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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를 보면서 가슴을 정화하기
2016년 02월 19일 00시 48분  조회:4713  추천:0  작성자: 죽림
 
   
 
 
 

윤동주, 그는 28세에 사망했다. 그의 시는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라고 끝을 맺는다.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아름다운 시구를 만들어낸 젊은 시인은 1945년 해방 6개월 전에 사망했다. 1940년대 즈음하여 수많은 문학인이 변절했지만, 그는 일본 경찰에게 잡혀서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일제의 생체실험으로 인해 사망.

만주 북간도의 유복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경성의 연희전문학교를 다니고, 일본으로 유학해 영문학을 전공한 시인, 건장하고 잘생긴 외모, 완성도 높은 고뇌하는 감수성의 시, 생체실험당한 죽음, 이 모든 것들이 그의 짧은 삶에 호기심을 가지게 할 만한 요소이건만, 놀랍게도 윤동주가 영화화된 적은 없었다.

지난해 ‘사도’로 연출의 철학적 깊이를 증명해낸 이준익 감독이 윤동주의 삶을 영화화했다. ‘조류인간’과 ‘프랑스 영화처럼’ 등의 독립영화에서 문학과 영상의 만남을 독특한 작가적 시선으로 구현했던 신연식 감독이 각본을 썼다. 제작비는 6억원. 저예산 영화다. 영화 전편이 흑백이다.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윤동주의 흑백사진을 스크린으로 옮겨 놓았는데, 그 시절이 영롱하고 가슴 아프게 되살아난다.

수묵화를 보는 듯 여백의 미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영상과, 담백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가는 시가 보이스오버로 들리며 시각과 청각을 일깨운다. 아름답고 구슬픈 영화다. 배우 강하늘은 정갈하고 낭만적인 윤동주를 잘 그려낸다. 영화는 형무소에서 일본 경찰로부터 취조를 받는 윤동주가 1930년대에 문학인의 꿈을 꾸며 경성과 일본에서 활약했던 시기를 회상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에는 청년의 국가 상실로 인한 좌절감, 첫사랑의 설렘과 무뚝뚝한 표현, 하늘과 별을 보고 바람을 느끼며 시를 쓰던 감성, 끝내 굴복할 수 없었던 의지가 하나하나 그림처럼 펼쳐진다.

커다란 플롯 줄기는 함께 나고 자란 친구이자 사촌 사이인 윤동주와 송몽규의 짧고 굴곡진 청년기를 따라간다. 이름도, 언어도, 꿈도 허락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에 동갑내기 사촌 동주(강하늘)와 몽규(박정민)는 한집에서 태어나고 자란다. 시인을 꿈꾸는 청년 동주에게 신념을 위해 거침없이 행동하는 청년 몽규는 가장 가까운 벗이면서도 넘기 힘든 산처럼 느껴진다. 두 사람은 창씨개명을 강요하는 혼란스러운 나라를 떠나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일본으로 건너간 뒤 몽규는 더욱 독립운동에 매진하게 되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시를 쓰며 시대의 비극을 아파하던 동주와의 갈등은 점점 깊어진다.

둘은 다른 성정을 가졌다. 가장 친한 친구이면서도 동주의 지적 열등감을 자극하곤 하는 몽규는 행동하는 청년이다. 이에 비해 동주는 아픔을 삭이고 내면화하며 이를 시적 언어로 창조해낸다. 행동하는 혁명가 몽규와 고뇌하는 예술가 동주는 부딪히고, 논쟁을 벌이고, 또 서로를 북돋우며 더 큰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그들의 꿈과 이상, 젊음은 파시즘 제국주의에 의해 파괴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나 이는 역사 속 한 에피소드만이 아니다. 현재에 어떤 특정 과거를 소환하는 것은, 현재가 그 과거를 다시 곱씹어봐야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흔적은 현재에 만연한 부정의를 낳은 씨앗이다. ‘서시’의 아름다운 청년 시인으로만 남기에 윤동주는 너무도 훌륭한 인간이었다. 앞장서 독립군 투사가 되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압제에 절대 굴복하지 않았고, 조선말과 고유의 민족성을 지켜내기 위해 펜을 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념을 보여주었다.

이 야만의 시대에 윤동주 신드롬이 거세게 불길 바란다. 영화적으로도 ‘동주’는 뛰어나다. 한 인물의 전기를 시간순으로 평범하게 기록하지 않고, 취조와 추리, 형무소와 도시를 오가는 공간 배치, 회상 구조를 통한 시간 재구성, 일본 경찰과 주고받는 논쟁, 단서를 알리는 장면의 재배치 등 플롯 상에서 서스펜스가 생겨나며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모두가 다 아는 저항시인의 삶은 영상언어로 아름답게 채색되었다.

‘사도’와 ‘동주’를 거치면서 이준익 감독은 대중적 취향의 영화감독을 넘어 예술작가적 감독 위치에 우뚝 선다. ‘쎄시봉’에서 윤동주와 육촌 간인 윤형주를 연기했던 강하늘의 동주 역할은 묘한 인연이다. 담백한 목소리, 떨리는 표정과 분노의 얼굴을 오가는 연기를 해내는 강하늘은 좋은 연기자로 성장하고 있다.

불공정 스크린 독점 현상으로 인해 이 좋은 영화가 많은 스크린 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꼭 봤으면 한다. 오락물의 홍수 속에서,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정화되는 느낌, 그것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민아 영화평론가·한신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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