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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2월 19일 19시 38분  조회:4185  추천:0  작성자: 죽림

 

 

당신은 오래 간직하고 싶은 시집이 있습니까?

 

이승하

 

 

 

  지난해 국내 시집 판매를 주도한 시집은 하상욱의 『서울 시』 1, 2권이었다. 몇 권이 팔렸는지 알 수 없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1월 25일 현재 인터넷서점 YES24의 판매지수는 1, 2권을 합쳐 14만2,677이다. 일본인 시바타 도요(1911〜2013)의 『약해지지 마』는 4만5,333이다. 이에 비해 이 시대 최고의 스타 시인이라고 해야 될 황병승의 신간 시집 『육체쇼와 전집』은 4,794이다. 기준을 알고 싶다면? 정호승 시인이 작년 6월에 발간한 시집 『여행』이 1만377이고 도종환 시인이 재작년 8월에 발간한 시집 『흔들리며 피는 꽃』이 1만20이다. 김은주라는 카피라이터의 단상 모음 『1cm+』라는 책이 48만9,468이니 대다수 시인의 시집은 서점에서건 인터넷서점에서건 거의 안 나간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 오늘날 ‘시집 독자’가 과연 있는가?

 

  인터넷상의 시 동호인 모임이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보아 시를 읽고 있는 독자는 분명히 있다. 작년에 시 전문 계간지 『시안』『시인세계』『시평』이 간행 중단 선언을 했지만 문예지의 수를 생각하면 사실 빙산의 일각이다. 문예지를 낸다는 것은 곧 적자를 본다는 것인데 매 계절 수백 종의 문예지가 나오고 있다. 매달, 매 계절 발표되는 시의 편수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해마다 문예지 신인상 당선자는 수백 명에 달하고 지방지까지 합치면 신춘문예 당선 시인도 30명이 넘는다. 시인 공화국임에 틀림없는데 출판사 편집자를 만나보면 시집이 안 팔린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시인도 많고 문예지도 많이 나오는데 시집은 안 팔린다? 기이한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고 당연한 현실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일단 요즈음 시집의 두께를 생각해보자. 2011년도에 나온 박형준의 시집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가 205쪽이고, 2012년에 나온 박성준의 시집 『몰아 쓴 일기』가 240쪽이다. 170쪽이 넘는 개인시집이 정말 많이 나온다. 조연호의 『농경시』(2010)는 시 1편이 시집 1권인 극단적인 경우지만 김경주의 『기담』(2008)에는 10쪽, 15쪽, 22쪽에 달하는 시가 나온다. 장석원의 시집 『아나키스트』(2005)에는 4쪽 이상의 시가 11편이 나오고 14쪽이나 되는 시가 있다. 같은 시인의 『태양의 연대기』(2008)에는 40쪽에 달하는 시가 나온다.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2005)에는 4쪽이 넘는 시가 12편에 달하고 9쪽짜리 시, 10쪽짜리 시가 나온다. 박성준의 『몰아 쓴 일기』(2012)에도 10쪽, 12쪽에 이르는 시가 나온다.

 

  시의 길이도 문제지만 요즈음 시는 운율을 잃고서 산문이 돼버렸다. 정진규 시인처럼 빼어난 산문시를 쓰는 경우는 예외가 되겠지만 많은 후배 시인들이 정진규의 산문시를 잘못 흉내 내고 있다. 소설의 일부 같은 시, 6~7행이 한 문장인 시, 여러 쪽이 연 구분 없는 산문으로 된 시를 시집이나 문예지상에서 발견하기란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전에는 운문 형태의 시를 쓰던 시인들조차 산문시를 함께 쓰는 것이 유행이 되다시피 했다. 운율 파괴와 문법 파괴, 이국취미(전통 파괴)가 오히려 모던한 시풍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이를 개성으로 여기고 있는 황병승ㆍ김경주ㆍ박성준ㆍ김승일 같은 시인이 스타 출현인 양 각광받고 있다. 이들 시인에 대한 칭송의 글은 차고 넘치지만 이러이러한 점은 문제가 있지 않은가, 지적한 글은 거의 보지 못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읽어보아야 할 한 권의 책이 있다. 민족과문학사에서 1990년에 나온 『시를 묻는 젊은이에게』라는 책이다. 이근배 시인이 엮은 것으로, ‘오늘의 대표시인 25인의 체험적 시론’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을 낼 시점에 청탁을 받고 쓴 글도 있지만 대개는 25명 시인이 예전에 지상에 발표했던 대표적인 시론을 집대성한 한 권의 시론집인 것이다. 제일 앞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글이 서정주의 「머리로 하는 시와 가슴으로 하는 시」이다.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있다.

 

 

  19세기의 낭만주의자가 감정과 욕망을 잘 절제하지 못한 나머지, 얼마나 많은 무미한 정서의 통속을 빚어내 놓았는가를 우리는 잘 보아서 알고 있다.

  고도한 정서의 형성은 언제나 감정과 욕망에 대한 지성의 좋은 절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시인이 감정을 절제할 줄 모르면 안 된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지성의 통제를 통해 균형 감각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 이유는 아마도 1920년대에 동인지를 중심으로 우리 시가 태동하는 과정에서 감정 과잉의 시가 많았는데 지금도 그런 현상이 있으니, 시인들은 머리로만 시를 써도 안 되고 가슴으로만 시를 써도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신경림은 남한강에 얽힌 이야기와 노래(민요)가 자기 시의 모체가 되었다는 시론을 편다.

 

 

  강마을 사람들은 이 강이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지대로 이 강을 끼고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이와 관계되는 얘기도 많이 남아 있었다. 노래도 많아 내 귀를 뜨이게 했다. 이때 나는 남한강에 얽힌 얘기와 노래를 언제고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리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 생각은 훗날 장시 『남한강』으로 결실을 맺는다. 신경림 시인의 시에 잘 나타나 있는 이야기성과 가락은 시를 쓰기 이전, 성장기 때 이미 형성되어 있었던 셈이다. 신경림 시인은 대담 자리에서 현대시의 난해성에 대해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현대시의 난해성에는 일정 부분 부득이한 면이 있습니다. 문제는 전혀 필연성이 없는 엉터리 난해시입니다. 이런 엉터리 난해시가 되는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시인이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정확하게 말할 능력을 획득하고 있지 못한 경우입니다. 말하고 싶은 것을 정확히 말하지 못하니까 자연 시가 어려워집니다. 두 번째는 말장난에 치우친 경우입니다. 말을 돌리고 비틀고 하다 보니까 시가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세 번째는 시를 억지로 만드는 경우입니다. 내용이 없으니까 시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난해시, 이런 시에 대해서는 그런대로 애정을 가져야겠지요. 하지만 엉터리 난해시는 독자로 하여금 시를 외면하게 만드는 내적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자의 시집 외면은 사실상 지나친, 혹은 불필요한 난해성 때문이다. 원래 시라는 것 자체가 애매성과 다의성을 지니고 있으며 비논리와 비상식을 지향하는 속성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1984년에 등단한 이후 30년 넘게 시를 써 오고 연구하고 시 쓰기 지도를 하고 있는 나로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시가 차고 넘친다. 대학에 있다 보니 학생들과 함께 이런 시를 놓고 텍스트삼아 공부하지 않을 수 없다. 20대 초반의 대학생들과 평균연령 30대인 일반대학원 학생, 40대인 예술대학원(특수대학원) 학생, 50대인 사회교육원(문예창작전문가과정) 학생들과도 이런 시를 놓고 토론을 한다. 고교 시절에 배운 소월과 영랑의 시를, 윤동주와 이육사의 시를 계속 공부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이나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다섯 번을 읽었는데도 감을 못 잡겠습니다. 현대시의 난해성은 화자의 우월의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한 이가 정진규 시인이다. 그는 중국 당나라 때의 요절 시인 이하(李賀, 790~816)의 시를 예로 든다.

 

 

오동잎에 바람 이니 서글퍼져 장사壯士의 마음 괴로운데,

희미한 등불에 풀벌레 소리 차가워라.

그 뉘일까? 나의 한 편 시고를 읽으며,

화충花蟲이 좀먹지 않게 할 사람은.

서글픈 생각에 이 밤 가슴 메이고,

차가운 빗속을 향혼香魂이 내게 조상 오네.

가을 무덤 속에 귀신 되어 포조鮑照의 시詩를 노래하리니,

한스러운 피는 천년을 두고 땅속에서 푸르리라.

 

 

  화충은 나무좀과에 속한 좀벌레이다. 포조(421?~465)는 중국 육조 송나라 때의 시인으로 악부에 능했다. 여기서 ‘포조의 시’란 죽은 자의 감개를 나타낸 시를 가리킨다. 김달진 선생이 번역한 『唐詩全書』에는 이하의 생애와 시세계가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7세 때 문장을 지어 한유(韓愈)를 경탄케 하였으며 27세로 요절하였다. 24세에 백발이 되었고, 몸이 여위었으며, 눈썹이 짙은 결핵 체질이었던 그의 시는 초현실성, 환상성으로 인하여 중국 시단의 이단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요절한 천재 시인 하면 이상(李箱)을 꼽지만 중국에서는 단연 이하를 꼽는다. (두 사람 이름이 묘하게도 以上과 以下를 생각게 한다.)

 

  이동향이 번역한 민음사 세계시선의 『李賀詩選』을 보면 “후세 사람들은 이백을 선재(仙才), 이하를 귀재(鬼才)라고 평한다. (…) 이하는 유령이나 요괴, 귀신 등 초자연적인 사물들을 많이 노래하여 귀기가 서린 듯 기괴하고 음침한 분위기를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하 시의 특색이며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귀(鬼)를 중심으로 한 환상적인 시들이며, 그의 어둡고 우울한 감정 표현은 환상적인 요소와 결합하여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되어 있다. 정진규 시인은 이하의 「秋來」를 인용하고 나서,

 

 

  ‘화자우월주의’ 상위 시각이다. 이는 간단히 말해서 자신만의 말을 하고 태어나는 대상의 말을 듣지 않는 일방적인 화법을 뜻한다. 이러한 화법은 해마다 신인 작품들을 심사하면서 직접 보고 느껴온 것이기도 하고, 우리 기성 시들에도 미만해 있는 한 고질일 수도 있다. (중략) 이렇게 되면 시가 설명적인 해석이 될 수밖에 없고, 유형화가 될 수밖에 없다. 시의 작동이란 그 순간부터가 대상과의 합일을 뜻한다. 상호 교감의 구체적 활동을 뜻한다. 대상들이 하는 말을 듣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을 듣는 귀가 열렸을 때 시를 쓰는 몸에는 율律의 무늬가 일기 시작한다. 그 율의 무늬가 바로 시가 아니겠는가. 예를 들자면 앞서 인용한 이하의 시 두 번째 구절 “희미한 등불에 풀벌레 소리 차가워라”도 그렇다. 번역의 문제이기도 하겠으나, 원문은 이렇다. “쇠등낙위 제한소衰燈絡緯 啼寒素”, ‘쇠등衰燈’은 희미한 등불, ‘낙위絡緯’는 가을 풀벌레, ‘제한소啼寒素’가 문제다. ‘제啼’는 운다. ‘한소寒素’는 차가운 흰 깁. ‘한소로 운다’라고 직핍해야, 아니면 ‘차가운 흰 깁으로 운다’라고 해야 그 울음의 이미지, 촉감이 살아나고 색채감각이 살아난다. 그게 설명이 아닌 ‘율의 무늬’이며 대상의 ‘무자서無字書’, 그 화답이다. ‘무현금無絃琴’의 소리이다. 이것을 보고 듣는 체감이 새로운 시를 태어나게 한다. 화자우월주의 상위시각은 나아가 시를 평면화하고 왜소화시킨다.

 

 

고 하면서 독자를 깔보는 시인의 화자우월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시인이 높은 정신세계에서 독자를 내려다보며 쓴다는 화자우월주의는 결국 독자와의 소통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 않고 유아독존의 자세를 취하게 한다. 그래서 독자의 이해를 구하지 않고 시인 자신의 마음 가는 대로 쓴다. 수필 쓰듯이 쓰는 것이 아니라 내키는 대로 쓰는 것이다. 전통에 대한 완전한 부정은 곧 아방가르드요 포스터모더니즘이요 해체주의인데 서구에서는 이미 예전에 종식된 이 사조가 우리나라에서는 ‘새로우니까’라는 면죄부를 받고 득의양양 위세를 떨치고 있다. 사회의식이나 역사의식, 혹은 현실참여의식은 이제 구시대의 유물인가. 세상이 이렇게 어두운데 왜 우리는 시인의 횡설수설과 투덜거림에 계속 귀를 열어두어야 하는가. 문학평론가들과 소수의 독자에게 동의를 얻는 이런 시를 다수의 독자는 결국 난감해하면서 포기한다. 포기하고 시라고 할 수 없는 『서울 시』와 시라고 할 수는 있는 『약해지지 마』를 읽는다. 류시화 시인이 번역한 일본 하이쿠 시집 『한 줄도 너무 길다』를 YES24에서 찾아보니 독자 리뷰가 44개나 붙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인이 독자를 뿌리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신경림 시인의 말에 다시 귀를 기울여보자.

 

 

  한때 시가 산문이 할 수 없는 것을 찾았듯이, 사이버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그 어떤 것, 시만이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다시 해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시인들이 마음을 닫고 속으로 움츠릴 것이 아니라 활짝 열어젖히는 것입니다. 시가 너무 닫혀 있어 독자와의 대화 또는 교섭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이 지금 시의 몰락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우선 남들도 알아볼 수 있는 그런 시를 좀 써달라는 것입니다. 남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 시가 너무 많아요. 다음으로는 시를 억지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지요. 나도 시는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란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시를 만드는 경향이 너무 심해요. 시가 작위적이라는 뜻이지요. 리듬이란 게 뭡니까? 자연스러움, 바로 그것이 리듬이 아니겠어요? 요즈음의 시에 리듬이 없다는 말은 시가 너무 작위적이어서 나오는 말이지요. 또 시를 너무 마구들 써대요. 많이 쓰는 것이야 누가 뭐라겠습니까! 하지만 한 편으로 쓸 수 있는 시를 다섯 편, 열 편으로 쓰는 경향들이 있어요. 이래서 시의 인플레가 생기고 시는 더욱 독자로부터 외면당하지요.

 

 

  노인네가 하는 말이니까, 하고 무시할 일이 아니다. 10대 때부터 시를 써 20대 초반에 등단한 신경림 시인은 이제 여든을 바라보고 있다. 이 시인이 간곡히 하는 말에 우리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짧은 산문을 시라고 하고 소설의 일부를 시라고 하고 에세이를 시라고 하니, 이런 것이야말로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아닌가. 이 책의 편자 이근배 시인은 이 책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시는 물구나무서기이다. 세상을 똑바로 보는 일은 산문에서나 할 일이다. 말짱한 정신으로는 시를 볼 수가 없다. 도깨비에 홀린 것같이 천방지축으로 떠돌아다녀야 한다. 머리와 꼬리를 뒤집어보아야 한다. 세상을 거꾸로 보아야 한다.

 

 

  시인은 부단히 전통의 자장을 뿌리치려 하면서도 반역자요 혁명가여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시 자체를 부정하는 언어파괴공작에 나서려 해서는 안 된다. 80년대 초반에 우리 시의 외연을 넓힌 이성복과 박남철과 황지우를 보라. 이들이 90년대에도 계속 그런 시를 썼던가? 아니다. 1990년대에 들어 그들은 『그 여름의 끝』(1990)과 『생명의 노래』(1992)와 『게 눈 속의 연꽃』(1990)을 일제히 펴낸다. 시란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시집을 90년대에 세 시인 모두 냈음을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시란 형식도 중요하기에 시인들이 별난 장난도 다 해보지만 결국 주제의 무게가 있어야 한다. 이하의 절창을 보라. 이상의 시는 연구는 되지만 결코 애송되지 않는다. 이하의 시는? 김원중은 “그의 시는 과장된 수사법과 환상적인 수사 기교 및 날카로운 현실풍자와 규중 여인의 애정 문제에 대한 섬세한 묘사로 유명하며, 색채어(홍, 청, 황, 백)의 과도한 활용과 괴상한 언어 사용으로 감상적일 뿐만 아니라, 심지어 염세적 분위기를 띤다. 그의 조어 방식은 품사나 어법, 구법에 관계없이 이미지만을 결합하는 수법을 즐겨 썼다.”고 평가하여 얼핏 보면 지금 이 시대에도 통용 가능한 모던한 시를 썼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시가 그 무엇보다 좋다. 시가 정말 좋기에 지금 이 시대에 읽어도 여전히 감동적이다. 우리는 충격을 주는 데만 급급하여 감동을 주는 시를 못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부터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볼 일이다.

 

 

술을 권하다將進酒

 

 

옥 술잔에

호박빛 진한 술

작은 술동이에 진주같이 붉은빛 방울져 내리고

용을 삶고 봉황을 구우니 옥 같은 기름이 울고

비단 병풍과 수놓은 장막에는 향긋한 바람이 감돈다

 

 

용피리 불고

악어가죽 북을 치니

하얀 이의 미녀는 노래하고

가는 허리의 미녀는 춤을 춘다

 

 

하물며 봄날도 어느덧 저물어가고

복사꽃이 붉은 비처럼 어지러이 떨어짐에랴

그대여 종일토록 마시고 한껏 취할지니

유영(劉伶)*도 무덤까지는 술을 가져가지 못하였으니

 

 

ㅡ김원중 역, 『唐詩』(을유문화사)에서

 

 

*유영: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사람으로서 항상 수레에 술을 싣고 다니면서 자기가 죽으면 함께 묻어달라고 말할 정도로 술을 매우 좋아했으며, 술을 찬미하는 「주덕송酒德頌」을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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