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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조선족발전포럼-"연변의 의미와 가치 좌담회" 발표문
한국에서 보는 연변의 의미와 가치
김정룡 한국 신화보사 기자
오늘 모임의 주제는《중국 조선족에게 연변의 의미와 가치》인데, 현재 조선족사회와 한국사회가 긴밀히 얽혀 있는 상황을 감안하여《한국에서 보는 연변의 의미와 가치》를 짚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 이 제목을 선택하게 되었다.
두 말할 것도 없이 연변하면 조선족을 떠올리고, 조선족하면 연변을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연변은 조선족의 대명사’이다.
‘연변이 조선족의 대명사’로 알려진 것은 고국인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인들의 인상 속에 한국에 온 조선족은 연변에서 온 줄로 인식하고 있었다. 한국인들의 머릿속에 이런 각인이 있어 흑룡강성, 요녕성, 내몽골 등 산재지구에서 한국에 온 조선족도 자기네 고향을 말하면 한국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대답의 편리를 위해 그냥 연변에서 왔다고 말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연변은 조선족의 대명사’인만큼 조선족인재도 많고, 민족을 대변하는 브랜드도 많다. 한국 내 중국동포타운으로 알려진 가리봉일대 음식점, 노래방, 호프, 미용실 등 자영업을 하고 있는 조선족 경영자들의 대다수가 연변출신이다. 따라서 연변을 대변하는 브랜드인 진달래냉면, 연변냉면, 초두부, 모두부, 콩장, 순대, 개고기 등이 인기가 높다. 이 면에서 볼 때 산재지구에서 한국에 온 조선족은 연변출신에 비해 자체 브랜드가 없고 경영자도 많지 못하다. 우스운 얘기지만 흑룡강성 아성시(조선족 5만명)에서 온 한 40대 후반 조선족이 초두부가 뭔지 모르고 있었다. 이는 산재지구가 필경 조선족전통음식문화에 대해 요해가 부족하다는 방증이 될 것이다.
상기조선족 특유의 브랜드를 한국 내에서 활발하게 경영함으로서 이국타향에서 당지 한식에 적응되지 않은 재한조선족에게 고향음식을 먹으며 살 수 있고, 음식문화도 풍부해져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다. 또한 한국인들도 중국음식을 찾는 수가 늘어나고 있고, 동대문에서 조선족이 운영하는 양고기뀀점에 오는 고객 중 한국 사람이 많다는 뉴스가 보도된바도 있고, 나도 한겨레신문 기자를 따라 처음으로 대림역 근처에 있는 풍무뀀점에 가보기도 했다. 풍무뀀점 사장님의 말에 의하면 용납좌석이 80석인데 보통 목,금,토에 만원이며 한국인이 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중국음식점, 조선족특색음식점, 양고기뀀점을 찾는 한국인은 주로 중국생활경험이 있거나 조선족과 결혼한 한국인배우자, 혹은 젊은 한국청년들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연변출신 조선족들이 언론부문에 근무하거나 사무실에 종사하는 수가 산재지구에서 온 조선족들보다 보다 많은 것이 사실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중국어판 신화보사는 사장이 도문 출신 조선족이고 직원 전체가 조선족이다. 한국 내 대기원신문, 看中國 등 간행물이 있으나 법륜공을 대변하는 신문이거나 혹은 정규화 된 신문이 아니다. 사실 연변 출신 조선족이 해외에서 정규화한 중국어판 신문을 꾸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노화교 2만여 명과 재한 한족 12만 명이 자기네 말 신문이 있다는 것은 그들에게 복음이 아닐 수 없다.
재한 연변출신조선족들이 이러한 장점이 있는 반면에 단점 또한 치명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재한조선족은 단합이 되지 않아 흩어진 모래알과도 같다. 즉 재한조선족을 대변하는 정규화한 단체가 없고 리더가 없다. 이 면에 관해 이유를 과거 저희가 이미 글로 발표했기 때문에 여기서 반복하지 않겠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연변출신조선족에 대한 이미지가 굉장히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 정도를 말하자면 취직 면접 볼 때 한국인 사장들도 연변출신 조선족을 꺼리고 있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연변출신들이 자신의 고향을 속이고 흑룡강성에서 왔다고 말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예전에는 산재지구에서 온 사람들도 연변에서 왔다고 대답하던 시대는 지나갔고, 연변출신이 사실을 말하면 창피하다고 속이는 이런 불미스런 일이 생긴 원인은 아래와 같은 두 가지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첫째 연변출신조선족들이 한국 내에서 너무 약게 놀고,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 있고, 둘째 특히 흑룡강성 조선족들이 예로부터 연변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편견이 한국에 와서도 똑 같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흑룡강성 조선족들이 연변사람을 깎아내리는 것으로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높이려고 드는 사례가 허다하고 심지어 연변에 와서 살고 있는 흑룡강성 출신 조선족들도 실제로 한국인 앞에서 연변사람을 헐뜯는 경우가 많다. 내가 한국 생활에서 흑룡강성 조선족이 연변사람을 헐뜯는 사례를 직접 목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연변은 흑룡강성에 비해 경작지가 적어 인심이 박하고 정치 배경에 의해 사람들이 약아빠진 것만은 사실이고 대다수가 생존력이 강하고 머리가 빨리 돌지만 반면에 너무 계산적인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연변출신 조선족들이 반드시 고쳐야 할 단점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판단하건대 연변출신 조선족들이 한국 내 나쁜 이미지는 흑룡강성출신 조선족들이 의도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하여튼 연변사람을 헐뜯고 다니는 데서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아무튼 일이 어떤 계기로 어떻게 발생했던지 연변출신 조선족은 자신의 이미지 개선에 힘써야 할 것이다. 인간이 타향에서 자신의 고향을 속이고 산다는 것은 정말 큰 비극이다.
다음 한국 언론인과 개별 교수님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연변일보보다 흑룡강신문이나 길림신문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를 따져보면, 첫째 흑룡강신문과 길림신문이 연변일보보다 한국에 관한 보도거나 재한조선족의 흐름을 싣는 글이 많고, 둘째 흑룡강신문과 길림신문이 연변일보다 한국에 와서 활동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길림신문은 조선족코리안드림에서 발생한 희노애락을 담은 글을 80여편 실었고, 그것을《넘어야 할 산, 그것은 삶의 희망》이란 책을 만들어 출간했고, 중한수교1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에 참가했고, 재한조선족활동에 관한 인물탐방을 발표했다. 나는 연변일보가 흑룡강신문과 길림신문에 비해 어떤 제약성을 갖고 있어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흑룡강신문이나 길림신문이 활발하게 나아가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조선족 수부에 있고, 조선족을 대변하는 연변일보가 활발하지 못한 점이 참 유감이다.
문학지도 연변 내 것보다 장백산잡지가 더 선호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산재지구에서 조선족문화가 활발하게 전개 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나 지나친 얘기이기도 하고 당치도 않는 말이 되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문화중심 이동론이 거론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다음 연변은 조선족을 대변하는 곳이고 따라서 기타 소수민족보다 문화, 체육 등 여러 방면에서 발전했던 것이 사실이고, 이로 하여 조선족의 위상도 많이 높아졌다. 하지만 이는 과거 묵은 터에서 이밥 먹던 얘기고, 현시점에서 보면 조선족의 문화는 세계화시대에 적응하는데 거리가 있다고 본다.
조선반도는 역사적으로 줄곧 변방문화였고, 이 변방문화를 전수받은 우리 후대들 역시 언저리문화수준을 뛰어넘지 못하고, 특히 10년 동란을 거치고 나서 우리 연변문화수준은 많이 파괴되었다.
인류사회는 주류와 비주류 문화가 있고 따라서 문화범식이 생겨났고, 비주류는 주류문화범식을 쫓아왔다. 서구는 고대그리스, 로마문화가 있었지만 AD4세기 이후부터 중동발 유태인문화로 문화범식이 바뀌었다. 유태인문화와 고대 플라톤철학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기독교문화가 2천년 동안 서구문화범식으로 자리매김 되었고, 이로 파생된 칼·맑스의 철학이, 중국이 말하자면 수천 년 동안 자체 문화범식을 갖고 있었고, 전체 동아세아에 문화범식을 수출하던 중국에 20세기를 거쳐 수입되면서 문화범식이 완전히 뒤바뀌었었다. 중국대가족의 일원인 조선족도 중국 새로운 문화범식을 그대로 따랐다. 결과 조선족은 자체 문화를 상실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졌고, 지금도 조선족은 문혁 때 전수받았던 문화범식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변신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그냥 낡은 문화범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것을 고수한다면 우리의 앞날은 밝지 못할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이 우리보다 앞선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주로 새로운 문화범식을 받아들인 것이 관건요소로 작용했다고 본다. 우리는 우리 것을 지키는 전제에서 하루빨리 새로운 문화범식에 적응해야 하고 이것이 우리 조선족의 생존의 길일 것이다.
한 가지 더 지적할 것은 연변대학 50대 중반 교수, 중국 내 여러 신문과 잡지사 편집과 기자분들이 정년퇴직 전에 한국에 온 수가 꽤나 되고, 그들도 한국에서 자신이 중국에서 배우고 다루어왔던 밑천을 활용하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아 좌절이 심하다는 것이다. 그 주요 이유는 새로운 사회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문화수준을 갖추지 못하고 연변이란 울타리 문화를 그대로 갖고 한국사회에서 활동하기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연변에서 많은 글을 써왔지만 그 수준이 한국사회에 맞지 않기 때문에 좌절이 더욱 심하다. 우리가 고국인 한국사회에 진출해서 자신의 장끼를 발휘하려면 이제부터라도 이 방면에 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 따른 이념문제, 언어문제, 사상문제 등 제반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연변의 사회풍기문제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상해나 심천에 가서 음식점, 노래방을 운영하는 조선족들의 말에 의하면 연변처럼 환보부문, 위생부문, 공상 세무부문, 심지어 경찰까지 자주 드나들면서 시끄럽게 구는 일이 매우 적어 편하게 영업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연변을 떠난 사람들 중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으나 연변은 반드시 이 면에서 개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연변을 떠나 코리안드림에 성공하여 돈을 번 사람들이 현재 대련, 청도, 북경, 남방도시에 집을 사놓고, 영업을 하는 수가 적지 않는데 역시 연변의 이러한 사회풍기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한국에서 자영업을 해본 사람들은 외부간섭이 아주 적어 편하게 운영하다 연변환경에서 자영업을 하자면 답답한 일이 한두 가지 아니고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느라 영업취미를 잃게 된다고 한다. 이 부류 사람들은 한국에서 영업을 그만두면 연변에 돌아갈 생각을 포기하고 중국 내 연해도시에 진출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돈을 번 연변출신들이 연변에 돌아와 자영업을 할 경우 외국인투자자에게 세금혜택 주는 것처럼 여러 정책상 혜택을 주어 될 수 있는 한 연변에 돌아오도록 그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한 조치라 생각한다.
고향에 대한 향수는 인지상정이다. 고향이 매력이 있다면 굳이 타향에 진출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밖에 나가 있는 연변출신과 산재지구조선족들이 연변에 돌아오게끔 매력을 갖추기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연변은 조선족의 대명사이다. 연변이 살아야 조선족이 살 수 있고, 연변이 사라지면 조선족의 존재의미가 상실될 정도로 조선족에게 있어서 연변의 의미와 가치가 중요하다 하겠다.
2008.10.2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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