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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말이 중국어가 아닌가요?”
-한국의 문화혁명에 대하여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지난 12월 중순 어느 날 저녁 한국의 한 공직에 계시는 분이 한턱 쏜다고 해서 한국인 셋, 조선족 셋 여섯 명이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 음식이 올라오기 전에 20대 후반의 한국 아가씨가 같은 또래 조선족처녀보고
“00씨는 한국말이 편해요? 중국말이 편해요?” 고 묻는다.
조선족처녀 왈 “가장 편한 말은 그래도 조선말이지요.”
이 말을 들은 한국 아가씨가 느닷없이 “조선말이 중국어가 아닌가요. 뭐 조선말이 따로 있어요?”라고 말해 좌중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필자는 너무 어이가 없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선말이 조선말이고 중국어는 중국어이지 어떻게 조선말이 중국어입니까? 조선말은 단군고조선 아니 썩 전부터 동이(東夷)의 일부였던 한 부족이 쓰던 말이 고조선이란 ‘국가실체’에 의해 자리매김 되었고 부여, 고구려, 고려 등을 거쳐 널리 보급되었을 것이고, 518년의 조선시대를 통해 오늘과 같은 모양새를 갖춘 민족 언어가 아니냐! 특히 조선말이란 개념은 고조선과 조선의 유구한 역사에 의해 오늘날까지 보존된 것이지요.”
조선말이 중국어라고 여기는 것은 한국 아가씨 한 개인의 무지문제가 아니라 나는 본다. 이는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이래, 특히 6.25를 거치고 나서 남과 북이 철천지원수가 됨에 따라 서로 韓과 朝鮮이란 나라, 민족, 언어, 문자 등 호칭사용을 부정하고 이남에서는 이북을 북한, 이북에서는 이남을 남조선으로만 부르게 만들었던 기성세대들의 잘못된 이념과 사상교육 때문에 빚어진 어린세대들의 무지결과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은 6.25이후 오늘날까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뺨치는 문화혁명운동을 추진해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중국 문화대혁명은 처음에는 권력투쟁에서 시작해서 ‘파사구(破四舊:낡은 사상, 낡은 풍속, 낡은 문화, 낡은 습관)’을 거국적으로 한바탕 떠들썩하게 크게 벌여 황하대륙이 쑥대밭이 되었으나 조상대대로 이어온 민족을 아우르는 ‘華’의 개념과 자부심만은 버리지 않았다. 1978년 잠자던 중국이 대외문호를 개방하자 해외에 흩어졌던 ‘華人, 華僑’들이 적극 발을 들여놓았고 특히 1989년 천안문동란으로 구미와 일본인의 대중국투자가 주춤할 때 그들이 주저 없이 많은 투자로 중국의 시장경제정착에 도움이 컸다. 현재까지 해외에 있는 중국계인은 자신을 ‘화인, 화교’라 하고 중국인들도 그렇게 부르고 있으며 아울러 ‘화인, 화교’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중국어라 하기보다 ‘華語’라 말한다.
중국어란 개념은 외국인의 입장에서 하는 말일뿐 중국에는 중국어란 말이 없다. 전체인구의 93%를 차지하는 주체민족인 한족이 쓰는 말을 유방의 한조에서 유래된 한어라 하고 일본과 한국처럼 국어란 말도 없다. 세상에서 국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은 일본과 한국뿐인데 일본인이 자신들의 언어가 중국과 조선반도와 구분된다는 의미에서 지어낸 말을 한국에서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중국이란 국명은 중원을 천하의 중심이라 여기고 주나라 시기부터 있어왔으나 역사적으로 줄곧 사용되어왔던 것이 아니고 19세기부터 구미인을 중심으로 외국인들이 본격적으로 ‘CHINA’와 ‘CHINESE’를 주제로 연구하고 책을 펴냄에 따라, 또 청나라 후기 국민과 중화민국 국민들이 해외교류가 빈번해짐에 따라 스스로 자신을 중국, 중국인으로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므로 200년 역사도 되나마나 하다. 그러므로 중국이 말하는 5,000년 역사란 곧 ‘華夏’의 역사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국가란 영원한 실체가 아니라 같은 문화를 공유하면서 살아남은 집단체야말로 영원한 실체이다.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중국인의 ‘華’에 해당되는 개념이 곧 ‘朝鮮’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고조선이 해체되고 조선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국명, 예하면 대한민국 같은 국명을 사용해도 무방하지만 ‘조선’이란 개념은 버리지 말아야 역사를 지키는 도리일 것이다.
허나 한국의 현실을 보면 마치 한때 ‘동무’라는 말이 이북에서 쓰는 것이라고 해서 사용을 금지시켰던 것처럼 ‘조선’이란 표현에 굉장히 거부감을 갖고 이북을 북한, 해외겨레를 한인,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한국어, 문자를 한글 등 천편일률로 ‘韓’을 붙인다.
얼마 전 중국중앙조선말방송 조선족아나운서 박일천 씨가 우수상을 탄 사실을 한국에서 보도하면서 조선말방송을 한국어방송이라 임의로 고쳐 보도했다. 한국의 모든 언론매체와 출간물들에서 전부 이런 식으로 조선말을 한국어라 옮겨놓으니 대학을 나왔다는 20대 젊은이들이 세상의 우리 민족 언어는 ‘한국어’만 존재하고 다른 표현으로 없는 것으로 알고 조선말이 중국어 아닌가라는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하기에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엄밀한 의미에서 따져보면 한국어란 개념은 현재 38선 이남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일 뿐(1990년대 초반 연변대학조문학부를 졸업한 조선족들이 한국에 와서 언어시험을 봤을 때 불합격을 맞은 사례가 많았는데 그 이유로서 한국 교수분들의 설명에 의하면 조선족이 배운 것은 조선어이지 한국어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전체 이북과 해외동포들이 사용하는 말을 한국어라 말할 수 없고 오히려 조선말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조선’이란 표현은 우리민족역사를 아우르는 개념이 될 수 있으나 한국이란 표현은 우리민족역사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말이 중국어 아닌가?’라는 한국 20대 젊은이의 질문은 소위 단군의 후예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신세대들의 비극이라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이 비극은 기성세대들의 잘못된 이념과 사상 때문에 빚어진 결과이다. 현재 20대 젊은이들은 앞으로 남북통일의 주인공이 될 터인데 이북과의 교류에서 ‘韓’만 고집하고 ‘조선’이란 표현을 거부한다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빤한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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