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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도경주의 아쉬움
관광은 유쾌하고 재미있고 소득이 있어야한다. 이를 논하는 기준은 각자 나름대로 주관의 느낌에 달려 있으나 객관적으로 식(食), 주(住), 행(行), 유(遊), 구(購), 오(娛) 등 여섯 가지 요소를 갖고 평가한다.
금강산구경도 식후경이란 속담이 있듯이 관광의 첫 번째 요소는 식(食:먹는 것)이다. 관광에 있어서 식은 당지전통음식을 먹어보는 것이 필수 코스이다.
필자는 며칠 전 중국손님 한 분을 모시고 2박3일로 천년고도경주에 다녀왔다.
첫날 저녁 19:30 경주에 도착해 마침 만찬을 먹을 시간 때였다. 경주시 고속터미널 부근 호텔에 여장을 풀고 밥 먹으러 거리에 나섰다. 전주비빔밥, 춘천닭갈비, 수원왕갈비 하는 식으로 경주의 지방특색음식을 이리보고 저리 살펴보아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늦은 시간인데도 천마여행사사무실이 불이 켜져 있어 방문하여 직원에게 물었다.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더니 경주는 특색음식이 없다고 말한다.
이튿날 가이드한테 물으니 대답은 여전히 없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타지에서 친구들이 경주에 오면 뭘 대접해야 하는 것이 걱정거리란다. 욕은 듣는 자가 먹는다는 속담이 있다. 필자가 천년고도에 지방을 대표하는 음식이 없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하니 가이드는 가볍게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주(住)는 어느 도시를 가나 고급호텔부터 시작해 민박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레벨로 갖춰져 있어 고객이 수요에 따라 고르면 그만이기 때문에 현대관광에 있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행(行)도 어디를 가나 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고 교통수단이 잘 구비되어 있어 문제가 없다. 다만 관광코스시간안배만 잘하면 행에 불편이 없다.
관광에 있어서 유(遊)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유(遊)는 구경이다. 경(景)은 자연경관과 인문경관으로 나눈다. 자연경관은 말 그대로 신이 인간에게 선물해준 자연경치이고 인문경관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건축물 혹은 고물이다. 자연경관은 나름대로 특이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있어야 하고 인문경관은 역사문화의 특색이 두드러지게 관광객의 눈길을 끌어야 한다. 중국의 계림산수나 운남의 시쐉빤나(西双版納)가 자연경관이고 만리장성과 자금성 및 서안의 병마용과 비림 등은 인문경관에 속한다. 한국의 경우 제주도가 자연경관이고 천년고도의 경주는 인문경관이다.
중국 서안에 가면 공항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도중 도시성벽이 한눈에 안겨와 고도라는 느낌이 확 안겨온다. 병마용과 진시황능묘, 비림, 화청지 등 관광지를 유람하면 진시황이 떠오르고, 당태종이 보이는 듯하고, 양귀비를 상상하게 된다.
북경에서 만리장성을 구경하면 2천 년 전 진시황의 스케일이 떠오르고 자금성을 돌아보면 명·청역사가 회억된다. 리차드·닉슨이 1972년 북경을 방문했을 때 만리장성과 자금성을 보고 “중화민족의 깊이와 넓이를 알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고도라면 역사적인 숨결이 살아 있어야 한다. 유럽에 가도 신전이나 궁전이 바로 고도를 증명하며 아울러 그 민족의 역사를 증명한다.
경주는 기원전 57년 박혁거세가 나라를 세웠고 935년 제56대 경순왕이 왕건에게 종묘와 사직을 바칠 때까지 8년이 부족한 천년의 고도이다.
물리적인 역사는 분명하지만 오늘날 관광객이 그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정말 유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천마총, 첨성대, 안압지, 김유신장군묘, 분황사, 국립박물관, 불국사, 석굴암 등이 경주의 관광코스인데 다 구경하고 나서 천년의 고도가 살아 숨 쉬는 것을 피부로 확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만약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황룡사가 살아 있다면, 만약 옛 신라궁궐이 잔존해 있다면 그나마 말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는 약소민족으로서 천 번에 이르는 외침에 의해 고대문물이 회손 되고 약탈당하는 뼈아픈 역사를 겪어왔다. 경주도 이와 같은 역사맥락에 의해 천년고도가 숨이 끊겼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구(購)도 관광내용 중 중요한 요소이다. 먹는 것이 중요하지만 먹고 나면 없어지기 때문에 남는 것이 없다. 관광하여 물리적으로 남길 수 있는 것은 특산품이나 기념품을 구입하여 보존하거나 타인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현대관광은 코스요금을 줄이고 고객의 쇼핑으로 이익을 남기는 장사를 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중국관광은 고객쇼핑이 지나쳐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어찌되었든 이에 의존해 외화를 척척 벌어들이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한국관광은 서울명동에서 화장품과 의류쇼핑이 잘되고 있는 외에 기타 구(購)가 활성화 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주관광의 경우 구(購)가 말이 아니게 죽어 있다. 가이드의 소개에 의하면 경주시내에 경주빵가게가 백여 개가 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거리마다에 물론이고 관광지마다 경주빵가게가 다닥다닥하게 줄지어 있다. 이것이 경주관광에 있어서 유일한 쇼핑거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주빵이 경주의 대표브랜드인 것은 좋지만 먹고 나면 사라져 버려 기념으로 남길 수가 없다.
천년고도로서 옛날 신라를 알리는 특산품이나 기념품이 없다는 것은 정말 유감이다.
오(娛)는 오락이다. 태국에 가면 전통태국무술을 볼 수 있고 트렌스젠더(人妖)의 문예공연을 관람할 수 있고 여성생식기기공표현을 관광코스로 지정하여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중국에 가면 서커스를 보고 발안마를 받는 코스도 있는데 이는 관광에 있어서 오락이다. 오락코스를 만드는 것은 고객의 호주머니 돈을 끄집어내려는 것이다. 손님이 즐거우면 돈 파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천년고도의 경주는 오락이 전무하여 관광이 재미를 느낄 수가 없다.
1993년 필자가 태국관광을 다녀왔다. 사실 태국은 자연경관이나 인문경관이 별로다. 그런데도 5박6일 관광코스를 만들고 식·주·행·유·구·오가 유기적으로 잘 구비되어 손님을 즐겁게 한다.
경주는 천년고도이고 태국에 비해 볼거리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구·오 등 관광의 주요 삼대요소가 부실해 국제관광객 유치를 활발하게 진행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중국동포타운신문 2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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