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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몽롱파시인 - 고성
2015년 08월 26일 22시 43분  조회:4672  추천:0  작성자: 죽림
 

 37세에 자살한 시인 꾸청顾城

 

                                                   김금용(시인)

 

 

  <꾸청은 늘 높고도 흰 모자를 쓰고 있었다>

 

몽롱파 시인 꾸청의 방황과 사랑

 

   ‘우연’ 이라는 말을 극히 싫어하지만, 때론 나도 내 삶 속에서 ‘우연’을 받아들이게 된다.  우연히, 나는 꾸청顾城(1956- 1993)의 일생을 그린 영화 《꾸청의 이별과 사랑 顾城别恋》을 보게 됐다. 그것도 올 6월 초 홍콩에서, 아주 우연히,..! 

마치 내가 ‘시와 세계’의 원고청탁을 받고 어떤 시인을 소개해야 할까, 고민하는 걸 알고 계시해 준 것처럼, 밤늦게 혼자 리모콘을 돌리던 내 눈길을 사로잡는 영상이 있었다.

물론 알아들을 수 없는 광동어였지만, 분명 몇 년 전 내가 읽었던 한 시인의 사진 속 얼굴이 똑똑하게 들어왔다. 창백한 피부 아래 눈이 휑할 정도로 동그란, 피리 부는 소년 같은 남자의 영상, 주방장 모자 같은 흰 모자를 높이 쓴 그 모습이 왠지 그를 슬프게 하던, 드라마 속의 주인공은 바로 중국 몽롱시의 대표시인, 꾸청이었다.

뉴질랜드 북쪽의 한 작은 섬을 배경으로 꾸청과 그의 아내 시에예谢烨, 그리고 그를 좋아하며 두 부부 사이의 갈등을 만들어내던 한 여인 ‘잉얼英儿’과 그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던 뉴질랜드 이웃들과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왜 그가 그의 아내를 죽이고 스스로 자살할 수밖에 없었는지, 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난 호 수팅舒婷과 그녀의 시편을 소개할 때 이미 거론한 것처럼, 꾸청은 몽롱시의 대표시인이다. 또한 당대의 낭만주의 시인이기도 하다. 초기의 그의 시는 아이들처럼 천진한 풍격과 몽환의 정서를 갖고 있었다. 직감과 인상적인 어휘를 사용, 영탄 섞인 동화 속 소년생활을 엿보이게 했다. 두 행으로 이뤄진 시《일대인一代人》 “어둠은 나에게 까만 눈동자를 주었다 / 나는 그것을 통해 광명을 찾는다 ”는 지금까지 중국현대시의 경전이 되고 있다.

 

꾸청은 1956년 9월 24일, 북경에서 태어났다. 문혁이 일어나던 해인 1969년에 비판을 받아 산동성 광베이廣北농장으로 쫓겨간 아버지 꾸공顾工을 따라 그는 12세에 학업을 중퇴하고 돼지를 키웠다. 1973년부터는 그림을 배우다가 1974年 북경으로 돌아와 운반공과 목공일을 하며 가끔 차출되어 편집을 도우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문혁이 끝나면서 1980년 초 직장은 해체되고 한 때 표류생활을 하면서도 21세인 1977年《민들레蒲公英》라는 시를 발표하여 각광을 받았으며 24세이던 1980년엔 《별들(星星)》이라는 잡지에 <一代人>이란 시를 발표, 역시 시단의 강렬한 반향과 큰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몽롱시파의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베이징문예北京文艺》、《산동문예山东文艺》、《소년문예少年文艺》등에 시를 발표하며 80년대 주류를 이뤘던 <<몽롱시>>파의 아이 칭艾 青, 수 팅舒婷에 이어 3대 대표시인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1985년 그는 중국작가협회에 가입, 87년엔 구미문화교류방문단에 끼어 창작 강의 활동을 하다가 88년엔 뉴질랜드로 가서 중국고전문학을 가르쳤으며 오크란 대학의 아시아언어 연구원으로 초빙,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누렸지만 곧 사직하고 섬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  한편 1992년, 그는 독일학술교류중심(DAAD) 창작기금을 받으며 잠시 독일에서 시작생활을 시작했으나 현실과 이상사이의 갭을 허물지 못한 그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결국 그마저 사직하고 뉴질랜드 북방의 한 작은 섬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

그러나 근 일 년 만에 생활고와 심약한 그의 정신상태 등을 이유로 그의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1993年10月8日 급기야 아내를 도끼로 죽이고 자신도 자살했다.

당시 이 사건은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많은 매체에선 “꾸청이 도끼로 부인을 살해하다”라고 보도하면서, 동화시인이었던 그가 악마에 의해 정신이상을 일으켜 살인자가 되었다고 했다. 물론 사후 일부 그 누명은 벗겨졌지만 (꾸청의 누나 꾸샹顾鄕은 “꾸청최후의 14일”이라는 기획물에서 말하길, 도끼는 우연히 그 장소에 있었을 뿐이며,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 참혹한 사건은 중국인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몇 달 전인 1993年 3月 그들 부부는 중국으로 귀국하여 가족과 문인들을 만나고 다시 독일을 거쳐 뉴질랜드로 돌아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아내 시예예와 꾸청은 1979년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4년간 연애를 하다가 1983년 결혼했다. 1987년 같이 조국을 떠나 자살을 할 때까지 그의 아내는 그의 잦은 실직과 이사, 가난, 그리고 꾸청을 쫓아다니며 함께 살기도 했던 여인,‘잉얼’ 등으로 많은 심리적 고초를 견뎌내는 중에도 관용과 미덕을 겸비했던 여인이었다. 하지만, 극단의 자기 중심적이었던 꾸청으로서는 그의 어머니이자 누나 노릇을 해오던 그녀를 떠나가게 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내가 보았던 홍콩에서 찍은 《꾸청의 이별과 사랑 顾城别恋》이란 영화는 꾸청 자신이 남긴 《잉얼英儿》라는 소설 내용이 반영된 것이었다. 꾸청이 최후에 보여준 광폭한 모습은 그의시를 좋아해 쫓아다니던 한 여인 때문이라는 항간의 추측도 있었는데, 그 ‘잉얼’이란 여인의 실제 본명은 리잉李英으로 현재《시간诗刊》잡지사의 편집을 맡아보는 마이치麦琪라는 필명의 여인이다. 그러나 마이치는 꾸청이 죽은 후 그녀에게 남겨진 이런 주홍글씨를 명확히 거부하고 있다.

한편 1993년 12월22일 뉴질랜드 경찰국을 통해 중국영사관에 전달된 그의 유서는 모두 네 통이었다. 부모님에게, 엄마에게, 누나에게, 아들 무얼木耳에게,..!

이 유서들은 사건현장에서 경찰이 취합했는데, 통합해서 보면, 그는 길이 끊어진 막다른 곳에 스스로 몰려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어린 아들木耳(三木Sam)에게만은 눈물을 보이며 아빠를 이해해달라는 문구가 있었다. 꾸청은 사진과 원고 등을 누이에게 부탁했으며 굳이 보관하지 않아도 되며 집이나 그 밖의 것 역시 아들에게 굳이 남기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사후 모든 원고나 모든 꾸청의 것들은 자연스레 누나가 보관, 최근 꾸청의 사후 50년에 즈음하여 북방문예출판사에서 4권의 “꾸청문학계열顾城文学系列”을 냈는데 그 첫 권《꾸청문학선: 다른 세계 顾城文选别有天地》은 꾸청이 1987년 5월 독일 밍스터明斯特에서 가진 “국제시축제”에 참가하면서부터 1993년 10월 8일 그의 아내와 한 섬으로 도피했을 때까지 쓴 작품들을  “꾸청의 성顾城之城”이라는 웹싸이트의 장샤오민江晓敏과 함께 편집한 것이다. 총 150만 여개의 문자로 산문 및 시를 실었다.

   

꾸청은 많은 시와 문장, 서법, 그림 등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저서로는 시집 《검은 눈동자黑眼睛》(1986年 인민문학출판)《한낮의 달빛白昼的月亮》、《수팅, 꾸청서정시선집舒婷、顾城抒情诗选》、《북방의 고독한 노래北方的孤独者之歌》、《쇠방울铁铃》、《베이다오,꾸청시선北岛、顾城诗选》、《꾸청의 시顾城的诗》、《꾸청의 동화우화 시선顾城童话寓言诗选》、《꾸청현대시자선집顾城新诗自选集》과 그의 사후 부친이 편집해서 출판한 《꾸청시전편顾城诗全编》이 있다.。그 밖에 1998년 인민문학출판사에서 낸 《꾸청의 시顾城的诗》와 소설《영자英子》(1994年 1월 북경 화예사출판 그의 아내 시에예 합작)、《성城》등 작품들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되었으며 그 외 문집《생명이 정지된 곳, 영혼이 나간다 生命停止的地方,灵魂在前进》,조합시집《성城》、《귀신이성으로 들어간다鬼进城》、 《나로부터 자연에 도달하기까지从自我到自然》、《목적이 없는 나 没有目的的我》가 있다。

 


 

높고 흰 모자를 쓴 ‘동화시인’

 

  문화혁명 중 우울한 청소년기를 보낸 그의 작품세계는 자연 반사상反思想이 깃들어 있다. 물론 그런 반항과 부정적 비판의식을 통해서 생명의 고귀함, 인간본연의 영혼 찾기로 그 귀결점을 찾고 있지만 말이다.

따라서 누구보다도 몽환의 세계, 동화적인 순수 미의 생명의식을 찾는 데 역점을 두었으며, 그만의 독특한 인문주의적 시세계를 보여줘 그를 통칭 ‘동화시인’이라고도 부른다.

그의 시는 수팅의 고상하고 단정하면서도 미려한 우울함을 드러내는 것과는 비교되는 순진무구함, 암수가 구별되지 않는 몽롱함이 있다.

그만큼 그의 시엔 몽환과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는 천진함이 넘친다.

성인의 우울한 상처가 아니어서, 시인 개인의 우울한 상흔이 아니기 때문에, 한 세대가 각성한 상처이기 때문에, 그 각성한 한 세대들이 바라보는 현실로부터 파생된 상처이기 때문에, 그의 시는 담담하며 때론 납처럼 깊고 무겁다.

그의 시《 나는 제멋대로인 아이我是一个任性的孩子》는 자신이 바로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에 버릇없어진 아이 ”임을 선포하고 있다.

자기만의 생각에 맞춰 자기만의 꿈을 고집하는 건 그의 집착이기도 하지만, 한편 그의 매력이기도 하다. 복잡하고 억압된 성인세계 속에서 꾸청의 의식은 “눈을 감으면 세계와 나는 관련이 없어진다 ”고 보았으니 말이다。《我是一个任性的孩子》에서 차용한 아이들의 시각은 아동의 이상 안에서 개조된 성인세계다. 꾸청이 이 시에서 보여준 아이들 형상은 맑은 바람처럼 성인세계의 오염된 땅을 뒤흔들었다. 또 하나 몽롱시의 대표시인 베이다오北岛도 한탄하며 말하길 “비천함은 비천한 이들의 통행증이 되고 고상함은 고상한 자의 묘비명이 될 때, 꾸청은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서툴지만 ‘자유’를 찾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꾸청의 성顾城之城”의 장샤오민은 저장성浙江省의 한 중학교의 고3 어문교사이다.

그녀는 1993년 시집《海篮바다 광주리》에 실린 꾸청의 시를 처음 읽고 감동을 받아 1994년엔 《시탐색诗探索》에 꾸청의 친구가 쓴 《최후의 꾸청最后的顾城》을 읽으면서 꾸청과 그의 시에 빠져들면서 지금까지 그에 대한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지금까지 꾸청에 대한 모든 자료를 수집, 관리하고 있다.

초기의 《생명환상곡生命幻想曲》、《구별되는 바다分别的海》와 후기의 《노래는 나무들을 헤엄치게 한다颂歌世界?是树木游泳的力量》를 좋아했다는데 그 이유는 “진실”이 담겨져 있으며 “자연순화”의 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의 시는 만들어진 게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자연스레 흘러나온 것들이어서 시를 읽으면 너와 나를 잊게 되고 충돌되는 게 너이기도 하고 네가 흐르는 물인가 하면 돌이기도 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보고 美에 대해 말하라면 그것은 일종의 상태일 뿐, 비현실적인 허황한 세계로 받아들여진다. 왜냐면 미가 그 모습을 드러날 땐 너무 진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 아직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은, 단지 나만 그렇게 바라보는 것에 희열을 맛보는 동시에 일종의 비밀감과 공포도 느낀다.  난 미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두렵다. 혹여 그것을 파괴할까봐 두렵다. 그리고 난 또 다른 공포를 갖고 있다. 일종의 미라는 것을 내가 바라볼 때 다른 사람들 역시 그 훼손된 미를 미라고 알까봐 두렵다.

                      __꾸청의 <목적없는 나(无目的的我)>에서 _

 

“몽롱시朦胧诗”를 이끌던 《오늘今天》의 편집진인 쉬샤오徐晓는 자신이 쓴 《반평생半生为人》에서 꾸청에 대해서는 진실로 “자기만의 성안에서 살던 사람”이었다고 토로했다.

꾸청보다 2 년 2 개월 먼저 태어난 누이 꾸샹顾乡 역시 동생에 대해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한 살 되기 전부터 걸었는데, 큰 옷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곤 하던 게 기억이 새롭다, 유치원 다니던 때의 꾸청은 여전히 침착한 아이였으며 다른 아이들과 놀지 않고 누나 꾸샹만 찾곤 했다”고 회상한다. 많은 책 속에 파묻혔던 그는 자신을 따돌리곤 하는 친구들에게 《삼국연의三国演义》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이야기꾼”이란 별명을 갖게 되었지만 친구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여들 때마다 그는 포위되는 걸 못참았기 때문에 그는 늘 혼자였다. 외부와의 교류를 갈망하면서도 안으로 숨어드는 그는 누나가 유일한 그의 관중이었으며 그녀가 없을 땐 도리 없이 빈 방에 들어가 담장을 마주하고 이야기했다한다. 이처럼 그는 문혁의 거친 풍랑 속에서도 여전히 홀로 햇살 아래 있거나 낙엽 속에 파묻혀 있었으며 찬바람을 맞으며 고성 담장에 붙은 귀뚜라미나 황량한 풀숲 중의 메뚜기를 찾고 있었다. 높은 나팔소리나 인파가 그의 주위를 덮어도 그는 홀로였다.

꾸샹은 또 회상하길 “내가 그런 집단이나 사회 여러 행사 등에 참석하는 것도 반대했으며 안타까워했다. 그런 일들은 아무 가치가 없다고, 친구들은 모두 통속적이라고 조롱했다. ” 반면, 사람들은 “스스로 성에 갇힌” 그를 이상하게 보았으며 항상 높은 모자를 씀으로써 색다른 인상을 주었다. 1992년 6월 네덜란드에서 강의를 할 때도 이 모자를 썼으며 1992년 12월 독일에서 강의를 할 때도 변함이 없었는데 외국인들에게도 그는 신비한 ‘동화 시인’이었다. 그들에게 이 높고 높은 모자는 시인의 나라를 상징하는 것으로 짐작케 했으며 또한 왕관은 아닌가 하는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왜 자신을 “왕”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기실 꾸청은 독일에서 주는 안정적인 직업을 거부했다. 그리곤 그의 아내 시에예谢烨와 뉴질랜드의 한 섬으로 들어가 닭을 키우고 채소를 키우며 살았다. 이는 물론 그의 집은 자신만의 독립왕국이며 자급자족을 뜻하는 것이었지만, 뉴질랜드 이웃들에겐 이해되지 않는 점이었다. 왜냐면, 여러 마리의 닭을 임의로 키우고 죽여 요리에 쓰곤 하는 행위가 비위생적으로 비춰졌으며 위생국에 당연히 검색을 받아야 하는 불법행위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이런 동양과 서양간의 사고 차이에서 오는 마찰 때문에도 그는 더 폐쇄적이고 이상한 사람이 되었으며 부인과의 다툼도 이런 환경에서 더 두드려졌다하겠다.

 북경의 영화학원 교수인 추이웨이핑의 눈엔 “꾸청은 담이 적은 사람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뒤로 물러서 있길 좋아해서 뒷줄에 앉는 걸 즐기는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꾸청을 몽롱시파 중에 “최대로 공헌한 시인”이라고 말한다, 다만 《한세대 一代人》에서 야기되는 의심은 “암흑이란 환경을 자기 광명으로 표현하는 건 일종의 임의의 표현이다.” “사회를 관조할 때 자신을 거꾸로 돌려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한편 《오늘今天》잡지의 임원인 류즈리刘自立도 꾸청의 시에 대해 혹평을 하면서도 그가 “동화시인”임을 다시 한 번 주지시켰다.

“그는 어린아이같이 시를 쓴다, 때론 노숙한 아이의 성숙함도 보이나 어른이 쓴 시는 아니다. ” 그가 인식하는 꾸청의 창작은 문혁에 대한 강경한 사유모색의 반발일 뿐, 단순한 반항 의식으로서 일종의 어린아이식 사고를 완성시키고 있다고 보았다. 왜냐면, ‘개구쟁이’란 통제력을 잃고 있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엔 이런 인격결여와 사회소통의 중단과 관련이 있다. 

 

 

 <뉴질랜드에 머물 때의 꾸청과 그의 아내 >


 

꾸청 시의 예술적 특징

 

꾸청의 시에 대한 전반적인 특징이자 우수성은 첫 째,비교적 우화적 의미와 상징성을 신중하게 지니고 있으며 시의 음악성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모종의 동화 색채가 엿보이며 그것도 소위 개구쟁이 성격을 띤다는 것이었다.

꾸청 시의 최대 특징은 이미지의 실현이다

그 실현을 위해 제일 많이 사용한 표현은 상징은유법이었다.

이 수사법은 진실 그대로 그리거나 내심을 직접 토로하는 전통 방식을 깼으며, 서정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놓았다.

그의 시 중의 상징은 표면상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심층적으론 무한한 함축을 내포하고 있어서 시의 감염력이 매우 크다. 조기 상징주의의 대가 마라메이가 반복 강조한 대로 “ 시는 단지 암시여야 한다. 직접 그 이름을 부르는 것과 같다. 따라서 4분의 3을 생략하여 느끼도록 해야 즐길 수 있다.” 시의 매력은 직관으로 다 드러내지 않고 마치 그림을 그리듯 해야 하며 무언가 증명할 게 없어야 한다. 즉 시는 총괄적으로 뭔가를 암시만 해야 한다.“

이같이 상징성의 추구는 현대시의 한 특징이 된다.

상징수법은 중국 고전시의 비흥比兴수법과도 아주 가깝다. 상징은 일종의 비흥이며 비흥은 상징의 일종표현기법으로 비比는 시의 형상화를 구하는 것이며 흥兴은 시의 언어 너머의 의미를 구한다고 보았다. 다른 것이라면 상징수법은 대부분 교묘하게 비교 대상 사물을 감추고 시 주제 역시 다의성多义性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짧은 단시《한세대一代人》에서 “까만 밤黑夜”,“나我”“까만 눈동자黑色的眼睛”등은 감성 형성 구성을 위한 이미지의 조합이다. 이 시어들은 이미 그 단어 자체로 객관적 의의를 갖고 있다. 더불어 제목에서 주는 암시 때문에 더더욱 강렬한 상징성을 가진다.   즉, “까만 밤黑夜”은 한 세대의 정신세계의 암울한 배경을 상징한다. “눈동자眼睛”는 광명을 갈망하는 한 세대의 눈동자를 상징하며 시 중의 “나”는 바로 가장 고통받고 인간의 말로까지 가보았던 문혁세대들, 그 세대를 가리킨다. 이로 인해 시 상징의 심미적 특성은 실제 이미지의 내재의 미학 특성이기도 하다. 꾸청의 시의 이미지 세계 중에 드러나는 은유법과 상징은 역시 그 암시성을 갖고 있다. 

꾸청 시의 두 번째로 많이 사용한 수사법은 추상변형수법이다.

현대생활의 진전으로 사람들의 감상과 기호는 부단히 변화되어왔다. 예술변형도 가면 갈수록 다채로워졌다. 이에 “변형이 없는 건 예술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서구 현대파의 예술강령은 “묘사가 불확실한 것이 진실이다 ”“형태를 벗어날 때 더 진실에 가깝다”

약속이나 한 듯 이미지 창조에 대한 신시의 흐름은 늘 고전주의의 과대수식을  벗어난 “변형”이었다고 말한다. 그가 쓴 《생명환상곡生命幻想曲》중에 이런 글이 있다.

 

“ 빛의 폭포에/나의 피부를 검게 씻는다 /……/ 태양은 나의 인부/그는 날 잡아당긴다 /강렬한 빛의 밧줄로/……/ 让阳光的瀑布/洗黑我的皮肤/..../ 太阳是我的纤夫/它拉着我/ 用强光的绳索 .....) ”

 

여기서  “폭포瀑布”는 “햇볕阳光”을 은유한다,또 폭포로 검은 얼굴을 씻어줌으로써 햇볕은 내 피부를 검게 타게 함을 은유한다. 원래 검은 피부는 건강미의 표시이다. 그러나 그 검은 색은 어둠을 뜻하고 절망을 낳는다. 강렬한 생명력이 그를 잡아당기지만, 태양인 인부가 밧줄로 묶어 잡아당기는 데서 그는 오히려 속박으로 받아들여진다. 선택 없는 어둠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까닭에 이들 간의 복잡하고도 교묘한 본질구성은 시인의 주관적 직시와 감각에 의해 단순해지고 ‘변형’된다.  직감과 환각, 착각, 순간감각에 대한 인상은 대상을 쉽게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작가의 주관이 객관적 사실에 대립되면서 교묘히 대상을 변형 “무의식 중의 적절한 이치와 존재이유”를 밝히게 한다. 그의 숨겨진 속내를 드러나게 된다. 이로써 시인 눈앞에서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도 내재한 속내를 드러내게 할 수 있고 시인 안중의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한 줄기 피로 보일 수도 있는 이유이다.

세 번째로 많이 사용한 이미지 표현수법은 감각의 소통이다.

이를 우리는 일반적으로 통감痛感이라고 하는데, 일찍이 이 통감법은 중국고전시에서도 늘 써왔던 수사법이기도 하다. 즉, 중국의 옛 선조들은 일찍이 “소리유형听声类型”을 숙지하여 예로 들면, ‘수愁’라는 글자 하나에 “물 한 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근심이 만리까지 간다一水牵愁万里长”,고 뜻을 담아 물소리에 그 음감을 넣었으니 현대시의 통감범위 역시 고전시의 범주를 크게 초과하지 못하고 있다. 좋은 시일수록 안색은 온도를, 소리는 형상을, 차갑고 따뜻함은 중량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이런 오관의 상호소통은 서로의 공감각을 이끌어 시의 연상공간을 더욱 크게 한다. 또한 통감의 운용은 객관 세계를 풍부하게 변화시켜 준다. 더불어 대상끼리 상통, 각종 오감을 통해 시의 세계를 광활하게 창조하게 한다. 

꾸청의 시에 사용한 이미지 표현법에는 이 밖에도 대상끼리 겹치면서 사물을 사람으로 전이시키는 것이나 상상을 통해 대상을 취하는 수법과 생략도약법도 많이 사용되었다.

총정리하면 시의 이미지는 본래 언어라는 기호를 본체로 벗어날 수는 없지만, 늘 그는 공식화된 언어를 초월하기를 꿈꿨다. 따라서 꾸청 시의 이미지는 그만의 독특한 천진함과 단순하고도 직선적인 표현 아래 자아비판적이고도 풍자성이 농후한 예술풍격을 낳았다고 본다.

 

 

꾸청의 대표시 6 편

 

 

한 세대

 

까만 어둠은 내게 까만 눈동자를 주었다

나는 이를 통하지 않고는 빛을 찾아낼 수가 없다

 

一代人

 

黑夜给了我黑色的眼睛 / 我却用它寻找光明

 

문혁“文革”을 거친 한 세대 청년이었던 꾸청은 윗 시 두 행으로 몽롱시의 대표시인(1956年9月∼1993年10月)이 되었다. 20세기 70년대 말에서 80년 대 초의 몽롱시는 당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으며  “해방解放”이라는 중요한 한 문학 조류를 만들었는데 그는 바로 이 당대 현대시의 혁신의 기점이 되었던 것이다.

윗 시에 대해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파란만장한 문혁시대의 사람들을 지칭한다. 그 역시 이 세대에 속한 자로서 “까만 어둠”은 그 시대를 반영한 것으로 우리의 눈동자가 까만 이유가 역설적으로 표현되었다. 더군다나 광명조차 이 까만 어둠을 건너지 않고는 다가오지 않음을, 그것도 까만 눈동자 아니면 바라볼 수 없음을 극명하게 아이러니컬하게 밝히고 있다.

어찌 보면 단순한 이 표현 속에 감춰진 당시 중국 정치적 현실에 대한 냉소와 反思想이 중국인들에게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을지 짐작이 간다.    

 

 

 

눈을 깜박이기만 하면

____저  착오의 시대에 나는 이런 "착시"를 일으켰다______

 

 

나는 굳게 믿는다

내가 눈 깜박이지 않고 지켜보기 때문에

 

무지개,

분수 속에서 아른거리며   

부드럽게 행인들 바라보다가도

내가 눈 한 번 깜박이기만 하면

곧 독사의 그림자로 변해버린다

 

괘종시계,

교회당에 은거하면서

고요한 새벽시간을 갉다가도

내가 눈 한 번 깜박이기만 하면

곧 깊은 우물로 변해버린다

 

붉은 꽃,

화려한 무대 위에서 봉우리 피우며

흥분 속에 봄바람 맞다가도

내가 눈 한 번 깜박이기만 하면

곧 피비린내로 변해버린다

 

굳게 믿으려고

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본다   

 

 

                                  <<诗刊>> 80년 4월호 발표

 

 

贬 眼

 

   __ 在那错的年代里, 我产生了这样的 "错误"____

 

 

我坚信, / 我目不转睛. //

彩虹, / 在喷泉中游动, / 温柔地顾昐行人, / 我一贬眼____ / 就变成了一团蛇影.//

时锺, / 在教堂里棲息, / 浸静地嗌着时辰, / 我一贬眼_____/ 就变成了一口深井.//

红花, / 在银幕上绽开, / 兴奋地迎接春风, / 我___ 贬眼____ / 就变成了一片血腥. //

为了坚信, / 我 目圆 //

                            <<诗刊>>80. 4 发表

 

위 작품은 80년 꾸청 시인이 24세 때 발표한 것이다.

즉, 문화혁명이 막 끝난 직후 착오의 시대를 살아온 중국인민들의 반역사적인 "착각"과 그 "오류"를 치기 섞인 반어적 역설적 기법으로 표현, 기막힌 냉소를 보여주고 있다.

눈을 깜박거릴 수 없는 한 세대의 긴장감, 그러나 깜박거릴 수밖에 없어 지켜내지 못한 나의 과오이자 인민들의 과오는 ‘무지개’가 독사의 그림자로, ‘교회당 시계’는 시간을 쏠아대는 깊은 침묵의 우물 속으로, ‘붉은 꽃’은 문혁을 질풍노도로 피비린내를 일으켰던 홍위군의 봄바람으로 변하고 말았음을, 폭로하고 있다. 신처럼 받들어졌던 모택동에 대한 개인숭배와, 문혁을 주도했던 4인방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났을 때, 이런 천지개벽의 변화를 시인은 과연 어떻게 시로 표현할 수 있으며 이율배반적 현실에 적응할 수 있었겠는가?  반어적 농담으로 내뱉는 아픈 시선이 이 시 곳곳에서 발견된다. 

    

             

 

나는 버릇없는 아이

 

___ 난 대지에 창문을 가득히 그려놓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동자가 빛에도 익숙해지도록 하고 싶다._____

                                     

                                           

어쩌면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에 버릇없어진 아이처럼

난 제멋대로인지 모른다

 

나는

매 시각이

색깔 예쁜 크레용처럼 아름답기를 바란다

나는 

내 맘에 드는 흰 종이에

서툴고 거친 자유를 그려내거나

영원히 눈물 흘리지 않는

눈동자를 그려내길 바란다

넓은 하늘

그 하늘의 깃털과 나뭇잎

그리고 엷은 녹색의 어둔 저녁과 사과를

그려내기를 바란다

 

난 새벽을 그리거나

이슬을 그리거나

눈에 보이는 미소를 그리고 싶다

가장 젊고

가장 고통스러운 사랑을 그리고 싶다

그녀는 검은 구름을 본 적이 없다

그녀의 눈은 하늘빛

그녀는 영원히 나를 바라본다

영원히, 바라본다

절대로 머리 돌려 홀연히 가지 않는다

난 요원한 풍경을 그리고 싶다

또렷한 지평선과 물결을 그리고 싶다

많고 많은 쾌락의 시냇물을 그리고 싶다

구름을 그려본다______

잔털이 잔잔하게 가득 찬,

난 그들을 아주 가까이 붙게 하고

그들 서로를 사랑하게 한다

모든 묵계와

봄날의 모든 조용한 격동이

한 송이 작은 꽃의 생일이 되게 한다

 

난 또 미래를 그려보고 싶다

난 그녀를 만난 적이 없고, 또 그럴 리도 없다

그러나 그녀가 아주 아름답다는 건 안다.

난 그녀의 가을코트를 그리고

타오르는 촛불과 단풍잎을 그리고

수없이 그녀를 사랑하기에

재가 돼버린 마음을 그린다

결혼식을 그리고

일찌감치 깨어난 경축일을 그린다

그 위에 유리 빛 사탕종이와

북방동화의 삽화를 붙여 넣는다

 

난 제멋대로인 아이

모든 불행을 지워버리고 싶다

나는 대지 위에

창문을 가득히 그려놓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동자들이

빛에도 익숙해지도록 하고 싶다.

난 바람을 그리고 싶다

하나하나 점점 높아지는 산들을 그리고

동방민족의 갈망을 그리고

막힐 것 없는 큰 바다의

유쾌한 소리를 그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종이 한 모퉁이에

나는 또 나 자신을 그리고 싶다

한 마리 코알라를 그린다

빅토리아의 깊은 숲 속에

조용한 나뭇가지에 앉아서

넋을 놓고 있는,

그는 집이 없고

한 조각 마음은 먼 곳에 나가 있다

그는 단지 수많은

장과(浆果)와 같은 꿈과

아주 아주 큰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나는 바라고 있다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러나 왠지 모르지만

나는 크레용을 받지 못했고

색깔 있는 시각을 얻지 못했다

단지 나 자신만이 있을 뿐

나의 손가락과 상처의 아픔

한 장 한 장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으로 아끼던 백지만 있을 뿐

그들이 나비를 찾아가게 하고

그들이 오늘부터 사라지게 할 뿐이다.

 

나는 어린 아이

환상 속 엄마로부터 지나친 사랑에 버릇없어진  

나는 제멋대로인 아이다

 

我是一个任性的孩子

____ 我想在大地上畵满窓子, 让所有习惯黑暗的眼睛都习惯光明

   

                                        

也许/我是被妈妈宠坏的孩子/我任性//                    

我希望/ 每一个时刻 /都像彩色蜡笔那样美丽/我希望/能在心爱的白纸上畵畵/ 畵出笨拙的自由/畵下一只永远不会/流泪的眼睛/一片天空/一片属于天空的羽毛和树叶/一个淡绿的夜晚和苹果//

我想畵下早晨/畵下露水/所能看见的微笑/畵下所有最年轻的/最有痛苦的爱情/她没有见过阴云/她的眼睛是睛空的颜色/她永远看着我/永远, 看着/绝不会忽然棹过头去/我想畵下遥远的风景/畵下清晳的地平线和水波/畵下许许多多快樂的小河//

畵下丘陵_____ 长满淡淡的耸毛/我让他们挨得很近/让他们相爱/让每一个默许//

每一陈静静的春天激动/都成为一朵小花的生日//

我还想畵下未来/我没见过她,也不可能/但知道她很美/我畵下她秋天的风衣/畵下那訾燃烧的烛火和枫叶/畵下许多因为爱她/而熄灭的心/畵下婚礼/畵下一个个早早醒来的节日______/上面贴着玻璃糖纸/和北方童话的插图//

我是一个任性的孩子/我想涂去一切不幸/我想在大地上/畵满窓子/让所有习惯黑暗的眼睛/都习惯光明/我想畵下风/畵下一架比一架更高大的山岭/畵下东方民族的渴望/畵下大海___/无边无际愉快的声音//

最後, 在纸角上/我还想畵下自己/畵下一只树能/他座在维多利亚深色的丛林里/座在安安静静的树枝上/发愕/他没有家/没有一颗留在远处的心/他只有,许许多多/奖果一样的梦/和很大很大的眼睛//

我在希望/在想/但不知为甚麽/我没有領到蜡笔/没有得到一个彩色的时刻/我只有我/我的手指和创痛/只有撕碎那一张张/心爱的白纸/让它们去寻找胡蝶/让它们从今天消失//

我是一个孩子/一个被幻想妈妈宠坏的孩子/我任性//

 

이 시는 그야말로 꾸청의 성격과 그만의 색깔이 드러난 시이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잉얼英儿≫에서도 나오지만, 그는 안정적인 독일에서의 생활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리곤 누구의 간섭도 필요 없는 섬으로 들어가지만 여전히 사회성이 없는 그를 괴롭힌다.

그는 철없는 아이로 살고 싶어한다.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러나 왠지 모르지만 ”나는 크레용을 받지 못했고/ ..생략../ 단지 나 자신만이 있을 뿐/..생략.../마음으로 아끼던 백지만 있을 뿐“이다. 문혁은 끝났으나 뉴질랜드까지 도피해 왔으나 그가 살아남는 길은, 천진한, 개구쟁이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색깔을 찾아 그리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백지’만 있고 ‘크레용’이 없다. ‘손가락도 다쳤다’ 이것이 그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먼 것과 가까운 것                  

 

   

당신은                                                 ,

한 번은 나를 바라보다가                   

한 번은 구름을 보고 있어요                  

 

난 이제 느껴져요                              

당신이 나를 볼 땐 아주 멀리 느껴지고          

당신이 구름을 볼 땐 아주 가깝게 느껴져요     

 

远 和 近

 

你 / 一会看我 / 一会看云

 

我觉得, / 看我时很远 / 看云时很近

                                                1980년 발표작

 

진실이란 무엇인가, 정말 가까이 다가가면 보이는 것일까, 단절은 지금 이렇게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다고 말하는 중에도 일어나고 있다. 정작 먼 구름은 가깝게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함께 사랑을 나눈 너와 나 사이에서는 여전히 먼 거리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 틈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 우린 느낀다, 깨닫는다.

 

 

봄날

  _나는 손수건을 가볍게 흔든다___

 

 

봄날, 

너는 손수건을 가볍게 흔드는구나

내게 멀리 가라고

하지만 곧 돌아오라는 건가

아니, 어떤 것도 아니지,

어떤 것도 이유가 아니지,

꼭 물위로 지는 꽃 같구나

꼭 꽃잎 위의 이슬 같구나,..

그림자만 아는구나 

바람만 느끼는구나

채색나비만 놀라 탄식하는구나

여전히 마음 가운데 꽃은 분분히 날아가는데,.. 

 

 《别》

        (在春天,我把手帕轻挥)   

在春天,/ 你把手帕轻挥,/ 是让我远去,/ 还是马上返回? / 不,什么也不是,/ 什么也不因为,/ 就象水中的落花,/ 就象花上的露水……/ 只有影子懂得,/ 只有风能体会,/ 只有叹息惊起的彩蝶,/ 还在心花中纷飞……

 

이별이 이리 가벼울 수 있을까, 단지 손수건 한 장 흔들듯 그대는 가고 어떤 이유도 댈 수 없는 채로 그렇게 봄날 속에 우리들 이별은 바람 한 점 남기며 떠난다. 그것도 봄날에, 아무도 귀 기울여 아는 체도 없는데, 오직 채색나비가 꽃잎 떨어지듯 그림자를 잠시 남기며 바람인듯 날아가는 그 가벼운 탄식 아래 그렇게 우리의 이별은 가볍고 또 가볍게 봄을 풀어내고 있다니,..! 

 

 

작은 항구

 

 

작은 항구

굽이굽이 길구나    

 

문도 없고

창문도 없어

 

난 오래된 열쇠를 들고

두터운 담장을 두들긴다

 

 

小巷             

 

小巷/ 又弯又长 // 没有门 / 没有窗  //  我拿把旧钥匙 /  敲着厚厚的墙  // 

 

 아주 작은 항구에 몸을 숨겨도 여전히 창도 없고 문도 없다. 그를 가려줄 현관문 열쇠를 찾아보지만, 너무 녹슬어 쓸모가 없다. 별수 없이 막힌 담장에 가서 두들긴다. 자기 안의 성안에서 그만의 소통을 꿈꾼다. 그의 말을 들어주던 누이처럼 누군가 자신에게 걸어 들어와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꿈꾼다. 마지막으로 찾아든 뉴질랜드의 아주 작은 섬, 그곳에서 그는 숨어 살고자 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과 생활을 맡은 그의 아내의 질책이 뒤따른다. 숨 막히는 그의 막다른 골목을 ‘小巷’ 이 두 글자에서 찾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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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몽롱파시의 황제-고성

신금철문학살롱 진행을 맡은 신금철입니다. 네 지난시간에는 3.8절을 맞으면서 여성시인들과 그들의 시들을 감상했는데요 오늘시간에는  중국몽롱시의 황제-고성시인과 그의 일부 대표작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연변시가학회 부회장 림금산시인과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림금산—네 수고하십니다.
신금철—고성이라고 하면 지난번 북도시인을 얘기할때 북도시인이랑 서정시인이란 함께 중국몽롱시파의 대표적 시인이라고 했죠? 몽롱시의 황제라고 한데는 어떤 리유라도 있나요?
림금산—네 북도는 몽롱시파의 선구자라 할수있고 고성은 시의 량이나 시적인 삶이나. 또 그 작품수로 보나 황제라고 함이 맞먹을 것 같은데요 마지막 생명을 다할때 까지도 계속 시창작상태에 빠져있었고 국내적이나 국제적으로 그 파워가 너무나 컸다. 전문적인 고성카페가 건립되였고 영화, 장편소설, 팬들의 활동. 거기다 왕관같은 높은 모자를 계속 썼고 …물론 황제란 어디까지나 독자들이나 학계에서 그렇게 불러주었기 때문일것이고 아무튼 제일 말밥에 많이 오르고 강렬하게 올라 차츰 몽롱파의 중심으로 솟아올랐다. 처음엔 부차적 인물이였으나 나중에는 중심인물로 서서히 올라오게 되였다. 아미 이런 여러가지 원인으로 그를 몽롱파의 황제라고 일컬은것 같다.

신금철—그럼 37세밖에 못살았다는데 좀 구체적으로 생평에 대해서 소개해주시죠

림금산--고성의 짧은 생애

고성은 1956년 9월 24일, 북경에서 태어났다.  1969년에 비판을 받아 산동성 광북(廣北)농장으로 쫓겨간 아버지 고공(顾工)을 따라 그는 12세에 학업을 중퇴하고 돼지를 키웠다. 1973년부터는 그림을 배우다가 1974年 북경으로 돌아와 운반공과 목수일을 하며 가끔 차출되어 편집을 도우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문혁이 끝나면서 1980년초 직장은 해체되고 한 때 표류생활을 하면서도 21세인 1977年《민들레蒲公英》라는 시를 발표하여 각광을 받았으며 24세이던 1980년엔 《별들(星星)》이라는 잡지에 <一代人>이란 시를 발표, 역시 시단의 강렬한 반향과 큰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몽롱시파의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北京文艺》、《산동문예》、《소년문예》등에 시를 발표하며 80년대 주류를 이뤘던 <<몽롱시>>파의 애청, 북도, 서정에 이어 4대 대표시인으로 활동을 전개했다.
1985년 그는 중국작가협회에 가입, 87년엔 구미문화교류방문단에 끼어 창작강의활동을 하다가 88년엔 뉴질랜드로 가서 중국고전문학을 가르쳤으며 오크란대학의 아시아언어연구원으로 초빙,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누렸지만 곧 사직하고 섬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  한편 1992년, 그는 독일학술교류중심(DAAD) 창작기금을 받으며 잠시 독일에서 시작생활을 시작했으나 현실과 이상사이의 갭을 허물지 못한 그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고 결국 그마저 사직하고 뉴질랜드북방의 한 작은 섬(격류도激流岛)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했다. 닭도 키우고...
신금철-안해를 도끼로 죽인 끔직한 일을 벌렸다면서요? 사실입니까? 원인은 무엇입니까?
림금산-네, 생활고로 인한 리혼제기, 시창작고조기, 사회적인 압력, 정신착락,영아와의 리별 등이 주되는 원인인것 같다고 나름대로 생각함.

그러나 근 일년만에 생활고와 섬약한 그의 정신상태 등을 이유로 그의 아내(사엽)가 이혼을 요구하자 1993年10月8日 급기야 아내를 도끼로 죽이고 자신도 목을 매서 자살했다.
당시 이 사건은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많은 매체에선 “고성이 도끼로 부인을 살해하다”라고 보도하면서, 동화시인이었던 그가 악마에 의해 정신이상을 일으켜 살인자가 되었다고 했다. 물론 사후 일부 그 누명은 벗겨졌지만 (고성의 누나 고향顾鄕은 “고성최후의 14일”이라는 기획물에서 말하길, 도끼는 우연히 그 장소에 있었을 뿐이며,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 참혹한 사건은 중국인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1993年 3月 그들 부부는 중국으로 귀국하여 가족과 문인들을 만나고 다시 독일을 거쳐 뉴질랜드로 돌아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아내 사엽과 고성은 1979년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4년간 연애를 하다가 1983년 결혼했다. 1987년 같이 조국을 떠나 자살을 할 때까지 그의 아내는 그의 잦은 실직과 이사, 가난, 그리고 고성을 쫓아다니며 함께 살기도 했던 여인,‘영아’ 등으로 많은 심리적 고초를 견뎌내는 중에도 관용과 미덕을 겸비했던 여인이었다. 하지만, 극단의 자기 중심적이었던 고성으로서는 그의 어머니이자 누나 노릇을 해오던 그녀를 떠나가게 할수 없었는지 모른다. 
신금철—홍콩에서 고성시인의 이야기로 영화도 찍었다면서요?
림금산—네,
홍콩에서 찍은 《고성의 이별과 사랑 》이란 영화는 고성자신이 남긴 《영아英儿》라는 소설내용이 반영된 것이었다. 고성이 최후에 보여준 광폭한 모습은 그의 시를 좋아해 쫓아다니던 한 여인때문이라는 항간의 추측도 있었는데, 그 ‘영아란 여인의 실제 본명은 리잉李英으로 현재《시간诗刊》잡지사의 편집을 맡아보는 매기麦琪라는 필명의 여인이다. 그러나 매기는 고성이 죽은후 그녀에게 남겨진 이런 주홍글씨를 명확히 거부하고 있다.
신금철—유서도 여러통 남겼다고 들었는데요?
한편 1993년 12월 22일 뉴질랜드 경찰국을 통해 중국영사관에 전달된 그의 유서는 모두 네통이었다. 부모님에게, 엄마에게, 누나에게, 아들 무얼木耳에게,..!
이 유서들은 사건현장에서 경찰이 취합했는데, 통합해서 보면, 그는 길이 끊어진 막다른 곳에 스스로 몰려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어린 아들木耳(三木Sam)에게만은 눈물을 보이며 아빠를 이해해달라는 문구가 있었다. 고성은 사진과 원고 등을 누이에게 부탁했으며 굳이 보관하지 않아도 되며 집이나 그밖의 것 역시 아들에게 굳이 남기지 않아도 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사후 모든 원고나 모든 고성의 것들은 자연스레 누나가 보관, 최근 고성의 탄신 50년에 즈음하여 북방문예출판사에서 4권의 “고성문학계열顾城文学系列”을 냈는데 그 첫 권《고성문학선: 다른 세계 顾城文选别有天地》은 고성이 1987년 5월 독일 밍스터明斯特에서 가진 “국제시가축제”에 참가하면서부터 1993년 10월 8일 그의 아내와 한 섬으로 도피했을 때까지 쓴 작품들을  “고성의 성顾城之城”이라는 웹싸이트의 강소민江晓敏과 함께 편집한 것이다. 총 150만 여개의 문자로 산문 및 시를 실었다.
   
신금철-고성은 많은 시와 문장, 서법, 그림 등을 남겼다면서요? 어떤 작품들이 있습니까?
림금산—네 방금 우에서 소개한 4권의 고성문학계절작품집이 있는가 하면 고성의 성이란 웹사이트가 있고 …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저서로는 시집 《검은 눈동자》(1986年 인민문학출판)《한낮의 달빛》、《서정, 고성서정시선집》、《북방의 고독한 노래》、《쇠방울》、《북도,고성시선》、《고성의 시》、《고성의 동화우화 시선》、《고성현대시자선집》과 그의 사후 부친 고공이 편집해서 출판한 《고성시전편》이 있다.。그 밖에 1998년 인민문학출판사에서 낸 《고성의 시》와 장편소설《잉얼》(1994年 1월 북경 화예사출판 그의 아내 시에예 합작)、《성城》등 작품들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되었으며 그외 문집《생명이 정지된 곳, 영혼이 나간다 》,조합시집《성城》、《귀신이 성으로 들어간다》、 《자아로부터 자연》、《목적없는 나》가 있다。

고성시의 예술적 특징

첫 째,
비교적 우화적 의미와 상징성을 신중하게 지니고 있으며 시의 음악성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모종의 동화 색채가 엿보이며 그것도 소위 개구쟁이 성격을 띤다는 것이었다.
고성시의 최대 특징은 이미지의 실현이다
그 실현을 위해 제일 많이 사용한 표현은 상징은유법이었다.
이 수사법은 진실 그대로 그리거나 내심을 직접 토로하는 전통 방식을 깼으며, 서정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놓았다.
그의 시중의 상징은 표면상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심층적으론 무한한 함축을 내포하고 있어서 시의 감염력이 매우 크다.
예를 들어 짧은 단시《한세대사람》에서 “까만 밤”,“나”“까만 눈동자”등은 감성 형성 구성을 위한 이미지의 조합이다. 이 시어들은 이미 그 단어 자체로 객관적 의의를 갖고 있다. 더불어 제목에서 주는 암시 때문에 더더욱 강렬한 상징성을 가진다.   즉, “까만 밤黑夜”은 한 세대의 정신세계의 암울한 배경을 상징한다. “눈동자”는 광명을 갈망하는 한 세대의 눈동자를 상징하며 시 중의 “나”는 바로 가장 고통받고 인간의 말로까지 가보았던 문혁세대들, 그 세대를 가리킨다. 이로 인해 시 상징의 심미적 특성은 실제 이미지의 내재의 미학 특성이기도 하다.
총정리하면 시의 이미지는 본래 언어라는 기호를 본체로 벗어날 수는 없지만, 늘 그는 공식화된 언어를 초월하기를 꿈꿨다. 따라서 고성시의 이미지는 그만의 독특한 천진함과 단순하고도 직선적인 표현 아래 자아비판적이고도 풍자성이 농후한 예술풍격을 낳았다고 본다.
신금철—그럼 고성시인의 대표적 시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그의 짧은 명시 “한 세대 사람”을 함께 감상하겠습니다.

 세대 사람

                    고성

캄캄한 밤은 나에게 까만 눈동자를 주었지만
허나, 나는 그 눈으로 되려 광명을 찾는다
 
 
림금산-이 시는 “시간”에 발표되여 당시 큰 센세이숀을 일으켰다.
 문혁을 거친 한 세대 청년이었던 고성은 웃 시 두 행으로 몽롱시의 대표시인(1956年9月∼1993年10月)이 되었다. 20세기 70년대 말에서 80년 대 초의 몽롱시는 당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으며  “해방”이라는 중요한 한 문학 조류를 만들었는데 그는 바로 이 당대 현대시의 혁신의 기점이 되었던 것이다.
웃 시에 대해선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파란만장한 문혁시대의 사람들을 지칭한다. 그 역시 이 세대에 속한 자로서 “까만 어둠”은 그 시대를 반영한 것으로 우리의 눈동자가 까만 이유가 역설적으로 표현되었다. 더군다나 광명조차 이 까만 어둠을 건너지 않고는 다가오지 않음을, 그것도 까만 눈동자 아니면 바라볼수 없음을 극명하게 아이러니컬하게 밝히고 있다.
어찌 보면 단순한 이 표현속에 감춰진 당시  현실에 대한 냉소와 反思想이 시인에게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을지 짐작이 간다.
신금철—다음은 역시 대표적 시 “눈을 깜박이기만 하면”을 함께 감상하고 해설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눈을 깜박이기만 하면

____저  착오의 시대에 나는 이런 "착시"를 일으켰다______
 
나는 굳게 믿으련다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지켜보련다
 
고운 무지개는
분수 속에서 아른거리며   
부드러이 행인들을 반기다가도
내가 눈 한번 깜박이기만 하면
곧 독사의 그림자로 변해버리겠지
 
괘종시계도
교회당에 은거하면서
고요한 새벽시간을 갉다가도
내가 눈 한번 깜박이기만 하면
곧 깊은 우물로 변해버릴거야
 
붉은 꽃은
화려한 무대위에서 봉우리 터치며
흥분속에 봄바람 맞다가도
내가 눈 한번 깜박이기만 하면
곧 피비린내로 변해버릴테지
 
하지만 굳게 믿으려고 믿어보려고
나는 두 눈을 그냥 부릅뜨고 있다   
-<<诗刊>> 80년 4월호 발표
 
림금산-이 작품은 80년 4월 “시간” 잡지에 고성시인이 24세 때 발표한 것이다.
즉, 문화혁명이 막 끝난 직후 착오의 시대를 살아온 인민들의 반력사적인 "착각"과 그 "오류"를 치기(유치한 기가)섞인 반어적, 역설적 기법으로 표현, 기막힌 냉소를 보여주고 있다.
눈을 깜박거릴수 없는 한 세대의 긴장감, 그러나 깜박거릴 수밖에 없어 지켜내지 못한 나의 과오이자 인민들의 과오는 ‘무지개’가 독사의 그림자로, ‘교회당 시계’는 시간을 쏠아대는 깊은 침묵의 우물 속으로, ‘붉은 꽃’은 문혁을 질풍노도로 피비린내를 일으켰던 홍위병의 봄바람으로 변하고 말았음을, 폭로하고 있다. 신처럼 받들어졌던 틀린 개념에 대한 숭배와, 문혁을 주도했던 4인방의 정체가 백일하에 드러났을 때, 이런 천지개벽의 변화를 시인은 과연 어떻게 시로 표현할수 있으며 이율배반적 현실에 적응할수 있었겠는가?  반어적 농담으로 내뱉는 아픈 시선이 이 시 곳곳에서 발견된다.
 
나는 고집센 아이
 
___ 난 대지에 창문을 가득히 그려놓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동자가 빛에도 익숙해지도록 하고 싶다._____
                                     
어쩌면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에 버릇없어진 아이처럼
난 제멋대로인지 모른다
 
나는
매 시각이
색깔 예쁜 크레용처럼 아름답기를 바란다
나는 
내 맘에 드는 흰 종이에
서툴고 거친 자유를 그려내거나
영원히 눈물 흘리지 않는
눈동자를 그려내길 바란다
넓은 하늘
그 하늘의 깃털과 나뭇잎
그리고 엷은 녹색의 어둔 저녁과 사과를
그려내기를 바란다
 
난 새벽을 그리거나
이슬을 그리거나
눈에 보이는 미소를 그리고 싶다
가장 젊고
가장 고통스러운 사랑을 그리고 싶다
그녀는 검은 구름을 본적이 없다
그녀의 눈은 하늘빛
그녀는 영원히 나를 바라본다
영원히, 바라본다
절대로 머리 돌려 홀연히 가지 않는다
난 요원한 풍경을 그리고 싶다
또렷한 지평선과 물결을 그리고 싶다
많고 많은 쾌락의 시냇물을 그리고 싶다
구름을 그려본다______
잔털이 잔잔하게 가득 찬,
난 그들을 아주 가까이 붙게 하고
그들 서로를 사랑하게 한다
모든 묵계와
봄날의 모든 조용한 격동이
한송이 작은 꽃의 생일이 되게 한다
 
난 또 미래를 그려보고 싶다
난 그녀를 만난 적이 없고, 또 그럴리도 없다
그러나 그녀가 아주 아름답다는건 안다.
난 그녀의 가을코트를 그리고
타오르는 촛불과 단풍잎을 그리고
수없이 그녀를 사랑하기에
재가 돼버린 마음을 그린다
결혼식을 그리고
일찌감치 깨어난 경축일을 그린다
그위에 유리빛 사탕종이와
북방동화의 삽화를 붙여 넣는다
난 제멋대로인 아이
모든 불행을 지워버리고 싶다
나는 대지위에
창문을 가득히 그려놓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동자들이
빛에도 익숙해지도록 하고 싶다.
난 바람을 그리고 싶다
하나하나 점점 높아지는 산들을 그리고
동방민족의 갈망을 그리고
막힐것 없는 큰 바다의
유쾌한 소리를 그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종이 한 모퉁이에
나는 또 나자신을 그리고 싶다
한마리 코알라를 그린다
빅토리아의 깊은 숲속에
조용한 나뭇가지에 앉아서
넋을 놓고 있는,
그는 집이 없고
한 조각 마음은 먼곳에 나가 있다
그는 단지 수많은
장과(浆果)와 같은 꿈과
아주 아주 큰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나는 바라고 있다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러나 왠지 모르지만
나는 크레용을 받지 못했고
색깔있는 시각을 얻지 못했다
단지 나 자신만이 있을뿐
나의 손가락과 상처의 아픔
한장 한장 갈기갈기 찢겨진
마음으로 아끼던 백지만 있을뿐
그들이 나비를 찾아가게 하고
그들이 오늘부터 사라지게 할뿐이다.
 
나는 어린 아이
환상속 엄마로부터 지나친 사랑에 버릇없어진  
나는 고집센 아이다

림금산—해설:
시《 나는 고집센 아이》는 자신이 바로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에 버릇없어진 아이 ”임을 선포하고 있다.
자기만의 생각에 맞춰 자기만의 꿈을 고집하는 건 그의 집착이기도 하지만, 한편 그의 매력이기도 하다. 복잡하고 억압된 성인세계 속에서 고성의 의식은 “눈을 감으면 세계와 나는 관련이 없어진다 ”고 보았으니 말이다。.
《나는 고집센 아이》에서 차용한 아이들의 시각은 아동의 이상 안에서 개조된 성인세계다. 고성은 이 시에서 보여준 아이들 형상은 맑은 바람처럼 성인세계의 오염된 땅을 뒤흔들었다. 또 하나 몽롱시의 대표시인 북도北岛도 한탄하며 말하길 “비천함은 비천한 이들의 통행증이 되고 고상함은 고상한 자의 묘비명이 될 때, 고성은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고 서툴지만 ‘자유’를 찾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시는 그야말로 고성의 성격과 그만의 색깔이 드러난 시이다. 그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영아英儿≫에서도 나오지만, 그는 안정적인 독일에서의 생활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리곤 누구의 간섭도 필요 없는 섬으로 들어가지만 여전히 사회성이 없는 그를 괴롭힌다.
그는 철없는 아이로 살고 싶어한다. “그렇게 하고 싶다" 그러나 왠지 모르지만 ”나는 크레용을 받지 못했고/ ..생략../ 단지 나 자신만이 있을 뿐/..생략.../마음으로 아끼던 백지만 있을 뿐“이다. 문혁은 끝났으나 뉴질랜드까지 도피해 왔으나 그가 살아남는 길은, 천진한, 개구쟁이 어린아이처럼 자신의 색깔을 찾아 그리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백지’만 있고 ‘크레용’이 없다. ‘손가락도 다쳤다’ 이것이 그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신—다음은 고성의 “먼것과 가까운 것”이란 시를 감상하겠습니다. 아주 짦은 시인데요

 것과 가까운 

                  
당신은                                                 ,
나를 한번 바라보다                  
또 구름을 한번 쳐다보고                   
 
난 이제 알것같아요                              
당신이 나를 볼 땐 아주 멀리 느껴지겠죠          
당신이 구름을 볼 땐 아주 가까이 느껴지고     
 1980년 발표작
림—해설:
진실이란 무엇인가, 정말 가까이 다가가면 보이는 것일까, 단절은 지금 이렇게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다고 말하는 중에도 일어나고 있다. 정작 먼 구름은 가깝게 바라보며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함께 사랑을 나눈 너와 나 사이에서는 여전히 먼 거리가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그 틈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 우린 느낀다, 깨닫는다.
신금철—다음은 고성의 시 “리별”을 함께 감상하시죠

리별

         고성

봄의 한가운데서 
너는 손수건을 가볍게 흔드는구나
나더러 멀리 가라는 뜻일가
아니면 곧 돌아오라는 뜻일가
아니, 아무뜻도 아닐거야
별다른 뜻이 없을테지
마치도 물우에 지는 꽃잎과 같고
꽃잎에 떨어지는 이슬과 같을거야
그림자만이 그뜻을 알수 있을가 
바람만이 느낄수 있을가
오직 탄식으로 놀란 꽃나비만이
아직도 내 마음의 꽃밭에서 분분히 날고있구나 
림금산—해설:
이별이 이리 가벼울 수 있을까, 단지 손수건 한 장 흔들듯 그대는 가고 어떤 이유도 댈 수 없는 채로 그렇게 봄날속에 우리들 이별은 바람 한점 남기며 떠난다. 그것도 봄날에, 아무도 귀 기울여 아는 체도 없는데, 오직 채색나비가 꽃잎 떨어지듯 그림자를 잠시 남기며 바람인듯 날아가는 그 가벼운 탄식아래 그렇게 우리의 이별은 가볍고 또 가볍게 봄을 풀어내고 있다니,..! 
신금철—다음은 시 “작은 항구”입니다.

작은 골목

작은 골목
굽이굽이 길구나    
 
문도 없고
창도 없어
 
난 오래된 열쇠를 들고
두터운 담장을 두들긴다
 
림금산—해설:
 
아주 작은 항구에 몸을 숨겨도 여전히 창도 없고 문도 없다. 그를 가려줄 현관문 열쇠를 찾아보지만, 너무 녹슬어 쓸모가 없다. 별수 없이 막힌 담장에 가서 두들긴다. 자기 안의 성안에서 그만의 소통을 꿈꾼다. 그의 말을 들어주던 누이처럼 누군가 자신에게 걸어 들어와 다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꿈꾼다. 마지막으로 찾아든 뉴질랜드의 아주 작은 섬, 그곳에서 그는 숨어 살고자 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과 생활을 맡은 그의 아내의 질책이 뒤따른다. 숨 막히는 그의 막다른 골목을 “작은 골목”이란 이 두 글자에서 찾는게 그리 어렵지않다.             
신금철-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여가는데요 오늘도 림금산선생을 모시고 중국몽롱파 시의 황제 고성시인과 그의 일부 대표적 작품을 감상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시간을 통해 중국을 놀래운 시인이면서 또 세계적인 시인인 고성시인에 대해서 어느정도 료해가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림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림금산—네 수고하셨습니다.
신금철—그럼 오늘 문학살롱프로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이 시간 프로편집에 김철운이였습니다.

 

림금산약력:

중국조선족시인 . 중국연변작가협회 시가창작위원회 부주임. 중국연변시가학회 부회장. 현중국조선족소년보사 기자부 주임. 주소:중국길림성연길시광명가 89호 중국조선족소년보사. 전화 (0433)2518894. 핸폰: 159-4339-8225

메일: <somu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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