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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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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제목은 그냥 약간 웃는체, 보는체, 마는체 하는것도...
2016년 06월 05일 00시 04분  조회:3771  추천:0  작성자: 죽림
[24강] 시의 제목은 어떻게 다는가?


오늘은 시의 제목을 다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전일에도 말씀 드렸지만 시의 제목은 사람에 있어서
이름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땠나 모르지만
저 같은 경우는 아이를 임신하였을 때 이미 이런 이
름, 저런 이름을 아들, 딸 두 가지로 지어놓았었지
요. 아마, 많은 분들이 그럴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또 대부분의 부모들은 낳은 다음에 이름을 짓기도 하
구요.

그러나 이런 작명의 방법에 대해 그 누구도 간섭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부모들 각자의 마음이고 아
이를 갖는 부부들에겐 나름대로의 기쁨이고 즐거움
일 터이니까요.
시에서도 제목 짓는 것이 이와 다름이 없습니다. 어
떤 분들은 제목을 정해 놓고 시를 쓰거나 시를 써놓
고 그 시에 맞는 제목을 정하거나 합니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순전히 시인 각자의 취향이겠
으나 더러 이 두 가지가 혼용되기도 할 것입니다.

백일장처럼 미리 주제를 정해놓고 시를 쓰는 경우는
대체로 그 제목에 주제를 맞추어 갑니다. 그 것은
정해진 제목에 따라 시의 이미지를 찾을 수 밖에
없을 터이니까요. 이런 경우는 제목과 내용의 이미
지가 일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좀 다를 것입니다. 저도 이런
후자의 경우가 많은 편입니다만 시의 제목이 시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어야하는가, 상징적으로 제목을
다는가 하는 것은 좀 더 고려를 해보아야할 것입니
다. 시의 내용에 따라 그 시의 일부분을 시의 제목
으로 하는 경우도 많구요. 그 것을 상징하는 경우는
일종의 암시적인 제목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병무님이 『청록집』에 나타난 시의 제목을 예로
들었는데요 한 번 옮겨보기로 하겠습니다.

[박목월 시인]
임, 윤사월,삼월, 청노루, 갑사댕기, 나그네,
달무리, 박꽃, 길처럼, 가을 어스름, 연륜,
귀밑 사마귀, 춘일, 산이 날 에워싸고, 산그늘

[조지훈 시인]
봉황수, 고풍의상, 무고, 낙화, 피리를 불면,
고사,고사2, 완화삼, 율객, 산방,파초우,승무

[박두진 시인]
향현, 묘지송, 도봉, 흰장미와 백합꽃을 흔들며
연륜, 숲, 푸른하늘 아래, 설악부, 푸른 숲에서
어서 너는 오너라, 장미의 노래

좀 옛날 시집이지만 조금씩 특성이 있으니 한번
살펴보기로 합시다.
여기에서 보면 박목월시인의 시제목에서는 자연
에 관한 서정적인 자연현상이 시의 향기로 느껴
지는 반면 조지훈 시인의 시제목에서는 고답적
인 한문투의 관조적 현상의 향취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더러 설명적인 제목이 첨가된 박두진
시인의 시 제목은 좀 현학적인 서정성과 관조적
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물론 요즘 시의 제목들은 좀 더 자유스러워지고
다양해졌습니다. 여러분들이 이젠 좀더 관심을
가지시고 여러분들에게 있는 시집 제목을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이런 시집 제목만을
발췌해서 연구하여도 좋은 학위논문이 되지 않
을까 합니다.

우선 선배 시인들의 제목에 대한 견해를 들어
보기로 하지요.
먼저 김영태 시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감자 한 알 감자 두 알>이란 제목을 붙인 적이
있었다. 시 제목을 정하는 데 있어서 객기를 부리
는 것도 내 자신 인정하고 있다. 오종종한 제목,
빨래처럼 남이 여러번 물에 헹군 제목, 또는 1행
이 그대로 제목이 되는 경우들을 나는 가급적 회
피하는 편이다. 객기는 부려 무엇하느냐고 누가
반문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냥, 약간 웃는체.....
듣는체 마는체 한다.

< 감자 한 알 감자 두 알>은 박정권시대에 신설동
로타리에서 경찰 단속반에 걸려 들어 나의 40대에
머리를 깎인 얘기다. 민중의 지팡이가 그 때 내 눈
엔 건수를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된 하수인 같아 보
였다. -중략-
<떡> <파토요, 파토> <無光澤賞> <석탄. 백탄. 골
탄. 구공탄> <나는 뭐드라?> <빵떡을 만드는 법> 등
도 객기를 부린 제목임에 틀림없다. 내게 있어서
풍자의 여러 기법은 배알이 꼴릴 때 배지(排地)에
다름 없다.


다음은 서종택 시인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변치 않는 체온으로 너에게 간다.
나날이 새로와지는 추억 속에서
먼지 앉은 빛과 어둠 속에서
한정된 자유와 습관 속에서
소멸되는 것들의 저항 속에서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너에게 간다.
수레를 버리고 걸어서 간다.
눈보라는 뛰어서 산천에 있고
뭇 짐승들의 울음 소리
흙 묻은 맨발로 숨어 있는 길섶
나는 간다.
발가락 얼구며 너에게 간다.

이 작품음 <무모한 겨울>이라는 제목으로 쓰기 시작
했다. 다 써놓고 보니 제목이 불만스러웠다. 무엇보
다 "무모한"이라는 부분이 거슬렸다. 그래서 생각
했다. 제목이란 비록 시의 일절이나 각주 감에 불과
한 경우라 할지라도 그것은 전체를 그 위에서 다시
묶어주는 매듭과 같다. 어느 경우에도 부분으로 전
체를 암시하거나 상징하도록 하며, 다른 어떤 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배려하여야 한다.

그 점에서 <무모한 겨울>은
너무 전설적이고 암시하거나 상징하는
내용이 상투적이 아닌가 미심쩍었다. 결국 나는 <발
가락 얼구며.를 제목으로 정했다. 물론 나는 자세히
말 할 수 없는 부분을 말하지 않았다. 표현할 수 없
다고 해서 그런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말하거나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그리 중요하지 않
은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먼저 느껴야 하리라.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남과 다르게 쓰고 또 다른
제목을 붙이려고 애쓰는가. 나도 그렇다. 그런 점
에서 우리는 모두 평범하다. 권태로운 독자들을
위해서 제목으로 무엇인가를 즉각적으로 제시하거
나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친절하다. 그러나 남과
다르게 되려고만 노력하다 보면 마침내 그것이 목
발이 되고 약점이 되고 장애물이 된다. 자칫 제목
이 작품 전체를 표백해버릴 수도 있다.


두 분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셨는지요. 선배의 경험
처럼 중요한 것은 없읍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어떤
고명한 이론보다 앞 설 수가 있으니 잘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서 최근의 시를 읽는 시간을 갖고 오늘 강의
를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정진규님의 <가을산책>을 읽어보지요.

햇살들이 따가웠다 자잘한 돌들마저 따끈따끈했다
조금씩 열어놓고 있었다 새들의 허공을 나마저 자
유롭게 드나들던 날, 나도 허공 한 채를 짓고 있던
날 온다는 그를 위해 단산한 지도 벌써 오랜 한 여
자가 정갈하게 새 옷 갈아입고 장보러 가고 있는
十里길 언덕, 들국들마저 자잘한 들국들마저 노오
랗게 흔들리고 있었다 고요한 가벼움 속으로 아직
날 수 있는 늦가을 풀버레들이 낮은 소리를 내며
낮게 낮게 날고 있었다 마음이 잠시 수런거렸다

안도현님의 <벚나무는 건달같이>

군산 가는 길에 벚꽃이 피었네
벚나무는 술에 취해 건달같이 걸어가네

꽃 핀 자리는 비명이지마는
꽃 진 자리는 화농인 것인데

어느 여자 가슴에 또 못을 박으려고.....

돈 떨어진 건달같이
봄날은 가네

이 두 분의 시 모두 최근에 발행된 본인들의 시집
에서 발췌했습니다.
===============================================================
 
372. 맡겨 둔 것이 많다 / 정진규
    
 
 
 
 

 
 
 
 
  맡겨 둔 것이 많다
 

                                                                        정 진 규
  
  세탁소에 맡겨 두고 찾지 못한 옷들이 꽤 여러 벌 된다 잊고 있다가 분실하고 말았다 스스로 떠나기도 했다 지금은 누구 몸을 입히고 열심히 낡아 가고 있을까 내 길이 아닌 남의 길 어디쯤을 어떻게 얼마나 천연덕스럽게 나다니고 있을까 그것들 말고도 내게는 맡겨 둔 것이 많다 몇 해 전 일본 가고시마 공항 보관소에 맡겨 두고 온 라면집 여자의 눈물도 있다 맡겨 둔 것이 많다 지지난해엔 내 아버지마저 하늘나라에 맡겨 드렸다 어머니는 훨씬 오래전 30년이 넘었다 나는 어느 것도 버리지 못한 채 유보의 짐을 지고 기다리라고 기다리라고 늑장을 부리고 있다 내 삶의 후반부가 더욱 더디다 꼬리가 길다 오늘도 기다리다 지쳐 삼삼오오 스스로 길 떠나고 있는 뒷등들 아득히 바라보면서도 나는 그런다
 
 
  계간 <시작> 2004년 봄호 수록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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