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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조선족문제연구자료집
연변이면 주체성, 옌볜이면 친한(漢)파?
-발음법에 대한 논란, 언어학적 접근이 필요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얼마 전에 “연변을 옌볜이라 부르지 말아주세요!”라는 글이 발표되자 이에 대한 한국 주요언론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글 쓰는 이들이 모두 문제의 본질을 떠나 정치적인 논쟁으로만 비화시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대단히 유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 문제에 대해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언어학적으로 접근하여 논의해 보려 한다.
첫째, ‘음독이냐? 중국어발음식 표기냐?’의 논란에 대하여
세인이 다 알고 있는바와 같이 우리민족은 수천 년 동안 한문을 사용해왔다. 한문은 우리민족 언어와 발음이 다르다. 그리하여 한문을 우리말 발음으로 읽는 음독법을 발명해냈는데, 하늘 천(天) 따 지(地)라 하는 이른바 천자문이 바로 음독법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이 음독법이 우리민족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쳐 현재 우리말 중 75%가 한자어에서 온 어휘이다.
한문의 발원지가 중국이므로 우리민족은 중국의 지명과 인명도 역시 음독으로 표기해왔다. 이 수천 년의 전통을 갖고 있는 한문음독법이 한글전용이 보편화됨에 따라 중국의 지명과 인명을 중국어발음 식 그대로 옮기는 표기법이 출현하게 되었으며, 드디어 한국정부에서 지시를 내리고 방송, 신문들이 따르는 상황에 이르렀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北京을 북경이라 하는 것과 베이징이라 부르는 것에 논쟁이 생기게 되는 근원이 곧바로 수천 년 전통의 음독법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전통적인 음독법을 타파하고 현실적으로 중국어발음을 따르겠는가에 있다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둘째, 한국정부가 중국어 발음을 따르는 표기법을 선택한 이유에 대하여
한중수교가 건립되었고 양국 간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다방면의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한국정부는 중국의 지명과 인명을 전통적인 음독법을 포기하고 중국어 발음을 따라 표기하는 것이 중국을 빨리 알고 교류를 더 활성화시키는 지름길이라 판단하고 선택한 표기법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정부는 중국과의 교류라는 현실적 문제에 직면하여 한중교류에 있어서 한국과 한국인이 보다 빠르고 보다 쉽게 중국에 접근하려는 의도 하에 중국어발음을 따르는 표기법을 통일로 하라고 지시를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전통적인 음독법보다 중국어발음을 따르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면 이것이 진보적인 개혁조치라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北京에서 장기체류하고 있는 한국 분에게 “‘북경’에 와 있다는 느낌과 ‘베이짱에 와 있다는 느낌 중에 어느 쪽인가?”고 물었더니 “당연히 ‘북경’이 아닌 ‘베이짱이란 느낌이 훨씬 더 강하지요.”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런 사례가 말해주 듯 한국정부의 조치가 근거 없는 개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음독을 따르면 주체성이고 중국어 발음을 따르면 사대주의?
음독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중국어 발음을 따르는 것을 쓸개 빠진 사대주의의 표현이라고 독설을 퍼붓고 있다. 이는 마치 한국인이 東京을 ‘동경’이라 하면 주체성이 있고 ‘도쿄’라 하면 친일파라고 몰아붙이는 것과 같은 못난 행위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은 왜 이렇게 유치할까? 이는 역사적으로 축적되어온 한국인의 피해의식이 불러온 결과가 아닐까?
한국인은 이러한 잠재적인 피해의식 때문에 단순한 언어학의 문제를 정치적인 문제로 비약시키기고 있다.
넷째, 중국어발음을 따르는 표기법을 역사문제와 연관시키는 것이 바람직 한 일이 아니다.
음독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연변’과 ‘옌볜’의 표현을 놓고 고구려를 들먹이고 항일을 거들고 그 땅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역사와 연관시키고 중국어발음을 따르는 한국정부와 방송, 신문 등을 민족의 얼을 잃은 00이라고 공격하고 있는바, 이는 올바른 행위라 말할 수 없다고 본다.
과거 역사가 어떠하든지 현재 연변은 엄연히 중국 내 속하고 있는 땅이자 행정구역일 뿐이다. 물론 연변은 조선족자치주라는 특징 때문에 우리 것을 지켜가고 있고, 또 특히 언어문제에 있어서 중국의 지명과 인명을 전부 전통적인 음독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다. 허나 우리 조선족이 그렇게 하고 있다고 해서 이를 한국과 한국인에게 반드시 우리조선족을 따라 배우라고 호소하거나 한국이 중국어발음을 따라 ‘옌볜’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항의할 필요성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욱 바람직하지 못한 것은 연변을 제외한 중국의 모든 지명은 중국어발음을 따라도 상관없고 오직 연변만 ‘옌볜’이라 부르지 말라고 호소하거나 항의하는 것은 편협한 지역주의의 표현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 선조들이 중국에 개척한 땅이 연변뿐만이 아니라 동북3성 및 내몽골 지역을 포함해 한반도의 두 배나 된다. 우리선조들의 얼과 넋이 연변에만 뿌려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조선족들이 연변, 연변···만을 고집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른 한 방면으로 볼 때 한국정부는 연변을 중국 내 일부로 여기고 있을 뿐 중국과 동떨어진 그 무엇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연변에 있는 延吉, 龍井, 圖門을 중국어 발음을 따라 표기하고 있는 것이다.
전 방위적으로 볼 때 한국에서 연변을 제외한 기타 중국지명을 따로, 연변을 따로 하지 않고 통 털어 통일적인 표기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허물이 될 수가 없다. 조선족이 한국과 한국인에게 연변을 내세워 특수하게 따로 대해달라는 주문은 중국 내에서 스스로 고립만을 자초할 뿐이라는 점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다섯째, 한국학자들은 3류급 코미디 발언을 그만두고 품위를 지키기를 바란다.
한국인 김창진 교수는 그의 <<金昌辰의 방송언어 바로잡기>>란 글에서 길림성을 지린성이라 하는 표현에 대해 “거기가 무슨 지린내가 나는 지역입니까?······”라는 3류급 코미디 같은 표현을 서슴치 않았다. 욕은 듣는 자가 먹는다는 속담이 있듯 이 글을 본 필자는 기분이 매우 더러웠다. 김창진 교수의 의도가 어떠하든 간에 ‘지린성’에 살고 있는 우리 고장을 지린내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이 교수가 할 얘기가 아니라고 본다.
소위 교수라는 분의 입에서 이렇듯 천박한 말이 나오게 된 것은 문제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천박한 감정을 갖고 대하기 때문이라 보여 진다. 이런 천박한 표현이 결코 주체성이 될 수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여섯째, 청도와 칭따아오란 호칭이 불러온 혼란
한국에서 현재 중국의 지명과 인명에 대해 음독과 중국어발음을 따르는 것이 혼재하고 있어 혼란이 야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인 김00는 작년 3월에 청도에 가려고 00여행사에 티켓을 부탁했다. 그런데 그가 도착한 곳이 청도가 아닌 사천성 성도(成都)였다. 그는 중국어 한마디도 모르고 당지에 지인도 없어 1주간 죽도록 고생하고 나서 청도에 갔다. 그가 한국에 돌아와 00여행사를 찾아 항공료와 추가비용을 환불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00여행사에서는 ‘청도는 발음이 청두(成都)와 비슷하므로 우리는 成都로 가는 줄 알았다. 당초에 왜 칭따아오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므로 우리 여행사에서 책임 질 일이 아니다.’ 라고 하는 말에 그는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이 사례에서 우리는 누가 옳고 누가 그른 것을 떠나 하여튼 전통적인 음독과 중국어발음을 따르는 표기법 사이 혼란이 존재하고, 또 이로 인해 실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정부와 방송, 신문 및 기업체들에서 중국어발음을 따르는 표기법을 실행하고 있다면 국민들도 하루 속히 이에 적응해야 혼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일곱째, 중국어발음을 따르려면 올바르게 쓰자는 것이다.
중국에 “강남의 귤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속담이 있다. 현재 한국에서 중국어발음을 따라 표기하는 것들을 보면 90% 이상이 밥도 아니고 죽도 아닌 귤이 탱자가 되어버리고 말았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江澤民을 장쩌민으로, 蔣介石을 지앙제스으로 옮기고 있는데 이는 실로 웃기는 일이다. 江과 蔣은 중국어로 모두 JIANG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는 장으로 다른 하나를 지앙으로 옮기는 것은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 또 우리민족 언어에 분명히 쌍모음이 있어 한문 JIANG을 능히 ‘쟝’으로 정확히 옮길 수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장’이나 ‘지앙’으로 옮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때 한국에서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조선일보 박승준 중국전문기자는 이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중국어발음을 한글로 옮길 경우 통일적으로 쌍모음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 결과다.” 그렇다면 정확히 옮길 수 있는 쌍모음을 무시하고 단모음을 사용하여 이상하게 옮기게끔 한 결정은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그럼 한국에서 진정 중국어발음을 한글로 옮길 경우 쌍모음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가? 답은 아니다. 연변을 ‘옌볜’이라 말하는 것은 그래 쌍모음이 아닌가?
더 한심한 것은 연변은 한글로 중국어발음을 정확히 따르면 분명히 ‘얜뱬’이지 결코 ‘옌볜’이 아니다. 어느 유식한 양반이 ‘얜뱬’을 ‘옌볜’, ‘얜지’를 ‘옌지’라 지어냈는지? 참으로 어이가 없는 표현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방송, 신문을 비롯해 중국어발음을 한글로 정확하게 옮긴 것을 별로 본 기억이 없다. 한국에서 한문에 도사라 자부하는 도올 선생마저 山東을 ‘싼똥’으로 옮기고 있다. 아니 산동이면 산동이고 싼뚱이면 싼뚱이지 뭐 뚱딴지 같은 ‘싼똥’이란 말인가? 그는 또 孔子를 쿵쯔라 옮긴다. 子는 중국어에서 輕聲으로서 성조가 없다. 그러므로 마땅히 子는 ‘쯔’가 아닌 ‘즈’로 옮겨야 한다. 도올 선생이 이러할진대 기타 분들의 상황이야 더 말치 않아도 너무나도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결국 한국인이 제멋대로의 표기법으로 중국인을 만나 대화할 경우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다.
물론 중국어발음을 한글로 정확히 옮길 수없는 것들도 있다. 예하면 福建省이란 福에 F음이 들어 있어 우리말로 정확히 옮길 수가 없다. 이 F음을 제외하고는 우리민족 언어가 발음이 풍부해서 거의 정확하게 옮길 수 있다. 허나 한국에서는 중국어 발음과 거리가 먼 제 나름대로의 표기법을 남용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중국에는 또 邯鄲學步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한단은 조나라의 수도였는데 거기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매우 세련되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한 시골소년이 한단사람들의 세련된 걸음걸이를 배우려고 이불짐을 메고 한단에 가서 오래 동안 머물면서 열심히 배웠다. 헌데 그 소년은 한단사람들의 세련된 걸음걸이를 배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본래의 걸음걸이마저 잃어버려 기여서 고향에 돌아왔다고 한다.
나의 생각이 기우이기는 하지만 한국인이 전통적인 음독법도 잃어버리고 중국어발음도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한단학보 신세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필자는 한국에서 주로 글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음독을 고수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하고 있다고 해서 한국과 한국인에게 우리와 같게 할 것을 주문할 필요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음독이든 중국어발음을 따르는 표기법이든 이는 한국과 한국인의 선택일 뿐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다만 한국이 중국어발음을 따르겠으면 밥도 아니고 죽도 아닌 귤이 탱자가 되는 현상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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