 黃帝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고 황제와 노자를 한데 묶어 ‘黃老之學’이라 명명했습니다.
임어당은 “중국인은 본능적으로 도가를 받들고 문화적으로 유가를 숭상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간은 문화보다 본능이 우선이라 할 때 중국인의 본능을 지배해온 ‘道’는 ‘儒’보다 많이 앞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외학자들은 한결같이 “중국문화는 先秦시기에 이미 완성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선진시기가 바로 夏商周를 의미하며 중국문화의 주축이 바로 ‘儒’와 ‘道’였다고 본다면 “하상주시기에 유교와 도교가 있었다.”는 저의 표현이 틀린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끝으로 저의 글 <<이판사판이란 말의 유래>>를 관심 있게 읽으시고 “夏商周시기에 유교와 도교가 있었나요?”라는 질문을 해주신 연암 선생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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