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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것만 보아도 흥분한다는...
2016년 06월 01일 07시 59분  조회:4053  추천:0  작성자: 죽림
[20강] 관념을 소재로 하는 시


어제에 이어 소재의 분류 중 마지막인 관념을
소재로하는 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3.觀念(관념)을 소재로 하는 시

인간의 정신작용은 정서적 영역과 관념적 영역으로
나눌 수가 있다고 합니다. 정서적 영역이 우연에
좌우되는 초논리의 차원이라면, 이와 달리 관념적
영역은 논리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는 이성적인 차
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관념을 소재로 하는 시는 관념어를 직접적으로 노출
하게 되면 예술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시인이 전달
하려는 주제도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전달되지 못
합니다. 이는 특히 시를 처음 쓰는 초보자들이 주
의해야할 일입니다. 저도 물론 그런 과정을 겪었
는데요. 요즘 현대시들의 난해성을 이런 관념어의
나열로 알고 흉내를 내다가 오히려 시를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관념적인 소재일수록 문학적 형상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할 것입니다.

예시로 박남수님의 <새>를 읽어보겠습니다.

1
하늘에 깔아 논
바람의 여울 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이 부리를
서로의 죽지에 파묻고
다스한 체온을 나누어 가진다.

2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사랑을 가식하지 않는다.

3
포수는 한덩이 납으로
그 순수를 겨냥하지만,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는다.

포수는 순수를 갈망하지만, 그래서 그 순수를 얻
으려고 새를 향해 납탄을 쏘지만,그러나 포수가
얻는 것은 순수가 아니라 늘 피에 젖은 한 마리
상한 새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의 행동은 오히려 순수를 파괴할 뿐 결코 순수
를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순수는 인위적인 어떤
의도도, 어떤 인식도 개입하지 않은 상태에서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그 것을 얻
으려고 하는 것은 이미 인간의 의도가 들어가기
때문에 순수는 파괴되고 맙니다.

좀 길지만 장부일님의 해설을 옮깁니다.
"인간의 욕망과 순수는 상호 모순되는데도 인간이
그 것을 얻으려 행동을 한다면 인간은 결국 훼손
된 순수, 즉 이미 순수하지 않은 것을 얻게 될
뿐이다. 달리 말한다면 순수를 소유하려는 인간의
욕망이 순수를 파괴하고 만다는 역설이 성립되는
것이다.

인간은 현실을 보다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
해 보려고 논리적 사고를 동원해 이론을 만들어
낸다.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낸 이론이 현실을
정확히 설명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모
든 이론은 잿빛이다. 이론은 영원히 푸르른 생명
의 나무인 현실을 논리적 설명하려고 하지만 그것
이 설명해내는 것이 가능한 영역은 극히 일부분
이며, 더군다나 이론의 잣대를 들이대면 현실의
그 푸르른 생명력은 잿빛으로 변하고 만다.

때로는 이론이 현실을 왜곡하는 경우도 있다. 현실을
올바로 설명하려고 하는 학자의 욕망이 현실을 왜
곡하기도 하는 이론을 만들어낸다는 역설이 성립
한다. 과학의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이런 역설이 성립한다.
작가는 자기가 가치를 두는 어떤 것, 예를 들면
인간 본성의 탐구라든지 건강한 인간 관계, 아니
면 사회의 모순과 그 것을 해결하는 전망 등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려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대상으로 삼은 현실을 그대로
의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 포수가
한 덩이 납으로 순수를 겨냥하듯이 작가는 언어
라는 도구를 가지고 자신이 가치를 두는 현실의
한 부분으로 문학적으로 형상화한다. 그러나 언
어로 쓰여진 문학작품은 본래 작가가 가치를 느끼
던 실재 현실과는 다르다

첫째, 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으며,
둘째, 문학은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현실을
재 구성해내는 허상이다. 푸르른 생명력을 지닌
현실과 비교할 때 작가가 만들어낸 문학작품은 현
실을 모델로 삼아 목탄으로 그린 잿빛 스케치일
뿐이다. 아마도 작가는 절망할 것이다. 그 절망은
한 덩이 납으로 순수를 겨냥하지만 피에 젖은 상
한 새 밖에 얻지 못하는 포수의 절망과 흡사할 것
이다."

이상과 같이 시의 소재는 정서, 현실, 관념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만 실재로는 둘 이상이 한 작
품 안에 혼재할 경우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여기에서 잠시 요즘 나온 시 한 편을 감상하고
선배 시인의 견해를 들어보겠습니다.

정진규님의 <우리나라엔 풀밭이 많다>를 읽어보겠
습니다.

얼마라던가 그 정확한 단위는 잊었지만 아무튼
몇 만 톤, 그런 정도의 어마어마한 힘! 이른봄
언 땅 밀고 나오는 여린 새싹 한 잎의 힘을 그
초록힘을 수치로 산출해보면 그렇다고 했다 우
리 여자들이 밀물 썰물로 제 몸 속에 가두고 있
는 바다, 애기를 낳는 힘, 그 절대 순간의 힘,
낳는 힘! 그것과 똑같다고 했다
오늘 아침 산책길에서 풀밭에서 그 초록힘들의
무리를, 낳는 힘을 보았다 뾰족뾰족 땅을 들추
고 있었다 나도 이 봄에 손자 하나를 더 보았
다 손자가 둘이다! 그렇다면 나도 이제 십만톤
은 넘는다 할 수 있다 이 풀밭의 새싹들의 초
록힘들을, 낳는 힘들을 모조리 모으면 얼마가
될까 우리나라엔 풀밭이 많다

잘 생각하면서 두어 번 읽어보세요. 시를 참
잘 쓰면서도 재미 있게 쓰는 분입니다.

이어서 이인해 선배 시인의 시의 소재에 관한
견해를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얼마전 나는 처가에 놀러갔다가 정원 한 구석에
놓여 있는 돌 하나에 관심이 쏠렸다. 그후로 나는
처가에 들를 때마다 그 돌을 들어서 쓰다듬어 보기
도 하고 요모조모 살펴 보기도 하였다. 그 돌이
마음에 들기도 하였거니와 알고 보니 사연도 갖고
있어 무언가 가슴에서 풀어져 나올 것 같기도 하
였다.
언제나 시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처음의 이
몇 구절에 며칠을 걸려 첨삭이 가해졌다. 이 과정
이 며칠에서 때로는 몇달이 걸리기도 한다. 어떻
든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최근에 나는 <장조부의
돌>이라는 시를 완성했다.


처가의 정원 한 구석에 놓여 있는 돌 하나가 눈에
띄였다. 얼핏 보기에도 강돌이 아닌 산돌로 오랜
풍상을 겪은 탐석이었다. 알고 보니 분단전 아내의
할아버지가 금강산에서 가져온 것으로 처가에 있
은지도 수십년이 되었다.

아내의 아버지는 육이오 때 납북되었고, 아내의 할
아버지는 그의아들을 수십년 만나보지 못하다가 근
래에 돌아가셨다.

몇번이나 망설이는 아내를 졸라 그 돌을 집에다 가
져다 놓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금강산에서 처음
그 돌을 가져왔을 때 돌빛이 맑고 투명했다는데 지
금은 그 빛이 탁하고 둔하다. 물도 뿌려주고 쓰다
듬기도 하며 볕 좋은 날은 햇빛도 쪼여 주지만 원
래의 빛을 발하지 않는다.

돌도 살아 있어 강가에서 가져와 사람의 손질에서
그 빛을 발하는 돌이 있는가 하면 원래의 자리에
있어야 그 빛을 내는 돌도 있다. 아니면 아하, 때
가 아니라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좋은 시절 남남
북녀 사람들의 마음이 풀리는.

나는 그 돌을 들여다 보면서 굳이 여기에 그 이유
를 두었다.

이 시의 소재는 누구나 알 수 있듯이 <돌>이다. 돌
에다 나는 하나의 질서, 하나의 조직, 하나의 통일
성을 부여했다. 또 한 편의 작품에서 시의 소재가
어떻게 변모되어 작자와 독자가 공통의 마당에서
만나게 되는가를 살펴 보겠다.

오, 넉넉하다
발기발기 파헤처져
벌겋게 드러난 네 살
희디희게 안으로 웅크린
석고질의 내 살보다 넉넉하다.

하루 종일 오락가락 비 뿌려도
빗방울 하나 퉁겨버리지 않는다.
내 어머니의 품속처럼
콧물투성이의 질척질척함, 그래서
나 언젠가 네게로 돌아갈 것을.

너는 뺏기지도 않았고 슬프지도
아프지도 않다. 누군가 와서
약소하다 부르면 오히려 보여주지.
약소함의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약소함의 진수렁에 빠지는 것을.
모든 것의 뺏음과 뺏김과
슬픔과 아픔이 오히려 부끄러워
얼굴을 못 드는 것을.

한 어머니의 넉넉한 품속처럼
잡풀은 잡풀대로 고와
잡풀대로 살게 하는 것을.
끈질기게 살다 끈질기게 죽는
잡풀의 한 죽음이 되기 위하여
나 네 품속으로 들어가면
오, 넉넉하다. 넉넉하다.

몇 년 전 발표했던 <황토>라는 시인데, 이 작품을
쓰기 전에 나는 문우 몇 사람과 경기도 화성군의
마산포를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 때 가는 도중에
사강이 고향인 문우가 있어 그곳에서 차를 갈아타
기로 하고 내려 마을의 이모저모를 살펴 보았다.
봄이었는데 안개비 같은 것이 하루 종일 내렸다.
포장이 안된 시골 길은 진창길로 변해 진흙덩이들
이 구두며 바지에 마구 달라 붙었다.

걷기가 대단히 불편한 가운데도 우리 일행은 그
문우가 한때 재직했던 중고등학교에도 들러보았다.
그곳에서 그 문우는 식민지시대 3.1운동이 그 마
을까지 번졌으며 또한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제암리 교회도 있다고 들려 줬다.
여기에서 나는 <황토>가 떠올랐다. 바짓가랑이 끝
에 마구 달라 붙은 진흙덩어리, [넉넉하다]라는 첫
구절이 시작되었다.

이 시의 소재는 제목에서도 나타난 그대로 황토
이다. 나는 이 황토에다가 말이라는 매개체를 통
하여 하나의 질서, 하나의 조직, 하나의 통일성을
부여하여 의미를 띠게 했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이 의미가 애매성을 띨 경우도 없지 않다. 시에 따
라서 이 애매성은 혼잡이 아니고 해석해 내야 할
의미이다.
시를 읽는 사람이 그 작품이 나타난 동시대의 사회
를 이루는 것과 같이 시를 쓴 사람도 그 작품이 나
타난 동시대의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이다."

좀 장황하긴 하지만 읽어두시는 게 도움이 될 것 같
아 끝까지 옮겼습니다. 지루하셨더라도 그렇게 양해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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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 외로운 우산 / 마광수
 
    
 
    
 
 
 
 

 
 
 
 
 
    
 
     
 
     
 
 
 
 
외로운 우산
 
                                  마 광 수
 
장마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침에 비가 와서 우산을 들고 나갔다가
비가 그치면
돌아올 땐 어김없이 손이 허전합니다.
 
함께 나갔던 그 우산,
어디엔가 떨어져 있겠죠.
주인이 찾으러 올 때를 기다리며……
 
사랑도 그런 거라네요.
사랑은 잊혀진 우산처럼 남겨져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하는 거라네요.
 
당신, 그래도 사랑할 수 있겠어요?
 
 
마광수 시집 <야하디 얄라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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