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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이 낳은 걸출한 서정시인 ㅡ 윤동주
2016년 09월 30일 00시 22분  조회:4179  추천:0  작성자: 죽림

연변이 낳은 걸출한 서정시인 윤동주 
                                                        ///연변대학 교수 김 호 웅 


우리 중국조선족의 저명한 평론가 정판룡 선생이 말씀하신 것처럼 “윤동주는 우리 중국
조선족이 낳은 가장 자랑스러운 아들의 하나”입니다. 만일 지금도 살아 계셨더라면 여기 
앉은 여러분들의 할아버지 또는 증조 할아버지 벌수가 되는 분입니다. 
윤동주님은 “하늘과 바람과 별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윤동주님의 
시에는 일제 폭압에 대한 저항정신이 담겨져 있고 또 순결하고 아름다운 감정이 담겨있습
니다. 윤동주님의 시는 중국조선족의 역사에서 가장 암흑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었던 1930
년대 말부터 광복 전 까지 집중적으로 우리 민족이 겪은 정신적 시련과 고통이 반영되어있
습니다. 윤동주님의 결백한 지조는 바로 암흑기 중구조선족인민들의 정서의 집중적인 표현
입니다. 그 당시 영화처럼 타오르던 중국조선족의 항일무장 투쟁은 1930년대 중반 이후로
부터 일제의 잔혹한 탄압으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고, 항일무장 대오는 대부분 해산되거
나 소련으로 전입하거나 지하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었으므로 윤동주 시인으로서
는 처절한 민족의 고뇌와 절규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귀중한 시간을 빌어서 윤동주님과 우리 연변의 관계 그리고 윤동주님의 시
의 본질에 대해서만 중점적으로 얘기를 하겠습니다. 

一, 연변에서의 윤동주 시문학의 전파 

윤동주님의 시는 심지어 일본에서까지 교과서에 오르고 있는데, 그의 고향인 연변지역에
서는 냉전 체제 속에서 한국, 일본과 격리된 상황 속에서 살아왔기에 시인으로서의 윤동
주님의 존재를 오래 동안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윤동주의 존재를 제일
처음으로 연변에 알려준 분은 우리 민족이 아닌 일본인이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 일본 와세다대학의 오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가 처음으로 연변에 윤동
주님을 소개했습니다. 이 분은 선후로 연변 사람들에게 잊혀 진지 오랜 윤동주의 묘소, 학
적부, 생가집터 그리고 송몽규의 묘소와 명동교회를 찾아냈습니다. 이로부터 윤동주님의 
인생 궤적과 윤동주님의 많은 사실이 소상하게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오오무라 마스오(大村益夫) 교수가 윤동주님의 사실들을 찾아내기 위해 중국 동북지역에
서 동분서주하시면서 애 쓰시는 그 열정과 노력은 연변의 문이들을 감동시켰으며 미구에 
연변에는 “윤동주 열풍”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연변의 문인들을 중심으로 연변의 광범한
조선족인민들은 연변 땅에서 태여 나서 자라났고 연변 땅에 묻혀 있는 윤동주 시인으로 
하여 자호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는 윤동주 시인이 남긴 주옥같은 시들은 사람들을 
아주 감동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연변에서는 윤동주님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는 연변에서 널리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윤동주님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날로 증폭되어 가자 연변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의 연
구원들은 윤동주님의 시 10수를 골라서 『문학과 예술』(1985년 제6기)에 실었는데, 중국
조선족의 많은 독자들속에서 열띤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로부터 용정중학교의 학생들은 
윤동주시연구회」가 발족되어 정기적으로 시가낭송회를 가졌고, 해마다 청명과 추석이면
윤동주님의 묘소를 찾아서 참배하였습니다. 이하 때를 같이하여 연변의 학자들도 윤동주
의 인생과 시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1994년6월14일,용정에서는 「민족시인 윤동주 50
주기 학술 토론회의」가 열렸고, 또 한국 유지인사들의 도움을 맡아 윤동주 시인이 출생한
명동촌 생가 집터에다 윤동주 시인생가와 명동교회를 복원했습니다. 그리하여 시인 윤동
주가 삶의 발자취를 남긴 명동촌, 용정중학교, 원용정동산기독교회 공동묘지 등은 일약 
국내외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관광명소로 되었습니다. 이밖에도 연변작가협회기관지 『
연변문학』, 『중학생』 등 문학지나 교양지들에서는 「윤동주문학상」을 설치하여 중국조
선족 동포문인들과 문학에 뜻을 둔 청소년들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1999년 연변대학 고적
연구소에서는 중한 두 나라의 문자로 『윤동주 유고집』을 출간하여 처음으로 13억 중국인
들에게 시인 윤동주를 소개했습니다. 


二, 윤동주의 시와 북간도 

윤동주님의 시심은 북간도, 바로 연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북간도는 시인의 
사상의 출발점이자 회귀점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윤동주님의 이름과 함께 
이어져 있는 인구에 회자된 시중에는 「별 헤는 밤」이 있습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
던 아이들의 이름과, 佩, 鏡, 玉, 이런 異國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가 된 계집
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
스 쟘, 라이넬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北間島에 계십니다… 

윤동주의 이름과 함께 가장 사람들의 애송을 받고있는 시 「별 헤는 밤」의 한 토막입
니다. 고향 북간도 명동을 멀리 떠나 있는 시인은 맑고 그윽한 가을의 밤하늘을 보면서 별
을 헤고 있습니다. 별 하나 하나에 고향의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보며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에 젖어있습니다. 
대관절 시인에게 북간도란 어떤 곳입니까? 시인 윤동주는 북간도에 이주한 집안의 제3
세대로 북간도의 명동촌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에게 북간도는 태를 묻은 고장입니다. 그러
므로 윤동주의 시심(詩心)은 북간도의 터전에서 움이 튼 것입니다. 하기에 시인은 북간도
에서 지낸 어린 시절을 , 그리운 모든 것을 별에 부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니, 잃어버
린 아름다운 모든 것들이 하늘의 별빛으로 승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성좌의
복판에는 어머님이 계셨던 것이다. 말하자면 ꡒ아슬히ꡓ 멀리 있는 북간도와
어머니를 비롯한 그리운 것들과 시인과의 수평적 관계는 별세계와의 대응, 즉 수직적 관
계로 변함으로써 시인의 추억은 그처럼 아름답게 승화하고 형상화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시인은 마치 아름다운 별세계와 같은 고향에 가지 못함을 한스러워 하고 무서
운 상실감에 젖게 됩니다. 그에게는 김북원의 경우처럼 ꡒ낙동강물 에워 젖처럼 마
시며ꡓ 잔뼈 굵어진 고향도 없고, 송철리의 경우처럼 ꡒ하염없이 쓰러보는 파
란―꽃송이에/ 무지개마냥 아롱지는 흘러간 옛 마을ꡓ에 대한 추억도 없다. 말하자
면 북간도에서 살았던 많은 시인들의 경우엔 남쪽의 어느 특정된 고장이 향수의 대상, 그
리움의 대상으로 되지만 윤동주에게는 마냥 북간도와 함께 어머님이 성좌처럼 안겨온다. 
윤동주에게는 북간도가 고향이요, 북간도가 시적 상상의 원점이 됩니 다. 
하지만 정작 북간도를 찾아온 시인은 병들고 찌든 고향에 환멸을 느낀다. 어머님과 동
년의 꿈을 찾을 수 없는 시인은 별빛이 내린 언덕에 자기 이름자를 쓰고 그것을 덮어놓으
면서 슬픔에 젖기도 하고 잃어버린 자기, 소외된 자기를 두고 비탄에 잠기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쉽게 씌어진 시」에서 

거 나를 부르는 것이 누구요. 
가랑잎 이파리 푸르러 나오는 그늘인데, 
나 아직 여기 호흡이 남아 있소. 
한번도 손들어보지 못한 나를 
손들어 표할 하늘도 없는 나를 
어디에 내 한 몸 둘 하늘이 있어 
나를 부르는 것이오. 
일을 마치고 내 죽는 날 아침에는 
서럽지도 않은 가랑잎이 떨어질 텐데… 
나를 부르지 마오. 
―「무서운 시간」에서 

이처럼 시인은 무서운 소외감과 고독감에 빠져 ꡒ손들어 표할 하늘ꡓ도 없
는 자신을 괴로워하지만 역시 고향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하기에 시「길」에
서는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정처 없이 방황한다. 시인은 이 길은 담을 끼고 뻗어있는 
길이며 담 위에 푸른 하늘이 넓은 공간을 암시하여주지만 길을 막은 담으로 하여 잃은 물
건을 찾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을 찾기 전에 시인은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없었
다. 이 시의 마지막부분에서 시인은 말합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시인은 끝내 꿈결에나마 북간도를 찾는다. 하지만 북간도 역시 그가 뿌리내릴 땅이 아
니며, 그를 외면한다. 하여 실향의 아픔, 자기 상실의 그늘은 점점 짙어갑니다. 윤일주 씨
의 기록에 보면 시인은 1942년까지 매년 겨울과 여름 방학에 고향에 내려갔었다고 한다. 
하지만 고향은 그의 추억 속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고장이 아닙니다. 고향에 돌아온 시인은
역시 고향상실의 비애와 불안을 느꼈습니다. 

故鄕에 돌아온 날 밤에 
내 白骨이 따라와 한 방에 누웠다. 

어둔 房은 宇宙로 通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어둠 속에서 곱게 風化作用하는 
白骨을 드려다 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白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짓는다. 

어둠을 짖는 개는 
나를 쫓는 것일 게다.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白骨 몰래 
아름다운 또 다른 故鄕에 가자. 
―「또 다른 고향」에서 

역시 윤동주의 대표작의 하나로 꼽히는 이 시에서는 윤동주의 뿌리 깊은 고향 상실의식
과 그 비애, 불안한 심리, 강박관념과 함께 새로운 고향, 즉 열린 세계에 대한 동경과 갈
망이 잘 나타나있습니다. 시인은 그처럼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고향은
이미 영혼과 육신이 편안히 안주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닙니다. 이미 유년의 평화와 아름다
운 동심은 사라지고 어둠으로 가득 찬 불안의 장소로 퇴색한 고향일 뿐입니다. 말하자면 
죽은 자신의 시신(屍身)과 만나는 음산한 곳이고 ꡒ어둔 방ꡓ으로 집약하여 
표상할 수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고향은 아름다운 추억과 그리움이 어두운 현실과 갈등을
이루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ꡒ백골ꡓ, ꡒ나ꡓ, ꡒ
아름다운 혼ꡓ이라는 이 시의 상관관계들이 밝혀집니다. 
ꡒ백골ꡓ은 본질적인 자아, 즉 고향을 그리고 고향에 안주하려는 자아를 말
한다면, ꡒ나ꡓ는 현실적인 자아, 즉 고향의 어둠에 질식을 느끼고 쫓겨가는
자아를 말하고 ꡒ아름다운 혼ꡓ은 이상적인 자아를 말한다고 할 수 있을 것
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중심 연으로 되는 

어둠 속에서 곱게 風化作用하는 
白骨을 드려다 보며 
눈물짓는 것이 내가 우는 것이냐 
백골이 우는 것이냐 
아름다운 혼이 우는 것이냐 

라는 시구들은 어둠 속에서 점점 상실되어 가는 삶의 터전에 대한 본질적인 자아, 현실적
인 자아, 미래적인 자아의 탄식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또 이 세 가지 자아는 서로 모순되
고 갈등을 빚어내고 있으니 현실적 자아는 본질적 자아를 포기하고 미래적인 자아를 동경
하는 것이다. 하기에 시인은 밤을 짖는 지조 높은 개에게 쫓기듯 ꡒ아름다운 고향&#
43091;을 찾아 또다시 정처 없이 떠나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고향상실과 그 비애 및 새로운 세계에 대한 신념과 동경은 윤동주 시세계의 
정서적 원형을 이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시인은 북간도 명동촌에서 대랍자로, 평양
으로, 다시 용정으로, 다시 서울로, 또 일본 동경으로, 경도(京都)로, 후코오카(福岡)으로
, 마침내 유골이 되여 북간도에 돌아와 묻힐 때까지 스물 여덟 짧은 생애를 줄곧 표박(漂
泊)의 혼으로 떠돌아다녔습니다. 어두운 일제치하에 그가 뿌리내릴 고향은 끝내 없었던 것
입니다. 
그토록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준 고향 북간도가 ꡒ어둔 방ꡓ으로 되고 자
기의 시신과 함께 자리를 해야 할 음산한 ꡒ병실ꡓ로 되였을 때 윤동주는 부
끄러움을 느끼고 참회하고 마침내는 그 어떤 비장한 사명감에 젖게 됩니다. 그의 시가 저
항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 근거 또는 전환의 계기가 여기에 있습니다. 

어둠속에 빛나는 찬란한 빛줄기―윤동주 시의 저항성 

윤동주의 시창작은 1936년 중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초기에 동시를 많이 썼고 또
이렇게 시작된 1930년대의 시들에는 시인의 사회의식이나 역사의식이 거의 나타나지 않습
니다. 그것은 우리민족의 역사적인 수난 속에서 발견한 자아가 아니라 그 같은 대사회적 
사명감으로부터 고통을 의식하기 이전의 순수하고 행복한 자아였습니다. 
하지만 실향의 아픔을 경험하고, 북간도는 물론 뿌리내릴 고향이란 전혀 없음을 깨달은
시인은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고 비장한 죽음을 선언하기도 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너무나도 유명한 그의 「서시」입니다. 이미 딱딱한 껍질 속에 동체(胴體)와 촉각을 움
츠리고 해와 달과 산과 들을 노래하던 시인은 아니었습니다. 사회와 역사를 떠나서 저 혼
자만의 서정적인 감각이 주는 쾌감과 그 피난처의 안식에는 그 이상 머무를 수 없었던 것
입니다. 사회와 역사를 보는 눈이 불현듯 밝아지고 나 개인 속의 ꡒ나ꡓ가 아
니라 ꡒ역사 속의 나ꡓ, ꡒ민족 속의 나ꡓ를 하나의 사명감으로 
인식했습니다. 이미 6˜7년간 시를 썼지만 이 시에 「서시」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도 
바로 그러한 자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ꡒ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ꡓ 
―이 얼마나 고고하고 지순(至純)한 세계입니까? 물론 이와 같은 변화는 아무런 예고 없
이 다가왔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인은 여러 시에서 어두운 현실에서 오는 울분, 아픔, 진
통, 반발을 조용히 읊고있습니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
이의 病을 모른다. 나한테는 病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試鍊, 이 지나친 疲勞, 나는 
성내 서는 안 된다. 
―「병원」중에서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두는 것은 
너 무나 괴롭은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하루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
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돌아와 보는 밤」중에서 

시인이 암시하는 바는 분명하다. 시인은 현실을 부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며 어두운 현
실의 중압에 지쳐 있고 피로를 느낍니다. 따라서 이러한 현실과의 결별을 다짐하며 비극적
인 감정에 젖습니다. 

괴로웠던 사나이, 
幸福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十字架가 許諾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십자가」중에서 

이처럼 윤동주는 고통과 시련의 동굴 앞에서 망설이다가 이렇게 드디어 십자가를 짊어
지게 된 것이며 ꡒ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ꡓ하고 
그리고 ꡒ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갔던ꡓ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윤동주의 시를 저항시라고 하며 암흑기의 한줄기 빛이라고 합니다. 
윤동주와 아주 대조를 이루는 것은 당시의 적지 않은 우리의 시인들을 포함한 문학인 지
성인들의 삶의 자세였습니다. 그 단적인 실례를 하나만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수백 척의 비행기와 / 대포와 폭발탄과 / 머리털이 샛노란 벌레같은 병정을 싣고 / 우
리의 땅과 목숨을 뺏으러 온 / 원쑤 영미의 항공모함을” 

예비지식이 없이 읽노라면 필경 북한의 한 시인이 미제국주의를 규탄한 시일 것이라고 
생각한대도 그리 이상하지 않습니다. 불과 수십년 전이었다면 아마 한국의 국가 보안법에 
걸렸을 법한 이 작품의 제목은 「마츠이 하사(松井伍長) 송가」이며 지은이는 미당 서정주
, 발표된 건 1944년 12월 9일자 『매일 신보』였습니다. 주인공 마츠이는 경기도 개성 인(
印)씨내 둘째 아들로 21세. 가미기제 특별 공격대원으로 필리핀의 레이터해전(1944.10.23
~26)에서 희생됐다. 미당 서정주가 이런 무치한 친일시를 쓰고있을 때 우리의 윤동주님은
항일민족운동을 위한 사상범의 혐의를 받아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 갇혀 있었습니다. 수
많은 일반인들은 아무런 명분없이 마츠이 오장 처럼 일제의 대포밥으로 부나비처럼 전쟁의
불길속에 스러져가고 서정주 같은 적지 않은 지성인들은 일제의 폭압에 못 견디어 아부하
고 굴종했던 암흑기에 윤동주 님은 말 그대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비
록 짧지만 떳떳한 한 생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늘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자책했습니다. 지
금도 한국의 보수세력들은 친일파 청산이 거론되기만 하면 “긴 세월이 지난 지금 왜 새삼
과거를 들추는가? 그 자식들이 받는 정신적인 고통은 누가 보상해주는가? 이것이 새로운 
연좌법이 아닌가?”하면서 큰 소리를 치는 현실이 아닙니까? 반민족 매국 행위는 참회 이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상쇄되지 않습니다. 이토록 참회의식의 결여된 사람이 아직도 가득
한 오늘의 한국의 현실에서 윤동주님의 시에서 표현된 “참회의 미학” 또는 “부끄러움의
미학”은 너무나도 귀중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윤동주 시인은 우리중국조선족문학의 대부이신 의 김학철 선생처럼은 무장을 들고 
항일의 성전에 나서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일어나는 슬픔을 슬퍼할 자유도 없어
서 자연과 원시와 신앙의 세계로, 또는 의미를 완전히 배제해버린 백치의 세계(순수시의 
경우)로 도피해 버리거나 일본식으로 창씨개명하고 일제의 총칼 앞에 아부, 굴종했던 시대
, 일반인에게는 그것이 숙명처럼 받아들여지던 시대에 윤동주의 시는 그야말로 한줄기 빛
줄기처럼 소중한 것이요, 비록 그 당시 햇빛을 보지 못했지만 재만조선인시단의 가장 아름
답고 자랑스러운 시문학의 유산으로 남았습니다. 
특히 아직도 한국에서는 일제식민지로부터의 해방된지 60년이되 지금까지도 의 시점에서
조차 친일파 청산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오늘의 시점에서 윤동주님의 저항정신은 새삼
음미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친일행각을 했던 사람들의 진정한 참회와 반성
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은 한국의 풍토에서 윤동님의 “참회의식”, “부끄러움의 미학”
은 아주 귀중한 정신적인 양약(良藥)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윤동주 시의 매력― 순수하고 순결한 심성의 서정화 

스물 아홉의 아까운 나이로 이국에서 옥사한 윤동주의 저항적 생애가 숭고한 감동을 주
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바로 시의 예술적 가치와 그 감동으로 이어지는 것
은 아닙니다. 또한 그의 시가 가지는 최종적인 가치와 감동의 비밀은 저항적인 성격을 지
니는데 있지 않습니다. 오오무라 교수는 윤동주의 시가 가지는 감동의 비밀을 다음과 같이
설파(說破)하고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그에 대한 아무런 예비 지식이 없이도 누구나 감동할 만큼 탁월하다. 쉬운
표현, 잘 이해할 수 있는 시어의 구사, 동요와 동시적인데다가 문학적 향기가 짙은 그의
시 속에는 그의 순수하고 순결한 심성이 그대로 녹아들고 스며들어 있다. 특히 내가 좋
아하 는 ꡐ서시ꡑ, ꡐ자화상ꡑ, ꡐ별 헤는 밤ꡑ 
같은 시는 세계적인 명시라고 나는 보고 싶다. 
그의 시속에 담긴 저항의 소극성은 어딘지 가냘픈 감상에 흐른 면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나약한 저항적 요소가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요소라고 생각된다. 캄캄한 일제
하 의 암흑기에 윤동주는 한 민족에게는 그 어둠 속에서 빛나는 찬란한 빛줄기였다고 나
는 생각 해 왔으며 그의 삶에 대해 존경의 뜻을 지녀왔다. 윤동주의 시속에 그저 처절한 
저항적인 면만이 부각되어 있다면, 나는 그처럼 그의 시속에 몰입하고 매료되지 않았을 것
이다.) 

오오무라 교수의 견해는 윤동주 시에 대한 일반 독자층의 보편적인 공감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실로 윤동주의 시에는 처절한 대결과 저항은 없거니와 설사 있다 해도 독자들은
또 그러한 저항의식에서 주되는 감동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시속에 녹아든 시인의 
ꡒ순수하고 순결한 심성ꡓ에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의 시를 읽고 우리가 감동을 받는 것은, 윤동주가 무엇보다도 욕되고 부끄
러운 자아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을 제기함으로써 인간적인 진실에 가까워지려고 부단히
노력한 데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의 하나인 「참회록」을 보기로 합시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王朝의 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滿二十四年 一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隕石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자기 성찰의 슬픈 시선이 느끼지는 시입니다. 시인은 자기의 얼굴이 어느 왕조의 유물
처럼 욕되게 느껴지고 ꡒ만 이십사년 일개월ꡓ을 보람없이 살아온 자신을 참
회합니다. 또 자기의 어리석음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 자기는 슬픈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자아 성찰의 느낌이요, 주조(主潮)가 되고 있는 것은 뉘우침
의 감정입니다. 
그런데 「참회록」에서 뿐만 아니라 이러한 욕됨, 부끄러움의 심상은 그의 시 곳곳에서
발견되는 대표적인 심상입니다. 그러면 윤동주의 욕됨, 부끄러움의 본질을 구명하기 위해
그의 작품들 중에서 부끄러움이 강조된 부분들을 뽑아 비교해 보기로 합시다. 

(가)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러운 고백을 했던가 
―「참회록」에서 

(나) 이브가 해산하는 수고를 다 하면 
무화과 잎사귀로 부끄런 데를 가리고 
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 
―「또 태초의 아침」에서 

(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길」에서 

(라)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쉽게 씌어진 시」에서 

(마)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별 헤는 밤」에서 

(바)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떼가 부끄러울 것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해빛에 비춰, 날았다. 
―「사랑스러운 추억」에서 

(사)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서시」 에서 

이상의 시들이 씌어진 시기가 각기 다르지만 시인이 느끼는 욕됨, 부끄러움의 본질과 
그 층위를 대개 아래와 같이 헤아릴 수 있다. (가)에서는 시인의 어리석음, 또는 삶의 허
무함에서 오는 부끄러움이다. (나)는 기독교적인 신앙을 기조로 하여 씌어진 것으로서 성
경에 나오는 설화를 시로 옮긴 것인데 ꡒ나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겠다ꡓ는 시
행으로 미루어보아 기독교적인 원죄의식으로 말미암은 겸손한 신앙인의 부끄러움이다. (다
)는 준엄한 윤리의식에 바탕을 두고있는데 하늘(동양은 天, 서양은 기독교의 하느님)을 우
러러볼 때 느껴지는 부끄러움이다. (라)에서는 윤리적 삶에 대한 인간의 고뇌, 말하자면 
나라를 빼앗긴 식민지 지식인의 부끄러움을 노래하고 있다. (마)는 심성이 나약하고 우유
부단한 식민지 시대의 창백한 지식인의 이름을 적어본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한다. 
(바)에서는 하늘을 비상하는 비둘기와 땅에서 주춤거리고 서있는 시적 자아를 대비시키고
있다. 햇빛과 하늘은 시인이 동경하고있는 절대적 이상의 세계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그러
한 절대적 이상의 세계를 자유로이 날아 예는 비둘기는 ꡒ부끄러울 것ꡓ 없는
존재요, 또 시인은 그러한 비둘기의 삶을 동경한다. 여기에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乖離)
에서 오는 시인의 부끄러움이 깔려있다. (사)에서는 이러한 진실한 자아 성찰과 뉘우침을 
거쳐 순결하고 무사(無邪)한 윤리적 지향을 갖게 되는 시적 자아의 부끄러움을 말하면서 
절대 이상의 세계인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리라고 다짐하고있다. 
윤동주의 시가 이런 진실한 자아 성찰에 의한 ꡒ욕됨, 부끄러움ꡓ의 정서
로 끝났다면 역시 감동을 주기에는 부족하다. 윤동주는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하면서도 진실한 자아 성찰과 풀벌레우는 소리에도 부끄러움을 느끼는 뼈
저린 참회와 인고의 노력을 통해 시대처럼 다가오는 새아침을 믿고 결연히, 그러나 조용히
어두워 가는 하늘밑에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흘렸던 것이다. 물론 그
의 저항의식이 기독교적인 속죄양의식과 인고의 정신에 바탕을 두었고 남성적인 대결과 저
항의 의지가 부족한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실지에 있어서 그의 시의 가치는 저항시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의 그 너머에 존
재한다. 그의 시는 자아 성찰과 뉘우침을 통해 부단히 진실로 복귀하여 그 존재론적 고뇌
를, 순수하고 순결한 심성을 투명한 서정으로 이끌어 올림으로써 우리에게 따뜻한 위안과
아름다운 예지 그리고 우리 자신의 힘을 일깨워준 데 그 감동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의 마지막 단락이다. 시인의 예측은 적중했다. 시인의 이름
자 묻힌 언덕 위에는 풀이 자랑처럼 무성합니다. 문익환 목사의 말 그대로 오늘날 그를 회
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모두의 넋이 맑아집니다. 또 그의 노래는 백의동포의 많은 어린
이, 젊은이들이 입을 모아 읊는 바가 되였습니다. 
아무튼 북간도에 시심의 뿌리를 박고 자신의 결백하고 희생적인 자아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들을 사랑하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한 제단에 자기의 젊은 몸을 조용히 바친 그의 아름다운 시편들은 재만조선인문
학이 남긴 가장 귀중한 정신사적 유산으로 되며 동시에 암흑기 한국현대문학의 명맥을 잇
고 그 거친 광야를 비춘 한줄기 밝은 별빛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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