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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방정환 "어린이 날 선언문"
2016년 05월 30일 22시 43분  조회:7248  추천:0  작성자: 죽림

 

 

 

 

 

어른이 어린이를 내리 누르지 말자.


삽십년 사십년 뒤진 옛 사람이
삼십년 사십년 앞 사람을 잡아 끌지 말자.


낡은 사람은 새 사람을 위하고 떠 받쳐서만
그들의 뒤를 따라서면 밝은 대로 나아갈 수 있고
새로워질 수가 있고 무덤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1930년 7월 어린이인권운동가


소파 방정환, 최초의 어린이날 선전문(동아일보, 1922년 5월 1일자)

1. 어린 사람을 헛말로 속이지 말아주십시오.
2. 어린 사람을 늘 가까이 하시고 자주 이야기하여 주십시오.
3. 어린 사람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십시오.
4. 어린 사람에게 수면과 운동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십시오.
5. 이발이나 목욕 같은 것을 때맞춰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6. 나쁜 구경을 시키지 마시고 동물원에 자주 보내 주십시오.
7. 장가와 시집 보낼 생각 마시고 사람답게만 하여 주십시오.


소파 방정환, 어린이날 선언문(어른들에게 드리는 글)(1923년 5월 1일)

1. 어린이를 내려다 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2.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
3. 이발이나 목욕같은 것을 때맞춰하여 주시오.
4.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5. 산보와 원족 같은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6.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 자세 타일러 주시오.
7.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만한 놀이터나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

대 우주의 뇌신경의 말초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 그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 


=================================================



최초의 어린이 선언문 (1923년 5월 1일 발표)


- 1923년 5월 1일, 오후 3시, 천도교 수운회관에는 어린이와 어른 천 명이 모였다. 손에는 흰 바탕에 붉은 글씨로 '어린이날'이라고 쓴 깃발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50명이 한 모둠이 되어 네 모둠이 광화문까지 행진하였다. 이날 종로 거리와 온 나라에 뿌린 어린이날 선언이 12만 장에 이른다. 어린이날에 담고자 했던 정신은 어린이날 선언에 잘 나타나 있다.(어린이문화운동사/이주영 저)-
  
  
▶소년운동의 기초 조건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다.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절을 행하게 하라.
 
어른들에게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 보아 주시오.  
·어린이를 가까이 하시어 자주 이야기하여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시오. 
·이발이나 목욕, 의복 같은 것을 때맞춰 하도록 하여 주시오.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산보와 원족 같은 것을 가끔가끔 시켜 주시오.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자세 타일러 주시오.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만한 놀이터와 기계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  
·대우주의 뇌신경의 말초(末梢)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
 
어린 동무들에게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  
·어른들에게는 물론이고 당신들끼리도 서로 존대하기로 합시다. 
·뒷간이나 담벽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 같은 것을 버리지 말기로 합시다.  
·꽃이나 풀을 꺾지 말고 동물을 사랑하기로 합시다.  
·전차나 기차에서는 어른들에게 자리를 사양하기로 합시다. 
·입을 꼭 다물고 몸을 바르게 가지기로 합시다.
 
우리들의 희망은 오직 한 가지 어린이를 잘 키우는 데 있을 뿐입니다. 다 같이 내일을 살리기 위하여 이 몇 가지를 실행합시다.·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내 아들놈 내 딸년 하고 자기의 물건같이 여기지 말고 자기보다 한결 더 새로운 시대의 새 인물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굴리려 하지 말고 반드시 어린 사람의 뜻을 존중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높게 대접하십시오. 어른은 뿌리라 하면 어린이는 싹입니다. 뿌리가 근본이라고 위에 올라 앉아 싹을 나려누르면 그 나무는 죽어버립니다. 뿌리가 원칙상 그 싹을 위해야 그 나무(그 집 운수)는 뻗쳐 나갈 것입니다.


=================================

 

소파 방정환, 어린이날의 약속(1923년 5월 4일, 색동회 어린이날 행사 중)

첫째,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둘째,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높게 대접하십시오.

셋째, 어린이를 결코 윽박지르지 마십시오.

넷째, 어린이의 생활을 항상 즐겁게 해주십시오.

다섯째, 어린이는 항상 칭찬해가며 기르십시오.

여섯째, 어린이의 몸을 자주 주의하여 살펴 주십시오.

일곱째, 어린이에게 잡지를 자주 읽히십시오.

***소파 방정환 선생은 1921년 어린이라는 단어를 공식화하며, 1923년 5월 1일 한국 최초 어린이날을 만들었다.

 

(소파 방정환) 

 

소파 방정환, 최초의 어린이날 선전문(동아일보, 1922년 5월 1일자)

1. 어린 사람을 헛말로 속이지 말아주십시오.

2. 어린 사람을 늘 가까이 하시고 자주 이야기하여 주십시오.

3. 어린 사람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십시오.

4. 어린 사람에게 수면과 운동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십시오.

5. 이발이나 목욕 같은 것을 때맞춰 하도록 하여 주십시오.

6. 나쁜 구경을 시키지 마시고 동물원에 자주 보내 주십시오.

7. 장가와 시집 보낼 생각 마시고 사람답게만 하여 주십시오.

 

소파 방정환, 어린이날 선언문(어른들에게 드리는 글)(1923년 5월 1일)

1. 어린이를 내려다 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1.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하여 주시오.

1. 이발이나 목욕같은 것을 때맞춰하여 주시오.

1. 잠자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1. 산보와 원족 같은 것을 충분히 하게 하여 주시오.

1.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는 쉽게 성만 내지 마시고 자세 자세 타일러 주시오.

1.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만한 놀이터나 기관 같은 것을 지어 주시오.

1. 대 우주의 뇌신경의 말초는 늙은이에게 있지 아니하고 젊은이에게도 있지 아니하고 오직 어린이 그들에게만 있는 것을 늘 생각하여 주시오.

 

 

소파 방정환, <어린이 동무들에게> 중에서, <<어린이>> 1924년 12월호)

짓밟히고 학대받고 쓸쓸하게 자라는 어린 혼을 구원하자

 

소파 방정환, 서울 안국동 천도교회관 앞 기념비(1930년 7월)

어른이 어린이를 내리 누르지 말자.

삽십년 사십년 뒤진 옛 사람이

삼십년 사십년 앞 사람을 잡아 끌지 말자.

낡은 사람은 새 사람을 위하고 떠 받쳐서만

그들의 뒤를 따라서면 밝은 대로 나아갈 수 있고

새로워질 수가 있고 무덤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1930년 7월 어린이인권운동가 방정환

 

 

 

 

기사 이미지

 


아동문학가 - 방정환

방정환은 아동문학가로 아동을 어린이라는 용어로 격상시키고, 아동문제연구단체인 색동회를 조직했으며 어린이의 날을 제정했다. 

방정환은 1909년 매동보통학교에 입학, 이듬해 미동보통학교로 전학해 1913년에 졸업했다. 그 해 선린상업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이듬해 가정 사정으로 중퇴했다. 1917년 손병희의 딸 용화와 결혼했다. 그 해에 청년운동단체인 ‘청년구락부’를 조직해 활동했다.

1918년 보성전문학교에 입학, 이듬해인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고 1주일 만에 석방됐다. 1920년 일본 도요대 철학과에 입학해 아동예술과 아동심리학을 연구했다. 1921년 김기전·이정호 등과 함께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해 본격적으로 소년운동을 전개했다. 

방정환을 포함한 일본유학생 모임인 ‘색동회’가 주축이 되어 어린이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고자 하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어 1923년 5월 1일 어린이날을 공표하고 ‘어린이날의 약속’이라는 전단 12만장을 배포하는 등 기념행사를 치름으로써 어린이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당시 이들은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하고 동요와 동시를 만들어 보급했으며, 어린이날 선언문에는 ‘어린이를 종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완전한 인격적 대우를 허용 한다’는 등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자는 아동존중사상을 담았다. 1925년에는 제3회 어린이날을 기념하는 동화구연대회를 개최했다. 1928년에 세계 20여 개 나라 어린이가 참가하는 ‘세계아동예술전람회’를 개최했다. 

어린이날은 1927년부터 5월 첫째 일요일로 날짜를 바꾸어 지속되어 오다 1939년 일제의 억압으로 중단되었고 1946년 다시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했다. 1957년에는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을 선포하였으며, 1970년부터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따라 공휴일로 정해져 오늘까지 법정 공휴일로 이어지고 있다. 

1983년 5월5일에는 망우리 묘소에 이재철이 비문을 새긴 ‘소파 방정환 선생의 비’가 건립됐으며, 1987년 7월14일에는 독립기념관에 그가 쓴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을 새긴 어록비가 건립됐다. 1978년 금관문화훈장, 1980년 건국포장이 수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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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 약력>
1899년 11월 9일 서울 종로구 당주동에서 어물전과 미곡상을 경영하던 方慶洙씨의 장남 으로 출생함.
1905년 4월 삼촌을 따라 학교에 간 것이 인연이 되어 김중환교장에 의해 삭발을 당하고 전교생 중 가장 어린나이로 서대문 근처 보성소학교 유치반에 입학.
1908년 어린이 토론 연설회인 「소년입지회」를 조직하고 그 회장이 되어 활약함.
1909년 매동보통학교에 입학.
1910년 10월 미동보통학교 2학년으로 옮김.
1913년 인쇄공장에 연판공으로 다니시던 嚴親의 명에 따라 선린상업학교에 입학했으며, 이 무렵 신문화 흡수를 위한 독서에 주력하여 잡지 『靑春』에 투고하기 시작함.
1914년 이 무렵을 전후해 육당 최남선 선생의 아동잡지인『少年』, 『붉은 저고리』, 『아이들 보이』, 『새별』 등을 탐독함. 기울어져 가는 조국과 스스로의 장래를 생각하여 담임교사와 엄친의 만류를 뿌리치고 졸업을 1년 남긴 채 선린상업학교를 2년만에 중퇴함.
1915년 가계를 돕기 위해 총독부 토지 조사국의 사자생(瀉字生)으로 취직하여 류광열씨와 함께 노무자 무임숙소에서 기거하며 보다 더 독서에 열중함. 3월에 발간된 『靑春』6호에 한시 「落花」가 무기명으로 발표되었는데, 류광열씨의 증언에 의하면 이것이 최초로 활자화된 소파의 글이라고 함.
1917년 음력 4월 8일 의암 손병희 선생 3녀 손용화씨와 결혼, 1921년 일본에 유학을 가기 전까지 제동 처가에 머물며 소년운동을 준비함. 5월 6일 가난과 질병으로 고생하던 자당이 별세함. 비밀결사조직인 청년구락부를 류광열, 이중각, 이복원 씨 등과 조직하고 회보를 발간. (5년동안 활동)
1918년 5월 처가에서 장남 방운용씨 출생함.
7월 장인이 경영하던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함.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신문으로는 최초로 3.1운동을 보도한 지하신문 호외판 조선독립신문(보성전문교 내 신문)을 오일철씨 등과 함께 집에서 등사판으로 박아 배부하고 또 독립선언문을 돌리다가 일경에 피검, 고문을 받다가 1주일 만에 석방됨.
1920년 일제官憲의 등쌀을 피하여 동경유학의 길에 오르게 됨.
동경 동양대학에 유학-아동심리, 아동문학 전공, '천도교청년회 동경지부' 회장.
6월 5일 장녀 영화씨 출생.
8월 25일 번역동시 <어린이 노래-불켜는 아이>, 『개벽지』에 발표. '어린이'란 용어 보급에 나섬.
1921년 5월1일 천도교소년회를 개벽사 주간인 김기전, 이정호와 함께 조직.
"씩씩하고 참된 소년이 됩시다. 그리고 늘 사랑하며 도와갑시다"란 표어를 걸고, 어린이에게 존대말쓰기 운동 전개.
11월 10일, 천도교청년회 동경지회장으로 태평양대회를 계기로 청년을 선동하여 저항운동을 계획했다는 혐의로 박달성 등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
어린이를 위한 동화 '안데르센 동화' '그림동화' '아라비안나이트' 등을 번역한 『사랑의 선물』출판, 소파 생전의 유일한 단행본.
1922년 3월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던 장인인 의암이 병보석으로 감옥에서 풀려나 향년 62세로 5월에 순국함.
천도교소년회 창립1주년 기념 제1회 '어린이날' 제정, <십년 후 조선을 려(廬)하라>는 전단을 시내에 배포하고 '어린이의 날'의 취지를 가두에서 선전함.

1923년 3월 소년잡지 『어린이』 개벽사에서 창간.
4월 동경에서 「색동회」를 조직, '어린이 날'제정, 5월 1일 기념식을 거행하도록 서울에 연락.
5월 조선소년운동협회 주최의 제1회 '어린이날' 행사가 성대하게 치러짐. 이날 <어른에게 드리는 글>, <어린 동무에게 주는 말>, <어린이날의 약속>이란 전단 12만장을 배포.
6월 9일, 7월 23일 「색동회」에서 전조선소년지도자대회 및 아동예술강습회 개최.

1924년 1월부터 『어린이』지를 통해 '自由畵모집' 공고.
4월 21일, 개벽사에서 각 소년회 대표들이 모여 제2회 어린이날 기념선전 준비회를 개최, 소파는 준비위원으로 선출.
5월 1일~4일 '어린이날' 기념행사, 5월 1일은 어린이 대회를, 5월 2일은 어머니 대회, 5월 3일은 아버지 대회,
5월 4일에는 노동소년 위안회 및 원유회가 열렸다.
8월 천도교 대강당에서 「전조선소년지도자대회」를 소집하여 흩어져 있는 단체의 통일을 꾀함.
1925년 1월 1일 동아일보에 '동화작법'발표
1월 13일 차남 하용씨 출생
3월 21일~30일 『어린이』창간 2주년 기념 행사로 전국소년대회를 위해 지방을 순회함.
4월 20일 제3회 어린이날 기념 선전준비 위원에 선출됨.
5월 1일 '제3회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오색의 선전 전단 30~40만매를 뿌리고, '어린이날'노래를 부르며 <우리의 희망은 어린이>, <앞날의 임자는 어린이>, <내일을 위하여 어린이를 잘 키우자> 등등 플랭카드를 들고 시가행진을 함.
5월 31일 「경성소년지도자연합회」모임에 지도위원으로 선출되어, 서울 안 40여 소년단체를 통합하여 「소년운동연합회」를 조직(집행기관 오월회).
1926년 5월 1일 「소년운동연합회」에서 순종임금의 國葬으로 인해 어린이날 행사를 중지하기로 함.
6월 10일 '6.10만세사건'으로 예비 검속당함.
7월 최초로 동화 <어린이와 직업>을 라디오로 방송함.

1927년 『어린이』지 1월호부터 '어린이 독본'연재. 1930년 12월까지 총 20회에 걸쳐 연재된 '어린이 독본'은 일종의 도덕교과서이며, 실제로 당시의 많은 학교에서 교과서로 쓰임.
4월 20일 백상규, 김명순의 필화사건으로 「개벽사」의 차상찬씨와 함께 종로경찰서에 구속되어 서대문감옥에 미결로 있다가 동월 26일 석방됨.
5월 1일 어린이날 축하식이 「소년운동협회」와 「오월회」가 대립되어 따로 거행함.
10월 16일 소년운동단체 「오월회」와 손을 잡아 「조선소년연합회」를 조직하고 그 위원장에 피선됨. 어린이날을 5월 첫째 일요일로 결의.
1928년 2월 7일 「조선소년연합회」주최 어머니대회 개최.
3월 22일 「조선소년연합회」가 「조선총동맹」으로 개칭되어 소년운동의 방향이 달라지고 일경의 압력이 심해지자 소년운동단체에서 손을 떼고 일선에서 물러나 『어린이』잡지와 동화구연대회, 강연회 그리고 라디오를 통하여 어린이의 동무가 됨.
4월 17일 차녀 영숙씨 출생
5월 1일 천도교기념관에서 1천5백명이 모인 가운데 동화구연대회를 열어 대성황을 이룸.
5월 첫째주 일요일 「조선소년총연맹」의 주관하에 어린이날 행사를 전국적으로 거행.
10월 2일~10일 기획한 지 만 4년만에 「어린이사」「개벽사」주최와 「동아일보사」후원으로 서울 천도교 기념관에서 「색동회」 동지들의 주선과 『어린이』잡지 주최로 20여개국이 출품한 획기적인 '세계아동예술전람회'를 개최.
1929년 3월 1일 「개벽사」에서 월간지 『학생』을 창간함.
『어린이』 3월호(창간6주년) '조선자랑호'발간.
1930년 2월 10일 '천도교평양소년회'주최 신춘동화대회 출연.
『어린이』 3월호(창간7주년) '조선제일호'발행.
1931년 7월 23일 6시45분. 서울대학병원 병실에서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라고 친구들에게 부탁의 유언을 하였으며, "여보게, 밖에 검정말의 검정차가 와서 검정옷을 입은 마부가 기다리니 어서 가방을 내다 주게."란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운명.
7월 26일 삼일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천도교당 앞마당에서 추도식을 행함.
8월 20일 『어린이』9권7호 '故 방정환선생 추도호'로 꾸밈.

세상 모든 어린이들의 아버지
방정환 선생님은 동화 작가로서 뿐 아니라 어린이날을 만들어 내고, 색동회를 조직하여 어린이 인권 향상을 위해 평생을 몸 바친 어린이 문화 운동가, 사회 활동가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지를 만들어 세계 어린이 문학을 번역 ·소개하고, 이원수, 윤석중 같은 소년 작가를 길러 내기도 했으며, 이태준이라는 천재 작가를 취직시켜 작품 활동을 돕기도 했다. 또 투고된 원고가 없을 때는 스스로 여러 개의 가명을 쓰며 여러 이야기를 직접 쓰기도 했다. 근대적 의미의 '어린이 문학'이라는 게 거의 없던 시절, 우리 어린이 문학의 씨앗을 뿌린 매우 귀한 분이라 할 수 있다.
방정환 선생님이 쓴 <만년 샤쓰> <양초 귀신> 등은 초등학교 읽기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만년 샤쓰>는 제목이 참 특이하다. 내용을 읽어 보지 않고서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주인공인 창남이와 창남이 어머니는 자신도 입을 옷이 없지만 불이 난 이웃을 위해 자기 옷을 벗어 준다. 창남이는 그것도 모자라 추위에 떠는 어머니를 위해 자기 셔츠를 벗어 드리고 학교에 온다. 추운 겨울에 저고리만 입고 학교에 온 창남이. 그런데 체육 시간에 선생님은 체력을 키우자며 저고리를 모두 벗게 합니다. 결국 창남이의 맨살이 드러났고 선생님과 아이들은 뒤늦게 창남이의 사정을 알고 눈물을 흘리고 만다.

이 작품에서 '만년 샤쓰'란 맨몸을 의미한다. 우리 몸의 살갗은 평생 동안 우리의 셔츠가 되지 않던가.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현대의 아이들은 창남이의 뜻 깊은 행동을 보고 감동을 하게 된다. 어린이들이 문학 작품을 읽고 감동하는 것은 어른들처럼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며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한 '아름다운 인물'에 대해 감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방정환 선생님의 동화는 시대를 뛰어넘어 어린이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현재 출판되어 있는 방정환 선생님의 작품집 중 <사랑의 선물 1>은 주로 선생님의 창작 동화나 옛 이야기가 실려 있고, <사랑의 선물 2>는 창작 동화 보다는 외국 동화를 번안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방정환 선생님은 뛰어난 동화 구연가이기도 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처럼 볼 것이 별로 없던 시절, 방정환의 이야기는 큰 구경거리였다고 한다. 이렇듯 재주 많고, 할 일 많았던 방정환 선생님은 33살의 짧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방정환 선생님의 못 다한 일들은 이후 많은 작가들이 이어 받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작가들의 작품에 감동받은 수많은 어린이들이 또다시 그 일을 이어받을 것이다.

 

 

▲ 방정환이 다니던 보성전문학교 낙원동 교사(1918~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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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 詩人은 쉬운 詩를 쓰려고 노력해야... 2016-06-10 0 3837
1509 詩는 남에게 하는 대화 2016-06-10 0 3406
1508 <저녁> 시모음 2016-06-10 0 3806
1507 留魂之 碑 / <자기 비움> 시모음 2016-06-10 0 3573
1506 정끝별 시모음 2016-06-10 0 4277
1505 [무더위 쏟아지는 아침, 詩] - 한바구니 2016-06-10 0 3984
1504 詩는 독자들에게 읽는 즐거움을... 2016-06-08 0 3534
1503 정지용 <<향수>> 노래 2016-06-07 0 3808
1502 삶 쪽에 력점을 두는 詩를 쓰라... 2016-06-07 0 3851
1501 생명력 있는 詩를 쓰려면... 2016-06-06 0 3462
1500 <전쟁>특집 시모음 2016-06-05 0 4482
1499 詩제목은 그냥 약간 웃는체, 보는체, 마는체 하는것도... 2016-06-05 0 3692
1498 360도와 1도 2016-06-04 0 3757
1497 詩의 제목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시켜야... 2016-06-03 0 4510
1496 詩作을 많이 習作해야... 2016-06-03 0 3751
1495 詩의 제목은 참신하고 조화로워야... 2016-06-02 0 4120
1494 원작이 무시무시한 괴물이라면 번역도 괴물이 돼야... 2016-06-02 0 3989
1493 창작은 악보, 번역은 연주 2016-06-02 0 4375
1492 별들의 바탕은 어떤 색갈?!... 2016-06-01 0 4156
1491 찢어진것만 보아도 흥분한다는... 2016-06-01 0 4150
1490 소파 방정환 "어린이 날 선언문" 2016-05-30 0 7248
1489 <어른> 시모음 2016-05-30 0 4107
1488 문구멍으로 기웃기웃..."거, 누구요?" "달빛예요" 2016-05-30 0 4718
1487 詩人은 예리한 통찰력이 있어야... 2016-05-30 0 5572
1486 詩의 묵은 덩굴을 헤쳐보니... 2016-05-30 0 3933
1485 <단추> 시모음 2016-05-30 0 3923
1484 [벌써 유월?!~ 詩 한바구니]- 유월 2016-05-30 0 3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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