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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퍼포먼스를 행위예술 [行爲藝術, performance]이라 합니다.
->개념미술의 관념 등을 보다 구체적으로 육체 그 자체를 통하여 실행하는 예술행위.
실행 ·연기 ·연주 등의 어학사전적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회화 ·조각 등이 전통적인 장르개념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표현욕구를 신체를 이용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표현하는 예술행위를 말합니다. 신체를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신체예술,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한다는 측면에서 과정예술로 불리기도 한다. 해프닝 ·이벤트 등으로 불렸으나 점차 퍼포먼스라는 용어로 통용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의 원초적인 표현욕망을 연극적으로 표출한다는 차원에서 역사적으로 그 기원을 원시종합예술(ballad dance)로까지 소급할 수 있으며, 20세기 예술에서 그 전조를 미래주의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에서 발견할 수 있으나 1950년대 말에 해프닝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시도되었습니다. 그러나 해프닝의 선구적 사례로서 1954년 J.케이지가 가졌던 《4분 33초》란 전위음악연주회를 들 수 있는데 이 연주회는 4분 33초 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은 채 공연장에 모인 청중들의 소음을 채집하는 것으로 끝난 행사로서 그가 1962년에 나타나는 ‘플럭서스(Fuluxus)’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플럭서스란 흐름, 끊임없는 변화, 운동을 의미하는 중세라틴어로서 J.매키우나스에 의해 조직된 행위예술 단체인데 요셉 보이스, 백남준(白南準), 백남준과 함께 비디오 첼로를 협연했던 S.무어맨 등이 이 운동에 참가했었습니다.
해프닝은 연극의 형태로서 극장보다는 야외나 극장 이외의 장소에서 시연되며, 미리 기획된 연기나 즉흥적인 연기로 이루어지는데, 1959년에 시도된 A.카프로의 해프닝이 이러한 예술의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Y.클라인은 1960년 《인체측정술》이란 이벤트를 연출한 바 있고 1970년대 이후 많은 작가들이 행위예술을 시도하여 이제 행위예술은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는 가장 보편적인 예술의 하나로 통용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에서는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을 계기로 최초의 해프닝이 시도되었고, 1970년에 김구림(金丘林)이 한강변에서 《현상에서 흔적으로》라는 이벤트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 후 정찬승 ·정강자 ·이건용 등의 미술가와 무세중(巫世衆) 등의 행위예술가에 의해 퍼포먼스가 활발하게 발표되었으며 초기에 해프닝 ·이벤트 등의 용어로 시도되던 퍼포먼스는 90년대 들어 탈장르현상과 맞물려 주로 젊은 작가들에 의해 빈번하게 시연(試演)되는 추세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