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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조선족문제연구집
제4부 조선족문제에 대한 논과 쟁
15. “중국에 수박이 있나요?”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한국생활을 수년간 해본 조선족이라면 한국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당황한 질문을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중국에 귤이 있나요?”, “중국에 전기밥솥이 있나요?” “중국에 00이 있나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조선족들은 ‘저것들이 중국을 보기로 더럽게 보네.’면서 속으로 욱하고 뭔가 치밀어 오른다.
그런데 같은 질문도 상대에 따라 반응이 조금씩 달라진다. 수년 전에 내가 창동에서 살고 있을 때, 주인집 할머니는 나를 자기 아들은 몰라도 조카만큼은 생각해 주셨다. 하지만 나는 그 할머니로부터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다. 다름 아니라 맛 나는 음식과 과일을 자주 가져다주시면서 중국에서 이런 걸 마음대로 먹어보지 못했을 것이니 생겼을 때 기껏 먹으라고 하신다. 나는 처음에는 할머니의 성의를 생각해서 별로 다른 말을 하지 않고 “예, 예!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얼마 후 나는 “중국에서도 이런 걸 흔하게 먹는다.”고 말씀드렸더니, 할머니는 나의 말을 믿지 않으셨다. 어찌되었든 지금도 나는 그 할머니를 잊지 않고 있다.
며칠 전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데 사무실은 냉방이 없어 사우나처럼 더워 난리다. 한국인 셋, 조선족 셋이서 더위를 물리쳐 보려고 냉장고의 수박을 꺼내 쪼개 먹는다. 한참 시원하게 먹고 있을 때 한 한국인이 “중국에 수박이 있나요?”라고 묻는다. 조선족 한 분이 “중국에 왜 수박이 없겠어요?”라고 화난 기색으로 대답한다. 한국인은 “아니, 우리 한국에서는 60~70년대까지 잘사는 집에서만 수박을 먹어볼 뿐 일반 서민들은 먹어보지 못해 현재 중국도 그렇지 않느냐는 뜻으로 묻는 겁니다.”라고 해석한다. 나는 듣다가 “당신, 이런 말을 조선족 앞에서 함부로 하면 한방 얻어터질 수 있으니 앞으로는 조심하시오.”라고 경고했다. 그날 시원하게 먹던 수박이 갑자기 목에 걸리는 기분이었다.
문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식처럼 생각해주시면서 이런 질문을 하신다면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지만, 소위 조선족을 상대로 일을 하는 한국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니 뭐라 표현해야 좋을지? 아무튼 기분이 찜찜하다.
한국인들이 “중국에 00가 있나요?”라는 질문 속에는 물론 중국을 몰라서 그런 것도 있겠으나, 한 면으로 너희 조선족은 그토록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심리를 전제로 깔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못사는 나라에서 왔으니 사람도 값싼 중국산 취급을 받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전여옥은 저서 <<일본은 없다>>에서 일본인이 “한국에 가스레인지가 있느냐?”고 물었다고, “세계화를 부르짖는 일본인이 우물 안에 개구리”라고 맹비난했다. 나는 거창하게 글로벌시대를 운운할 생각은 티끌만치도 없이 그저 한국인들에게 중국을 조금이나마 더 알기를 바랄 뿐이며 대다수가 먹고 살지 못해서 한국에 온 것이 아니라 자식공부 혹은 더 나은 노후의 보장을 위해 한국에 왔기 때문에 너무 값싼 중국산을 대하듯 조선족을 대하지 말아 주십사! 고 부탁하고 싶을 뿐이다.
다음 한국인들도 조선족들 때문에 황당해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를테면 한국인은 호박잎을 먹는가 하면 배추 푸른 잎을 가려내지 않고 김치를 담그는데, 조선족들은 한국인 앞에서 “이런 걸, 우리 중국에서는 돼지나 먹여요. 참 여기 사람들은 별난 걸 다 먹고 사네!”라고 쏘아붙인다. 이런 말을 듣는 한국인들은 겉으로든 속으로든 아무튼 “꼴깝들 하고 자빠졌네, 중국에서 그렇게 잘 먹고 잘 살믄서 와 한국에 돈 벌려 왔디야?”라고 비꼴 것이다.
한국은 50~6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조선족들보다 훨씬 가난하게 살아왔다. 그래서 중국에서 호박잎이나 돼지를 먹이는 어떤 산나물을 사람이 먹는다.
문제는 조선족이 한국인 앞에서 사실과 진실을 말해도 꼴깝 떤다고 비꼬움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며, 한국인은 “중국에 00가 있느냐?”는 질문이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당하는 쪽은 조선족이니 참으로 슬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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