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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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은 왜 음주가무를 즐기는가?(김정룡)
2008년 03월 07일 14시 18분  조회:4967  추천:56  작성자: 김정룡

재한조선족문제연구중심

제4부 조선족문제에 대한 논과 쟁


12. 조선족은 왜 음주가무를 즐기는가?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필자가 관광업에 종사할 적에 중국의 주요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당지사람들로부터 당신네 조선족은 술을 잘 마시고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는 줄로 알고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는 조선족이 음주가무를 즐기는 관습이 널리 알려졌다는 증거이다.

 우리민족의 일상 언어에 ‘수작을 걸다’ ‘수작을 피우다’ ‘개수작을 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 수작이란 말은 음주문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술상에서 주인이 손님에게 권하는 것을 수(酬)라 하고 손님이 주인에게 권하는 것을 작(酌)이라 한다. 혹은 손님에게서 받은 잔을 되돌려 권하는 것을 수(酬)라 하고 술을 붓거나 스스로 따라서 마시는 것을 작(酌)이라 한다. 아무튼 ‘수작’이란 말은 술판에서 유래된 것인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을 욕되게 하는 말로 변질되었다. 왜일까? 조선민족은 하도 술판이 많고 또 술판에서 이래저래 명분을 달아서 권하면서 마시다보면 귀찮을 때가 많다. 그리하여 ‘수작’이란 말이 사람을 욕되게 하는 것으로 변질된 것이다.

 조선족은 술만 마셨다 하면 노래와 춤판을 벌리는데 이는 하나의 관습으로 전승되어왔다. 그럼 조선족은 왜 술판 노래판 춤판을 벌리기를 좋아할까?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은 몇 가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제천의식

 제천의식이란 농경문화에 있어서 주로 5월 파종이 끝난 후와 10월 수확이 끝난 후 하늘에 향해 제사를 지내는 것을 의미한다. 기원 3세기 중국학자인 진수(陳壽)가 동이족들의 제천의식에 관해 <<위지동이전>>을 통해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흔히 5월 파종이 끝나면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남녀노소가 모여서 연일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춘다. 그 춤은 수십 명이 함께 손에 손 잡고 땅을 쾅 밟고 머리는 땅을 향했다가는 하늘을 쳐다본다. 손발이 한데 어울리는 춤동작이 마치 중국의 탁무와 비슷하다. 10월에 수확을 마치고 반복해서 이러한 제천의식을 거행한다.

 위의 기술은 마한의 제천의식에 관한 것이지만 당시 조선민족의 여러 갈래가 모두 제천의식을 거행하였으며 그 내용도 비슷했다. 고구려의 경우 그 민중은 가무를 즐기는바 나라 안에서 촌락마다 저녁이면 남녀가 모여서 서로 노래유희를 하였으며··· 5월 제천의식 때에는 나라 안에서 군데군데 크게 모여 연일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바 우리민족이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적어도 2천 년 역사는 족히 된다.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연변의 농촌에서는 모내기가 끝나거나 가을 수확이 끝나면 마을에서 소나 돼지를 잡아놓고 남녀노소가 모여서 됫놀이를 하였는데 이 관습이 역시 위에서 말한 조상들의 제천의식에서 유래된 것이다.

 둘째 한의 역사 

 한국의 한 역사학자의 통계에 의하면 조선반도는 역사적으로 천 번에 가까운 외침을 받아왔다고 한다. 우리민족은 비록 유태인처럼 나라를 잃지 않고 용케도 버티어냈으나 너무나도 빈번한 외래침략 때문에 나라는 늘 쑥대밭이 되었고 백성들은 가슴에 멍들고 한이 맺혔다.
 그리고 특히 조선시대에 들어 양반과 상놈간의 차별이 심했고 관리들은 당파싸움에다 부패했으며 또 자주 발생하는 자연재해 때문에 조선민족은 더구나 가슴에 한이 맺히게 되었다. 그래서 본래 낙천적이었던 우리민족은 술과 노래와 춤으로 한 많은 인생살이를 달래려고 했던 것이다.

   조선민족의 대표적인 노래가 ‘아리랑’ 인데 ‘아리랑’은 바로 한 많은 조선민중의 심정을 반영한 노래이다. 우리는 흔히 ‘아리랑’이 무슨 고개이름인줄로 알고 있는데 실제 ‘아리랑’은 한 많은 인생살이 때문에 가슴이 아리다는 뜻이고, ‘쓰리랑’은 가슴이 쓰리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리랑은 바로 조선민중의 아리고 쓰린 마음을 담은 노래이다. ‘아리랑’이 우리민족의 대표적인 노래가 되었다는 것은 곧바로 우리민족은 얼마나 한 많은 민족인가를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조선팔도에는 ‘강원도 아리랑’ ‘정선 아리랑’ ‘울산아리랑’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홀로아리랑’ 등 아리랑 노래가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셋째 명분의식

 우리민족은 체면이 강한 민족이다. 매사에 있어서 명분을 따지기를 좋아한다. 즉 음주가무 하는 데도 명분이 있어야 한다. 술판에서 타인에게 술을 권할 때 꼭 무슨 명분을 찾아서 연설하고는 권한다. 

 우리민족은 슬프면 슬프다고 마시고 기쁘면 기쁘다고 마시고 심심하면 심심하다고 마신다. 이래저래 술 마시는 데는 모두 명분이 있다. 연변축구팬들은 연변축구팀이 이기면 기쁘다고 마시고 지면 슬프다고 마시고 비기면 아쉽다고 마신다. 그러니까 축구경기결과가 어떻든 간에 술을 마실 명분은 다 있다.

 넷째 판의 문화

 판이란 말은 우리민족만이 쓰는 특이한 언어이다. 술판, 노래판, 춤판, 도박판, 오락판, 개판, 한판 벌리다는 등 이러한 말은 타민족언어로 정확히 번역이 되지 않는다. 

 세상에서 우리민족만큼 각종 판을 벌리기를 좋아하는 민족은 없다. 필자의 가문에서는 어른들의 생일이면 마치 큰잔치처럼 친척들이 모여 술판, 노래판, 춤판을 한바탕 벌리었다. 아마 조선족가문에서는 거의 다 이러한 관습이 있었을 것이다.

 현재 세상에서 노래방이 가장 발달한 곳이 곧 한국과 연변이다. 이는 역시 과거 조선민족의 판문화의 연속의 표현이다. 듣는 말에 의하면 연길에는 돈을 빌려서라도 노래방에 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이는 그만큼 판에 참여하기를 즐긴다는 표현이다.

 세상에서 우리민족만큼 타인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민족은 없다. 중국인과 일본인은 웬만해서는 자신의 속마음을 터놓지 않는다. 우리민족이 자신의 속마음을 타인한테 털어놓는 것은 역시 옛날부터 각종 판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자주 벌어지는 술판, 노래판, 춤판에서 서로 자신의 고충을 얘기하면서 서로 도우려고 하고 기쁨은 함께 나누면서 서로 상부상조하는 정신이 매우 강했다. 우리민족이 타민족에 비해 타인의 일에 관심이 많거나 동정심이 많은 것도 역시 각종 판의 문화에서 형성된 관습이다.

 조선족이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기를 좋아하는 것도 역시 판의 문화에서 생겨난 민족성격이다. 예하면 출국바람을 하나의 출국판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무슨 큰 판이 생겼다 하면 너나없이 뛰어든다. 연길에 수백 곳의 노인활동실이 있는데 거기에 모이기를 좋아하는 것도 역시 판에 참여하기를 좋아하는 표현이다. 그 내용이야 오락이든 도박이든 하여튼 판에 뛰어들기 좋아하기 때문에 노인활동실은 늘 만원을 이루고 있다. 판의 문화가 세상에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2002년한일월드컵> 때 길거리에 나선 7백만에 달하는 붉은악마의 참여사건이다. 축구의 종가인 영국도, 터밭이 없이는 살아도 축구장이 없이는 못 산다는 브라질도, 국내리그로 세상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프랑스에서도 한국의  붉은악마와 같은 멋진 장관을 연출해내지 못했다. 이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는 곧 민족과 민족 간의 문화 차이이며 한국인만이 해낼 수 있었다는 것은 곧 옛날부터 흘러온 판의 문화의 우월성이 표출된 결과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인의 응원열기는 하나의 노래판 춤판으로 여기고 한바탕 멋있게 벌려보려는 마음이 모여서 이루어낸 사건이다.

 다섯째 종교가 없는 민족

 중국에는 유교와 도교가 있고 또 도교이론으로 해석한 중국식대승불교가 있다. 일본에는 신도가 있다. 허나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신선사상과 무속신앙이 발달했을 뿐 교리교의가 있는 그렇다할 만한 종교가 없었다.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아 유교와 불교가 발달했으나 유교는 주로 윤리도덕과 제사의식에 많이 사용되었고 불교는 기복신앙이 위주이다. 그리하여 우리민족은 중국이나 일본처럼 혹은 서양이나 인도처럼 또는 중동의 이슬람처럼 뚜렷한 종교 신앙이 없었다. 

 우린민족은 그렇다할 만한 종교 신앙이 없었기 때문에 그 옛날 제천의식을 거행할 때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던 관습이 하나의 생활상의 종교로 되어왔다.

 서양 사람들은 술집에 가서 혼자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민족은 반드시 둘 이상 모여서 판을 벌려야 술을 마신다. 즉 우리민족이 판을 벌리기를 좋아하는 것도 하나의 종교라고 보아야 한다. 세상에 술을 마시면서 젓가락으로 술상을 두드리면서 노래 부르거나 잔칫집에서 바가지를 물독에 엎어놓고 두드리면서 반주하는 민족은 조선민족밖에 없다.

 이상 다섯 가지 이유로 하여 우리민족은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 추기를 즐긴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바 음주가무관습은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하나의 생활신앙이 되어왔으며 본래는 매우 좋은 관습이었다. 허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이 관습이 많이 변질되어 부작용이 적지 않게 드러나고 있다. 

 예하면 사촌이 병들어 죽는다 해도 술을 권하거나 술판에서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을 왕따 시키거나 갓 시집온 색시한테 기가 넘어가도록 술을 권한다.

 조선족은 이상하게 애를 유치원에 보내놓고는 쩍하면 학부모들이 모여서 술판을 벌리고 노래방에 간다. 분옥(가명)이란 여인은 애를 조선족유치원에 보냈다가 끊임없는 술판에 지쳐서 소학교는 기를 쓰고 한족반에 보냈더니 세상 편안하다고 말한다. 소학교와 중학교 학부모회의는 학부모들이 술판을 벌리고 노래방에 가는 것이 하나의 관습으로 되었다. 어린이절에 애를 하나 놓고 가족 및 친척들이 적게는 대여섯 많게는 열 명 정도 모여 음식을 갖추고 맥주를 둘러메고 야외에 가서 기껏 먹고 마시고 한바탕 노래와 춤판을 벌린다. 그것도 성차지 않아 또 노래방에 간다.

 3.8부녀절이 오면 남자들이 여성들을 위로한답시고 연일 기껏 먹고 마시고 논다. 3.8부녀절에 술판이 없는 남자는 인기나 센스가 없다는 말을 듣는다고 한다. 참으로 세상이 이상하리만치 변했다.

 서울시는 50명당 음식점 하나가 있고 기타 유흥업소도 세상에서 가장 많다고 한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놀고 하는 업소가 가장 많다는 뜻이다. 필자는 세상에서 인구비례를 따지면 연길이 먹고 마시고 노는 업소가 가장 많다고 생각한다. 출국해서 번 돈을 연길에다 투자하는 항목을 살펴보면 절대다수가 먹고 마시고 노는 업소를 꾸린다.

 조선민족이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은 본래 좋은 관습이었는데 오늘날 도를 넘어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는데 앞으로 더욱 밝은 세상을 만들어가려면 사람마다 절제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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