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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후, 조선족시인으로서 첫 개인시집 출판한 주선우
2016년 01월 22일 00시 50분  조회:5307  추천:0  작성자: 죽림

혜성처럼 빛난
조선족전쟁시문학의 대부 주선우

 
《다시 읽는 우리 문학》(3)《시인 주선우를 다시 읽다》세미나 연변도서관서 개최 
편집/기자: [ 김태국 ]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5-06-05 16:12:31 ]


 
중화인민공화국 창건이후 조선족으로서는 처음으로 개인시집 《잊을수 없는 녀인들》(1957.4 연변교육출판사)을 출판했던 중국조선족 전쟁시문학의 대표적인 시인 주선우, 오늘날 그를 잊었거나 아예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다.
 
6월 5일 오전, 해란강닷컴 주최,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협조, 연길고려원, 연길시한규닷컴휴한회사 협찬으로 진행되는 《다시 읽는 우리문학》 제3회에서는 기구한 운명의 천재시인 주선우를 재조명하였다.
 
시인 주선우는 1924년 조선 평양 사암리에서 출생, 학도병으로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1944년 11월 길림 통화지구의 조선의용군1지대에 참군, 의용군 선전대 편집조 조장 등직을 맡고 《긴급임무》, 《특수임무》, 《돌격임무》를 수차 완성하여 동북해방전쟁이 결속될무렵 사단정치부로부터 대공 1차를 수여받았다.
 
그후 항미원조전선에 나간 그는 모 군단 정치부 선전원으로 활약, 최전선에서 용맹하게 싸웠고 미제와의 전투에서 불행이 척추부상을 입고 군공메달, 국기훈장 등을 수여받았으며 영예롭게 퇴역하였다. 1952년 가을,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 문교처에 배치, 연변교육출판사 문예창작조 조장, 연변작가협회 창작위원회 주임 등 직을 맡고 창작활동에 종사하였다.
 
1957년 4월에 출판된 그의 시집 《잊을수 없는 녀인들》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하루아침에 정치권리와 창작권리를 박탈당하고 그를 따랐던 동료작가와 문학도들로부터 배척을 당한 주선우는 《우파분자》의 모자를 쓴채 조선으로 망명을 떠났고 조선에서도 여의치 못한 생활을 이어가다가 중병에 걸려 1986년 다시 연길에 돌아왔다. 하지만 안식처가 없이 길림, 할빈 등지로 떠돌다가 1987년초 할빈에서 기구한 운명을 마쳤다. 
 

좌우로부터 석화, 우상렬, 최삼룡, 주성화, 채영춘, 장정일
 
세미나에서 연변작가협회 부주석 석화, 연변대학 교수 우상렬, 평론가 최삼룡 등이 주선우시인의 생평, 작품, 문학성과 등을 다각적으로 조명하였고 평론가 장정일, 시인 림금산, 한규닷컴 총경리 김향, 칼럼작가 주청룡 등이 소감을, 연변주당위선전부 전임 부부장 채영춘이 축사와 소감, 총화발언을 하였다.
 
해란강닷컴 주성화총편은 20살에 일본군 학도병으로 끌려왔다가 탈출하여 조선의용군에 참가했던 비운의 천재시인 주선우, 33살에 첫 시집을 내고 그로 인하여 우파분자로 타격받아 어찌할수 없이 망명길에 올랐다가 62세의 초로의 병든 몸으로 중국땅을 찾았던 조선족전쟁문학 시초의 시인 주선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 세상을 하직하였는지도 모르는 주선우시인의 일생을 조명하고 그와 함께 동시대를 풍미했던 조선족문학인들의 문학적업적을 재조명하는 《다시 읽는 우리 문학》은 앞으로 6-7차 이어질것이며 이를 통해 우리 중국조선족문학의 가장 어려웠던 로정과 성과를 규정하는것이 이번 문학포럼의 취지라고 밝혔다.
 
===
잊지 말아야 할 시인
—시인 주선우와 시집 《잊을수 없는 녀인》을 다시 읽다
석화
 
1. 들어가며
“해란강닷컴”에서  2015년도의 주요한 사업일환으로 기획한 “다시 읽는 우리 문학” 계렬세미나의 세번째 주인공으로 리욱시인과 김창걸소설가에 이어 주선우시인을 선정하였다. 이는 아주 명철하고 적시적인 결정이다. 
 
중국조선족문학은 지난 백년 남짓한 력사행정에서 우리들이 이 땅에서 걸어온 삶과 정서를 기록하면서 나날이 발전하여 왔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중국조선족문학은 수많은 훌륭한 시인, 작가들에 의하여 우수한 문학작품들이 창작되였다. 오늘날에 이르러 이와 같은 훌륭한 시인, 작가들을 다시 만나고 그들이 창작한 우수한 문학작품들을 다시 읽으면서 그 작가와 작품에 대하여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하는것은 새로운 력사시기 우리 문학의 번영과 발전에 도움이 될뿐만 아니라 전반 중국조선족사회의 문화창달에도 큰 기여가 될것이다. 
 
근년에 이르러 연변작가협회와 연변대학 등 유관부문에서는 새로운 시기 새로운 관점에 기반하여 우리 문학사를 정리하고 많은 귀중한 사료를 발굴하며 문학의 다양한 현상을 연구하는 등 괄목할만한 성과들을 거두었다. 하지만 다시 되돌아보면 이 과정에서 일부 특정 작가와 시인에게만 무게가 크게 실리고 그들에 대하여 어쩌면 정도이상의 열기를 불러일으키면서 뜨거운 화제로 부각시키는 대신 우리 문학사에서 특별히 기억하고 반드시 잊지말아야할 적지 않은 훌륭한 시인, 작가에 대하여서는 거의 거론하지 않고 연구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자신의 훌륭한 작품으로 우리 중국조선족문학의 보물고를 빛내고 가득 채웠으며 남다른 노력으로 우리 중국조선족문학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지만 오늘에 이르러서는 기억속에 거의 사라지고 지워져가는 그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내여 그들의 작품을 다시 읽고 감동하며 오늘까지 걸어온 우리 문학이 길을 되새기는것이 바로 오늘 “해란강닷컴”에서 펼치는 이 계렬세미나의 과제이다.   
 
주선우, 우리는 오늘 “잊지 말아야할 시인”으로 그의 이름을 부른다. 지난 세기 50년대 초반, 적탄이 빗발치는 항미원조전장에서 갈비뼈에 탄환이 박혔어도 목숨을 다해 싸웠고 그 피터지는 싸움의 과정을 아름다운 시행에 적어낸 지원군전사가 젊은 시인 주선우였다. 또한 그렇게 포화가 울부짓는 싸움터에서 써낸 고운 시편때문에 그처럼 소중히 아끼고 생명을 다 바쳐 사랑해온 이 땅에서 쫓겨나야했던 불운의 시인도 바로 우파분자 주선우였다. 주선우시인은 전장에서 목숨과 바꾼 한글자 또 한글자로 내려 쓴 시로 시집 “잊을수 없는 녀인”을 엮었고 또한 바로 이 시집때문에 우파모자를 썼으며 나중에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모르는 이 땅의 무주고혼이 되고 말았다. 말 그대로 사나운 적탄에도 빼앗기지 않았던 귀중한 생명을 한권의 시집으로 그냥 다 말아먹은것이였다. 
 
 
2. 우리 문학사에서의 시인 주선우
중국조선족문학사가 처음 정리되여 공식적으로 출판된것이 1990년 7월이였다. 바로 조성일, 권철, 최삼룡, 김동훈이 집필하고 연변인민출판사에서   펴낸 《중국조선족문학사》 이다. 그런데 이 문학사에는 시인 주선우의 이름이 없었다. 당시 력사상황에서 우파분자모자를 썼다가 외국에 망명한 시인을 거론하기 불편하였을것임을 우리는 모두가 주지하는 바이다. 
 
그후 2006년 12월, 북경대학 조선문화연구소에서 총 11권으로 된 “중국조선민족문화사대계”를 편찬했는데 이 대계의 제2권으로 《문학사》를 발간했다. 북경 민족출판사에서 출판한 이 책에서 처음으로 주선우시인과 그의 작품이 문학사에서 거론되였는데 바로 이 책의 “제1편 시문학사”, “제3장 1949년부터 1976까지의 시문학”의 “제4절 기타 시인들” 장절에서 서헌의 시 “청송두그루”, 김태갑의 시 “옥중의 노래”와 함께 주선우의 시작품 “잊을수 없는 녀인”을 다뤘던것이다. 
 
이어서 2007년 12월 북경시고등교육정품교재프로젝트로 북경 민족출판사에서 출판한 《중국조선민족문학사》 (김동훈 고문, 오상순 주필, 최삼룡, 장춘식 집필)에서도 같은 내용으로 주선우시인과 작품을 담았다. 이 책에서“제2편 정치공명시기의 문학, 제2장 1945년-1978년의 시문학, 재1절 1945년-1978년의 시문학”의 내용으로 주선우시인의 서정시 “잊을수 없는 녀인”을 기술한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상기 “중국조선민족문화사대계 · 2”의 《문학사》와 《중국조선민족문학사》 두권의 책에서 주선우시인은 단지 몇줄의 략력에 불과한 소개글과 몇행 안되는 시작품의 절록 및 몇글자의 해설로 간단히 기재되고있을뿐이다. 
 
우리 문학사에서 주선우시인과 그의 작품을 비교적 자세하게 다루게 된것은 2011년에 이르러서이다. 연변대학211공정 제3기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김호웅, 조성일, 김관웅 등이 편찬한 《중국조선족문학통사(상권)》(연변인민출판사. 2011.12) “제2편 정치공명시기의 문학”, “제3장 정치공명시기(1946-1976년)의 시문학”, “제2절 임효원, 김철, 주선우”편에서 이 책의 406페지에서 411페지에 이르는 적지않은 편폭으로 시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하여 다양한 각도로 서술하고 자세히 분석하였으며 비교적 공정하게 평가하였다. 그러나 이 《중국조선족문학통사》에서도 상, 하 두책에 거론되는 대부분의 시인, 작가들의 사진이 수록된데 반하여 그의 사진은 한폭도 들어있지 못하였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주선우시인에 대한 연구는 우리들이 이상에서 보아온 여러 종류의 문학사에서 기술한 상황에서와 마찬가지로 매우 미흡하다. 주선우시인에 대한 서지문헌도 1957년 시집 《잊을수 없는 녀인》이 발간되고 곧 이어 들이닥친 “반우파투쟁”에 휩싸여 곤경을 치르던 1957년과 1958년 사이에 발표된 몇편의 쟁론문장과 비판문장에 불과하다. 그것들을 살펴보면 “<잊을수 없는 녀인>에 대하여”(김성휘, 《연변일보》 1957년), “<잊을수 없는 녀인>을 찾아서”(리령호, 《아리랑》1957년 9월호),  “<잊을수 없는 녀인>”(박상봉, 권철, 《아리랑》 1957년 12월호), “주선우의 립장과 붓끝 -시집 <잊을수 없는 녀인>에 대하여”(철봉, 《아리랑》 1958년3월호) 등 몇편이다. 
 
그로부터 근 반세기 세월, 50년이 가까워오는 시간이 지난 2004년, 연변대학 우상렬교수가 론문 “인간성을 노래하는 시인(唱人性之歌的诗人)”을 써내여 주선우시인의 시세계에 대하여 새롭고 깊이 있는 론의를 전개하였는데 이 론문은 우리의 문단과 평단에 주선우시인연구에 대한 새로운 화두를 던진 의미가 있는 론문이 되였다. 
 
또한 2011년 12월, 한국 경남대학교 대학원의 진립립학생이 인문학과 석사학위론문으로 “중국조선족시인 주선우연구(지도교수 박태일)”를 제출하였는데 이것은 오늘에 이르러 국내외에서도 주선우시인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각일각 깊이 있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주선우시인의 인생궤적에 대하여서는 현재 관련기관의 당안실에 보관된 몇페지밖에 안되는 개인당안 이외에는 기록된 문서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고있다. 다행히 조선의용군 제1지대(동북민주련군 1지대)에 참가하여 주선우시인과 동북해방전쟁터에서 3년간 어깨겯고 함께 싸운 전우이며 또한 1952년 가을, 부대에서 퇴역하여 함께 연변에 와서 지방의 문화부문에서 같이 일한 동료이기도 하지만 1957년 반우파투쟁 당시에는 함께 모자를 쓰고 우파분자가 되였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최정연선생이 1997년 7월에 쓴 글 한편이 시인에 대한 거의 유일한 단서로 남아있게 되였다. 최정연선생이 2000년도에 료녕민족출판사에서 출판한 작품집 《울고 웃는 인생길》에 수록한 “분노에 차는 편지”라고 제목한 산문이 바로 그 글인데 이 글은 이후 여러 사람들이 주선우시인에 관하여 쓴 대부분 문장에서 인용되고있는 실정이다.  
 
 
  1. 기구한 운명의 시인 주선우 
시인 주선우(朱善禹)는 1924년 조선 평양 사암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학도병으로 일본군대에 끌려나갔다가 도망쳐나와서1945년 8월, 일본 천황이 무조건 항복하기 9개월전인 1944년11월에 길림 통화지구에서 조선의용군 1지대(동북민주련군 1지대)에 참군하였다. 열렬한 문학청년이였고 시쓰기를 즐겼던 그는 부대 선전대 편집조에 배속되였고 얼마후 조장으로 천거되였다. 그는 3년 동북해방전쟁가운데서 전투부대를 따라 행동하면서 많은 “긴급임무”, “특수임무”, “돌격임무”를 완성하였다. 동북해방전쟁이 결속될무렵 사단정치부에서는 그에게 대공 1차를 기입해주었다.
 
이어서 항미원조전선에 나갔을 때, 그는 모 군단 정치부 선동원으로 임직하여 최전선에 나가 용맹히 싸웠으며 전투에서 척추에 부상을 입게 되었다. 그후 군공메달, 국기훈장 등을 수여받고 영예롭게 퇴역하였다가 1952년 가을, 연길에 와서 연변조선족자치주정부 문교처에서 일하였고 연변작가협회가 성립되자 창작위원회 주임직을 맡았다. 
 
주선우는 행정사업에 투신함과 더불어 시창작에 열을 올렸다. 그는 해방전쟁과 특히 조선전쟁에서 겪었던 가렬처절한 전투장면을 떠올리면서 사랑과 평화를 주제로 서정시 창작에 몰두하였고 1957년 4월, 비로소 연변교육출판사에 의해 첫 개인시집《잊을수 없는 녀인들》을 출판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 시집이 이른바 “문제”가 되여 그는 “우파분자”모자를 쓰게 되였다. 정치권리와 창작권리를 박탈당하고 지난날의 혁명전사가 하루아침에 “계급의 적”이 되자 그는 1960년 하반년, 외국으로 망명하는 길을 걷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그는 외국에서의 망명생활도 불우하기 마찬가지였다. 1986년에 다시 연길에 돌아왔으나 안식처가 없이 길림, 할빈 등지로 떠돌다가 1986년말 아니면 1987년초에 사망되였을것으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으로는 확인할수 없다.
 
이를 다시 개괄하여 보면 그는 1944년, 20살 나이에 입대하여 전선에서 싸우다가 부상을 입고 1952년, 28살 나이에 퇴역하여 지방에 왔으며 1957년, 33살에 첫 시집을 내고 그해 우파분자가 되였다. 1960년, 36세에 망명길에 오르고 1986년, 62세의 초로의 나이로 되돌아왔다가 그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 세상을 하직하였는지 모른다. 이 몇구절로 쓰여진 글이 바로 중국조선족시인 주선우의 기구한 운명의 일대기이다. 
 
 
4. 시집 《잊을수 없는 녀인》의 의미
시인 주선우는 1957년 4월, 자기의 첫 시집이며 또한 건국후 조선족시단의 첫 개인서정시집인《잊을수 없는 녀인》을 연변교육출판사에 의해 출판하였다. 
 
주선우의 시집 《잊을수 없는 녀인》이 중국조선족시인이 건국후 첫 시집이라는것은 시인 본인에게 있어서뿐만이 아니라 당시 금방 첫걸음을 내디디기 시작한 우리의 전반 중국조선족문학의 각도에서 보아도 모두 매우 중요하고도 매우 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주선우시인 본인의 문학적이고 시적인 성숙을 의미하는것일뿐만이 아니라 전반 중국조선족시단의 새롭게 성숙되였다는것을 의미하는것으로서 오늘에 이르러 우리의 시단이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갖추었다는것을 표시하는것이기때문이다. 
 
백여년의 우리민족 이주사와 함께 하여온 중국조선족문학의 발전과정을 되집어보아도 매개 환절마다 중요한 표시가 있었다. 그것은 과정이주민족인 우리 중국조선족이 조선반도에 문학적근원을 두었지만 새로운 토양에서 새로운 삶을 살며 새로운 문학을 개척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기때문이다. 
 
중국조선족시문학의 정초자로서 리욱시인이 “8.15”해방후 개인서정시집을 발간하였는데 그것은 1947년에 발간한 시집 “북두성”과 1949년 1월에 발간한 시집 “북륜의 서정”으로 모두 1949년 10월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이전시기였다. 
 
건국이후, 바야흐로 신중국의 새로운 질서에 발맞추어 온 나라의 모든것이 신속하게 변화되고 있었고 이것은 우리의 중국조선족문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과정을 걸쳐 1957년에 이르러 비로소 개인서정시집이 처음 출간되였다는것은 우리의 시문학도 그만큼 안정기를 지나고나서 원만하게 새출발을 시작한다는것을 의미한다. 
 
1957년 4월, 주선우의 시집 《잊을수 없는 녀인》이 연변교육출판사에서 발간된데 이어 그해 8월에 김철의 시집 《변강의 마음》이 같은 연변교육출판사에서 발간되였다. 또한 같은 달 8월, 임효원의 시집 《진달래》가 북경의 민족출판사에서 출간되고 이어 9월에 리욱의 시집 《고향사람들》이 동일한 민족출판사에서 출간되였으며 또다시 12월에 리욱의 장편서사시 《연변의 노래》(한문)가 북경의 작가출판사에서 출간되였다. 건국후 7,8년간의 안정기를 원만하게 거치고나서 1957년에 이르러 이처럼 여러 시인의 개인시집이 한꺼번에 수두룩 쏟아져나온다는것은 류례가 없는 일이였다. 
 
그러나 건국후 첫 개인서정시집 《잊을수 없는 녀인》의 출간, 이것은 주선우시인 개인으로 볼때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였다. 1952년, 부대에서 돌아온 젊은 시인 주선우는 시창작에 혼신을 불태웠다. 그는 《동북조선인민보》, 《연변문예》, 《해란강》, 《연변일보》, 《아리랑》 등 신문, 잡지들에 서정시 “어머니의 부탁”(1954년), “궁전을 지을 때도”(1954년), “봄전투”(1954년), “무산령”(1954년), “대가정의 축배”(1955년), “가자!”(1955년), “파란 댕기”(1956년), “포성을 다시 울리지 말라”(1956년), “잊을수 없는 녀인”(1957년), “첫사랑”(1957년), “민화시 2수”(1957년), “이 세상 광명앞에서 부른 노래”(1957년) 등 시작품들을 줄기차게 지속적으로 발표하였다.
 
그의 이런 창작적성과들은 문단의 큰 인정을 받았는바 주선운시인은 1954년에 장시 “조국의 동켠에서”로  《동북조선인민보》 신춘문예우수작품평의 2등을 받은데 이어 1956년 8월25일에는 연변작가협회에서 펼친 1955년-1956년도 우수문학작품시상식에서 서정시 “대가정의 축배”가 수상하는 영광을 받아안았다. 
 
 
  1. 남은 과제
주선우시인의 시집 《잊을수 없는 녀인》에는 서정시 26수가 수록되였다. 이 시집의 주요한 주제적경향은 사랑과 생명의 가치 그리고 전쟁과 평화이다. 많은 경우 그의 시의 저변에 흐르는 정서적기조는 비장함과 락관적인데 이는 그의 시적추구와 관련이 있다. 
 
이에 대하여 주선우시인은 어느 좌담회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거대한 비장과 거대한 락관 이 두가지를 매개 시에 결합했습니다. 어떤 시에는 슬픔이 더 많고 어떤 시에는 기쁨이 더 많은데 이는 내 주인공이 죽었을 때는 슬픔이 더 많고 주인공이 살았을 때는 기쁨이 더 많은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시의 전반 빠뽀스는 락관적이며 죽음의 비애를 복수와 분노와 미래에 대한 승리로써 안받침하고있다고 생각합니다.”(1957년 3월, “작가, 시인, 평론가들의 친목좌담” 기록요지에서) 
 
이것은 시인의 직접적인 체험과 관련이 있다. 1944년 스무살의 나이에 군대에 가서 1952년 스물여덟살까지 옹근 8년간 군인으로 있으면서 조선전쟁이라는 가렬처절한 전투를 거치며 비발치는 총탄속에서 부상당하고 살아남은 그가 죽고 죽이는 전쟁의 참상을 너무나도 많이 목격하고 너무나도 많이 겪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대한 비장과 거대한 락관”이라는 이 극과 극의 표현이 시줄에 나타나지 않을수 없었다. 
 
이는 또한 우리 중국조선족문학에 결여되였던 전쟁문학이라는 한 장르의 개척을 시사해 주는것이 되기도 한다. 주선우시인은 “떡갈나무”, “영구화점”, “무산령” 같은 시편들에서 우리들에게 전쟁에서의 처절한 죽음과 그것을 뛰여넘는 승리에 대한 불타는 신념으로 그동안 만나지 못하였던 전쟁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펼쳐주었다. 전쟁에 직접 참가하고 그것을 시에 담아낸 작품이 우리 문학에 흔치 않았던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주선우시인과 그의 작품에서 생생한 형상으로 만날수 있기때문이다. 
 
그리고 “빨간 들창”, “중대의 약속”, “보초선에서”, “아름다운 밤”과 같은 시편들에서 우리는 “아기-처녀-사랑-어머니-생명”이라는 흐름을 읽게 되고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 목숨바쳐 싸우는 리유를 확인하게 된다. 이것이 전쟁문학의 가치이다. 
 
이른바 “전쟁문학(戰爭文學, war literature)”이란 전쟁을 소재로 한 문학으로 전쟁의 참상을 고발하고 진단하는 문학으로서 전쟁이라는 사건 자체 혹은 그와 련관된 부수적 사건들을 직접 소재로 삼아 담아낸다. 다시말해 전쟁을 소재로 해서 진정한 인간상과 참다운 진실을 부각시켜 전쟁이라는 현대적 병을 고발하고 진단하는 문학이라고 말할수 있다. 
 
이러한 전쟁문학에서는 전쟁이라는 극한상황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행위와 그로 인한 실존적 고민을 다루는 일, 이념의 차이가 어떻게 전쟁에서 구체적으로 반영되는가를 생각하는 일, 거대한 세력간의 구조적 마찰의 결과로 일어나는 전쟁이라는 사건과 그것을 수행하는 한 개인의 삶의 의미와의 상관성을 짚어 가는 일, 전쟁을 수행하면서 혹은 전쟁을 거친 뒤 인간은 어떠한 변화를 겪고 어떻게 현실에 적응하는가를 살피는 일 등이 다루어진다.
 
우리는 주선우시인의 시집 《잊을수 없는 녀인》에서 우리문학에서 이제껏 보기드물었던 전쟁문학의 표현과 의미을 찾아내여 우리 문학의 경지를 더욱 풍부하게 할수 있을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이제 풀어가야할 또 하나의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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