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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의 낯설게 하기
2015년 02월 19일 17시 04분  조회:4667  추천:1  작성자: 죽림

선(禪)과 현대시(現代詩)의 낯설게 하기

 

 

 

 

                                                                                   심 상 운

 

 

현대시에서 ‘낯설게 하기’는 일상적 타성에 젖어 있는 사람들의 인식에 충격을 가하고 시의 표현을 새롭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 방법은 1916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의 시어 연구회와 모스크바 언어학회에서 평범한 언어를 예술적 언어로 변모시키기 위한 기법으로 제시한 형식주의(Formalism)에서 출발하였지만, 표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사물의 인식능력을 신장하여 철학적 형이상학적 세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시인은 선승(禪僧) 같은 투명한 눈으로 세상을 응시하고 새로운 관점과 감성의 언어로 생명의 세계를 보여주게 된다.

 

잠시 그는 땅에서 솟구쳐 오른 암흑의 빈 탑이었다.

날개를 잃은 학이었다.

어느 날 그는 발 밑을 들석들석하더니

죽죽 몸을 펴 뻗었다.

 

불룩하다간 꺼지고

또 불룩하는 잉태와 유산流産의 흥분에서

조용히 육신肉身의 붕괴를 다스렸다

 

앓이하는 무수한 핏줄처럼

마구 금 긋고 가는 전쟁이 있었다.

그물처럼 에워싸는

고뇌의 균열이 있었다.

 

그의 허리에 푸른 지문指紋을 찍는 계절

세월의 회색 주름살

그는 무엇일까?

조용한 탄생을 위하여

스스로의 열도熱度를 싸느랗게 지우고만 있는

그는 무엇일까?

 

-----------문덕수 <항아리 1> 전문

 

 

말 오양간 냄새가 나는 이에스 크리스도의 머리에서 빛난 기적처럼

너는 전쟁의 계단을 포복하는 군단의

불면이 겹싸여

탄피와 같이 굳어진 나의 눈시울 속에 살았다.

 

어느 날 아침

장미와 인간을 위한 하늘처럼 별처럼 노오랗게 새파랗고

또 무슨 여러 가지 샛말간 색깔의 과실들과,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들과 바다처럼

부드러운 나래처럼

음악이여

------------------전봉건 <음악> 1,2

 

두 편의 인용시는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1950년대 전후의식(戰後意識)의 시다. 문덕수(文德守)의「항아리 1」은 항아리를 ‘암흑의 빈 탑’ ‘날개를 잃은 학’으로 비유하여 일상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이미지는 전후(戰後)의 폐허 속에서 생존하며 희망을 열어가는 시인자신의 존재성과 연결되면서 ‘잉태와 유산’, ‘고뇌의 균열’을 거친 “조용한 탄생”의 원형으로 항아리의 이미지를 승화시키고 있다. 그래서 잉태와 탄생이라는 항아리가 안고 있는 원형적인 의미와 시인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갈망의 그림자가 내면적으로 결합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 전봉건(全鳳建)의「음악」은 전쟁 속에서도 잃지 않은 시인의 내면의식의 세계를 이질감을 주는 언어로 표현하면서 ‘전쟁과 평화’라는 대립적 상황을 통하여 인간이 지향하여야 할 것을 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두 시의 공통점은 시인의 시선이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적 효과는 일상성과 타성에 젖은 인식에 충격을 가한다.

 

선(禪)의 첫걸음도 일상성과 타성을 깨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선에서는 본질적으로 진리를 표현하는 도구로서 언어를 인정하지 않는다. 선승들은 입을 여는 순간에 진리는 사라져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불입문자(不立文字)라고 했으며, 진리를 전하는 방법으로 석가가 연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을 때, 마하가섭(摩訶迦葉)만이 그 뜻을 깨달아 미소를 지었다는 데서 유래한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라는 말을 통해 이심전심(以心傳心)을 진리를 전하는 최고의 방법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래서 묵언(黙言)을 수행의 한 과정으로 실천한다. 그러나 선에서도 깨우침을 전하는 방법으로 언어를 버리지 못한다. 그것은 언어를 떠난 방법이 너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선승들이 전하는 오도송(悟道頌)은 고도의 언어로 표현된 선시(禪詩)가 된다.

 

孤輪彼照江山靜 自笑一聲天地驚

 

달빛 비친 강산 고요한데

내 스스로 웃으며 터뜨리는 한 소리에

하늘과 땅이 놀란다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시에서

 

이 시에서 달을 고륜(孤輪)이라고 ‘무한 허공에 떠 있는 외로운 바퀴’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는 현대시의 낯설게 하기와 상통하는 면이 보인다. 선문답(禪問答)도 ‘일상적인 타성의 인식을 깨뜨리는 언어’를 도구로 삼고 있다.

 

‘날마다 좋은 날(日日是好日)’이라는 말로 유명한 운문(雲門) 스님에게 하루는 제자가 물었다. “무엇이 ‘참나’입니까?” 운문이 대답했다. “산수를 유람하며 즐기는 자이지”

 

어느 날 동산(洞山) 스님에게 제자가 질문을 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동산스님이 대답했다. “마삼근(麻三斤)이니라.”

 

이 선문답에는 제자에게 깨우침을 주려는 스승의 마음이 들어있다. 그러나 선은 지식의 전수 같은 가르침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정신의 경지이기 때문에 ‘가르치지 않고 가리키는 것’으로 방법을 삼는다. 그래서 제자가 스스로 체험을 통해서 마음 속 자명종의 울림을 듣게 하는 것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선문답에는 설명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 ‘설명의 생략’은 선문답의 답을 화두(話頭)로 만든다. 제자들은 선정(禪定)을 통해서 그 화두의 의미를 탐구하고 해결하여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설명의 생략’은 시의 구조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설명이 들어가는 순간에 시는 사라지고 산문(散文)만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문답이 퍼포먼스(performance) 같은 행위와 결합될 때 그 구조가 다양해지고 상상력의 폭이 확장된다.

 

 

조주(趙州) 스님은 어느 날 스승 남전(南泉)에게서 제자들의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끊어버리기 위해 고양이를 칼로 두 동강이 낸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다 들은 뒤 아무 대꾸도 않고 신발을 벗어 머리 위에 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남전이 말했다. “그때 만일 자네가 그곳에 있었더라면 고양이를 살려주었을 텐데”-오경웅(吳經熊) 지음 유시화 옮김 『禪의 황금시대』에서 발췌정리

 

 

신발을 머리에 이고 가는 조주의 행동은 몇 가지의 의미를 유추하게 한다. 구도자들은 이 세상 사람들의 뒤바뀐 가치관과 인식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신발을 머리 위에 이고 걸어가는 것은 그들의 시시비비는 진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행위라는 것. 진리에는 머리와 발의 경계가 없다는 것.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첨부하면 우스꽝스런 행동으로 스승의 마음을 풀어드리려고 했다는 것 등이다. 그래서 그의 행동은 일상에서의 일탈(逸脫)이라는 유희성(遊戱性)과도 연결된다.

 

다음 글은 김석 시인의「조향의 초현실주 문학의 이론과 기법」에서 <아시체 놀이>에 관한 부분을 발췌한 글이다. 이 글은 선의 언어와 초현실주의 시(언어유희)의 차이를 생각하게 한다. 선의 언어 속에는 ‘깨달음의 자명종’이 숨겨있는 데 반해서 언어유희에는 ‘논리적 사고로부터의 해방’이 들어있다. 둘의 공통점은 상투적인 언어로부터의 도피(逃避)이다.

 

 

마치 눈가림한 사람이 숲 속에서 이 나무에서 저 나무에 부딪히는 것처럼, 指導도 방향도 없이 한 생각에서 다른 생각에로, 의식이 흐르는 대로 생각을 맡겨두고 쓰는 일이다. 동양식으로는 東問西答式 시의 놀이이다. 이런 면에서 선시나 偈頌과 맥이 닿을 수 있다. 그러나 서양의 경우는 억눌림으로부터 해방과 자유를 위한 ‘정신적 사냥’으로 동문서답식 시의 기교인데 반하여 동양은 법통을 잇기 위한 ‘진리파지’의 큰 주제 아래 그 한 방법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래 보기의 시는 조향 선생님이 서울의 某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실험했던 단어와 단어 사이, 시행과 시행 사이에 의식의 단층을 만들었던 합작 시로 『아시체』의 한 시 놀이다.

 

B__태양을 향한 한 마리 山羊의

J__프로이드가 씹어 먹는 날개란 말야,

 

K__그 사람은 언제 떠났지?

 

S__철도 연변의 들국화야,

 

J__여름 얼굴 위에 흐르는 지렁이는?

 

K__고양이 생일이었어,

 

B__연못 옆에 있는 것은 뭐지?

 

J__전등 속에 든 베레모 같은데,(이하 생략)

 

가스통 바슐라르 (Gaston Bachelard 프랑스 철학자 1884-1962)는『시적 순간과 형이상학적 순간』에서 그가 인식한 시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시(詩)는 순간의 형이상학이다. 하나의 짤막한 시편(詩篇) 속에서 시는 우주의 비전과 영혼의 비밀과 존재와 사물을 동시에 제공해야 한다. 시가 단순히 삶의 시간을 따라가기만 한다면 시는 삶만 못한 것이다. 시는 오로지 삶을 정지시키고 기쁨과 아픔의 변증법을 즉석에서 삶으로써만 삶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다. 그 때서야 시는 가장 산만하고 가장 이완된 존재가 그의 통일을 획득하는 근원적 동시성(同時性)의 원칙이 된다. 다른 모든 형이상학적 경험들은 끝없는 서론(緖論)으로 준비되는 것인 데 비하여 시는 소개말과 원칙과 방법론과 증거 따위를 거부한다. 시는 의혹을 거부한다. 그것이 필요로 하는 것은 기껏해야 어떤 침묵의 서두(序頭) 정도이다. 우선 시는 속이 텅 빈 말을 두드리면서, 독자의 영혼 속에 사고(思考)나 중얼거림의 어떤 계속성을 남기게 될지도 모르는 산문(散文)과 서투른 멜로디를 침묵시킨다. 그러고 나서 진공(眞空)의 울림을 거쳐서 시는 자기의 순간을 만들어 낸다.”
 

선도 순간의 언어로 표현된다. 대상에 대한 직관적인 총체적 인식이 한 순간에 터져 나온 것이 선의 언어다. 직관적이고 총체적 인식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시와 선은 같다. 그리고 일상에 대한 전도(顚倒)와 비약(飛躍)이라는 점에서도 상통한다. 따라서 시가 ‘대상에 대한 해방(解放)’을 추구한다면 선은 구도자 자신의 ‘해탈(解脫)’을 목적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해방이라는 말이 기존의 관념이나 인식방법에서 풀려나는 것을 의미하는 데 비해 해탈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유무(有無)를 초월하는 제 3의 경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에서 “진공(眞空)의 울림”은 미당(未堂) 서정주(徐定柱)의 시「동천」같이 일상이나 기존관념으로부터의 해방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실을 초월하는 시의 궁극을 표현한 말로 인식된다.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미당의「동천冬天」전문

 

이 시의 눈썹, 새, 하늘 등의 언어는 실체와 실질적 관계가 없는 시인의 심리적 이미지, 형이상학적 판타지가 만들어 낸 ‘이미지의 언어’다. 이런 언어를 20세기 언어학자 소쉬르(erdinand de Saussure 스위스 제네바 1857-1913)의『일반 언어학 강의』를 근거로 ‘기호’라고도 한다. 이 시속에는 미당이 일생동안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인식한 ‘사랑의 진실’이 들어있는 것 같다. 그러면 그 진실은 선의 진리와 상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시는 조주 스님이 신발을 머리에 이고 걸어 간 행위에 대입할 수 있을까? 현대시의 낯설게 하기와 선의 관계를 통해서 그 해답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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