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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 8. 26 로마(?)~ 1918. 11. 9 파리.
프랑스의 시인.
본명은 Wilhelm Apollinaris de Kostrowitzki.
20세기초에 프랑스 문단과 예술계에서 번창한 모든 아방가르드 운동에 참가하고 시를 새로운 분야로 안내한 뒤, 짧은 생애를 마쳤다.
폴란드 망명자인 어머니와 이탈리아 장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의 혈통을 비밀에 붙였다. 비교적 자유롭게 자란 그는 20세 때 파리로 가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겼다. 1901년 독일에서 보낸 몇 개월은 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고, 이때의 경험은 자신의 시적 재능을 깨닫는 데 도움을 주었다. 특히 라인 지방의 매력은 언제나 그의 추억에 남아 있었고, 이 지방의 숲과 전설에 깃든 아름다움은 나중에 그의 시에서 되살아났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국 아가씨인 애니 플레이든을 사랑하게 된 사건이었다. 그는 런던까지 이 여인을 따라갔지만, 끝내 사랑을 얻지 못했다. 이 낭만적인 실연에서 영감을 얻어 유명한 시 〈사랑받지 못한 애인의 노래 Chanson du malaimé〉를 썼다. 파리로 돌아온 뒤, 아폴리네르는 문필가들이 자주 드나드는 카페의 단골 손님이자 작가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또한 나중에 유명해진 몇몇 젊은 화가들, 즉 모리스 드 블라맹크, 앙드레 드랭, 라울 뒤피, 파블로 피카소 등과 친구가 되었다. 그는 앙리 루소의 그림과 아프리카 조각을 동시대인에게 소개했으며, 피카소와 함께 그림만이 아니라 문학에서도 입체파 미학의 근본 원리를 밝히려고 애썼다. 그는 1913년에 〈입체파 화가들 Peintures cubistes〉을 발표했다.
그의 처녀작 〈타락한 마술사 L'Enchanteur pourrissant〉(1909)는 마술사 메를랭과 요정 비비안이 나누는 이상야릇한 대화를 시적 산문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듬해 그는 기발하고 기상천외한 작품들로 이루어진 생기 넘치는 단편집을 〈이교 창시자 회사 L'Hérésiarque et Cie〉(1910)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어서 격식을 차린 4행련구로 씌어진 〈동물지 Le Bestiaire〉(1911)가 나왔다. 그러나 그의 대표작은〈알코올 Alcools〉(1913, 영어판 1964)이다. 이 시집에서 그는 자신의 모든 경험을 상상 속에서 다시 체험하면서 때로는 12음절 보격을 가진 정상적인 연으로, 때로는 짧은 무운 시행으로 그 경험을 표현했고, 구두점은 전혀 찍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아폴리네르는 입대하여(1914) 보병 소위가 되었고, 1916년에 머리를 다쳤다. 제대한 그는 파리로 돌아와 상징주의적 소설인 〈살해된 시인 Le Poète assassiné〉(1916)을 발표했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 3번째 시집 〈칼리그람 Calligrammes〉(1918)을 발표했다. 이 시집을 지배하는 것은 전쟁의 이미지와 새로운 연애에 대한 그의 집착이다. 전쟁터에서 입은 상처로 쇠약해진 그는 유행성 독감에 걸려 죽었다.
희곡 〈티레시아스의 유방 Les Mamelles de Tirésias〉은 그가 죽기 전해에 상연되었다(1917). 그는 이 희곡을 초현실주의 작품이라고 불렀는데, 초현실주의라는 용어가 쓰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프랑수아 풀랭크는 이 경희곡을 희가극으로 각색했다(초연 1947). 아폴리네르는 시에서 대담하고 무모한 기법을 실험했다. 그의 〈칼리그람〉은 독창적인 활자 배열 덕분에 시이면서 동시에 도안이다. 좀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아폴리네르는 언어의 색다른 조합으로 놀라움이나 경악의 효과를 내고자 했고, 이 때문에 그를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라고 부를 수 있다.
미라보 다리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르는데 나는 기억해야 하는가 기쁨은 늘 괴로움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서로의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하고 우리들의 팔이 만든 다리 아래로 영원한 눈길에 지친 물결들 저리 흘러가는데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사랑이 가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이 떠나가네 삶처럼 저리 느리게 희망처럼 저리 격렬하게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하루하루가 지나고 또 한 주일이 지나고 지나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 기욤 아폴리네르 : 프랑스의 시인 ( 1880 ㅡ 1918 ), 시집 : 「알코올 」출간. 이탈리아 출생. 가족과함께 리용으로 이주. 라그랑드 프랑스에 세 편의 시를 발표함.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중의 한사람이다. 그는 보드레르, 말라르메, 랭보, 베르렌으로 이어지는 현대시의 가교이자 상징주의에서 벗어나 비로서 현실세계로 돌아온 시인이다. 자유적이면서도 전위적이고, 전통을 수호했고 새로움 앞에서 거침없이 실험정신을 구현한 시인이다.
* 1907년, 아폴리네르는 피카소의 소개로 화가 마리 로랑생을 만난다. 그리고 " 더 이상 사랑할 수는 없다" 라고 말했을 정도로 마리에게 빠져든다. 마리가 미라보 다리에서 가까운 오퇴유 지역으로 이사를 하자 아폴리네르도 마리를 따라서 미라보 다리 가까이 이사를 한다. 마리와 아폴리네르는 미라보 다리를 오가며 , 미라보 다리 아래를 영원처럼 흐르는 센강 (세느 강)을 바라보며 , 영원한 사랑을 속삭였을 것이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미술품 절도범으로 몰리게 된 아폴리네르는 설상가상 으로 마리로부터 이별(離別)을 통보 받는다. 이 시는 아폴리네르가 잠시 갇혀 있었던 <상테>감옥에서 풀려나 미라보 다리를 걸으며 마리와의 사랑을 回想하며 쓴 시(詩)이다.
레오 페레를 비롯해 수많은 가수들이 곡을 붙이고 노래를 한 이 시(詩)로 인해 예술과 사랑의 도시, 파리가 더욱 빛났으리라. " 수르퐁 미라보 , 꾸레라 세느 "를 노래할 때마다 , 떠남 이후에 더욱 격렬해 지는 사랑의 부재(不在)는 흐르는 강물처럼 단조롭게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을 듯 빛났으리라. ㅡ 文學評論家 정끝별님의 해설에서 발췌함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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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리네르는 아폴론에서 나온 이름이다. 그의 혈통은 꽤 복잡해서 그의 어머니의 내력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폴란드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모친은 사생아를 둘 낳았는데 이중 장남이 후에 시인이 되었고 형제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또 동일인지의 여부도 현재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게 된 아폴리네르는 어려서부터 여기저기를 떠도는 생활을 하게 되었고 후에는 많은 여인과 사랑을 나누게 되는데, 헤어지고 나면 그 실연을 기념하여 시를 쓰는 습관이 있던 그의 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간단하게나마 그의 연애사를 한번 살펴보는 것도 과히 의미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21살 무렵에 아폴리네르는 라인 지방에서 어느 귀족 집안의 딸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교사로 채용되었는데 거기서 역시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었던 영국 처녀 애니 플레이든을 만나게 되어 한동안 그의 열정을 불태웠다. 그후 파리로 돌아온 시인은 몽마르트에서 피카소, 막스 자콥 등과 친하게 지내면서 얼마 후엔 마리 로랑생도 만나게 되었다. 1차 대전이 발발하자 아폴리네르는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고 군대에 지원을 했는데, 입대를 기다리면서 니스에서 이혼녀인 루이즈를 만나 깊이 빠져들게 되었고 얼마 후에는 알제리에서 문학 교사를 하고 있던 마들렌과 우연히 기차에서 만나게 되어 둘은 편지를 통해 사랑을 키워나가다 결혼까지 약속하고 시인이 나중에 휴가를 얻어 알제리까지 가서 둘이 함께 지내고 왔으나 어찌 된 일인지 그 후로는 조금씩 사랑이 식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아폴리네르는 포탄의 파편이 머리에 박히는 큰 부상을 당하게 되어 두개골 절제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회복기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때 앙드레 브르통, 장 콕토 등과 만나며 문인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면서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화가 자크린 콜브를 다시 만나 둘은 급속히 사랑에 빠져들게 되어 1918년 결혼을 했고 피카소가 결혼 증인을 섰다. 그러나 1918년 발생하여 오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악명 높은 스페인 독감이 부상으로 허약해진 시인의 몸을 덮쳐 불과 몇 달 전에 결혼식을 올렸던 성당에서 장례식을 올리게 되었는데 이때 그의 나이는 38세였다.
아폴리네르는 밥벌이 수단으로 비밀리에 에로소설을 썼다고 한다. 당시엔 이런 류의 소설은 내놓고 팔지 못하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비싼 가격으로 암거래되었다고 하는데 그는 이런 소설을 썼을 뿐만 아니라 발굴해서 편집하는 일까지 해서 고전에서 최근 작품에 이르기까지 30여 종의 작품을 골라서 해설까지 붙였다고 한다. 이러한 일을 하면서 그가 발굴해낸 작가가 바로 사드인데, 사드의 전집을 간행해서 20세기 초에 빛을 보게 만든 것은 순전히 그의 공헌이다. 또 그는 칼리그람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시도를 하였는데 이것은 시구로 어떤 형상을 만드는 것을 말하며 텍스트와 이미지를 오가는 실험적인 기법이다. 아래는 그가 만든 칼리그람이고 모자를 쓴 여인의 모습은 루이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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