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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名詩 공화국
461□일찍 늙으매 꽃꿈□이선영, 창비시선 227, 창작과비평사, 2003 시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기실 새롭게 얻은 그 인식을 기존의 다른 인식으로 대체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어떤 것으로 대체하여 표현한다는 것은 익숙한 것으로 낯선 것을 소개하는 것이고 그것이 비유의 고질병이면서 새로운 면이다. 그런데 시가 새로운 인식으로 지향할 때가 있다. 이미 있는 관념과 세계가 탄력을 잃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증이 타오를 때이다. 한 세계관이 저물어갈 때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이미 존재하는 세계가 탄력을 잃고 삶의 중심 노릇을 해주지 못할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이 시집은 그런 지점에서 타오르는 꽃이다. 일상 속의 느낌과 인식으로 주제로 하고 있는데, 그것이 자신의 시각으로 보고자 하는 채찍질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벽은 갈수록 단단해진 공법으로 만들어졌기에 여의치 않다. 망치조차도 퉁겨내는 것이 요즘 아파트 벽의 공법이다. 그 벽에 구멍 뚫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나 또한 포기할 수 없는 것임은 분명하다. 벽을 뚫는 방법은 자신의 담금질하여 더 날카롭게 더 단단하게 하는 방법뿐이다.★★☆☆☆[4337. 2. 16.]
462□목마른 우물의 날들□이안, 실천문학의 시집 139, 실천문학사, 2002 눈 덮인 산에서 보리 싹의 태기를 읽어내는 시인의 눈이 아름답다. 게다가 그것이 우리 시대가 버릴 수 없는 시대의 상징까지도 품고 있어서 든든하다. 요즘 시들이 아주 늘어진 형태로 쓰여지는데, 이 시집 속의 시들은 아주 단단하고 짧게 응축되어 있다. 이것은 만이 다듬고 많이 깎아냈다는 뜻이다. 그런 만큼 각 시의 긴장이 만만찮다. 연 가름이 많고 연과 연 사이의 이미지가 상당히 멀리 뛰어넘고 있다. 아마도 한시를 꽤 많이 읽은 흔적이 나타난다. 그러나 너무 많이 깎아내다 보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 잘 포착되지 않는 수가 생기니, 그것을 경계할 일이다. 요즘 시들이 거의 개인의 고뇌를 노래하는 쪽으로 개종했는데, 그나마 이웃과 현실에 대한 전망을 놓지 않고 있어서 주목된다. 문단에 들이닥친 신자유주의의 엄동설한에 그것은 결코 작은 용기가 아니다. 한자는 쓰잘데기 없는 이미지이다.★★☆☆☆[4337. 2. 16.]
463□물고기에게 배우다□맹문재, 실천문학의 시집 137, 실천문학사, 2002 이 시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억눌린 가난과 그 억압의 폭력성이다. 자본이 내면화되면서 나타나는 여러 징후들이 이 시집에서 고발하고자 하는 내용이다. 그런 것들은 까발려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비유나 상징을 쓰면 오히려 효과가 반감한다. 시집의 시들이 모두 잘 썼다. 그리고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상징으로 승화시켜서 전해주는 수법도 익을 만큼 익었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문제다. 내용을 보면 치열하게 욕설을 해대야 할 것인데, 표정이 너무 엄숙한 것이다. 억지로 미문을 만들면 그게 오히려 감점 요인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시집이다. 시대가 경박해져서 쌍욕을 할 곳에서도 점잖은 말투를 쓰도록 요구하고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천박한 자본주의의 얼굴이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한자는 너무 어색한 표정이다.★★☆☆☆[4337. 2. 16.]
464□벙어리 장갑□오탁번, 문학사상 신작시집, 문학사상사, 2002 교과서식 표준 공법으로 성실하게 제작한 건축물 같다. 전후좌우는 물론 상하까지 그 긴장이며 이미지의 순서까지 아주 잘 짜였다. 그런데 이미지는 시를 아주 차갑게 만든다. 즉 이성의 영역으로 안내한다. 그래서 단순한 제시만 가지고 그 이미지 뒤에 서린 암시를 풀도록 하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에 잠기는 내용들은 그 차가움을 없애도록 이미지를 배치해야 한다. 그런데 이 시집 속의 시들에는 그 차가움이 많이 남아있다. 저절로 감동의 진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이미지의 원칙에 너무 충실해서 생긴 일이다. 그리고 시를 쓰는 순간에 그런 충실을 뚫어버릴 만큼 강렬한 감정의 폭발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초점도 흩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시를 아주 잘 썼는데도 시집 전체의 무게는 많이 가벼워진 것이다.★★☆☆☆[4337. 2. 16.]
465□생일□이윤림, 문학동네 시집 45, 문학동네, 2000 시에는 말하는 이와 시인 사이의 거리가 있다. 그리고 그 거리는 교육받은 대로 잘 인지된다. 누구나 시가 다 약간의 허풍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집에는 이 거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시집 맨 뒤쪽의 몇 편을 빼고는 시인의 생각이 그대로 시로 뻗어 나온 것이다. 이것은 재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절박함이나 절실함에 휩싸였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아마도 약력에 보이는 어떤 ‘병’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굉장히 어둡고 절망에 가까운 어조와 분위기가 느껴진다. 자신의 병과 세상의 모순이 만들어낸 분위기일 것이다. 그런데 시로 나타나는 감정과 이미지들은 아주 정제된 것으로 보아 시 쓰는 훈련을 꽤 거친 시인인 것 같다. 꼭 필요한 말만 골라서 제시하고 있다. 감정에 휩싸이기 쉬운 여건에서 보여주는 이런 절제력은 아주 위대한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시인임을 자각하는 상태에서 나온다. 한자는 뚫어야 할 벽이다.★★☆☆☆[4337. 2. 17.]
466□검객의 칼끝□이영유, 문학과지성 시인선 272, 문학과지성사, 2003 개인이든 국가든 과거를 돌아볼 때는 돌아봄의 의미가 중요하다. 단순히 내가 살던 옛 시절에 대한 회고 취미는 현재의 삶을 불구로 만들고 우스개로 만든다. 되돌아보는 데도 철학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많은 부분이 마포 시절을 회고하는 데 바쳐지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는 철학이 없다. 오히려 역사를 조롱하는 일에 연계되어 시들이 말장난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생각을 비틀고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삶을 가볍게 우스개로 만드는 것은 벌써 20년 전부터 있어온 일이니, 이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갈 때도 되지 않았는가? 오히려 집중력이 첫 시집보다도 더 떨어졌다. 한자는 알량한 지식자랑에 지나지 않는다.★☆☆☆☆[4337. 2. 17.]
467□조용한 푸른 하늘□이시영, 솔의 시선 10, 솔출판사, 1997 참 할말 없게 하는 시집이다. 극도로 절제된 묘사가 대상으로 하는 풍경은 그것이 하나씩 점을 이루어 나중에는 커다란 모자이크 그림을 만들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그림이 그럴 듯해야만 낱낱의 정밀 묘사가 의미를 갖는다. 언뜻 보면 과거를 회상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것들이 많이 들어있어서 초점이 흩어졌다. 그러는 바람에 애써 얻은 정밀묘사들이 그 시 밖에서 긴장을 잃는 수가 생긴다. 선문답은 그것이 전해지는 사람들끼리 영혼의 교감이 있어야 한다. 시에서는 그런 방법이 위험한 것이, 시인은 그런 교감을 넣어서 말을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 쪽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읽는 사람을 탓하다가는 사구(死句)가 되고 만다. 그 결과는 아니 함만 못한 것이다. 알든지 말든지 하라는 것은, 속세에서는 슬기가 아니라 배짱이다. 시에서는 배짱이 통하지 않는다.★★☆☆☆[4337. 2. 17.]
468□낙타와의 장거리 경주□이응준, 세계사시인선 114, 세계사, 2002 자신의 절망을 상대로 시를 쓰는 일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다. 아마도 시대의 상처와 억압이 내면화되던 1980년대의 산물일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내면에 드리운 상처를 대상으로 하는 시의 깊이는 시인 자신이 범한 상처와 절망의 깊이와 깊이 연관되어있다. 따라서 스스로 만든 것이든 남이 부여한 것이든 자신의 상처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아닌 척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집의 시들은 많은 부분이 그 전에 보아오던 절망의 표정들을 많이 닮았다. 그런데 시들이 사건화 되어 나타난다는 것이 또한 특징이다. 이전의 절망과 자신의 절망을 구별짓게 하는 요인을 찾아서 파고드는 것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그렇다면 더 절망하라고 칭찬해주어야 하는데, 당사자에게는 가혹한 주문이다. 한자부터 치울 일이다.★★☆☆☆[4337. 2. 17.]
469□천천히 오는 기다림□이응인, 내일을 여는 시 34, 내일을여는책, 2001 시삶일여의 태도는 좋으나 시를 단순비유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 문제다. 시들이 짧은데, 시가 짧으려면 그 짧은 시 안에 담아야 할 내용들을 많이 벼려야 한다. 일상 속의 자잘한 감정들을 잡아내는 능력은 탁월한데, 그것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쏟아져나와 시가 짧은데도 어수선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시집을 묶을 때는 시들이 한 초점을 향해 달려가도록 조절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이것저것 다 모아놓으면 시들이 다 조잡해진다.★☆☆☆☆[4337. 2. 17.]
470□제비꽃 여인숙□이정록, 민음의 시 105, 민음사, 2001 시 쓰는 재주가 아주 좋은 시인이다. 비유의 진폭을 될수록 울림이 크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태도도 좋고, 글자 하나라도 제 위치에 놓으려고 다듬는 자세도 좋다. 무엇보다도 처음부터 끝까지 시들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시인의 큰 능력이다. 여기서, 상상력이 자꾸 자신의 안쪽으로 달팽이처럼 오그라들고, 그런 재미에 빠지게 되면 시가 윤기를 잃게 된다는 사실만 주의한다면 큰 시인이 될 것이다. 자기 속으로만 파고들다 보면 운명론자나 회의론자로 가다가 어설픈 땡중 흉내를 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마는 지경에 이르기 십상이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4337.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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