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kim631217sjz 블로그홈 | 로그인
시지기-죽림
<< 9월 2024 >>
1234567
891011121314
15161718192021
22232425262728
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블로그문서카테고리 -> 문학

나의카테고리 : 文人 지구촌

황동규 - 즐거운 편지
2016년 05월 01일 18시 44분  조회:4341  추천:0  작성자: 죽림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일러스트=잠산

황동규 시인은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는다. 반 세기 동안이나 그는 우리말을 정갈하게 빚었고 우리말의 숨결을 세세하게 보살펴 고아(高雅)하게 했다. 놀랍게도 ‘즐거운 편지’는 황동규 시인이 1958년 ‘현대문학’에 발표한 그의 데뷔작이다. 영화 ‘기쁜 우리 젊은 날’과 ‘편지’ 등에서 낭송되어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이 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의 원 제목도 ‘즐거운 편지’였다고 한다. 이제 이 시는 한국인의 애송시가 되었다. 만남과 이별의 회전 속도가 이처럼 빠른 시대에 이 시는 왜 여전히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가. 왜 여전히 막막하게 하는가. 헤어져 돌아가던 옛사랑의 뒷모습을 보게 하는가.

하늘이 먹먹하게 어두워지고 주먹눈이 막 내리는 날이면 어디 먼 산골이나 바닷가 민박집에라도 가고 싶어진다. 작은 넝쿨에 말라붙는 붉은 열매 같은 눈빛을 하고서 눈이 내리는 그 시간을 살고 싶어진다. 눈이 그치면 순백의 설원과 설원 위를 유행(遊行)하는 바람의 노래를 듣고 싶어진다. 그리고 멀리 두고 온 사람을 ‘가까스로’ 떠올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적막한 시간에 나를 선택하지 않은 사랑을 떠올리는 일은 아주 사소한 일이 될 것이다.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이 될 것이다. 너무 사소하여서 손을 놓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할 것이다. 너무 사소하여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그렇게 이 세상에서 잊혀진 듯 살 것이다. 폭설에 갇힌 순한 산짐승처럼 우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그대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이별의 말은 나의 가슴에서 깨끗하게 씻어낼 것이다. 겨울 하늘에 뜬 달이 천강(千江)을 비추어도 그대는 나를 생각하지 말라. 그대가 나의 사랑을 다시 받아 안는 날이 와도 내가 아직 저 산골짜기 깊은 산막에서 그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하는 그런 아주 짧은 후일에도 그대는 나를 생각하지 말라.

[문태준 시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2283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1523 詩의 꽃을 피우기 위해 詩의 씨앗이 있어야... 2016-06-20 0 4157
1522 미국 시인 - 에드가 엘렌 포우 2016-06-19 0 4241
1521 詩적 령감은 땀흘려 찾는 자의 몫 2016-06-19 0 3997
1520 독자들도 알파고의 수를 해독해야 하는가... 2016-06-19 0 4548
1519 [한여름속 밤중 詩]- 한둬서넛댓바구니 2016-06-17 0 4615
1518 詩를 잘쓰는데 지름길은 절대 있다? 없다! 2016-06-17 0 3724
1517 詩人은 별의 언어를 옮겨쓰는 세계의 隱者(은자) 2016-06-15 0 3478
1516 영원한 청년 시인 - 윤동주 2016-06-14 0 3983
1515 詩의 형식은 정형화된 법칙은 없다... 2016-06-14 0 3727
1514 정지용, 윤동주, 김영랑을 만나다 2016-06-13 0 4363
1513 정지용과 윤동주 2016-06-13 0 3686
1512 詩作은 언어와의 싸움... 2016-06-13 0 3776
1511 詩集이 성공한 요인 8가지 2016-06-11 0 3563
1510 詩人은 쉬운 詩를 쓰려고 노력해야... 2016-06-10 0 3681
1509 詩는 남에게 하는 대화 2016-06-10 0 3279
1508 <저녁> 시모음 2016-06-10 0 3694
1507 留魂之 碑 / <자기 비움> 시모음 2016-06-10 0 3464
1506 정끝별 시모음 2016-06-10 0 4147
1505 [무더위 쏟아지는 아침, 詩] - 한바구니 2016-06-10 0 3867
1504 詩는 독자들에게 읽는 즐거움을... 2016-06-08 0 3391
1503 정지용 <<향수>> 노래 2016-06-07 0 3639
1502 삶 쪽에 력점을 두는 詩를 쓰라... 2016-06-07 0 3696
1501 생명력 있는 詩를 쓰려면... 2016-06-06 0 3333
1500 <전쟁>특집 시모음 2016-06-05 0 4345
1499 詩제목은 그냥 약간 웃는체, 보는체, 마는체 하는것도... 2016-06-05 0 3567
1498 360도와 1도 2016-06-04 0 3632
1497 詩의 제목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시켜야... 2016-06-03 0 4394
1496 詩作을 많이 習作해야... 2016-06-03 0 3620
1495 詩의 제목은 참신하고 조화로워야... 2016-06-02 0 4006
1494 원작이 무시무시한 괴물이라면 번역도 괴물이 돼야... 2016-06-02 0 3868
1493 창작은 악보, 번역은 연주 2016-06-02 0 4216
1492 별들의 바탕은 어떤 색갈?!... 2016-06-01 0 3961
1491 찢어진것만 보아도 흥분한다는... 2016-06-01 0 3898
1490 소파 방정환 "어린이 날 선언문" 2016-05-30 0 7106
1489 <어른> 시모음 2016-05-30 0 3954
1488 문구멍으로 기웃기웃..."거, 누구요?" "달빛예요" 2016-05-30 0 4574
1487 詩人은 예리한 통찰력이 있어야... 2016-05-30 0 5453
1486 詩의 묵은 덩굴을 헤쳐보니... 2016-05-30 0 3811
1485 <단추> 시모음 2016-05-30 0 3857
1484 [벌써 유월?!~ 詩 한바구니]- 유월 2016-05-30 0 3793
‹처음  이전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