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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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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인- 조향
2015년 02월 07일 21시 32분  조회:2610  추천:0  작성자: 죽림


 
 
 
시인 조향의 빛과 그늘 


극우 이념성향… 문단'이단아' 낙인
군사 정권시 매카시즘 광풍 주도
스캔들 폭로·신문사 테러 전력도
현대시 업적, 저돌적 기질에 묻혀

 
 
 
조향은 항시 빨간 페인트 통을 들고 다니는 시인으로 보였다. 빨강 물감을 가득 채워놓고 필요할 때마다 뿌리고 칠하기 위해서다. 물론 그는 페인트공은 아니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현대시의 전파자요, 창조자인데다 그 힘이 쩡쩡 구덕골을 울리는 동아대 교수였다. 아니 교수 중의 교수로 자부했던 사람이다.

그만큼 그 자신의 시나 쉬르레알리슴에 관한 강의는 딴 사람의 추종을 용납하지 않는 독보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어찌된 영문인지 기성문단에선 아예 기피당하거나 상종하지 않으려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었다.


부득불 그에 대한 사나운 인심의 근원을 찾자면 한국전쟁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두 가지 흐름으로 나눠 그가 인심을 잃은 얘기를 해야겠다. 그는 기회만 있으면 이념 문제를 들고 나와 동료나 선배 문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더구나 5·16군사쿠데타 때는 군부가 지휘하는 사회정화운동에 적극 참여, 그 나름대로의 안목으로 대상자를 골라 빨강 리스트에 올리는 역을 맡았다.

이러한 사실은 그 보조역을 맡은 그의 제자 교수가 증언한 바 있다.

1970년대 어느 날, 서울의 박남수 시인이 부산에 내려왔다. 전화로 '부산 커피'에 좀 나오라는 것이었다. 광복동에 있는 이 다방은 조향이 잘 가는 곳이었다. 얼른 내키지는 않았으나 필자를 문단에 데뷔시켜 준 분의 말이라 거역할 길이 없었다. 그 자리에 놀랍게도 박남수는 조향과 마주 앉아 있지 않는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내색은 할 수 없고 차를 함께 마셨다. 비단 박 시인뿐 아니라 피란 온 북한출신 문인들이 그의 붉은 리스트에 올랐다는 얘기를 들은 바 있기 때문이다. 당시로서 일단 빨간색으로 낙인찍히면 살아남기 어렵고 살아난데도 생존자체가 위협을 받는 때가 아니던가. 박남수는 부산에 내려올 때마다 맨 먼저 자신에게 페인트칠을 한 조향을 왜 만나는 것일까. 박남수 시인은 "그가 나에게 용서를 빌었기 때문"이라고 짤막하게 털어 놓았다. 용서를 빈 자에 대한 예우로써 부산에 오면 맨 먼저 만난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관용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이데아 문제'로 다른 사람의 가슴에 페인트칠을 한 경우지만 다른 사례 하나는 얼굴에 페인트칠을 하여 창피를 준 일대 폭로사건이 있었다. 부산이 피란 수도 때이다. 당시 주간지에 한 페이지에 걸쳐 김동리와 손소희와의 스캔들이 대서특필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조향이 직접 제공하고 쓴 기사였다. 이들 두 작가는 정식으로 재혼이 이뤄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적잖은 파문이 일었다. 두 사람이 한낮에도 남포동 한가운데를 팔짱을 끼고 활보한다니, 그들의 아지트가 영주동 산기슭에 있다느니 하는 매우 구체성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피란지 부산 문단이 곧 중앙문단이었던 시절이다.

피란 온 문인들은 물론 부산쪽 문인들까지 충격을 받을 만한 기사였다. 조향의 저돌적 기질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기성 문단의 우상에 대한 파괴적 행동양식이라고나 할까. 해석 나름의 폭로기사가 그를 일약 겁을 모르는 '부산의 나이트' 쯤으로 인식되게 했다.

그런가 하면 70년대에 와서 동아대의 캠퍼스 확장 문제와 구덕공원 점유관계를 둘러싸고 부산일보가 시민 편에 서서 동아대를 한창 공격하고 있을 때 그가 부산일보를 타도하는 일선에 나섰다. 윤전기에 모래 한 줌 뿌리면 끝장 보는 일이라고 부산일보 바로 뒤에 있는 마로니에 다방에 앉아 거의 공개적으로 테러를 지휘하기도 했다. 당시 동아대생들이 편집국에 난립, 곤봉을 휘두르고 집기를 부수는 등 일대소동이 벌어졌다. 위의 몇 가지 예를 보듯이 그가 극우적 행동 양식에 젖게 된 것은 해방공간에서 좌파인 건준(建準) 일부 적색인사와 투쟁한 전력 이후라니 그 속내를 소상히 헤아리기 어렵다.

결국 서울 등지의 예술인들에게도 이념적 공세를 가해 기피인물로 간주됨으로써 그의 쉬르레알리슴 운동조차 순수하게 바라보게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조향의 문학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 그가 재직한 동아대에 대한 충성은 지극했다. 부산일보를 상대로 한 그의 행동만 봐도 총장이 탄복할 만한 일이 아니던가. 감히 신문사를 상대로 테러를 감행하다니…. 그러나 그는 그 자신이 차기 총장을 노린다는 모함에 휩쓸려 동아대를 떠난다. 그가 당시 병원에 입원중인 정재환 총장을 만나 해명하려 했으나 정 총장은 이미 결심을 한 터였다. 조향은 예닐곱 번이나 병상을 찾아갔다. 총장은 조향이 왔다하면 눈을 딱 감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이쪽으로 오면 총장은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저쪽으로 다시 가면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고 자신이 설 자리를 잃은 것을 확인한 그 날 돌아와 짐을 꾸리고 무작정 서울로 떠나야 했다.


 
 
거침없는 연애 즐긴 고독한 별
여교수와 팔짱끼고 광복동 거리 활보
장례식때 젊은 여교사가 관 붙들기도
문단서는 냉대받아 쓸쓸한 말년 보내

 
 
 
쉬르레알리슴의 왕국에서 미완의 황제로 군림했던 조향. 그는 일상인으로서, 자기류 시학의 명교수로서 명성을 얻었으나 한 인간으로선 끝내 한을 품고 사라진 고독한 별이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며 다닌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부산의 환락가는 광복동 거리였다. 서울의 명동과 진배 없었다. 조향은 이 거리를 너무 당당히 보란듯이 D대 체육과 여교수와 팔짱을 끼고 다니는 것쯤은 예사로 여겼다. 60년대는 지금의 시각과는 아주 딴판의 시대였다.

조향은 이 거리에서 제자들을 만나도 스스로 팔짱은 풀지 않는다. 언제나 푸는 쪽은 여인 쪽이다. 조향은 거리에서 제자를 만나 곁에 팔짱을 끼고 오던 여교수가 팔을 풀면 그 여교수를 향해 "좋아하는 사람의 팔짱을 끼고 걷는 것이 뭐가 부끄럽고 죄가 된다고 주저해. 여기 걸어 다니는 저 신사들도 알고 보면 다 위선자야." 그는 이렇게 사뭇 비분강개조로 설파한다. 도리어 제자들이 질려 그 자리를 뜨고 싶어 한다. 여류 시인 김춘방과는 아예 드러내놓고 팔을 끼고 다녔다. 필자도 여러 번 목격했던 사실이다. 김춘방과의 사이에 낳은 딸애를 집에 데려와 기른다는 말과 자기 큰딸이 그 애를 좋아해서 참 다행이란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 이전 50년대 후반에는 같은 과의 제주도 출신 J양과의 염문이 파다했다. 그는 23세 때 첫 결혼했으나 첫 부인과의 중매에 불만을 품고 초등학교 교사시절 동료와 사랑에 빠지고, 일본인 여교사와의 염문이 말썽이 되어 좌천되기도 했다. 줄곧 별거 해오던 첫 아내와 이혼하고 재혼하지만 그의 여성 편력은 그치지 않는다. 그가 자신의 속말을 숨기지 않고 털어 놓는 제자가 바로 신라대 총장을 역임한 시인 김용태다.

그의 전언에 따르면 여인들을 가까이 두는 이유를 물었더니 "이 사람아, 사랑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어. 사랑이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위대한 힘"이라고 말했단다. 이를테면 명예나 돈이 아무리 있어도 애틋한 사랑이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다. 김춘방이 늘 불쌍하다고 말해 왔다. 춘방이 일탈의 삶을 산 까닭도 6·25전쟁 중 중국인과의 뜻하지 않은 결혼이 가져온 결과였다. 그녀가 나중에 자살한 것도 결혼 생활의 불행과 더불어 아들의 걷잡을 수 없는 탈선이 복합되었기 때문으로 보고들 있다. 그녀는 경기여고를 나왔고 부산 최초로 부산극장에서 발레를 추었고 그 뒤에 시를 썼다.


 
  용두산 공원 내 조향 시비. 
 
그는 여인들과의 관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한마디로 초현실주의는 위선을 가장 혐오한다. 그것이 사실주의와 다른 점이다. 연애를 하려면 위선적으로 사실주의적으로 하지 말고 자기처럼 초현실주의로 당당하게 해야 옳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두 60년대의 일이니 망정이지 요즘 같은 세태였다면 조향은 여인 편력 그 하나만으로도 강단에 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의 여인 편력은 서울에 가서도 쉬지 않아 기어이 장례 날 하관 때 일이 터졌다. 조향의 시신을 하관하려 할 때 26세의 초등학교 교사가 관을 붙들고 늘어졌다. 사랑은 당당히 초현실주의로 해야 가장 순수한 것이라는 교조적 신앙을 가졌던 그의 초현실주의의 연구회 회원이 주위의 눈을 전혀 의식치 않고 몸소 실천한 것이다. 대담하게도 관을 붙들고 "선생님! 저를 두고 어디로 가시렵니까." 그리고 "저도 함께 묻어 달라"고 울부짖었다. 그 울부짖음이 지나치다 보니 옆에 있던 부인이 "저 년도 어서 같이 묻어라"고 고함쳤다는 일화가 남아 있다. 그의 시비는 사후에 용두산 공원에 '부산을 살다간 시인' 속에 포함되어 다음 시가 돌에 새겨졌다.

'열 오른 눈초리, 한잔한 입모습으로 소년은 가만히 총을 겨누었다/ 소녀의 손바닥이 나비처럼 총 끝에 와서 사뿐히 앉는다. 손끝에선 파아란 연기가 물씬 올랐다./ 뚫린 손바닥의 구멍으로 소녀는 바다를 내려다 봤다. / -아이 어쩜 바다가 이렇게 똥구랗니? /놀란 갈매기들은 황토산태바기에다 연달아 머릴 처박곤 하얗게 화석이 되어 갔다.'('EPISODE' 전문)

시인 조향은 1917년 경남 사천군 곤양면에서 태어나 진주고보를 나와 대구사범 강습과를 거쳐 일본대학 예술학원에서 수학했다. 1940년 매일신보 신춘문예에 '첫날 밤'이 입선되어 문단에 발을 디뎠다. 그는 일찍 동아대 국문과 교수와 문과대학장을 역임했으나 말년은 쓸쓸했다. 문단 쪽에서 그를 반기는 이가 거의 없다시피 해 서울로 온 뒤 그의 초현실주의 시학에 동조하는 모임이 있던 강릉 해변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다. 67세, 1984년의 봄이었다. 문학과 일상의 행위가 모순되는 일은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비록 그의 죽음은 릴케 같은 아름다운 모순의 죽음이 아니더라도 문학은 문학대로 평가해야 하는 경우다.

 



바다의 층계
                                                                              -조 향-
                                                       

 

 

 

낡은 아코오뎡은 대화(對話)를 관뒀습니다.

 

―여보세요!

 

<뽄뽄다리아>

<마주르카>

<디젤 · 엔진>에 피는 들국화

 

―왜 그러십니까?

 

      모래밭에서

수화기(受話器)

      여인(女人)의 허벅지

         낙지 까아만 그림자

 

비둘기와 소녀들의 <랑데·부우>

그 위에

손을 흔드는 파아란 기폭들

 

나비는

기중기(起重機)의

허리에 붙어서

푸른 바다의 층계를 헤아린다.

 

 

 

 

 

         -<한국전후문제시집>(1952)-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초현실주의적, 모더니즘적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현대문명과 상대적으로 무력하게 된 인간의 명암이 미묘하게 깔리면서, 도처에 극적인 이미지의 전개가 참신하다. 대개 이미지는 시인의 관념의 도구로써 쓰이게 마련인데, 이 시에서는 이미지 그 자체로 동원되어 한 편의 시를 이룬다. 이렇게 해서 순수시, 절대시가 되고 만다. 초현실주의 시가 난해하면서도 읽으면 매력이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시는 1950년대 초현실주의 작품을 썼던 조향 시인의 대표작이다.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평자들은 프랑스 초현실주의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 원리를 도입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는 특이하게도 초현실주의 문학 운동에 평생을 바친 사람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근거한 무의식의 자동기술을 시작(詩作)의 근간으로 삼는 초현실주의 시들은 일반 독자에겐 매우 생소하고 난해하다. 그는 시에 외래어를 대담하게 도입하고, 산문적 · 설명적 요소를 철저히 배격하면서, 상상의 영역에 절대적 자유를 부여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무의식의 심상을 발굴한 후 그것들을 비약 · 충돌하게 하는 초현실주의적 시풍을 우리 현대시에 실험한 대표적 시인이다. 그는 생전에 시집을 내지 않은 걸로도 유명하다.

앞서가거나 독창적인 사람은 대개 이단적이고 저항적이다. 그것이 도전과 공격에 대한 유일한 자기방어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귀재나 천재들의 이해하기 힘든 기벽이나 기행 등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과 문학적 이념이나 노선을 달리하는 다른 문학 집단이나 문학인들과는 아예 교류를 기피했다고 한다. 그는 철저하게 초현실주의 문학을 이론화 · 작품화하는 일에 정열을 기울이며 완고하고 집요하게 자기 영역을 고수했다. 1956년에 조봉제, 이인영 등과 '가이가(Geige)' 동인지를 내었으나 창간호가 종간호가 되었다고 전한다. 1961년 군사 쿠테타 이후 사회정화위원회의 악역을 맡아 부산지역 예술인들의 경원과 기피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특이하다. 그는 항상 당당하고 세속적 평판에는 초연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의 곁에는 늘 여인이 있었다고 한다. 비난하는 사람에겐 이렇게 응수했다고 한다. "나는 공개적으로 떳떳하게 연애를 한다. 겉으로 도덕군자연하면서 뒷전에선 온갖 부도덕을 자행하는 위선자들과는 다르다. 초현실주의는 가식을 가장 싫어한다. 사랑이란 삶의 원동력이자 흐르는 물처럼 머무를 수가 없는 것이다."

조향 시인의 장례식 장면을 신태범 작가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유족들과 조객들의 흐느낌 속에 천천히 고인의 관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손수건으로 연신 눈물을 닦어내며 흐느끼고 있던 한 여인이 갑자기 관을 붙들며 절규했다. "선생님! 이렇게 혼자 가시면 저는 어떡하란 말입니까!" 사람들은 잠시 의혹의 시선을 모았다. 첫눈에도 빼어난 미모의 그 여인은 모두에게 낯선 사람이었다. 여인은 관을 내리고 있는 사람의 팔에 매달리며 계속 울부짖었다. "저도 선생님과 같이 묻어주세요!" 1984년 여름 초현실주의 시인 조향(1917~1984, 본명 조섭제)의 장례식 도중에 일어난 일이다.'

 

◆ 시를 왜 낯설게 써야 하는가 : 퍼온 글

낯설게 하기, 즉 데빼이즈망(depaysement)의 본뜻은 고향(paynatal)에 편히 길들어 있는 것들을 일부러 낯선 곳, 타향으로 보내 불편하더라도 낯가림을 겪도록 유도한다는 뜻을 지닌 불어의 어휘(de-paysement)에서 연원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낯선 표현, 낯선 기법에 의해서만 독자나 감상자의 관심과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낯익은 것들은 지겹도록 우리를 지루하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그러므로 낯익은 것들은 낡은 것이나 다름없으므로 우리의 지각을 자극시키기는커녕 우리의 의식을 게을러지게 하거나 무감각하게 만든다. 가령,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라는 농담을 처음 들었을 때는 재미있는 표현에 웃음이 났지만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들었을 경우는 다르다.

이런 관점에서 훌륭한 문학 작품이란 사물을 이화(異化), 끊임없이 낯선 관점으로 이끌어냄으로써 감상자, 관객, 독자의 의식을 혁신적으로 일깨워 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의식이나 언어 습관은 일상화되거나 기계화, 자동화되기 쉽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 새로운 기법으로 기존의 의미나 의식을 파괴하고 자율적 언어에 의한 독창적 의미의 틀을 이끌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일상적인 언어와 자율적인 언어의 차이란 평범한 보행과 예술가의 춤, 안무를 비교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문학적 언어 표현, 즉 자율적인 언어란 무용가가 창의적인 동작을 만들어 안무하는 춤과 같다고 보면 된다. 이와 반대로 일상적인 걸음걸이는 누구나 타성에 젖어 다만 걸어다니는 것 그 자체, 보행만을 의미하므로 무용가가 취하는 낯선 걸음걸이나 예술적 동작, 무대 위의 스텝과는 아무 연관도 없고 목적의식 자체도 다른 것이다. 자율적인 언어란 새로운 표현, 새로운 의미망을 구축한다는 의의를 지닌다. 무기력한 언어습관에 의해 무뎌지고 무감각해진 세상을 새롭게 자극, 각성시킴으로써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에 깊이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2009. 06. 09. 김영찬)

[출처] 바다의 층계-조향|작성자 꿈꾸는 섬





조향(趙鄕) 시인의 시,


     
 에스뀌스



ESQUISSE
 

 

 


 

 


                             ―조향(趙鄕)
              1
눈을 감으며.
SUNA는 내 손을 찾는다.
손을 사뿐 포개어 본다.
따스한 것이.
―――― 그저 그런 거예요!
―――― 뭐가?
―――― 세상이.
SUNA의 이마가 하아얗다. 넓다.


             2
SUNA의.
눈망울엔.
내 잃어버린 호수가 있다.
백조가 한 마리.
내 그 날의 산맥을 넘는다.


             3
가느다랗게.
스물다섯 살이 한숨을 한다.
―――― 또 나일 한 살 더 먹었어요!
SUNA는 다시 눈을 감고.
―――― 그저 그런 거예요!
아미에 하얀 수심이 어린다.

  
             4
―――― 속치마 바람인데.……
―――― 돌아서 줄까?
―――― 응!
유리창 너머 찬 하늘이 내 이마에 차다.
「머언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됐어요.

  
             5
SUNA가 화장을 한다.
―――― 화장도 예술 아녜요?
SUNA의 어깨 넘으로 내 얼굴이 쏘옥 돋아난다.
나란히 나와 SUNA의 얼굴이. 거울 안에서.
―――― 꼭 아버지와 딸 같아요.


             6
SUNA의 하얀 모가지에 목걸이.
목걸이에 예쁜 노란 열쇠가 달려 있다.
―――― 이걸로 당신의 비밀을 열어 보겠어요.


             7
STEFANO의 목청에 취하면서.
눈으로 SUNA를 만져 본다. 오랜 동안.
―――― 왜 그렇게 빤히 보세요?
―――― 이뻐서.
―――― 그저 그런 거예요!


             8
나의 SUNA와 헤어진다.
까아만 밤 ․ 거리 .
택시
프론트 그라스에 마구 달겨드는.
진눈깨비 같은 나비떼 같은.
내 허망의 쪼각 쪼각들.
앙가슴에 마구 받아 안으며.
SUNA의 눈망울이.
검은 하늘에 참은 많이 박혀 있다.
깜박인다.
「그저 그런 거예요」




               *自由文學, 4월호(1960년)


조향(趙鄕)전집 <열음사> 1994년 간행(刊行). 

 

 

ㅡㅡㅡ(추천글 한편 더...)

거의 반세기 전에 씌여진 조향 (趙鄕)의 시, <바다의 층계>와 같이 다소 특이한 시를

이 시를 의도적으로 소개하는 저의 의도는,

쉽고 암송이 잘 되어 뭇 사람들에게 자주 읽히고 자주 거론되는 시들이라면 구태여 시간랑비하면서 시평하지 않으려는생각이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쉬운 주제로 쉽게 풀어간 시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왜냐면 복잡한 현대문명 속에서 사는 저에게 이해인, 서정윤, 용혜원, 원재훈 등의 시인들이 노래하는 정서나 어법은 별천지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의 시는 진통제와 같은 효능이 있어서 이제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읽으면 마음 이 편해지고 정신적 위안과 기쁨을 준다는 사실에 저는 주목합니다. 이 시대를 사는 저는 , 그렇지만, 웬일이지 그들 시에서 위안이나 기쁨은커녕 미구에 닥쳐 올 예고 없는 불안만을 앞당겨 느낍니다. 이 시대는 분명 불합리, 모순, 불소통, 애매함, 불신, 모호한 시대로써 인간성 회복을 위 한 반문명 운동이라도 부르짖어야 할만큼 문명 자체가 위험 수위의 타락 지점에 와 있는 데 시인들은 그렇게 안이할 수만 있는가 하는 위기의식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 시대에 맞는 오브제와 이 시대에 맞는 어법이 따로 있어야 하겠거니 하 며 이 땅에 등장할 위대한 시인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대중과의 소통? 실은, 그 것이 소통이 아니라 오해일 수도 있습니다. 안 읽히고 안 들어오며 이해 안 되는 시가 어쩌면 현대인이 처한 상황 그대로 이며, 그 불통과 불안, 미완성, 난해성, 애매함, 해석 안됨이야말로 소통 안 되는 문명자체의 속성이라 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치료약 대신 진통제가 필요하듯이, 편안한 정서로 편안하게 노래하는 시와 시인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저는 의문을 갖음과 동시에 그렇지만 그럴 수 있다고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조향의 시에 녹아있는 이색적인 정서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조차(오늘날의 contemporary 한국현대시단에서조차도) 그렇게 낯익은 것은 아닙니다. 그는 순수 이미지즘 image pure을 주장한 보기 드문 모던이스트였지요. 그가 추구한 세계는 근대문명, 즉 메카니즘 속에서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겠습니다. 즉 기관차, 기중기, 아코디언, 전화기 등의 기계, 기계문명 속에서 인간이 향유할 낭만적 공간은 과연 어디란 말인가, 이 각박한 현대에 인간의 낭만이 병존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 에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도저히 들어설 수 없는 자리인 기중기 와 기관차, 전화 벨 소리에 자연의 일부라할 허약한 존재인 들국화와 나비를 끼워 넣는데 절묘한 기법 데뻬이즈망 을 도입하여 완성한 시가 바로 <바다의 층계> 라고 생각합니다.

 

이 극한 대비에 의한 꼴라쥬기법의 완성은 조향 시인에게 적어도 희열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우리가 편안하게 읽어 내려간 시에서는 느끼지 못한 또 다른 기쁨과 성취를 어떤 독자들은 스스로 얻어냈을 것입니다. 전에 제가 소개한 박정대 시인의 시는 조향의 모던이즘 시에 일련의 맥이 닿아 있는 것 같다고 저는 파악합니다. (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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