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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기-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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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우표에서 공부하기
2016년 03월 22일 06시 52분  조회:7137  추천:0  작성자: 죽림
우표로 본 인물과 력사

1) 2) 3)

 

1) 1775 - 프랑스의 장군, 화가 르죈(Lejeune, Louis-Francois) 출생

르죈 [Lejeune, Louis-Francois, 1775.2.3~1848.2.29]

프랑스의 장군·화가.

미술매체로서 석판화를 프랑스에 소개한 석판화가이다. 나폴레옹의 전투에 많이 참가했으며 주로 현장 스케치나

습작을 기초로 완성한 박력있는 전쟁화를 크게 유행시켰다.1806년에 뮌헨에 종군하며 그곳에서 석판인쇄술의 발명가

알로이스 세네펠더의 공방을 방문하고 감동하여, 유명한 작품 〈코사크 Cosaque〉를 석판에 그린 후

즉시 100판을 찍었는데, 그중 1장을 후에 나폴레옹에게 선사했다. 르죈은 풍경화와 초상화도 많이 그렸다.

1837년 국립 미술학교의 교장이자 툴루즈 박물관의 관장이 되었다.

 

2) 1807 - 미국의 남북전쟁 때 남군의 장군 존스턴(Johnston, Joseph E.) 출생

존스턴 [Johnston, Joseph E(ggleston), 1807.2.3~1891.3.21]

조지프 E. 존스턴(Joseph Eggleston Johnston, 1807년 2월 3일 ~1891년 3월 21일)는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남군의 장군이다.1829년 미국 뉴욕 주의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남북 전쟁이 발발하자 고향 버지니아 주로 내려갔다. 1861년 5월 셰넌도어 강 남군 여단장 직을 받아 1861년 7월 제1차 불런 전투에서 최초의 승리를

거두었다.그러나, 남부 연합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와도 잦은 갈등을 빚었고 1862년 4월에는 반도 회전 당시 수도 리치먼드를 지키기 위해 후퇴했다. 그러나 세븐파인스 전투 에서 중상을 입어 로버트 E. 리 장군이 그를 대신했다. 1863년에는 빅스버그 전투에서 존 C. 펨버턴 장군을 구출하지 못해 1863년 7월 4일 빅스버그가 북군에게 함락되면서 패배했고

북군이 조지아 주 애틀란타로 진격하자 12월에 테네시 강 지구 군대를 맡았다.

1865년 2월 복직되어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군대를 지휘해 3월에 벤턴빌 전투에서 윌리엄 T. 셔먼을 격퇴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피터즈버그 회전에서 로버트 E. 리 장군과 만나는데 실패해 마침내 1865년 4월 26일 노스캐롤라이나 주

더럼 역에서 셔먼에게 항복했다. 그 뒤 회고록을 저술하며 생활하다 1879년 ~ 1891년에는 하원 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1885년에는 미국 철도청장으로 임명되었다.

 

3) 1842- 미국의 시인 러니어(Lanier, Sidney) 출생

러니어 [Lanier, Sidney, 1842.2.3~1881.9.7]

미국 시인.

조지아주() 출생. 19세기 후반기 남부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1860년 굴소프대학교를 졸업하고, 곧 남군에 입대하여

남북전쟁에 참가하였다. 1864년 북군에 잡혀 포로생활을 한 것이 원인이 되어 평생 동안 폐결핵에 시달렸다.

남북전쟁을 다룬 소설 《참나리 Tiger-Lilies》(1867)를 발표했으나 주목을 끌지 못하였다. 볼티모어의 피보리

관현악단에서 플루트 연주자 등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면서 시와 음악에 힘써 《시집 Poems》(1887)을 비롯한 작품이 인정받아, 1879년 존스홉킨스대학교의 영문학 강사가 되었다. 그의 시는 E.A.포와 흡사한 기교의 정수()를 보였고, 음악미()의 추구와 더불어 종교적 심정을 노래하였다. 그의 평론도 포의 ?되袖? 받아 과학적인 분석을 발휘하였다. 대학 강의를 토대로 한 《영시()의 과학 The Science of English Verse》(1880), 그가 죽은 후에 나온

《영국 소설 The English Novel》(1883) 《셰익스피어와 그 선구자 Shakespeare and His Forerunners》(1902) 등이

1945년에 전10권의 전집으로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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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87 - 오스트리아 시인 트라클(Trakl, Georg) 출생

트라클 [Trakl, Georg, 1887.2.3~1914.11.3]

오스트리아의 표현주의 시인.

개인적으로 겪은 고통과 전쟁의 경험을 작품에 표현해, 퇴락과 죽음을 노래한 오스트리아 최고의 애가(哀歌)

작가가 되었다. 그의 시는 제1·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의 시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소극적이고 침울한 성격의 트라클은 철물상의 아들로 태어나 1908~10년에 빈대학교에서 약학을 공부했다. 1913년경

상습적인 약물중독자였던 것으로 보아 약학을 공부한 이유는 마취제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를 사로잡고 있던 다른 강박관념은 누이동생 그레테에 대한 비정상적인 애정과 방랑벽이었다. 한 잡지사 발행인과,

유산 가운데 일부를 몰래 그에게 준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후원에 힘입어 트라클은 시를 쓰는 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1913년에 첫번째 시집을 내놓았고, 이듬해 군 의무대의 중위가 되어 갈리시아에서 중상을 입은 90여 명의

병사들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단순히 약만 조제해주는 약제사에 불과한 그로서는 이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없었다.

그는 한 환자가 자살하는 것을 무기력하게 바라보았고, 또 탈영병들이 교수형을 당하는 것도 보았다.

이러한 공포를 경험한 뒤 그 여파로 자살을 기도해 크라쿠프에 있는 군병원으로 이송되어 감시를 받다가, 거기서 코카인 과다복용으로 죽었다. 그는 부주의하게 코카인을 복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렬한 힘을 지닌 그의 서정시는 현재에 대한 한탄 속에서도 목가적인 과거의 훌륭했던 정신에 대한 동경과 거듭나고자 하는 열망이 전편에 넘쳐 흐르고 있다.

그는 또 반복해서 나타나는 이미지를 통해 '외로운 하늘을 맞대는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루시아 겟시가 영역한 그의 시선집이 1973년에 출판되었다.

 

2) 1884 - 미국의 공군장교 앤드루스(Andrews, Frank M.) 출생

앤드루스 [Andrews, Frank M(axwell), 1884.2.3~1943.5.3]

미국의 공군 장교.

미국 최초의 독자적 공습부대인 공군 총사령부를 지휘하는 동안(1935~39) 미국 폭격기를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06년에 뉴욕 주 웨스트포인트에 있는 미국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기병대 장교로 임관하여 필리핀과 하와이에서 복무하다가 1917년에 창설된 공군으로 전속하여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는 중령까지 진급했다.

그는 여러 부서에서 일상적인 업무를 맡고 있다가, 1935년에 창설된 공군 총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전략적 공군력을 단호하면서도 온건하게 주장한 앤드루스는 보잉 B-17 폭격기를 개발한 인물로 유명하다. 그의 통솔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위력을 떨친 육군 항공대의 본보기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앤드루스는 카리브 해 지역 공군 사령관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카리브 해 방위 사령부 사령관으로서 공군으로는 처음으로 전역(戰域) 전체를 지휘하게 되었다. 1941년에 중장으로 진급했으며, 1943년 2월에 북아프리카 지역 연합군 사령관으로 전임된 드와이트 D.아이젠하워 장군의 후임으로 유럽 지역 주둔 미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는데, 3개월 뒤에 공중충돌사고로 죽었다.

 

3) 1889 - 덴마크의 영화감독 드라이어(Dreyer, Carl Theodor) 출생

드라이어 [Dreyer, Carl Theodor, 1889.2.3∼1968.3.20]

덴마크의 영화감독.

코펜하겐 출생. 저널리스트를 거쳐 1913년 각본가로서 노르디스크사(社)에 입사, 1918년 《재판장》에서 감독을 맡았다. D.W. 그리피스 감독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배신행위를 묘사한 《사탄의 일기 몇 쪽(1919)》을 촬영하였다.

그 후 《목사의 미망인(1920)》을 스웨덴에서 촬영하였고, 《미하엘(1924)》은 독일에서, 《주인(1925)》은 덴마크로

돌아와서, 《재판받는 잔(1928)》은 프랑스에서, 첫 토키 작품인 《흡혈귀(1932)》는 독일과 프랑스에서 촬영하는 등 국제적으로 활동하였다. 잔 다르크의 고뇌와 순교의 의의를 클로즈업하여 그녀의 내면을 파헤치듯이 묘사한 《재판받는 잔》은 <무성영화 최후의 걸작>으로 일컬어진다. 또한 마녀사냥에 희생되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17세기의 사회를 정신사적으로 재현한 《분노의 날(1944)》, 미치광이로 여긴 남자의 기도로 한 여성이 죽음에서 소생하는 《기적》 등,

인간정신의 영위, 특히 신앙에 대해 탐구한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그는 독일의 <실내극>, 프랑스의 <아방가르드 영화> 등의 영향을 흡수하면서 스타일을 모색하였지만, 시종일관 <정확한 세트>와 단역에 이르기까지의 출연자의 <얼굴>을 중시하고, 관객에게 영상의 세부적인 뉘앙스까지 느낄 수 있도록 긴장된 화면을 구성하였다. 《흡혈귀》 다음 12년만에 감독한 장편 《분노의 날》부터는 1신=1커트의 느린 촬영, 카메라와 배우의 극단적인 완만한 움직임에 의해 <신비성>이 감돌게 하는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하였다. 10여 편의 단편도 제작하였는데, 그 중 교통안전 캠페인을

내용으로 한 《그들은 페리를 탈 수 있었다(1948)》가 유명하다. 그리스도를 소재로 한 영화를 준비하던 중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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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736 - 오스트리아 작곡가, 오르간연주자 알브레히츠베르거(Albrechtsberger, Johann Georg) 출생

알브레히츠베르거 [Albrechtsberger, Johann Georg, 1736.2.3~1809.3.7]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오르간 연주자, 음악이론가.

대위법에 관한 한 그 시대의 가장 박식하고 숙련된 작곡가의 한 사람이었다. 그의 명성 때문에 베토벤을 포함한

많은 제자들이 그에게로 몰려들었다.레오폴트 피트너에게 오르간과 계속저음을 배웠으며 1755~66년 오르간 연주자로 여러 직책을 거쳤다. 1772년 빈에서 보조 궁정 오르간 연주자가 되었으며 1792년부터는 장크트 스테파누스 대성당의 음악감독으로 일했다. 250여 곡 되는 대부분의 작품들은 원본이 남아 있다. 작품으로는 26곡의 미사곡, 12곡의 현악 4중주, 하프 협주곡과 다수의 종교음악, 실내음악이 있으며 이론서로는 〈작곡의 기초 Gründliche Anweisung zur Composition〉(1790)가 있다. 그의 이론적 저술들은 제자인 이그나츠 리터 쿠사버 폰 자이프리트에 의해 1826년 3권의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의 작품들에서 선정한 발췌곡들은 〈오스트리아 음악 예술의 기념작들 Denkmäler der Tonkunst in Österreich〉(16권 2호, 1909)에 실려 있다.

 

2) 1821 - 영국 태생 미국의 의사 블랙웰(Blackwell, Elizabeth) 출생

블랙웰 [Blackwell, Elizabeth, 1821.2.3~1910.5.31]

영국 태생 미국의 의사.

현대 의학계 최초의 여의사로 간주된다. 그녀는 미국 의과대학에서 최초로 의사자격을 받은 여성으로, 1849년 뉴욕의

제네바의과대학(호바트대학의 전신)을 졸업했다.

그녀의 가족은 1832년에 뉴욕으로 이민했다. 1838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녀와 여동생은 여학교를 세워 가족을 부양했다. 그녀는 의학서적을 읽으면서 의학공부를 시작했고, 나중에는 찰스턴의과대학의 새뮤얼 H. 딕슨에게 개인적으로 지도를 받았다. 뉴욕과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의과대학에서는 정식 수업을 받고자 하는 그녀의 지원서를 수락하지 않았고, 1847년에야 제네바의과대학에서 그녀의 지원서를 받아들였다. 그녀는 동료들의 따돌림과 사회적 냉대로 고통당했으나 1849년에 학과 수석으로 졸업했다. 런던의 성바르솔로뮤 병원에서 수련을 받은 뒤에 뉴욕 시에서 개업했고,

1857년에는 그곳에서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여자 직원만을 고용해 뉴욕 진료소라는 병원을 건립했다. 나중에 그곳에

여성들을 위한 의학교육의 전과정을 개설했다. 1869년 그녀는 영국으로 가서 런던여자의과대학을 설립했다.

 

3) 1811 - 미국의 언론인 그릴리(Greeley, Horace) 출생

그릴리 [Greeley, Horace, 1811.2.3~1872.11.29]

미국의 언론인.

뉴햄프셔주() 에머스트 출생. 빈농 집안에서 태어나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였다. 25세 때 뉴욕에 와서 인쇄공을 거쳐

인쇄공장 경영자가 되었다. 1834년에 문학잡지인 《뉴요커 New Yorker》의 편집주간이 되었고, 열렬한 애국심에 불타 공화당 창당에 가담하여 정치적인 캠페인을 벌이기 위하여 별도로 2종류의 주간지를 발간하였다. 1841년 4월에는 정치·교육 등의 개혁, 경제발전 및 대중의 지식 향상을 목표로 한 일간지 《뉴욕 트리뷴 New York Tribune》을 창간했고,

그의 논설은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정치적으로는 F.M.푸리에와 같은 공상적 사회주의자였으나, 급진적인 개혁을 배제하는 온건파이기도 하였다.

또한 노예제도의 폐지를 강력히 호소하여 1860년에는 링컨의 대통령 출마를 지지하였다. 1872년에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부채만 남기고 낙선하여 실의 속에 죽었다. 그의 명확한 언동과 강인한 신념은 미국 언론사상 최고의

논설기자라는 평을 들었다.

 

1898 - 핀란드의 건축가 알토(Aalto, Alvar) 출생

알토 [Aalto, (Hugo) Alvar (Henrik), 1898.2.3~1976.5.11]

핀란드의 건축가, 디자이너.

헬싱키 공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30세의 젊은 나이로 설계대회에서 수석을 차지하게 한 파이미오의 사나토리움(1929∼1933)은, 기능주의의 보기 드문 결실로서 유럽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다.핀란드에 단순히 합리주의를 옮겼을 뿐만 아니라, 그의 조형에는 자기 나라의 풍토와 전통이 스며 있었다. 이를테면, 1928∼1929년의 작품인 마이레아장()에는 핀란드 특산의 목재가 교묘하게 쓰였으며, 인간적인 정감이 우러나 있고, 특히 목재 커브의 아름다움은 신선하다. 이 밖에 파리 만국박람회의 핀란드관(1937) 등이

유명하다. 합판의 사용과 표준가구의 설계 등 가구 공예에도 새로운 면을 열어놓았다.

 

1873 - 영국의 공군장교, 원수 트렌차드(Trenchard, Hugh Montague) 출생

트렌차드 [Trenchard, Hugh Montague, 1873.2.3~1956.2.10]

영국군 장교·공군원수.

영국 공군의 기초를 다지는 데 이바지했다. 1893년 군에 입대해 남아프리카 전쟁에 참전했으며, 나중에는 나이지리아에서 복무했다. 1912년 부상당해 송환된 후 비행술을 배워 1913년 윌트셔 어퍼번에 있는 중앙비행학교의 부교장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중인 1915년 당시 영국 육군의 한 부문이었던 영국 비행대의 프랑스 주둔 부대 지휘관을 맡았다.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끊임없는 공격을 감행한 그의 작전은 영국 공군의 표준원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918년 1월 영국 공군 제1참모장이 되었으나 그해 4월 사임했다. 뒤이어 같은 해에 독일의 목표물을 공습하기 위해 영국 공군의 중폭격기로 구성된 부대인 연합국 독립폭격대를 조직했다.

1919년 국방장관 윈스턴 처칠에 의해 영국 공군 참모총장에 임명되었다. 재임시에 공군 장교 후보생과 참모장교를 위한 대학을 설립하고, 단기복무제도를 도입해 훈련된 예비역 장교를 양성하는 등 영국 공군력을 강화시켰다. 1927년 영국

공군의 초대 원수가 될 때까지 공군 참모총장으로 있다가 1929년 전역했다. 1931~35년 런던 시 경찰국장, 1936~53년

유나이티드아프리카컴퍼니 사장을 지냈다. 1919년 준남작훈위를 받고 1930년 남작이 되었으며, 1936년 자작이 되었다.

1918년 바스 훈장을 받았다.

 

1859 - 독일의 항공학자, 항공기제작자 융커스(Junkers, Hugo) 출생

융커스 [Junkers, Hugo, 1859.2.3~1935.2.3]

독일 항공학자·비행기제작자.

프로이센 출생. 1889년부터 데사우에서 열기관과 목욕용 가스가열기 등을 제작했다. 1897년 아헨공과대학 교수가 되어 낮은날개식과 전금속제(全金屬製)비행기를 착상했다. 제1차세계대전중 1915년에 그 구상에 따라 전투기를 시험제작했으나, 목제골격날개에 천을 씌운 기체에 익숙한 조종사들이 조종성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장갑지상공격기(裝甲地上攻擊機)로서 별로 많지 않은 대수가 생산되었을 뿐이었다. 전후에는 같은 방식의 민간수송기를 생산했는데, 두랄루민을 사용한 튼튼한 구조로 인해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융커스의 이념이 살려진 근대식 비행기가 만들어진 것은 1930년대의 미국에서였다. 융커스의 물결모양의 외피판을 평활하게 개량하고 가느다란 골격을 부착하여 부하를 감소시킨 세미모노코크(semimonocoque)구조가 발달되어 전금속제 비행기가 일반화되었고

형태도 구조적으로 유리한 낮은날개식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809 - 독일의 작곡가, 지휘자, 피아니스트 멘델스존(Mendelssohn, Felix) 출생

멘델스존 [Mendelssohn-Bartholdy, (Jacob Ludwig) Felix, 1809.2.3~1847.11.4]

독일의 작곡가 ·지휘자 ·피아니스트.

함부르크주 출생. 아버지는 유대계 은행가, 조부는 유명한 계몽주의 철학자 M.멘델스존이다. 교양 있는 어머니와

일생 동안 두터운 애정으로 지낸 누이 파니 등에 둘러싸여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11년 가족과 함께 베를린으로 이사,

일찍부터 음악교육을 받아 여러 악기를 다루게 되었고 그림 ·어학에도 재능을 발휘하였다. 괴테와 절친한 보수적 음악가 F.첼터의 지도도 받았다. 9세 때 피아니스트로 데뷔하고, 10세 때 작곡을 시작, 17세 때 관현악곡 《한 여름밤의 꿈》의 서곡을 쓰는 등 매우 조숙한 천재였다. 18세 무렵 베를린대학 청강생으로 헤겔의 미학 강의도 듣고 또 멘델스존가()

음악회에 모이는 베를린의 지식인들과도 교제하게 되었다.

1829년 베를린의 징 아카데미에서 J.S.바흐가 죽은 후 처음으로 그의 《마태오 수난곡》을 재연하였는데, 이것은 바흐 르네상스의 개막을 위한 19세기의 기념비적 연주로 높이 평가된다. 그 후 영국과 유럽 각지를 연주여행하였으며, 스코틀랜드에서의 경험이 명작 《핑갈의 동굴》(1830) 《이탈리아교향곡》(1833) 《스코틀랜드교향곡》(1842) 등을 낳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 여행 중에 쇼팽, 리스트, 로시니, 베를리오즈 등 여러 작곡가들과 알게 되고 많은 악상()도 얻었다.

1833년 남()라인음악제를 지휘하고 뒤셀도르프시의 악단장, 1835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관현악단 지휘자가 되어 고금의 명곡과 신작을 소개하는 데 진력, 유럽 제1급의 악단으로 키웠다. 1841년 프로이센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명으로 베를린의 음악활동 향상을 위해 힘쓰고, 1843년 슈만과 함께 라이프치히음악학교를 설립하였다.

그의 일생은 짧았으나, 고전주의 낭만파 음악의 대작곡가라는 명성과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주요작품으로 관현악곡 《이탈리아교향곡》(1833) 《스코틀랜드교향곡》(1842), 서곡 《핑갈의 동굴》(1830), 협주곡 《바이올린협주곡》(1844) 《카프리초 브릴란드》, 피아노곡집 《무언가()》(48곡, 1829~1845) 《엄숙한 변주곡》(1841), 오르간곡 소나타 6곡, 전주곡과 푸카 3곡, 오라토리오 《성파울로》(1836) 《찬미의 노래》(1840) 《에리야》(1846) 등,

극음악() 《한 여름밤의 꿈》(서곡 1824, 기타 부분 1842) 《안티고네》(1840) 외에 합창곡 ·독창곡 등이 있다.

 

1795 - 라틴아메리카의 독립운동 지도자 수크레(Sucre, Antonio José de) 출생

수크레 [Sucre, Antonio José de, 1795.2.3~1830.6.4]

에콰도르의 해방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벌인 라틴 아메리카 독립전쟁에서 가장 존경받던 지도자였다.

15세 때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군사전술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으며, 26세 때는

스페인에 대한 라틴아메리카의 항전에서 베네수엘라 지도자가 되었다. 시몬 볼리바르는 수크레를 장군으로 임명해

그란콜롬비아 남부(지금의 에콰도르)를 스페인으로부터 해방시키려 했다. 수크레는 콜롬비아를 떠나 해안을 따라 과야킬로 진군하면서 그 지역을 콜롬비아 보호지역으로 선포했다. 이어 해발 3,000m나 되는 키토로 계속 진군해 1822년 5월 21일 그곳에서 스페인 왕실군을 격파했다. 그뒤 남동쪽으로 진군하면서 볼리바르의 지원과 5,800여 명의 병력으로 콜롬비아의 후닌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승리했으며(1824. 8), 페루의 아야쿠초에서 9,000여 명의 왕실군을 무찌름으로써

스페인 부왕(副王)이 페루에서 군대를 철수하도록 만들었다. 1825년초 볼리바르로부터 상(上)페루(지금의 볼리비아)의 차르카스에 남아 있던 일부 저항세력을 내쫓으라는 지시를 받고 이 임무를 완수했다.

수크레는 볼리바르가 작성한 복잡한 헌법에 따라 볼리비아 정부를 세우고 자신은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은 종신직으로 규정되었으나 에콰도르로 돌아갈 것을 열망했던 그는 단 2년 간 만 그 자리를 맡기도 했다. 그는 볼리비아에 안정된 정부를 세우고자 노력했지만 곧 여러 정파의 공격목표가 되었다. 1828년 추키사카 지방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페루 군대가

볼리비아를 침공하자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 에콰도르로 돌아갔다. 그러나 수크레는 다시 요청을 받아 1829년 페루

군대를 물리치고 그란콜롬비아를 지켜냈다. 그는 또 이듬해 보고타에서 열린 '존경받는 의회'를 주재(主宰)했다. 이는 에콰도르·콜롬비아·베네수엘라의 통일·단결을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노력이었으나 결국 실패했다. 수크레는 이 회의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암살되었다. 암살자들은 콜롬비아의 군인이자 볼리바르의 정적(政敵)인

호세 마리아 오반도의 앞잡이라는 소문이 있었지만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 공룡 학자 맨텔, 주문형 엽서 (공룡우표마니아 엄원용 님 자료 제공)

 

1790 - 영국의 지질학자, 고생물학자 맨텔(Mantell, Gideon A.) 출생

맨텔 [Mantell, Gideon Algernon, 1790.2.3~1852.11.10]

영국의 의사·지질학자·고생물학자.

그의 생존중에 알려져 있던 총 5속(屬)의 공룡 중 4속의 공룡을 발견했다. 맨텔은 특히 서식스의 중생대(약 6,500만~2억 2,500만 년 전)의 고생물을 연구했는데, 이 지역은 그의 지질학적인 발견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백악기(6,500만~1억 3,600만 년 전)의 윌드통(統)이 담수(淡水) 기원임을 규명했으며, 윌드통에서 이구아노돈(Iguanodon)·힐라에오사우루스(Hylaeosaurus)·펠로로사우루스(Pelorosaurus)·레그노사우루스(Regnosaurus)로 알려진 놀랄 만한 공룡 파충류를 발견했다. 또한 그는 트라이아스기(1억 9,000만~2억 2,500만 년 전)에 암석으로부터 파충류의 한 종인 텔레르페톤 엘기넨세(Telerpeton elginense)를 기재했다. 맨텔의 주요저서로는 〈남부 다운스 지방의 화석들 또는 서식스 지방의 지질학적 현상들 The Fossils of the South Downs, or Illustrations of the Geology of Sussex〉(1822)·〈창조의 신성함 Medals of Creation〉(1844) 등이 있다.

 

1468 - 독일의 활판인쇄술 발명자 구텐베르크(Gutenberg, Johannes) 사망

구텐베르크 [Gutenberg, Johannes, c.1397(1400)~1468.2.3]

1468년 2월 3일 활판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가 사망했다. 구텐베르크는 독일 마인츠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금속세공기술을 익히다가 1438년부터 인쇄술 발명에 몰두했다. 그는 돈 많은 재정가 요한 푸스트로부터 돈을 빌려 발명품을 완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푸스트와의 불화, 동업 실패, 소송에서의 패배 등으로 42행 성서인 <구텐베르크 성서>

활자와 <시편> 활자, 그리고 모든 인쇄설비의 관리권을 빼앗겼다. 푸스트는 재판에서 구텐베르크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페터 쇠퍼의 도움으로 인쇄를 계속했으며, 1457년 8월 14일 <시편>이 완성되어 마인츠에서 발행되었다. 크게 파산한 구텐베르크는 말년에 거의 실명 지경에까지 이르렀다고 전한다. 그가 발명한 활판인쇄술은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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