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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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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1000권 읽기 102
2015년 02월 11일 17시 21분  조회:1802  추천:0  작성자: 죽림
 

1011□바둑론□성선경, 문학의전당시인선 5, 문학의전당, 2004

  시를 한 편으로 완성하려는 노력이 한 눈에 보이는 시집이다. 이미지 하나라도 다른 부분과 연관지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마무리하려는 태도는 시인의 좋은 자질이다. 다만 너무 그럴 듯하게 표현하려고 하는 마음이 오히려 군더더기가 되어 시의 몸집을 필요 이상으로 뚱뚱하게 부풀렸다. 어쩐지 내용물이 부실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점은 뒤로 갈수록 더욱 그렇다. 한 개인의 추억은 그것이 그대로 울림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 뒷부분의 시들은 그런 점에서 아직은 미약한 촉매제들이 많다. 좋은 이미지로 무엇을 벼려야 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할 시집이다.★★☆☆☆[4338. 2. 22.]

 

1012□고양이 속의 아이를 부탁해□이영수, 문학의전당시인선 2, 문학의전당, 2004

  시집 곳곳에 시와 무관치 않은 사진을 넣어서 장르의 혼합을 시도했다. 그런데 대부분 형식을 실험하는 시들이 딱딱하고 어려운데, 이 시집은 참 재미있다. 상상력이나 그것을 드러내는 이미지들이 질서가 다소 설명하는 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너무 어렵게 쓰지 않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쉬운 어법을 택하고 있어서 부담을 별로 주지 않는다. 내용이 어렵다는 것과 시를 읽기 어렵다는 것은 약간 다른 것이다. 바로 이런 묘한 차이를 느끼게 해주는 시집이다. 시에서 상상력이 죽지 않고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의 미래에 대한 가능성으로 열려있다.★★☆☆☆[4338. 2. 23.]

 

1013□내 몸이 바다를 들이고□최광임, 모아드림 기획시선 72, 모아드림, 2004

  사물을 바라보는 눈과 방향이 일정한 깊이와 폭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에서 할 말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 시인의 장점이다. 그런데 산만한 구석이 있다. 한 번 더 걷어냈으면 하는 어지러운 의상이 있어서 그것을 걷어내는 것이 좋은 시를 쓰는 선결 요건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복되는 이미지를 피해야 하고 이미지로 애써 말한 것을 굳이 말로 풀어주는 중복 표현을 피해야 할 일이다. 이것은 시에서 덜어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얘기이다.

  먼저 초고를 잡고서 주제를 한 번 더 확정한 다음 그 주제에서 한 치라도 어긋나는 부분이 있으면 과감하게 잘라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굳은 살을 잘라버리지 않으면 쩔뚝발이가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당연한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이 좋은 시인이 되는 지름길이다.★★☆☆☆[4338. 2. 24.]

 

1014□산으로 간 물고기□김정희, 문학의전당시인선 6, 문학의전당, 2004

  사물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을 시집에서 갖춘다는 것은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인은 이미 그런 장점을 갖추었다고 봐도 되겠다. 뒷부분에서는 늘어졌지만, 앞부분에서 보여준 시각의 긴장은 그런 능력을 능히 갖추었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그런 시각이 시각이나 표현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그런 시각을 크게 끌어안고 뒷받침해주는 어떤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세계관은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가치체계에 의해 완성된다. 첫 시집에서 그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켜갈 수도 없는 것이니, 시의 표현이 그곳에 뿌리를 박는 방법을 깊이 고민해야 할 시집이다. 뿌리를 뻗다보면 가 닿는 수도 있고, 먼저 도달한 다음에 뿌리를 안내하는 방법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당분간 고통스러운 작업이 될 것이다. 거기에 도달하고 못 하고는 재주보다는 성실성이나 뚝심의 문제이다.★★★☆☆[4338. 2. 25.]

 

1015□즐거운 하드록□신정숙, 실천문학의 시집 114, 실천문학사, 1997

  시를 쉽게 쓰는 방법을 아는 시인이다. 독백체의 담담한 흐름이 시집 전체의 일관성을 이루면서 한 어조를 만든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시집에 한 가지 방법론이 관철된다는 것은 그것이 잘 됐건 못 됐건 아주 중요한 방법이다. 다만 독백체가 갖는 단점은 독단으로 흐르기 쉽다는 것과 그 어투 때문에 곧 지루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집의 밋밋한 면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시의 구성이 천편일률이며, 그것이 아무리 의미 있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독자의 접근을 막는 방파제 노릇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한자는 지울 수 없는 흠이다.★★☆☆☆[4337. 6. 16.]

 

1016□다시 그리움으로□박재삼, 실천문학의 시집 104, 실천문학사, 1996

  늙는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싶다. 세월 앞에 무기력해진 한 사람이 그 무기력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인생과 자연의 모습이 잘 잡혀있다.★★☆☆☆[4337. 6. 16.]

 

1017□치악산□박세현, 문학과지성시인선 175, 문학과지성사, 1996

  말투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하는 시집이다. 주제를 다루고자 하는 의지와 그것을 드러내는 말투 사이의 아주 미세한 간극이 감지된다. 그것은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일 수 있지만, 아무 것도 아닌 그것 때문에 전부가 무너질 수 있는 그 어떤 것일 수 있다.

  시에서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오래도록 그것을 바라보는 집중력만으로도 한 경지를 연 것이기는 하지만, 결국은 마음을 주인의 자리에 놓지 못하고 노예의 자리로 놓아야 한다는 틀에 박힌 전제 때문에 많은 부분에서 빛을 잃었다. 이것은 자신이 빠져있는 곳에서 관찰만 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오류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정상까지 올라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관념의 선험성이란 그만큼 위험한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경지를 열었으면서도 그 새로운 경지를 이미 있는 것의 아류 자리로 돌려놓은 그런 것이다. 그것을 끝내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사상과 사고의 유행이란 단풍과도 같은 것이어서 곳곳에서 울긋불긋하지만, 자기 자신의 본래 색깔이 되기는 어렵다. 울긋불긋한 단풍 속에서 사시사철 늘 그 모습인 바위가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단풍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곳곳에서 애써 표현을 하려고 한 흔적이 많다. 별다른 의미가 없는 표현 구절들이 있어서 재미만 줄 뿐 그것이 심금을 울리지 못하는 악재로 작용한다. 프로라는 의식이 짐으로 작용한 까닭이다. 진정한 프로는 자신이 프로임을 잊을 줄도 알아야 한다. 시는 삼척동자도 쓸 수 있는 갈래이기 때문이다.[4338. 7. 1.]

 

1018□그는 늘 왼쪽에 앉는다□류인서, 창비시선 243, 창비, 2005

  할 말이 별로 없는 시대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향해서 아름답게 뻗어 가는 상상력의 모습을 본다. 전체의 구성력이나 부분의 표현력 어느 하나 흠 잡을 데가 없다. 그런데도 깊은 울림을 주지 못하는 것은 주제의 결핍 때문이다. 특별히 할 말이 있어서 쓴 시들이 아니어서 그렇다. 내용 없는 형식을 완성하려다 보니 묘사가 정밀해지고, 묘사가 정밀해진 만큼 독자의 상상력이 파고들 여지가 줄었다. 이럴 경우 긴장이 와야 하는데, 그 긴장의 진원이 파악되지 않기에 시가 잘 쓴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미진한 구석을 감출 수 없는 것이다. 정신의 긴장이 요구되는 시집이다.[4338. 7. 8.]

 

1019□제국호텔□이문재, 문학동네시집, 문학동네, 2004

  같은 사람이 쓴 것이라고 보기 어려울 만큼 변했다. 내용은 거기서 거기 같은데, 그것을 나타내는 방식이 완전히 변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명징해졌다. 군더더기가 많이 사라졌다. 그리고 본질에 훨씬 더 가까이 갔다. 앞부분의 짧은 시들은 시각의 긴장이 아주 잘 살아있다. 이런 긴장을 끝까지 밀고가지 못한 것이 흠이다. <제국호텔> 연작은 상관물이 실제 대상과 너무 밀착됐다. 그리고 감정이 드러난 부분이 많다. 그 감정은 직접 드러나지 않고 태도에 묻혀있지만, 그 태도에 묻힌 감정이 너무 강렬하다. 상관물을 이용한 시에서 감정을 드러내면 효과가 반감된다. 그 뒤쪽의 길어진 시들은 긴장이 풀렸다. 사건을 전달하기 위해서 말들이 동원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욕망의 주인인 마음의 문제가 가장 시급한 문제로 떠올랐다. 마음에는 형식이 있다. 그 형식은 아주 오랜 내력을 갖고 있다. 이 부분을 파헤치지 않으면 더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다.[4338. 7. 9.]

 

1020□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이창기, 문학과지성 시인선 297, 문학과지성사, 2005

  욕망이 자신의 힘으로 우뚝 일어서서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씹어 삼키는 이 난폭한 시대에 그 욕망을 버리는 일은 어찌 보면 위대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도시라는 거대한 욕망의 덩어리로부터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것은 큰 용기이기도 하다. 이때 거세된 욕망 대신에 그 자리에 자연이 들어오고 아무것도 없는 자연 속에 놓인 한 존재의 양상과 의미가 욕망의 형태와 대위법을 이루며 드러난다. 그 지점에 와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도망친다고 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망치려는 것조차 욕심일 경우가 많고, 그것은 변형된 욕망이다. 일단 이렇게 물러섰으면 물러선 자리에서 마음의 움직임을 읽어야 한다. 마음은 욕망의 근원이다. 마음이 그린 지도의 법칙을 찾아내지 않으면 욕망의 중심으로부터 물러서는 것 역시 욕망의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게 된다.

  결국 지금 그 자리에서 한 발짝 더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자연을 한 겹 더 뚫으면 자신의 주인인 마음을 만날 테고, 마음을 만난 날의 풍경과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성을 묘사해야 진실로 여유로운 세계를 드러낼 수 있다. 그것이 시를 완성하는 길이다.[4338. 7.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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