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名詩 공화국
421□바닷가 우체국□안도현, 문학동네, 1999 긴장이 좀 풀린 듯한데, 사물을 바라보는 눈의 긴장은 여전하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본 사물들의 집합과 그 집합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산만한 편이다. 아직 이데올로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도 있겠고, 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분명히 잡지 못한 것이 문제겠다. 한자 역시 불편한 암초 노릇을 한다.★★☆☆☆[4337. 2. 8.]
422□젖은 눈□장석남, 솔의 시인 11, 솔출판사, 1998 대개는 이미지들이 일련의 사건 전개 순서에 따라서 인식이 되거나 마다마디가 끊어진 채로 머릿속에서 조합되는데 이 시집의 시들은 전체의 이미지들이 한꺼번에 이미지를 형성하도록 쓰여졌으니, 대단한 재주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런 만큼 호흡이 길어져서 자칫하다가는 숨넘어가게 생겼다. 시를 읽는 훈련이 된 사람이 아니고는 소화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런데 불경을 뒤집어 읽었나보다. 공의 관문을 통과한 색이 이 세상에 뿌리는 색깔은 비단결 같은데, 그 실타래 끝에 놓인 단절을 보고서 삶이 도달해야 할 자리라고 한다면 비단은 한낱 거품이 아닐 수 없으나, 그 끝으로 간 인연이 다시 나타난다 하면 다시 비단의 무늬를 이룰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서 굳이 비단으로 담을 수 없는 것을 바라본다면 동안거를 끝낸 자들이 갈 곳이 어디일 것인가를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이상하리만치 현실에 대해 차가운 거리를 유지했던 미당 서정주의 옆얼굴이 언뜻언뜻 비치니 이게 어쩐 일인지 모르겠다. 한자 때문인가?★★★☆☆[4337. 2. 8.]
423□5분의 추억□윤병무, 문학과지성 시인선 248, 문학과지성사, 2000 세상의 구성요소들을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선택하고 짜깁기하는 능력이 좋다. 그럴 때 사건화 되는 이미지나 굳이 동원하지 않아도 되는 표현들이 군더더기가 되지 않도록 생각의 질서를 한 번 더 다듬는 것이 좋다. 그리고 자신을 도구로 하거나 대상으로 하여 쓰는 시들은 그것이 어떤 정서를 향해야 하며 그것이 독자와 관계를 맺을 때 어떤 반응으로 이어질 것인가 하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 시집에서 한자가 꼭 필요한 곳은 딱 한 군데이니, 나머지 한자는 불필요한 셈이다.★★☆☆☆[4337. 2. 9.]
424□황천반점□윤제림, 민음의 시 60, 민음사, 1994 시에서 지식과 관념이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 하는 것을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시집이다. 언어는 그것이 지나온 역사와 배경이 있다. 그 배경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과 그것을 시로 적용하여 드러낸다는 것하고는 약간 차이가 있다. 원래의 개념에 너무 얽매이면 상상력이 자유롭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시 전체가 무거워진다. 1부의 시들이 그렇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한 주제로 몰입한 제2부의 시들은 소재주의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 흠이다. 죽음은 관념이 아니라 현실이고, 그것은 사실 판단이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점을 시에서 놓쳐서는 안 된다. 시집 전체는 주제가 몇으로 나뉘는 바람에 좀 산만한 느낌이 있다. 게다가 한자까지 끼여들어 그런 분위기를 가중시켰다.★☆☆☆☆[4337. 2. 9.]
425□성찰□전대호, 민음의 시 85, 민음사, 1997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세계를 사유하는 방식이 독특하고 그것은 낯설게 보여주는 수법도 나름대로 안정돼있다. 그런데 세계의 비밀과 허구를 파헤치기 위해 세계의 황폐함을 드러내는 방식은 분명한 정서와 방법이 확보되지 않으면 자칫 곁가지 잡기로 비치기 쉽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그 방향으로 정착하려면 먼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정서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정하고 나가야 한다. 방법과 내용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겠지만, 시가 너무 건조하다. 그리고 독특한 방법 가운데 너무 뻔한 방법이 드러나는 것은 전체의 긴장을 허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4337. 2. 10.]
426□지금은 사랑하기에 가장 좋은 시절□용혜원, 책만드는집, 2001 말하고자 하는 정서가 분명하고 말들이 거기에 충실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그렇고 그런 감정들의 나열일 수밖에 없지만, 그래서 계속해서 새로운 소재로 새롭게 감정을 전달하려는 관찰력이 아주 좋다. 다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빼지 못하고 군더더기로 남겨둔 시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은 감정이 아무리 절실해도 시의 원칙에는 어긋나는 일이다. 자제하는 것도 시의 큰 덕목이기 때문이다.★★☆☆☆[4337. 2. 10.]
427□흰 책□정끝별, 민음의 시 69, 민음사, 2000 집의 상상력이라고 이름 붙일 만큼 집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 안에 욕구불만이 가득 들어차서 어떤 방향으로든 불거져 나오는 형국이다. 그것이 자학인 것도 같고, 자학을 통해 세계의 모순을 파헤치려는 전투 같기도 한데,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감정의 나뭇가지에 목련꽃이 가득 펴있는 모습이다. 이런 것은 마음이 조급할 때 생기는 현상이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시를 쓰기 때문이다. 시는 감정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 감정이 향하는 바가 우선 분명해야 하고, 그 방향이 섰으면 그것을 받쳐줄 상상력의 방법이 또렷이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좋고 큰 작품을 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주체 못할 감정이 때로 그런 일을 해주기는 하지만, 감정에 너무 맡기다 보면 수다스러워지는 법이다. 그 수다가 세계를 공격하는데 좋은 효과를 발휘한다면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문제가 된다. 한자는 굳이 써야 할 곳이 아니라면 빼는 것이 좋다.★☆☆☆☆[4337. 2. 10.]
428□지리한 장마,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정은호, 마이노리티 시선 19, 갈무리, 2003 시가 이렇게 간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격노하기 쉬운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감정을 자제하면서 상황을 냉정하게 제시할 줄 아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흥분하지 않는 것이 진정 싸움을 이기는 방법임을 아는 것이라면 이 시인은 그것을 안다. 유행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곳에서 홀로 사금파리처럼 빛나는 시편들이다.★★☆☆☆[4337. 2. 10.]
429□비밀을 사랑한 이유□정은숙, 민음의 시 64, 민음사, 1994 한 상황에 대한 묘사는 아주 정확하고 꼼꼼하다. 그러나 의도가 너무 앞선 것 같다. 감정이 각각의 시에 엄살이나 과장되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쓰기 전부터 의도를 미리 깔아놓아서 생긴다. 의도 때문에 시야의 폭이 좁아지고, 좁아진 그 폭 때문에 상상력을 멀리까지 확산시키지 못해, 상황의 그 주변에서 비유를 찾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몰아가기에 바쁜 것도 그런 탓이다. 과장된 제스처는 감동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 일이다. 한자 역시 불편한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4337. 2. 10.]
430□장미라는 이름의 돌멩이를 가지고 있다□정영선, 문학동네 시집 42, 문학동네, 2000 ‘나 아닌 것에 나를 집어넣어 보기’ 수법이 시집 전체에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다. 동일시는 시에서 가장 근본이 되는 기법이다. 여기에 시인이 충실하다는 것은 시인이 시의 기본기에 충실하다는 것이고,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훈련을 오랫동안 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단순비유에 그치지 않고 보조관념의 뒤쪽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잠들어있는 언어를 새로운 모습으로 일깨우는 수준까지 다가가 있다. 이 점 아주 뛰어난 능력이다. 그런데 이런 방법의 한계 또한 없지 않다. 적절한 대상을 만나지 못하면 자기 생각을 나타내기 어렵다는 점이 그것이다. 시에는 어떤 대상을 만나지 않고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런 것들을 잡아내기가 어렵다. 따라서 결국 마지막 한 관문이 남은 셈이다. 시작 수련 처음 한 동안은 대상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 좋은 훈련법이지만, 그 다음에는 그런 대상으로부터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놓을 줄 아는 것이 또 다른 방법이다. 물론 그 전제는 대상에 대한 사고 훈련이 되어있어야 한다. 이런 방법을 아는 시인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훌륭한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꼭 가 닿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다. 한자는 재삼 숙고할 일이다.★★★☆☆[4337. 2. 1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