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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김문학을 뜨게 했나?
김정룡 재한 칼럼니스트
지난 5월 6일 김문학 선생의 글 한 편이 조글로에 올랐고 하루 만에 클릭 수가 600을 넘었다. 이는 가히 기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글로의 독자층이 주로 연변의 지식인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를 반대하던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김문학 선생이 왜 이토록 인기가 하늘을 치솟고 있을까? 필자는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이유에서 찾고 싶다.
우선 그의 작품성의 가치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 김문학 선생은 10여 년래 50여권의 책을 써낸 다산문인이고 그의 작품은 일본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혹자는 그를 일본을 찬양하는 글을 써 일본인한테 인기가 좋다고 말하는데 필자는 이런 주장은 매우 유치하다고 본다.
왜냐? 일본인은 우리처럼 경직된 사상과 이념의 교육을 받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이 작품성을 평가하는 것이 우리처럼 편협하지 않다. 가령 일본을 찬양하는 글이라 해서 무게가 없어도 좋아하는 그런 유치한 일본인이 아니다. 고대 중국에 우수한 작품이 많이 나왔고, 조선조에 유명한 유학자들이 많았으나, 근대부터는 동양에서 학문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일본이다. 미쯔지 교수의 <中國隔意佛敎論>, 쿠로즈미 교수의 <교차역문화와 종착역문화특징과 차이 이론>은 입이 저절로 벌어지게 만든다. 학자들의 수준이 높다보니 독자들도 따라서 눈높이가 높아진 것이 일본이다. 학문분야만큼은 일본이 한국이 우습게 보는 쪽발이 아니고 중국이 우습게 여기는 ‘小日本’이 아니다.
그런 환경에서 인기를 끌자면 작품성 가치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저 막연하게 그를 일본극우세력의 뒷돈을 받고 글을 썼느니, 그래서 친일분자니 어쩌니 하는 식의 굿판을 이젠 걷어치워야 한다. 계속 이런 식으로 그를 매도하면 우리만 유치해지고 마는 우스운 꼴이 되고 만다.
김문학 선생이 일본사회에서는 그렇다 치고 왜 조선족사회에서 인기가 높을까? 다른 얘기부터 시작해보자.
한국에서 가장 인기 높은 학자가 바로 도올·김용옥 선생이다. 그는 40여권의 저작을 펴냈고 128회 TV강의를 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도올 선생의 사회 기여가 어려운 학문을 재미있게 대중화시킨 것이라 본다. 무슨 말이냐? 한국은 뿌리 깊은 양반문화가 소수 지식인이 학문을 독점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가령 독일에 가서 칸트를 배운 지식인은 자신만 칸트를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은 칸트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식이었다. 특히 한국의 유학자들은 지식을 대중화시키는 것을 반대한다. 이런 살벌한 사회풍토에서 도올 선생이 자유분방한 표현방식으로 책을 지었고 마치 코미디처럼 재미있게 강의를 진행하여 인기드라마에 버금가는 시청률을 끌었다.
도올 선생이 인기 연예인처럼 뜨자 수많은 학자와 기자 및 사회 여러 분야의 지식인들이 그를 부동한 방식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반대파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았다. “구단인 바둑선수가 왜 단수에 오르나마나한 자들을 상대해야 하나?” 이런 식으로 침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반대하고 공격하는 자가 많을수록 그의 인기가 떨어지는 반비례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정비례로 수직상승했다는 것이다. 한국은 기독교가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다. 그가 <기독교성서이해>와 <요한복음강해>란 두 권의 책을 발표하자 기독교계가 난리 났다. “그럼 당신네 대표를 한 분 내세워 TV공개토론을 하자.” 그는 이런 배짱으로 대응했다. 답은 뻔하다. 기독교계에서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역중천이 책을 많이 팔아 원고료를 천문학 수자로 챙기고 TV강의로 뜨게 되자 반대파들이 나서 죽이려 했지만 그는 죽지 않고 점점 더 인기가 높아가고 있다. 논어강의를 한 우단도 마찬가지다. 북경대학을 비롯해 여러 학자들이 시위를 벌이며 반대에 나섰으나 그녀의 인기는 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주가를 높여주는 효과만 보았다.
학자들이 뜨는 데는 이와 같은 공통의 패턴이 있다. 즉 반대파가 목소리를 높일수록 그들의 주가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높아가는 정비례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김문학 선생도 이런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연변에서 수많은 반대파가 그를 죽이려 했는데 그는 죽지 않고 오히려 인기가 높아가는 현상이 초래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2006년도에 처음 조선족사회를 비평하는 일인자로 여겼는데 그때 알고 보니 김문학이란 양반이 이미 수년 전에 조선족사회를 한바탕 떠들썩하게 만든 뒤였다. 서울에 와 쑤셔 박혀 동서고금의 이런저런 지식을 탐독하느라 조선족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연변촌놈’이 되고 만 것이었다.
“김문학이란 양반이 친일매국분자여서 중국에 못 와요.” 이것이 내가 당시 연변의 여러 양반들한테서 들은 얘기다.
해외에서 어떻게 잘나가던 만약 고향에 오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의 인생은 실패다. 문혁 때 같으면 어쩔 수 없다지만 지금 개방된 시대에 이런 비극이 있다니?
“참 안 됐네. 그래도 그 양반이 조선족이라면 고향에 몹시 와 보고 싶을 텐데.” 나의 생각이었다.
후에 알고 보니 그는 지속적으로 중국에 나들면서 책도 펴내고 중국 최고 학부인 청화대학에서 버젓이 강연을 하고 있단다.
연변에서 떠도는 여론과 상반대로 그는 죽은 것이 아니라 버젓이 살아 있고 역시 거주국인 일본은 물론이고 거대한 중국을 상대로 잘나가고 있다.
본론을 얘기하자면 아마 그의 <조선족대개조론>이 연변지식인사회의 반발을 크게 사 벼라 별 수식어가 다 붙은 것 같다. 그의 작품성을 떠나 하도 연변에서 크게 떠들어대니 필자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김문학이란 도대체 어떤 양반이지? 알고 싶어진다. 스스로 관심이 간다는 얘기다. 그래서 본래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남의 말만 듣지 말고 제 눈으로 그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어진다.
요즘 다행히 우연하게 한 사이트에서 그의 <조선족대개조론>을 읽어보게 되었다. 좀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연변에 앉아서 읽으면 반발이 심할 부분이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지만 나처럼 해외에서 10여년을 산 사람의 눈에는 별로 친일매국분자로 몰아 부칠 정도의 글은 아니라는 느낌이다.
어찌되었든 김문학 선생은 연변의 수많은 반대파에 의해 주가가 높아진 것만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김문학 선생은 연변지식인사회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한국 서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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